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태그의 글 목록

중국과 일본에 의한 한韓민족의 역사 왜곡

동북아 5대 역사 조작극 - 일제 식민사관의 한국 고대사 역사 조작 한사군 한반도 설

『환단고기』 - ① 한무제(漢武帝) 때 사관 사마천 사기에 없는 한사군 한반도 설

 

 

 

 

 

 

 

 

 

 

 

 

흔히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동양 최고의 역사서라고 합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명을 받고 중국의 역사를 기록한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중국의 시조라 받들고 있는 헌원으로부터 한 무제에 이르기까지 약 3천 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마천한 무제에게 말 한마디 잘못하여 죽음 직전에까지 갔었고, 결국 궁형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겨우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사마천에게 한 무제는 절대 권력을 가진 황제이며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사마천 사기史記에는 한사군 한반도 설의 역사가 없다.

 

 

사마천에게는 중국의 과거 역사도 중요했겠지만, 무엇보다 현 황제에 대한 치적을 돋보이게 기술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입니다. 그런 사마천의 사기에 일제 식민사관이 만든 한사군 한반도 설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사기의 첫 페이지부터 조작한 역사를 기록한 사마천이 자신의 생살(生殺)여탈권을 쥐고 있는 한 무제의 소위 고조선 정벌 낙랑, 임둔, 현도, 진번의 한사군을 사기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은 일제 식민사관이 만든 한사군 한반도 설의 실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사군 한반도 설은 일제 식민사관이 만든 대표적인 한국 고대사 역사 조작극입니다.

 

 

 

 

 

 

 

 

 

 

 

 

한 무제가 위만 정권을 치기 위해 좌장군 순체로 하여금 5만 명을 거느리고 육상으로 공격하고, 누선장군 양복으로 하여금 7천 명의 수군을 거느리고 위만 정권을 협공하게 됩니다.

 

 

순체와 양복 두 장수는 서로 공을 다투다가 시간만 끌게 되고 한 무제는 순체와 양복 두 장군을 사형에 처합니다.

순체는 사형을 당했지만, 양복은 사형 직전 돈을 써서 목숨을 부지하였으나 평민이 됩니다.

한나라는 사신까지 보냈지만 역시 실패하자 위산과 공손수 등 사신으로 갔던 사람마저 죽여버립니다.

 

한 무제가 전쟁의 선봉장이었던 두 장군과 사신들을 죽였다는 것은 당시의 동북아 국제정세에서 한나라의 위급한 형세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무제는 힘으로 위만 정권을 쓰러트리지 못하였습니다.

위만 정권의 지도층의 분란과 내부 교란 책으로 위만 정권은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이때 한 무제는 위만 정권의 몰락에 기여한 사람을 각기 제후로 임명하게 됩니다.

 

 

 

 

 

 

 

 

 

 

 

 

사마천 『사기』에 나와 있는 역사의 진실

 

 

 

위만조선은 일제 식민사관으로 조작한 한국의 고대사입니다.

 

위만 정권은 기원전 108에 멸망합니다.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는 그보다 근 20년이 지난 서기전 91년경에 완성됩니다. 

사마천은 한漢나라의 사관으로 한나라와 위만 정권과의 전쟁을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한나라와 위만 정권과의 전쟁을 사마천의 사기 조선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양군구욕장솔막후의兩軍俱辱 將率莫候矣,

(한漢나라 장수 순체와 양복의 육군과 수군) 양군이 모두 치욕을 당하였고, 장수들 중 누구도 제후로 봉해지지 않았다."

 

"이고수정조선위사군以故遂定朝鮮爲四郡, 이로써 조선(위만정권)을 평정하고 사군을 설치하였다.

