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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일본 본토 초토화 작전 동경대공습과

도쿄대공습에 숨진 1만여 명의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방식은 크게 3가지다.

 

조선인을 일본군과 군속(군무원)으로 강제징집하여 전쟁의 총알받이와 강제노역에 동원한 것,

조선인을 일본의 침략전쟁에서 필요한 군수기지 건설과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무기 제조와 석탄 채굴 등에 필요한 남녀 인력을 강제노역시킨 강제징용, 조선인 여성을 꼬임과 협박 등으로 강제연행하여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일본군 '위안부' 등이다. 

 

 

 

1939년 일본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이 공포되기 이전인 20세부터 학업, 또는 직업을 찾아 조선인이 본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의 강제연행, 강제징용에 끌려온 조선인도 많았지만, 일본에 수년에서 수십 년 동안 직업을 갖고 정착하여 가정을 이루고 산 조선인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강제징집 또는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우리 동포가 일본에 의해 많이 희생됐다고 알려져 있다.

 

쌍방이 총부리를 겨누고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서양인이 볼 때 일본 군복을 입은 조선인이나 일본군이 모두 똑같아 보여 희생자가 발생한 경우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직접 총을 겨누고 싸우는 전선의 최전방이 아닌 후방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와 일본 본토 도쿄대공습 등 미국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사망한 조선인은 모두 민간인 희생자들이다.

 

조선인 강제징용자와 먹고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일(渡日)한 조선인이 미국의 공격으로 수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미국의 일본 본토 공습의 역사는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본 제국주의가 1941년 12월 7일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폭격한다.

그리고 1942년 2월 24일에는 미국 서해안 캘리포니아의 정유시설을 폭격한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일본 본토 폭격을 승인한다.

둘리틀 중령이 지휘한 80명의 미군 '둘리틀 폭격대'가 일본 본토 폭격작전을 감행했다.

 

1942년 4월 18일 미국은 항공모함 호네트호에 B-25 폭격기 16대로 하여금 일본 본토 도쿄, 오사카, 고베, 나고야 등지를 폭격했으나 그 피해는 크지 않았다.

 

 

 

 

 

 

 

 

 

 

 

 

1942년 6월 미드웨이해전부터 1944년 6월 마리아나 해전까지 참패하면서 일본은 제해권과 제공권을 미국에 빼앗기면서 일본 본토 공습이 본격화된다.

 

 

일본은 패색이 짙어가던 태평양전쟁 말기 본토 대결전을 준비하며 도쿄 대본영을 나가노의 마쓰시로 대본영으로 옮기는 공사에 들어간다. 대본영(大本營)은 일본 천황이 명령을 내리는 전시체제일본군 최고 사령부다.

 

 

1944년부터 시작되었고, 1945년 3월 10일 약 8만여 명이 즉사한 미국의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으로 일본 천황과 일본군 최고 사령부, 정부 기관 등을 도쿄 대본영을 폐쇄하고 마쓰시로 대본영으로 옮기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고, 이때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약 7천여 명이 동원되어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1944년 11월부터 100여 차례의 도쿄 폭격이 이루어졌으며, 1945년 3월 10일까지 이어진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으로 총 10 수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약 5개월간 이어진 도쿄 공습에서 가장 큰 피해는 1945년 3월 10일 폭격으로 불과 3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8만 3천여 명이 사망한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이다.

 

 

 

 

미국은 폭격방식을 고고도 폭격에서 저고도 폭격으로 전략을 바꿨다.

저고도 폭격이 폭격기의 격추 위험도 크지만, 저고도 정밀 융단폭격은 군사시설과 군수공장 등을 비롯하여 그 지역 자체를 완전하게 초토화할 수 있다.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 폭격 지휘관 미국 커티스 르메이 장군의 저고도폭격으로 일본군과 민간인을 불문하고 대량살상하여 도시 자체가 완전마비 되는 치명타를 입혔다. 그의 작전은 적중했지만, 대다수 희생자가 무고한 민간인이었다.

 

 

 

미국이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에 사용한 폭탄은 소이탄(네이팜탄)이다.

소이탄은 폭발과 함께 순간 섭씨 3천 도의 엄청난 열을 내며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워버린다.

 

 

 

 

 

 

 

 

 

 

 

 

340여 대의 B-29 폭격기가 2,400여 톤의 소이탄을 싣고 출격하여, 도쿄에만 약 1,600여 톤이 투하됐다.

3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도쿄의 약 30%가 불타 사라지면서 도시는 초토화됐고,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죽거나 다쳤다.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의 폭격 잔해 처리와 정리, 새카맣게 불타 거리에 널려있는 수많은 시체를 치우기 위해 일본 교도소에 복역 중인 죄수가 동원되었다.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으로 일본의 수도는 한순간에 불바다로 변했으며, 목조건물이 많았던 터라 그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었고, 일본 왕궁(황실)도 큰 피해를 보았다.

