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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발표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 선언

 

 

 

 

 

 

 

 

 

 

언약의 땅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원주민으로부터 빼앗은 땅이며, 축복의 땅에서 저주의 땅이 되었다.

 

 

크리스트교 성서에 나오는 가나안 땅은 현재의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요르, 시리아 넓은 지역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현재의 이라크 남부(우르 지역)에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도착했던 약 4천전에도 원주민이 있었다.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던 모세와 유대인은 이른바 엑소더스(유대인의 이집트 대탈출 사건)로 가나안으로 돌아왔고, 한 번도 그 땅을 떠나지 않았던 원주민은 수천 년 동안 히브리인(유대인)과 함께 거주했다.

 

 

 

약 3년 전 사울이 연합왕국 이스라엘을 세웠고,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성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국은 불과 수백 년 만에 분열되고, 주변 강대국에 의해 멸망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로마제국 점령하에 있던 유대인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유대인은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하고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세상을 떠도는 민족이 되었다.

 

 

 

 

 

 

 

 

약 2천 년 전 예수 성자가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한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크리스트교(가톨릭, 정교, 개신교)의 성지가 되었다.

약 1천 5백 년 전 아브라함의 장자 이스마엘혈통인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한다.

 

 

현재의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무함마드가 승천(영적 체험)한 곳으로 7세기 이슬람 연합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솔로몬 성전 자리에 이슬람 황금빛 사원 '바위의 돔'을 세워 성지로 만들었다.

 

이렇게 현재의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약 3천 년의 역사과정에서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되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 이스라엘 예루살렘 -유대교

http://gdlsg.tistory.com/1998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성지 이스라엘 예루살렘 - 기독교

http://gdlsg.tistory.com/2005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의 성지 예루살렘 - 이슬람교

http://gdlsg.tistory.com/2006

 

 

 

 

 

 

 

 

가나안 지역에 살던 원주민이나 유대인이나 모두가 셈족의 후예인 아랍인이다.

모두 중동 지역의 같은 인종이며, 신앙의 뿌리인 믿음의 조상도 현재의 이라크 남부에서 이주해온 아브라함이다.

 

흔히 가나안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원주민이 살고 있었고, 유대인에게 땅을 빼앗긴 이후에도 가나안 지역에서 수천 년 동안 살았으며, 아직도 그 지역에서 살고 있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포함한 지역을 자기 땅이라고 각기 주장하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각자의 기준에 따라 누구도 예루살렘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다.

 

 

 

2천 년 동안 떠돌던 유대인이 민족국가 건설의 꿈을 키우며 결집하기 시작한 것은 1896년 테오도어 헤르츨유대인 국가였다.

책이 출판되면서 유대 민족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이른바 시오니즘의 민족주의 운동이 시작된다.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제1회 세계 시오니스트(시온주의자) 회의가 열렸고, 이때부터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유럽 전역의 부호와 유대인이 돈을 모아 팔레스타인 땅을 사들이기 시작하며 서서히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를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이 떠난 뒤에도 현재의 이스라엘 예루살렘 지역에 살고 있었다.

영국은 오직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맥마흔 선언과 벨푸어 선언으로 아랍인과 유대인을 전쟁에 끌어들인다.

 

 

1915년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은 팔레스타인의 아랍국가 건설 지지를 약속한 이른바 '맥마흔 선언'을 한다.

아랍인은 '맥마흔 선언'을 철석같이 믿고 1차 세계에서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참여하여 약 10만 명의 전사자가 발생한다. 

 

1916년 영국은 뒷구멍으로 프랑스, 러시아와 함께 중동지역을 나누어 먹는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밀약'도 맺었다.

 

 

 

오스만제국이 점령하고 있던 이스라엘 지역을 영국이 1917년 점령하면서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저주가 시작됐다.

 

1917년 영국 외무장관 벨푸어는 유대인 재벌 로스차일드에게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만드는 것을 지지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엄청난 인원이 전사하고 부상한 아랍인보다 돈으로 움직인 유대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는 상이다.