삼은 홰청후(澅淸侯) 봉하고, 한음은 추저후(萩苴候) 봉하고, 왕겹은 평주후(平州侯)로 봉하고, 우거의 아들 장강은 기후(幾侯)로 봉하고, 최는 아버지가 도중에 죽었으나 큰 공이 있어 온(열)양후(溫(涅)陽侯)로 삼았다. (조선 5군 설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나라가 전쟁에서 참패했다는 의미이며, 한사군漢(四郡)이 아니라 위만 정권 몰락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제후로 봉한 5군입니다. 그리고 조선 5군은 하북성, 산동성, 산서성 지역에 있었으며, 또한 한漢나라의 직할령(直轄領)이 아니라 자치령(自治領)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이 만든 한사군 한반도 설을 근거로 중국은 동북공정을 추진

 

 

사마천의 『사기』가 세상에 나오고 근 2백 년이 지나 반고班固(32~92년)한서漢書가 나오게 됩니다.

반고의 『한서』에는 한 무제가 조선(위만 정권)을 멸망시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기』와 한서』의 기록 등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학이 조작한 역사 한사군 한반도 설의 근거로 이용니다.

 

한서 무제본기에는 4군

한서 지리지에는 2군

한서 오행지에는 3군

당나라 장수절이 저술한 사기의 주석서 사기정의에는 2군으로, 남송 배인의 『사기집해』에는 4군으로 나옵니다.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장수절의 사기정의』, 배인의 『사기집해』 등 모든 기록이 일관성도 없고 또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일제 식민사관이 조작한 역사 한사군 한반도 설의 실체이며, 조작한 한사군 한반도 설을 바탕으로 중국은 고대 한반도가 중국의 영토였다고 주장하며 국가가 주도하는 역사 왜곡 프로젝트 동북공정을 추진하였습니다.

 

 

 

 

 

중국과 일본에 의한 한韓민족 역사 왜곡

동북아 5대 역사 조작극 - 사마천 『사기史記』 금살치우(擒殺蚩尤)

중국의 시조 황제 헌원과 『환단고기』의 배달국 치우천황

http://gdlsg.tistory.com/1407

 

 

 

 

 

 

 

 

 

 

환단고기 해제에서 전하는 한사군 한반도 설

 

 

 

『환단고기』 완역본 해제 361쪽

 

낙랑국은 낙랑군과 다르다.

최숭이 세운 낙랑은 요서 지역에 있는 자신의 고향, 낙랑에서 이름을 따 왔다.

이 낙랑은 번조선 수도 왕검성이 있던 지금의 하북성 창려현 지역으로 비정 된다. 이에 반해 낙랑군은 한 무제가 번조선을 패망시키고 그곳에 설치하려 했던 4군(四郡) 중의 하나이다. 심백강은 낙랑군이라는 지명이 서요하 상류인 요락수(饒樂水)(시라무렌 강)와 현재의 대능하인 백랑수(白狼水)에서 나온 것이라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낙랑군은 현재의 난하와 요하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심백강 황하에서 한라까지 56~57쪽)

 

 

 

『환단고기』 완역본 해제 365쪽

 

한사군에 대해 2009년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漢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지배하고자 하였으나, 토착민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그리하여 그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결국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소멸되었다." (34쪽)라고 서술한다. 한사군 설치를 다소 애매하게 표현한 이 서술은 '한사군이 설치되었으나 고조선 유민의 반발에 결국 철폐되었다.'로 이해된다.

 

 

 

『환단고기』 완역본 해제 562쪽

 

한서 무제본기에 중국은 한 무제가 의도하였을 뿐인 한사군이 요서 지역에 실제로 설치된 것으로 기록하였다.

일본은 그 한사군을 한반도 북부로 옮겨 한국사를 대륙사에서 반도사로 축소시키고 한국사가 위만조선에서 한사군으로 이어진 것으로 설정하였다.

일본의 한사군 재在 한반도 설을 중국이 동북공정에 악용하여 고대 중국의 강역을 한강 이북 지역까지 확장하였다.

서양 교과서도 중국의 동북공정에 동조하여 한나라와 당나라 때 영토를 한반도 북부까지 표시하고 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Unlimited☆ 2016.05.27 0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2. 죽풍 2016.05.27 0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사군 한반도설에 대해 잘 알아 갑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

  3. 생명마루한의원 일산점 2016.05.27 1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활기차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4. 뉴클릭 2016.05.27 14: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세요 ^^

  5. Deborah 2016.05.27 15: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공부 잘하고 갑니다. 멋진 하루 되세요

  6. 행복생활 2016.05.27 1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녀갑니다 ㅎㅎ 좋은 하루가 되셔요~

  7. koreanuri@hanmail.net 2016.08.23 1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아주 좋은 내용입니다.