 

 

 

 

 

 

 

 

 

 

 

 

일본 측 자료에 의하면 도쿄대공습 당시 동경에 살고 있던 조선인은 10만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발적 도일(渡日) 조선인과 강제징용 피해자 조선인을 합쳐 약 4~5만 명이 피해를 보았으며, 약 1만여 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하고 있.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 사망자는 일본 군수공장, 조선소 등지에 집단수용되어 강제노역하던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먹고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 모두가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과 무관한 피해자였지만, 미국의 일방적인 폭격으로 희생됐다.

 

 

 

 

 

 

 

 

 

 

 

 

미국은 도쿄대공습 이후 오사카, 나고야 고베 등지에서 차례로 대공습을 감행했으며, 가습 아픈 사실은 미국이 폭격한 곳에는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태평양 연안 국가 중 근현대사 전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국가는 일본과 미국 두 나라다.

아이러니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정치적인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진주만 폭격의 입안자인 겐다 미노루는 미국에서 훈장을 받았고,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 지휘관 커티스 르메이는 일본에서 각각 그들이 의미를 부여한 큰 훈장을 받았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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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7.07.09 2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쿄 대공습, 사진으로 보니 끔직할 정도를 넘어섭니다.
    이로 인해 조선인 피해자가 많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2. 버블프라이스 2017.07.10 05: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과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글 잘 읽었습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정말 많네요. 그리고 도쿄 대공습 사진에 폭격당시 상황들이 적나라하게 보입니다..

  3. 여행쟁이 김군 2017.07.10 1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말이있는데!

    일본은 그 역사를 숨기고 잊으려하는듯해요 ㅠㅠ
    글 보는데 마음아프네요

미국의 무자비한 살육과 초토화 작전, 일본 본토 융단폭격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

 

 

 

 

 

 

 

 

 

 

 

 

 

근현대사 전쟁뿐만 아니라 고대의 침략전쟁을 일으킨 국가는 일방적인 주장이지만, 나름 자국의 전쟁 참여를 정당화하는 전쟁 명분을 내세운다.

 

 

전쟁이 일단 벌어지면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이 없고, 전후방이 없으며 오직 광란의 살육과 공포만 있을 뿐이다.

전쟁에서 피비린내를 맡은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미쳐 날뛰게 된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벌어진 태평양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의 강제연행으로 전쟁의 최전방과 후방에서 강제징용, 강제징집 등으로 끌려간 조선인 희생자의 숫자는 파악할 수 없고 그냥 추정만 할 뿐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태평양전쟁은 일본과 연합국의 전쟁이라고 말하지만, 기실 일본과 미국의 전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 중 피해 상황은 근사치를 추정할 뿐이고, 정확한 사망자와 부상자 통계가 숫자가 나왔다면 거짓말에 가깝다. 

 

 

 

 

 

 

 

 

 

 

 

 

세상에서 하는 말 중에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일본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과 자폭탄 투하 등 일본에 대한 융단폭격으로 일본 본토를 초토화시킨 미국의 장군이 있다.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라는 아주 유명한 말로 미국의 일본 본토 초토화 융단폭격 작전,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을 정당화했다.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커티스 르메이는 예편한 후 미국 부통령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찰 역할을 자임해 온 미국은 다른 국가의 내정과 이슈에 간섭했고, 미국이 여러 전쟁을 치르는 동안 지구촌 곳곳에서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하였다.

미국은 자본주의 신봉국답게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등 이익이 남지 않는 전쟁에는 절대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융단(絨緞)은 양털 등으로 촘촘하게 짠 양탄자, 즉 카펫(carpet)을 말한다

융단폭격은 특정 지역에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는 것으로, 양탄자를 깔듯이 폭탄으로 완전히 뒤덮어 초토화해버리는 무자비한 살육 작전이다.

 

 

 

 

 

 

 

 

 

 

 

 

미국의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은 일본 본토 초토화 작전으로 일본의 전쟁 의지를 일시에 꺾어 빠른 전쟁종결과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도쿄대공습 융단폭격은 일본의 군수기지도 폭격했지만, 대부분의 폭격 지역이 민간인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사는 지역을 초토화한 밀집 폭격이다.

 

 

 

흔히 전쟁에서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국제 규범이면서 불문율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미국의 일본 본토 융단폭격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은 이러한 전쟁의 원칙과 도덕적 불문율을 위배한 행위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국은 1944년 말부터 도쿄 공습을 시작했다.

1945년 3월 10일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에 B-29기 340여 대가 100여 만발의 네이팜탄(소이탄) 2,400t을 싣고 가 융단폭격을 감행했다. 6시간 동안 일본 수도 도쿄(동경)와 인근 지역까지 융단폭격을 감행하면서 초토화했다.

 

 

일본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일본 본토 융단폭격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으로 단 하루, 아니 불과 몇 시간 만에 8만 3천여 명의 사망자, 26만여 호의 가옥이 소실되고, 10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연행되거나 일제강점기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던 조선인 1만여 명도 도쿄대공습(동경대공습)으로 희생됐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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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07.08 07: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쿄 대공습의 관해 잘 보고 가네요

  2. 죽풍 2017.07.08 2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융단폭격의 의미를 새로이 알았네요.
    도쿄대공습 당시 조선인도 1만 명이 희생됐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즐거운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

  3. 버블프라이스 2017.07.10 05: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