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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3대 왕 순조대왕의 부인(왕비)이며 효명세자의 어머니

순원왕후와 안동 김씨 세도정치

 

 

 

 

 

 

 

 

 

 

 

 

 

 

개혁군주 조선의 22대 왕 정조대왕 이산(1752~1800, 재위 1776~1800)이 승하하자 11살의 순조(1790~1834, 재위 1800~1834)가 조선 23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순조가 즉위하자 조선 21대 왕 영조의 계비이며 노론 벽파의 지지를 받고 있던 대왕대비 정순왕후 경주 김씨가 수렴청정을 한다.

 

 

 

순조의 부인이며 효명세자 이영(1809~1830)의 어머니인 순원왕후 안동 김씨(1789~1857, 재위 1802~1834)는 노론 시파의 아버지 김조순과 어머니 청송 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조대왕은 승하하기 전 김조순에게 왕세자 이공(순조)을 잘 보필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김조순의 딸이 이미 왕세자(순조)의 세자빈으로 확정되었으나 삼년상을 치른 후인 1802년(순조 2) 순조와 김조순의 딸 안동 김씨가 가례를 올린다.

 

 

 

정조대왕의 치세를 뒤집은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1803년 말 수렴청정을 거두고 순조가 친정하였다.

이때부터 안동 김씨 세도정치가 시작됐다.

 

 

 

 

 

 

 

 

 

 

 

 

 

 

순원왕후의 친정아버지 노론 시파 김조순은 노론 시파 축출에 앞장섰던 인물과 정순왕후 경주 김씨 외척 세력을 제거해 나갔다.

1805년(순조 5)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노론 시파 김조순은 노론 벽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여 몰락시킨다.

 

 

 

1809년(순조 9)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사이에서 큰아들 이영이 태어났다.

효명세자 이영의 출생은 왕실에 큰 의미가 있었다.

효명세자의 탄생은 조선 19대 왕 숙종 이후 처음으로 왕비가 낳은 적통(적자) 왕자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안동 김씨는 조정의 중요 요직과 지방의 인사권을 거머쥔다.

권력을 전횡한 김조순과 안동 김씨 외척 세력의 눈에는 왕도 안 보였다.

 

 

백성 수탈, 뇌물수수, 부정부패, 매관매직, 조세제도 문란 등 국정 혼란은 극에 달했고 민생은 파탄 났다.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면서 1811년(순조 11) 평안도에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이 파탄 나고 미래의 희망도 사라진 조선 백성 상인, 일부 양반까지 가세하며 승승장구하던 홍경래의 난은 4개월 만에 끝다.

 

 

 

 

 

 

 

 

 

 

 

 

 

 

1812년(순조 12) 순조와 순원왕후의 아들 이영이 4살에 왕세자(효명세자)로 책봉된다.

1819년(순조 19) 효명세자는 풍양 조씨 조만영의 딸(신정왕후 조대비)과 가례를 올린다.

 

 

1827년(순조 27) 효명세자 이영과 세자빈 풍양 조씨(신정왕후 조대비) 사이에서 아들 이환(조선 24대 왕 헌종)이 태어났다.

순조는 국정을 전환하기 위해 1827년(순조 27) 2월 아들 효명세자 이영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정사를 보는 대리청정을 시킨다.

 

 

 

 

 

효명세자는 장인 조만영을 훈련대장으로 임명하고 안동 김씨가 차지하고 있던 몇몇 요직에 풍양 조씨를 등용했다.

순조와 아들 효명세자 이영은 안동 김외척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풍양 조씨 외척 세력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러나 1830년(순조 30) 4월 효명세자 이영이 대리청정 3년 여만인 22세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서로 견제하며 지냈던 양 조씨 외척 세력과 안동 김씨 외척 세력의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1834년(순조 34) 조선 23대 왕 순조가 재위 34년 만에 45세로 승하한다.

1834년(헌종 즉위년) 순조가 승하하자 효명세자의 아들 이환이 조선의 24대 왕으로 즉위한다.

 

8살에 왕위에 오른 헌종을 대신하여 순조의 부인이며 효명세자의 어머니인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한다.

순원왕후는 헌종의 할머니다.

 

 

 

 

1837년(헌종 3) 순원왕후와 안동 김씨 세도정치 세력은 안동 김씨 김조근의 딸(효현왕후)을 헌종의 왕비로 들인다.

1840년(헌종 6) 순원왕후 안동 김씨가 수렴청정을 거둔다.

철인왕후 안동 김씨는 1843년(헌종 9) 16살에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난다.

 

 

 

순조의 부인(왕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거두자 헌종의 어머니이며 효명세자의 부인(조대비) 외척세력인 풍양 조씨가 잠시 국정을 주도한다. 

