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두' 태그의 글 목록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4.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봉사자이며 공덕자(功德者)요 대성인(大聖人),

이마두 마테오 리치 구천상제(九天上)

 

 

 

 

 

 

 

 

이마두 마테오 리치 대성사(大聖師)님은 당시 기독교(가톨릭) 신부로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왔다.

하나님의 왕국, 즉 지상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바로 이 지상에 실현되는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일부에서는 이마두 대성사님의 삶을 기독교 선교 활동으로 한정해서 좁은 시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마두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좀 더 폭넓은 문화사적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후대에 재조명된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은 르네상스 유럽의 자연과학적 전지식과 중국 사서오경(四書五經)의 학문을 한몸에 갖춘 최초의 세계인(世界人)으로 동서양의 문명과 문화, 사상을 이어준 비교 문명사의 인물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이마두 대성사님을 동서 문명 교류의 물꼬를 튼 선구자이며, 더 나아가 죽어 천상에 올라가서 동분서주하며 현대 문명을 건설하게 한 주인공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봉사자이며 공덕자라는 파격적인 평가를 하셨다. 

 

더불어 선천 상극의 세상을 넘어 새롭게 열리는 후천의 도술(道術) 문명 시대, 조화(造化) 선경 시대, 10천(十天)의 새 시대 신천지(新天地)에 구천상제(九天上帝)님으로 임명하셨다.

 

 

 

 

 

 

 

 

 

 

이마두(利瑪竇)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은 중국에서 생활하며 유교, 불교, 도교 등을 공부하면서 동서양 문화의 다양성에 눈을 뜨게 된다. 동양문화에 대한 깊은 안목을 바탕으로, 스스로 자기 신앙관에 결단을 내리게 되었으며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구도자(求道者)가 된다.

 

 

기독교 교리 문답서인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저술하면서 유교(儒敎)에서 말하는 하늘(天)과 상제(上帝)님 신앙은 자신이 모시던 기독교(가톨릭)의 천주(天主)님과 신앙의 맥이 통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천주실의에서 천주(天主)는 경서(經書)에 나오는 상제(上帝)와 동일한 분'이라고 정의하게 된다.

 

이는 기독교의 하느님(하나님)과 유교에서 말하는 상제님이 결코 다른 신(神)이 아니라 같은 신이며, 지리적 문화적 차이로 말미암은 같은 신(神)에 대한 다른 이름뿐이라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은 천주교(天主敎) 교리가 중국 전통의 유교적 세계관과 윤리관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유교적 세계관을 더욱 완전하게 하고, 더불어 고대의 천(天) 사상으로 돌아가 거기서 상제님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하자 명나라 고위 관료들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게 이른다.

 

 

 

 

 

 

 

위대한 대성인(大聖人) 이마두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 천주(상제)님 곁으로 돌아가시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에게는 안정된 생활은 없었다. 긴 여행과 이질적인 풍토로 말미암아서 중병을 많이 앓게 되고, 또한 선교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난항을 겪을 때마다 격심한 심신의 고통을 겪게 된다. 추방되거나 억류되는가 하면 심지어 도적(盜賊)으로 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친형제같이 사랑하였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에게 덕인(德人)으로 칭송을 받았다.

 

 

이마두 대성사님에게는 수천 명의 지인이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그를 만나 종교, 과학, 수학, 지리, 음악, 미술, 기억술 등을 주제로 논의하고 싶어 했고 그런 논리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거절하지 않았다.

 

 

 

 

 

 

 

 

이마두 대성사님은 결국 과로로 쓰러져 중국에 들어온 지 27년이 되던 해 1610년, 향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황제는 북경성 밖 책란(柵欄) 땅에 마테오 리치 신부의 장지를 윤허한다.

중국 역사상 황제가 직접 서양인에게 묘지를 하사한 보기 드문 사건이었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중국인들은 마테오 리치 신부를 '성인 진정한 성인'이라고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현대문명이 인도하는 지상 천국

 

살아생전 동서양의 지식을 두루 섭렵한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원대한 이상을 품는다.

동양을 무대로 '하나님의 왕국'으로서 '천주교 중심의 천국'을 건설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천국이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인간이 사는 지상에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실로 기독교 역사상 아무도 품어보지 못한 실천적인 대이상이었다. 하지만 소망을 다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셨다.

인류 역사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불세출의 업적을 지상에 남기고서 천주님의 곁으로 가셨다.

그렇다면 한 성인의 죽음은 그것으로 끝이었을까? 결코, 아니었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은 육신 없는 인간인 신명(神明) 세계에서 더욱 정열적으로 활동하였다.

