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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韓문화 중심채널 STB 상생방송 특집방송

독립운동가 의열단원 김지섭 의가 90주년 특별기획

STB 특선다큐 - <일제의 심장을 겨누다>

 

 

 

 

 

 

 

 

 

 

 

 

2년 전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가 1910년 부친 홍범식 충청남도 금산 군수의 상을 치른 후 독립운동가 김지섭 선생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되었습니다. 벽초 홍명희의 부친 홍범식 선생이 금산 군수로 재임하던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라'는 유서를 당시 금산재판소에 근무하던 김지섭 선생에게 아들 홍명희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자결했습니다.

 

 

의열단원으로 독립운동 최일선에서 활동했던 추강(秋岡) 김지섭생은 188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상주보통학교 교사가 되었고 재판소 시험에 합격하여 전북 전주를 거쳐 충남 금산 재판소에서 근무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자유롭게 독립운동을 할 수 없었던 김지섭 선생은 1920년 만주로 망명했고, 1922년 의열단에 가입한 후 조선총독부를 벌벌 떨게 한 의열단원으로 맹활약했니다. 한韓문화 중심채널 STB 상생방송은 독립운동가이며 의열단원으로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김지섭 선생의 의열투쟁사를 되새기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추강 김지섭 선생은 군자금을 모으는 한편 의열단원으로 폭파와 암살 등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서 활동했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의열단장을 비롯한 의열단원들은 의열단 조직의 목표와 투쟁 방법을 천명한 '공약 10조'를 결의했고, 반드시 죽야 할 일곱 대상의 '7가살'과 반드시 파괴해야 할 다섯 개 기관의 '5파괴' 대상을 명시적으로 규정했습니다.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 선생을 비롯한 의열단원들은 1924년 일본 도쿄에서 일본 총리와 조선 총독을 비롯한 여러 대신이 모이는 제국회의가 열린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 일제의 만행을 세계만방을 알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폭탄 투척 거사를 계획했습니다.

 

 

의열단원 중에서도 일본인처럼 보이고 일본어를 잘 구사하는 김지섭 선생이 가장 먼저 지원습니다.

독립운동가 의열단원 추강 김지섭 선생은 사립 광화신숙에서 일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의열단원 김지섭 선생은 상해에서 일본으로 가는 석탄 운반선을 타고 일본 밀항에 성공했습니다.

 

 

 

 

 

 

 

 

 

 

1924년 열릴 예정이었던 제국회의가 중단됐다는 소식을 듣고 국가와 민족의 가장 큰 원흉인 수괴 일본 왕 히로히토로 목표를 수정합니다. 의열단원 김지섭 선생은 일본 왕이 사는 궁성을 사전 답사했고 마침내 일본 왕이 사는 궁성으로 향했습니다.

궁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자 폭탄을 투척하며 나아갔지만, 이중교 앞을 지키는 호위경관과 일본군의 1, 2차 저지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독립운동가 김지섭 선생이 상해에서 일본으로 밀항해 올 때 오랫동안 습기가 들어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일본 왕이 사는 궁성으로 들어갈 때 던진 폭탄이 제대로 폭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본 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려던 의열단원 김지섭 선생의 거사가 비록 불발로 끝났지만, 신(神)으로 떠받들고 있는 일본 왕을 향한 거사는 일본인에게 가장 충격을 준 의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대일본제국 헌법 제1조와 3조>

'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 '천황은 신성불가침하기 때문에 천황제나 천황을 반대하면 안 된다'

 

 

 

 

 

 

 

 

 

 

독립운동가이며 의열단원이었던 추당 김지섭 선생은  1924년 11월 6일 무기징역을 선고 1927년 2년 징역으로 감형되었습니다.

체포와 재판 과정에서 숱한 고문을 받았던 의열단원 김지섭 선생은 1928년 2월 20일 원수의 땅 일본 옥사에서 44세의 나이로 순국하셨습니다.

 

 

한韓문화 중심채널 STB 상생방송이 김지섭 선생의 의거 9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독립운동가이며 의열단원으로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가신 추강 선생의 삶과 의열투쟁사에 흐르는 정신사를 통해 바람직한 미래상을 그려보는 프로그램입니다.

 

 

 

 

STB 상생방송 특집방송 - 김지섭 선생의 의거 90주년 특별기획

STB 특선다큐 - <일제의 심장을 겨누다>

방송 일시: 2020년 3월 6일 오후 6시, 재방송 3월 8일 점심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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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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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20.03.03 0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2. kangdante 2020.03.03 0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원봉으로 인해
    의열단이 웬지 의구심을 갖는 경우도 많아진 것 같아요

  3. 모아모아모아 2020.03.03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개벽을 접하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4. 청결원 2020.03.03 15: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건강한 하루 보내시고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5. Bella Luz 2020.03.04 14: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글 읽고 갑니다~^^건강 조심하세요~~

한韓문화 중심채널 증산도 STB 상생방송 2020년 3.1절 특집방송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지원한 독립운동가 <돌아오지 못한 영웅 최재형>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가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하얼빈 의거를 뒤에서 지원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3.1만세운동 100주년이 된 2019년이 되어서야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했습니다.

 

 

한韓문화 중심채널 증산도 STB 상생방송은 2020년 3.1절을 맞아 특집방송을 준비했습니다.

암울했던 100년 전 이국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다 바친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께서 척박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주독립의 희망을 놓지 않은 뜨거운 삶과 신념을 조명해 봅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은 19세기 중후반 부모님을 따라 러시아로 건너가 자수성가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활동하던 때 연해주 지역의 한국인의 집에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고 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은 이범윤 선생 등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의병 600명을 훈련시켜 1909년경북도 경원의 신아산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전멸시키기도 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은 <대동공보> 신문을 운영했고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 선생이 주필로 있었으며 안중근 의사는 <대동공보>의 기자였습니다. 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8연발 브라우닝 권총도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이 건네 준 총입니다.

 

 

1920년  일제에 맞서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항일 독립투쟁을 하던 독립운동가와 동포들을 탄압하기 위해 일본군이 무자비한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일본군에 의해 독립운동가와 동포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이른바 '4월 참변'이 일어났고 일본군에 체포된 최재형 선생은 다른 동지들과 함께 총살되었습니다.

 

 

 

 

 

 

 

 

 

 

 

한문화 중심채널 증산도 STB 상생방송에서 준비한 3.1절 특집방송 <돌아오지 못한 영웅 최재형>은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순국 100년과 일본군에 의해 우리 동포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4월 참변 100년이 되는 2020년을 맞아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일생과 신념을 조명한 프로그램입니다.

