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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년의 역사를 지켜온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이집트 제4왕조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 이집트 기자(Giza)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세계 최대의 석조 건축물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200년 동안 지구촌의 수많은 학자가 연구했지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상당수의 학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피라미드가 고대 이집트 왕조의 왕과 왕비 등의 무덤이라고 주장한다.

더불어 영혼 불멸, 사후세계의 공간 등 피라미드에 대한 숱한 학설이 난무하지만, 모두 명확하지 않다.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를 떠올리지만, 피라미드는 이집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흙과 벽돌, 암석 등을 이용하여 정방형(正方形)의 각추형(角錐形), 원추형(圓錐形) 등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드는 그 용도가 밝혀진 것도 있고 밝혀지지 않는 것도 있으며, 문화에 따라 무덤, 신전, 제천단 등의 다양한 용도로 지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슈메르 문명의 지구라트를 비롯한 이집트의 피라미드 숫자보다 더 많은 피라미드가 라틴 아메리카에 있고, 동남아와 중국과 우리나라, 아프리카 일부와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더 큰 보스니아의 피라미드 등 지구촌 곳곳에 피라미드가 산재해 있다.

 

 

 

 

 

 

 

 

최근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피라미드 중에서도 약 4,500년 전에 건설된 대(大) 피라미드, 곧 쿠푸 피라미드와 관련된 아주 재미있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이집트 학자가 아닌 국제연구진이 우주에서 쏟아지는 우주선(宇宙線, cosmic rays) 입자 뮤온을 이용한 방사 촬영법으로 쿠푸 피라미드에서 길이가 30m가량 되는 비밀의 공간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반면, 이집트 피라미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이집트 학자들은 외국 연구진이 발견한 것은 대형 피라미드 안에 수많은 공간이 있는데 그중에서 하나의 공간을 더 발견했다고 해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도 외국 연구진이 이집트의 법률과 규정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어원은 학자마다 내세우는 바가 제각각이다.

 

이집트인들은 메르(mer), 기하학의 높이 페레무스(peremus) 그리스어 피르(pry, 불) 또는 피라미스(pyramis) 등을 피라미드의 어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직도 피라미드 어원은 베일에 싸여 있다.

 

 

 

스핑크스의 어원 역시 피라미드와 같이 명확하지 않다.

 

스핑크스의 어원도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며 주장하는 바가 달라 피라미드 어원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스어의 '단단하게 묶다(sphink)', '교살하다(strangle)' 등 여러 주장이 있고, 스핑크스가 이집트 파라오 또는 태양신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든 세게 4대 문명의 발상지 나일강의 이집트 문명

http://gdlsg.tistory.com/1916

 

 

 

세계 7대 불가사의 쿠푸 왕, 카프레 왕, 멘카우레 왕의 3개 피라미드가 있는 이집트 기자(Giza) 피라미드는 이집트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약 4,600년 전 이집트의 제4왕조 시기(BCE 2600년경, 약 1백 년 간 존속) 쿠푸 왕이 생전에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집트 피라미드 중에서도 쿠푸 왕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피라미드는 한 변의 길이와 높이가 각각 230m와 146m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기자의 쿠푸 왕 피라미드는 석회암과 화강암의 블록이 약 230만 개를 쌓았고, 블록의 평균 무게는 2.5t 정도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와 함께 이집트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스핑크스다.

스핑크스는 이집트 제4왕조의 카프레 왕이 처음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에서 가장 큰 스핑크스는 이집트 기자의 세 피라미드 앞에 있는 스핑크스로 쿠푸왕 피라미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카프라 왕 피라미드와 연결되어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기자 쿠푸 왕 피라미드 앞에 있는 스핑크스는 석회암을 깎아 만들었다.

스핑크스는 머리는 사람이고 몸통은 사자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길이 70m, 높이 20m에 이른다.

 

 

 

 

 

 

 

 

현대 학자들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피라미드가 과학, 수학, 기하학, 토목, 건축 등 인간의 노동과 모든 학문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진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극찬한다.

 

수천 년을 온전하게 내려온 이집트 피라미드는 15세기경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피라미드 전체를 덮고 있던 얇은 석회암 패널이 떨어져 나가 블록을 쌓아 놓은 듯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BCE 484~BCE 425 추정)는 '기자의 피라미드는 2만 명이 3개월씩 교대로 20년 동안 만들어졌다.'라고 주장했고, 헤로도토스 기록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기반으로 수만 명에서 10만 명이 20년에서 30년 정도 걸려 피라미드가 완성됐다는 학설(學說)이 오랜 시간 동안 퍼지면서 마치 그것이 정설인 양 굳어졌다.

 

 

헤로도토스는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가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는 큰 착오를 범했다.

2,500년 전 그리스 학자가 본 피라미드는 만든 지 2,000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그때까지도 피라미드 원형이 잘 보존됐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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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borah 2017.11.18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라미드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미술사 시간때 배운 기억이 나네요. 정말 대단한 지혜가 엿 보이는 건축물이였죠.

  2. 버블프라이스 2017.11.19 1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는 언제 봐도 신비롭습니다 ^^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태평양 남동부 외딴섬, 칠레에서 3,700여 km 떨어진 이스터섬의 모아이 거대석상

세계 7대 불가사의로 900개에 달하는 석상이 남아있는 칠레 이스터섬 모아이 거대석상

 

 

 

 

 

 

 

 

 

 

 

뮤대륙 문명의 흔적,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 흔적, 폴리네시아인이 이주해 만든 문명 등 아직도 신비주의적인 이야기와 여러 가설이 제기되고, 온갖 설(說)이 난무하는 곳이 바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모아이 거대석상이 있는 칠레 이스터섬이다.