    알긴 앎니다.
    사마천의 사기만 해도 수박 겉핥기로 여기 저기 넘기며 읽긴 읽었습니다.
    또 한사군에 대한 기록이 사기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석연치 않습니다.
    안개속인듯, 아는 듯 모르는 듯 지냅니다.
    님이 쓰신 글을 보니 이젠 다른사람들에게도 확실히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님의 이 글을 퍼가도 되는지요?
    일부 사진과 글을 내가 쓰고 게시하는 다른 글에 사용하여도 되겠습니까?
    (별도의 승락이 없더라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단 사용금지 요청을 하면 언제고 삭제하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중국과 일본에 의한 한韓민족 역사 왜곡

동북아 5대 역사 조작극 - 사마천 사기史記 금살치우(擒殺蚩尤)

중국의 시조 황제 헌원과 환단고기의 배달국 치우천황

 

 

 

 

 

 

 

 

 

 

 

 

전한(前漢)시대에 쓰인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흔히 동양을 대표하는 역사서라고 말합니다.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五帝本紀)로 시작하며 첫 페이지에는 중국 한漢족의 조상, 중국의 역사 시조로 받들어 온 황제(黃帝) 헌원(軒轅)이 등장합니다.

 

 

지구촌 대다수 학자가 동양을 대표하는 역사서라고 말하는 사마천 사기는 첫 페이지부터 역사를 왜곡과 날조로 시작합니다.

 

사마천 사기는 한나라 무제(武帝)가 북부여를 침공하였다가 북부여 고두막한(동명성왕) 단군에게 참패한 후 돌아가 사관(사마천)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중국의 역사 시조 황제 헌원과 배달국 14대 자오지 천황(치우천황)은 지금으로부터 약 4,700여 년 전 실재한 중국과 한韓민족의 조상입니다.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는 헌원의 출생과 성장 배경을 짧게 기록하고 배달국 치우천황과 한漢족 황제 헌원과의 탁록대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북아의 주도권 다툼 전쟁 탁록대전을 사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치우가 난을 일으켜 황제의 명을 듣지 않자 이에 황제는 제후들로 군대를 징집하여 탁록의 들에서 싸워 드디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중국 시헌원과 치우천황의 탁록대전의 핵심은 '금살치우(擒殺蚩尤, 치우를 잡아 죽였다)'입니다.

 

 

 

 

 

 

 

 

 

 

 

 

중국 한漢족의 역사 시작, 중국의 시조 헌원이 난을 일으킨 불의한 치우천황을 사로잡아 죽였다고 기록하였는데, 사마천의 『사기』 주석서 가운데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삼가(三家) 주석(사기삼가주史記三家注)에는 '금살치우'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남송 배인의 사기집해史記集解, 당나라 장수절의 사기정의史記正義, 당나라 사마정의 사기색은史記索隱에 나온 치우천황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송 배인의 사기집해史記集解에는 '응소왈치우고천자(應曰蚩尤古天子), 응소가 치우는 옛 천자라고 말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당나라 장수절의 사시정의史記正義에는 '치우 군대가 금속 투구를 머리에 쓰고 큰 쇠뇌(큰활) 등 각종 병장기를 갖추고 출전하여 그 위엄을 천하에 떨쳤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사마정의 사기색은史記索隱에는 '관자는 치우가 노산(盧山)의 금(金, 쇠)을 얻어 다섯 가지 병기를 만들었다.', '치우가 군사를 일으켜 황제를 토벌했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치우가 난을 일으켜 황제가 사로잡아 죽였다.'라는 금살치우의 내용과는 전혀 상반되는 기록입니다.