 

 

 

 

한韓문화 중심채널 증산도 STB 상생방송

2020년 3.1절 특집방송

<돌아오지 못한 영웅 최재형>

 

 

방송일시: 2020년 3월 1일(일요일) 오전 9시, 재방송 오후 6시

 

 

 

 

 

STB 상생방송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stb.co.kr/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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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20.03.01 0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1절 특집방송이군요.
    잘 보고가요

  2. 청결원 2020.03.01 0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일 잘 보내시고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3. 모아모아모아 2020.03.01 1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개벽을 접하고 갑니다.
    행복한 주말되세요.

  4. 젤루야 2020.03.01 21: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편안한밤 되세요.

  5. Bella Luz 2020.03.04 15: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1절 특집방송도 했네요~~^^포스팅 잘 보고 가요~

실존한 상고시대 역사는 사라지고 상상력으로 만든 판타지물 '아스달 연대기'와

항일 무장 독립전쟁이 사령탑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의 <아사달 연대기>

 

 

 

 

 

 

 

 

 

 

 

 

해학 이기 선생, 운초 계연수, 단재 신채호 선생, 백암 박은식 선생, 우당 이회영 선생, 석오 이동녕 선생, 조소앙 선생, 홍암 나철 선생, 무원 김교헌 선생, 희산 김승학 선생, 석주 이상룡 선생, 계봉우 선생, 이원태 선생, 김정규 선생, 위당 정인보 선생, 동산 유인식 선생 등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항일운동가와 임시정부 독립운동가이면서 역사학자로 활동한 분들이 많습니다.

 

 

 

임시정부 독립운동가 중에는 자주독립을 쟁취하는 방법론에서 무장투쟁만 주장한 분들도 많이 계셨지만, 일제와 독립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역사 교육을 중시해 상고시대 우리 역사를 밝히는데 앞장선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도 많았습니다.

 

 

 

 

 

 

 

 

 

 

일제와 독립전쟁을 벌인 독립운동가이며 역사학자로 활동한 분들이 저술한 책을 보면 상고시대 배달국, 단군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국(발해), 고려, 조선 등 국가와 시대를 특정해서 책을 쓰신 분도 있고, 상고시대부터 근대사까지 우리 역사를 아우르는 통사(通史)적인 역사서를 쓰신 분도 있습니다.

 

 

 

항일 운동가들과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와 독립전쟁을 하면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웠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대학에서는 일제와 맞서 싸우면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운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은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리가 독립운동가가 쓴 역사서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서점밖에 없는 서글픈 현실입니다.

 

 

 

 

 

 

 

 

 

 

주체적인 역사관을 정립하여 독립운동가뿐만 아니라 민중에게도 국가와 민족의 뿌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자긍심을 심어 주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교육했습니다.

 

 

임시정부 독립운동가에게 역사 교육과 무장투쟁은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는 독립전쟁을 실행하는 수레의 두 바퀴였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역사 교육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애국심을 함양해 독립전쟁의 원동력으로 삼았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독립당(1936년 8월 29일) 

환국(桓國)에서 삼한(三韓, 단군왕검의 고조선)이 끝나기 까지 무릇 3천여 년.......

 

 

 

 

대한민국 임시정부(1942년 3월 1일 제23주년 3.1절 선언문)

우리 민족은 처음 환국(桓國)이 창립된 이래 단군, 부여, 삼한, 삼국, 고려, 조선 및 대한제국을 거쳐.....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우리의 고대사와 상고시대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 조작해 식민사학을 만들었습니다. 주류 강단사학계는 지난 70여 년간 일제가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만이 올바른 역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강단사학계는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이 바로 세운 역사를 두고 '자의적인 해석', '신념이 앞선 관념론', '극단적 민족주의', '국수적이고 배타적'이라고 매도해 왔습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강점했던 시기에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서고, 우리를 탄압하는 데 앞장섰던 친일파도 있었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치고 헌신한 독립운동가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자주적 역사관을 정립한 독립운동가의 역사는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은 식민사학의 후예들에 의해 폐기 처분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해 만든 가짜이론과 가짜학설을 추종한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지배해 왔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일제 식민잔재를 국민의 손으로 말끔하게 청산하고 우리의 잃어버린 참역사를 복원할 것입니다.

 

 

 

 

 

 

 

 

 

 

 

항일운동가 해학 이기 선생은 <단군세기>를 쓴 행촌 이암 선생과 <태백일사>를 쓴 일십당 이맥 선생의 후손으로 <환단고기>를 감수한 분입니다.

 

 

해학 이기 선생의 제자인 독립운동가 운초 계연수 선생은 1911년 <삼성기 上>과 <삼성기 下>, <단군세기>와 <북부여기>와 <태백일사> 다섯 권의 책을 하나로 엮어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편찬했는데, <환단고기>는 가장 대표적인 <아사달 연대기>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역임한 석주 이상룡 선생이 저술했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은 책으로 신흥무관학교(신흥강습소)를 세워 수많은 무장 독립운동가를 교육한 <대동역사大東歷史, 1913년>도 <아사달연대기>입니다.

 

 

 

 

 

 

 

 

 

 

신흥무관학교 교재로 사용한 독립운동가 이원태 선생의 <배달족강역형세도倍達疆域形勢圖, 1918>와 <채색강역형세도彩色疆域形勢圖, 1923> 역사 지도교재 역시 <아사달연대기>입니다.

 

 

조선 왕조에서 성균관 대사성, 문헌비고찬집위원, 규장각 부제학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무원 김교헌 선생이 왕실에 있던 사서와 각종 사서를 참고해 단군왕검의 고조선부터 대한제국까지 역사를 저술한 <신단민사神檀民史, 1904년>도 <아사달연대기>입니다.

 

 

항일 독립운동가 무원 김교헌, 백암 박은식, 석농 유근 선생 공동으로 집필한 <단조사고檀祖事攷, 1911년>도 <아사달 연대기>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백암 박은식 선생의 <대동고대사론, 1911년>도 <아사달연대기>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며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 1931년>는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를 기록한 <아사달 연대기>입니다.

 

 

일제의 서슬 퍼런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위당 정인보 선생의 <조선사연구, 1935년>도 <아사달 연대기>입니다.

 

 

 

 

 

 

 

 

 

 

국권 침탈에 맞선 항일운동가와 자주독립을 위해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자주적 역사관으로 우리의 참역사를 바로 세웠던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은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에 의해 매장되어 버렸고, 일제가 영구 식민지배를 위해 우리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은 주류 강단사학계에 의해 우리의 역사로 둔갑했습니다.

 

 

 

항일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무장독립운동가와 역사학자로 독립운동을 했던 이기, 계연수, 신채호, 박은식, 이상룡, 이회영, 정인보 선생 등이 쓴 우리의 역사와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가 배워온 식민사학은 전혀 다릅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계자와 독립운동가들은 소외되고 버림받았으며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은 매도되고 사장됐지만, 친일파와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은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해 기득권 세력이 되었습니다.