 

1849년(헌종 15)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왕실의 가장 큰 어른으로서 대왕대비 순원왕후 안동 김씨가 강화도령 이원범을 순조의 양자로 입적하여 조선의 25대 왕 철종으로 만든다. 철종은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의 손자다. 

 

 

 

 

 

 

 

 

 

 

 

 

 

 

철종이 즉위하자 순원왕후는 수렴청정하였고 다시 안동 김씨가 권력을 전횡하였다.

1851년(철종 2) 순원왕후와 안동 김씨는 세도정치를 이어가기 위해 안동 김씨 김문근의 딸(철인왕후)을 철종의 왕비로 맞아들인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가 절정에 오르면서 조선이 껍데기는 전주 이씨의 나라였지만, 실제는 안동 김씨의 나라가 되었다.

 

 

 

순조(순원왕후), 헌종(효현왕후), 철종(철인왕후)의 왕비는 모두 안동 김씨로 인척간이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왕비(안동 김씨)를 등에 업고 권세를 잡았기 때문이다.

 

 

조선 23대 왕 순조, 24대 왕 헌종, 25대 왕 철종의 왕비가 모두 안동 김씨였을 때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급서한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부인만 풍양 조씨(조대비)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발판을 굳건하게 다져 놓은 순조의 부인이며 효명세자의 어머니인 순원왕후 안동 김씨가 1857년(철종 8) 69세로 세상을 떠난다

 

한동안 안동 김씨 세도 정치가 지속하다가 이후 풍양 조씨, 여흥 민씨로 100년의 세도정치가 이어졌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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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borah 2016.10.17 05: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역사이야기는 흥미진지합니다.

  2. 하늘마법사 2016.10.17 1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원왕후 정보 알아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3. 청결원 2016.10.17 19: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원왕후 이야기 잘 보고 가네요

효명세자(익종翼宗,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의 부인 신정왕후 조대비(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 60년 세도정치 - 조선 후기 안동 김씨, 반남 박씨,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 100년

 

 

 

 

 

 

 

 

 

 

 

 

 

 

 

 

조선의 21대 왕 영조(1694~1776)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1745~1805)는 22대 왕 정조대왕 이산(1752~1800)이 승하하자 대왕대비가 되었다.

 

정조와 왕비 효의왕후 사이에는 자식이 없고, 정조와 후궁 수빈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순조(이공, 1790~1834)다.

 

 

1800년 조선의 23대 왕 순조는 즉위와 함께 정순왕후(영조 계비)가 4년 동안 수렴청정을 한다.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반남 박씨 친정도 이때 세력을 얻어 세도정치에 합류하였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 세력에 의해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그만두고 정치력을 잃은 상태에서 1805년(순조 5) 죽는다.

 

정순왕후는 세종대왕과 함께 조선왕조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정조대왕이 이룩한 업적을 지워버렸다.

며느리(혜경궁 홍씨)보다 10살이나 어렸던 정순왕후는 권력에 대한 집착과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전횡하면서 조선이 몰락의 첫발을 내디뎠다.  

 

 

 

 

 

 

 

 

 

 

 

 

 

 

1802년(순조 2) 김조순의 큰딸이 왕으로 즉위한 순조의 왕비(순원왕후 안동 김씨, 1789~1857))가 되었다.    

순조의 장인 김조순으로부터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김조순은 약 1년간 섭정을 하였고 이때부터 안동 김씨가 60년 세도정치를 시작한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는 조선을 몰락의 길로 몰아간다.

 

 

 

효명세자 이영(1809~1830)은 조선의 23대 왕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안동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효명세자 이영은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시작한 김조순의 외손자이기도 했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아래 조선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결국, 삼정의 문란을 혁파하고 안동 김씨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홍경래의 난이 발생한다.

그러나 조선을 뒤엎으려던 홍경래의 난은 관군에게 토벌되면서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게 된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아래 순조는 허수아비 왕으로 전락했다.

효명세자 이영은 1809년(순조 9) 순조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1819년(순조 19) 왕세자로 책봉된 효명세자는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큰딸 풍양 조씨(신정왕후 조대비, 1809~1890)와 가례를 올린다. 효명세자의 부인이 된 세자빈 풍양 조씨는 1827년(순조 27) 아들 이환(조선 24대 왕 헌종)을 낳았다.

 

 

 

 

효명세자 이영은 1827년(순조 27) 19살이 되던 해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견제하기 위해 순조가 대리청정을 명한다.

효명세자는 부인 풍양 조씨(신정왕후 조대비) 일족과 소론 등을 등용한다.

 

효명세자 이영이 약 4년간 대리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 세도정치는 잠시 주춤한다.

