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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하문명과 이질적인 문명으로 요하문명, 발해연안 문명으로 불리는 제5의 문명

한민족 최초의 나라 상고시대 배달국의 역사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홍산문화 지역

 

 

 

 

 

 

 

 

 

 

 

 

경기 지역 윤ㅇㅇ 도생(道生) - 일제 식민사학 후예들이 부정하는 사이에 제5의 문명을 자국의 역사로 편입한 중국

 

자영업을 하는 친구가 오랫동안 한민족 문화를 선양하는 협회에서 일하는 관계는 30년 전쯤 <환단고기>를 받아 읽어 봤습니다.

친구와 만날 때마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는 단골 소재였지만, 저는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듣기만 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라고 해봐야 학교에서 배운 단군신화가 전부입니다.

사실 단군신화로 배웠기 때문에 역사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친구를 통해서 실존 역사를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우리 한민족을 배달의 민족, 배달의 후예라고 하면서도 정작 학교에서는 배달 겨레에 대해서 배우지 않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계승한 주류 강단사학계가 배달국 이후 세워진 단군의 고조선 역사를 신화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불행하게도 배달국의 역사를 배우지 않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발해연안문명 또는 요하문명이라고도 하는 홍산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친구를 통해 처음 들었습니다.

친구를 통해서 그동안 들었던 이야기 중에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의 유적과 유물의 흔적이라는 홍산문화는 가장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홍산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역사에 조금씩 관심을 두고 친구가 권하는 책을 시간이 날 때마다 읽었습니다.

 

 

상생방송도 친구가 시청을 권유해 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1년여를 시청했습니다.

처음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시청하고 다음 날 서점에서 <환단고기 완역본>을 사 본문 앞쪽에 있는 600여 페이지의 해제를 단숨에 읽었습니다. 한민족 상고시대 역사의 참모습과 왜?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문화가 사라지게 됐는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조작의 실상도 알 수 있었습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프로그램과 <환단고기 완역본>을 몇 차례 읽고 한민족의 상고시대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홍산문화가 몇몇 학자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 역사의 소중한 문화 흔적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국내외에서 개최한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수십 번을 시청했는데 볼 때마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다른 나라의 역사 문화를 비교할 때 원형 문화가 지구촌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상생방송을 1년여 동안 시청하면서 저의 신앙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한민족의 역사는 잘 몰라 배우면 됐지만, 신앙을 바꾼다는 것은 꼭 배신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고 마음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불교 신앙을 했었는데 증산도 진리 관련 프로그램도 시청하고 증산도 진리 서적을 읽으면서 증산상제님이 미륵부처님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증산도에서 주장하는 것을 나름대로 검증하고 또 검증한 끝에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지구촌에서 인류의 원형 문화와 진리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한민족이 문화의 뿌리를 잃고 서양 물질문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펐습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인류의 원형 문화를 찾아야 하고, 문화를 찾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해야 합니다.

인류의 모든 문화는 창세 역사 때부터 지구촌 인류가 모셔온 우주의 조화옹 상제님과 상제님을 모시던 천제(天祭) 문화에서 뻗어 나간 것입니다. 상생방송은 인류의 역사를 복원하고 원형 문화를 찾아 진리의 참모습을 밝혀주었습니다.

 

 

태고 시대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의 문화를 가져와 동방문명의 역사를 연 나라가 배달국입니다.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홍산문화 지역에는 진리와 문화의 원형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황하문명'은 이른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이며, 동북아 상고시대 역사의 대표적인 문명 발상지라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중국의 황하문명을 기반으로 동북아 역사가 시작됐다고 알려졌지만, 세계 최고 제5의 문명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면서 수백 수천 년 동안 쓰인 기록과 사료가 말한 '정설'이라 학설은 폐기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우하량 지역에서 홍산문화 유적이 대거 발견되자 '신비의 왕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중국이 수천 년 동안 오랑캐의 땅이라고 말했고, 황하문명과는 이질적인 유적과 유물인데도 세계 4대 문명의 역사를 뛰어넘는 세계 최고 제5의 문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동북공정을 통해 자국으로 역사로 만들었습니다.

 

 

 

 

 

 

 

 

 

 

홍산문화 또는 '요하문명'과 '발해연안문명'으로 불리는 제5의 문명을 기반으로 동북아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상생방송의 여러 역사 프로그램과 <환단고기 완역본> 등의 책을 통해 한민족의 참역사를 알았다는 것이 기뻤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첫째는 지난 수천 년 동안 황하문명이 동북아 최고의 문명이라고 주장한 중국이 만리장성 밖 오랑캐의 땅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을 이른바 동북공정을 통해 자국의 역사로 만든 것도 말이 안 되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홍산문화 지역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에 나타난 특징적 요소가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된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의 유적과 유물에 그대로 나타나는 등 문화의 동질성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식민사학에 물든 주류 강단사학계는 홍산문화와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와는 전혀 관련 없다고 앵무새처럼 주장하며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홍산문화 지역에서 발견된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의 유적과 유물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조작해 만든 '단군신화'가 거짓이고 실존한 역사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단군왕검의 고조선 이전에 환웅천황의 신시 배달국도 실존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외래문화가 들어오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렸지만, 태고 시대부터 인류가 모셔온 우주의 조화옹 상제님은 인류 문명이 성숙하는 가을개벽기를 앞두고 인류 문화를 열매 맺어 주시기 위해 우리나라에 강세하셨습니다.

 

 

상극의 질서로 돌아간 선천의 역사를 마무리 짓고 상생의 질서로 돌아가는 후천의 새 역사를 여시기 위해 오신 상제님과 태모님, 상제님과 태모님의 진리를 지구촌에 뿌리내리신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불초한 자손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조상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구도자가 되겠습니다.

