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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을 위한 자치기관 경학사와 항일무장 투쟁의 요람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민족지도자

명문대가의 후손에서 독립운동가로 변신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석주 이상룡 선생은 단군기원 4191년 조선 철종 9년, 서력 1858년 11월 24일 경북 안동의 임청각에서 태어났습니다.

1895년 조선의 국모(명성황후)가 일본 제국주의 낭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자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석주 이상룡 선생은 외숙부 권세연과 함께 의병 활동을 했습니다.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이 일어나자 가야산에 의병 군사기지를 만드는 한편 동지들과 함께 대한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근대교육 기관인 협동학교를 세웠고 계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1910년 8월 29일 치욕적인 경술국치를 맞아 99칸짜리 임청각을 팔고 집안 식구들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했습니다.

1911년 1월 54세의 석주 이상룡 선생은 엄동설한에 일가족과 50여 가구를 이끌고 만주로 망명했습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수백 년을 지켜온 임청각을 팔고 만주로 떠날 때 사당에 모셔놨던 조상님 신주(위패)를 모두 땅에 묻고, 노비 문서를 불태우며 "너희들도 이제 독립군이다."라고 하시며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힘을 보탤 것을 부탁했습니다.

 

 

만주로 간 석주 이상룡 선생은 우당 이회영 선생, 김대락, 김동삼 등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한 항일무장 투쟁 독립군 간부를 양성한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셨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께서 1913년 직접 저술한 『대동역사大東歷史』는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교재로 사용됐는데 현재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항일무장 투쟁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참역사를 바로 알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도 무장투쟁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1918년 조소앙 선생 1918년 기초한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서인 무오독립선언서에 석재 이상룡 선생을 비롯한 39명이 서명했습니다.

 

조소앙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 헌장을 기초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원 비서장, 외교부장, 내무부장, 국무위원 등을 지냈으며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 때 미처 피난 가지 못하고 인민군에 의해 북한으로 납북됐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은 지청천, 김동삼 등과 함께 1919년 서로군정서를 조직하여 항일 무장투쟁에 나섰습니다.

 

우당 이회영과 석주 이상룡 선생 등이 설립한 항일무장투쟁의 요람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독립군들은 1920년 6월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와 10월 청산리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봉오동전투에서 대패한 일본 제국주의는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수만 명의 우리 동포를 무참하게 학살한 이른바 간도 대학살(경신참변) 만행을 저질렀고, 상당수 항일독립단체가 소련의 연해주로 이동합니다.

 

 

만주 지역에서 무장 항일투쟁을 하던 독립단체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는 별개로 항일무장독립투쟁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에 밑거름이 됐고, 現 육군사관학교의 모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3.1혁명 이후 세 곳에서 출범했습니다.

1919년 3월 7일 러시아에서 최초의 임시정부가 출범했고, 4월 11일 상해에서 두 번째 임시정부가 출범했으며, 4월 23일 서울에서 한성 정부가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는 1대 이승만, 2대 이동녕 선생에 이어 안창호 선생(대리)이 국무총리를 지냈습니다.

1919년 9월 11일 러시아, 서울, 상해의 임시정부가 통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 초대 국무총리에 이동휘 선생이 선임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국제연맹에 대한민국 위임통치를 독단적으로 청원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에 의해 탄핵당해 대통령직을 박탈당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한동안 내분으로 크게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1920년 만주 지역에 흩어져 있던 항일무장독립단체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군사통일촉성회에서 통합 방안을 협의했지만, 뚜렷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고 192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열립니다.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에 박은식 선생이 선출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대통령제에서 국무령제로 바꾸고 사임했습니다.

 

 

68세의 석주 이상룡 선생은 1925년 9월 24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국가원수)으로 선출됐고, 1926년 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직을 사임하고 만주(간도)로 다시 돌아갑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국가 원수)를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은 만주로 돌아온 후 만주 지역에 산재한 독립운동 단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민족유일당운동참의부, 정의부, 신민부로 나누어진 항일무장투쟁단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삼부 통합회의를 주도하시다 1932년 5월 12일 중국 길림성 서란현에서 75세를 일기로 순국하셨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역임한 석주 이상룡 선생께서는 "나라를 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가져가지 말라. 외세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더울 힘써 목적을 관찰하"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순국하셨습니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정권의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1962년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을 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국가 원수)를 역임한 석주 이상룡 선에게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이 추서됐습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유해는 1990년 조국을 떠난 지 80년, 광복을 맞은 지 45년이 지난 1990년 10월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은  근 100년 동안 무국적자였다가 2009년이 되어서야 단재 신채호 선생 등과 함께 대한민국 국적이 회복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집안은 3대에 걸쳐 9명이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충의로운 집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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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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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06 04: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몰랐던 근현대사 역사를 공부하고 갑니다^^ 즐거운 수요일 보내시길 바래요

