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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1.14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2. 2016.11.25 현모양처 신사임당 (1)
  3. 2013.02.22 STB 상생방송- 한(韓)문화 특선 타큐

조선의 학자에 의해 추앙받는 인물이 된 신사임당 신인선과

조선을 넘어 중국과 일본에까지 널리 알려진 허난설헌 허초희

 

 

 

 

 

 

 

 

 

 

 

 

 

신사임당(1504~1551)과 허난설헌(1563~1589)은 모두 조선 중기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반가의 여인이다.

16세기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1536~1584)의 어머니 신사임당과 만고역적이 된 허균(1569~1618)의 누이 허난설헌의 삶은 비슷하면서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모자(母子),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男妹)는 그 사람들의 자질과 인품 등 각자가 가지고 있던 역량과 당대와 후대에 정치적, 학문적 영향으로 추앙의 대상 또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서인의 종주로 많은 후학을 길러 낸 율곡 이이는 어머니 신사임당과 함께 500년 동안 한국을 빛낸 위인으로 남아 있다.

대역죄인이 되어 죽은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의 작품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고, 은밀하게 전해지다가 70여 년이 지나 세상에 다시 나왔다.

 

 

 

 

 

 

 

 

 

 

 

 

신사임당 하면 떠오르는 것은 효성이 지극한 딸, 글과 그림 등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여인, 덕과 인격을 갖춘 바른 여인, 바르고 착한 부인, 훌륭한 아들을 키워낸 방정하고 어진 어머니의 모습이다.

 

 

율곡 이이가 죽은 어머니의 일대기를 기록한 선비행장에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경전에 통달했고, 문장에 능했다고 했다.

『율곡전서』 권18 「선비행장」은 신사임당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자료이며, 또한 모든 기록이다.

「선비행장」 외에 후대에 쓰인 신사임당의 기록은 「선비행장」에 그들의 상상을 덧붙인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조선 중기 이후 서인과 서인에서 갈라진 노론과 소론이 권력을 주도하였다.

율곡 이이의 제자 김장생은 「율곡연보」에도 없는 내용을 추가했고, 율곡 이이 학통을 이은 우암 송시열은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을 같은 반열에 올려놨다. 우암 송시열의 제자로 영의정을 지낸 정호는 신사임당을 여자 중의 군자라고 극찬했다.

 

 

 

서인의 종주로 받들어진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었고, 우러러보는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현대사에서는 심사임당이 마치 현모양처(근현대적 표현)의 표상으로 재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신사임당의 작품은 대다수가 신사임당의 작품이라는 증거는 없고, 전칭작(傳稱作), 즉 신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어 전해진 작품들이다. 근현대사 현모양처로 대표되는 신사임당 신인선은 일본 제국주의와 군사정권, 그리고 그 추종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포장된 작품이며, 조선 시대 신사임당의 모습은 다소 과장됐다고 볼 수 있다.

 

 

 

 

 

 

 

 

 

 

 

 

허난설헌 허초희도 신사임당과 같이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고 총명했다고 전한다.

허균도 율곡 이이 못지않은 천재로 유명하다.

 

허난설헌 허초희는 동생 허균과 함께 오빠 허봉 친구이며 삼당(三唐)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달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스승 이달은 백광훈, 최경창과 함께 삼당시인으로 불리며 당나라 시풍(詩風)의 최고 대가였다.

 

 

 

 

허난설헌은 27살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우라고 유언했지만, 허균은 누나의 작품을 간직한다.

허균은 천재답게 기억을 되살려 누나 허난설헌이 어려서부터 썼던 작품을 글로 써서 가지고 있던 작품에 추가하여 시집을 발간했다. 허균은 1606년(선조 39) 누이의 시집 「난설헌집」을 발간했고, 1608년(광해군 즉위) 중간했다.

 

 

 

 

 

허균은 1608년(광해군 10)에 역모죄로 능지처참 당했다.

대역죄인 허균은 국문(중죄인 신문과정)도 없이 전격적으로 처형됐고,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복권되지 않았다. 

 

조선왕조에서 그 실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두 개의 역모사건이 있다.

바로 정여립 모반사건과 허균 모반사건으로 두 사람은 복권되지 못하고 대역죄인으로 남았다.