보은(報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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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신앙 상담 문의: 1577 - 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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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지(新天地) 새 역사의 문을 열어주신 인간으로 강세하신 우주의 통치자 아버지 하느님 증산상제님과 어머니 하느님 태모 고수부님을 신앙하는 국내외 증산도 도생(道生)들이 증산도를 만나는 과정의 입도(入道) 수기를 짧게 편집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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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9.06.15 06: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2. kangdante 2019.06.15 0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산문화는 처음 접하는 문화입니다
    덕분에 새로운 역사공부하고 갑니다
    여유로운 휴일보내세요.. ^^

  3. 죽풍 2019.06.15 22: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산문화와 Y벨트에 대해 알아갑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4. 버블프라이스 2019.06.18 0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한민족 상고시대 역사의 유적과 유물에 대해 몰랐던 내용들을 덕분에 알고 공부를 하고 갑니다^^

중국과 일본에 의해 단군신화가 되고 사라진 우리나라 상고시대 역사와

일제 식민사학과 우리나라 주류 강단사학에 의해 왜곡된 고대사

 

 

 

 

 

 

 

 

 

 

 

 

증산도 경북 지역 전ㅇㅇ 도생(道生) - 사라진 우리나라 상고시대 역사와 왜곡된 고대사를 복원한 상생방송

 

저는 가정과 직장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특별할 것도 없이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을 분노하게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저를 분노하게 하고 각성하게 한 것은 증산도 상생방송의 <환단고기 북콘서트>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직장 동료와 점심 식사할 때 그냥 지나가는 말로 STB 상생방송의 <환단고기 북콘서트>가 방영되고 있는데, 아주 재미있게 봤다면서 시간 날 때 한 번 보라는 말을 듣고 시청하게 됐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상식이라 봐야 우리나라 고대사에 관한 기록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대사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다고 알고 있으며, 우리나라 상고시대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단군왕검의 고조선은 단군신화라고 배웠습니다.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삼국유사 - 고조선조>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상고시대 역사를 신화의 역사라고 가르쳤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학교 다닐 때도 무조건 외워야 하는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현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시청했습니다.

 

 

 

 

 

 

 

 

 

 

제가 아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우리나라 상고시대 역사와 왜곡된 고대사 및 근현대사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상고시대 역사는 낯설었고 정신문화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 해봤습니다.

 

 

다음날 직장에 출근해 동료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니 자기도 자세히는 모른다며 서점에서 <환단고기 완역본>을 사보고 상생방송을 시청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퇴근길에 <환단고기 완역본>을 사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책을 다 읽고 우리나라의 뿌리를 바르게 알고 진정한 정체성을 알게 되어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상생방송의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시청했는데, 처음 시청할 때보다 이해가 잘 됐고 상생방송 애청자가 되어 매일 시청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우리의 역사가 중국과 일본에 의해 왜곡되고 말살한 조작된 역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분개했습니다.

더 화가 난 것은 조선총독부가 조작한 가짜역사를 주류 강단사학계가 알면서도 대한민국 국민에게 세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상고시대 역사가 사라지고 고대사가 왜곡되면서 정신문화까지 완전히 잃어버렸는데, <환단고기>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온전하게 담고 있었습니다. <환단고기>는 단순히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역사 경전일 뿐만 아니라 철학경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록 그 정신문화가 사라졌지만, 약 1만 년 동안 지구촌 인류의 문명발달을 이루도록 한 정신문화의 근원을 밝히고 있으며 천지의 이상을 실현하는 온전한 인간, 가장 바람직한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는 문화경전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와 함께 시청한 상생방송의 <개벽문화 북콘서트>는 우주와 인류 역사의 숱한 문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습니다.

 

 

약 1만 년 전부터 구전되어 온 인류 최초의 경전 <천부경>과 천지만물의 생성 변화 및 우주와 인류 역사가 전개되는 것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수(數)의 체계를 세운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우리나라 상고시대 역사의 정신문화가 현대 문명의 뿌리였는데, 역사가 조작되면서 완전히 사라지고 남의 나라에 빼앗기고 가짜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상고시대 역사와 왜곡된 고대사로 인하여 우리의 소중한 문화가 사라지면서 지난 1만 년간 지구촌 인류가 모셔온 우주의 통치자 상제님 문화도 점차 사라졌습니다.

 

 

 

 

 

 

 

 

 

현대문명의 뿌리가 되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는 중국의 것이 아니고 우리 선조들께서 하늘로부터 받아 내린 소중한 유산입니다.

<천부경>과 하도와 낙서는 인간의 마음뿐만 아니라 우주사와 인류의 미래까지 이치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때는 상극(相克)의 질서로 돌아간 선천 5만 년의 우주 봄여름 역사를 끝나고 상생(相生)의 질서로 돌아가는 후천 5만 년의 우주가을의 역사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인류 역사가 이제 인류 문명을 낳고 길러온 우주의 봄여름철을 지나 인류문명이 열매 맺는 우주의 가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인류 태고 시대부터 지구촌 인류가 모셔온 우주의 통치자 상제님께서 가을우주를 열어주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흔히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우리나라 상고시대 역사와 왜곡된 고대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왜곡 조작해 만든 거짓 역사입니다. "붓대 가진 놈이 제일 큰 도둑놈이니라.":라는 증산상제님의 말씀 그대로 진리를 왜곡한 인간도 있고, 역사를 왜곡 조작한 인간도 부지기수입니다.

 

 

우리나라 주류 강단사학계가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면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밝혀 놓은 우리나라 상고시대 역사까지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시대 역사와 왜곡된 고대사를 복원하고 우주의 법칙에 의해 새롭게 열리는 상생의 새 역사를 여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천지가 사람을 길러 사람을 쓰는 이때에 사람다운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 천지일월과 조상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보은(報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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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질서로 돌아가는 후천 5만 년의 선경세계를 열어주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신 우주 통치자 아버지 하나님이신 증산상제님과 어머니 하나님이신 태모 고수부님을 신앙하는 국내외 증산도 도생(道生)들이 증산도를 만나는 과정의 입도(入道) 수기를 짧게 편집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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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9.06.12 0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고대사...
    잘 보고가요^^

  2. Deborah 2019.06.12 1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단고기 북콘서트도 있고 참 다양한 행사가 많군요. 늘 기쁨이 넘쳐나시길요.

  3. 죽풍 2019.06.12 2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전 문화콘서트 좋은 성과 있기를 기대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4. 버블프라이스 2019.06.13 04: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단고기 북콘서트, 우리나라 상고시대 고대사에 몰랐던 역사를 알게되는 것 같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것 같습니다

일제 식민사관과 식민사학에 의해 왜곡 조작 변조되어 사라진 6,900여 년의 상고 역사 

판타지 사극 아스달 연대기와 실존 역사에서 신화가 되어버린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위해 삐뚤어진 정신의 식민사관으로 왜곡 조작해 만든 가짜 학이 일제 식민사학입니다.