 

 

 

 

 

 

 

 

 

 

 

동북아 주도권을 둘러싼 배달국 치우천황(자오지 천황)과 중국의 시조 황제 헌원과 탁록대전의 진실은 한漢족의 우두머리였던 헌원이 배달국 치우천황과의 전쟁에서 이겨 동방의 진정한 천자(天子, 황제皇)가 되려는 욕심에서 군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탁록대전은 10년 전쟁 끝에 치우천황께서 헌원을 이겨 제후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진실입니다.

 

 

 

사마천 사기에 기록된 '금살치우擒殺蚩尤'라는 대목은 역사적 사실을 정반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한 사마천 사기는 중국의 시조 황제 헌원을 동북아의 주도권을 쥔 천자(天子)로 만들어 중국 역사의 시작이 동북아의 중심 나라였다고 못 박기 위해 '금살치우'라는 역사 조작이 필요했습니다.

 

 

 

 

 

 

 

 

 

 

 

동북아의 주도권을 쥔 천자(天子)로서 병법의 시조이며 한韓민족의 위대한 선조 배달국 치우천황의 존재를 말살하기 위해 사마천은 사기를 역사를 왜곡하였습니다. 치우천황을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진 인물, 동두철액(銅頭鐵額)으로 묘사하는 등 인격 말살을 한 뒤 금살치우로 역사 왜곡의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중국의 시조, 중국 역사의 시작, 중국 한漢족의 조상 헌원은 대요(大堯, 요임금), 창힐(倉詰) 등과 함께 동방 천자의 나라 배달국의 제후국이었습니다. 

 

 

배달국 14대 치우천황(자오지 천황)의 국사(國師)이며, 동방의 대선인(大仙人) 자부 선생에게 배달국의 신교(神敎)문화와 철학을 받아 탁록에서 서방 한漢족의 문화 체계를 세웠습니다. 탁록은 중국 한漢족 문명과 역사의 실제 발원지입니다.

 

 

 

 

 

 

 

 

 

 

사마천 『사기』에 헌원이 치우천황을 사로잡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지구촌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배달국 치우천황을 중국 한漢족의 조상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배달국 신시 시대 말기에 치우천황이 계시어 청구(靑邱)를 널리 개척하셨다.

환단고기』 - 성기

 

 

치우천황(14세 환웅, 자오지환웅)께서 영토를 개척하고, 구리와 철을 캐어 무기를 제조하는 한편 병사를 훈련시키고 산업(興産)을 일으키셨다.

환단고기 - 삼성기

 

 

 

 

 

 

 

 

 

 

 

14세 자오지환웅이 계셨는데, 이분은 신이한 용맹이 매우 뛰어났다. 구리와 철로 투구를 만들어 쓰고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며, 구치를 제작하여 광석을 캐내고 철을 주조하여 무기를 만드시니 천하가 크게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는 이분을 치우천황이라 불렀는데, 속언에 치우는 '뇌우가 크게 일어 산하가 뒤바뀐다.'는 뜻이다.

환단고기』 - 삼성기

 

 

 

치우(14세 환웅)천황이 등극하여 구치(九治, 채광 기계)를 만들어서 구리와 철을 캐시고, 철을 단련하여 칼과 창과 큰 쇠뇌를 만들게 하셨다. 사냥을 가거나 전쟁을 할 때 이것에 신처럼 의지하니, 주위 모든 부족이 대궁의 위력을 몹시 두려워하여 소문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진 지 오래다.

환단고기』 - 신시본기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中

 

 

14세 자오지천황(치우천황)은 약 4천7백 년 전 요서를 넘어 산동성과 그 주변을 물론 서쪽으로 탁록까지 진출하여 광활한 영토를 개척한 성웅(聖雄)이다.

 

치우천황의 재위 초기, 신농국이 8대 유망(楡罔)에 이르러 쇠퇴의 길을 걷자, 서방으로 출정하여 지금의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을 배달의 영토로 흡수하였다. 그런데 그 틈을 타 서토 지역의 일개 제후였던 헌원이 치우천황을 밀어내고 동북아의 천자가 되려고 일어났다.