20세기 초 불과 5만 명이었던 예루살렘의 유대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50~60만 명까지 엄청나게 불어난다.

 

 

 

 

 

 

 

 

팔레스타인(아랍인)과 유대인의 땅을 점령해 통치하던 영국은 '맥마흔 선언'과 '벨푸어 선언'으로 분쟁을 조율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지 유엔에 모든 것을 임하게 된다.

 

1947년 11월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 땅에 두 국가를 만들고, 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으로 선포한다.

 

 

 

아랍인이 거주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지역은 유대인에게, 아랍인에게는 가자와 요르단 서안 지역에 각각 나라를 건설하는 안건이 올라와 통과됐다. 이때 예루살렘을 동서로 나누어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으로 분리됐다.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던 아랍은 반대했고,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선포로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 간에 1차 중동전쟁이 벌어졌고, 유엔의 중재로 휴전한다.

1956년 2차 중동전쟁, 1967년 3차 중동전쟁, 1973년 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이 벌어졌을 때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포한다.

그러나 지구촌 어느 나라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을 인정하지 않았다.

 

중동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서방의 강대국은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군사적 지원과 개입도 했다. 

 

 

유대인은 2천 년 동안 유럽 등지로 흩어져 부를 축적했고, 20세기 들어 나치로부터 대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과 지구촌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은 약 1,600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오래전부터 유대인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정치, 경제, 사회 등 특히 금융 분야에서 핵심세력이 되었다. 

유대인이 세계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1967년 미국과 유럽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가자, 서안, 시나이 등과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이때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했지만, 이스라엘을 지원한 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어느 나라도 인정하지 않았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이스라엘 유대인에게 세계평화와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유엔의 1947년 결의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2017년 12월 6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 수도로 예루살렘을 선언한다.

트럼프라는 한 개인의 주장이 아니고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군사적으로 지구촌을 휘어잡고 있는 미국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내뱉은 말이라 더 충격을 주었다.

 

 

1947년 유엔이 결의한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은 국제사회가 평화유지를 위해 공동으로 채택한 결의안이기 때문에 지난 70년 동안 이스라엘을 제외한 어느 나라도 부정하거나 파기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유엔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유엔의 결의안 준수에 앞장섰던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예루살렘 선언으로 유엔 결의안을 부정하고 파기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유대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 내에서 유대인은 약 2%밖에 안 되지만, 돈으로 미국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조부가 19세기 후반 미국에 이민 와서 정착한 독일인의 후예로 유대인도 아니고 개신교 신자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을 되돌아보면 트럼프는 개인의 이익과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일삼아왔다.

 

 

자국의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대인도 아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 선언은 그런 말을 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의 발언이며 헛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한 발언이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 선언은 인정하든 안 하든 미국을 돈으로 움직이고 있는 유대인과 중동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파렴치한 행위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아무 죄 없는 유대인을 끌고 가서 수백만 명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전쟁이 끝나고 팔레스타인 지역에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의 유대인은 70년 동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소위 전문가라는 집단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 선언을 놓고 앞으로 세계정세에 미칠 영향을 여러 각도로 분석하고 국제사회가 비판하는 가운데 무고한 민간인이 죽어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희생될지 모른다.

 

 

유엔(UN)은 세계평화와 국제질서 수호하는 국제기구다.

돈과 무력을 앞세운 미국과 이스라엘은 유엔의 결의안을 대놓고 부정하고 파괴한 명실상부한 이 시대의 악의 축이 되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예루살렘 지역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져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중동의 화약고 예루살렘은 저주의 땅으로 변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언은 '인간의 목숨보다 돈이 우선이다. 세상은 내 말 한마디로 움직인다. 내 말이 곧 법이다.'라는 주장으로 신앙의 뿌리와 혈통이 같은 아랍인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유혈 충돌을 일으켰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은 미국을 초토화하겠다는 북한 김정은의 광기 어린 발언과 별반 다르지 않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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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8.01.06 0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나라의 수장이라는 대통령 이라는 직위를 가진 무게는
    무거워야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예루살렘 지역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져 희생자가 발생했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인간의 목숨보다 돈이 우선이다' 라는 말은 정말 말 같이 않은 말 입니다...
    인간이 우선이지 돈은 나중입니다.

