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화가 신사임당1 여류화가 신사임당 양반집 여인에서 신화가 된 여인 조선 시대 여류화가 신사임당 조선 시대 여류화가로 유명했다는 신사임당의 작품은 모두 전칭작(傳稱作)이라고 한다. 신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라는 의미다. 신사임당이 어떻게 대한민국 화폐 최고 고액권 주인공이 되었으며, 조선 시대 최고의 여류화가가 되었을까? 신명화(성종 7~중종 17, 1476~1522)는 슬하에 아들은 없고, 딸만 다섯을 두었으며, 신사임당은 신명화의 둘째 딸이다. 신사임당(연산군 10~명종 6, 1504~1551)의 아버지는 신명화는 41세가 되던 중종 11년(1516) 진사시(소과)에 급제하였으나 대과에 응하지 않고 진사로 남았다.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는 16년간 한양에서 주로 지냈기 때문에 강릉에 있던 신사임당과 아버지 신명화는 많은 .. 2017. 2. 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