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여' 태그의 글 목록

<강화도 환단고기 북콘서트> - 2부 한韓민족 9천 년 역사를 바로 세우는 역사 성전 환단고기桓檀古記

북부여와 고구려의 시조 해모수와 고주몽, 후고구려와 대진국(발해)의 시조 대중상과 대조영 황제


















고조선은 제1세 신인 단군왕검부터 제21세 소태 단군까지 고조선을 진한, 번한, 마한으로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던 '삼한관경제 시대'를 제1 왕조시대라고 합니다. 제22세 색블루 단군부터 제43세 물리 단군까지 고조선을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으로 명칭을 바꾸고 다스렸던 '삼조선 시대'를 제2 왕조 시대라고 합니다.



고조선 제44세 구물 단군께서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바꾸었고, 제47세 고열가 단군까지를 제3 왕조시대라고 하며, 고조선은 제47세 고열가 단군을 끝으로 2,096년의 장구한 역사를 마감했습니다. 단군왕검의 옛 조선은 제1세 신인 단군왕검으로부터 제47세 고열가 단군까지 2,096년의 역사를 마감한 후 여러 나라가 형성되었는데 이때를 열국시대(列國時代)라고 합니다. 



대부여(고조선)의 제47세 고열가 단군께서 나라의 운명이 다 했음을 알고 제위를 버린 후 오가(五家)의 부족장이 6년 동안 공화정을 거쳐 백성들이 해모수를 단군으로 추대합니다. 해모수 단군은 고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하여 북부여를 창업한 시조입니다. 



해모수 단군이 '대부여'라는 나라 이름을 '북부여'로 바꾼 것은 '대부여'의 중심이었던 북쪽에서 나라를 여셨기 때문에 '북부여'로 바꾼 것입니다. 해모수 단군은 북부여의 시조이면서 고구려의 시조이신 고주몽 성제의 고조할아버지가 됩니다. 다시 말해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는 고구려 국통(國統)의 뿌리가 됩니다.
















단군왕검의 고조선이 역사의 문을 닫은 이후 고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한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를 중심으로 동부여, 서부여, 낙랑과 남삼한, 옥저와 동예 등 여러 나라가 형성된 시기가 열국시대(列國時代)입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일제의 관변사학자가 주장한 소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따라 가야의 역사를 철저히 배제한 채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의 삼국시대를 열국시대라고 말합니다.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대한 의미가 있는 것은 단군왕검의 고조선과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국시대(四國時代)를 연결해 주는 역사의 고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민족 역사의 전체 과정에서 중간에 존재했던 북부여의 역사가 사라지면서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는 우리나라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가 되었습니다.



중화 사대사관과 일제 식민사관과 가짜 학설에 노예가 된 자들이 단군왕검의 고조선을 신화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서 만든 작품이 북부여의 시조이신 해모수 단군과 고구려 시조이신 고주몽 성제를 부자(父子) 관계로 만들어 북부여 역사를 없애버린 것입니다.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과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성제는 고조할아버지와 현손(玄孫, 고손자)의 관계입니다.



일차적으로 역사교과서 자체가 잘못됐지만, 한때 사랑을 받았던 TV 드라마 '주몽'은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조작됐는지 보여준 사례로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사실과 허구를 섞은 사극은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가짜 역사를 주입하는 효과를 주게 됩니다.


 

북부여와 고구려의 시조 해모수와 고주몽의 두 나라와 고조할아버지와 고손자의 관계를 하나의 나라, 부자 관계로 왜곡시킨 사례도 있지만, 후고구려와 대진국(발해)의 시조 대중상과 대조영의 역사를 나라 이름을 함부로 바꾸고, 우리 역사에서 빼 버리는 왜곡과 날조의 역사 조작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후고구려라고 하면 통일신라가 망국의 길로 접어들 때 등장한 후백제의 견훤과 후고구려의 궁예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후고구려의 원조는 대진국(발해)의 시조이신 대조영의 아버지 되는 대중상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자가 '통일신라'라는 용어를 생각해 내면서 대조영의 대진국(발해) 역사를 우리 역사에서 빼버렸습니다.



대중상의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소임이라고 생각하여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고 한 것입니다.

대중상의 붕어한 후 후고구려에서 '위대한 동방의 나라'라는 의미의 대진국(발해)으로 나라 이름을 바꾼 대조영은 후고구려를 창업한 대중상의 아들로 대진국(발해)의 시조가 됩니다.



대진국(발해)의 시조 대조영은 고구려 영토 상당 부분을 회복할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했고, 통일신라와 더불어 남북국(南北國) 시대를 열었습니다. 발해라는 나라 이름은 대진국을 인정한 당나라가 대진국의 시조이신 대조영 황제를 서력 713년 '발해군왕'으로 책봉했다는 <신당서>의 기록 때문입니다.



당시 당나라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군사적 우위에 있었고 황제국으로서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대진국이 당나라가 '발해군왕'으로 책봉했다는 것조차 믿을 수 없는 중국이 일방적으로 부른 호칭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화 사대사관에 빠진 자들과 일제 식민사학에 노예가 된 자들 때문에 대중상과 대조영이 창업한 대진국은 발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단군왕검 고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한 북부여의 시조이신 해모수 단군과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의 시조이신 고주몽 성제는 고조할아버지와 고손자 관계이며, 고구려의 정통성을 계승한 후고구려와 대진국의 시조이신 대중상과 대조영 황제는 부자(父子) 관계이며 발해는 중국이 일방적으로 부른 호칭일 뿐입니다.