1868년 메이지유신 직후 일제는 동경제국대학에 동양사학과를 신설하여 한민족의 역사를 부정 및 왜곡 조작에 착수했습니다.

 

 

우리가 진짜 역사로 알고 있는 단군신화의 가짜역사를 일제가 본격적으로 왜곡 조작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강제점령한 이후부터입니다.

 

 

다시 말해 일제의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 왜곡 조작은 메이지유신 직후부터 시작해 1937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완성됐습니다.

 

 

 

 

 

 

 

 

 

 

아스달 연대기는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가 배경이지만, 일제가 왜곡 조작해 만든 단군신화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제작한 판타지 사극입니다. 우리가 아는 '단군신화'는 일제가 왜곡 조작해 만든 가짜학설이지만, 지난 100여 년 동안 뿌리를 너무 깊이 내려 진짜라고 착각하고 지내왔습니다.

 

 

 

아스달 연대기는 실존 역사가 신화로 둔갑하여 사라진 상황에서 작가와 제작가 가상의 땅 '아스'에서 펼쳐지는 문명과 국가의 탄생 이야기는 상상력을 동원해 아스달 연대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제작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대학의 주류 강단 사학자와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은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해 만든 가짜역사 일제 식민사학의 악성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숙주가 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를 조작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 대두된한론에 따라 1875년 강화도를 침략하면서부터입니다.

 

 

19세기 말 나카 미치요가 <조선고사고朝鮮古史考>에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과 '단군신화'를 주장하며 악성 바이러스를 퍼트리기 시작습니다. 또 나카 미치요는 한국을 정벌한다는 정한론에 따라 '가야는 곧 임나'라고 주장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관의 정점에 있으며 일본에서 동양사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동경제국대학 교수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1894년 <단군고檀君考>에서 고조선을 연 단군의 역사를 '단군신화'라고 주장했습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제자 이마니시 류는 1921년 <단군고檀君考>라는 논문에서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사를 단군신화라고 주장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한 이마니시 류는 1925년 실존 역사 단군왕검의 고조선 상고시대 역사를 기록한 <삼국유사 - 고조선조>의 환국(桓國)을 환인(桓因)으로 변조해 고조선을 개국한 단군왕검의 실존역사를 신화의 역사 단군신화로 만들었습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일제 식민사학을 대표하는 쓰다 소키치의 스승입니다.

쓰다 소키치의 제자가 바로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로 불리는 이병도, 이병도의 제자이며 자칭 식민사학을 극복했다고 말하지만,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 이기백이 존경한 인물이 쓰다 소키치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일제 식민사학을 깊이 뿌린 일등공신? 이병도, 신석호, 이기백 등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판타지물 아스달 연대기 제작자 역사를 상상해 만들어서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총독부의 조작해 만든 단군신화를 해방 후 이병도, 신석호, 이기백 등이 뿌리내렸기 때문에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와 관련된 기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다 보니 당연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한국사는 조선총독부가 주장한 '단군신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등에 의해 6,900여 년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가 연기처럼 허무하게 사라져버리고 불과 1,600년 남짓밖에 안 되는 역사로 조작되어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는 1910년 우리나라 역사서를 비롯한 약 20만 권의 서적을 수거해 불사르거나 약탈해갔습니다.

1915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편찬과를 시작으로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에 이어 1925일왕의 칙령으로 독립관청 조선사편수회로 승격시켜 확대 개편했습니다.

  

 

1937년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를 왜곡 조작한 <조선사> 35권을간합니다.

<조선사 35권>은 우리의 손으로 쓴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일본인의 손으로 쓴 가짜역사입니다.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자신들이 일제 조선총독부가 만든 가짜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했습니다.

 

조선총독부의 화신이 된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일제 식민사학과 맞지 않으면 무조건 가짜역사로 매도합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기득권이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주류 강단사학계가 발버둥 쳐왔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해온 언행을 보면 학자의 양심은 이미 내다 버린 지 오래됐고,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조작된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를찾아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판타지물 아스달 연대기가 아닌 실존 역사로서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의 첫 번째 도읍 <아사달 연대기>로 다시 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단군조선의 성지 강화도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편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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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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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9.05.22 05: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고시대...아스달 연대기..
    잘 보고가요

  2. kangdante 2019.05.22 0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나라의 신화이야기처럼
    우리나라의 상고역사도 재조명되어야 할 것 같아요

  3. 청결원 2019.05.22 14: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4. 죽풍 2019.05.22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한
    일본의 야비한 인간성을 다시 한 번 보게 됩니다.
    잘 보고 갑니다.

  5. korea cebrity 2019.05.22 2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가 정말 뿌리깊은 악질이네요..
    잘보고갑니다

  6. 버블프라이스 2019.05.27 0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민족의 상고시대 역사와 아스달 연대기에 대해 알고 갑니다^^

실존(實存)한 역사를 허구적 신화로 조작한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일제가 왜곡 말살한 한국사와 상고시대 역사를 다룬 픽션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태고(太古) 시대란 지구가 탄생한 이래 약 45억 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때를 말하기도 하고, 현대 인류의 문명사로 볼 때는 아주 오래된 옛날 시대 또 상고시대라고 말합니다. 상고(上古)시대와 비슷하게 사용하는 말로 천고(千古) 역시 아주 먼 옛날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흔히 역사시대를 구분할 때 우리가 사는 때를 현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근대, 근세, 중세, 고대시대로 분류하는데, 고대 이전의 시대를 상고시대라고 합니다. 상고시대는 현대 문명의 출발점이 되는 창세 역사, 시원 역사로부터 시작됩니다.

 

 

현대문명의 시작은 약 1만 년 전 인류 최초의 나라 환국(桓國)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환국은 한민족과 인류 최초의 국가로 지구촌 현대문명의 뿌리가 되는 나라입니다.

 

 

 

 

 

 

 

 

 

 

천산(天山)이 있는 중앙아시아는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의 중심지로서 태고시대가 시작된 땅이며, 상고시대 역사가 시작된 땅입니다.

