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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 한반도설'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임나일본부설' 등을 조작한 일제 식민사학자

한국 사학계의 태두(泰斗) 이병도와 한국 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의 학문과 정신적 스승 쓰다 소키치

 

 

 

 

 

 

 

 

 

 

 

 

한국사의 태산북두 이병도가 와세다대 사학과에서 공부할 때의 스승이 바로 대표적인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입니다.

한국사의 대부 이기백이 와세다대 사학과에서 공부할 때 쓰다 소키치가 쓴 책을 열심히 탐독했고, 쓰다 소키치가 주도한 연구발표회에 항상 참석하는 등 쓰다 소키치의 식민사관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에서 초기 기록은 고려의 김부식이 창작한 것이라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허구이며 조작된 것이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쓰다 소키치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은 고대 왜(倭, 일본)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만들어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는 고려의 국경선을 요동에서 한반도로 끌어들이기도 했습니다.

 

 

일제가 만주침략을 위해 만든 남만주철도 주식회사와 조선총독부는 일제 식민사학자를 동원했습니다.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던 고려국경선을 한반도로 끌어들였고, 아직도 정설이라고 주장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가 막무가내로 우겨 만든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임나일본부설' 등의 창작 잡설을 이병도와 이기백이 학문과 정신적 스승 쓰다 소키치의 가짜 학설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가 1919년 발표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 고사기 및 일본서기 연구>를 보면 임나일본부설을 만들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부정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삼국사기에는 4세기 후반부터 5세기에 걸쳐 우리나라(일본)가 가야를 근거로 신라에 당도했다'라는 명백한 사건이 나타나지 않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상대에 보이는 외국 관계나 영토에 관한 기사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에 임나일본부가 나오지 않는다고 무조건 김부식이 조작한 사료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의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식민사학 2세대로 소위 한국 고고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김원룡(1922~1933)에 의해 '원삼국시대 설'이란 해괴망측한 기형아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기치의 허무맹랑한 주장인 '한사군의 한반도 위치설'은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에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조작한 가짜역사입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사학자와 식민사학의 후예인 이병도와 이기백 등 주류 강단사학계에 의해 현재의 '한사군 한반도 주둔설'이 마치 정설인 것처럼 한국사에 뿌리내렸습니다.

 

 

쓰다 소키치를 비롯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한사군 한반도 주둔설', '임나일본부설' 등을 퍼트려 한반도 북부는 중국이 지배했고 한반도 남부는 일본이 지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일제 식민사학자가 한韓민족은 고대부터 으르고 나태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고, 일본의 침략이 정당하다는 소위 '정체성론'과 '타율성론' 등 일제 식민사관의 가짜학문적 근거를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의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이병도와 이기백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과 '한사군 한반도설' 등을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임나일본부설'은 이미 폐기됐다고 주장하는데,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만 사용하지 않을 뿐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였으며 한일고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최재석(1926~2016) 박사는 이병도와 이기백, 이기동과 노태돈 등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의 가짜학설을 추종한 무리를 두고 한국인의 가면을 쓴 일본인이라고 호되게 비판했습니다.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쓴 이주한 역사작가는 이병도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일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금서룡) 등으로부터 한국사는 한사군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교육을 받았고, 이기백, 이기동 등에게 일제 식민사학이 계승되었다고 말합니다.

 

 

 

80년대 중반 단국대 윤내현 교수가 한사군은 한반도 평양 부근이 아니라 중국 하북성의 영정하 동쪽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의 가짜학설을 추종한 스승과 제자인 이병도와 이기백은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못했으며, 윤내현 교수의 노력으로 고조선 서쪽 영역을 영정하 부근까지 옮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991년 진단학회에서 두계 이병도 선생 추념 문집 <역사가의 유향>을 발간했는데, 이병도와 이기백의 대담에서 이병도는 이기백과 김철준이 내 뒤를 이은 셈이라고 했습니다. 

 

 

실존 역사 단군조선이 일제 조선총독부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이병도와 이기백 등 식민사학의 후예들에 의해 단군신화가 되어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를 비롯한 조선총독부 어용학자가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은 이병도와 이기백 등 주류 강단사학계가 그대로 계승되었고, 아직도 일제 식민사학이 대한민국 국민정신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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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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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20 0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일제 식민사학이 대한민국 국민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니... 오늘도 몰랐던 근현대사 역사 공부를 잘하고 갑니다.