 


<강화도 환단고기 북콘서트> - 2부 한韓민족 9천 년 역사를 바로 세우는 역사 성전 환단고기桓檀古記

북부여와 고구려의 시조 해모수와 고주몽, 후고구려와 대진국(발해)의 시조 대중상과 대조영 황제











증산도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jsd.or.kr/





STB 상생방송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stb.co.kr/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저녁노을* 2020.05.16 06: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2. 청결원 2020.05.16 06: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3. kangdante 2020.05.16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단고기 북콘서트가
    지방 여러곳에서 개최되고 있군요
    잘 보고갑니다.. ^^

  4. JOHN TV 2020.05.16 14: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주말에 잘보내시고
    자주 소통해요~^^

  5. korea cebrity 2020.05.16 15: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 알고갑니다 ㅎㅎ

  6. nutritionist 2020.05.16 16: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왕 포스팅 좋네요 ㅎㅎ

  7. 모아모아모아 2020.05.16 1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바쁜 주말이네요~~
    포스팅 잘보고
    공감하고 가요~~^^

  8. 넌 계획이다 있구나! 2020.05.16 1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하고 갑니다
    행복한 주말되세요~~^^

  9. 가족바라기 2020.05.16 2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되세요

  10. Deborah 2020.05.16 2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역사적 공부는 흥미로워요

한나라 황제 무제(유철)와 북부여 고두막한(동명성왕) 단군의 동북아 영토 전쟁

 

 

 

 

 

 

 

 

 

 

 

 

우리의 역사는 얼마나 잘못됐을까요?

북부여 역사를 얼마나 왜곡시켜 놓았는지 크게 잘못된 몇 가지를 살펴보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과 현손(玄孫, 4대손)되는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聖帝)와의 관계를 부자(父子)간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본래 동명성왕으로 불린 분은 북부여 5세 고두막한 단군인데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를 동명성왕(東明聖王)으로 둔갑시켜 버렸습니다.

 

한나라 무제(유철)가 북부여를 침공하여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려다 동명성왕 고두막한 단군에게 참패하여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한나라 무제의 사관 사마천이 『사기』에 기록하지도 않은 낙랑, 임둔, 진번, 현도를 중국과 일제 식민사학은 한반도에 갖다 놓았습니다.

 

단군조선을 계승한 북부여를 예맥이 만든 국가라고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합니다.

 

 

 

 

 

 

 

 

 

 

 

 

 

한漢나라 무제의 동북아 영토 전쟁 시작

 

 

한漢나라 무제(유철)은 우거 정권(위만의 손자)을 무너트리기 위해 쳐들어옵니다.

그러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며 연패를 당합니다. 1년 넘게 계속된 전쟁에서 우거 정권의 내부 분열과 이간책으로 한漢나라 무제는 결국 우거 정권(옛 번조선)을 점령합니다.

 

한무제는 한漢나라의 군현을 설치하려다 우거 제거에 공을 세운 한韓민족의 강한 저항에 번조선(위만이 침탈한 고조선의 변방) 유민들의 자치를 인정하는데 그쳐야 했습니다.

 

 

 

 

 

 

 

 

 

 

 

 

북부여 역사 왜곡의 시작 사마천 사기

 

 

사마천은 사기를 쓸 때, 한漢나라 무제가 동명성왕 고두막한에게 대패한 치욕을 숨기고자 의도적으로 북부여사를 누락시킨 데서 비롯됩니다. 그 후 중국의 모든 사서에서 북부여 역사가 사라지게 됩니다.

 

고려와 조선의 사대주의 사서들이 이것을 그대로 모방하고, 일제 식민사학자와 국내 강단 사학자들이 다시 그것을 생각 없이 답습한 결과입니다.

 

 

 

 

 

 

 

 

 

 

북부여 시조 해모수 단군과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聖帝)의 관계 왜곡

 

 

강단사학자들은 중국 사서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근거로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을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의 아버지로 설정합니다.

 

'해모수와 유화부인 사이에 고주몽이 태어나 고구려를 열었다.'라고 하여, 북부여 해모수 단군과 고구려 고주몽 성제를 거의 동시대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180여 년에 걸친 북부여 6대 단군의 역사를 완전히 증발시켜 버린 것입니다.

 

 

 

 

 

 

 

 

 

 

 

 

한漢나라 무제와 북부여 동명성왕 고두막한 단군과의 동북아 영토 전쟁

 

한나라 무제는 동북아의 패권을 잡으려는 욕심에 요동을 넘어 북부여까지 침공하게 됩니다.

당시 북부여 4세 고우루 단군은 한漢나라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병사(病死)하고 맙니다.

 

북부여가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 있는 한韓민족 상고사 최대의 위기에서 한漢나라 무제의 군대를 물리쳐 북부여를 구한 분이 바로 동명성왕 고두막한입니다.

 

고두막한이 졸본(卒本)에서 나라를 열었다 하여 졸본부여라 하며 스스로 동명왕(東明王)이라 칭합니다.

동명성왕 고두막한은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인물로 백성들에게 구국 영웅으로 추앙받아 북부여 5세 단군으로 즉위합니다.

 

 

 

북부여 4세 고우루 단군의 동생 해부루가 잠시 보위에 있었으나 동명성왕 고두막한 단군의 등장에 가섭원(동쪽 차릉)으로 이주하여 동부여를 세우게 됩니다.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께서 젊은 시절 잠시 몸을 의탁했던 곳이 바로 동부여(가섭원 부여)입니다.

