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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 아름다운 성찰(영혼을 위한 여행)

(김래호 칼럼니스트)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입니다.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입니다.

(신영복 "처음처럼" 中)

 

 

한국의 가을기행문 중에 으뜸은 정비석(1911~1991)의 "산정무한(山情無限)이 아닌가 한다.

금강산을 다녀온 감회를 오롯이 담은 이 수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정말 우리도 한 떨기 단풍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리는 줄기요, 팔은 가지인 채,  피부는 단풍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 옷을 훨훨 벗어 꽉 쥐어짜면, 물에 헹궈 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만산홍엽(滿山紅葉)!

온 산에 붉은 단풍이 물결치는 풍악산, 그림 같은 그곳에 파묻힌 일행은 몇 번씩 탄성을 지르고 산행한다. 어느덧 하나 된 나무와 사람, 마침내 사람인지 단풍나무인지 구별이 안 되는 합일의 정점에 다다른다.

그것은 인간의 성정을 통째로 내던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일말의 고뇌와 집착어라도 갖고 있다면 이르지 못하는 경지다.

 

이 정비석의 "단풍"은 중국 명나라의 장대의 "설원"과 동일한 대상이다. 자연은 사람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화와 순환의 질서를 어김없이 지키기 때문이다. 가을이면 단풍이고 겨울이면 설원인 자연...

 

이렇듯 여행은 잊고 지내던 혹은 깨닫지 못하던 "진리"를 넌즈시 일러준다.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틈입하는 여행.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은 떠나온 "자리"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한층 성숙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행은 구조주의학파(structuralist)에 따르면 고대 신화의 틀을 그대로 모방한다.

그리스나 로마 신화를 비롯한 동서양의 신화들 모두 "여행"구조라는 것이다.

그 길에서 부닥치는 갖은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모험담이 바로 신화다.

 

그런데 이 신화는 늘 살아 재연된다.

이를테면 미국영화 "ET"나 한국고대소설 "심청전"은 모두 똑같은 기승전결이다. 주인공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다가, 지구나 용궁인 "외계"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태어나 다시 떠나는 설정.

이 패턴은 사람의 일생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과연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또한 누구에게, 어떻게 위로나 격려를 받는 것인가?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가을.

자신을 찾고 또한 누구인가를 만나기 좋은 때이다.

더운 가슴으로...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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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뉴론7 2014.11.02 05: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낙옆이 다 떨어지기전에 단풍보러 같다와야 되는데 바뻐서 같다오지 못하고 있네염 좋은주말되세염.

  2. 아쿠나 2014.11.02 06: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다운 성찰에 대해서 알아보시는 분들에게
    유용한 글인듯 합니다 ~
    저도 잘 보고 가요 ^^

  3. 유라준 2014.11.02 2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도, 또 마음의 여행인 성찰도, 쉽지 않은 것 같네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4. With E 2014.11.02 23: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주도에사는 이효리씨가 사는 소단길을 한번 가보고 싶어졌어요^^
    이번주 일요일날 혼자서 당일 여행을 가볼려고 합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인간의 죽음이란 곧 신명으로의 탄생이며, 신명의 죽음은 곧 인간으로의 탄생

자기성숙을 향한 긴 여행, 윤회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 생유어사(生由於死)하고 사유어생(死由於生)이니라. 삶은 죽음으로부터 말미암고 죽음은 삶으로부터 말미암느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2:109:7∼9)
 
인간의 죽음이란 곧 신명으로의 탄생이며, 신명의 죽음은 곧 인간으로의 탄생을 의미한다.

 

유체이탈』의 저자 실반 멀두운은 “인간의 탯줄이 끊어지면 탄생이며 혼줄이 단절되면 죽음이다”고 하였다. 이승으로 탄생하는 과정과 저승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동일함을 밝힌 재미난 표현이다.

 

석가모니는 “자신의 과거를 알고 싶으면 자신의 현재의 삶을 보라.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자신의 현재를 보라”고 하였다. 전생과 이생과 내생으로 이어지는 긴밀한 관계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윤회는 성숙을 위한 필수과정


사람에게는 무수한 윤회과정을 통해 언젠가는 성취해야 할 인생의 목적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보통 ‘도를 깨친다, 도통을 한다’라고 말한다.

 

윤회는 성숙을 위한 필수과정이다. 인간은 지상에서의 수많은 생애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기성숙을 위해 나아간다. 영혼인 경우보다 인간으로 있을 때가 단기간 내에 자기성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곳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수도장(修道場)인 셈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윤회가 무한정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29,600년을 한 주기로 하는 우주일년에서, 봄 여름철동안은 인간이 윤회하기가 비교적 용이하지만, 가을개벽과 함께 윤회의 수레바퀴는 멈추게 된다.