 

 

 

 

 

허난설헌 허초희도 역적의 누이였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사라졌고, 그나마 남아 있던 작품도 공개적으로 볼 수 없었다.

1692년(숙종 18)에 동래부(부산)에서 「난설헌집」이 다시 발간되었다.

허난설헌의 작품은 조선과 중국에서 표절과 극찬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혹자는 허균이 기억을 되살려 쓴 허난설헌의 작품이 그녀가 어려서부터 연습하여 쓴 습작(習作)이 있을 수도 있고, 또 허난설헌의 스승은 당나라 시풍의 삼당(三唐)시인으로 불렸던 이달이었기에 허난설헌 작품의 특성상 중국(당나라)의 작품과 비슷하여 표절 논란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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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며 문인과 화가로 활동한

현모양처의 모범이 된 신(申)사임당 신인선

 

 

 

 

 

 

 

 

 

 

 

 

 

 

 

 

조선왕조 5백 년 역사에서 사대부 아녀자로 당호(堂)와 이름 석 자가 모두 알려진 여성은 손가락으로 꼽는다.

조선 시대 여성 중 호(號)와 이름이 가장 많이 알려진 여성은 현모양처의 상징이 된 신사임당 신인선이다.

 

 

 

 

사대부 아녀자에서 왕의 어머니가 된 인수대비(소혜왕후, 1437~1504)는 훈민정음(언문), 한어(漢語, 중국어), 산스크리트어(범어)에 능했고, 유교의 경전뿐만 아니라 불경에도 조예가 깊은 조선 최고의 여성 지식인이었다. 인수대비는 청주 한씨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문인으로 화가로 유명해진 신사임당은 평산 신씨로 본명은 신인선(申仁善, 1504~1551)이다.

당호(堂號)는 스스로 지은 사임당(師任堂)이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누나로도 유명한 문인 허난설헌은 양천 허씨이며 본명은 허초희(1563~1589)다.

당호(堂號)는 난설헌(蘭雪軒)이다.

 

이 밖에도 영조에서 정조 재위 당시 최고의 여성 성리학자로 유명한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3)규합총서, 청규박물지, 빙허각고략 등을 지은 여성 실학자 이빙허각(李憑虛閣, 1759~1824) 등이 있다.

 

 

 

 

 

 

 

 

 

 

 

 

 

 

 

 

조선 왕조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자질과 능력을 발휘한 여성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절대 신사임당 신인선에게 뒤지지도 않았고, 나름 뛰어난 학문과 예술적 소양을 갖춘 여성들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신사임당 신인선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모양처의 모범이 되고, 우리나라 화폐 최고 고액권 5만원 권에 초상이 들어갔을까?

 

 

 

 

 

먼저 현모양처의 개념은 조선 시대에는 없었고 열녀 효부의 여성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남녀가 동등하게 재산권과 상속권을 갖는 사회였다. 우리가 아는 조선 시대 남존여비 사상이 굳어진 것은 그 후대의 일이다.

 

 

 

현모양처는 18세기 서양 자본주의체제에서 형성된 것이 19세기 일본인 마카나 마사나오에 의해 어진 어머니이며 착한 아내로 정의된 개념의 단어다. 일본이 근대화하면서 여성교육의 목표로 현모양처(賢母良妻)를 도입했고, 현모양처의 개념을 조선에 유입시켰기 때문에 현모양처는 일제 식민주의 잔재다.

 

 

 

일제는 광복 직전인 1945년 초 더 많은 지원병과 위안부, 근로정신대 등을 동원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일제와 친일파는 신사임당을 현모양처로 포장하고 조선의 아들딸을 일본제국에 바치는 군국의 어머니로 묘사하였다.

광복 후 위정자들은 신사임당을 포장하여 산업화의 어머니로 만들었다.

 

 

 

 

 

 

 

 

 

 

 

 

 

 

 

대학자 율곡 이이가 천재성을 타고났다고 하더라고 부모나 스승이 그 재능을 알아보고 육성하지 않으면 영재로서 커갈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율곡 이이에게 어머니 신사임당 신인선은 큰 스승이었다.

 

 

율곡 이이는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나 살다가 6살에 한양 집으로 들어갔다.

율곡 이이는 덕수 이씨 본가가 있는 파주와 외가가 있는 강릉을 오갔고, 13세에 진사시 과거에 합격했다.