  2. 청결원 2018.01.06 0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세계 대공황 타개책(打開策)으로 뉴딜정책을 추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명언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1776년부터 240년 역사 동안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인물이 프랭클린 루즈벨트(1882~1945) 미국 대통령이다.

193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1933년 제37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며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인류 역사상 가장 기록에 남을 대사건인 세계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대통령 재임 중에 모두 경험하며 제38대, 제39대, 제40대 대통령으로 4선 연임을 하며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으나,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얼마 앞두고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뉴욕 주지사로 재임하던 당시 세계 대공황이 일어났다. 

검은 목요일로 불리는 1929년 9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이 대폭락으로 촉발된 세계 대공황으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엄청난 충격과 혼란에 빠져든다. 주식시장의 붕괴와 함께 기업과 은행, 개인이 파산하고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렸다.

 

그 틈을 이용하여 일부 대자본가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세계 대공황이 발생하기 전 3%였던 도시 실업률은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1933년에는 37%로 급등하였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근대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케인즈의 이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에 국가가 개입)을 받아들여 세계 대공황 타개책으로 뉴딜(New Deal)정책을 선언하며 대통령에 당선하게 된다.

 

보수주의자들은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이 대중을 선동하였고 기업에 손상을 주는 급진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은 제1차 뉴딜정책에 이어 제2차 뉴딜정책을 시행하며 미국 전체 국민에게 부(富)가 배분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였다. 국가가 직접 수요를 늘리는 역할을 하며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재정지출에 적극적으로 임하였으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개혁도 단행하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명석한 머리로 명문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40세 나이에 찾아온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되었으나 불굴의 의지와 당당한 자신감으로 뉴욕 주지사를 거쳐 민주당 진보 대통령으로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번 연임을 하는 대통령이 되어 인간승리의 진기록을 만들고 재임 중 돌연 사망한다.

 

그가 암울했던 세계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 국민에게 보여준 리더십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국민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함께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은 크게는 국가 경제의 재건이었고 작게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노동자와 실업자, 서민을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적정한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완전하게 살아나지는 못했다. 이러한 때 2차 세계대전의 발발하면서 미국과 세계 각국이 세계 대공황에서 탈출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전쟁물자를 공급하는 미국의 군수산업은 뉴딜정책과 맞물려 미국 경제를 다시 살려냈다.

 

 

 

 

 

 

 

 

테네시 강 유역 개발 사업으로 대표되는 뉴딜 정책의 대규모 프로젝트는 고용창출과 공공개발을 동시에 이루어냈다.

연방예금보험공사, 연방긴급구호청, 민간환경보호대, 농업조정청, 노동진흥청 등을 설립하였고, 최저임금법, 산업간 비경쟁법, 생산제도 등을 도입하는 국가산업회복법을 제정하였다. 

 

지금은 모든 나라가 시행하는 제도지만 당시 법원에서 헌법위반이라는 판결을 받기는 했으나 세계 대공황의 촉발지 월스트리트를 감독하는 증권거래위원회를 설립하였다. 국가노동관계법을 제정하여 노조의 조직권, 단결권, 행동권을 보장하였고, 빈민층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보장법을 제정하였다. 

 

 

 

 

 

 

 

 

영국, 미국, 소련은 1943년 11월에서 12월 사이에 이집트 카이로와 이란 테헤란에서 개최된 카이로 회담과 테헤란 회담에서 일본의 식민지(대한민국) 문제가 언급되고 전후 전범국 일본에 대한 처리 문제가 일부 결정되게 된다. 

 

 

대통령으로서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된 것과 4선 연임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어 미국의 전통과 관행을 깬 것, 그리고 공산주의 소련에 너무 호의적인 것이 공산국가 소련이 동유럽과 아시아에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소련 스탈린 서기장은 1945년 2월 4일부 11일까지 소련 크리미아반도 얄타에서 열린 소위 얄타 밀약에서 대한민국(조선) 신탁통치에 관해 밀약하는데 4월 12일 루즈벨트 대통령이 돌연 사망하게 된다.

