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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3.24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2)
  2. 2019.03.23 일제 식민사학과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 (3)
  3. 2019.03.21 이병도의 한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2)

일제 식민사관(식민사학)에 의해 거짓과 오욕으로 점철된 한국 역사

일제가 왜곡 날조한 한국사를 글 장난으로 세탁해 옮긴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에 대한 주류 강단사학계의 평가는 칭찬 일색입니다.

이기백이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자주적인 관점에서 민족사학을 개척하여 새로운 한국 역사학을 수립했다고 주장합니다.

 

 

신민족주의 역사학의 길을 열었다는 이기백이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추종하면서 한편으로 민족주의 사학을 대표하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자주적 민족주의 역사관을 비판하고 폄훼했습니다.

 

 

이기백은 1942년 이병도를 처음 만난 이후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공부할 때 쓰다 소키치가 당시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그가 쓴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이기백은 우리 역사조작의 원흉 쓰다 소키치가 주도한 연구발표회에 늘 참석했으며, 1944년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휴학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병도를 다시 만났습니다.

 

 

 

 

 

 

 

 

 

 

1945년 6월 20일 일본 관동군에 입대했던 이기백은 1946년 봄 한국 역사학의 태두(泰斗) 이병도를 찾아가 진로 상담을 했습니다.

 

1946년 이병도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서울대 사학과 3학년에 편입한 이기백은 미 군정의 국립서울대학교 통합 정책으로 인해 학과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논문 한 편으로 1947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합니다.

 

서울 배재와 용산중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친 이기백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했고 중위 계급장을 달고 육본 편찬위원회에서 복무 중 육군사관학교 교수가 됩니다.

 

 

일제 식민사관으로 무장한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1956년 대위로 제대하고 홍대, 단국대, 서울공대 등지에서 시간강사를 하며 지내다 1958년 이화여대 사학과 조교수가 됐습니다.

 

 

 

 

 

 

 

 

 

 

1961년 이화여대 사학과 조교수로 재직하던 이기백은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한 한국 역사학을 대표하는 한국사 개설서 <국사신론>을 출간합니다.

 

 

이때까지 이기백이 배우고 습득해 가르친 한국 역사는 와세대대학 사학과에서 배운 식민사관(식민사학), 이병도의 가르침, 쓰다 소키치의 쓴 책 등으로 모두 일제 식민사관의 찌꺼기들 뿐입니다.

 

 

1963년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된 이기백은 1966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소에서 1년간 있으면서 <국사신론>의 개정판 <한국사신론>을 1967년에 내놓습니다. (하버드대 연경연구소는 하버드대학교와 중국 연경대학교가 자매결연을 하고 학문적 교류를 한 연구소였지만,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한국, 일본, 대만의 학자를 초청해 연구 활동을 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한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당시 미국에 한국 역사와 관련된 사료와 자료가 많아 <국사신론>을 <한국사신론>으로 개정판을 낼 때 참고했다고 했습니다.

 

 

이기백이 참고한 미국에 있는 역사 사료와 자료는 우리의 손으로 쓴 역사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이 만든 역사 자료를 번역한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는 춘추필법의 역사라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고, 일본의 역사 자료는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한 일제 식민사관 이론입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할 때 중국 측 사료에서 필요한 부분만 선택해서 식민사학을 완성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으로 오염된 주류 강단사학계는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이병도의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이 넘지 못한 일제 식민사관의 벽을 허물었다고 주장합니다.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서문 中

"한국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우리가 힘써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선적인 과업은 식민주의 사관을 청산하는 일이다. 식민주의 사관은 한마디로 말하면 일제의 한국에 대한 식민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왜곡된 한국사관이다."

 

 

일제가 대한제국 강제병합의 당위성과 영구지배를 위한 목적으로 학문적 이론을 만든 것이 식민사학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왜곡 조작 말살한 일제 식민사학 이론은 대부분 고대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기백이 <한국사신론>에서 일제 식민사관(식민사학)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변했는데, 정작 <한국사신론>은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한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현란한 글 장난으로 국민을 속였습니다.

 

 

 

 

 

 

 

 

 

 

일제의 반도사관, 위만조선과 한사군 한반도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등 한국 고대사 조작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현란글 장난으로 만들어진 일제 식민사관을 답습한 잡서에 불과합니다.