 

 

지난 100여 년간 지속한 독립운동가의 민족사학과 일제 식민사학의 역사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STB 상생방송 【대한독립운동사】 <10회 독립운동가의 역사정신>

 

 

 

 

 

 

 

 

 

 

 

 

 

 

 

 

 

한韓민족의 상고역사를 복원하는 증산도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jsd.or.kr/

 

 

 

 

한韓문화 중심채널 STB 상생방송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stb.co.kr/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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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9.05.30 05: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가요^^

  2. kangdante 2019.05.30 0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역사책을 출간하였군요
    잘보고 갑니다.. ^^

  3. 청결원 2019.05.30 17: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가네요~
    하루 마무리 잘 하세요~

  4. korea cebrity 2019.05.30 2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공감 언제나 잘 누르겠습니다~

  5. 죽풍 2019.05.30 2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5.18 부정이나 막말 등, 역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작금의 현실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6. 버블프라이스 2019.06.04 04: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의 아사달 연대기 글을 잘 읽고 공감누르고 갑니다^^

항일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의 출판 자금 지원으로 세상에 나온 환단고기

해학 이기 선생이 감수한 다섯 권을 묶어 환단고기』를 펴낸 편저자 독립운동가 운초 계연수 선생

 

 

 

 

 

 

 

 

 

 

 

 

 

1910년 양력 8월 29일 일본 제국주의가 무력으로 국권을 침탈하면서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

그로부터 9개월여가 지난 1911년 음력 5월 5일 운초 계연수 선생께서 일제의 총칼을 피해 묘향산 단굴암에서 스승 해학 이기 선생이 세세히 감수해 준 다섯 권의 사서를 묶어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환단고기』를 구성하고 있는 『삼성기 上』과 『삼성기 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다섯 권의 책은 신라 시대부터 조선 중엽까지 약 1,000여 년의 세월을 거쳐 세상에 나왔습니다.

 

 

『환단고기』 안에 있는 다섯 권의 편찬 시기와 책명과 원저자는 신라 시대 삼성기 上을 지은 안함로, 고려말 삼성기 下를 지은 운곡 원천석(원동중), 단군세기를 지은 행촌 이암, 북부여기를 지은 복애거사 범장(범세동)태백일사를 지은 조선 시대 일십당 이맥 선생입니다.

 

 

 

 

 

 

 

 

 

 

운초 계연수 선생은 1897년 항일 독립운동가 해학 이기 선생(1848~1909)의 문하로 들어가 삼성기 上』과 『삼성기 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다섯 권을 옮겨 적었고 해학 이기 선생이 일일이 감수했습니다.

 

1911년 묘향산 단굴암에서 운초 계연수 선생에 의해 마침내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환단고기』의 편저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운초 계연수 선생(1864~1920)은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났습니다.

34세 되던 1897년 독립운동가 학 이기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가르침을 받아 1888~1889년까지 『단군세기』, 『태백진훈』, 『태백일사』, 『참전계경』, 『천부경요해』 등을 간행했습니다.

 

 

 

 

 

 

 

 

 

 

1909년 단학회를 창립한 스승 해학 이기 선생이 단식 자진하면서 단학회 2대 회장을 맡았습니다.

 

『환단고기』의 편저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운초 계연수 선생은 『환단고기』 범례에서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책을 내놓기 전 다섯 권 책에 대한 입수 출처(소장자)를 밝혔습니다.

 

 

일십당 이맥 선생이 지은 『태백일사』는 스승 해학 이기 선생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라 시대 고승 안로가 저술한 『삼성기 上』은 집안 대대로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운곡 원천석(원동중)이 지은 『성기 下』와 행촌 이암이 지은 『단군세기』는 태천에 살던 백관묵 선생이 소장하고 있었으며, 복애거사 범장(범세동)이 지은 『북부여기』는 삭주에 사는 이형식 선생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환단고기』의 편저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운초 계연수 선생이 『환단고기』 초간본 30권을 출간하는데 생전에 세세하게 감수해 준 스승 해학 이기 선생 말고도 직접적인 도움을 준 분이 두 분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봉오동 전투의 영웅인 홍범도 장군(1868~1943)과 광복군사령부(광복군총영) 총영장 오동진 장군(1889~1944)입니다.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이 『환단고기』 출판 자금을 지원해서 한韓민족의 참역사와 정신문화가 오롯이 담은 『환단고기』 30권이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환단고기』의 편저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운초 계연수 선생은 한韓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사서를 소장한 사람과 사찰 등지를 돌아다니며 사료를 수집해왔습니다.

 

 

운초 계연수 선생이 1897년 스승 해학 이기 선생을 찾아갈 때 이미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동안 많은 책을 수집 상태였습니다.

 

 

『환단고기』의 편저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운초 계연수 선생은 다섯 권의 책을 묶어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출간하기까지 스승 해학 이기 선생의 세세한 감수 아래 운초 계연수 선생이 직접 편집하고 옮겨 적었고,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이 자금을 지원해 목판에 새겨 인쇄했다고 했습니다.

 

 

 

 

 

 

 

 

 

 

『환단고기』의 편저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운초 계연수 선생은 여러 독립운동가들과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할 것을 다짐하며 혈맹을 맺고 천마산대와 서로군정서 등에서 활동했고, 배달의숙에서 후학을 길러냈습니다.

 

 

운초 계연수 선생은 『환단고기』를 출간한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 등 여러 항일독립운동가와 교류하면서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1920년 8월 일본 제국주의의 밀정 감영극의 밀고로 운초 계연수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배달의숙은 초토화됐습니다.

일제는 배달의숙에 보관되어 있던 역사책, 교재, 문서 등 자료와 사료 등 3천여 점이 모두 불태웠습니다.

일제 헌병대에 끌려간 운초 계연수 선생은 일제에 의해 사지가 절단당한 채 압록강에 버려졌습니다.

 

 

 

 

 

 

 

 

 

 

운초 계연수 선생은 독립운동을 하다 만주에서 순국했고 후손도 없습니다.

운초 계연수 선생에 대한 기록이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계연수 선생의 <천부경> 입수 경위  등을 기록한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1920년)과 1969년에 나온 <해동인물지>입니다.

 

 

 

『환단고기』 편저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운초 계연수 선생의 스승과 제자는 모두 고성 이씨 가문입니다.

스승 해학 이기 선생과 제자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고성 이씨이며, 운초 계연수 선생의 스승과 제자는 『단군세기』를 지은 행촌 이암, 『태백일사』를 지은 일십당 이맥 선생의 후손입니다.

 

 

 

 

 

 

 

 

 

 

 

『환단고기』의 편저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운초 계연수 선생이 쓴 범례 中

 

"...... 이로써 우리 자신의 주체성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크게 축하할 만한 일이요, 또한 민족 문화의 이념을 표출하게 되었으니 크게 경축할 만한 일이며, 또 한편으로 세계 인류가 대립을 떠나 공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으니 더욱 경축할 만한 일이다.