 

 

 

 

 

 

 

 

 

 

『환단고기』가 전하는 한漢나라와 북부여의 동북아 영토 전쟁

 

 

 

한무제의 침략을 격퇴한 고두막한

 

재위 13년 계유(단기 2226, BCE 108)년에 한漢나라 유철(劉徹, 무제)이 평나(平那, 現 하북성 창려)를 침범하여 우거를 멸하더니 그곳에 4군(四郡)을 설치하려고 군대를 크게 일으켜 사방으로 쳐들어 왔다.

 

이에 고두막한이 구국의 의병을 일으켜 이르는 곳마다 한나라 도적을 격파하였다. 이때 유민이 사방에서 호응하여 전쟁을 지원하니 군세를 크게 떨쳤다.

(『환단고기』 완역본 『북부여기』 上 255쪽) 

 

 

 

 

일찍이 북부여가 쇠하면서 한나라 도적이 불길처럼 성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개연히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큰 뜻을 세우셨다.

 

이에 졸본(卒本)에서 즉위하고 스스로 호를 동명(東明)이라 하셨다.

어떤 사람은 이분을 고열가(고조선의 마지막 47세 단군)의 후예라 말한다.

(『환단고기』 완역본 『북부여기』 下 259쪽)

 

 

 

 

 

 

 

 

 

 

 

 

동명(東明)

흔히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을 동명왕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동명東明'은 졸본에서 동명국(졸본부여)을 세우고 즉위한 고두막한의 호이다.

그래서 고두막한을 '동명왕'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동명과 주몽을 같은 인물로 기록해 놓았다. 그러나 김천령(金千齡, 연산군 때의 문관)은 자신이 지은 부(賦)에서 "동명이 창업하고 주몽이 계승하였다. (동명계기혁업 주몽승기여파東明啓其赫業 朱蒙承其餘波)"라고 하여, 동명과 주몽이 전혀 다른 인물임을 전하였다.

 

그런데 '동명'이라는 호칭은 몽골어에서 흔히 발견되는 'Tumn'의 음역(音譯)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 칭호는 '대족장·만호장'이라는 뜻으로 흉노제국의 두만선우(頭曼單于)처럼 유목 군장의 이름에서 자주 발견된다.

(박원길,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샤머니즘』, 252~256쪽)

(환단고기 북부여기 주註 282쪽)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유라준 2016.06.10 0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보면, 정말 많이 안타깝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2. 죽풍 2016.06.10 0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

  3. 생명마루한의원 일산점 2016.06.10 1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4. 훈잉 2016.06.10 1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5. Deborah 2016.06.10 12: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졍말 그렇네요.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될 것 같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6. 뉴클릭 2016.06.10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 간답니다 ^^
    행복 가득한 하루가 되세요 ㅎㅎ

  7. 행복생활 2016.06.10 1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구 갈게요~

한국 고대사와 상고사를 연결해주는 잃어버린 고리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역사

 

 

 

 

 

 

 

 

 

 

 

한국 상고사(고대사)는 중국에서 시작됐고 한韓민족의 역사는 2천 년도 안 된다고 말하는 주류 강단사학계

 

한국 상고사(고대사)는 인류 창세 역사까지 포함하여 9천 년의 장구한 역사라고 말하는 재야사학계

 

한민족의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서로 판이하게 갈리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 교육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광복 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 각 분야에서 일제 식민잔재를 70년 넘게 씻어내 왔지만, 유독 역사학계는 철옹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마디로 나라는 광복 하였지만, 역사는 아직도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식민사관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역사는 단군왕검의 고조선과 고구려, 즉 한국 고대사와 한국 상고사 연결해 주는 역사의 고리입니다.

한국 정통 역사는 단군조선에서 북부여로 국통이 계승되었고, 북부여에서 고구려로 국통이 계승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류 강단사학계는 고조선이 기자조선으로 이어 위만조선으로 계승되었고, 만주 예맥족이 부여를 세웠고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한국 고대사와 상고사를 완전히 조작하여 한민족의 국통맥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역사는 환국에서 배달국, 배달국에서 단군조선으로 국통이 계승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왜곡하고 조작하여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역사를 의도적으로 없애버림으로써 한민족의 9천 역사 국통맥(國統脈)은 단절되었습니다. 

 

 

단군조선에서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역사로 이어지는 국통이 단절되며 우리의 상고사(고대사)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단군조선(고조선)은 삼한관경제로 나라를 경영하였습니다.

 

진한, 마한, 번한의 삼한(三韓, 고조선)에서 제22대 색블루 단군 때 진조선, 막조선, 번조선의 삼조선 체제로 바꿨다가 44세 구물 단군에 이르러 대부여로 나라 이름을 바꿨습니다.

 

 

 

 

 

 

 

 

 

 

 

 

북부여의 초대 해모수 단군께서 나라 이름을 북부여라 한 것은 '대부여(단군조선)'가 북녘 땅을 중심으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에 '대大' 자를 '북北' 자로 바꾸어 '북쪽에 있는 부여'란 의미의 북부여라 하였습니다.

 

진조선은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에 흡수되고, 한반도의 막조선에는 최숭의 낙랑국이 들어왔으며, 번조선은 위만 정권이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북부여는 1세 해모수 단군, 2세 모수리 단군, 3세 고해사 단군, 4세 고우루 단군, 5세 고두막한 단군, 6세 고무서 단군, 7세 고주몽 성제에 이르러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바꾸게 됩니다. 

 

 

한韓민족 9천 년 역사에서 가장 짧은 기간 182년 동안 존속했었던 북부여 역사는 한국 상고사와 고대사를 이어줄 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입니다.  

