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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피비린내 나는 현장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원형경기장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이탈리아 로마 암피테아트룸 플라비움(콜로세움)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은 로마의 황제부터 노예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적으로 모두가 참여하는 정치와 소통, 여흥의 장이었다.

로마 시민을 위해 건설했다는 로마 콜로세움은 사실 로마 황제가 권력을 과시하고 유지하기 위해 만든 잔혹한 살육의 장이었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목숨을 걸고 대결하는 검투사 경기일 것이다.

로마 로세움은 여러 공연과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그리고 경기장에 물을 채워 모의 해상전투까지도 볼 수 있었던 원형경기장이다.

 

 

 

 

 

 

 

 

 

 

검투사 경기는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즉 거대한 원형경기장이 생기기 약 4백 년 전부터 있었다.

 

검투사들의 대결은 BCE 3세기경 로마와 페니키아(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쟁에서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면서 검투사 대결의 무네라(munera)를 벌이게 했다고 한다.

 

 

 

이후 권력에 눈먼 자들이 자신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사람들의 이목을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는 무네라를 앞다투어 개최했고, BCE 2세기 초에 이르러 로마군의 군사훈련으로 시행했으며, 이후 국가 차원의 행사로 발전하게 된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에서 벌어진 검투사 대결 경기는 노예나 전쟁포로, 범죄자가 가장 많이 참가했지만, 때에 따라서는 여성과 소년, 일반인과 황제까지도 참여했다.

 

로마의 황제가 무네라에 출전할 때는 다치지도 않고 절대 죽지 않게끔 조처를 해놓고 경기에 참여했다.

 

 

 

 

 

 

 

 

 

 

로마 황제 중에서 폭군의 대명사가 된 네로 황제(BCE 37~ 68)가 여성과 소년을 '무네라'에 불러냈다.

 

로마 네로 황제는 64년 대화재가 일어나면서 궁전이 소실되자 정원과 농장, 숲 등을 갖춘 약 15만 평 규모의 황금 궁전을 짓는다.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에는 인공호수가 있었는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즉위하고 인공호수 위에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짓는다.

 

 

 

콘크리트와 돌과 쇠, 나무 등을 이용해서 만든 로마 콜로세움은 당시로써는 규모와 기술 면에서 최고의 건축물이다.

그동안 노천극장과 규모가 작은 원형경기장은 도시 외곽에 있었지만,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 인공호수 위에 세워진 콜로세움은 로마의 중심에 건설된 것이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은 베스파시아누스 로마 황제가 CE 72년 짓기 시작해 아들 티투스 황제 때인 CE 80년 8년 만에 완공된다. 티투스는 로마 콜로세움이 완공되자 대대적으로 무네라(munera)를 개최한다.

 

 

 

 

로마제국의 위대한 5명의 황제, 즉 오현제(五賢帝)에 이름을 올린 트라야누스 황제(CE 53~117)는 109년에 100여 일 동안 약 1만여 명의 검투사를 대결에 투입하기도 했다.

 

 

잔혹한 피와 한이 서려 있는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은 2007년 '뉴 세븐 원더스'라는 사설 기관이 실시한 인기투표로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정했다. 로마 황제가 통치수단으로 건설한 콜로세움은 위대한 건축물이지만, 잔혹한 피로 얼룩진 유산이기도 하다.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영토확장에 나선 로마 제국은 유럽과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 지역에 여러 원형경기장을 만들었다.

식민지를 도로로 연결해 사통팔달 뻗은 길로 군대를 이동하고 효과적으로 식민지를 통제했다.

 

 

 

 

 

 

 

 

 

 

 

 

이탈리아 로마의 암피테아트룸 플라비움 원형경기장이 콜로세움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8세기 들어서부터다.

영국 출신의 수도승 베다 베네라빌리스(672 또는 673~735)영국 교회사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로마의 역사와 콜로세움, 그리고 세계의 역사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글을 쓰면서 이후 콜로세움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약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은 타원형의 4층 구조로 둘레 527m, 높이 48m, 긴 곳의 지름은 188m, 짧은 곳의 지름은 156m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의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검투사 경기는 435년까지 이어졌고, 동물사냥 경기는 523년까지 계속됐다.

 

17세기 프랑스의 시인 라 퐁텐(1621~1695)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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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10.22 0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

  2. 죽풍 2017.10.22 2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기 80년에 세워졌다는 콜로세움 원형경기장.
    직접 봤는데 정말 믿어지지 않는 건축물이더군요.
    1994년 여행 당시 생각난 것이 외계인이 지었는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 발달한 문명세계가 존재했는지 헷갈렸습니다.
    불가사의한 건축물입니다. ^^

  3. 버블프라이스 2017.10.24 0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콜로세움과 검투사를 떠올리면
    영화 '글레디에이터' 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오늘은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과 검투사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갑니다^^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 로마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 신부 동양 선교를 꿈 꾸다.

 

 

 

 

 

 

 

 

 

 

가톨릭(기독교)가 지난 2천 년간 추구해 온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지구촌에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 즉 지상 천국 건설로 전 인류에게 최고의 행복을 주는 것일 것이다.