 

신시개천 5808년, 광무 15년(대한제국 연호), 신해(1911)년 광개절(廣開節, 음력 5월 5일)에 태백 진리(神敎)를 계승한 선천 사람 계연수 인경(계연수 선생의 자)이 묘향산 단굴암에서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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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12 0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환단고기 편저자인 운초 계연수 선생에 대해 몰랐던 내용들을 알고 갑니다^^

  2. *저녁노을* 2019.03.12 06: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연수....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잘 보고가요

  3. 청결원 2019.03.12 07: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린날 이지만 맑은 하루 보내세요~
    포스팅 항상 잘 보고 갔니다~

  4. kangdante 2019.03.12 0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운초 계연수에 대해 알고 갑니다
    요즘은 항일 독립가로라는 미명하에
    사회주의자들도 재조명하네요

  5. 죽풍 2019.03.12 2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운초 계연수 선생.
    후손도 없이 순국한 독립운동 정신을 높이 받들어야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한민족의 국통맥(國統脈, 나라의 계보)과 정신문화를 밝힌 환단고기태백일사

태백일사 소장자이며 환단고기를 감수한 역사가이며 항일독립운동가 해학 이기 선생

 

 

 

 

 

 

 

 

 

 

 

 

 

해학 이기 선생은 잃어버린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복원하는데 불멸의 공덕을 쌓은 고성 이씨 가문의 후손으로 1848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습니다.

 

 

해학 이기 선생은 전북 김제 출신으로 예술과 학문에 조예가 깊은 실학자 석정 이정직(1840~1910) 선생과 고창 출신의 실학자이며 애국지사로 매천야록의 저자인 매천 황현 선생과 함께 호남의 삼재(三才)로 불렸습니다.  

 

 

호남의 삼걸이라고도 불린 해학 이기, 석정 이정직, 매천 황현 선생은 모두 성리학과 실학을 섭렵한 학자로 실용적인 실사구시를 주장했습니다.

 

 

 

 

 

 

 

 

 

 

고성 이씨 가문의 위대한 업적은 필설로 다할 수 없습니다.

자주적 역사관과 자주부강론을 설파했던 후암 이존비 선생,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를 저술하신 행촌 이암 선생, 행촌 이암 선생의 동생 도촌 이교 선생은 『환단고기』의 『삼성기 下』를 저술하신 원동중 선생의 스승입니다.

 

 

 

또, 행촌 이암 선생의 손자로 세종대왕에게 『단군세기』를 올린 용헌 이원 선생, 『환단고기』의 『태백일사』를 저술하신 일십당 이맥 선생 등 한韓민족의 참역사와 정신문화를 밝힌 고성 이씨 가문의 유업을 계승한 분이 구한말 항일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해학 이기 선생입니다. 

 

 

 

 

 

 

 

 

 

 

이건창, 이정직, 황현 선생 등은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소장자이며 『환단고기』(합본 이전의 다섯 권)를 감수한 해학 이기 선생을 두고 대문장가이며 행동적 저항주의자라고 평했습니다.

 

 

해학 이기 선생은 198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녹두장군 전봉준을 찾아가 "동학군을 이끌고 한양으로 올라가 간사한 무리를 물리치고 임금을 받들어 국가의 질서를 새롭게 하자"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전봉준 장군은 해학 이기 선생과 뜻을 같이했지만, 김개남 장군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1897년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소장자 해학 이기 선생(1848~1909)을 찾아온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후일 『삼성기 上』, 『삼성기 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다섯 권의 사서를 하나로 묶어 『환단고기』라는 이름으로 편찬한 운초 계연수 선생입니다.

 

 

 

 

 

 

 

 

 

 

해학 이기 선생의 문하에 들어온 운초 계연수 선생(1864~1920)은 스승의 가르침 아래 2년(1898~1899)에 걸쳐 『태백진훈』, 『단군세기』, 『참전계경』, 『태백일사』, 『천부경요해』 등의 책을 간행합니다.

 

해학 이기 선생은 러일전쟁이 끝나고 러시아와 일본 간에 강화조약이 체결될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왕과 정계에 항의 서면을 제출하고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침탈한 을사늑약 직후 귀국해 한성사범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해학 이기 선생은 1906년 장지연, 윤효정 등과 함께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를 조직해 국권 회복과 계몽운동에 앞장섰고, 1907년 나인영(홍암 나철), 오기호, 윤주찬 등 10여 명이 모여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해 을사오적을 척살하려 했지만, 친일매국노 권중현에게만 상처를 입히고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7년 형을 선고받은 해학 이기 선생은 진도로 유배되었고, 2년 만에 석방되어 호남학보를 발행해 민족계몽을 운동을 벌이는 한편 민족의 주체 의식을 높이기 위해 단학회를 조직했습니다.

 

 

 

 

 

 

 

 

 

 

해학 이기 선생은 1909년 5월 5일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와 광개토태왕을 추모하는 광개절을 맞아 제자 운초 계연수 선생을 데리고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삼신상제님께 천제(天祭)를 모십니다.

 

 

회갑이 넘은 나이에도 지칠 줄 모르던 해학 이기 선생의 애국활동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마수를 견디지 못한 대한제국의 국운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기울었습니다.

해학 이기 선생께서 1909년 7월 13일 서울의 한 여관에서 단식 자진하시니 향년 62세였습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소장자이며 항일독립운동가인 해학 이기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에 『환단고기』가 출간됩니다.

해학 이기 선생의 제자 운초 계연수 선생은 스승께서 생전에 세세하게 감수해준 『삼성기 上』, 『삼성기 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하나로 묶어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출간했습니다. 

 

 

 

 

 

 

 

 

 

 

 

 『태백일사』 소장자이며 『삼성기 上』, 『삼성기 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다섯 권의 책을 감수해준 해학 이기 선생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를 지으신 행촌 이암 선생과 『환단고기』의 『태백일사』를 지으신 일십당 이맥 선생의 후손입니다.

 

해학 이기 선생은 고성 이씨 가문에 비장 되어 온 역사서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보았기 때문에 자주적 역사관이 정립되어 있었습니다.

 

 

 

후암 이존비 선생부터 행촌 이암, 일십당 이맥, 해학 이기 선생까지 근 7백 년 동안 고성 이씨 가문이 올바른 정신과 희생과 정성으로 환단(桓檀)의 역사를 밝혔고 지켜왔습니다.