 

 

 

 

 

 

 

 

 

 

 

『환단고기』 완역본 해제 中

 

 

부여사를 찾는 날이 곧 역사 광복의 날

 

 

『후한서』,『 삼국지』 등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부여사는 모두 서부여의 역사이다.

서부여는 동부여가 망한 후 요서에 생긴 망명부여로서, 서부여사는 부여의 끝자락 역사이다.

 

예를 들어 『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울구태(蔚仇台), 간위거(簡位居), 마여(麻余), 의려(依慮) 등은 모두 서부여의 왕이다.

 

그런데도 강단사학계에서 나온 책과 논문들은 서부여를 부여의 원래 모습인 양 그리고 있다.

그 이유는 부여에 대한 단편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담고 있는 중국 사서의 기록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부여의 원형이 처참히 파괴되고 한국사의 허리가 잘려 버렸다.

한국사의 국통(國統) 맥이 어지러워지고 뿌리 역사가 소멸하였다.

 

북부여라는 잃어버린 고리가 고조선과 고구려 사이에 제대로 연결되는 그날이 바로 동방 배달 민족사의 9천 년 국통(國統) 맥이 온전하게 똑바로 서는 역사 광복의 날이 될 것이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청결원 2016.06.09 05: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 고대사 정보 잘 보고 가네요

  2. ☆Unlimited☆ 2016.06.09 0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 공부 잘 하고 가요

  3. 훈잉 2016.06.09 0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대나정보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보내세요

  4. 유라준 2016.06.09 0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식민사관은 반드시 극복해야하죠.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5. 죽풍 2016.06.09 0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군의 북부여 역사 잘 알아 갑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

  6. 생명마루한의원 일산점 2016.06.09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정보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7. 뉴클릭 2016.06.09 1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간답니다 ^^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세요 ㅎㅎ

  8. 행복생활 2016.06.09 1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많이 배워가네요~

환단고기의 가치≫

한민족의 옛 역사와 문화를 밝히고 인류의 뿌리 역사를 드러내는『 환단고기』는

대한의 아들,딸은 물론 70억 전 인류가 읽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사 교과서이다.

 

  

 

 

 

 

 

 

『삼성기』의 첫 문장은“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되었다)”로 시작된다. 이것은 동서양 4대 문명권의 발원처가 되는 인류 창세문명의 주체를 밝힌 만고 명언이다. 그 주체란 바로‘ 오환건국’이라는 말에 나오는 환桓으로, 한민족의 시원 조상인 환족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인류 문명은 환족이 세운 환국에서 비롯되었다.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삼성조三聖祖 시대로 묶어 전한다. 삼성조 시대는 환국(BCE 7197~BCE 3897)에서 배달(BCE 3897~BCE 2333)로, 배달에서 고조선(BCE 2333~BCE 238)으로 전개되었다. 이 7천 년 삼성조시대를 다스린 역대 임금의 이름,19) 재위 연수, 그 치적 등을 기록하여 한민족 시원 역사의 진실을 밝혀 주는 책이 바로『 환단고기』이다.

 

 

 

 

한 나라의 계보와 그 정통 맥을 국통이라 한다. 지금 강단사학에서 말하는 국통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한민족사의 정통이 계승되어 온 맥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 덕분에 한민족은 이제 역사의 미망迷妄에서 벗어나 나라의 족보를 바로 세울 수 있게 되었다.

 

『환단고기』에 들어있는 5대 사서 가운데『 북부여기』는 특히 삼성조로부터 고려·조선에 이르는 우리 국통 맥을 바로 세우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국통 맥을 파악하기 어렵게 하는, 잃어버린 고리인 부여사(북부여, 동부여를 비롯한 여러 부여의 역사)의 전모를 밝혀, 고조선 이후의 단절된 역사를 이어 주기 때문이다.

 

 

 

 

‘환’은 하늘의 광명, 즉 천광명天光明을 뜻한다. 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하늘의 광명이 환이다.‘ 단’은 박달나무 단 자이고, 박달은 밝은 땅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단은 땅의 광명, 지광명地光明을 뜻한다. 그래서‘ 환단’은 천지의 광명이다. 그리고‘ 한’은 인간의 광명, 인광명人光明이다. 그런데 이 "한" 속에는 "환단", 즉 천지의 광명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천지가 낳은 자식인 인간 속에 천지부모의 광명이 그대로 다 들어있는 것이다.

 

환·단·한의 광명 정신은 동방 한민족의 9천 년 역사에 그대로 실현되어 왔다. 그래서 환국에서 근세조선에 이르기까지 나라 이름과 창업자의 호칭이 모두 광명사상을 담고 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잠시 후 시대별 역사를 짚어볼 때 말하기로 한다.

 

 

 

 

신교神敎의 문자적 뜻은‘ 신으로써 가르침을 베푼다’, 즉‘ 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단군세기』의“ 이신시교以神施敎”,『 규원사화』의“ 이신설교以神設敎”가 뜻하는 바가 곧 신교다.

 

신교에서 말하는 신이란 인간과 천지 만물을 모두 다스리는 통치자 하나님인 삼신상제님이시다. 그러므로 신교는 삼신상제님을 모시는 신앙이다. 환국, 배달, 고조선 시대 이래로 우리 조상들은 삼신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려 그 은혜와 덕을 칭송하고 상제님의 가르침 속에서 살아왔다.

 

‘ 환인이 천신, 즉 삼신상제님께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였다[主祭天神]’라고 한『태백일사』「 환국본기」의 기록으로 볼 때, 동방 한민족의 천제 문화는 9천 년 전 환국 때에 시작되었다. 약 6천 년 전에 배달을 개척한 환웅도 나라를 세운 후 천제를 행하였고, 단군왕검도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아사달에 도읍하였다. 강화도 마리산에는 지금도 초대 단군이 개국 50주년(BCE 2283)을 맞아 쌓은 제천단이 남아 있다.