 

 

한평생 온갖 고초를 마다치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이 땅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선구자적 가톨릭 선교 활동을 펼쳤던 마테오 리치 신부님, 중국명(中國名)은 이마두(利瑪竇)이며 호(號)는 시헌(時憲)이시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이탈리아 이름은 Matteo Ricci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이며 가톨릭을 아시아 대륙에 정착시킨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스페인 출신의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 수사를 중심으로 6명의 동료가 1534년 창시 - 예수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일종의 군대 조직과 같으며 해외 선교 목적으로 세워진 단체) 선교사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톨릭을 천주교(天主敎)라고 부르게 된 배경이 바로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유명한 저서 '천주실의(天主實義 - 천주님의 참뜻)'로부터 비롯되었다. 더불어 유럽을 구라파(歐羅巴)로 표기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1592년 이탈리아 중부 마체라타에서 약국을 경영하며 시청에서 지방 행정(이후 시장을 역임)을 맡았던 아버지 조반니 바티스타 리치의 9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예수회 출신 가정교사 니콜로 벤치베니 신부에게서 영적 훈련을 받으며 자라고, 예수회에서 설립한 학교에 다니며 1571년(7살) 가톨릭 예수회에 가입하게 된다. 마테오 리치는 이러한 교육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직자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었다.

 

 

마테오 리치는 여기서 신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연상에 의한 기억법 교육'을 통해 라틴어와 헬라어 공부를 하게 된다.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여 입신출세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마테오 리치는 로마에서 법학 공부를 전공하다 3년 만에 그만두고 가정교사이며 스승인 벤치베니 소속된 예수회 수련원에 들어간다.

1571년 예수회 정식 입교 후에는 당시로써는 미개척지와 다름없는 동양 전도(선교)에 뜻을 품게 된다.

 

 

 

1577년부터 수사학인문과정을 공부했으며, 1577년부터 1579년까지 같은 대학교에서 철학 과정을 마치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력을 제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수학자 그리스토퍼 클라비우스에게 수학과 천문학, 기하학과 역법 및 해시계, 자명종, 천체관측과 지구의 등 제작법도 배우게 된다.

 

 

 

 

 

 

 

 

 

1578년 마테오 리치는 예수회 동료 13명과 함께 동양 선교의 큰 꿈을 안고 1차 목적지 인도로 선교 요원이 되어 파견된다.

1580년 로마 가톨릭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1582년까지 인도의 고아(Goa) 지역에서 나머지 신학 공부를 받게 된다.

아직도 마체라타 대학교 본관에는 중국의 사대부 모자를 쓴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계속)

 

 

 

 

 

 

 

 

 

 

 

 

 

 

 

동서양의 벽을 허문 우주 역사의 큰 공덕

1 이마두가 천국을 건설하려고 동양에 왔으나 정교(政敎)에 폐단이 많이 쌓여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2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3 이마두의 공덕이 천지에 가득하니 신명계의 영역을 개방하여

  동서양의 신명들을 서로 자유롭게 넘나들게 한 자가 이마두니라.

4 선천에는 천지간의 신명들이 각기 제 경역(境域)을 굳게 지켜 서로 왕래하지 못하였으나

5 이마두가 이를 개방한 뒤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국의 문명을 본떠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 주었나니

6 이것이 오늘의 서양 문명이니라.

 

후천개벽 후 이마두 대성사의 신도 위격

7 이마두는 구천상제(九天上帝)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13)

 

 

 

 

 

 

 

 

 

 

 

도쿄대학 명예 교수 히라카와 스케히로의 저서 『마테오리치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에서 마테오 리치 신부님을 "로마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로서 동아시아에 서구문명을 소개하여 중화(中華, 중국) 질서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으며,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지식과 중국 학문을 두루 갖춘 최초의 세계인"이라 정의하고 있다.

 

 

 

단자론자(單子論者)로 잘 알려졌으며, 중국 역학(易學)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이를 바탕으로 이진법(二進法)을 제창한 라이프니츠는 마테오 리치 신부님에 대하여 "이성에 바탕을 둔, 상이한 문화 간의 만남과 대화의 모범"이라고 평했다.

 

 

 

프랑스의 비교철학자이며 종교사회학자 쟈크 제르네는 마테오 리치 신부님을 "단지 중국 선교사로만 파악하는 좁은 시야로 보지 말아야 하며, 상이한 문명과 사상을 만나게 한 인물"이라고 하였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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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5.06.30 0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가구요~
    오늘 비온다니..우산 꼭 챙기셔요~

  2. 죽풍 2015.06.30 0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테오 리치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조금이나마 알고 가네요.
    잘 보고 갑니다. ^^

  3. 메리. 2015.06.30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마온다니 우산 챙기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4. 프리뷰 2015.06.30 1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테오 리치 신부에 대해서 잘봤습니다.

  5. 다이어트X 2015.06.30 1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업적이 대단한 분이군요^^~!

  6. misoyou 2015.06.30 2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 분이시네요 ㅎ
    멋집니다 ㅎ

  7. 유라준 2015.06.30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순한 선교사가 아니라 과학자 겸 세계인이었군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