 

고성 이씨 가문의 7백 년 혈성과 희생, 그리고 역사적인 사명감으로 한韓민족의 역사를 밝히고자 했던 운초 계연수 선생에 의해 우리의 참역사와 정신문화를 복원한 『환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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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9.03.10 05: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기 선생님은...처음 접하네요.
    ㅎㅎ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2. 청결원 2019.03.10 0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말 잘 보내세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3. kangdante 2019.03.10 07: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학 이기선생에 대해 알고 갑니다
    예전에는 몰랐던 사람들이
    요즘은 언론에도 많이 소개되는 것 같아요..

  4. 버블프라이스 2019.03.10 1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기 선생님은 환단고기 소장자 이시군요?
    해학 이기 선생에 대해 몰랐던 내용들을 알고 갑니다^^

  5. 죽풍 2019.03.10 2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공부하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한국의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비밀결사조직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 단원 

이강훈 의사, 원심창 의사, 백정기 의사의 육삼정 의거

 

 

 

 

 

 

 

 

 

 

 

 

 

일제강점기 무장투쟁을 하던 독립군 사이에 대립이 있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각자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독립투쟁 방식의 차이 때문에 때론 대립하며 분열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학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강력한 무장투쟁으로 조국의 자주독립을 이루겠다는 열망은 누구나 똑같았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지 않았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도 조국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누구보다 무장투쟁에 앞장섰던 분들이다.

 

 

권력 등에 지배받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아나키스트를 세상에서는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면서 소위 무정부주의자라고 부른다. 우당 이회영, 단재 신채호, 약산 김원봉 선생 등이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며 투쟁했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이강훈 의사, 원심창 의사, 백정기 의사는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를 비롯한 일본 수뇌부가 상해 홍구에 있는 일본 요정 육삼정에서 중국인 친일파들을 초대해 연회를 연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이강훈, 원심창, 백정기 의사는 폭탄을 투척하여 주살하려다 발각되어 체포된다.

 

이강훈, 원심창, 백정기 의사의 육삼정 의거는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우리의 자주독립의지를 동포와 중국인을 비롯하여 세계만방에 다시 한번 크게 각인시켰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이강훈 의사는 1903년 강원도 김화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한동안 활동한다.

 

북간도에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민족정신을 고취하며 후진을 양성한다. 

1932년 상해로 들어온 이강훈 의사는 아나키스트연맹에서 활동한다.

 

 

 

1933년 3월 17일 주중 일본공사를 주살하기 위한 육삼정 의거를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1940년 징역 8년 11개월로 감형받고, 1942년 형기가 끝났지만, 일제는 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강훈 의사를 풀어주지 않았다. 무기한 예방구금 판결을 받고 있던 중 1945년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하고, 1945년 10월 10일 출옥한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원심창 의사는 1906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했다.

평택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중동학교 2학년 재학 중 학교를 그만둔다.

1923년 일본 도쿄의 니혼대학 사회과에 입학하다가 학비 문제로 자퇴한다.

 

원심창 의사는 아나키스트 최초의 노동조합 동흥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일본과 중극 등지를 오가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강훈은 그 즈음 일본의 아나키스트 등을 접하면서 무정부주의에 심취한다. 

 

 

 

1933년 3월 17일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백정기, 이강훈 의사와 함께 주중 일본공사를 주살하기 위한 육삼정 의거를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45년 무기징역에서 20년형으로 감형 받았고 8.15광복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왔다.

 

 

 

 

 

 

 

 

 

 

 

 

 

"나의 구국 일념은

첫째, 강도 일제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쟁취함이요.

둘째, 전 세계 독재자를 타도하여 자유, 평화 위에 세계 일가의 인류 공존을 이룩함이니 왜적 거두의 몰살은 나에게 맡겨주시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백정기 의사는 1896년 전라도 부안에서 태어나 정읍에서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였으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독학으로 한학을 공부했다.

 

서울로 상경한 백정기는 1919년 3.1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만주와 조선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던 백정기 의사는 일왕을 암살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가 동경 대지진이 발생하여 중국으로 간다.

 

 

 

1928년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필리핀 등 국가 아나키스트 모임인 동방 무정부주의자연맹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다.

1932년 3월 17일 주중 일본공사를 주살하기 위한 육삼정 의거를 준비하다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일본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34년 6월 5일 지병이 재발하고 악화되어 옥중에서 순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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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05.06 0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가네요~
    연휴 잘 보내세요

  2. 피아랑 2017.05.06 1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들 멋지신 위인들입니다!!

  3. 죽풍 2017.05.06 2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공부하고 갑니다. ^^

  4. 버블프라이스 2017.05.07 0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공부하고 갑니다.
    위인들의 업적? 역사는 널리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편안한 주말되세요 ^^

대한의 자주독립을 외치다 순국한 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

 

 

 

 

 

 

 

 

 

 

 

 

 

19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한 유관순 열사는 여성독립운동가의 상징처럼 되어있다.

상당수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 속에 잊힌 존재였다가 근래에 들어 발굴되기 시작했다.

유관순 열사와 일부 여성독립운동가를 제외하면, 일제강점기 대다수 여성독립운동가는 성인여성이었다.

 

 

 

유관순 열사보다 더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한 여성독립운동가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립투사를 지원한 여성독립운동가도 있었으며, 머나먼 이국땅에서 언제 올지 모를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험난한 난관을 헤쳐가면서도 군사훈련을 받고 무장투쟁에 직접 뛰어들어 순국하신 여성독립운동가도 있다.

 

 

 

 

 

 

 

 

 

 

 

 

전국적으로 약 3개월에 걸쳐 수백만 명이 1919년 3.1만세 운동에 참여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체포되거나 일제의 총칼 아래 목숨을 잃었다.

 

광복 후 나라를 팔아먹고 민족을 배신하고 일제의 앞잡이가 된 친일파를 단죄하는 반민특위가 제대로 활동도 못 하고 해산되었다.

 

 

 

 

혹자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 교육 등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를 장악한 친일파 세력의 지지를 받은 정권과 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이 여러 명의 민족 영웅을 만들어 냈는데, 여성으로서는 신사임당과 여성독립운동가의 상징이 된 유관순 열사 등을 우상화했다고 주장한다.

 

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최고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은 최고 권력자의 부인을 일제가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만든 신사임당과 동일시하는 우상화 작업을 하였고, 특정 학교는 아우내장터에서 3.1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순국한 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가 마치 자기 학교 출신인 것처럼 내세우며 유관순 열사의 항일운동을 극대화하고 우상화하면서 특정 학교 출신들의 친일행적을 덮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유관순 열사는 1919년 아우내장터의 3.1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일제의 고문을 받고 순국한 여성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이며, 18세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1920년 순국했기 때문에 특정 대학과는 전혀 상관없다.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이래 약 10년 동안 강력한 무단정치를 펼치면서 우리 민족을 탄압하고 식민지교육을 했지만, 자주독립을 향한 열망만은 꺾을 수 없었다.