 

 

 

 

 

 

 

이 우주에는 조물주 삼신의 말할 수 없이 신령한 손길이 살아 있다. 그 손길로부터 천지인 삼재가 나왔다. 이것이『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신과 천지인의 관계이다. 삼신이라는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천지인을『 환단고기』는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이라 부른다. 인간은 천지의 손발이 되어 천지의 뜻과 소망을 이루기 때문에 하늘땅보다 더 큰 존재, 태일이 된다. 인간을 태일이라 한 것은 인간에 대한 극치의 정의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그에 대한 답을『 환단고기』는 신교의 신관, 인간관, 우주관, 역사관에 근거하여 종합적으로 정리해 준다. 따라서『 환단고기』는 신과 기, 신과 천지인, 천지와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의 탄생 원리 같은 심오한 진리 주제를 망라하여 싣고 있는 철학 경전이요 문화 경전이라 하겠다.

 

 

 

 

천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준말이다. 천제天帝는 상제의 다른 말이므로, 천자는 곧 상제님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천자는 상제님을 대신하여 땅 위의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요,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리는 제사장이다. 한마디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존재다. 환국, 배달, 고조선 이래로 이 땅은 원래 천제의 아들이 다스리는 천자국天子國이었다.

 

『 단군세기』에서 행촌 이암이 단군을 줄곧‘ 제帝’라 부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천자의 가장 근본적인 소명은 자연의 법칙을 드러내어 백성들이 춘하추동 제때에 맞춰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책력을 만드는 것이었다. 배달 시대에 지어진 한민족 최초의 책력인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 태백일사』「 신시본기」) 또는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는 인류 최고最古의 달력이다.

 

그런데 역법에는 숫자가 사용된다. 1에서 10까지의 자연수는 9천 년 전 환국 시절의 우주론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에 최초로 기록되어 있다. 5,500여 년 전의 성황인 태호 복희씨는 동서남북 사방과 춘하추동 사시의 시공간 법칙 속에서 수의 원리를 찾아내어 하도河圖를 그렸다. 인류의 책력과 수는 동북아에서 가장 먼저 발명된 것이다.

 

 

 

 

 

 

 

배달의 환웅천황은 신교의 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을 통치원리로 삼아 삼백三伯(풍백, 우사, 운사) 제도와 오사五事(주곡, 주명, 주형, 주병, 주선악) 제도를 만들어 국가를 경영하였다. 삼백은 조선 시대의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근현대의 삼권분립(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제도와 완전히 정합한다. 풍백, 우사, 운사는 흔히 말하듯 바람신, 비신, 구름신이라는 신화 속 주인공이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원형인 것이다. 배달의 오사는 고조선과 북부여, 고구려, 백제 등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신교의 삼신문화가 국가 경영 원리로 정착된 가장 결정적인 제도는 바로 고조선의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이다. 대단군이 중앙의 진한을 다스리면서, 두 명의 부단군을 두어 번한과 마한을 다스리게 한 이 제도는 고조선이 국정을 운영하는 근간이 되는 제도였다. 고조선은 삼한관경제의 성쇠와 운명을 같이하였다.

 

요컨대 신교의 삼신오제 사상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움직여온 사상적 기반이었다. 신교가 밝히는 우주관의 핵심인 삼신오제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면 한민족의 국통 맥은 전혀 바로 잡을 수 없다. 상고시대 한민족의 국가 통치제도의 구성 원리를 처음 구체적으로 기록한『 환단고기』는 오늘날 국가 경영을 연구하는 데에도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문자는 문명 발상의 필수 요소로서, 한민족은 배달 시대부터 이미 문자생활을 영위하였다. 초대 환웅천황(BCE 3897~BCE 3804)이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을 창제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문자로 알려진 BCE 3000년경의 쐐기문자(수메르)와 상형문자(이집트)보다 더 오래된, 세계 최초의 문자이다.

고조선 3세 가륵단군은 이 문자를 수정 보완하여 가림토加臨土 문자를 만들었다.

 

가림토의 모습은 조선 세종 때 만든 한글과 매우 흡사하다. 가림토는 일본에 전해져 아히루阿比留 문자를 낳았다. 일본 신사의 고대 비석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 문자를 일본은 신대神代 문자라 하여 신성시한다.

가림토의 첫 세 글자(· ,ㅣ, ㅡ)는 삼신 사상에서 나온 천지인 삼재三才를 나타낸다. 흔히 음양오행론으로 한글의 소리 체계를 설명하지만, 한글은 사실 음양사상의 출원처인 신교의 삼신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단군세기』에는 고조선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게 나온다. 고조선은 무려 1500년(BCE 2205 하나라 건국~BCE 770 주의 동천東遷) 동안 중국의 고대 왕조인 하·상·주의 출현과 성립에 깊이 관여하였다. 그 한 예가 중국 5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맞은, 국가를 존망의 위기에 빠트린 9년홍수 때, 단군왕검은 우禹에게 치수治水법을 가르쳐 주어 그로 하여금 홍수를 무사히 해결하고 그 공덕으로 나중에 하나라를 열게 한 일이다. 그리고『 태백일사』에는 아직도 미스터리에 싸여 있는, 일본의 개국 과정을 밝힐 수 있는 단서들이 실려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환단고기』는 왜곡된 한·중·일의 고대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나침반이다.