신사임당 신인선은 율곡 이이가 16세 되던 1551년 48세로 세상을 떠난다.

 

 

 

 

율곡 이이는 어머니 신사임당이 죽자 <선비행장行狀>(곡전서18)을 지었다.

어머니 신사임당을 그리워하며 신사임당 신인선의 일생을 기록한 것이 선비행장이다.

 

신사임당의 출생과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한 <선비행장>에는 경전 통달, 글과 그림 등 온갖 재능에 탁월했고,

자질과 인품이 훌륭했다는 내용의 짧은 글에 사임당이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 두 편도 담겨 있다.

 

 

 

 

 

 

 

 

 

 

 

 

 

 

 

 

신사임당 신인선의 모든 기록은 율곡 이이의 율곡전서18 <선비행장>에서 비롯된다.

이후 김장생과 송시열, 그리고 현대에 나온 신사임당에 대한 기록은 작가가 상상을 발휘하여 덧붙인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알려진 신사임당 신인선에 관한 기록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녀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용인 이씨 사이의 다섯 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19세에 이원수와 결혼한 신사임당의 친정은 강원도 강릉이다.

신혼 초 신사임당의 친정아버지 신명화가 죽자 삼년상을 치르고 3년이 지나 시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신사임당 신인선은 혼인 후 19년을 강릉 친정에 기거하며 가끔 시댁을 오갔고, 38살이 돼서야 시집이 있는 한양으로 올라왔다.

한양에서 10년을 살다. 48세로 세상을 떠났다. 신사임당 신인선의 48년 인생 중 38년을 친정에서 강릉에서 지냈다. 

 

 

 

 

 

 

율곡 이이의 학통을 이은 김장생과 후학 송시열은 신사임당 신인선의 작품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노론으로 예조판서를 지낸 송상기는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을 동일시하기까지 했고, 권상하, 정호, 신석우 등 노론 출신들도 신사임당의 인품과 작품에 대해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율곡 이이는 서인으로 효종 때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었다.

율곡 이이의 학통을 이은 노론의 영수 송시열은 율곡 이이를 뿌리, 즉 종장으로 받든다.

노론은 조선을 몰락으로 끌고 간 세도정치까지 국정을 잡은 주도세력이다.

 

 

 

 

 

큰 흐름으로 보면 신사임당 신인선과 율곡 이이의 뜻과는 상관없이 다수 위정자와 여론에 의해 과대 포장됐다고 볼 수 있다.

신사임당 신인선을 일제 잔재인 현모양처의 모범으로 추켜세우는 것은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학자 율곡 이이와 글과 그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신사임당 신인선일 뿐이다.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아낀 것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한 행위로 교육의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겠으나, 익히 알려진 바대로 율곡 이이가 천재성을 타고났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크게 내세울 것은 못 된다. 

 

 

 

 

 

 

 

 

 

 

 

 

 

 

 

 

신사임당 신인선이 조선사회에 끼친 업적이 과연 얼마나 될까?

업적(業積)이라 함은 개인이 단체나 사회, 그리고 국가에 공적을 쌓아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것을 말한다.

 

신사임당 신인선이 아들 율곡 이이가 주장한 대로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가정에 충실했으며 개인적으로 문학과 그림 등 예술적인 재능이 출중했을지 모르나 큰 공덕의 업적을 쌓았다고는 볼 수 없다.

  

 

 

 

율곡 이이는 어머니 신사임당 신인선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율곡이 아버지 이원수의 행장은 쓰지 않고 어머니 신사임당의 행장만 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율곡 이이가 자신의 사후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을 내려갈지도 모르는 호(號)를 정할 때 어머니의 고향이며 자신이 태어난 곳이 아닌 아버지의 고향 경기도 파주의 파평면 율곡리, 밤나무가 많은 마을 지명에서 유래된 율곡(栗谷)으로 정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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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6.11.25 2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방문합니다.
    그 동안 잘 지내셨겠죠.
    이제 마음의 여유를 좀 가지고 일상생활로 돌아왔습니다.
    ...
    현모양처 신사임당을 보니 요즘 한 여성과 비교가 되는군요.
    역시 교육은 부모님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것만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STB 상생방송

한(韓)문화 특선 타큐

 

 

 

 

 

 

기획 의도

 

세계는 바야흐로 세계화, 국제화의 시대 접어든지 이미 오래이다.

