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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경영의 대가 - 노블레스 오블리주 모델, 여성 최고경영자(CEO) 김만덕

 

 

 

 

제주도 상인들이 육지에서 사들인 상품 중에는 소금이 포함되어 있었다.

4면이 바다인 제주도에서 소금을 왜 구입했을까 하는 의문이들지 모르겠으나, 하지만 제주도에는 바닷가에 암초가 많고, 또한 폭이 좁아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여울이 많아서 소금이 많지 않다. 또 바닷물을 끓이려면 가마솥이 필요한데, 제주에는 무쇠가 나지 않아서 가마솥을 구하기 힘들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소금을 매입하여 판매를 하였다.

 

추자도를 거점으로 전라도와 무역을 한 점이라든지 구입하는 상품 목록 같은 것들은 김만덕 상단이나 다른 상단이나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김만덕 상단에는 남다른 경영전략이 있었다. 「만덕전」에서 그는 재산을 늘리는 데 재능이 있어서, 시세에 따라 물가의 높고 낮음을 잘 짐작하여 사고팔기를 계속하니 몇 십 년 만에 부자로 이름을 날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만덕의 경영정략은 물건 값이 저렴할 때 대량으로 구입했다가 물건 값이 오르면 되파는 방식인 매점매석이었다.

오늘날에는 매점매석이 공정거래법상 불공정 거래행위에 해당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상당히 각광을 받는 경영전략이었다. 매점매석은 단순히 자금만 많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보력 판단력 결단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김만덕의 성공에 도움을 준 또 다른 요인으로서 정조의 중소상인 육성정책을 들 수 있다.

특권상인인 시전 상인이 갖고 있던 금난전권(노점상 단속권)을 폐지한 신해통공 조치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이, 정조는 중소상인을 육성하는 데 힘썼다. 김만덕이 거상으로 성장한 데는 당시의 국가시책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외에, 김만덕의 성공 요인으로서 투명한 사생활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독신여성이었다.

「만덕전」에 따르면, 그는 남자들을 머슴으로 부리면서도 그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한다.

남의 입방아에 오르기 쉬운 독신 여성 CEO로서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한 것이다.

 

하지만 김만덕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거상이 된 것은 경영전략 때문만도, 국가시책 때문만도, 그렇다고 엄격한 사생활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김만덕은 단지 재물이 많아서 거상이 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람하는 마음이 그녀를 거상으로 만든 것이었다.

 

 

정조 18년(1794년), 제주도에 태풍이 연이어 발생하여 큰 피해를 주게 된다.

제주목사는 정조대왕에게 2만여 섬의 쌀을 보내어 구휼해 주실 것을 상소한다. 정조는 신하들이 양을 줄여 보내자고 하는 것을 물리치고, 2만 섬을 보내기로 한다. 제주로 가던 수송선단의 배 다섯 척이 중간에 침몰하면서, 한집 걸러 한집이 굶어 죽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런 모습을 본 김만덕은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풀어 육지에서 쌀 500여 석을 사와 친족들에게 50여 석을 주고, 나머지 450석을  모두 제주도의 백성들을 위해 내놓았다. 당시 제주도의 부(副)를 거머쥐고 있던 전 현감 고한록이 300석, 홍삼필, 양성범이 각각 100석을 내 놓았다.  정조대왕은 "이들이 1백 석을 자원 납부한 것은 육지의 1천 포(包)와 맞먹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기부를 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조로부터 상을 받아 특별승진을 했으나, 김만덕은 상을 거부하고 단지 임금님이 계신 한양의 궁과 금강산을 한 번 둘러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당시 제주도 여자가 제주를 떠나 육지에 오르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한양의 궁과 금강산을 둘러보고 온 김만덕은 1812년,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조선시대 신분제도와 유교 문화 틀을 넘어, 상단의 수장이 되어 요즘으로 하면 기업의 여성 최고경영자가 되어 성공한 경영의 대가였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제주 백성들을 위해 내놓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델이 된 김만덕은 기업 경영의 대가일 뿐 아니라, 진정으로 상생의 삶으로 행복경영과 가치경영을 이룬 대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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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4.08.24 06: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하시네요~
    잘보고가요~ 존주말 되세요 ^^

  2. 죽풍 2014.08.24 14: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만덕의 경영전략은, 그 당시로서는 매점매식 방식이었네요.
    제주에 소금을 생산하지 못한 이유도 잘 알고 갑니다.
    즐거운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

  3. 유머조아 2014.08.25 0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젠가 드라마로도 나온 거 같아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4. 귀여운걸 2014.08.26 0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요~
    드라마 속에서도 보았답니다^^

기부천사 - 조선 최초의 여성 CEO 김만덕(金萬德)

 

 

 

 

김만덕1739-1812), 본관은 김해이며, 조선시대의 상인이다.

양인인 아버지 김응열과 어머니 고씨 사이에서 2남 1녀 중에 막내로 태어났다.

제주도에 흉년으로 곡식이 모자라 많은 제주도의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자, 전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사온 쌀을 모두 제주도 백성들을 위해 기부하였다. 굶주림으로 죽음 직전에 이른 제주도 백성들을 구제하였던 것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제주 사람들을 위해 내놓은 기부천사 김만덕!

이 때문에 김만덕은 '의녀(義女)'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지금도 '만덕할망'이라고 전해지고 잇다.

 

 

뭍으로 장사를 다니던 부친 김응렬이 풍랑으로 사망했을 때 김만덕의 나이는 불과 10살 남짓이었다.

이때의 충격으로 몸져누었던 어머니 고씨마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갑자기 부모를 잃고 고아 신세가 되자, 아들인 두 오빠는 친척집에 양자로 가고 그녀는 친척집에서 일을 돌보아주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나마 친척집도 형편이 어려워지자 김만덕은 어느 기생의 집으로 보내졌다.

그 기생은 만덕이 노래와 춤, 거문고에도 재능이 있는 것을 보고 기녀의 명단에 올리게 된다. 김만덕은 나이가 들면서 양가(良家) 출신인 자신이 천한 신분의 기생이 되었기에 오히려 친척들에게 불편을 줄 것을 염려하였다.

그녀는 양인의 신분을 다시 찾기 위해 관가에 호소했으나 거절당하게 된다. 하지만 김만덕은 좌절하지 않고 우여곡절 끝에 제주목사 신광익을 찾아가 양인으로서의 신분을 다시 찾고자 호소하였으며, 마침내 기녀 명단에서 삭제되었다.

 

 

양인의 신분을 되찾은 김만덕은 객주(客主)를 차려 제주 특산물인 귤, 미역, 말총, 양태(갓의 재료)를 육지의 옷감, 장신구, 화장품과 교환, 판매하여 돈을 많이 벌게된다.

이앙법(모내기)의 등장으로 농업기술이 발전하면서, 상업도 같이 발전한 18세기 조선시대의 변화를 읽었던 것이다.

김만덕은 어렵고 힘든 자신의 현실을 극복하였으며, 못하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하면 된다는 마음가지으로 생활하여 조선 최초의

여성 CEO가 된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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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4.08.23 08: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함이 대장부 스럽군요 ^^
    최초의 여성 ceo에 대해서 잘 보고 갑니다 ^^

  2. 주부s 2014.08.23 1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 알았어요. 잘 봤습니다^^

  3. 유라준 2014.08.23 2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당시에 정말 대단할 활동이네요.
    의지와 능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