 

이상에서 알아 본『 환단고기』의 특징과 사료적 가치는‘ 왜『 환단고기』를 읽어야 하는가?『 환단고기』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한민족의 옛 역사와 문화를 밝히고 인류의 뿌리 역사를 드러내는『 환단고기』는 대한의 아들딸은 물론 70억 전 인류가 읽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사 교과서이다.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진리의 해답을 꼭 찾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무료책신청 여기를 꾹 눌러주세요. ^_^

클릭 ->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증산도 종도사님 말씀>

 상제님은 왜 한반도로 오셨는가?

 

  

가을 조화선경 문명을 열기 위해 하나님이 오셨다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은 선천 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는 근본이 다르다. 상제님은 인간으로 오신 인존하나님이시다. 상제님이 오셔서 우주가 이렇게 둥글어가는 것이다.
 
 

지금 대우주는 인간을 낳고 길러 성숙한 인간으로, 천지의 주인으로 만드는 가을개벽을 목전에 두고 있다. 태사부님의 말씀대로 가을개벽으로 통일문화, 하나인 문화, 열매문화, 결실문화를 완성한다. 대우주는 그것을 위해 둥글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봄 다음에 여름, 여름 가면 가을이 오듯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가을조화선경이 열리는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이 우주의 주재자, 대자연의 통치자,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시는 것이다.
 


 

상제님은 선천 상극 도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리하여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 이에 천지신명이 이를 근심하고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고자 하였으되 아무 방책이 없으므로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여 오매 내가 이를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내가 큰 화를 작은 화로써 막아 다스리고 조화 선경(造化仙境)을 열려 하노라. (증산도 도전2:17:1~8)
 
 

상제님은‘이 우주가 지금 이번 우주 1년 사계절의 여름철 말에서 가을로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이때 하늘과 땅, 인간과 천상 신명세계에 꽉 들어찬, 이제까지 참혹하게 죽어간 인생들의 원한이 우주적으로 대폭발하려고 한다. 이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린다. 이 문제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오게 되었다.’고 밝혀주고 계신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이 바로 이 우주 역사의 결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직접 오신다! 이것이 바로 증산도 소식이요, 증산도의 구원론이다.
 
 천지의 주권자이신 참하나님이 가을의 운수를 타고 인간으로 직접 오심으로써 천지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태모님이 밝혀 주신 상제님의 강세 목적

 


 태모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 상제님께서 이땅에 오시는 것을 이렇게 노래하셨다.

 

하루는 태모님께서 노래를 부르시니 이러하니라. “오셨네, 오셨네, 상제(上帝)님이 오셨네. 주조(主祖)님이 오셨네, 열석 자로 오셨네. 苦海蒼生疾濟來(고해창생질제래)요 萬障千碍壁破來(만장천애벽파래)라 世間種罪容赦來(세간종죄용사래)요 至利長樂方便來(지리장락방편래)라.

고해에 빠진 창생 질병에서 구제하러 오셨네. 천길 만길 가로막힌 장벽 허물러 오셨네. 세상의 온갖 죄업 용서하러 오셨네. 지극한 평화와 기나긴 영락으로 인도하러 오셨네.”(증산도 도전11:146:1~4)
 
 

3절에 있는 주조(主祖), 주인 주 자, 조상 조자, 천지의 주인이 되시는, 만 생명과 인간과 신명의 큰 조상이 되시는 상제님이 지구촌 세계 창생의 큰 아버지, 조상으로 오셨다, 그리고‘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의 열석 자 기운으로 오셨다는 말씀이다.
 
 

지금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네 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첫째가‘질제래疾濟來’, 창생의 모든 질병을 구제하러 오셨다. 둘째, ‘벽파래壁破來’, 세상의 모든 벽을 부수기 위해, 모든 장애물을 허물러 오셨다. 셋째, ‘용사래容赦來’, 인류의 모든 죄업을 용서하러 오셨다. 넷째, ‘방편래方便來’, 창생들을 지극한 평화와 기나긴 영락으로 인도하러 오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오신 목적이‘질제래, 벽파래, 용사래, 방편래’라는 것이다.

 

 


 
상제님이 동방의 한반도에 오신 이유

 


1.신명을 박대하는 서양 문화의식으로는 인류를 건질 수 없으므로
 지금 우주의 여름철을 지나 가을로 들어서는 개벽, 진짜 대개벽을 맞이했다. 그런데 불교 기독교 등 선천 성자들의 가르침으로는 이 문제를 끌러낼 수 없다. 대개벽의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상제님이 등장하셨다.

 

 

 

 

 


상제님은“천지신명들이‘상제님이 아니시면 이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하므로 괴롭기는 한량없으나 어찌할 수 없이 내가 이 개벽공사를 맡게 됐다.”고 하셨다.
 


상제님이 이 동방 조선문화 속으로 오시기까지는 헤아릴 수 없는,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문제가 있다.
 


상제님은 먼저 서양 기독교 문화의 심장부인 바티칸시티 베드로성당 천개탑에 내려오셨다. 거기서 동양에 비해 수백 년 앞서 있는 근대문명의 변혁의 물결을 직접 보시고, 서구 문화의식으로는 인류를 건질 수 없다는 걸 확인하신다. 서양은 신명을 박대해서 천지에서 불평줄“시∼”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서양의 종교문화를 보라.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하며, 중세시대에는 여자를 사탄으로 몰아서 천만 명 이상을 죽였다. 기록에 따라 수치가 약간씩 차이는 나지만 그렇게 많은 여성들을 죽였다. 그러니 그런 문화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제님이 이 동방 땅에 오셨다.
 