 

 

tvN에서 제작한 <아스달 연대기>는 태고의 땅 '아스'를 배경으로 상고시대 역사를 다룬 완전 창작 드라마입니다.

픽션 사극 <아스달 연대기>는 상고시대 역사의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배경으로 가상의 대륙이며 태고의 땅인 '아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실은 태고의 땅도 앗기고 상고시대 역사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민족비록 태고의 땅에서 멀어져 한반도로 들어와 있었지만, 인류 최초의 역사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태고시대, 상고시대의 역사를 담은 역사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왜곡 조작되었고,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대한민국 주류 역사학계에 의해 완전히 부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과거 모 방송사에서 방송한 <주몽> 드라마도 일제가 왜곡 조작하고 중화 사대주의 사관으로 왜곡된 역사를 배경으로 만들어 시청자들로 하여금 학교에서 배운 일본 식민사학의 조작된 고대 역사를 완전하게 굳히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태고의 땅에서 벌어지는 상고시대 역사의 문명과 국가의 탄생을 다룬 판타지물 <아스달 연대기>는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 고조선 최초의 도읍지 아사달과 인간의 삶의 터전인 어머니 지구 '어스'를 연상시키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단군왕검이 고조선 역사는 중국에 의해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등 중국의 역사가 되었고, 일본 제국주의와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에 의해 신화가 되어 있습니다.

 

 

 

<아스달 연대기>가 우리나라 최초로 상고시대를 다룬 드라마라고 하지만, 픽션 사극인 만큼 역사의 진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단지 염려되는 점이 있다면 상상력을 바탕으로 제작한 판타지물 <아스달 연대기>가 과거 <주몽>이라는 드라마처럼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주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 염려됩니다.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는 한국사를 9천 년에서 2천 년도 안 되는 역사로 왜곡 말살하여 조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45년 광복 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조작된 역사를 배운 자들은 일본이 조작해 만든 한국사가 마치 진짜 역상인 양 가르치며 국민 세뇌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천문학적인 자금과 인원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한국사를 조작했습니다.

9천 년 한국사를 2천 년도 안 되는 역사로 조작한 천인공노할 역사 왜곡 날조의 만행을 저지른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3인방이 있습니다.

 

 

일제 교토대학 교수 출신으로 일본의 사학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구로이타 가쓰미(1847~1946), 만철(滿鐵) 역사조사부에서 만주와 조선사(한국사)를 연구한 이나바 이와키치(1876~1940), 교토대학과 경성제국대학 교수 출신의 이마니시 류(금서룡)입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를 이끈 3인방에 의해 한韓민족의 창세 역사부터 상고 역사까지 약 7천 년의 역사가 송두리째 사라졌습니다. 역사 조작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자가 바로 <삼국유사>를 조작한 이마니시 류(금서룡)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1867년 메이지 유신(명치유신)이 일어난 직후 이른바 조선을 정벌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구체화하기 위해 조선사를 연구해 수십 년 간 자료를 축적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무력을 앞세워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했습니다. 

 

 

 

 

 

 

 

 

 

 

일제는 1910년 11월부터 약 14개월간 한국사와 고문서, 고지도 등 20만 권의 수거해 불태웠고, 상당수가 일본 왕실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수거하지 못한 책을 제외하고 아예 수거하지도 않고 의도적으로 남겨 둔 책이 <삼국유사>,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 내용 중 한국(桓國)을 환인(桓因)으로 조작해 우리의 상고시대 역사를 신화로 만든 이나미시 류(금서룡),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은 조작됐다고 주장하여 우리의 고대사를 조작한 쓰다 소키치(1873~1961)입니다.

 

 

일본의 역사학자는 대다수가 일제의 관변사학자였으며 <조선왕조실록>을 그대로 남겨 놓고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당쟁과 분열의 붕당의 악폐가 끊이질 않았다고 왜곡하고 '조선인에게는 더러운 피가 흐른다.'라는 등 역사를 멸시하고 폄하했습니다.

 

 

 

 

 

 

 

 

 

 

쓰다 소키치는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 태산북두) 이병도의 와세다대학 사학과 스승이고, 이병도의 제자이며 한국사학계 대부가 된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중퇴한 이기백이 존경하고 추종한 학문적 스승입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뿌리는 우리 역사 왜곡 조작 말살의 심장부였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이병도와 신석호가 뿌리가 됩니다. 대한민국 정부 출연기관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하여 전국의 모든 대학 주류 역사학자가 모두 조선총독부가 만든 식민사학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태고의 땅에서 문명과 국가가 탄생하는 상고시대의 역사를 다룬 <아스달 연대기>는 일제에 의해 왜곡 조작되어 역사가 사라진 상황에서 만들어진 픽션 사극입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 역사를 지배해 온 식민지유산을 극복하고 앞으로 단군왕검의 고조선 참역사를 다루는 <아사달 연대기>로 다시 방송되기를 기대합니다. 

 

 

 

 

 

 

 

 

 

 

 

인류와 한민족의 창세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 증산도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jsd.or.kr/

 

 

 

 

韓문화 중심채널 증산도 STB 상생방송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stb.co.kr/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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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borah 2019.05.21 15: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고시대라..잘 몰랐던 부분도 알아 가는 시간이 되었네요

  2. korea cebrity 2019.05.21 18: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바꾸려 해 걱정이네요

  3. 버블프라이스 2019.05.27 0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고의 땅과 상고시대의 역사 아스달 연대기 내용 잘 봤습니다^^

한민족 정체성의 확장 ‘알타이 연대’를 꿈꾸며 (고조선과 북방 민족 간의 관계)

<김창규 | 주 키르기스스탄 대사> 경향신문 독자투고 일부발췌

 

알타이 연대라고 하면 민족적 시원이 유사한 터키,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투르크계 민족들과 한국, 몽골 등 몽골계 민족들 간의 연대를 위한 협력 형태를 의미한다.

 

유라시아 지역에 오랫동안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알타이계 민족들이 민족적 시원의 유사성과 문화와 감정의 동질성에 대해 비교적 높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알타이 연대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알타이 연대를 구축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곳에 미개척 시장이 있다든가 자원이 광대하다든가 하는 현실적 이유가 아니다.