 

과학의 발달로 인한 국경의 의미가 사라져가고 있고, 경제를 중심으로한 지구촌의 경제와 문화는 급속도로 재편이 되고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칫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냥 떠밀려가는 나를 발견하곤한다.

 

나는 누구이며, 나의 정체성을 무엇인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도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미래의 나를 바로 알고자 함이다.

 

STB 한韓 문화 특집에서는 잊혀져가는 우리 한韓 문화를 복원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주요 내용

 

 

1회 곡옥의 비밀 1부 천황의 보물
2회 곡옥의 비밀 2부 무너지는 동북공정

'곡옥(曲玉)은 단순히 금관의 화려함을 더하는 장식물이기만 한가?'

박물관에 전시된 신라금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췻빛의 구부러진 옥. 이 곡옥이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허구를 증명하는 단초라고 말한다.

 

일본 왕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세 가지 보물 가운데 하나인 곡옥이 한반도에서 전래된 유물이고 특히 이 곡옥이 중국인들이 동이(東夷)라고 불렀던 동북아시아 문화의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점은 곡옥문화 한가운데 우리 민족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는 것.

 

'곡옥의 비밀'은 한반도에서 전해진 곡옥이 일본에서 종교적, 의식적 대상으로 신성시되고 있는 모습을 조명하는 1부 '천황의 보물'과 홍산문화 유적을 더듬으며 중국의 동북공정 주장의 허구를 밝히는 2부 '무너지는 동북공정'편으로 제작방송 됩니다.

 

3회 조선의 황실 1부 아카사카에서 경복궁까지
4회 조선의 황실 2부 가락에 실린 제국의 꿈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전주에서 조선의 왕들과 그들의 정치 철학, 의례, 전통음악을 살펴보고 그 전통가락 속에서 후세에게 물려주고자 한 선조들의 뜻은 무엇인지 보여준다.

 

따라서 예로서 상하의 질서를 유지하고 악을 통해 화합과 조화를 추구했던 조선의 정치철학, 그 철학이 담겨있는 조선의 의례와 음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황제가 머물렀던 황실을 통해 우리 역사의 전통과 변화, 왕실이 황실로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잊혔던 대한제국의 음악과 황실문화 등을 살펴본다.

 

5회 문자, 천년의 여정 1부 이두 우리말 그 천년의 여정
6회 문자, 천년의 여정 2부 신라의 이두에서 한글까지


7회 조선통신사 1부 공존의 시대
8회 조선통신사 2부 한류의 맥박


9회 혼의상인 고령보부상


10회 문자예술 서예 1부 문자로 새기는 혼
11회 문자예술 서예 2부 서예로 소통하다


12회 첨성대별기 1부 돌로 쌓은 별자리
13회 첨성대별기 2부 천구의 중심 첨성대


14회 우주나무와 하늘새, 솟대


15회 하늘의 열림, 땅의 울림 북 1부 신기(神器), 예술로 거듭나다
16회 하늘의 열림, 땅의 울림 북 2부 한민족의 맥박, 장단의 신비


17회 한국의 담


18회 고대의 한류, 미마지


19회 세계문화유산 판소리 1부 성음의 비밀
20회 세계문화유산 판소리 2부 판소리, 코스모폴리탄의 문화로


21회 갈색 도자기 옹기 1부 감탄
22회 갈색 도자기 옹기 2부 한중일 옹기 삼국지
23회 갈색 도자기 옹기 3부 21C 옹기


24회 천년의 향, 우리 누룩 1부 麴국, 천년 발효의 열쇠
25회 천년의 향, 우리 누룩 2부 菌균, 이 작은 누룩의 전쟁
26회 천년의 향, 우리 누룩 3부 우리 누룩, 세계인이 醉취하다


27회 사임당, 두 개의 초상


28회 천상열차분야지도


29회 안중근, 북위 38도


30회 붓의 전쟁 1부 파리장서 운동이란 무엇인가?
31회 붓의 전쟁 2부 끝나지 않은 논란, 파리장서는 누가 썼는가?
32회 붓의 전쟁 3부 137인의 서명자는 누구인가?


33회 매헌 윤봉길


34회 조선선비, 백성을 돌보다


35회 기려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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