 

 

지금도 칠레의 이스터섬이 문명권에서 아주 먼 곳에 있지만, 과학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의 이스터섬은 단순히 문명권에서 먼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섬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스터섬은 문명으로부터 고립된 섬이었으면, 원주민은 베일에 싸인 문명의 흔적을 남겼다.

 

 

 

 

 

 

 

 

 

900개에 달하는 모아이 거대석상이 있는 이스터섬은 현재 칠레의 영토이지만 태평양 동쪽으로 무려 3,700여 km 떨어진 섬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칠레 이스터섬의 모아이 거대석상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이스터섬의 원주민은 이스터섬을 '라파 누이'라고 부른다. 라파 누이는 큰 섬, 거대한 섬, 세상의 중심이란 의미다.

 

 

1722년 현재의 호주를 찾기 위해 항해에 나섰던 네덜란드 출신의 야코브 로헤벤이 태평양 남동쪽의 외딴섬을 발견했다.

 

로헤벤이 이스터섬을 발견한 날은 서양 기독교의 부활절(Easter)로 4월 5일이었다.

그래서 섬의 이름도 자기가 발견한 날짜를 기념하여 부활절(이스터)이라고 지었다.

 

 

 

 

 

 

 

 

 

 

현재 학계에서 가장 유력한 가설은 10세기경에 이스터섬에 들어온 원주민이 자리를 잡을 때만 해도 이스터섬에는 숲도 있고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로헤벤이 이스터섬을 발견했을 당시에 이스터섬은 나무를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풀밭이었고, 원주민은 약 3천~5천 명 정도였다.

그러나 외부인이 들어오면서 가져온 천연두 등의 질병과 노예로 팔려가는 등 200년이 지난 19세기에는 이스터섬 원주민은 100여 명 까지 숫자가 줄었다. 그리고 1884년 칠레의 영토가 편입됐다.

 

 

 

학자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이스터섬 원주민 숫자가 2만~3만 명 정도로 늘어나면서 이스터섬 환경은 파괴됐고 부족 간의 싸움과 질병 등으로 인구가 대폭 감소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터섬의 모아이 거대석상을 만들고 살았던 원주민의 문명이 몰락한 것은 결과적으로 외부에서 들어온 서양인 때문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칠레 이스터섬의 모아이 거대석상은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혹자는 종교적인 이유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채석장에서 수 km 떨어진 곳에 세워진 모아이 석상은 평균 4~5m 정도이며석상 위 올려진 가장 큰 모자 형태의 돌은 12t에 달하며, 가장 큰 거대석상은 21m에 무게가 160t이라고 한다.

 

 

화산암으로 만들어진 모아이 거대석상에는 받침대가 있으며, 이스터섬의 작은 모아이 석상도 각각 석단(石壇)을 갖고 있었다는 연구 보고도 있었다.

 

 

 

 

 

 

 

 

칠레의 이스터섬 모아이 거대석상은 절반 이상이 땅속에 묻혀 있고, 밖으로 드러난 모습은 다리가 없고 머리에 모자를 쓴 듯한 모양으로 세워져 있다.

 

 

어떤 학자는 약 1만 3천에서 1만 2천 년 전에 이스터섬 모아이 거대석상이 세워졌고, 폴리네시아인이 이주하고 약 7백여 년 전에 모자가 씌워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스터섬 채석장에는 아직도 미완성된 채 남아 있는 여러 석상 조각이 남아 있다.

 

 

 

 

 

 

 

 

 

 

칠레 정부는 소위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이스터섬의 모아이 거대석상이 선정되든 안 되든 개의치 않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칠레 이스터섬의 모아이 거대석상은 아직도 지구촌의 여러 학자가 의문을 갖고 연구하고 있으며, 거대석상의 존재 자체가 이미 불가사의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사실은 칠레 이스터섬의 모아이 거대석상은 석상의 조성 경위와 건립 목적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기록 자체가 전혀 없는 상태의 이스터섬 역사를 학계에서 정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단지 현대문명의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여러 가설이 주장되는 가운데 설득력이 있는 학설은 있을 수 있지만, 아직도 세계 7대 불가사의 칠레 이스터섬 모아이 거대석상은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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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7.11.12 0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가시의...
    잘 보고가요.

    즐거운 휴일 되세요^^

  2. 버블프라이스 2017.11.12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계 7대 불가사의 칠레 이스트섬 모아이 거대석상은 어떤 목적으로 설계가 됐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니 정말 궁금합니다^^ 나중에 언젠가는 시간이 지나서 불가사의 한 비밀도 밝혀지겠죠?

  3. 죽풍 2017.11.12 2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리장성은 대규모로 인력동원 등이 불가사의한 측면이 있지만,
    이스터 섬 모아이 석상을 세운 배경과 이유 등 그 자체가 의문의 연속입니다.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힌두교와 불교가 혼합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크메르제국의 영광을 그대로 간직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캄보디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세계문화유산이며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앙코르와트와 현대사의 비극 킬링필드 대학살이다.

 

크메르제국은 9세기 초부터 15세기 중엽까지 인도차이나반도 대부분을 차지하며 동남아시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제국으로 현재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을 남겼지만, 크메르제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킬링필드 대학살은 1975부터 1979년까지 급진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루주(붉은 크메르)에 의해 자행된 대학살로 200만 명의 캄보디아 국민이 학살을 당했고, 약 6만여 명의 승려가 학살됐다.