 

 

이에 급히 말머리를 돌려 돌아온 치우천황은, 탁록 벌판에서 헌원의 군대와 맞서 10년 동안 73회의 접전을 치러 마침내 헌원을 굴복시키고 제후로 삼았다. 나아가 넓어진 강역을 다스리기 위해 도읍을 백두산 신시에서 서토에 가까운 청구(靑邱, 현 대릉하 유역)로 옮겨 배달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법력과 위용을 떨친 치우는 배달 이후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은 물론 중국 백성들에게까지 숭배와 추앙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진한 시대 중국인들은 해마다 10월이면 치우천황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그때마다 붉은 기운(치우기蚩尤旗)'이 천황의 능에서 하늘로 뻗쳤다고 한다.

 

이에 대한 기록은 환단고기 - 태백일사, 규원사화 등 국내 사서만이 아니라, 사기』, 천관서』, 사시집해 등 중국 기록에도 나타난다.

 

 

중국 백성들만이 아니라 중국 황제들도 치우천황을 숭상하였다.

초한전으로 유명한 한 고조 유방은 치우천황 전각을 지어 제사를 지내고 싸움에 나가, 진秦의 수도 함양을 평정하였다. 4년 후 진나라 땅을 완전히 평정하였을 때, 유방은 장안(長安)에 치우의 사당까지 지어 치우천황을 돈독히 공경하였다.

(『환단고기 - 태백일사)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죽풍 2016.05.17 0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나라든지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역사왜곡을 하겠지요.
    잘 보고 갑니다. ^^

  2. 아쿠나 2016.05.17 0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 가구요~
    오늘은 한때 미세먼지가 나쁘다고 하네요 ^^

  3. 훈잉 2016.05.17 1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다양하네요 ㅎㅎ 잘보고갑니다 즐거운하루보내세요

  4. 생명마루한의원 일산점 2016.05.17 1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올려주신 소중한 글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5. 뉴클릭 2016.05.17 1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알아 갑니다 ^^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ㅎㅎ

  6. 유라준 2016.05.17 1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역사를 왜곡하다니, 정말 나쁘네요.
    우리 역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7. 행복생활 2016.05.17 1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녀갈게요~ 잘 보구 갑니닷!!

중국 최초의 통사(通史)

사마천의 『사기(史記, 태사공서太史公書)』

 

 

 

 

 

 

중국 한(漢)나라 사마천이 평생을 공들인 필생의 역작이라 불린 『태사공서(太史公書)』는 중국의 삼국시대 이후 붙여진 이름이 더 유명하다. 중국 역사서의 대명사로 불린, 바로 사마천의 『사기(史記』)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본기(本紀)」, 「표(表)」, 「서(書)」, 세가(世家), 「열전(列傳)」 등 총 5부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사기』는 황제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존경받는 성인에서 지탄받는 악인까지, 역사를 움직인 영웅에서 이름없는 무명의 서민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흥망과 인간 군상의 인생역정 등을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마천은 전한 시대 중국 섬서성 한성에서 출생하였다.

집안 대대로 주나라 사관(史官)을  지낸 사마 가문의 후손이었다. 집안의 내력과 가풍이 역사와 관련이 깊었고, 또 아버지 사마담이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으로서 그 직책이 천시되고, 옛 기록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마음 때문에 아들 사마천을 어렸을 때부터 의도적으로 역사가로 만들기 위해서 키웠다.

 

아버지 사마담이 사망한 후 사마천은 아버지와 같은 태사령(천문을 관측하고 역을 만들어 문헌 등을 관리하는 직책)이 되었다.

역사서를 집필하기 위해 시, 서, 춘추, 전국책 등과 당시 궁중에 있던 상소문, 각종 서적, 포고문 등의 자료를 공부하고 관련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다.

 

 

 

 

 

 

동방의 강력한 제국으로 우리 한민족의 국가였던 북부여를 침공한 중국 역사상 가장 싸움을 잘한 황제로도 불린 한무제는 동명성왕이라고도 불리는 북부여 고두막한 단군에게 참패를 당하고 도망하였다.