 


  2 정해져 있는 대자연의 섭리에 의해


상제님은 섭리적으로, 자연의 이법으로 이 땅에 오시게끔 정해져 있다.
 

상제님은‘이 동토(東土)와 인연이 있다’고 하시며 동(東)을 참으로 중요하게 여기셨다. 지리(地理)를 그렇게 강조하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실 때면 고개도 동쪽으로 먼저 돌리시고, 항상 첫걸음을 동쪽을 향해 내디디셨다.


 
 

이 동東을『주역』에서는 동북 간방(艮方)이라 하고 요즘 말로는 극동 아시아라고 한다. 동방의 역(易) 철학에서는 하늘보다 땅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본래 생성(生成)이라는 말이 천생지성(天生地成), 하늘은 낳고 땅은 이룬다는 말에서 나왔다. ‘땅에서 모든 것이 완성된다.’이것이 정말로 중요한 동양문화의 자연관이다. 이것을 모르면 동서 문화를 비교할 수 없다.
 
 

그럼 모든 변화가 완성되는 그곳은 어디일까? 바로 간방(艮方)이다. 주역에서‘성언호간(成言乎艮)’이라고 했다. ‘동북 간방에서 모든 동서 성자들의 말씀, 구원의 약속이 이뤄진다.’는 말이다. 이것이 주역의 결론이다.
 

 


 이러한 동북 간방 땅의 한국에 대해 태상종도사님께서 지리학적으로 여러 차례 말씀을 해주셨다. ‘한국은 지구의 생명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혈 자리다. 지구의 혈이 바로 한반도다. 먼저, 백두산을 주산으로 하여 좌측으로는 일본이, 우측으로는 중국 대륙이 각각 좌청룡, 우백호가 되어 한반도를 감싸고 있다. 그리고 아래 타이완 해협이 물이 빠지는 파(破)에 해당하고, 저 바깥으로 7억이 사는 아프리카 대륙이 외백호요, 아메리카 대륙이 외청룡으로 또 한 번 크게 감싸고 있다. 내·외 청룡, 내·외 백호가 각각 음양 짝이 되고, 남반구에 있는 호주 대륙이 안산(案山)이 되어 지구의 혈, 중심 핵 자리인 한반도를 완전히 감싸고 있다.’라고.
 
 지리학의 이러한 이치에 따라 하나님이 이 한반도로 오셨다.
 
  

3 조선민족이 신명대접을 가장 잘하므로


상제님이 우리 동방 한민족으로 오시게 된 것은 조선 민족의‘신을 섬기는 문화’때문이다. 사실 인류 문화사에서 한민족처럼 신을 잘 섬기는 민족이 없다. 물론 서양에서는 유대족이 하나님을 참으로 잘 섬긴다. 그런데 사실 그들도 본래는 다신(多神) 풍속에 길들여져 있었는데 점점 유일신 문화로 변화된 것이다. 어쨌든 기도도 잘하고 자기들의 하나님만큼은 기막히게 잘 섬기는 신앙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섬기는 문화’에서 그들보다 역사적으로 더 뿌리 깊은 민족이 동방의 우리 한민족이다. 우리 민족은 인류 역사상 인간이 체험했던, 삶을 이롭게 하는 모든 신들을 다 수용하여 섬기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국조가 됐든, 조상선령신이 됐든, 한 지역의 수호 신명이 됐든, 또 비를 내려 주는 우사 신명, 바다의 용왕, 칠성신, 산신이 됐든, 자연신이 됐든 인격신이 됐든 그렇게 잘 섬긴다.
 
 또한 우리 조선민족은 신도세계에 관한 한,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고, 신명을 잘 타는 민족이다. 문화도 신교문화다. 그게 일본에 건너가 신도(神道)가 된 것이다.
 
 

이 지구촌의 갖가지 영성문화, 종교문화가 다 우리 문화에 들어와 있다. 하지만 서로 크게 부딪히지 않는다. 논쟁 정도야 하지만 기독교인들과 불교인들이 서로 총칼 들고 싸우는 게 없다.


 
 상제님 말씀을 보라.“ 이 세상에 조선과 같이 신명(神明) 대접을 잘하는 곳이 없으므로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각기 소원을 따라 꺼릴 것 없이 받들어 대접하리니 도인(道人)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천하사(天下事)만 생각하게 되리라.”(道典2:32:2∼4)
 
 

한민족은 동서의 모든 민족과 종교에서 섬기는 신들을 다 포용할 수 있는 민족이다. 그래서 신관 통일이 가능하다. 동방 한민족은 이 우주의 지고신인 아버지 하나님, 상제님뿐만 아니라 모든 신들을 다 섬겨 왔기 때문에 신명들이 너무도 감사해서 이 조선 땅으로 다 모여들었다. 천지 안의 모든 신명들이 하나님 사업에 수종들어 가을 개벽기에 인류를 건지기 위해, 상제님이 오신 이 땅에 모여 들었다는 말씀이다.
 


 요컨대 모든 신명들을 잘 섬겨온 우리 민족의 보은 줄을 따라서, 그 신명들을 다스리시는 통치자 하나님, 상제님께서 이 땅에 강세하시게 된 것이다.
 
 

4 남조선 도수에 의해


 상제님께서 서양이나, 아프리카, 중동이 아니라 동방의 땅 한반도로 오신 것, 이것은 바로 남조선 도수다! ‘만국활계(萬國活計) 남조선(南朝鮮)’, 일만 나라의 살 법방은 오직 조선의 남쪽에 있다.
 