 

 

 

 

 

 

 

 

 

 

캄보디아는 미얀마와 함께 대표적인 불교국가지만, 크메르제국 당시에는 힌두교와 불교 등이 공존하고 있었다.

크메르제국 통치 당시 통치자의 종교와 주변국의 침략과 민심 등에 의해 종교의 주도권이 바뀌기도 했다. 

 

 

캄보디아는 현재 인도차이나반도 남서부에 있지만, 크메르제국 당시에는 인도차이나반도 대부분을 지배했다.

802년 자야바르만 2세가 크메르제국을 세우고 인도차이나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크메르제국을 세운 자야바르만 2세(재위 802~850 추정)는 독실한 힌두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수르야바르만 2세(1113~1145)다. 

크메르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불리며 가장 번성한 제국을 만든 자야바르만 7세(1125~1215)로 불교를 신앙했다.

 

 

 

 

 

 

 

 

 

자야바르만 7세 이후 크메르제국의 국력은 점차 피폐해져 갔다.

 

 

혹자는 크메르제국이 멸망한 이유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는 건기가 지속하면서 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에 멸망에 이르렀다고 주장도 있고, 샴족에 의해 앙코르와트 유적이 파괴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크메르제국의 앙코르와트는 밀림에 속에 묻히게 된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크메르제국의 영광이 살아있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크메르제국이 문을 닫은 지 수백 년이 지난 1860년 프랑스의 앙리 무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크메르제국의 전성기였던 12~13세기경에 만들어진 힌두교와 불교가 혼재된 건축물이다.

 

 

혹자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는 개인과 단체 등이 각기 선정 기준을 정해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크메르제국이 건설한 앙코르와트를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인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앙코르와트는 크메르어 왕의 도시, 즉 도읍을 뜻하는 앙코르와 사원을 뜻하는 와트가 합성된 말이다.

우리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앙코르와트는 여러 곳에 산재한 앙코르 유적지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두 종교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으면서도 크메르제국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의 대부분 사암으로 만들어졌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크메르제국의 건축물 앙코르와트는 약 40년의 기간 동안 수십km 떨어진 곳에서 수천 개의 돌을 운하를 통해서 운반해 신전과 궁전을 지은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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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7.11.11 12: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세계 7대 불가사의 크메르제국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대해 몰랐던 정보를 공부하고 갑니다^^ 날씨가 화창하니 정말 좋습니다.
    상쾌한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2. 청결원 2017.11.11 16: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대불가사의 관해 잘 보고 가네요

  3. 죽풍 2017.11.11 2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킬링필드와 앙코르와트의 캄보디아.
    불자로서 아직 앙코르와트를 여행하지 못했네요.
    좋은 공부하고 갑니다. ^^

무굴제국의 샤자한 황제가 지은 무덤 형식의 궁전 인도 타지마할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무굴제국의 문화유산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인도 타지마할

 

 

 

 

 

 

 

 

 

 

 

인도의 타지마할은 대리석으로 지어진 궁전 형식의 묘지로 외국인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인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인도 타지마할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인도 인구는 약 13억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슬람교 인구는 약 1억 7천만 명 정도로 15%가 안 된다.

인도의 일부 힌두교 신도는 이슬람 건축물 타지마할이 인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굴제국은 본래 중앙아시아 기마민족의 후예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인도 타지마할을 지은 무굴제국의 5대 샤자한 황제는 몽골제국 칭기즈칸의 방계 후손이 된다. 

 

 

칭기즈칸(1162~1227)의 몽골제국은 불패의 신화를 만든 무적이 군대로  유목민족이 세운 마지막 유목제국 티무르제국으로, 그리고 티무르제국을 세운 티무르(1336~1405)의 5대손 바부르(1483~1531)가 인도 북부를 점령하면서 무굴제국(1526)을 세웠다.

 

무굴제국을 세운 바부르는 몽골제국의 후예로 제국의 재건을 꿈꾸며 몽골의 아라비아어인 무굴을 나라 이름으로 정했다.

무굴은 '몽골'이란 뜻이다.

 

 

 

 

 

 

 

 

 

 

이슬람 국가 무굴제국은 지속해서 영토를 확장하여 17세기에 인도 전역을 지배한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인도의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자한(1592~1666)이 세 번째 부인인 뭄타즈 마할이 죽자 부인을 애도하며 아주 화려하고 거대하게 지은 궁전 형식의 묘지다.

 

 

15세기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무굴제국에도 서양 세력의 침략이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1600년 무굴제국에 설립된 동인도회사는 200년 동안 인도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게 되면서 엄청난 영토를 소유한다.

331년간 존속하여 인도를 통일하고 여러 종교를 포용했던 이슬람 무굴제국은 1857년 영국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무굴제국의 건축물로 흔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라고 일컬어지는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인도의 타지마할은 무굴제국 6대 황제로 등극한 아우랑제브를 낳은 생모 몸타즈 마할의 무덤이다. 

타지마할은 '마할의 왕관'이란 뜻이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무굴제국의 문화유산인 인도의 타지마할은 페르시아 양식으로 세워진 무굴제국의 두 번째 황제 후마윤 황제의 묘를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러시아, 스리랑카, 티베트, 중국 등지에서 가져온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무굴제국의 건축물인 인도 타지마할은 페르시아, 인도, 이슬람 등의 건축 양식이 융합된 건축물로 묘와 연결된 드넓은 정원과 수로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켰다.