우수한 두뇌와 부드러운 사교술, 폭넓은 인간관계와 근대과학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지적 능력, 천주님에 대한 경건한 신앙심을 근간으로 하여, 사후(死後) 신도(神道)에서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가서 문명 발전에 역사 하였다. 17,18세기 약 200여 년 동안 서양의 문명사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19세기 현대 문명을 근대화로 인도하였다.

 

 

 

 

 

 

 

 

자신이 발견한 천주님 '상제님'을 알현하고, '지상천국 건설'을 탄원했다는 놀라운 사실!

인류 역사상 오직 단 한 사람,

 

 

마테오 리치 대성사만이 서양의 하느님과 동양의 상제님이 같다는 결론을 실천적으로 얻어낸 대성인이다.

현재의 비약적인 문명 발전을 이뤄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한,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순수한 구도(求道) 정신이 이 천지 안에 울려 퍼지고 있다. 인류를 위해 지고한 일심 노력을 다한 그분만이 천상의 여러 문명신들을 움직여, 지상의 문명 혁신을 이뤄냈다는 놀라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천상 신도세계에서의 선행된 노력, 즉 마테오 리치 대성사와 여러 문명신들의 지고한 노력에 의한 합작품임을 알아야 한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고자 한 마테오 리치 대성사, 생사를 넘어선 한 사람의 일심과 노력으로 동양 문화와 서양 문물이 서로 교류하고, 천상과 지하의 문명이 교류했다는 점은, 인간의 일심 노력이 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놀라운 진실을 증명하는 것 같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생애에서 우리는 커다란 교훈을 얻게 된다.

진정한 삶의 믿음과 소망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신명계 마저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지나간 세상에서 살다간 위대한 성인들은 모두 그러한 생애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저 천상에서 뒷짐 지고 지상의 인간세계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분들의 강력한 일심의 원력이 대우주에 영원한 자취를 남기고, 또 시간을 초월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 과학과 인간의 문명에까지 선인(先人)들의 도과(道果)가 살아숨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세상은 인종과 계층, 지역을 넘어 모든 장벽을 열어젖히고 완벽히 열려 하나 되는 '꿈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구인이 하나라는 신념은 400년 전에는 단지 꿈에 불과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다!

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한 꿈,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생존하는 목적이요,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인간의 위대한 힘이 상생(相生)으로 하나 된 지구촌을 만들어낼 것이다. ​

바로 상생의 세상!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청결원 2015.07.03 0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 가네요

  2. 죽풍 2015.07.03 0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

  3. 박군.. 2015.07.03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즐겅누 하루 되세요

  4. 다이어트X 2015.07.03 1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생하는 하루가 되야겠네요^^~!

  5. 프리뷰 2015.07.03 1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잠시 들렸다 잘보고 돌아갑니다^^*

  6. 메리. 2015.07.03 16: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내용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7. 유라준 2015.07.03 2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업적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3. 동서양 문명과 문화, 사상을 융합한 진정한 '최초의 세계인' 이마두 마테오리치 신부님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서방(西方)에서 온 현자(賢者)' 또는 '최초의 세계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기독교(가톨릭) 예수회 선교사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 보면 절대로 그냥 붙인 수식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소도시 마체라타 시장의 13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난 이마두 신부님은 시장직을 계승할 수 있었으나, 세상의 부귀영화를 뒤로한 채 가톨릭 예수회 수도원 수사(修士)가 된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이 그곳에서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께 한 서약은 "세상의 명리(名利)를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 설교를 위하여 어느 나라에서든 살겠습니다."였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세상에 태어났던 16세기 서양은 종교개혁이 일어나 북부 유럽은 신교(新敎)가, 남부 유럽은 구교(舊敎) 가톨릭이 차지해 지형도가 나뉘어져 있었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북부 유럽 신교(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에 반발하여 일어난 가톨릭 내부의 혁신으로 생긴 것이 로욜라가 창시한 예수회였다.

예수회는 기도 등 영성 수련을 통해 하느님과 인류에게 봉사한다는 기치 아래 해외 선교에 중점을 둔 조직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구습을 과감히 폐지하고 새로운 생활양식을 채택하였다.

 

예수회는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세 가지 서원을 하고, 교황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군대적 명령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인재양성과 선교활동, 신앙심의 확립 및 외교력을 통한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 등을 도모하는 조직이었다.

 

 

 

 

 

 

 

 

19세 되던 해에 예수회에 입회하였던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인도의 고아에서 4년간 머무르고, 30세가 되던 1582년 중국의 마카오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을 갖고 있던 중국인들 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국의 말과 글을 익혀야 한다고 판단한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어려서 배운 기억법과 노력으로 중국말과 글에 능통하게 된다. 더욱이 중국에서는 가톨릭의 사제에 해당하는 계층이 승려였으므로, 마테오 리치 신부님도 불교 승려의 복색을 갖추고 선교를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동서양의 벽을 허문 우주 역사의 큰 공덕

 

1 이마두가 천국을 건설하려고 동양에 왔으나 정교(政敎)에 폐단이 많이 쌓여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2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3 이마두의 공덕이 천지에 가득하니 신명계의 영역을 개방하여

  동서양의 신명들을 서로 자유롭게 넘나들게 한 자가 이마두니라.