 

봄 여름철 동안 인간이 수 차례 윤회를 해온 근본 목적은 오직 가을의 열매인간으로 성숙하기 위함이다. 만약 우주의 가을생명으로 여물지 못하면, 숱한 세월동안의 고뇌와 윤회는 끝내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이다.
 

 

영혼은 불멸하는가

 

* 도(道)를 잘 닦는 자는 그 정혼(精魂)이 굳게 뭉쳐서 죽어서 천상에 올라가 영원히 흩어지지 아니하나, 도를 닦지 않는 자는 정혼이 흩어져서 연기와 같이 사라지느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9:29:1∼2)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육체의 죽음이고, 둘째는 영혼의 죽음이다. 즉 영혼도 도를 잘 닦지 않으면 죽는다. 이것이 진짜 죽음이다. ‘나’라는 존재가 이 우주공간에서 영원히 사라짐을 의미한다.


 

 


[전생과 윤회에 관한 이야기]
 

내 전생의 족적을 찾아서


B라는 여인은 최면상태에서 1931년 이소벨이라는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섬세한 피아노 솜씨와 부유한 환경, 매혹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던 이소벨은 로버트라는 남자와 함께 지중해가 보이는 해변도로를 맹렬한 속도로 달렸다. 그러다가 길옆의 낮은 울타리를 들이받고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로버트는 핸들에 끼인 채 즉사했고, 이소벨은 바깥 모래밭으로 튕겨 나와 의식을 잃고 누웠다. 이소벨의 몸 오른편이 연기와 불꽃에 휩싸였다.

 

사고 뒤 이소벨은 간신히 살아났지만 얼굴은 흉터 투성이로 일그러졌고, 오른손은 물집과 주름으로 덮여 버렸다. 이소벨은 몇 번이나 이 비참한 삶을 마감하려고 생각했다. 한 친구로부터 모진 말을 듣게 된 어느 날, 이소벨은 황량한 겨울의 어둠 속을 걸어서 해변으로 갔다. 그리고 차갑고 거친 바다로 들어갔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외에도 이소벨은 몇 개의 전생을 더 체험했다. 기원전 만3천 년 무렵 프랑스 도르도뉴의 동굴벽화 화가, 기원전 3100년 무렵 이집트의 기술자, 기원전 100년 무렵 중국 장안에 살던 가난한 공인 등 그녀의 과거세는 대부분이 예술과 기술 분야에서 일했다. 그것은 현세에도 이어져 그녀는 피아노에 자질을 보였고, 보석 세공 일을 하기도 했다.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조엘 L.휘튼·조우 피셔, 도서출판 기원전)


어느 인도 여인의 환생


1902년 1월 18일, 인도의 매수라 지방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루지 바이’라는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10살의 어린 나이에 계약결혼으로 팔려간 루지는 1925년 두번째 아이를 낳던 중 사망한다.

 
그녀가 사망한 1년 10개월 뒤인 1926년 12월 11일, 델리의 외곽 동네인 치라왈라 모훌라에서는 ‘샨티 데비’라는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5살이 된 어느 날부터 샨티는 매수라 지방의 사투리를 완벽히 구사하여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한다. 아이는 자신이 6년 전에 사망한 루지 바이라고 주장한다. 

 

 

 


1935년 자신의 친척을 따라 매수라 지방을 방문한 샨티는 16년만에 자신이 전생에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 샨티는 정확히 전생의 남편을 알아보았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전생에 썼던 집기, 즐겨 입던 옷, 그리고 좋아했던 모든 것들을 집어내기도 한다. 1924년에 실제로 그 집에서 루지 바이라는 사람이 두 번째 애를 낳다 사망한 것이 확인되자 샨티는 눈물을 흘렸으며, 전생의 아들이 집에 찾아오자 그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손에 쥐어주며 좋아했다.

 

1935년 신문을 통해 이 소식을 듣게 된 마하트마 간디는 샨티를 찾아와 직접 만났고, 샨티의 이야기를 들은 간디는 그녀가 실제로 환생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했다. 1987년 병으로 사망한 샨티는 평생동안 전생의 가족들과 왕래를 하며 살았다고 한다. 오늘날도 학자들은 샨티 데비의 사건이 현재까지 일어난 환생사례들 중 가장 분명했던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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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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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쿠니미츠 2013.03.08 1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보고 갑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