 

알타이 연대의 구축을 통해서 우리 국민들이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유라시아 대륙은 지금까지 우리의 인식 범위 밖에 있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해양을 통한 발전 전략과 함께 유라시아 대륙을 통한 발전 전략을 한데 놓고 균형적인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한반도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인식의 폭을 대륙으로 확장할 수 있다.


알타이 연대의 구축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 우리 민족의 시원이라든가 한글의 기원 등 우리가 명쾌하게 밝혀 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어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글로벌 시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알타이 연대에 대한 관심과 당위성이 학계를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축적된 저력을 국내에 가두어 두기보다는 이를 널리 활용하여 세계 평화와 공영에 기여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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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과 북방 민족 간의 관계

 

⊙ 고조선과 흉노족
『단군세기』에는 고조선과 북방 민족 간의 관계를 알려 주는 귀중한 기록들이 있다. 3세 가륵단군 6년(BCE 2177) 조에 나오는“ 임금께서 열양 욕살 삭정索靖을 약수弱水 지방에 유배시켜 종신토록 감옥에 가둬 놓았다. 후에 용서하여 그 땅에 봉하시니 흉노의 시조가 되었다”라는 기록과 4세 오사구단군이 재위 원년인 BCE 2137년에 자신의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에 봉했다는 기록, 또 30세 내휴단군 5년(BCE 905)에 흉노가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 32세 추밀단군 3년(BCE 847)에 선비산鮮卑山의 추장 문고가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 등이 그것이다.

 

흉노, 선비, 돌궐, 몽골 등 여러 북방민족과 한민족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그들의 세력 부침을 알아보기로 한다.

 

주지하다시피 몽골 고원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남러시아와 동유럽 일대에는 광대한 초원(스텝) 지대가 이어진다. 이들 지역은 유목생활을 영위하는 몽골계와 투르크계에 속하는 다양한 유목민들의 공간이었다. 동양사에서는 중국 북방의 여러 유목민과 중국 간의 갈등이 아주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었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북방민족을 융戎, 적狄, 호胡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면서, 물리치고 억압해야 할 무지하고 흉악한 오랑캐로 여겼다.

 

그러나 북방민족을 오랑캐로 여긴 것은 어디까지나 중화사상에 빠진 중국인들의 편견 때문이다. 북방 유목민들은 분명 정착 농경민과는 다른 생활방식을 채택한 사람들이지만 결코 야만인은 아니었던 것이 실제로 기마술과 야금술 및 금속가공 기술은 중국인들보다 앞서 있었다.

 

 

⊙ 동방의 삼신과 제천 문화 생활화한 흉노

 『단군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흉노의 시조는 한민족이다. 흉노는 그 수가 계속 늘어나 진나라 때 와서는 이미 오르도스와 몽골고원, 천산산맥 일대를 주름잡고 있었다. 흉노는 그 우두머리를 선우單于라 하였다. 흉노는 한나라 초기 묵특선우冒頓單于(BCE 209~BCE 174) 때 서쪽의 월지와 동쪽의 동호東胡를 격파하고 아시아 최초로 대유목 제국을 세웠다. 묵특선우는 흉노 제국을 신교의 삼신문화의 고향인 고조선처럼 셋으로 나눠 통치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자신은 중앙을 통치하고 동쪽은 좌현왕이, 서쪽은 우현왕이 통치하게 하였다. 좌현왕은 우현왕보다 우선시 되었는데 보통 선우의 아들을 좌현왕으로 삼았다.

 

 

선우는 자신을‘ 탱리고도撑梨孤塗선우’라 하였는데, 탱리撑梨는‘ 하늘’을 뜻하는 흉노어‘ 텡그리Tengri’의 음역이고,‘ 고도’는 아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탱리고도는 하늘의 아들, 즉 천자天子를 의미한다. 흉노는 천지와 일월을 숭배하고, 나아가 조상을 숭배하였고, 일 년에 세 번 큰 제사를 지냈다. 특히 정월의 춘제春祭와 오월의 용성대제龍城大祭는 대규모 천제였다. 중국 측의 기록에 의하면 흉노는 하늘에 제사지낼 때 이용하는 큰 금상이 있었다고 한다. 흉노의 한 왕인 휴도왕의 땅에 있던‘ 제천금인祭天金人’이 그것이다. 선우는 매일 해와 달에게 절하고 자신이 거처하는 게르(천막집)의 문도 항상 동쪽을 향해 배치하였다. 이처럼 문을 동향으로 한 것은 동쪽을 중시하는 동이족의 관습과 일치하는 것이다.

 

중국 역사서에서 흉노는 BCE 4세기 전국시대에 처음 등장한다.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흉노는 틈만 있으면 연, 조, 진 나라를 침략하는 골칫거리였다. 이 세나라는 모두 흉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장성을 쌓았다. 이것을 연결한 것이 진시황 때 이루어진 만리장성이다. 진시황은 장군 몽염에게 삼십만 군을 주어 흉노에게 반격을 가하고 서쪽의 농서군에서 동쪽의 요동군 갈석에 이르는 장성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만리장성 축조는 백성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고 결국 2세 황제인 호해 때 진나라는 진승과 오광의 반란으로 망했다. 흉노의 위협이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멸망시킨 원인의 하나였던 것이다.

 

진에 이어, 유방이 세운 한나라도 흉노의 공격에 시달렸을 뿐, 흉노를 제압하는데 실패하였다. 한고조 유방의 경우 흉노와의 전쟁에서 포위당했다가 가까스로 뇌물을 주고 빠져나오기도 하였다. 이후 공주와 공납을 보내 굴욕적으로 평화를 유지하였다. 한 무제 때 와서는 다시 흉노와 전쟁을 시작하였는데 이 전쟁은 근 50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한 무제는 흉노를 굴복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큰 손해를 보았다. 장진퀘이에 의하면 흉노와의 전쟁은 백성들의 생활을 곤궁하게 만들고 국력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무제는 다시는 변방으로 출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윤대輪臺의 조서’를 발표하고 자신의 실책을 반성하였다.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공격하고 그곳에 군현을 설치하려 한 것도 흉노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위만조선이 흉노와 손을 잡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 무제 때 한국사와 연관하여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흉노의 비왕 가운데 한 사람인 휴도왕의 아들이 자기 어머니와 함께 한나라의 포로가 된 것이다. 흉노 왕자는 왕의 말을 돌보는 일을 맡았는데, 후에 품위 있는 거동과 성실함이 한 무제의 눈에 띄어 무제의 측근이 되었다. 무제는 이 흉노 왕자 김일제金日磾를 뒤에‘투후’로 봉하였다. 투후는 오르도스의 제후라는 뜻이다. 그 후손 중에는 왕후(원제의 비 효원왕후)도 있다. 일설에 의하면 왕망王莽도 김일제의 고손이다.

