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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3

일본의 조선 침략을 예견한 의병장 조헌과 최익현의 지부상소 임진왜란 전(前)과 강화도조약 때 일본의 조선 침략을 예견한 두 인물 의병장 조헌과 최익현의 목숨 건 도끼 상소, 지부복궐상소(持斧伏闕上疏) 임진왜란 조헌과 의병 ↑ 최익현 1590년 음력 3월 황윤길 등 일본으로 건너갔던 조선 통신사 일행이 1591년 음력 1월에 귀국합니다. 1591년 윤(閏) 3월 1일 왜(倭,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보낸 평조신과 현소 등 사신과 함께 한양에 입성합니다. 왜(倭)는 조선 침략의 음흉한 속내를 숨기고 명나라를 치러갈 테니 길을 내달라는 '가도입명(假途入明)'을 요구합니다. 강직한 성품의 기개 있는 선비였으며 임진왜란 때 700여 명의 의병(700 의총)과 함께 순절할 의병장인 중봉 조헌(1544~1592)은 22세에 성균관에 들어갑니다. 1567년 문과에.. 2022. 8. 19.
남명 조식과 의병장 곽재우 정인홍 김면 칼 찬 선비(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과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한 제자들 임진왜란 경상도 3대 의병장 - 의령의 의병장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 장군, 합천의 의병장 내암 정인홍 장군, 고령의 의병장 송암 김면 장군 창녕 조씨 남명 조식(南明 曺植, 1501~1572, 연산군 7년~선조 5년) 선생은 조선 중기 대학자다. 조선 성리학 영남학파의 거두 남명 조식 선생의 이름 앞에는 칼 찬 선비, 대쪽 같은 선비, 실천 지식인, 조선의 참 선비 등 숱한 수식어가 붙는다. 당시 조선 성리학에서 남명 조식 선생은 경상우도의 영수였으며, 퇴계 이황은 경상좌도의 영수로 두 사람은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이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상도 3대 의병장인 홍의장군 곽재우, 내암 정인홍, 송암 김면과 이노, 전치원, 하락, 조종도.. 2016. 11. 19.
임진왜란 의병장과 의병 승병 활동 임진왜란 당시 국란(國亂)극복의 주역 의병장과 의병, 승병 활동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후 200년 만에 닥친 큰 전쟁, 즉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임금은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야반도주했고, 조정 신료들은 임금을 보좌한다는 명분으로 함께 도주했다. 임금과 조정 대신들이 나라와 백성을 버리자 분노한 백성은 궁에 불을 지른다.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파죽지세로 승승장구하는 왜군에게 조선 관군은 추풍낙엽처럼 연전연패한다. 임진왜란에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나라를 구한 대다수의 구국 영웅은 의병장과 의병, 그리고 승병들이다. 이순신 장군, 권율 장군, 김시민 장군 등이 승전할 때 옆에서 조선 관군과 혼연일체가 되어 목숨 걸고 활동한 이들이 바로 조선의 백성과 의병, 승병이다. 임진왜란.. 2016.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