 남조선 도수는 단순히 남북 분단 도수가 아니다. 남북 분단은 남조선 도수의 시작일 뿐이다. 남조선 도수의 마무리, 실제 끝매듭은 가을개벽 상황에서 남북 상씨름이 불붙으면서 전 세계가 한가족 문화권으로 다 통일되는 것이다.
  
 

5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한민족을 건지시기 위해


 또한 상제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140여년 전, 당시의 역사적 현실 때문에 상제님께서 조선으로 오시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전』5편 4장을 보면, 상제님께서“이제 동양의 형세가 누란(累卵)과 같이 위급하므로 내가 붙들지 않으면 영원히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또 5편 164장에서는 “조선 강토가 서양으로 둥둥 떠 넘어가는구나.” 하시고, 377장에서는“동양 기운이 떠내려간다, 빨리 당겨라! 동양이 서양으로 떠밀려 가느니라.”고 하신다.
 


 19세기 후반, 서양 제국주의 열강들은 동남아시아, 중국을 거쳐 동북아의 조선으로 몰려들었다. 미국, 영국, 독일, 불란서 등 서구 열강과 동양의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에 의해 동북아의 작은 땅 조선은 인류 역사상 새로운 분쟁의 중심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형세를 상제님은 계란을 쌓아놓은 것 같이 위급하다고 하시며,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한민족을 건지시기 위해 조선 땅으로 오시게 되었다.
 
 
 

6 한반도는 종교문화의 뿌리인 신교의 나라이므로


문화사적인 배경으로 볼 때도 상제님은 우리 한국 땅에 오시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근원을 찾으신다. 역사의 근원, 문화 생성의 근원, 신앙의 뿌리를 찾아 머무시는 분이다. 상제님께서 당신이‘이 동토(東土)와 인연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인연이란 과연 무엇일까?
 


 조선은 상제님을 신앙하는 상제문화의 시원국가이다. 즉 우리 조선은 유불선, 기독교, 도교 등 여러 세계 종교의 시원문화가 되는 신교(神敎)의 종주국이요, 그 신교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동방의 유일한 주인공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 민족은 인류의 뿌리문화인 신교문화의 맥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지만 유불선, 기독교 등 인류의 줄기문화, 제2의 종교라 할 수 있는 세계 종교를 신앙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지금에 와서는 한국인 중에 신교문화를,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상제문화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상제님이 누군지 아세요? 상제라는 말 들어봤어요?”하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백에 하나, 천에 하나 있을까 말까다. ‘상제’라 하면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믿는 신, 중국 사람들이 섬기는 신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 잃어버린 상제문화를 회복하려고 한 역사적인 사건이 조선 말에 있었다. 바로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왕 고종임금이 1897년에 지금의 조선호텔 자리에 원구단을 쌓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린 것이다. 그때 나라 이름을‘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연호를 광무로 선포하면서 고종은 황제로 즉위하였다. 이로써 상제문화를 국가적 차원에서 회복하였음은 물론이요, 천자국 즉‘상제님께 제를 올릴 수 있는 천자가 다스리는 나라’라는 위상을 되찾게 되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상제님은 인류 문화사의 뿌리, 신교문화의 뿌리, 상제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오신 것이다.
 

 그러면 왜 그러셨을까? 답은 오직 하나, 가을 문화를 출산하기 위해서다. 초목은 뿌리를 바탕으로 줄기가 뻗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우주의 창조 법칙이다. 인류문화도 이와 같다. 문화의 뿌리를 복원하지 못하면 결코 문화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인류의 통일문화, 가을의 결실문화, 열매문화를 출산할 수 없다. 그래서 서교에서“the Father who is coming”,‘ 장차 오실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하신 그 하나님이 인류 뿌리문화의 주인 나라로 오신 것이다.

 


 
 이 땅에 오실 수밖에 없는 상제님


 이처럼 증산 상제님께서 동방 조선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 한민족이 동서 문화를 통일할 수 있는 뿌리문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사를 보면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이 됐지만, 사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주로 그리스 사람, 헬라인이었다. 기독교 문화의 뿌리는 중동의 유대 문화였으며, 그 뿌리는 바로 유대인들의 시조 아브라함이 살던 지금의 이라크 땅, 즉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수메르 문명이다. 수메르 문명 또한 검은 머리의 동방 사람들의 문화로부터 왔으며, 그 수메르 문명은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의 동방 배달 문화와 직접 연관이 있다.
 
 

『도전』1편 1장을 보면, ‘한민족은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시대가 지난 후 열국시대 이래 중국 한족(漢族)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그 상처가 심히 깊더니, 상제님께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道)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시니라.’(道典1:1:7∼9) 하는 구절이 있다.


 
 우리 한민족의 국통은 환국-배달-조선-북부여-고구려-고려, 마지막 왕조 조선, 상제문화를 다시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한 고종 황제의 대한제국,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왔다.
 


 우리 동방 한민족 신교의 토양에서 유불선·기독교의 강력한 신앙 문화가 꽃피었기 때문에, 뿌리·줄기 문화시대를 지나 인류문화의 통일·결실기를 맞아 열매문화, 보편적 구원의 진리를 열어 주시기 위해 상제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리하면, 상제님은 단순히 서양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당할 위기에 처한 한민족을 먼저 건지시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연 섭리적인 이유, 지리적인 이유, 신도 차원의 이유, 문화사적인 이유 등 총체적인 이유 때문에 조선 땅으로 오신 것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진리의 해답을 꼭 찾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무료책신청 여기를 꾹 눌러주세요. ^_^

클릭 ->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