 

 

혹자는 이기백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에 대해 수정론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기백은 현란한 말장난과 글 장난을 동원해 대외적으로는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가 쓴 책과 강연 내용은 이기백이 일제 식민사관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식민사관의 노예역사관을 대한민국 국민에게 심어준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입니다.

 

 

 

 

 

(교육방송 다큐 시선 - <우리 곁의 친일 잔재> 캡쳐)

 

 

 

 

"쓰다 소키치가 교수로 있던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던 이병도(1919년 졸업)와 손진태(1927년 졸업)를 주목하게 된다. 일본과 한국의 연구자들이 내연관계를 갖게 된 데에는 바로 이런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1945년 이후 두 사람이 주도하여 만들어 낸 한국고대사 체계에는 원천적으로 태생의 문제가 있었던 사실을 짐작하게 된다.

 

이병도는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국사 교사를 훈련시켰고, 1946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그는 1954년에는 학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5년에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이 되었으며 1960년에는 문교부 장관, 학술원 회장이 되었다.

 

손진태는 1945년 서울대학교 교수, 1949년에는 문교부 차관 겸 편수국장을 역임했다, 자신들이 문교부 장관과 차관을 지내며 한국사의 연구와 교육을 장악하고, 그들이 일본에서 배워 온 연구 관행을 한국 학계에 뿌리내리게 했던 것이다."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교수 출신의 前 서강대 총장의 『역사 충돌』 中)

 

 

손진태는 한국전쟁 때 납북됐고, 이종욱 명예교수는 스승 이기백을 포함해 서울대학파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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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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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24 04: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 선생에 대한 글이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국사신론 을 읽어봐야겟네요^^ 웃음 가득한 주말 되세요

  2. kangdante 2019.03.24 0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은
    하나같이 반성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또 좌편향 역사학자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면서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관을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강단사학

한국 고대사 왜곡의 원흉 쓰다 소키치와 이병도로부터 배운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

 

 

 

 

 

 

 

 

 

 

 

 

여주 이씨 남강 이승훈(1864~1930) 선생은 1919년 3.1만세 혁명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에 큰 감명을 받은 남강 이승훈 선생은 사업을 하며 번 돈으로 1907년 평안북도 정주에 중등교육기관 오산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여주 이씨로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1924~2004)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41년 오산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기백은 60년 차이가 나는 남강 이승훈 선생이 6촌 종고조부가 된다고 주장하면서 집안에 족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현손) 이기대(1952년생) 선생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란 사실을 숨기고 지내다가 1984년 남강문화재단이 설립될 때 유족 대표로 참석하면서 본인이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현손)임을 밝혔습니다.

 

 

 

 

 

 

 

 

 

 

이기백의 주장대로라면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현손) 現 남강문화재단 이사 이기대 선생과 이기백은 같은 항렬로 10촌 4종형제가 됩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인 이기대 선생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고생스럽게 살아온 반면, 이기백은 고생을 모르고 살아왔으며 그의 아버지와 조부와 고조부 등 이기백의 집안은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이기백은 절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될 수 없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살면서 역사작가라고 주장하는 초록불의 잡학다식(이하 초잡식)이 이기백이 민족사학계로부터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한 식민사학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잡식은 불순하게도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 이기백과 독립운동가인 남강 이승훈 선생을 연관 지으려 했습니다.

초잡식은 모 신문사에 기고한 글에서 '이기백이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의 집안이며 민족학교인 오산학교 출신이라는 것은 고려의 여지도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의 삶과 남강 이승훈 선생의 독립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이며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 이기백이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 출신이라고 해서 일제 식민사학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한 것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초잡식의 주장대로라면 1910년 오산학교 교사로 부임해 오산학교 교가를 작사한 이광수가 오산학교 교사 출신이고 오산학교 교가를 작사했기 때문에 친일파가 아니란 주장을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 근현대사만 봐도 한 집안에 독립운동과 친일행위, 군인과 북한에 부역한 인물 등이 있듯이 각자의 행위에 공과가 있고 평가를 다르게 해야 하는 것이 옳은데도 불구하고 자칭 역사작가란 자가 이기백의 역사 왜곡 만행을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 선생의 삶을 우산 삼아서 비난을 피하려 한 것입니다.