  

 

희망의 불빛은 사라지고 절망의 그늘에 갇혀 살던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유관순 열사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며 무장투쟁을 한 여성 독립투사는 아니지만, 고등학생 신분으로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한 여성독립운동가임은 틀림없다.

 

 

 

 

 

 

 

 

 

 

 

 

 

한참 친구들과 어울리며 공부할 18~19세의 유관순 열사는 남자들도 견디기도 힘든 모진 고문을 참아내며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유관순 열사는 자신의 청춘과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며 조국의 자주독립을 향한 불굴의 의지로 많은 사람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주었다. 

 

 

 

3.1만세 운동은 단기간에 독립을 쟁취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민족의 힘을 하나로 모아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임으로써 한민족 모두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반대하고 대한의 자주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기미 독립선언서가 낭독되면서 3.1만세 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다. 1919년 3월 1일부터 5월까지 약 3개월간 지속한 비폭력 만세운동은 일제의 강력한 무력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약 2백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는 1902년 음력 11월 17일 충청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에서 태어났다.

유관순 열사는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 사이에서 태어난 3남 2녀 중 셋째이며 둘째 딸이다.

 

1915년 공주 영명학교 보통과 2년을 마치고 서울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편입했다.

1918년 이화학당 보통과를 졸업하고 이화 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다.

(유관순 열사의 초, 중등학교 과정은 여러 주장이 있다.)

 

 

 

18세가 되던 1918년 이화학당 고등보통학교(現 이화여자고등학교) 재학 중 3.1만세 운동에 가담하여 체포됐다가 풀려났다.

3.1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으로 내려온다.

 

고향으로 내려온 유관순 열사는 가족과 친구, 친지와 지인, 인근 지역 마을 사람들까지 설득하여 계획을 세우는 등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준비한다.

 

 

 

 

 

 

 

 

 

 

 

 

1919년 3.1만세 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는 18세의 고등학교 학생 신분이었고, 어린 여학생의 신분으로 1919년 4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 벌어진 3.1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아우내장터에서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약 3천 명의 군중들이 만세운동 시위를 하였다.

아우내장터에서 비폭력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일제는 무자비하게 총칼로 진압했다.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을 비롯하여 수십 명이 죽고 상처를 입었다.

 

 

 

유관순 열사는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본 헌병에 체포된 유관순 열사는 일제가 회유와 협박, 모진 고문을 지속할수록 대한의 자주독립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애국심을 더욱 불타올랐다.

 

공주재판소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유관순 열사는 항소하였다.

現 서대문교도소로 이감되어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으로 감형된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기각된다.

 

 

 

 

 

 

 

 

 

 

 

1919년 3.1만세 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최고형이 3년형인 것일 보면 유관순 열사의 5년형과 감형된 3년형이 얼마나 중형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총칼로 무장한 일본 제국주의의 헌병대와 경찰 앞에서도 18세의 여학생은 일제가 불법적으로 국권을 침탈했기 때문에 식민통치가 불법이며 대한의 자주독립은 당연한 것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유관순 열사가 중형을 받은 것은 옥중에서도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성과 비폭력 만세운동을 총칼로 진압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일제의 만행을 규탄했다.

 

 

 

1년 6개월의 법정투쟁과 감옥 안에서도 대한의 자주독립을 주장하면서 일제의 불의함을 꾸짖었으며, 3.1만세 운동 1년이 되던 때 동료 수감자들을 주동하여 만세운동을 하였다. 유관순 열사는 일제의 계속된 고문의 후유증으로 1920년 9월 28일 19살의 불꽃 같은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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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7.02.26 2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일절이 다가오네요.
    유관순의 독립정신을 이어가야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2. 뉴론7 2017.02.27 07: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요일이 3월1일이군요
    오래전 애기지만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괜찮은데 요즘
    애들이 기억을 하면 좋겠어요.

증산도 STB 상생방송 - 인간의 길 가효국충(家孝國忠)

여성독립운동가

 

 

 

 

 

 

 

 

 

 

 

 

 

 

외세의 침략을 수없이 받은 한韓민족은 국난의 위기에 처하면 언제나 분연히 일어나 위기를 헤쳐나갔습니다.

대한의 백성은 나라를 빼앗긴 설움에 울분을 삼키면서도 망연히 주저앉아만 있지 않았습니다.

 

 

 

대한의 독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수많은 독립투사 중에는 유관순 열사 등과 같이 이름이 알려진 여성 독립투사뿐만 아니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일제로부터 언제 독립할 수 있을지 요원한 상태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한목숨 다 받쳤던 여성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독립운동가부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투쟁의 전면에 나섰던 여성독립운동가 중에는 남자 못지않게 전투에 직접 참여한 분도 많았습니다. 또 일제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다 순국한 분도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항일 투쟁에서 여성독립운동가들도 맹활약하며 대한의 독립 투쟁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습니다.

 

 

 

 

독립투사의 길을 걸어간 수많은 애국열사, 국내외에서 대한의 독립을 위해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항일 여성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의 주체였습니다.

 

비록 남성 독립운동가보다 수적으로는 적었지만, 여성독립운동가의 활약은 남성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이름을 찾지 못한 여성독립운동가, 그 기록이 사라지기 전에 하루빨리 발굴해야 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제와 맞서 싸운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기록이 나온 것은 광복 60여 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증산도 STB 상생방송 【인간의 길, 가효국충】 <여성독립운동가> 편에서 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를 활약상을 들어 봅니다.

 

 

 

 

 

증산도 STB 상생방송 - 인간의 길 가효국충(家孝國忠)

 

강사-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시인

1부. 왜 우리는 여성독립운동가를 주목해야 하는가?

2부. 여성독립운동가 활동무대를 찾아서

 

 

 

 

 

 

 

 

 

 

 

 

증산도 STB 상생방송 홈페이지

http://www.stb.co.kr/

 

 

 

증산도 홈페이지

http://www.jsd.or.kr/

 

 

 

 

 

 

 

 

 

 

 

 

증산도 STB 상생방송 - 인간의 길 가효국충家孝國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근대, 현대화 과정을 거쳐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소중히 지켜왔던 전통가치를 많이 잃어버렸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퇴색된 것이 '효' 문화가 아닐까 합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장차 한국문화가 인류에 이바지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효사상일 것'이라고 한 것처럼, 효는 낡고 고루한 가치가 아니라 21세기 세계적, 보편적인 가치로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충효열忠孝烈은 국지대강國之大綱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충과 효와 열은 나라의 큰 기강이라는 말씀으로, 충효열이 위태로운 지금, 인륜의 근본을 회복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한韓문화 중심채널 증산도 STB 상생방송은 후천 가을 열매 문화를 선도하는 소명의식으로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청자와 함께 나누고 대안을 제시해드리기 위해, 인간의 길 가효국충을 기획했습니다.