4 선천에는 천지간의 신명들이 각기 제 경역(境域)을 굳게 지켜 서로 왕래하지 못하였으나

5 이마두가 이를 개방한 뒤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국의 문명을 본떠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 주었나니

6 이것이 오늘의 서양 문명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13:1~6)

 

 

 

 

 

동서양 문명과 문화, 사상을 융합한 진정한 '최초의 세계인'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

 

 

 

 

 

 

 

 

 

서양 문명을 동양에 전하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이미 사제 시절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면서 독일 출신의 클라비우스 교수에게 기하학, 천문학, 역학 등을 배웠으며 해시계, 자명종, 지구의 등의 제작법을 전수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지구의, 천체의, 프리즘, 해시계 등을 남경에서 황족인 건안왕에게 선사한다.

 

북경에 도착해서는 세계지도와 자명종, 성화(聖畵), 프리즘, 클라비코드, 수학책을 포함한 서적 등 20여 가지를 공품 목록을 작성해서 황제께 올린다. 그리고 황궁의 고장 난 자명종을 수리한다는 이유로 정기적으로 황궁에 드나들게 되었고, 마테오 리치 신부는 천문을 맡아보는 흠천감에 유숙하며 관상의(觀象儀) 제작법을 가르치게 된다.

또한, 스승 클라비우스의 일궤측시학과 관상의, 실용수학 등을 한문으로 편역하였다.

 

 

 

 

 

 

 

중국인들을 놀라게 한 세계 지도 '곤여만국전도'

 

중국 사람들에게 실제 크기를 바탕으로 그려진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는 큰 충격이었다.

지도에는 유럽, 아프리카, 인도, 일본, 인도네시아, 중국 등 모든 나라가 그려져 있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으로 알던 중국 사람들은, 중국이 중심이 아니라 오히려 변방에 있으며 천하도에 그려진 중국의 크기보다 더 작다는 사실에 놀라, 이 지도 내용을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달력, 시헌력(時憲曆)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에 새롭게 만든 그레고리 역법이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그레고리 역을 한문으로 번역해 서양의 천문학과 역학을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소개한다.

그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 청나라에서는 1644년부터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한 '시헌력(時憲曆)'이 시행되었다.

 

시헌(時憲)은 마테오 리치 신부의 호(號)이며, 시헌력은 태음력에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하여 24절기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하여 만든 역법이다.

조선에서도 1653년(효종4)부터 조선말까지 이를 사용하였으며, 1895년(고종32)에 태양력이 채택되었을 당시 시헌력도 같이 참용(參用) 되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구력(舊曆)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동양에 전한 서양의 새로운 학문의 세계

 

마테오 리치 신부는 학창시절 라틴어와 헬라어를 연상에 의한 기억법으로 익혔다.

어떤 책이든 한번 읽으면 모조리 외울 수 있었으며, 이런 천재적인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중국에서 『기법(記法)』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법학을 전공하다 사제가 된 그는, 신학 외에도 수학, 기하학, 천문학, 역학 등 박학다식하기 이를 데 없어 중국인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당시 중국의 천문학과 역학의 기초가 되는 수학은 아무런 증명도 없이 단지 명제를 주장하는 수준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유로 진사에 급제한 서광계와 더불어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본』 15권 중 첫 6권을 『기하원본』이란 이름으로 출간한다. 이 책은 동양인에게 수학적, 논리적 사고를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동양에 전해진 서양의 예술의 세계

 

마테오 리치 신부가 황제에게 진상한 명품 가운데 클라비코드(피아노의 전신)라는 악기가 있다.

황제는 악관들로 하여금 선교사에게 연주법을 배우도록 하였는데, 당시 중국의 전통 악곡이 5음 14성으로 되어 있고 반음 처리가 되지 않아 음계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진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태감들에게 유럽의 음계와 연주법을 전수하기도 한다.

 

또한, 이탈리아 민요인 '아니무치아'와 '나니노'를 가르쳤으며, 그는 '서금곡의 팔장'이라는 한문곡을 지었는데 이 곡은 중국인의 심성과 사고에 부합하는 가사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 후 클라비코드는 오랫동안 중국의 악기로 사용되게 된다.

 

한편, 그는 투시법에 의한 원근법을 적용하는 화법도 전해 주는데, 처음 그림을 접한 황제는 그림이 살아 있다며 무척 놀랐다고 한다.