 

 

 

 

 

 

 

 

 

 

무굴제국의 샤자한 황제의 애절한 사랑이 그대로 녹아있는 인도 타지마할은 천문학적인 돈과 이탈리아, 프랑스, 페르시아 등의 뛰어난 건축가와 2만 명에 이르는 인력을 동원하여 22년간 지어진 묘지다.

 

 

힌두교도가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인도에서 무굴제국 당시 지어진 이슬람 건축물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곱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면, 더욱이 인도의 토착세력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정복왕조가 만든 타지마할에 대해 수시로 시비를 제기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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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7.11.05 2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양이 조화롭고 너무 아름답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2. 버블프라이스 2017.11.07 0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대 불가사의 무굴제국의 유산 인도 타지마할의 문양은 조화롭고, 건축양식이 언제봐도 아름답습니다.

나바테아인이 만든 장밋빛 고대도시 요르단 페트라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 황금빛의 신비로운 고대도시 요르단 페트라

 

 

 

 

 

 

 

 

 

 

 

예나 지금이나 요르단은 사막과 볼모의 산 등이 국토 대부분이 척박한 땅인 나라다.

신비를 간직한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고대도시 페트라는 요르단 남쪽의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산악 도시다.

 

 

사막 유목민들의 치열한 생존경쟁 끝에 나바테아인(나바티안)이 약 1천 m에 육박하는 고지대 도시를 건설했고 붉은 사암을 깎아 사원 등 여러 건축물을 만들었다.

 

 

찌는듯한 열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사막 한가운데 기암절벽의 협곡을 지나면 2천여 년 전에 만들어진 페트라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요르단 페트라는 1985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 됐다.

 

 

 

 

 

 

 

 

 

 

 

본래 요르단 페트라 지역의 원주인은 BCE 13~16세기경 번영을 누렸던 '에둠 왕국' 사람들이었으며,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아인은 BCE 6~7세기경에 이주한 민족이다.

 

 

  

BCE 6~7세기경 정착한 나바테아인이 BCE 3세기경 페트라를 중심으로 나바트 왕국을 세웠다.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고대도시 요르단 페트라에서 발견된 유적만 해도 수천 곳이 넘고, 아직도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인 고대도시 페트라 유적지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신 세게 7대 불가사의 요르단 페트라의 고대도시 유적 대부분이 BCE 1세기 전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바트 왕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교역로가 되면서 나바테아인은 많은 부를 축적했지만, 로마제국에 멸망하고 만다.

 

 

 

 

 

CE 106년 로마가 요르단 페트라를 정복하면서 고대도시 페트라 주변에는 로마 원형극장을 비롯하여 여러 건축물이 세워졌다.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요르단 페트라 유적은 고대 나바테아인의 협곡 속 고대도시와 로마가 건설한 유적 등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 됐다.

 

 

황량한 사막의 산 위에 만들어진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고대도시 요르단 페트라를 붉은 보석, 장밋빛 고대도시, 황금빛 고대도시 등으로 부른다.

'바위'라는 뜻의 요르단 페트라는 장밋빛 협곡, 황금빛 협곡을 '시크'라고 하며, 약 2km의 시크를 통과하면 장엄한 페트라를 만나게 된다.

 

 

 

 

 

 

 

 

 

 

페트라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사암을 깎아 만든 '알카즈네' 신전이다.

 

혹자는 사암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알카즈네를 무덤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고대도시 페트라의 시크(협곡) 끝쪽에는 사람과 동물이 마시는 물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무덤과 사원, 수로와 물탱크, 목욕탕 등과 약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은 고대도시 페트라가 당시 교역의 중심지였음을 알려준다. 요르단 페트라의 여러 시설을 볼 때 수만 명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요르단 페트라 유적은 동양과 헬레니즘 건축 양식이 융합된 독특한 건축물을 만들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사암을 깎아 만들었으니 조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바테아인의 유적과 로마의 유적이 함께 남아있던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고대도시 요르단 페트라는 6~7세기경 지진이 발생했고, 이후 이슬람의 아랍인과 십자군이 페트라를 정복했고, 이후 베드인이 페트라 주변에 거주하고 살았다.

 

 

 

1812년 스위스 출신의 요한 루비트히 부르크하르트가 모래 속에 파묻혀 폐허가 된 신 세게 7대 불가사의 요르단 페트라를 세상을 알리게 된다.

20세에 들어서 발굴을 시작한 요르단 페트라에서 BCE 7천 년경 사람이 거주한 흔적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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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7.10.29 2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비 가득한 불가사의한 건축물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

  2. 버블프라이스 2017.10.30 06: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에서 보던 것을 다시 공부하고 갑니다.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고대도시 요르단 페트라 관련글 잘 보았습니다^^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 춘추전국시대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계속 늘어나는 만리장성

진나라 진시황의 장성(長城)이 한반도 평양까지 연결되어 4만 리 장성이 된 중국 만리장성

 

 

 

 

 

 

 

 

 

 

 

중국 한족의 역사가 5천 년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중국의 역사는 한족(漢族)이 아닌 이민족, 곧 오랑캐 짐승이라고 부르던 이민족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국 한족이 지배한 왕조보다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한 역사가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역사는 한족이 수천 년 동안 업신여기던 오랑캐 민족이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을 지배했다.

 

 

 

중국의 영어 국명(國名) 차이나(China)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 BCE 221~BCE 206)나라에서 유래했다.

진시황은 자신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황제, 역사상 최초의 황제라는 의미로 '시(始)' 자를 붙여 시황제(始皇帝)라고 자칭했다. 