 

 

 

 

 

이후 절치부심하던 한무제 유철은 한민족과 같은 동방족이었던 북방의 강자 훈족(중국이 붙인 이름, 흉노匈奴-흉악한 노예)과 전쟁을 벌인다. 한무제 유철은 훈족(흉노족)과의 전쟁에서 대패한 패배의 책임을 묻게 된다. 이릉은 5천명의 군사로 10만 훈족 기마병과 전투에서 1만 여명의 적을 살상하는 등 악전고투 끝에 중과부적으로 패배하고 포로가 되었다. 훌륭한 전투를 한 장군 이릉을 단죄하는 한무제에게 사마천은 이릉을 적극 변호하다가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당시 제도가 사형을 면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대부호도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인 50만 전의 벌금을 내거나, 또 하나는 궁형이라는 형벌로 생식기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사마천은 치욕을 견디며 궁형의 형벌을 받고 2년의 나머지 형기를 마친 후 환괸이 된다.

 

 

 

 

 

 

한무제 유철의 곁에서 환관생활을 하며 다시 신임을 얻게 되고, 이후 중서령이라는 환관 최고의 직책에까지 오르게 된다.

한무제의 옆에서 문서를 다루는 직책인 중서령으로 10여 년간의 산고 끝에 나온 책이 바로 사마천의 사기(史, 태사공서太史公書)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개그콘서트★ 2015.01.24 05: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마천도 유명한 인물중에 한사람이죠 도생님 옆분 여성케릭터요

  2. 아쿠나 2015.01.24 06: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사공서에 대해서 알아보시는 분들에게도 좋은 글이구요~
    잘보고 갑니다 ^^ 행복한 주말되세요~

  3. 청결원 2015.01.24 15: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주말동안 날씨가 포근하다니
    야외로~~ GO! Go!
    행복한 주말 되세요!

  4. 유라준 2015.01.24 2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대단한 사람이죠.
    그런 치욕을 견디고 삶을 택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물론 목숨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는 합니다만...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5. 죽풍 2015.01.25 2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시 들렀다 갑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

사마천 『사기(史記)』 자객(刺客) 열

- 원수마저 감동시킨 암살자 예양, 지조 있는 선비로 추앙받다.

 

 

 

 

 

 

사람이 하는 행위가 아무리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할지라도, 또 그 명분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남을 헤치면 모든 사람에게 지탄을 받는다.

 

 

중국 황제(皇帝)의 명을 받아 사마천이 저술한 중국 역사서 『사기』에는 진나라 이전 춘추전국시대 형가, 전제, 예양, 조말, 섭정 이들 5명의 자객에 관한 내용을 담은 「자객 열전」이 있다.

 

무왕이 주나라(서주西周)를 창업하고 300여 년 후 동주(東周)와 함께 춘추시대(제, 진, 초, 오, 월나라)가 시작되고, 또 300년 후에 전시시대(제, 초, 진, 연, 위, 한 조나라)가 시작하게 된다. - 이른바 춘추전국시대

 

 

 

 

 

 

예양은 춘추시대 말기 진(晉)나라 사람이다. 당시 6경(卿, 여섯 명의 고위 관료)이 서로 대립하며 경쟁을 하고 있던 때였다.

진(晉)나라는 주나라 무왕의 아들인 당숙우가 하사받아 제후국으로 건국된 나라였다.

예양은 먼저 범씨와 중행씨 밑으로 들어가 주군으로 섬겼으나, 두 사람은 예양의 가치를 몰라보게 된다.

 

 

 

 

 

 

결국, 예양은 진나라를 좌지우지하던 세 가문 조씨, 한씨, 위씨와 필적할만한 지백(지백, 6경의 한 명)씨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다.

예양을 가치를 알아본 지백은 그를 아끼고 중용하며 극진히 대우하였다.

 

 

 

 

 

 

지백은 진나라가 조, 한, 위 세 가문으로 쪼개질 것 같아 먼저 범씨와 중행씨를 제거하고 조씨의 수장 조양자를 공격하게 된다.

