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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4

일제의 한국인 강제징용자 대학살 만행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일제의 한국인 강제징용자 대학살 만행, 폭발로 위장한 집단살인 사건 돌아오지 못한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1937년 12월부터 약 6주간 자행된 난징대학살(남경대학살)은 일제의 잔혹한 대학살 만행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일제의 잔혹한 대학살 만행은 중국인에 국한되지 않았다. 1876년 일제와 불평등 강화도조약을 맺은 이후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한국인 약 8백만 명이 일제의 잔혹한 만행에 대학살 당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만 해도 약 30만 명의 한국인이 일제의 총칼 아래 죽어갔다. 조선의 관군도 동학 농민혁명군 진압에 동원됐지만, 일제가 전투를 진두지휘하며 당시 최신식 연발 기관총 난사해 대학살을 자행했다.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뒤에도 일제의 잔혹한 대학살 만.. 2017. 8. 20.
아메리카 인디언 살육전쟁- 백인의 인종 대학살 북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 살육전쟁 - 백인의 무자비한 인종 대학살 약 3백 년 동안 북아메리카 현재의 미국 본토에서 벌어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한 대학살이다. 소위 학자들은 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 사이의 정복 전쟁이라고 하나 백인들의 무자비한 인종 대학살이며 살육전쟁이었다. 16세기 스페인의 백인 정복자들은 중남미에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인종 대학살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또 다른 백인들이 북아메리카에 상륙하여 원주민 인디언들을 17세기부터 약 3백 년 동안 똑같이 무자비한 인종 대학살 만행을 저질렀다. 아메리카 인디언 대학살 만행도 중남미 대학살 만행과 그 양상은 비슷하다. 백인들이 다른 대륙에서 들어온 전염병과 황금에 눈이 멀어 무자비한 인디언 살육전쟁으로 인종 대학살을 자행했다... 2016. 7. 24.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의 현장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의 현장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1939년에서 1945에 걸쳐 유럽과 북아프리카, 아시아와 태평양 등지에서 벌어진 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은 사망자는 약 5천만 명에서 최대 7천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참전국 각 나라의 사망자와 부상자 수치는 차이가 다소 있고, 특히 민간인 사상자는 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정확한 통계치도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현장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사망자도 다른 민족과 유대인을 포함하여 최소 4백만 명에서 최대 7백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계속해서 희생자 줄더니 가장 최근에는 1백만 명에서 최대 1백50만 명의 희생자로 말하고 있다. 이 역시 추정치일 뿐 2차 세계대전 사상자 통.. 2016. 3. 26.
중국의 티베트 대학살과 망명한 티베트 불교 최고 지도자 달라이라마 중국의 티베트 대학살과 망명한 티베트 불교 최고 지도자이며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 티베트와 중국의 악연은 현재 중국의 역사에서 전하는 기록으로는 토번 왕국(吐蕃, 옛 티베트)과 당나라 간의 전쟁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최선봉에 섰던 당나라 최고 무장 설인귀가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황제의 명을 받아 12만 대군을 이끌고 4,000m 고원지대 토번 왕국(티베트) 정복에 나섰다가 대패하고 돌아온다. 티베트 불교는 인도로부터 들어왔으나 7세기 송첸 감포 왕 때 티베트 불교 체계화되며 불교가 자리잡게 된다. 송첸 감포 왕은 당나라 태종의 양녀였던 문성공주와 정략결혼을 하였고, 티베트 왕의 제2 왕비가 된 문성공주는 결혼을 하면서 당나라의 선진 문물과 불교관련 문화를 가지고 가서 송첸 감포 왕.. 2015.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