  2. 청결원 2019.03.06 0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뿌연 미세먼지 많은 날이지만
    건강 유의 하시고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3. kangdante 2019.03.06 0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상룡 선생에 대해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건강한 하루되세요.. ^.^

  4. 죽풍 2019.03.06 2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자주독립과 항일 무장투쟁의 구심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광복 후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을 점령하고 있는 일제 식민 잔재(친일 잔재)

EBS 교육방송 <우리 곁의 친일 잔재 1부 제국의 학교>

 

 

 

 

 

 

 

 

 

 

 

 

 

먼저 우리 역사를 오랫동안 왜곡한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실체를 바르게 알아야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의 국호(國號)의 참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아직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민족정기를 해치고 있는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 잔재, 친일 식민사학의 망령을 일소할 수 있습니다.

 

 

 

기자조선은 전혀 근거가 없는 중국이 날조한 가짜 역사에 불과하며, 위만조선 역시 실체가 없는 것으로 망명객이었던 위만이 번조선의 준왕을 쫓아내고 옛 조선의 서쪽 영토 일부를 잠시 장악했던 지방 정권으로 위만조선이 아니라 위만정권이라 해야 옳습니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란 것은 중화 사대주의와 일제 식민주의 사관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된 가짜 역사입니다.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이제부터라도 중국과 일본의 왜곡과 조작으로 얼룩진 노예역사를 깨끗하게 청산하고 대한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야 합니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조선 26대 왕 고종은 1897년 우리의 주권을 회복하고 자주독립국임을 천명하는 대한제국 선포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창업한 근세조선은 옛 조선(고조선)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습니다.

조선의 26대 왕 고종 역시 옛 조선(고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천자의 나라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꿨습니다.

 

 

 

 

 

 

 

 

 

 

 

옛 조선(고조선)은 나라를 세 영역으로 나누어 대단군이 한, 두 명의 부단군이 한과한을 각기 맡아 다스렸는데, 이것이 바로 삼한(三韓, 삼한관경제)입니다.

 

 

근세조선과 대한제국이 모두 옛 조선(고조선 삼한관경제)을 계승한다는 뜻으로 나라 이름은 같은 의미입니다.

삼한(三韓)은 진한, 번한, 마한이 하나큰 한(韓)으로 대한(大韓)입니다.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통합해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國號)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안 될 것이 없다."

 

 

우리가 아는 삼한이란 한반도의 진한, 번한, 마한입니다.

본래의 삼한은 옛 조선(고조선)이 진한, 번한, 마한의 삼한관경제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삼한은 옛 조선(고조선)의 마한 지역입니다.

 

 

 

 

 

 

 

 

 

 

혹자는 대한제국 국호가 한반도에 있던 마한, 진한, 번한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데, 남산한은 옛 조선(고조선)이 문을 닫고 난 후 한반도 내의 삼한입니다.

 

 

남삼한(한반도 내의 마한, 진한, 변한)은 옛 조선(고조선)의 마한 영토로 근세조선과 대한제국이 옛 조선(고조선의 진한, 번한, 마한)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나라 이름을 정한 것이지 남삼한을 계승해서 대한제국 국호를 정한 것이 아닙니다.

 

 

독립운동가이며 역사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예 조선(고조선)의 진한, 번한, 마한의 삼한을 북삼한(北三韓)이러 했고, 옛 조선(고조선)이 몰락한 후 고조선 유민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토착세력과 함께 재건한 신라, 백제, 가야를 남삼한(南三韓)이라고 했습니다.

 

옛 조선(고조선)은 대륙삼한 또는 전삼한(前三韓)이라 말하고, 백제, 신라, 가야를 남삼한 또는 후삼한(後三韓)이라고 합니다.