 

 

 

 

 

 

 

 

동양의 문화를 서양에 전하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중국어를 배우고 한문을 익혔으며, 중국의 관습과 법을 연구하였다.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특히 유학을 공부하여 라틴어로 번역하는 등 유교와 천주교 교리의 유사성에 천착(穿鑿)하였다.

 

중국에서 『사원행론四元行論』이라는 책을 펴내 우주관과 인식론 등 당대 최고 수준의 학식을 갖춘 사대부들과 토론을 벌이며 학식과 인품을 널리 인정받는 등 푸른 눈을 가진 마테오 리치 신부의 열정이 동양문화의 정수를 파악하기에 이른다.

 

『건곤체의乾坤體義』, 『동문산지同文算指』, 『기하원본幾何原本』, 『변학유독辯學遺牘』, 『이십오언』, 『천주실의』, 『기인십편』, 『교우론』, 『기법記法』 등 많은 한문 저술을 남겼으며, 말년에 중국 선교 활동 보고 내용을 기록한 『예수회와 천주교의 중국 진입』을 이탈리아어로 작성한다.

 

특히 천주실의天主實義는 일차적으로 기독교 교리 문답서로 알려졌지만, 그 내용은 동서 교류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획기적인 저작이다. 그것은 동서양의 철학적, 종교적 사상에 대한 핵심적 논변과 융합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조상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앞에 계신 것같이 하고 신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신이 있는 듯이 한다." (논어),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중국인의 제례를 윤리적으로 이해하였다. 조상 숭배는 우상 숭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이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조상에게 효를 행하는 도덕적 행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견해는 사후 완전히 무시되었고, 조상 제사나 공자 배례 등에 대한 찬반 문제인 '전례(典禮) 논쟁'을 유발시켜 결국 기독교의 중국 선교 자체가 수포로 돌아가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오늘날 유비쿼터스 문화로 발전하는 컴퓨터와 디지털 문화의 기반은 0과 1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2진법이다.

수학자 라이프니츠가 2진법을 발견하면서 세계 최초로 사칙연산(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을 할 수 있는 계산기를 발명하는데, 사실인즉슨 2진법이란 태극의 궤의 원리에 다름 아닌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중국에 간 친구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가 보낸 편지에서 우연히 두 장의 '태극도'를 입수하게 되고,

그는 태극도 64괘의 배열이 바로 0에서 63에 이르는 이진법 수학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원리에서 계산기 작동의 힌트를 얻었으며, 이진법의 원리는 오늘날 컴퓨터 문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코드가 되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아쿠나 2015.07.02 0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서양 문명하고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시려는 분들에게
    유익한 글이네요~
    오늘 덥다고 하던데..ㅎ 더위 조심하세요~^^

  2. misoyou 2015.07.02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증산도 인물열전 덕분에 잘보고갑니다

  3. 착한곰돌이 2015.07.02 1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날씨가 덥습니다. 건강관리 잘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4. 메리. 2015.07.02 1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

  5. 메리. 2015.07.02 1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

  6. 죽풍 2015.07.02 2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서양 문명에 대한 정보 잘 알아 갑니다.
    남은 시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7. 유라준 2015.07.02 2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마테오 리치 신부는 최초의 세계인이라는 칭호가 걸맞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 이마두(利瑪竇)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천주실의天主實義』에서 '천주(天主)는 곧 상제(上帝)다.'라고 정의하였다. 

 

 

 

 

 

 

 

 

 

1534년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 수사에 의해 창시된 로마 가톨릭 예수회는 당시 새로 발견된 아메리카 대륙과 동양에 기독교(가톨릭)를 전파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1578년 3월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6개월간 악전고투의 항해 끝에 인도의 고아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의 성 바오로 신학교에서 미처 마치지 못한 신학 수업을 하고 선교 활동을 한다.

 

 

 

가톨릭 선교 활동 중 제국주의적 문화 정책을 쓰고 있는 포르투갈 당국과 기독교 선교 활동도 같은 테두리 속에 속하는 것을 보게 된다. 복음 선교의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감, 그리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마테오 리치는 한 달간 심하게 앓는다. 1582년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마카오로 옮겨 중국어 공부와 함께 중국인의 관습과 법 등을 공부하게 된다.

 

 

 

 

 

 

 

 

마테오 리치는 비상한 기억력으로 불과 3개월 만에 3년을 공부한 루기에리와 비슷한 실력을 보일 정도였으며, 중국의 정치, 경제, 종교, 풍속 등에 관한 연구를 계속한다. 뛰어난 중국어 한문 실력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문서 선교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쇄국 정책으로 원칙적으로 외국인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마테오 리치 신부가 지도와 자명종, 지구의 등을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수학에 능하다는 소문이나자 조경(肇慶)의 지부사(知府使) 왕반(王泮)의 초청으로 조경에 들어와 정착하게 된다.