 

 

현재의 중국은 한족을 비롯한 56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지만, 한족(漢族)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한족(漢族)은 초나라 항우를 제압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의 한나라(漢, BCE 206~ CE 220)에서 유래했다.

 

 

 

 

 

 

 

 

 

 

중국은 일본과 함께 역사를 고무줄처럼 늘려놓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나라다.

중국의 만리장성 역시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발표된 후 돌과 흙으로 만들어진 만리장성이 고무줄처럼 3배 이상 길어졌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국의 만리장성은 진나라를 창업한 진시황이 북쪽 기마민족의 침입이 두려운 나머지 춘추전국 시대 때 구축됐던 기존 토성(土城)을 보수하고 새롭게 증축해 연결하기 시작한 것이 최초의 만리장성이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현재 고구려의 천리장성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을 억지로 연결해 만리장성의 4배가 넘는 4만 리 장성이 되었고, 앞으로도 얼마나 늘어날지 모른다.

 

진나라의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이유는 강력한 북방 유목민족의 공격이 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중국 한족은 북쪽의 이민족을 흉악한 노예라는 흉노(匈奴)족이라고 불렀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된 중국의 만리장성은 북방 이민족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쌓은 성벽이지만, 목적을 놓고 보면 만리장성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진시황은 북방의 유목민족, 즉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보수하고 축조한 만리장성의 위치는 간쑤성 남부 민현에서 랴오닝성 요양까지였으며 지금과 같이 홍보용으로 세상에 보여주는 돌로 쌓은 석성이 아니고 대부분 흙으로 쌓은 성이었다.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漢)나라 때부터 명나라까지 계속 보수되고 축조되면서 만리장성의 길이가 계속 늘어났다.

중국 만리장성의 현재 모습은 명나라 때 완공된 형태로 동쪽의 허베이성 산해관에서 서쪽의 간쑤성 가욕관이 명나라 때 만리장성의 길이와 위치였다.

 

 

 

 

 

 

 

 

 

 

명나라 때 완성된 중국 만리장성은 성벽과 봉화대, 관(關) 등으로 구성되어 온전한 성곽으로서의 모습이 된다.

당시에 중국의 만리장성 길이는 만 리(里)를 넘어 그동안 장성(長城)으로 불리던 성벽이 현재와 같은 만리장성의 위용을 갖추면서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됐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현재 고구려 천리장성을 포함하면서 중국 영토를 넘어 한반도의 평양 남쪽인 황해도 수안까지 들어왔다.

춘추전국시대와 진나라 진시황을 거쳐 현재까지 중국은 약 2천 7백 년 동안 만리장성을 쌓았고 늘려 왔다.

 

춘추전국시대의 토성(土城)을 시작으로 한 만리장성의 역사는 명나라 때까지 공사 기간만 무려 근 2천 년 가까이 된다.

 

 

 

 

 

 

 

 

 

뉴세븐 원더스재단은 지난 2007년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발표했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되기 직전부터 중국은 6,300여 km의 만리장성의 길이를 다시 측정하기 시작해 2009년에 8,851km라고 발표했다.

 

 

 

중국은 만리장성의 길이를 계속 조사한 결과 2012년 2만 1196.18km라고 발표한다.

우리나라는 10리가 4km, 중국은 10리가 5km다.

 

 

중국의 발표로 만리장성은 유사 이래 가장 거대한 건축물로서 4만리장성이 된다.

 

 

 

 

 

 

 

 

 

 

진나라 진시황이 북방 유목민족, 즉 흉노족(훈족)이 무서워 진시황 때부터 보수하고 축조하기 시작한 만리장성은 현재도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있는 중국의 만리장성은 춘추전국시대까지 포함한다면 2,700년의 역사다.

 

 

 

 

 

 

한마디로 최초로 장성(長城)을 면모를 갖춘 진나라 진시황으로부터 명나라 때까지 중국 역대 임금과 근현대의 중국 통치자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국의 만리장성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건축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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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10.28 0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2. 죽풍 2017.10.28 18: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만리장성.
    개인적으로 만리장성은 불가사의를 뛰어넘는 기적의 존재라는 생각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

  3. 버블프라이스 2017.10.30 06: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리장성은 언제보아도 미스테리이고, 인간이 저걸 쌓았다고 믿겨지지 않습니다.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피비린내 나는 현장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원형경기장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이탈리아 로마 암피테아트룸 플라비움(콜로세움)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은 로마의 황제부터 노예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적으로 모두가 참여하는 정치와 소통, 여흥의 장이었다.

로마 시민을 위해 건설했다는 로마 콜로세움은 사실 로마 황제가 권력을 과시하고 유지하기 위해 만든 잔혹한 살육의 장이었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목숨을 걸고 대결하는 검투사 경기일 것이다.

로마 로세움은 여러 공연과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그리고 경기장에 물을 채워 모의 해상전투까지도 볼 수 있었던 원형경기장이다.

 

 

 

 

 

 

 

 

 

 

검투사 경기는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즉 거대한 원형경기장이 생기기 약 4백 년 전부터 있었다.

 

검투사들의 대결은 BCE 3세기경 로마와 페니키아(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쟁에서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면서 검투사 대결의 무네라(munera)를 벌이게 했다고 한다.

 

 

 

이후 권력에 눈먼 자들이 자신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사람들의 이목을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는 무네라를 앞다투어 개최했고, BCE 2세기 초에 이르러 로마군의 군사훈련으로 시행했으며, 이후 국가 차원의 행사로 발전하게 된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에서 벌어진 검투사 대결 경기는 노예나 전쟁포로, 범죄자가 가장 많이 참가했지만, 때에 따라서는 여성과 소년, 일반인과 황제까지도 참여했다.