 

 

또 초잡식은 이기백이 이병도의 제자라는 멍에 때문에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친일파라는 일방적으로 비난 받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기백이 직접 말한 내용을 토대로 이기백이 단순히 이병도의 제자여서가 아니라 이기백의 삶의 족적 자체가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자신의 선친이 한글로 쓰인 책을 많이 수집해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주장했고, 자신의 선친이 '그 나라의 말과 역사가 아니고는 그 민족을 깨우칠 수 없다.'라는 말을 늘 해줬다고도 주장했는데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남강 이승훈 선생의 민족정신이 자신이 역사학자로서의 길을 가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기백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와세다 고등학원과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독립운동가로부터 우리의 자주적 역사를 배우고 독립운동에 투신했어야 합니다.

 

이기백의 일본 유학은 남강 이승훈 선생과 전혀 상관없고, 어린 이기백과 그의 아버지 생각이 일치했기 때문에 일본 유학길에 오른 것입니다.

 

 

 

 

 

 

 

 

 

 

이기백이 선택한 학교는 우리가 쓴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일본인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고 말살한 일본이었습니다. 이기백이 선택한 곳은 바로 이병도가 쓰다 소키치에게 식민사학을 배운 일제 식민사학의 심장부 와세다대학 사학과입니다.

 

 

다시 말해 이기백은 아버지가 민족주의자였고, 남강 이승훈 선생의 민족정신을 영향 등 집안과 주변 환경으로 인해서 본인이 역사학도의 길을 가게 됐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아버지와 남강 이승훈 선생이 걸어갔던 정반대의 일제 식민사학자의 길을 갔습니다.

 

 

초잡식은 함석헌과 신채호 선생이 이기백에게 가장 영향을 끼쳤던 사람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이기백이 일제 식민사학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기백은 초잡식의 주장과는 반대로 함석헌과 신채호 선생을 비판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초잡식의 언행을 보면 일제강점기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한 일제 식민사학과 쌍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함석헌 선생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를 감명 갚게 읽었는데, 역사를 종교적 또는 도덕적으로 풀이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쓰신 <조선사연구초>에서 <천년래 제일대사건>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말한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은 묘청의 난을 말하는 것인데,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본 사건을 말합니다.

 

 

 

 

 

 

 

 

 

 

이기백은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나와 남의 투쟁으로 인식한다면 학문의 보편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신채호 선생의 자주적 역사관을 가치 없는 학문, 편향된 학문이고 비판했습니다.

 

 

이기백의 함석헌 선생과 신채호 선생을 비판한 것은 자신이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갈 수밖에 없었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입니다.

 

 

이기백이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에 한 말로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자가 민족사학을 대표하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민족주의 역사관에 대해 평생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 당시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과 수탈과 착취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로 대한의 백성들이 모두 어렵게 살던 때였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1941년 일본 와세다 고등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이병도를 만난 후 1942년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이기백은 일본 와세대대학 사학과에 입학하기 전 이병도를 만났습니다.

1942년 와세다대학에 입학해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한 원흉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가 당시 학생들로부터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기백은 쓰다 소키치가 주도한 연구 발표회에 늘 참석했고, 쓰다 소키치가 쓴 책을 읽으며 식민사학으로 조작한 가짜우리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1944년 이기백은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휴학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기백은 1945년 6월 일본 관동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이병도를 몇 차례 찾아갔고 그의 논문을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1946년 봄 3.8선을 넘어 서울로 들어온 이기백의 집안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넉넉했는지 몰라도 일본 유학에 이어 중국 유학을 준비했다고 했으며, 당시 국공내전 때문에 중국 유학을 포기하고 앞으로의 진로를 상의하기 위해 이병도를 찾아갔다고 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식민사학의 태두 이병도가 재직하고 있던 서울대 사학과 3학년에 편입했는데, 당시 어지러운 상황 때문에 학과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태에서 1947년 논문 한 편으로 서울대 사학과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민족주의 역사학자의 역사관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 이기백이 배운 역사는 이병도의 일제 식민사학과 또 본인이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배운 식민사학, 그리고 쓰다 소키치 등으로부터 배운 일제 식민사학이 전부입니다.

 

 

광복 후 일제 식민사학의 결정체가 등장했는데, 이병도의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입니다.

스승 이병도와 제자 이기백은 일본 제국주의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배운 일제 식민사학으로 무장하고 일본인이 만든 가짜역사를 바탕으로 책을 썼으며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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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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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23 05: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일제 식민사학과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과 글 잘 읽고갑니다 ^_^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건강관리 잘하시길 바래요

  2. kangdante 2019.03.23 0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역사의 독립운동가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지금 누가 나라를 망치고 있는지 또 내일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오천년 역사속에 일제는 단 36년이니까요

  3. 청결원 2019.03.23 1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보고 가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가 조작한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둔갑시킨 잡

국사학(일제 식민사학) 태두 이병도의 <한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가 왜곡 조작한 역사관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에서 이병도를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 이기백을 한국 역사학계의 1세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을 복원하고 대한의 자주적 역사관을 정립하는 민족사학계에서는 이병도와 이기백을 각각 일제 식민사학 1세대와 2세대라고 말합니다.