(이때부터 제작된 세계지도 제작은 1602년 곤여만국전도 제3판 발행까지 계속된다. 이 지도가 나옴으로써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그 외 나라들은 오랑캐라는 오만방자한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인식, 세계관을 심어주게 된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중국의 『사서(四書)』를 라틴어로 번역하였으며, 중국어로 기독교(가톨릭) 교리 문답서를 쓰고, 한문으로 된 『교우론』을 저술하는 등의 활발한 활동으로 가톨릭 예수회 중국 선교 책임자가 된다.

이후 남경에 정착한 마테오 리치 신부는 그 지역의 고관 명사들에게 천문과 지리와 수학 등을 가르친다.

 

 

 

드디어 1601년 중국 황제의 만난 마테오 리치 신부는 북경 거주 허가를 받게 되고, 1603년 한자로 된 교리 문답서인 『천주실의天主實義』(천주님의 참뜻)를 출간하게 된다.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천주실의天主實義』(De Deo Verax Disputatio - 하느님에 관한 참된 논의)에서

기독교(가톨릭)와 중국의 사상을 대비시켜 양자가 서로 배타적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이라는 의견을 정리하였다.

 

 

신종 황제의 호의로 선무문(宣武門) 안에 천주당(중국에서 천주교회를 가리키는 말)을 세워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 1605년 베이징에 200여 명의 신도를 만들어 '천주교'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예수회에서는 '위에서 아래로의 전도'라고 하여 상위계급이나 지식인들에게 먼저 전도하여 복음이 확대되게 하려는 전도방법을 갖고 있었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비록 명나라 황제 만력제를 설득하지 못했지만, 나라의 쇠락을 걱정하는 개혁파 사대부들과 교제를 할 수 있었다. 서광계(1562~1633), 이지조(1565~1630), 양정균(1562~1627) 등 일부 사대부 지식인들은 기독교인이 된다.

 

 

 

 

 

 

 

 

 

그는 서광계, 이지조의 협력을 얻어 과학기술 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천주교 서적을 저작하는 등, 나머지 일생을 중국에서 활약하였다. 이처럼 와성한 활동을 한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는 조선 실학파 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되며, 1609년 중국 최초로 "성모 마리아회"를 창립하였고, 이듬해 1610년 58세에 별세하여 베이징에 묻혔다.

 

 

 

 

 

 

 

 

이 모든 찬사는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의 종교인,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님이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16세기 말, 가톨릭의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 건너와서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날까지 중국 선교에 온 생애를 바치셨다. 가톨릭 선교사로서 신부님은, 개인적 선교 업적에 구애받지 않고, 어떻게 하면 동서양이 인종과 문화적 편견을 넘어 천국 건설의 이념하에 하나로 화합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셨다.

 

 

그리하여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과학 지식과 문물을 번역해 동양에 알리고 전했으며, 또 동양의 최고 엘리트와의 교분을 통해 배운 사상철학을 서양에 번역해 알리는 등, 동서양 문명 교류와 융합에 불멸의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하나의 문화 안에서 탄생하고 성장해 온 개인이,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 위대한 성인의 반열에 오른 모범적 사례를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직접 실증해 보여주셨다. 신부님은 종교인으로서, 자기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살다 가신 것이 아니다. 하늘이 주신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신부님은 인류 보편의 이념을 위해 한 생애를 살다 가신 것이다.

 

 

마테오 리치, 이마두 신부님의 남긴 업적에 비해, 이 세상은 아직 신부님의 생애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

(계속)

 

 

 

 

 

 

 

 

 

천지신명이 받드는 마테오 리치 대성사

 

1 이마두의 공덕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나 천지신명들은 그를 떠받드나니

2 이마두는 신명계(神明界)의 주벽(主壁)이니라.

3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보좌하여 모든 것을 맡아보고 있나니 너희는 마땅히 공경할지라.

4 이마두가 24절(節)의 역(曆)을 개정하여 때(時)를 밝히매 백성들이 그 덕(德)을 입어 왔으나

5 이 뒤로는 분각(分刻)이 나리니 분각은 우리가 쓰리라.

6 이마두는 보민신(保民神)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12)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청결원 2015.07.01 0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 가네요

  2. 박군.. 2015.07.01 1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3. 카푸리오 2015.07.01 15: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인물을 배우고 가네요ㅎㅎㅎㅎ

  4. 프리뷰 2015.07.01 16: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잠시 들려서 잘보고 갑니다.
    오후 시간도 수고하세요.