 

외척인 김일제 가문은 왕망이 정권을 잡으면서 최고의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왕망이 몰락하자 위험한 처지에 몰렸다. 정확한 경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들은 한반도로 망명한 것으로 보인다. 문무왕 비문과 중국 시안[西安]에서 발견된 당나라 시대의 묘비명에서 김일제가 신라 김씨 왕가의 조상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사서 기록에 의하면 한 무제가 김일제에게 김씨 성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한서』「 김일제전」).

 

1세기 초 한나라에서 망명한 김일제 후손이 신라와 가야에 들어와서 왕권을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가야가 있었던 지역에서 기마민족의 유적이 대거 발견되었다. 유물들 가운데 청동제 솥인 동복銅鍑은 흉노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제사의식을 위해 말에 싣고 다니던 물건으로, 유럽의 훈족 루트에서도 많이 발견되었다.

 

흉노 제국은 BCE 1세기 중반에 내분이 일어나 둘로 분열되었다. 호한야선우가 이끄는 동흉노는 한나라와 동맹을 맺고 중국 북쪽에 머물렀지만 한나라와의 타협하기를 거부한 질지선우가 이끄는 서흉노는 중앙아시아 쪽으로 이주하였다. 동흉노는 한 세기 뒤에는 다시 남북 흉노로 분열되었다. 남흉노는 고비사막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한나라의 번병藩兵(수비병)이 되었다. 몽골 초원은 북흉노가 지배하였다. 그러나 북흉노는 한 제국과 남흉노 연합세력의 공격 때문에 91년에는 몽골리아를 포기하고 중앙아시아의 일리강 유역으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이주에는 가뭄과 병충해 같은 자연환경의 악화에도 기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후한서』「 남흉노전」에는“ 흉노국은 매년 가뭄과 해충의 습격으로 헐벗은 땅이 수천 리에 달하고 초목은 전부 말라버려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과 가축의 수가 삼분의 이에 이르렀다”라는 기록이 있다. 북흉노는 일리강 인근 오아시스 국가들을 지배하기도 했지만 결국 몽골리아 초원의 새로운 패자인 선비족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2세기 중반 즈음에 더 서쪽으로 옮겨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초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후 이들은 역사적인 기록에서 사라져 버린 듯했지만, 4세기 중반에 갑자기‘ 훈hun’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훈족은 370년경 흑해 북부에 나타남으로써 처음으로 유럽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들은 볼가강을 건너 남러시아 초원지대에 거주하던 알란족을 공격했고, 이어서 알란족과 함께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을 공격하여 유럽 대륙에 민족이동의 대물결을 야기하였다. 공포에 질려 도주한 게르만족이 밀물처럼 로마 국경 안으로 몰려들자 이를 제어하지 못한 서로마 제국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게르만족의 이동은 서양 역사에서 고대의 종말을 초래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바로 이 게르만족의 이동은 훈족의 공격 때문에 촉발된 것이었다.

 

훈족은 이 시기 이후 거의 한 세기 동안 동서 유럽 여러 지역을 침략하여 유럽인에게 커다란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훈족은 아틸라 대왕(395~453) 때에 이르러 유럽 일대를 지배하는 거대한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를 훈제국이라 부르는데 우랄산맥에서 동유럽 일대에 걸친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였다.

 

 

⊙ 선비족

 북흉노가 1세기 말 멀리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떠나 버리자 흉노의 본거지이던 몽골 고원은 일시적으로 공백지대가 되었다. 그리하여 흉노의 지배를 받아오던 여러 유목집단들이 초원을 지배하기 위한 각축이 시작되었다. 각축에서 선비족이 승리하여 북방지역을 통일하였다. 2세기 중반에는 단석괴檀石槐라는 영웅이 나타나 선비의 여러 부족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였다. 이 선비제국은 북으로 바이칼호, 서로 신장의 일리강, 동으로 만주 일대에 걸치는 넓은 땅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선비제국도 다른 유목민들이 세운 다른 제국처럼 여러 부족집단들의 연합체였다.

 

단석괴가 사망하자 선비제국은 순식간에 여러 집단로 분할되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한나라가 망하고 그 뒤를 이어 동탁, 원소, 조조, 유비 등 군웅이 패권을 놓고 다투는 삼국시대와 그 뒤를 이은 위진魏晉 제국이 붕괴하면서 중원이 혼란에 빠지자 선비족은 그 틈을 이용하여 대거 북중국으로 밀고 들어갔다. 탁발拓跋, 모용慕容, 우문宇文, 단段, 걸복乞伏 등의 선비족의 여러 부가 이때 거의 모두 남하하였다고 한다. 중국사에서 말하는 소위 5호16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탁발부는 대국代國을 세웠고, 모용부는 전연前燕·후연後燕·서연西燕·남연南燕 등의 나라를 세웠다. 또 산서 지역의 흉노는 한漢·전조前趙·후조 등을 세웠다. 이 가운데서 탁발부의 대국은 다른 국가들을 모두 정복하고 북중국을 통일하였다. 이 나라가 북위北魏이다. 북위는 후에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열되었는데 다시 북제北齊와 북주北周로 이름이 바뀌었다. 수나라는 바로 북주의 귀족인 수국공隋國公 양견이 나라 이름을 수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수는 다시 당으로 이어지는데 수·당의 기원은 바로 선비족인 탁발씨였던 것이다.