 

 

 

 

 

(교육방송 다큐 시선 - 우리 곁의 식민 잔재 캡쳐)

 

 

 

 

 

만주와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3.1운동의 주역 등 애국지사들이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들어갔습니다. 임시의정원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헌장이 통과되었습니다.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앞서 1919년 4월 10일 국호를 정할 때 임시정부 교통 총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신석우 선생이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라는 제안이 다수의 찬성으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1919년 4월 11일 대한제국에서 국민이 주권을 갖는다는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상해에서 수립됐습니다.

 

 

 

결국, 지금의 대한민국 국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것이지만, 진한, 번한, 마한으로 나라를 다스린 옛 조선(고조선)을 계승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3.1만세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교육방송 <다큐 시선 - 우리 곁의 친일 잔재> 프로그램을 방영했습니다.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일제 식민 잔재(친일 잔재)의 실체를 고발한 프로그램을 시청한 많은 국민이 댓글을 통해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교육방송 다큐 시선 - 우리 곁의 식민 잔재 캡쳐)

 

 

 

 

 

2019년은 3.1만세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지난 70여 년 동난 각계각층에서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 내린 일제 식민 잔재(친일 잔재)를 찾고 청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가치를 파괴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했으며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와 대립과 분열의 역사를 만든 일제 식민사관은 해방 후 반드시 청산해야 했는데, 일제 식민 잔재(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 해산되면서 무서울 정도의 기세로 성장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왜곡 조작 파괴한 역사만행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책이 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모여 일본의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정리한 <조선사 35권>입니다.

 

 

 

 

 

 

 

 

 

 

인하대 고조선 연구소는 일제가 우리 역사를 조작해 만든 <조선사 35권>을 번역과 정밀 해제, 기존 사료와 비교 분석 및 고증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 잔재(친일 잔재)인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친일 역사서를 연구하는데, 국민 혈세를 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온갖 방해 공작을 벌였습니다.

 

 

 

일제 식민 잔재(친일 잔재) 조선총독부 사관을 70여 년 동안 답습하고 있는 주류 강단사학계의 주장을 보면 지나가던 개도 기가 차서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사 35권>은 '친일역사서다.' '사료적 가치가 없다.' '기획 의도가 불분명하다.' '불필요한 사업이다.' '일제가 영구 통치목적에 부합하도록 일방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일본 역사학자들이 비웃을 것이다.' '정부의 정치적 판단이다.' 등의 주장을 해왔습니다.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 그 결과가 나오게 되는데, 지금까지 몇 차례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가 배웠고,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일제 식민 잔재(친일 잔재) 조선총독부가 조작해 만든 <조선사 35권>의 내용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교육방송 다큐 시선 - 우리 곁의 식민 잔재 캡쳐)

 

 

 

 

 

<조선사 35권>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이 모르고 있는 대표적인 일제 식민 잔재(친일 잔재)입니다.

일본인의 손으로 쓴 <조선사 35권>의 가짜 우리 역사가 해방 후 70여 년 동안 우리가 배운 역사입니다.  

 

 

<조선사 35권> 편찬에 참여한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 이병도와 신석호 등이 일본이 왜곡 조작한 역사를 그대로 후학들에게 전하면서 진짜 역사로 둔갑한 것입니다.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교육방송이 준비한 <다큐 시성 - 우리 곁의 친일 잔재 1부 제국의 학교> 편에서 인하대 고조선 연구소 복기대 교수는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의 역사를 왜곡 조작한 이유가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일본의 지방사를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있고, 두 번째는 일본이 대한제국, 대한민국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지배 논리를 만들어야 했다"라는 것입니다. 

 

 

 

 

 

(교육방송 다큐 시선 - 우리 곁의 식민 잔재 캡쳐)

 

 

 

 

 

마디로 일제가 우리 역사를 조작함으로써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강제로 병합한 것이 아니라는 병합의 당위성과 영구적 식민지 지배 논리를 확보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가 지난 70여 년 동안 조선총독부가 왜곡 조작해 만든 <조선사 35권>의 가짜 역사를 그대로 답습해 대한민국 국민에게 일제 식민 잔재(친일 잔재)인 식민사학을 교육해 왔습니다. 

 

 

해방 후 지난 70여 년 동안 철옹성을 구축한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은 대한민국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에서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쌓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청옹성은 가식과 위선, 거짓과 속임수로 쌓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뜻깊은 해를 맞아 이제부터라도 일제 식민 잔재(친일 잔)를 말끔하게 청산해야 대한민국이 진정한 광복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3.1만세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 모든 국민이 역사광복군이 되어 노도와 같이 떨쳐 일어나야 합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마저 초개와 같이 버린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은 지금 우리들의 몫입니다.