  5. 주부s 2015.07.01 2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좋은 밤 되세요 ㅎㅎ

  6. 유라준 2015.07.01 2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천재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진정한 세계인 1호 마테오 리치(이마두) 신부님을 통해 바라본 동서 문명의 이해

 

 

 

 

 

 

 

 

 

 

마테오 리치 신부는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원칙적으로 외극인의 입국을 불허하는 명나라에 들어가 갖은 고초를 이겨내며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선교사들과는 달리 현지의 토착 문화를 존중하는 선교 정책을 썼다.

 

동서(東西)의 이질적인 문화를 그 차이보다는 공통점에서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문화적응주의'적 사고는 오늘날의 비교문화사적 관점에서도 본받을 만한, 성숙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리치 이전의 동서 문명 교류는 단지 상대방을 이용하거나 착취하려는 일방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마르코 폴로 이후의 유럽인들이 동방을 향하여 항해한 것은 단지 황금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동서의 두 문명이 교류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이는 마테오 리치(이마두 신부)라고 할 수 있다.

(상생출판, 양우석 '천국문명을 건설하는 마테오 리치' 中)

 

 

 

 

 

 

인류 역사상 최고의 공덕자이며 최고의 인간, 마테오 리치

서방에서 온 현자(賢者)

 

선천(先天)이 열리고 인류의 뿌리종교 시대를 지난 이래 역사적으로 지구촌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태동하여 인류사를 이끌어왔다.

'빛은 동방으로부터'라는 타고르의 금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늘날의 각색 종교는 그 정신의 본향을 동양에 두고 있다.

 

다종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한 도시 안에서도 교회와 절, 심지어 이슬람 사원까지 볼 수 있지만, 동서양 종교사를 통틀어 볼 때 한 국가 내에서 종교와 신앙의 다양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백여 년이 채 안 된다.

 

지난 19세기 서양 제국주의 침략에 앞서, 16~17세기에 구도의 열정으로 동양에 건너와, 동서양의 역사와 문명을 조우시킨 최초의 세계인이 있었다.

 

기독교적 이상을 동양에 실현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마테오 리치 신부가 바로 그 분이다. 동서문명은 이 분에 의해 비로서 본격적인 조우를 시작하여, 오늘날의 지구촌문명으로 성숙하고 있는 것이다.

 

 

 

 

 

구도(求道)의 신념을 따라 중국으로 온 마테오 리치, 이 분은 과연 누구인가?

 

마테오 리치는 1552년 이탈리아의 마체리타에서 태어났다.

마테오 리치가 태어났을 당시의 서구 세계는 종교개혁의 불길에 휩싸여 신교(프로테스탄트)와 구교(가톨릭)가 대립하여, 이미 북부 유럽은 신교로, 남부 유럽은  구교로 지형도가 그려진 시기였다.

 

이러한 때에 예수회는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에 반발하여 일어난 가톨릭 내부에서의 혁신운동으로, 인재양성과 선교활동, 신앙심의 확립과 외교력을 통한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 등을 꾀했다.

 

 

 

                        

 

 

19세에 예수회에 입회한 마테오 리치는 외지 선교를 희망하여 로마를 떠나 인도의 고아에서 4년간 머물며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이어 1582년, 30세 되던 해에 중국의 마카오에 첫발을 내딛는다.

 

중국을 하나의 자기완결된 세계로 여기는 중국인들의 견고한 중화사상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국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고 판단한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어를 심도있게 공부했다. 특히 중국에서 사제에 해당하는 계층이 승려라는 것을 알고는 선교사들도 그에 상응하는 선교방편으로 마테오 리치의 의견에 따라 불교 승려의 복색을 갖춘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마카오에 도착한 이후 명(明)나라의 수도 베이징의 궁궐에 입성하기까지 십여 년 동안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며,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아닌 이마두(利瑪竇)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서양 인문주의 전통과 자연과학 지식에 동양의 사서삼경을 자신의 머리 속에 담고,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동양에 동양의 고전을 이탈리아로 번역하는 등의 무수한 업적을 이루어 냈으며, 우리나라 정약용 등의 실학자들에게도 사상적 영향을 미친 진정한 세계인 1호 마테오 리치, 이마두 신부! ...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muy.kr 2014.06.25 0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테오 리치라는 분에 대한 정보는 처음 접해보는데, 정말 진정한 세계인 1호이시군요..^^

  2. 아쿠나 2014.06.25 0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서문명에 마테오리치신부님에 대해서 잘 보고 가네요 ^^

  3. 죽풍 2014.06.25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등학교 다닐 때 마테오리치에 대해서 짧게 배웠는데,
    오늘 좀 더 세밀하게 알 수 있네요.
    잘 보고 갑니다. ^^

  4. 신선함! 2014.06.25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녀갈께요~ 좋은 하루가 되셔요~