 

 

이병도는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쓰다 소키치로부터 일제 식민사학을 배우고,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역사 조작에 가담했습니다. 이기백은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를 왜곡 조작하는데 앞장섰던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 이병도의 학문적 정신적인 제자입니다.

 

 

 

 

 

 

 

 

 

 

이병도와 이기백의 공통점은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배운 일제 식민사관으로 무장했다는 것이며, 여타 다른 식민사학의 후예들도 있지만, 이병도와 이기백은 우리 역사를 만신창이로 만든 식민사학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1945년 9월 미 군정은 진단학회에 국사교과서 편찬을 위촉했고, 1946년 <국사교본>이 출간됐습니다.

<국사교본>은 후일 국사교과서 편찬 자료로 활용됐는데, <국사교본>의 저자가 바로 일제 식민사학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친일파 식민사학자 이병도입니다. 

 

 

1948년 이병도는 <조선사대관>을 펴냈고, <조선사대관>을 축약해서 <새국사교본>이라는 국사교과서를 만들었습니다.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은 1954년 <국사대관>이름으로 증보 출간됐습니다.

이병도의 <조선사대관>의 다른 이름이 <한국사대관>과 <국사대관>입니다.

 

 

 

 

 

 

 

 

 

 

이병도가 집필한 책의 내용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해 만든 <조선사 35권>의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책니다.

 

 

이병도가 쓴 <한국사대관韓國史大觀>의 뒤를 이어 한국사를 공부하는 학생과 학자들의 필독서가 된 책이 바로 <한국사신론韓國史新論>입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은 이병도의 제자이며 와세다대학 사학과 후배입니다.

 

 

1967년 출판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1961년 <국사신론國史新論>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이후 몇 차례 개정 수정 증보되어 출됐습니다.

 

 

 

 

 

 

 

 

 

 

<한국사신론>을 쓴 이기백은 서울대 사학과를 제대로 다니지도 않고 논문 한 편으로 불과 1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잠시 지내고 시간 강사를 하다 이화여대를 거쳐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을 두고 일제 식민사학을 극복해 한국 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극찬합니다. 그러나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조선총독부 역사관에서 벗어난 것이 없는 한국의 가짜 통사(通史)입니다.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스승 이병도의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과 비교하면 이기백이 말장난만 조금 쳤을 뿐 그 내용은 그대로 재탕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이병도의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왜곡 조작한 식민사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해방 후 서울대 이병도와 고려대 신석호를 중심으로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를 장악했습니다.

문교부(교육부) 장관까지 한 이병도와 제자 이기백 등이 일제 식민사학을 바탕으로 국사교과서를 집필하고 <한국사대관>과 <한국사신론> 등의 한국 통사(通史)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일제 식민사학의 이론이 소위 정설과 통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무리는 이기백이 <한국사신론>을 통해 일제 식민사학의 허구성을 비판했고 식민사학을 극복했다고 자평하지만, 기실 국민을 속이기 위해 일제 식민사학을 비판한 것처럼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린 말장난이며 알맹이는 100% 일제 식민사학의 찌꺼기를 모아 짜깁기한 책니다.

 

 

 

 

 

 

 

 

 

 

이병도의 <한국사대관>(조선사대관, 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모두 한국 통사(通史)입니다.

이병도의 <한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배운 일제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대륙사관을 반도사관으로 축소했습니다.

 

 

이병도와 이기백의 <한국사대관>과 <한국사신론>은 조선총독부가  주장한 단군신화, 한사군 한반도설, 위만조선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등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계승해 가짜역사를 진짜 역사로 둔갑시켰습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와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에 의해 우리의 뿌리역사가 송두리째 잘려나갔고 줄기역사가 왜곡되고 조작되었습니다. 광복 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의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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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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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21 05: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이병도의 한국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글 잘 읽고 공감누르고 갑니다^^
    즐거운 목요일 보내시길 바래요

  2. 청결원 2019.03.21 17: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온 뒤 맑은 날이 됐네요~
    오늘도 역시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