그러나 우, 한씨와 연합한 조양자에게 대패한 지백은 목숨을 잃게 되고 가족까지 몰살 당하고 영토는 조, 한, 위씨 세 사람이 나누어가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예양은 산속에서 주신의 주군인 지백의 혼백을 위로하며 그 앞에서 복수를 다짐하며 맹세를 한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고, 여인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이를 위해 얼굴을 가꾼다."

 

 

 

 

 

 

 

첫 번째 암살 시도는 어떤 사람이든 무장을 하지 않는 곳이며 또 화장실을 안 가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여 벽 바르는 일을 하며 화장실에서 암살기회를 엿보게 된다. 그러나 조양자에게 들켜버리고 만다. 부하들에게 죽을 위기에 처한 예양을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조양자였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주군을 위한 충성심과 의리에 감복한 조양자는 의(義)로써 복수를 하려 한 천하의 현인이다.'라며 예양을 살려주게 된다.

 

 

 

 

 

 

예양은 이름도 바꾸고 몸에 옻칠하여 변장을 하고 숯가루를 먹어 목소리까지 변조하여 가족까지 모를 정도로 위장하여 기회를 다시 엿보게 된다.

 

 

 

 

 

두 번째 거사를 앞두고 친구를 찾아간 예양은 주군에 대한 복수의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다. 조양자의 신하가 되어 편히 살든가 아니면 조양자의 신하로 들어가서 복수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친구의 종용에 "신하로서 주인을 죽이는 것은 두 마음을 품은 것으로 의(義)가 아니며, 나 살자고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은 주군을 위해 복수하지 않는다면 신하된 자로서 어찌 얼굴을 들고 세상을 살 것이며. 신하된 자가 어떻게 주군을 섬겨야 되는지를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는 말을 하고 거사를 시행하게 된다.

 

 

 

 

 

 

조양자가 외출할 때 지나는 집앞의 다리 밑에서 잠복하던 예양은 다리를 지나던 말이 갑자기 놀라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다리밑을 조사하니 숨어있던 예양은 붙잡히게 된다. 조양자 앞에 끌려온 예양을 호되게 꾸짖이며 "범씨와 중항씨를 섬겼다가 지백의 신하로 들어가 그들을 멸망시킬 때는 가만히 있더니 죽은 지백을 위해서는 왜 끈질기게 원수를 갚으려 하느냐"고 물었다.

 

예양은 "범씨와 중항씨는 일반 신하로 밖에 대접하지 않아 그에 맞는 일을 해주고 떠났으나. 지백씨는 나의 진가를 알아서 국사(國士, 뛰어난 선비)로 중용을 해주었다. 신하된 자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양은 지난날 자신을 살려준 조양자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마지막으로 저승에 가서 주군을 뵐 때 원수를 갚고 왔다고 아뢸 수 있도록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주면 옷자락이라도 베고 죽겠다고 한다. (한나라의 왕이 입던 옷은 왕의 권위를 상징)

예양의 의로운 기상과 충심에 감복한 조양자는 자신의 옷을 벗어주게 되고, 예양은 옷을 칼로 세 번 베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사마천의 『사기』 「자객 열전」에서는 이날의 일을 '조나라의 뜻있는 선비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 예양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라고 전하고 있다. 자신의 생존이나 입신출세에 연연하지 않고 주군을 위한 충성심과 의리로 목숨을 버린 예양은 암살자,자객이면서도 지조있는 선비로 남아 있다.

 

 

천하가 혼란하였던 춘추전국시대 작은 나라의 신하였던 예양은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을 실천하며 충(忠)과 의(義)를 실천한 지조 있는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뉴론7 2015.01.17 0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암살하면 일본닌자가 생각나죠 바람의검심도 일본정부 암살자인데 요

  2. 아쿠나 2015.01.17 0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로운 글이네요 ^^
    즐건 주말되세요 ^^

  3. 세상속에서 2015.01.17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암살자 예양에 대해서 많이 배워 갑니다.

  4. *저녁노을* 2015.01.17 18: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하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5. 유라준 2015.01.17 2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하네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도생님의 소개에 다시 한번 감동하며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