  5. 신선함! 2014.06.25 11: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녀갈께요~ 좋은 하루가 되셔요~

  6. 어듀이트 2014.06.25 14: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7. pyulu 2014.06.25 15: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시 인사드리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8. 카푸리오 2014.06.25 1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유익한 포스팅 잘 배워갑니다.
    행복한 하루 만드시길 바랍니다^^~

 

신교의 열매, 인류의 희망 증산도

증산도는 신교 신앙의 부활이며 후천 5만년을 여는 새 진리

 

 

인간으로 강세하신 상제님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니라. 한민족은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 시대가 지난 후 열국시대 이래 중국 한족(漢族)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그 상처가 심히 깊더니 상제님께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道)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1:1:6~8)

 


한민족의 9천년(배달 환웅이후 6천년) 역사에 있어 가장 극적인 사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천년을 이어오며 신교신앙에서 받들어온 우주의 통치자 삼신상제님께서 직접 한민족의 핏줄로 강세하신 것이다. 지금부터 140여년 전인 1871년 이 땅에 강세하신 강증산 상제님은 누구이신가? 바로 신교 신앙에서 받들어온 삼신상제님이시며, 불교에서 말법시대를 오신다고 했던 미륵부처님이시고, 기독교에서 부르짖어온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또한 유교와 도교에서 천지의 주재자로 받들어온 옥황상제이시다.

 

상제님께서는 왜 한민족으로 오셨는가?


왜 우주의 통치자 상제님께서 한민족의 핏줄을 타고 이 땅 한반도에 강세하셨는가? 이는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한민족의 9천년 역사와 신교 정신의 맥 그리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필연적인 귀결이다.

상제님께서 한민족의 핏줄을 타고 강세하신 이유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이라는 우주의 천리(天理) 때문이다. 천지의 가을 개벽기에는 분열되던 우주 생명이 뿌리를 찾아 하나로 통일되어 들어가는데, 이러한 생명의 근본 원리를 원시반본이라고 한다.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가을 개벽기에는 세세(細細)히 분열되어 있던 지구촌의 여러 문명도 그 시원문명, 뿌리 문명을 찾아 하나로 통일되게 된다. 그렇다면 인류 문명의 시원문명, 뿌리문명을 간직하고 있는 민족은 누구인가? 바로 한민족이다. 상제님은 이를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다.



應須祖宗太昊伏인데 何事道人多佛歌오

응수조종태호복       하사도인다불가
마땅히 선천 문명의 조종(祖宗)은 태호 복희씨인데 웬일로 도 닦는
자들이 허다히 부처 타령들이냐!

(증산도 도전道典 5:282:3)


태호복희 성인은 한민족의 배달국 시대 제5대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이다. 그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팔괘를 그어서 동양 역철학의 시조가 되었고, 글자를 만들어 인류 문명사의 첫새벽을 여신 분이다. 또한 인류 최초로 성(姓)-풍씨 성-을 가졌던 분이다.  


이처럼 한민족의 역사는 인류사의 시원과 맞닿아 있으며 한민족의 신앙은 유, 뷸, 선, 기독교의 모체종교인 시원종교, 신교의 맥을 그대로 이어왔다. 한마디로 한민족은 인류 역사문명의 종통을 이어온 장자(長子) 민족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천상의 상제님이 우리 한민족의 핏줄을 타고 강세하신 것이다. 왜 상제님은 강씨성을 가지고 탄강하신 것인가? 상제님께서는 이점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밝혀 주셨다.  



그 다음에 강(姜)가가 났나니 ‘강가가 곧 성의 원시’라.

그러므로 이제 개벽시대를 당하여 원시로 반본되는 고로 강가가 일을 맡게 되었느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2:37:3~4)

 

 

상제님의 강세를 예고한 성자,수운 최제우 대성사


그렇건만 상제님이 강세하실 19세기 후반 우리 한민족은 상제님의 강세를 받아들일 문화적, 역사적, 종교적인 토양이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이미 1천년이 넘는 외래종교 신앙 속에 고유의 신교신앙, 특히 ‘상제 신앙’이 사라져가고 있을 때였다. 정작 가을개벽기가 되어 천지의 주재자 상제님이 인간으로 강세하실 천시(天時)가 도래했는데도, 막상 한민족은 상제님의 존재를 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천상의 상제님은 인간으로 내려오시기 이전에 이 땅의 한 이름없는 구도자를 불러 세워, 그로 하여금 신교신앙의 맥을 잇고 상제님의 인간 강세를 준비하도록 하셨다. 바로 이러한 영광스런 부름을 받은 분이 동학(東學)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이다. 1860년 음력 4월 5일, 최수운 대성사는 천상의 상제님과 직접 묻고 답하는 저 유명한 천상문답 사건을 체험한다. 이때 상제님께서는 최수운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世人謂我上帝어늘 汝不知上帝耶
세인위아상제      여부지상제야 (동경대전東經大全 포덕문布德文)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일컫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이 말씀은 상제님께서 최수운 대성사에게 잃어버린 한민족의 상제문화와 신교를 부활시키라는 천명 말씀이다. 나아가 이는 외래종교 신앙 속에 자기 정신 곧 신교의 맥을 잃어버린 한민족 전체에게 내리시는 무서운 경책(警策)의 말씀이다. 역사를 잃어버리고 그 역사의 혼인 민족의 신앙을 잃어가고 있는 한민족에게 내리시는 준엄한 채찍의 말씀인 것이다.