잠시 안정을 찾는듯하던 조선은 1830년(순조 30) 효명세자가 22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면서 다시 혼란과 부패가 극심해진다.

 

 

 

 

 

 

 

 

 

 

 

 

 

 

효명세자 이영이 요절하면서 부인(세자빈) 풍양 조씨(신정왕후 조대비)는 22살에 청상과부로 왕대비가 된다.

 

효명세자 이영의 죽음으로 효명세자의 아들 이환이 왕세손이 되었고, 1834년(순조 34) 순조가 승하하자 8살의 이환이 조선의 24대 왕 헌종으로 등극한다.

 

 

 

 

대왕대비가 된 헌종의머니 순원왕후 안동 김씨(순조의 정비, 효명세자의 어머니)가 1841년(헌종 7)까지 수렴청정하였다.

 

헌종이 친정할 때 어머니 풍양 조씨(신정왕후 조대비)는 외척 풍양 조씨 일가를 조정 요직에 앉히기도 했다.

1837년(헌종 3) 순원왕후(순조의 정비)는 친척 안동 김씨 김조근의 딸을 헌종의 왕비로 들인다.

 

 

 

 

1849년(헌종 15) 조선의 24대 왕 헌종이 23살에 후사 없이 승하하자, 방계였던 19살의 강화도령 이원범을 헌종의 양자로 입적하여 조선의 25대 왕 철종(1831~1864)으로 즉위시킨다.

 

 

순원왕후와 안동 김씨 세도정치 세력은 철종의 왕비로 안동 김씨 김문근의 딸을 왕비(철인왕후)로 들였다.

 

1857년(철종 8) 안동 김씨 순원왕후가 죽자 효명세자의 부인 신정왕후 풍양 조씨가 왕실 서역 1위 대왕대비(조대비)가 되었다.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 안동 김씨가 있었지만,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은 대왕대비 풍양 조씨였다.

 

 

 

 

 

 

 

 

 

 

 

 

 

 

1863년(철종 14)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대왕대비 조씨는 흥선군 이하응과 손을 잡고 흥선군의 둘째 아들 12살의 이명복(이재황)을 효명세자(익종)의 양아들로 입적하여 조선의 26대 왕으로 즉위시킨다.

 

 

 

효명세자의 부인으로 세자빈이 되어 궁궐에 들어온 지 근 30년 동안 숨죽이고 기다려온 신정왕후 조대비와 풍양 조씨 세도정치 세상이 밝아오고 있었다.

 

풍양 조씨 세도정치는 신정왕후(조대비)가 효명세자의 부인으로 들어온 이후부터 계속됐다.

단지, 안동 김씨 세도정치 세력이 워낙 크게 전횡하였기 때문에 힘에 밀린 풍양 조씨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1863년 고종이 즉위하고 대왕대비 조씨가 수렴청정을 하였으나 실제 권력은 흥성대원군에 있었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내쫓기 위한 신정왕후(조대비)와 흥선대원군의 합작품이다.

 

 

1873년 최익현의 상소가 올라올 때까지 흥선대원군은 썩은 조선을 개혁하는 한편 안동 김씨뿐만 아니라 풍양 조씨도 제거해 나갔다.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을 계기로 풍양 조씨와 고종의 중전 여흥 민씨 세력이 대거 사라진다.

 

 

그러나 깊이 뿌리를 내린 세도정치 세력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 한 예가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의 원인이 된 고부 군수 조병갑도 효명세자의 부인 조대비(신정왕후)의 인척이란 사실이다.

 

 

 

 

 

 

 

 

 

 

 

 

 

 

 

조선 후기는 안동 김씨, 반남 박씨, 풍양 조씨 등 외척 세력이 근 100년 동안 세도정치로 전횡하며 조선은 몰락의 길로 들어갔다.

조선은 안에서 세도정치로 곪을 대로 곪아 버렸고, 밖에서 거세게 밀려드는 제국주의의 힘에 조선은 결국 망국의 길을 간다.

 

 

 

효명세자 이영의 부인 풍양 조씨 대왕대비(신정왕후 조대비)는 22살에 청상과부가 되었지만, 조선왕조 왕비 중 가장 많은 나이 83세에 세상을 떠났다. 

 

 

효명세자 이영과 부인 풍양 조씨(신정왕후 조대비)는 살아서 왕과 왕비가 되지 못했다.

효명세자는 왕(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다가 대한제국 고종황제에 의해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추존되었다.

효명세자의 부인 풍양 조씨는 세자빈에서 신정왕후(神貞王后)로 다시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로 추존되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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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6.10.09 06: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정왕후 이야기 잘 보고 가네요

  2. 고프다 2016.10.10 0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너무너무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