 

5호16국 시대에 북방 유목민족들이 중국 본토로만 진출한 것은 아니다. 한반도로도 적지 않은 수가 왔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김호동 교수는 북방 유목민의 일부가 신라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4~5세기경에 조성된 신라의 대형 적석목관분 무덤에서 중앙아시아의 문화적 기류를 느끼게 하는 유물이 대거 발견되는 것은 이처럼 선비족이 들어왔음을 증명한다. 훈족의 출현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서부에서 민족대이동이 일어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대륙의 동부에서도 그에 못지않게 커다란 민족이동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북방 유목민들의 이동의 파고는 유럽에서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가져오고 중국에서는 북방민족이 중원을 장악한 5호16국 시대를 열었으며 한반도와 일본에서는 기마민족의 정권을 성립시켰다. 한마디로 말해 유목민은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유목민의 대이동으로 크게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 돌궐족

『단군세기』에는 흉노의 시조에 대한 언급뿐 아니라 투르크계인‘ 강거康居’에 대한 기록도 나온다. 강거는 흉노의 서쪽에 자리 잡은 유목민으로서『 사기』에도 나온다. 가륵단군 8년에 강거가 반란을 일으키자 단군이 지백특에서 토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지백특은 티베트를 가리킨다. 18세 동엄단군 때에는 지백특 사람이 공물을 바치러 왔다는 기록도 있다. 이 기록은 고조선의 활동영역이 티베트 인근까지 뻗쳤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단군세기』에 직접 나오지 않지만 투르크 계통의 민족으로서 동양 고대사와 서양 중세사에 큰 영향을 미친 민족이 있다. 바로 투르크족이다. 투르크족은 6세기 중반에 서쪽으로 카스피해에서, 동쪽으로 몽골과 만주에 이르는 광대한 유라시아 초원을 제패한 강력한 유목제국을 세웠다. 이 제국을 건설한 사람들은 스스로 족속 이름을‘ 투르크(Turk)’라 하였는데, 중국 측 자료에는‘ 돌궐突厥’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터키Turkey라는 나라 이름도 바로 이 투르크에서 비롯한 것이다.

 

돌궐 제국은 기원 후 1세기 중반에 흉노가 붕괴된 뒤 실로 500년 만에 초원의 유목민을 통합하고 출현한 국가였다. 중국 측 기록에 의하면 돌궐 제국은 553년에 토문土門이라는 이름의 수령이 몽골리아에 있던 몽골족 국가 유연柔然을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이다. 돌궐은 몽골계인 유연의 예속 하에 있던 집단으로 알타이 지역에서 야금 일에 종사하였던 것이다. 돌궐족은 알타이 산지에서 나는 철광석을 제련하는 등 금속가공에 뛰어난 솜씨를 보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돌궐 제국의 건설자인 토문이 죽자 그 영토는 아들 무한과 아우 이스테미에게로 나뉘어졌다. 카간의 칭호를 쓴 아들은 몽골 지역을 차지하여 동돌궐이 되었고,‘ 야브구’라는 칭호를 사용한 이스테미의 나라는 서돌궐이 되었다. 서돌궐은 중앙아시아 일대에 위치하였다.

 

서돌궐은 곧 사산조 페르시아와 협력하여 헤프탈Hephtal을 쳐서 멸망시켰다. 이어서 동돌궐은 동쪽으로 거란족을 복속시키고, 북으로 바이칼호에 이르렀다. 남으로는 고비사막을 넘어 당시 북주·북제로 나뉘어 있던 북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였다. 당시 북주와 북제는 서로 대립하였기 때문에 북방의 돌궐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경쟁적으로 재물을 갖다 바쳤다.

그러나 중국에 당나라가 들어서자 상황은 급속히 바뀌기 시작하였다. 돌궐의 내분이 격화되고 자연재해가 겹쳤기 때문이다. 결국 당나라는 쇠약해진 돌궐, 초원의 대제국을 일거에 무너뜨려 버렸다.

 

그러나 돌궐은 중국의 지배를 받은 지 반세기 만에 놀랍게도 제국을 부흥시켰다. 만리장성 주변 내몽골 지방에 살면서 당나라의 감시와 통제를 받던 부족민 사이에서 670년대 후반부터 독립을 향한 움직임이 나타나 돌궐 제국을 재건한 것이다. 이것이 제2 돌궐제국이다.

 

다시 일어난 돌궐 제국은 752년에 그 지배하에 있던 세 부족의 반란으로 무너졌다. 세 부족 가운데 하나인 위구르가 몽골의 모든 유목민을 제압하고 돌궐의 뒤를이어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위구르족은 9세기 중반에 몽골고원에서 천재가 빈발한 때에 유목민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망하게 되었다. 돌궐의 후예들은 차츰 서진하여 이란 지역에 왕조(가즈나 왕조)를 세우기도 하고 이슬람을 받아들여 이슬람의 노예와 용병 노릇을 하였다. 그러다가 동로마 제국으로 침투하여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였다.

 

 

⊙ 몽골족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단군세기』 4세 오사구단군 조에는 단군이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蒙古里汗’에 봉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BCE 2137년의 일이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에는‘ 동호東胡’라는 이름의 족속이 나온다. 동호는 만리장성 너머 몽골과 만주 일대에 걸쳐 살던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부른 명칭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몽골족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시대에 동호가 주로 교류한 나라는 연燕나라였는데, 동호는 4세기에 매우 세력이 강했던 것이 분명하다. 연의 장수 진개秦開가 동호의 인질로 잡혀 있었다는『 사기』의 기록이 그것을 말해 준다. 동호 역시 흉노처럼 야금술과 궁술, 기마 전투술이 뛰어났고, 진개는 인질로 있는 동안 동호의 앞선 기술을 열심히 배웠다고 한다. 연나라가 쌓은 장성은 바로 이 동호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몽골 일대의 동호는 한대에 흉노의 묵돌선우에게 패한 후(BCE 209년) 약화되었다. 그 후 동호라는 이름은 사서에서 사라지고 선비鮮卑, 오환烏桓으로 바뀌어 등장한다. 선비보다 약했던 오환은 삼국시대 조조의 공격으로 붕괴되어 조씨 권력의 기동부대로 전락하였다. 이것이‘ 오환돌기烏桓突騎’ 부대이다.