 

로마의 황제가 무네라에 출전할 때는 다치지도 않고 절대 죽지 않게끔 조처를 해놓고 경기에 참여했다.

 

 

 

 

 

 

 

 

 

 

로마 황제 중에서 폭군의 대명사가 된 네로 황제(BCE 37~ 68)가 여성과 소년을 '무네라'에 불러냈다.

 

로마 네로 황제는 64년 대화재가 일어나면서 궁전이 소실되자 정원과 농장, 숲 등을 갖춘 약 15만 평 규모의 황금 궁전을 짓는다.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에는 인공호수가 있었는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즉위하고 인공호수 위에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짓는다.

 

 

 

콘크리트와 돌과 쇠, 나무 등을 이용해서 만든 로마 콜로세움은 당시로써는 규모와 기술 면에서 최고의 건축물이다.

그동안 노천극장과 규모가 작은 원형경기장은 도시 외곽에 있었지만,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 인공호수 위에 세워진 콜로세움은 로마의 중심에 건설된 것이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은 베스파시아누스 로마 황제가 CE 72년 짓기 시작해 아들 티투스 황제 때인 CE 80년 8년 만에 완공된다. 티투스는 로마 콜로세움이 완공되자 대대적으로 무네라(munera)를 개최한다.

 

 

 

 

로마제국의 위대한 5명의 황제, 즉 오현제(五賢帝)에 이름을 올린 트라야누스 황제(CE 53~117)는 109년에 100여 일 동안 약 1만여 명의 검투사를 대결에 투입하기도 했다.

 

 

잔혹한 피와 한이 서려 있는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은 2007년 '뉴 세븐 원더스'라는 사설 기관이 실시한 인기투표로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정했다. 로마 황제가 통치수단으로 건설한 콜로세움은 위대한 건축물이지만, 잔혹한 피로 얼룩진 유산이기도 하다.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영토확장에 나선 로마 제국은 유럽과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 지역에 여러 원형경기장을 만들었다.

식민지를 도로로 연결해 사통팔달 뻗은 길로 군대를 이동하고 효과적으로 식민지를 통제했다.

 

 

 

 

 

 

 

 

 

 

 

 

이탈리아 로마의 암피테아트룸 플라비움 원형경기장이 콜로세움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8세기 들어서부터다.

영국 출신의 수도승 베다 베네라빌리스(672 또는 673~735)영국 교회사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로마의 역사와 콜로세움, 그리고 세계의 역사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글을 쓰면서 이후 콜로세움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약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은 타원형의 4층 구조로 둘레 527m, 높이 48m, 긴 곳의 지름은 188m, 짧은 곳의 지름은 156m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의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검투사 경기는 435년까지 이어졌고, 동물사냥 경기는 523년까지 계속됐다.

 

17세기 프랑스의 시인 라 퐁텐(1621~1695)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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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10.22 0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

  2. 죽풍 2017.10.22 2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기 80년에 세워졌다는 콜로세움 원형경기장.
    직접 봤는데 정말 믿어지지 않는 건축물이더군요.
    1994년 여행 당시 생각난 것이 외계인이 지었는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 발달한 문명세계가 존재했는지 헷갈렸습니다.
    불가사의한 건축물입니다. ^^

  3. 버블프라이스 2017.10.24 0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콜로세움과 검투사를 떠올리면
    영화 '글레디에이터' 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오늘은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과 검투사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갑니다^^

잉카문명이 남긴 위대한 건축물 태양의 도시 페루 마추픽추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전설 속의 잃어버린 공중 도시 페루 마추픽추

 

 

 

 

 

 

 

 

 

 

 

 

일반적으로 미국의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이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잉카문명의 위대한 유산인 페루 마추픽추를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하이럼 빙엄은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잉카문명이 세운 위대한 건축물 페루 마추픽추를 전 세계에 알린 사람일 뿐다.

미국 예일대학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1875~1956)은 본래 잉카문명을 탐사하러 남아메리카에 간 것이 아니다.

 

빙엄이 남아메리카를 방문한 목적은 본래 남아메리카의 위대한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를 연구해 책을 쓰려고 간 것이다.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19세기 남아메리카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다섯 나라를 스페인 정복자로부터 독립시킨 위대한 독립 영웅이다.

 

 

시몬 볼리바르의 행적을 찾아 나서면서 잉카문명 유적을 탐험하던 중 마추픽추 인근 지역에 살던 원주민으로부터 산꼭대기에 잉카문명의 유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페루 마추픽추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인근 지역에 살던 잉카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911년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 북쪽에서 약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잉카문명이 세운 태양의 도시 마추픽추를 보게 된다.

 

 

 

 

 

 

 

 

 

해발 2400여 미터가 넘는 고지대에 건설된 페루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이란 의미라고 한다.

마추픽추를 수호하듯 '젊은 봉우리'란 뜻의 와이나픽추가 마추픽추 옆에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유물을 약탈한 서양의 침략자들이 그랬듯이 하이럼 빙엄 역시 잉카문명의물 수천 점을 연구목적이란 미명아래 반출했고, 미국은 아직도 잉카문명의 유물을 반환하지 않고 있다.

 

 

중남미의 마야문명과 아스테카 문명, 남아메리카의 잉카문명은 약 1만여 년 전부터 아시아에서 배링 해를 건너 북아메리카를 거쳐 남아메리카까지 남하해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다.