 

 

일제에 의해 파괴된 우리의 참역사를 찾는 역사광복군의 역사광복에 대한 피 끓는 열정과 의지, 그리고 역사의 정의가 살아 있는 한 일제 식민 잔재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강단사학계의 기득권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아서 반드시 청산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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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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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9.02.28 0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정보의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2. kangdante 2019.02.28 0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영화 '항거'를 보고나니
    새삼 지난 아픈 역사가 슬프네요
    다시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말아야겠어요

  3. 버블프라이스 2019.02.28 13: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일제 식민 잔재’ 글을 읽고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갑니다^^ 몰랐던 내용이 많네요. 항상 배웁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국권침탈과 잔혹한 압제에 맞서 삼천리강산에 울려 퍼진 3.1만세운동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주년을 맞아 열린 <대한역사광복 전진대회>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조작되고 파괴된 우리의 참역사를 복원하는 역사광복군 출정식 

한韓문화 중심채널 STB 상생방송 <대한역사광복 전진대회> 실황중계

 

 

 

 

 

 

 

 

 

 

 

 

 

1928년 2월 8일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 도쿄에서 우리의 젊은 애국청년 600여 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2.8 독립선언서를 통해 세계만방에 우리 민족이 자주독립임을 선언하고,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주의를 규탄하면서 자주독립의 그 날까지 항일투쟁을 지속할 것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2019년은 도쿄 한복판에서 우리의 <조선청년독립단> 젊은 유학생들이 3.1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2.8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적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2.8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지 20여 일이 지난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으로 3.1독립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2019년은 항일 독립운동사의 큰 분수령이 된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거국적 비폭력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진지 40일 후 중국 상하이에 국내와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하던 독립운동 대표자들이 모였습니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2019년은 現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8 독립선언과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권 회복과 자주독립이었습니다.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항일무장투쟁에 나선 수많은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고, 1945년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면서 우리 민족은 광복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2.8 독립선언 100주년과 3.1운동 100주년,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조작하고 파괴한 가짜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일제가 조작한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는 주류 강단사학계 식민사학자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진정한 역사광복을 이루기 위해 2019년 2월 19일 <대한역사광복 전진대회>가 열렸습니다.

 

 

사단법인 대한사랑이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주최한 <대한역사광복 전진대회>는 중화 사대주의와 일제 식민주의 사관으로 인해 잃어버린 한민족의 뿌리역사와 원형문화 정신을 되찾기 위해 국내외 역사광복군이 모여 대한역사광복 출정식을 개최한 것입니다.

 

 

 

 

 

 

 

 

 

 

대한大韓의 역사와 문화와 혼魂을 지키는 사람들이 모임인 사단법인 대한사랑은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맞아 철저하게 왜곡되고 조작되고 말살된 대한의 역사와 문화와 혼을 되찾아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있습니다.

 

 

 

중화 사대주의와 일제 식민주의 사관으로 조작된 우리 역사가 아직도 국사교과서에 버젓이 실리는 암울한 현실에서 대한의 혼을 일깨우고 통일 한국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대한역사광복 운동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한韓문화 중심채널 STB 상생방송은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 2019년 2월 19일 화요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개최된 <대한역사광복 전진대회>를 실황 중계합니다.

 

 

 

지구촌 8,200만 한국인이 중화 사대주의와 일제 식민주의 사관에 의해 사라지고 파괴된 우리의 참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국내외 대한의 역사광복군 출정식 <대한역사광복 전진대회> 실황중계를 통해 우리의 참역사와 문화정신을 바르게 아는 소중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한韓문화 중심채널 STB 상생방송 3.1절 특집

<대한역사광복 전진대회>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역사광복군 출정식

단기 4352(2019)년 2월 19일 오후 3시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개최된 

<대한역사광복 전진대회> 실황중계

 

 

첫방송: 2019년 3월 1일 금요일 오후 3시

재방송: 2019년 3월 1일 금요일 밤 11시

 

 

 

 

 

 

 

 

 

 

사단법인 대한사랑 온라인 회원 가입

http://www.daehansarang.org/index.php?mid=support

 

 

 

 

대한역사 바로찾기 이천만 서명운동

http://www.daehansarang.org/sign3

 

 

 

 