 

'가효국충'은 가정에서 부모에 효도하고, 사회에 봉사하고, 국가에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증산도 STB 상생방송은 가효국충을 통해 인륜과 도덕의 잣대를 제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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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뉴론7 2017.02.16 1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역사를 호면 항상 토끼처럼 살아오긴했죠
    그래서 항상 어렵게 사는거 같기도 하네요

  2. 죽풍 2017.02.17 1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투쟁에서 여성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겠지요.
    빛난 역사를 만든 여성도 있지만 나라를 거들내는 지도자 같지도 않은 여성도 있네요.
    이같은 모순이 또 있을까요?
    잘 보고 갑니다.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사학의 선구자 -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 5월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8년간의 옥고를 치르다가 1936년 2월, 겨울의 찬 바람이 아직 가시지 않은 날, 이국땅 만주 여순감옥에서 나라를 빼앗긴 한(恨) 많은 백성으로 굴곡진 우리 근대사의 선구자, 단재 신채호 선생이 영면하게 된다. 당신님의 유언은 너무나 간단했다.

"내가 죽거든 내 시체가 왜놈들의 발길에 차이지 않게 화장하여 그 재를 멀리 바닷물에 뿌려 주오."

 

일제의 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된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선생은 대구 감옥에서 투옥 중 단재 신채호 선생의 소식을 듣고 "단재가 죽었으니 이제 이 나라의 정기(正氣)가 사라졌구나."하고 탄식하였다.

 

 

 

 

 

 

단재 신채호는 일제강점기 백암 박은식 선생과 더불어 민족 사학을 이끈 쌍두마차였다.

위대한 역사가는 단재는 일제에 의해서 뿌리째 단절된 한민족의 역사 정신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한평생을 다 받쳤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보면

"역사란 무엇이뇨. 그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발전 확대하는 상태를 말한다. 만일 역사가 조선사라면 우리 민족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발전 확대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我)는 우리나라와 민족으로 이해하고,

비아(非我)는 우리나라 또는 우리 민족과 대립하는 다른 나라와 다른 민족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해석됐다.

 

 

그러나 단재 신채호 선생은 다른 부분에서 아(我)는 대아(大我)와 소아(小我)로 구분하였다.

즉, 대아(大我)는 정신적, 영혼적 아(我)라는 것이고,

소아(小我)는 물질적, 육체적 아(我)가 있다고 하였다.

그렇듯 물질적, 육체적 아(我)인 소아(小我)는 사라지고 죽지만, 정신적, 영혼적 아(我)인 대아(大我)는 불사(不死)한다는 것이다.

 

 

 

 

 

 

결국 아(我)는 대아(大我)다. 대아(大我)는 민족의 혼이요, 국혼(國魂)이다. 혼(魂)은 자유자재한 것이며 영원불멸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 죽지 않는다. 우리 민족이 그 국혼(대아)을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우리 민족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것는 우리가 그동안 아(我)에서도 소아(小我)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결국 정신이 없는 민족, 혼 빠진 민족으로 국권을 빼앗긴 나라 없는 백성으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불멸하는 아직도 우리의 마음 저 밑바닥에서 꿈틀대고 살아 움직이는 대아(大我), 민족의 정신과 민족의 혼(魂)을 일깨워 비아(非我)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비록 나라는 빼앗겼지만, 아직 살아 있는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서 단재 신채호 선생과 백암 박은식 선생이 민족사학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일본의 왕을 신격화하여 만든 신도(神道)와 불교, 기독교(천주교)만 종교로 인정한 일본 제국주의의 한민족 민족정신 개조정책인 동화정책을 이겨낼 의 원천이 바로 대아(大我)인 민족의 정신, 민족혼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석가나 공자, 예수, 그리고 일본의 정신(일본 국교 신도)은 대아(大我)가 아니며, 아(我)에 침입하여 들어온 비아(非我)였다는 것을 『조선상고사』에서 한민족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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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5.02.06 0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채호선생에 대해서 정리 잘 해주셔서
    알아보시는 분들에게 유용하겠어요 ^^
    저도 잘 보고 가요 ^^

  2. 뉴론♥ 2015.02.06 0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분들이 없었으면 지금도 없었게지욤 잘 기억해야 겠네염.

  3. 한콩이 2015.02.06 0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채호 선생님에 대해 잘 알아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4. 죽풍 2015.02.06 0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론의 말씀처럼 이런 분이 지금의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주었으면,,,
    정말 이 시대를 살아가기 어렵고 힘듭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에서 위안을 얻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하소서. ^^

  5. 명태랑 짜오기 2015.02.06 1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족 정신과 민족 혼을 강조 했던 신채호 선생님 덕분에 오늘 우리들이 있는것 같네요^^

  6. 낮에도별 2015.02.06 14: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님에 대해 잘 알아갑니다 ^^

  7. 라콤 2015.02.06 16: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재 신채호 선생에 대해서 덕분에 잘 알아갑니다.
    항상 행복한 날들이 되시길 바래요

  8. 세상속에서 2015.02.06 1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재 신채호 선생에 대해서 많이 알아가요^^

  9. 꿈다람쥐 2015.02.06 1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채 신채호 선생 절대로 잊으면 안되는 위인이십니다.

  10. 유라준 2015.02.06 21: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아'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죠.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청소년 환단고기 출간

 

 





청소년 『환단고기』 출간에 부쳐


지금 동북아시아에서는 독도, 센카쿠 열도를 놓고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흔히 역사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동북아 역사 전쟁은 사실 수천 년 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세계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중국과 일본은 이미 오래 전에, 배은망덕하게도 저희들에게 문화를 전수해 준 한민족의 상고 역사를 완전히 뿌리 뽑아 버렸습니다.
중국은 있지도 않은 ‘기자조선’을 만들어, 3,100년 전에 주나라 무왕이 상(은)나라의 왕족인 기자를 조선 왕에 책봉하여 다스리게 함으로써 조선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지어냈습니다.


일본은 2,200년 전에 위만조선이 멸망한 뒤 한반도 북부와 평양 주변에 한사군이 설치됨으로써, 조선 역사가 중국의 식민 지배로 출발했다고 왜곡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민족 역사의 진실을 담은 우리 고유 사서를 없애고 역사를 터무니없이 꾸며냈습니다.


이렇게 중국과 일본이 조작한 역사를 우리나라 학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한민족은 해방이 된 지 70년이 지나도록 어른부터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거짓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다시 역사 전쟁이 불붙은 것입니다.


중국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동북공정’이라는 역사 조작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 북부와 드넓은 만주 땅에 세운 고구려, 대진(발해)의 역사와 문화를 그들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사학계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자 2012년에는 만리장성의 시발점을 고구려, 대진의 영토이던 흑룡강성 목단강까지 늘렸습니다. 중국은 한민족이 활동하던 옛 역사의 무대를 모두 차지하고, 동북아 고대 역사와 문화의 주인공임을 자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북한에 변고가 생길 경우 북한 땅을 점령하고, 나아가 21세기에 세계를 주도할 패자가 되려는 속셈입니다.