 

 

 

 

 

 

 

 

 

 

잉카문명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지만, 최대 약 4천 년 전에서 2천 년 전부터 문명을 이루고 살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페루 중부에서 발견된 약 5천여 년 전의 카랄 문명, 페루 북부의 모체계곡에서 발견된 모체 문명은 약 3천 년 전에 건설된 고대 잉카문명의 유적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잉카문명의 잉카제국은 13세기에서 16세기경에 약 8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의 드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문명이다. 페루 마추픽추를 비롯한 대부분의 잉카문명 유적들도 대부분 이때 만들어졌다.

 

 

현재 잉카문명의 역사는 예로부터 전해오던 잉카문명의 전설(신화)이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정복하고 나서 문자로 기록된 것이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잉카문명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인 태양의 도시가 페루 마추픽추다.

 

 

 

 

 

 

 

 

 

16세기 중엽 중남미 지역에서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대살육이 자행됐다.

흔히 대항해시대라고 말하는 16세기는 유럽의 제국주의가 신대륙을 정복한 때였다.

무적함대를 보유한 침략자 스페인은 표면적으로는 가톨릭 전도였지만, 식민제국 건설을 위해 무자비한 살육을 감행했다.

 

 

16세기 탐욕스러운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아 나섰다.

황금에 눈이 먼 피사로는 200여 명의 군사로 닥치는 대로 살육을 자행했다.

 

 

 

중앙아메리카에서부터 남아메리카까지 6천만 명에 이르는 원주민이 침략자의 총칼과 그들이 가져온 천연두를 비롯한 전염병으로 죽어 갔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제국을 멸망시키고 잉카문명이 세운 수많은 건축물을 파괴하여 그 위에 교회와 수도원 등을 지었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페루의 마추픽추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페루는 잉카문명, 잉카제국 하면 페루를 떠올린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잉카문명이 만든 공중도시 페루의 마추픽추는 작은 돌과 수십 톤에서 수백 톤에 달하는 거석을 옮기고 다듬어 도시를 만들었다.

 

 

페루 마추픽추를 비롯한 잉카문명의 유적은 현대 건축가들도 감탄할 정도로 너무도 정교한 석조기술로 만들어졌다.

페루 마추픽추에는 신전, 가옥, 창도 등 2백여 개의 석조 건물과 계단식 밭과 수로 등 1만여 명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잉카문명의 낳은 최고의 걸작 페루 마추픽추는 공중도시라고 말한다.

 

페루의 마추픽추는 땅에서는 한눈에 볼 수 없고, 하늘에서 볼 때만 마추픽추 전체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세게 7대 불가사의 페루 마추픽추는 태양신의 후예로 잉카문명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태양의 도시다.

 

 

 

페루 마추픽추는 왜? 높은 산 위에 건설됐는지, 언제 만들어졌는지, 왜? 사람들이 떠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학자에 따라 주장하는 학설이 다르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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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7.10.21 19: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역사책에서 봣었던 것 같은데요, 제가 모르는 내용들이 정말 많네요^^;;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잉카문명 페루 마추픽추' 관련해서 역사공부를 하고 갑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2. 죽풍 2017.10.21 2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추비추는 늙은 봉우리, 와이나픽추는 젊은 봉우리군요.
    세계 7대 불가사의답게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마야문명이 남긴 위대한 건축물 세계문화유산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앙아메리카 치첸이트사 피라미드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징으로서 80여 개 피라미드가 남아 있는 이집트는 오랫동안 피라미드 국가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지구촌에서 가장 많은 피라미드가 남아 있는 곳은 이집트와는 지구 정반대 쪽의 중앙아메리카 유카탄도 인근에서 거대한 문명을 이룩하고 살았던 마야문명이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체첸이사 피라미드도 마야문명의 유적지다.

 

 

 

최근까지 발견된 마야문명의 위대한 건축물 치첸이트사 피라미드를 비롯하여 무려 2,400여 개에 달하며,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피라미드도 많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문명은 약 5천 년 전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이주하기 시작하여 약 4천 년 전부터 마야문명을 이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마야문명의 꽃으로 불리는 치첸이트사는 5세기 전후에 세워진 문명으로 마야문명 중에서도 전성기 문명이다.

 

 

 

수천 개의 피라미드 유적이 남아 있는 마야문명 유적 중에서 치첸이트사는 문명의 꽃으로 불린다.

 

마야문명은 마야인이 만든 문명이지만, 마야인이 여러 부족으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특정 부족이 지배세력이 되는 과정에서 

치첸이트사의 유적은 이트사족과 톨텍족 등의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치첸이트사'는 '세노테(우물) 곁에 사는 이트사족의 집'이란 의미다.

'세노테'는 석회암의 지하수가 드러난 천연 우물을 말한다.

 

 

정사각형의 피라미드와 원형의 성스러운 우물 '세노테'는 마야문명의 문화 핵심이다. 

최근에 정사각형의 쿠쿨칸 피라미드가 원형의 '세노테' 위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쿠쿨칸 피라미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학자들을 여러 번 놀라게 했다.

 

1931년 30m의 쿠쿨칸 피라미드 안에 20m 피라미드가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그 내부에 10m의 피라미드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약 5백 년의 시차를 두고 3번에 걸쳐 피라미드 위에 피라미드가 지어진 것이다.