 

 

 

 

상제님은 최수운에게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13자 주문을 내려주시고 상제님의 인간강세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하셨다. 그리고 최수운 사후 8년 뒤인 1871년, 마침내 상제님께서 직접 인간으로 강세하셨다.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2:30:12~17)

 

 

증산도는 신교 신앙의 부활이며 후천 5만년을 여는 새 진리


인류역사에 있어 한민족의 사명은 무엇인가? 왜 지구촌의 수많은 민족이 뿌리사를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은 시원역사를 간직하고 있는가?


이는 한민족이 선천역사의 종주국(宗主國)이면서 동시에 후천역사의 종주국이 되는 운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6천년 민족사의 전개를 볼 때 영토는 축소되어 왔고, 민족의 종교는 외래종교에 의하여 짓눌려 왔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 민족은 한반도라는 작은 영토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시련과 고통은 후천 5만년 새 천지를 여는 종주국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예정된 과정이었다. 이제 한민족은 우주의 가을 개벽기를 맞아 한반도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의 천지공사(天地公事)를 계기로 후천 5만년 새천지를 개창하는 개벽의 주체민족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는다. 증산도는 한민족이 6천년 역사동안 신앙하여온 신교의 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삼신상제님과 천지신명 그리고 조상 선영신을 받드는 제사(祭祀)문화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이 세상에 조선과 같이 신명(神明) 대접을 잘하는 곳이 없으므로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각기 소원을 따라 꺼릴 것 없이 받들어 대접하리니 도인(道人)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천하사(天下事)만 생각하게 되리라.

(증산도 도전道典 2:36:2~4)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께서 왜 지구상의 수많은 장소와 민족을 배제하고 동방의 작은 땅 한반도에 한민족의 핏줄로 강세하셨는가? 비록 쇠락하여 자취가 사라지고 있지만 동방 조선 민족의 내면에 흐르는 정신 세계만이 상제문화, 신교문화를 수용하여 이를 세상에 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태호복희씨로부터 비롯된 우주의 역철학, 우주원리-주역과 정역-를 파헤쳐 천지의 주재자이신 상제님께서 펼치시는 천지공사의 세계를 원리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민족은 천손족(天孫族)이다. 이는 자기들만 선택받았고 자기들만 구원받는다는 유대민족의 선민사상과는 품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서양은 상제님의 지상 강세를 담당할 수 없었던 것인가? 지리(地理)적인 문제를 떠나 그들이 지닌 정신세계가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기 때문이다. 상제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서양이 곧 명부(冥府)라. 사람의 본성이 원래 어두운 곳을 등지고 밝은 곳을 향하나니 이것이 곧 배서향동(背西向東)이라. 만일 서양 사람을 믿는 자는 이롭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2:120:1~3)


서교(西敎)는 신명을 박대하므로 성공치 못하리라.

(증산도 도전道典 4:48:5)

 

서교 즉 기독교는 우상숭배라며 한민족이 수천 년 동안 간직해온 제사문화를 단절시키고, 민족의 국조인 단군을 실존역사가 아닌 허구의 신화라 하여 배격함으로써 환부역조의 대죄를 범하고 있다. 또한 하느님을 신앙하는 종교라 하면서도 정작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을 찾지 못하는 왜곡된 진리와 신도(神道)를 가지고 있어 차라리 무신론만도 못한 것이 되고 말았다.  


역사의 거시적 안목에서 볼 때 신교 신앙이 제1의 뿌리 종교라면 유,불,선,기독교는 제2의 줄기이며, 증산도는 제3의 열매종교에 해당한다. 열매는 그 안에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 그 씨앗이 다시 땅에 뿌려지면 새로운 생명이 창조된다. 또한 열매 안에는 뿌리와 줄기와 가지의 모든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한민족의 증산도에 인류의 새 희망이 있다.


증산도는 한민족의 민족종교이며 나아가 전 인류가 신앙해야할 세계종교인 것이다.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진리의 해답을 꼭 찾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무료책신청 여기를 꾹 눌러주세요. ^_^

클릭 ->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