 

선비족의 영웅이었던 단석괴 이후 선비 제국이 붕괴되면서 여러 부족(탁발拓跋, 모용慕容, 유연柔然, 거란契丹, 실위室韋)이 분립하였는데 이들 중 앞의 세 부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강력한 국가를 건립하였다. 거란은‘ 키탄’이라 불리는데, 거란의 영웅 야율아보기는 10세기 초 요나라를 건국하였다. 야율아보기는 907년 천제를 거행하고 칭호를‘ 탱그리 카간’이라 하였다. 거란족에게도 카간은 천제의 대행자인 천자였다. 야율아보기는 곧 몽골고원을 장악하고 발해(대진국)을 멸망시켰다. 거란 제국은 이어서 현재의 북경과 대동 일대에 이르는 북중국을 장악하고 송나라와 대치하였다. 거란 제국은 거란족 외에 몽골계 유목민, 한족, 발해 유민, 여진족, 탕구트인 등 다양한 족속을 포괄하였다. 또 중국과 달리 발해의 5경 제도를 계승하였다. 거란 제국은 12세기 초 여진족의 금나라에게 멸망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금나라에 의해 계승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금나라는 여진족과 거란족의 연합정권이었기 때문이다.

 

몽골 제국을 세운 칭기즈칸(1162~1227)은 실위족에 속한다. 그러나 실위는 다양한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칭기즈칸이 등장하기 이전에 몽골초원 지역은 투르크계와 몽골계, 퉁구스계가 뒤섞인 다양한 집단의 상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집단 가운데‘ 울루스’가 세력이 컸는데, 칭기즈칸이 속한 울루스는‘ 몽골울루스’였다. 칭기즈칸은 19세에 몽골 울루스의 칸으로 선출되고 곧 동쪽의 타타르 울루스, 중앙의 케레이트 그리고 서쪽의 나이만과 메르키트 등 여러 울루스를 차례로 격파하고 통합하였다. 마침내 1206년 쿠릴타이(몽골 족장회의)에서 몽골 집단 전체의 카간으로 추대되었다.

 

칭기즈칸은 곧 눈길을 초원 밖으로 돌려 중앙아시아 일대를 정복하였다. 그의 아들들은 1222~1223년에 아조프 해 연안에서 러시아 군대와 싸워 이기고 1223년에는 키에프 공국을 공격하였다. 1227년 칭기즈칸이 사망하자 그 후계자들은 정복의 범위를 더 넓혔다.

 

칭기즈칸의 후예인 오고타이(2대 카간 1229~1241), 구유크(3대 카간 1246~1248), 몽케(3대 카간1251~1259), 쿠빌라이(4대 카간 1260~1294)는 정복사업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중국 북부의 금나라를 정복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금의 멸망 후에는 네 방향으로 정복사업을 추진하였다. 유럽 원정(1236~242)을 수행한 다음 중동을 공격하여 카프카즈 지역과 셀주크 투르크를 속국으로 삼고(1243) 바그다드를 점령하였다.(1258) 고려도 1236~1241년에 걸쳐 몽골의 공격을 받아 그 지배하에 들어갔다. 1279년 남송을 멸망시킨 쿠빌라이는 섬나라인 일본과 자바까지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동남아시아는 그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렇게 하여 형성된 몽골 제국은 그 지배 지역이 매우 이질적이고 다양하였다. 그러나 효율적인 역참제를 통해 결속을 이뤄 낼 수 있었다. 몽골의 역참제는 제국 전역을 연결하는 조밀하고 광대한 교통 네트워크였다. 동으로 고려와 만주, 서로 중앙아시아를 거쳐 이란과 러시아에 이르는 교통로 상에 역참을 두었고, 남쪽으로는 안남과 버마까지 연결되었다. 역참에는 운송 수단인 말과 수레, 배를 갖추고 있었을 뿐 아니라 숙박시설도 있었고 패부牌符라는 증명서만 있으면 얼마든지 역참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문서와 서신, 관원과 공적 물자가 신속하게 이동되었다.

 

이러한 역참제를 기반으로 몽골 제국은 상업을 진흥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몽골제국은 중국의 전통적 한족 왕조와 달리 상인을 우대했고 국제무역을 적극 지원했다. 심지어‘ 오르톡’이라는 상인조합에게 행정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사업을 맡겼다. 또 통행세를 폐지하고 통상로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 신경을 썼기 때문에 몽골 제국 시대에는 동서양 간에 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졌다.

 

몽골 제국은 종교인에게도 관용정책을 취하여 각 종교의 지도자에게 면세 혜택까지 부여하였다. 페르시아나 중국 측 기록에도 남아 있듯이 이슬람·기독교·유대교·유교·불교·도교의 사제나 승려가 그러한 혜택을 누렸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여태까지 국가의 탄압을 받던 소수 교단이 활력을 얻게 되었다. 중국과 중동에서는 네스토리우스파가 활발한 활동을 했고 유럽의 가톨릭도 적극적으로 선교사를 몽골 제국으로 파견하였다.

 

이러한 몽골 제국의 개방적인 동서교류 정책은 인류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도 활발한 인적 왕래, 종교의 전파, 상품의 확산을 가져다 주었다. 이것이 소위‘ 팍스 몽골리카’의 실체였다. 이 시대에 위대한 여행기들이 나온 것은 이러한 팍스 몽골리카를 배경으로 한 것임이 틀림없다.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는 서양인으로서 몽골 제국에 가서 쿠빌라이 칸의 신하로 살다가 귀국하여 견문록을 남겼다. 반대로 동에서 서로 가서 여행기를 남긴 사람들도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장춘진인長春眞人(1148~1127)이다. 산동성 사람으로 도교의 도사이던 그는 칭기즈칸의 부름을 받고 몽골군의 원정에 종군하였다. 알타이산을 넘어 천산북로를 따라 사마르칸트에 갔고 후에 남쪽으로 힌두쿠시 산맥을 넘었다. 장춘진인의 기행문은 『장춘진인서유록長春眞人西遊錄』으로서 13세기 몽골 제국 시대의 동서교통에 대한 귀중한 자료이다.

 

이처럼 몽골이 주도하던 13~14세기 때에는 동서 간에 활발한 교류가 있었고, 이러한 교류는 다시 근대를 열어가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요컨대 몽골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북방 지역에서 일어났던 흉노, 선비, 돌궐, 몽골 등 여러 족속은 상고 시대에 우리 민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흐름을 이끈 주도 세력으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원문: 상생출판 환단고기)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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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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