STB 상생방송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stb.co.kr/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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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2.26 0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칠이 안남았네요. 삼일절 관련해서 좋은글을 공유해주셔서 오늘은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글 잘 읽고 공감누르고 갑니다^^

  2. 청결원 2019.02.26 06: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3. kangdante 2019.02.26 08: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1운동 100년이 흘렀지만
    앞으로의 100년이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 백산(白山) 지청천 장군

 

 

 

 

 

 

 

 

 

 

 

 

 

백산 지청천(본명 지대형) 장군은 조선의 국운이 기울던 1888년 한양에서 대대로 무관(武官)을 지낸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5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

 

 

백산 지청천 장군은 우리나라에서 천연두(시두) 예방 접종인 종두법을 처음 시행한 재종숙 지석영의 도움으로 배재학당을 졸업한다.

배재학당을 졸업한 지청천 장군이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던 중 일제 조선통감부가 대한제국을 압박하여 1909년 육군무관학교를 폐교한다.

 

 

일제는 주변의 시선과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폐교된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학생 50여 명대한제국 유학생이란 이름으로 일본의 육군 장교 후보를 양성하는 육군중앙유년학교에 위탁 교육을 보낸다.

 

 

 

 

 

 

 

 

 

 

 

 

 

백산 지청천 장군이 일본 동경의 육군중앙유년학교에 재학하던 1910년 일제가 무력으로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면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보병과로 편입되었고, 1913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26기로 졸업한다. 소위를 거쳐 중위로 복무하던 중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몸이 아파 요양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고 일본군 군사전술 교범과 군용지도를 가지고 탈출한다.  

 

 

 

만주로 망명한 백산 지청천 장군은 무장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간다.

일본의 정규 육사 출신인 백산 지청천 장군의 군사지식은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이 전술과 전략을 체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백산 지청천 장군은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교성대장)으로 활동하며 무장 독립군 양성에 전력을 다한다.

 

 

 

백산 지청천 장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만주 군정부를 거쳐 신흥무관학교 출신 중심의 서로군정서 사령관을 맡는다.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 안무와 최진동 3형제와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와 백산 지청천 장군의 서로군정서 외 군소 독립군부대가 연합한 한국독립군단이 만들어 졌고, 백산 지청천 장군은 여단장을 맡는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대첩 이후 1920년 간도 대학살과 1921년 자유시 참변이 이어지면서 한국독립군단은 와해하였다.

백산 지청천 장군은 1921년 독립군 무관 양성을 위해 러시아 이르추르크에 세워진 고려혁명군관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

 

한국독립군단이 와해한 자유시 참변(흑해사변) 당시 백산 지청천 장군은 소련 혁명군에게 포로가 되었으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강력한 항의와 구명운동으로 풀려난다.

 

 

백산 지청천 장군은 고려혁명군 대표, 국민위원회 군사위원, 대한통의부(대한통군부)를 거쳐 양기탁, 오동진 장군 등과 함께 대한독립운동엽합체인 정의부를 조직하여 군사위원장과 사령장이 되고, 군민의회의 군무위원이 된다. 

 

1930년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여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을 맡는다.

1931년 중국군과 한중연합군을 결성하여 일본군과 여러 전투를 벌였고, 특히 대전자령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백산 지청천 장군은 동아혈성연맹을 결성하여 각지에 흩어져 있던 항일 독립군부대를 규합하는 데 힘쓴다.

193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광복군의 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을 중국 국민당 정부가 운영한 낙양군관학교의 한인특별반 총책임자로 보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들어간 지청천 장군은 1939년 의정원 의원, 국무위원과 군무장을 거쳐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에 한국광복군을 창설과 함께 광복군 총사령관을 맡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은 군사작전을 감행하는 한편 중국군과 연합하고, 미얀마의 영국군과 연합하는 등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제에 맞서 연합국과 군사합작 및 공동작전에 참여하면서 항일무장투쟁을 지속한다.

지청천 장군의 딸 지복영도 광복군에 들어가 군인으로 항일투쟁을 하였고, 아들 지달수, 지정계도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 백산 지청천 장군은 1945년 일가 연합국에 패전하면서 1946년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미 군정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은 물론 임시정부와 산하 단체의 모든 관계자가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였다.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 백산 지청천 장군은 미 군정하에서 청년단체를 모아 대동청년단을 만들었고, 제헌국회 의원, 정부수립 후 무임소장관(특임장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 1957년 70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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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04.22 06: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청천 장군의 관해 잘 보고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