이에 뒤질세라 일본도 독도 영유권과 중국 근해의 센카쿠 열도 지배권을 주장하며 동북아의 강국임을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 전쟁은 단순한 역사 왜곡이나 영토 분쟁이 아닙니다. 역사 왜곡이라는 불의를 넘어 장차 동서양 2대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싸움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는 지구촌의 화약고인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역사 대전쟁의 실체를 바르게 보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갈수록 치열해질 역사 전쟁에서 민족과 나라, 그리고 나를 지키는 길은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에 의해 뒤틀리고 사라진 우리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원형 문화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환단고기』는, 한민족은 물론 인류 창세 역사와 원형문화를 오롯이 담은 정통 사서입니다. 여기에는 한민족사의 뿌리와 ‘국통國統 맥’이 명쾌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나아가 한민족의 고대사가 뿌리 뽑힘으로써 함께 왜곡된 중국, 일본의 시원 역사는 물론 북방 민족의 역사, 서양 문명의 근원까지 총체적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1911년에 독립운동가 운초 계연수 선생이 우리의 고유 역사서 다섯 권을 하나로 묶어 펴낸 책입니다. 신라의 고승 안함로(579~640)가 지은 『삼성기』 상과, 고려 시대 원동중(?~?)이 지은 『삼성기』 하, 고려 공민왕 때 수문하시중(오늘날의 국무총리)을 지낸 이암(1297~1364)이 쓴 『단군세기』, 이암의 동지이자 고려 말 충신인 범장(?~?)이 쓴 『북부여기』, 조선 시대 찬수관을 지낸 이맥(1455~1528)이 편찬한 『태백일사』가 『환단고기』에 들어 있습니다. 신라에서 조선까지, 『환단고기』는 무려 1,400년에 걸쳐 이루어진 위대한 문화유산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음악, 언어, 음식, 복식 등 한류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한류’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한민족의 시원문화가 지구촌 전 인류의 정신문화 뿌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지난 30여 년 동안 『환단고기』 원문에 담긴 정확한 뜻을 한글로 풀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중국, 일본, 이집트, 중동, 유럽, 북남미 등 세계 곳곳의 역사 현장을 직접 가서 확인하고, 각종 자료와 문헌을 조사하여 한민족의 시원 역사와 인류 원형문화의 참모습을 고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2012년 6월, 마침내 『환단고기』 완역본을 간행하게 되었습니다.


완역본을 발간하면서, 한편으로 청소년을 위한 『환단고기』를 기획하였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무엇을 보고 배우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일생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특히 역사를 바르게 아는 것은 자신과 국가의 밝은 미래를 여는 원동력입니다. 우리 민족과 나라의 운명이 청소년 여러분의 두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이 우리의 참 역사와 문화가 담긴 『환단고기』를 읽고 자기 자신과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 역사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조국을 지키고 새로운 세계 질서를 여는 참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환기 9210년, 신시개천 5910년, 단군기원 4346년, 서기 2013년 1월 안 경 전

 


옮긴이 안경전
1911년, 운초 계연수 선생이 묘향산 단굴암에서 일제 식민지 백성의 온갖 설움을 토하며 자신이 찾아낸 역사 원본들을 『환단고기』 한 권으로 엮어 편찬한 지 어언 100년! 드디어 안경전님의 『환단고기』 완역본이 나오고 어린이용, 청소년용이 출간되었다.


안경전님은 한민족과 인류의 미래가 오직 ‘시원을 바로잡아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원시반본의 도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한민족과 인류의 시원역사, 원형문화를 밝히는 일에 평생을 바치셨다. 일본(식민사관)과 중국(중화사관)이 말살하고 조작한 역사를 바로잡고 한민족사의 국통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한민족에게 『환단고기』를 제대로 읽히고자 하는 일념뿐이었다. 30여 년 동안 국내외 역사 현장을 직접 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그동안 학자들이 연구한 성과물들을 세세히 검토하셨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민족을 넘어 전 인류의 창세 역사 교과서라 할 수 있는 『환단고기』를 쉽게 풀이하셨다.


특히 역사상 처음으로 발간되는 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환단고기』는, 대한민국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왜곡된 우리 역사의 참모습을 알리고, 인류 시원역사를 개창한 주인공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지구촌을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하는 소중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주요 저서 『환단고기』 역주 시리즈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환단고기』 역주 완간본, 『환단고기』 역주본 보급판, 『어린이를 위한 환단고기』, 『청소년을 위한 환단고기』, 『도전道典』, 『이것이 개벽이다』, 『개벽실제상황』, 『천지성공』, 『생존의 비밀』 외 다수



[추천사]
‘역사는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역사를 만든다’
는 말이 있습니다. 『환단고기』에는 근 1만 년 전부터 한민족은 물론 인류가 꿈꾸며 살아 온 역사의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환단고기』의 역사를 만나는 순간, 새 역사를 개척할 주인공으로서 자신감을 찾고, 진정한 꿈과 희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 창원여자중학교 교사 박영지


학창시절부터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역사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고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그때부터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몇 가지 있었다. 우리 역사는 고조선부터 시작되고 4000년이 넘는데 왜 교과서에는 내용이 두세 줄밖에 기록되지 않았을까? 왜 우리민족을 배달의 민족이라 할까? 삼국시대 건국자들은 왜 알에서 태어났으며 과연 실존 인물일까?


『환단고기』를 읽고 이러한 세 가지 의문을 속 시원히 풀 수 있었고 환국-배달-조선-북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국통 맥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우리 청소년들이 『환단고기』를 제대로 읽는다면 잃어버린 우리역사, 거짓으로 포장되고 왜곡된 서글픈 역사에서 깨어나 민족의 자존을 회복하고 민족정신을 바르게 세워 글로벌시대의 리더로 성장하리라 확신한다.
━ 대구 노변중학교 교사 이종혁

 


지금 우리나라 청소년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보다 상당히 높습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은 집단 따돌림, 집단 괴롭힘, 흡연, 약물남용 같은 온갖 범죄 문제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어둠에서 청소년들을 구하는 길은 그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찾아 주는 일입니다. 뿌리를 알고 자기가 누구인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된다면 청소년들의 비행은 점차 사라지고 밝은 환경이 조성될 것입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진정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미래를 꿈꾸고 열어갈 수 있는 특별한 계기를 이 책에서 만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 창녕 남지중학교 교사 이익중


 



포켓용 환단고기도 함께 출간되었습니다.


이제는 포켓에 넣어다니시면서 읽어보시고 암송도 해보세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진리의 해답을 꼭 찾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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