1년의 날수를 의미하는 365개의 계단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야문명의 치첸이트사 피라미드를 보면 천문학, 수학, 과학을 바탕으로 정교하면서도 뛰어난 기술력이 집약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야문명이 남긴 위대한 건축물 피라미드는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남동부, 과테말라, 유카탄반도 등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 마야인은 20진법을 사용했다. 역법이 발달한 마야문명에 남아 있는 수많은 유적은 하늘의 별자리 위치와 일치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세계문화유산이며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정된 마야문명의 꽃 치첸이트사에는 신전, 제단, 천문대 등의 여러 피라미드와 경기장, 시장 등이 자리한 도시 문명이다.

 

 

 

 

 

 

 

 

 

 

마야문명의 멸망한 원인에 대해서는 기후변화와 가뭄이 원인이 되어 멸망했다는 설과 내란과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멸망했을 것이라는 설 등이 분분하다. 16세기 아스테카 문명을 멸망시킨 스페인 정복자들이 치첸이트사 지역에 왔을 때 이미 텅 빈 도시였다고 한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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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7.10.15 18: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대한 마야문명 세계를 지배하였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2. 버블프라이스 2017.10.16 1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라미드의 건축양식은 언제 \봐도 신비스러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피라미드가 있군요..
    만약 새로 발견이 된다면, 관련 유물들이 나오고 조금더 정확한 역사가 기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마야문명 치첸이트사 피라미드 잘 읽고 갑니다^^

  3. 굳라이프 2018.04.19 2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접 가봤는데, 정말 대단해요! 경사가 높아서 올라가는게 쉽지 않을 정도였던 기억이 나네요! 잘 보고 갑니다!

인류 문명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 -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스위스의 베르나르드 베버가 세운 뉴세븐원더스 재단은 지난 2007년 7월 7일 1999년부터 6년 동안 인류 문명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기존(고대와 중세)의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새로운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을 선정해 발표했다.

6년 동안 전 세계 인구 중 1억 명 가까이가 투표에 참여했다고 한다.

 

 

2011년 그 실체도 불분명한 사설단체(스위스 뉴세븐원더스 민간재단)가 세계 7대 자연경관을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천민자본주의 습성이 몸에 밴 나라와 관련단체가 앞다투어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에 뛰어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주관한 사설단체와 미끼를 덥석 문 나라들은 세계 7대 자연경관의 위대한 자연문화 유산이라는 허울뿐인 명예보다는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해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에 미친 듯이 경쟁했다.

 

 

선정 주관단체와 선정을 바라는 나라가 모두 돈의 노예가 되었던 희대의 사건,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의 웃지 못할 코미디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은 같은 사설단체에서 선정해 발표했다.

일부에서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과 세계 7대 자연경관을 혼동하고 있다.

 

 

인류 문명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은 인류 문명이 남긴 위대한 흔적으로 인공적으로 만든 건축물을 말한다. 그리고 세계 7대 자연경관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이 오묘한 손길로 빚은 경이로운 자연환경으로 그랜드 캐니언, 아마존 밀림, 갈라파고스, 킬리만자로 등의 자연적인 경관을 말한다.

 

 

 

 

 

 

 

 

 

 

 

기원전 2~3세기에 그리스 철학자 필론의 저서 세계 7대 경관』을 소개하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문명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필론의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뿐이고, 중근동과 그리스(헬레니즘 문화권)의 지중해 연안 지역에 한정됐다.

 

 

필론은 고대 바빌론의 공중정원, 이집트 쿠푸왕 피라미드,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올림피아 제우스상, 고대 도시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왕의 능묘, 그리스 로도스섬의 크로이소스 거상,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 등 문명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을 세계 7대 경관(세계 7대 불가사의)으로 꼽았지만, 그의 책을 본 극소수만 알고 2천여 년이 흘렀다.

 

 

 

 

 

 

 

 

 

 

 

필론의 책은 17세기까지 로마 교황청 도서관에 묵혀 있다가 발견됐고, 이후 19세기 말 독일의 쇼트가 필론의 세계 7대 불가사의 선정 기준에 자신의 기준을 더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영국의 스톤헨즈,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알렉산드리아 등대, 콘스탄티노플 성의 소피아 사원, 로마의 원형극장, 인도의 타지마할, 클뤼니 수도원,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 등 인류 문명이 남긴 수십 개의 위대한 문화유산이 근대에 들어 선정자와 단체에 따라 각기 다르게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로 선정됐다.

 

 

세계 7대 불가사의와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는 개인과 단체, 또는 국가의 선정 기준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어떤 건축물이든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될 수 있다.

 

 

 

 

 

 

 

 

 

 

 

스위스 베르나르드 베저가 영리 목적 운영하는 사설 민간단체 뉴 세븐 원더스 재단은 6년 동안의 투표를 마감해 2007년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선정해 발했다.

 

 

문명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인 페루 마추픽추, 중국 만리장성, 이탈리아 콜로세움, 인도 타지마할, 멕시코 치첸이트사(마야문명 유적), 요르단 페트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콘크리트 동상)이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에 선정됐다. 

 

 

 

 

 

 

 

 

 

 

콘크리트로 제작한 브라질 예수상을 제외한 모든 건축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사설단체의 일방적인 발표는 공정하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선정에 동의하지 않아도 되지만,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 모두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인류 문명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임에는 분명하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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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10.14 0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가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2. 죽풍 2017.10.15 1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미스터리한 것이 만리장성이 아닌가 싶네요.
    잘 보고 갑니다. ^^

  3. 버블프라이스 2017.10.16 18: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명이 남긴 위대한 유산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은 예전에 책에서 본적이 있는데요,
    다시 재학습을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