 

얄타 회담 다음으로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독일 베를린 교외 포츠담에서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대한민국(조선)에 대한 신탁통치에 대하여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영국 처칠 총리, 소련 스탈린 서기장과 중국 총통 장개석이 서명한다.

그리고 1945년 12월 16일에서 25일까지 소련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 영국, 소련 3국 외상회담에서 대한민국(조선)에 대한 신탁통치가 결정된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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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비주류 대통령, 제7대 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위험한? 조언자

 

 

 

 

 

 

미국 서부 출신으로 가난하고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 앤드류 잭슨

자신 앞에 대통령 6명은 모두 미국 동부 출신의 쟁쟁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미국 정치사의 비주류였지만 미국 국민은 앤드류 잭슨을 선택했고, 결국 미국의 제7대 대통령의 되어 백악관에 입성하였다.

 

 

어린 나이에 민병대에 나갔다가 영국군의 포로가 된 앤드류 잭슨은 영국군이 구두를 닦으라고 하자 전쟁포로로 취급해 달라고 하다가 영국군이 휘두른 칼에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다. 영국군의 침공으로 어머니와 두 형을 잃은 앤드류 잭슨은 영국에 대해 적대감을 품게 된다.

 

법률사무소에 다니며 법학 공부를 한 앤드류 잭슨은 검사와 판사를 거쳐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앤드류 잭슨이 대통령에 재임 시 많은 조언을 들었고, 또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미주리주 상원의 토마스 벤튼과의 기막힌 인연.

1812년 영미전쟁 기간에 앤드류 잭슨은 장군으로 복무 중이었으며, 토마스 벤튼은 부관이었다.

두 사람은 사소한 문제로 다툼이 있었고, 명예를 상당히 소중히 여겼던 앤드류 잭슨은 부관이던 토마스 벤튼을 총을 쏘며 쫓아간다.

그러나 총에 맞은 건 다름 아닌 앤드류 잭슨이었다 총 두발을 맞고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십수 년이 흘러 앤드류 잭슨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서민 대통령으로 워싱턴에 입성하게 되고 그때 미주리주 상원 신분의 토마스 하트 벤튼과 재회를 하게 된다. 둘은 두 손을 잡고 화해를 하였으며, 둘도 없는 동지가 된다. 총을 맞았던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총을 쏜 토마스 벤튼 상원위원에게 조언을 구하고, 상원위원 토마스 벤튼은 대통령에게 조언을 하게 되는 좋은 동지가 된 것이다.

 

 

 

미국위 제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이 대통령을 연임하고 퇴임하는 날, 제8대 대통령 마틴 밴 뷰렌과 국회 의사당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토마스 벤튼 상원위원은 "지는 태양이 떠오르는 태양을 압도했다."라고 하며 퇴임하는 앤드류 잭슨 대통령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표명했다.

 

 

두 사람간의 총기 사건이 일어나고 20년 후, 앤드류 잭슨의 몸속에 박혀있던 총탄은 꺼내졌고, 그 총알을 받아든 앤드류 잭슨은 토마스 벤튼에게 주면서 당신의 것이라고 하며 주었다. 그러자 벤튼은 이미 20년 동안 몸속에 가지고 다녔으므로 이제는 앤드류 잭슨의 것이라고 하며 사양했다고 한다.

두 친구는 웃으며 옛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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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5.02.19 08: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 비주류 대통령에 대해서 알아보시는 분들께
    유용한 설날을 맞이하여 포스팅이네요 ㅎㅎ
    잘보고 가요 ^^

  2. 뉴론♥ 2015.02.19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이 설날이군염 도생님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염 연휴 잘보내세요.

  3. 청결원 2015.02.19 14: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 대통령 정보 잘 보고 가네요

  4. 유라준 2015.02.19 22: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 인연인데, 화해를 한 배포가 보통이 아니네요.
    잘보고 갑니다. 명절 잘 마무리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