  2. *저녁노을* 2019.03.20 0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쯤 식민사학이 사라질지....ㅠ.ㅠ

    잘 보고 갑니다.

  3. kangdante 2019.03.20 0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독립운동가 발굴이라는 미명하에
    사회주의자들도 재조명받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4. 죽풍 2019.03.20 21: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곡된 역사가 지금도 판치는 세상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한韓민족의 역사를 철저하게 파괴한 일제 식민사학의 1세대와 2세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와 대부(代父)가 된 스승과 제자 이병도와 이기백 인연

 

 

 

 

 

 

 

 

 

 

 

 

 

일제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신봉하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에서 이병도(1896~1989)와 이기백(1924~2004)의 위상은 매우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병도와 이기백의 이름 앞에는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입니다.

 

 

스승 이병도와 제자 이기백의 필생의 역작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 1948년)과 <한국사신론>(1967년, 1961년 국사신론의 개정판)은 모두 한국 통사(通史)로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 한국사를 결정지은 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영향을 준 책입니다.

 

 

<조선사대관>의 저자이며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 이병도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우리 역사 조작과 파괴에 직접 참여해 적극적으로 친일행위를 했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이며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기백은 이병도의 제자이며 일본 와세다대학 후배이기도 합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 태산북두) 이병도는 1896년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병도는 1916년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해 1919년 졸업했습니다.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다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갔습니다.

 

 

이병도는 해방 후 임시 교원양성소에서 교사 양성을 했으며, <국사 교본>을 만들어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었으며, 1946년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은 1924년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기백과 이병도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입니다.

친구와 함께 서울에 있던 이병도를 찾아가 이병도에게 역사를 공부하겠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기백이 이병도를 만난 것은 1941년 와세다 고등학원을 졸업하고 1942년 봄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하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확전되면서 일제가 재학 중인 대학생의 징병 연기 제도를 폐지하자 이기백은 1944년 봄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기백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 1년여가 지난 1945년 5월 징집 영장을 받고 6월 20일에 만주 관동군에 입대했는데, 불과 2개월도 안 돼서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했습니다.

 

 

 

 

 

 

 

 

 

 

일제가 패망한 후 이기백은 약 5개월간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어 고향에서 몇 달간 머물렀고, 1946년 봄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서울에 온 이기백은 이병도를 찾아가 학업과 관련된 진로 문제를 상의했고, 1946년 가을 이병도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서울대 사학과 3학년에 편입했습니다.

 

 

1946년 가을 이기백이 서울대 사학과 3학년에 편입했는데, 1946년 6월 미 군정이 경성대, 경성의전, 치전, 법전, 경성 고공, 경성 고상, 경성 고농 등을 통합하는 국립대학안 및 국립서울대학교 신설을 발표하면서 학생들이 반대 데모를 했고, 1947년까지 동맹휴학에 들어가면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이 막상 서울대 사학과에 입학은 했는데 정작 학교에 나갈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면서 배재와 용산 등의 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서울대학교로부터 졸업논문을 제출하면 졸업을 인정해 준다고 하여 졸업논문을 제출해 서울대 사학과 졸업이란 타이틀을 얻게 됐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은 와세다대학 사학과 재학 시 쓰다 소키치가 이끈 연구발표회에 늘 참석했고, 쓰다 소키치가 쓴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쓰다 소키치는 식민사학 이론을 만들어 우리 역사 조작과 말살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일제 식민사학자로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의 스승입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대부 이병도와 이기백은 아주 작은 인연으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일제 식민사학으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와 배운 것이라고는 오직 와세다대 사학과에서 일제 식민사학을 배운 것뿐인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에 의해 대한의 역사가 난도질당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대부 스승과 제자이기도 한 이병도와 이기백이 배운 역사란 모두 일제 식민사학이며, 이병도와 이기백이 쓴 역사는 모두 일제가 왜곡 조작 말살해 짜깁기한 식민사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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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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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19 05: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대부 이병도와 이기백 두 인물에 대해서 공부하고 갑니다^^

  2. kangdante 2019.03.19 0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0년 동안 끊었던 역사를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복원을 못하고 있네요
    역사는 잃기는 쉬어도 찾기는 어렵습니다

  3. 청결원 2019.03.19 1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정보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