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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의 원시반본(原始返本) 사상과 개벽

 

 

 

5. 인간생명과 원시반본

5-5. 일심(一心)으로의 원시반본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유철 박사)

 

 

 

 

 

 

 

 

 

 

증산도의 원시반본(原始返本) 사상과 개벽 - 5-2. 일심(一心)으로의 원시반본

 

그렇다면 이러한 일심은 어떻게 가능한가.

즉 인간은 어떻게 함으로써 원래의 근본적인 통일된 마음자리를 회복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마음의 회복은 수행의 결과이지 논리의 결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

 

 

 

도전道典』에 "내가 삼계대권을 맡아서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을 개벽하여 선경을 건설하리니 너희들은 오직 마음을 잘 닦아 앞으로 오는 세상을 맞으라." (증산도 도전道典 2:74:2~3)라는 구절과 "마음 닦는 공부는 심통(心通)공부 어서 하라." (증산도 도전道典 11:250:10)는 구절은 바로 마음 닦는 수행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도통천지 해원상생(道通天地 解寃相生)" (증산도 도전道典 11:249:6)이란 구절에서 '도통천지'는 우주의 원리를 일심의 경지에서 통찰함이며, 이는 천지의 원리와 인간의 마음씀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깨닫는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도통천지 해원상생"은 도통천지의 경지가 해원, 상생과 상관적임을 보여준다. 천지의 도통은 선천의 상극질서로 인해 삐뚤어진 천지가 본래의 근본을 회복하는 것이며, 원(寃)과 한(恨)에 사무친 모든 생명존재와 신명존재를 해원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상극이 아니라 상생을 근본 이치로 갖는 새로운 세상의 바탕이 될 것이다. 일심의 경지에서 천지의 이치가 인간의 마음씀과 같음을 통찰하는 것, 즉 마음의 근본으로 원시반본하는 것에는 먼저 해원과 상생이 요구되어야 한다.

 

인간과 신명의 원의 뿌리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우주 자연의 상극의 이치 속에서 일심의 경계는 찾아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구원되기 위해서는 구원의 요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구원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어떤 측면 때문에 구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증산도에서는 구원의 대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다.

 

 "오늘날의 인류는 그 누구도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다. 인간이 범한 죄악으로부터 커지기 시작한 이 병의 뿌리는 무엇으로부터 잉태된 것인가... 이 죄악과 죽음의 근원은 마음 깊은 곳에 맺혀 있는 원한(寃恨)으로부터 나온다." (안경전 1993년) 이 말에서 우리는 증산도의 구원관은 인간이 구원되어야 하는 까닭을 원한(寃恨)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원한이 생겨나는 기원에 대해서 『증산도의 진리』는 다음과 같이 밝혀주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뜨거운 소망과 욕망을 가지고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인간은 자신의 동기가 본래 선의든 악의든 간에 자신의 불타는 소원과 욕구 충동이 일단 좌절되면 가슴에 응얼병이 들어 분통이 터지고 마음 깊은 곳에 원한이 맺힌다. 이것은 육신을 쓰고 있는 인간의 영원불변한 순수한 본질이다... 인간의 죄는 마음에서 일어나서 말과 생각함으로 번지며 행동으로 옮길 때 표면화된다. 죄의 뿌리가 원한 속에 뻗어 흐르고 있다." (안경전 1993년)

 

 

 

즉 인간의 원한은 바로 인간의 무한한 욕망 구조 속에서 드러난 것이며, 이러한 욕망구조는 선천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선천의 이치는 인간을 욕망과 충동의 존재로 이끄는 상극적 상황을 드러낸다. 선천의 자연 속에서 분열된 인간의 본성은 우주의 가을 개벽과 함께 구원의 계기를 마련하여야 하며, 그 계기는 바로 일심의 회복, 심적 원시반본이다.

 

 

 

 

 

 

 

 

 

 

 

 

증산도의 죄악개념은 기독교의 원죄(原罪)와는 달리 인간의 문제이고 이 인간의 문제는 상극의 이치로 인한 욕망의 구조, 그리고 원한의 불가피성에서 찾아질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구원되기 위해서는 원한을 풀어버림으로써 죄악의 근원을 없애 버려야 한다. 이를 해원(解寃)이라고 한다. 즉 해원은 죄의 소멸이며 죄의 소멸은 구원의 조건이다.

그렇다면 인류구원의 단서는 직접적으로 해원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도전道典』 구절은 해원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각기 원통함과 억울함을 풀고, 혹은 행위를 바로 살펴 곡해를 바로잡으며, 혹은 의탁할 곳을 붙여 영원히 안정을 얻게 함이 곧 선경을 건설하는 첫걸음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17:8)

 

 

 

 

 

 

 

 

 

 

 

 

이는 천지와 인류역사 속에 누적된 원한의 고리를 풀어 버릴 때 지상선경을 향한 구원의 문을 열 수 있으며, 상생의 대도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원은 인간과 신명의 한과 죄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그 한의 고리를 풀어 버림으로써 후천선경의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가는 방안이다. 이러한 해원은 천지의 질서를 바로잡고 신도(神道)를 바로잡으며, 인간의 이상적 문명을 예정하는 천지공사(天地公事, 프로그램) 속에서 구체적으로 현실화된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구조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천의 상극적 이치로 인한 이차적인 것이지 본래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이 무한한 욕망구조를 갖고 죄를 탄생시키는 것은 선천의 뒤틀린 환경 때문이다.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三界)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 (증산도 도전道典 4:16:2~3)킨다.

 

 

 

 

 

 

 

 

 

 

 

 

따라서 인간의 원한의 근거는 바로 선천의 자연환경이다.

원래 인간의 마음의 본질은 무극의 통일상태, 즉 일심으로 존재한다. 그러한 일심의 상태는 자연환경의 상극질서로 인해 분열 성장히여 무한한 욕망구조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해원은 상극의 이치로 인해 분열된 마음을 통일시키는 조건으로서 일심과 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후천개벽을 통한 상생의 이치 속에서 자연과 인간과 신명(神明)이 조화로운 생명의 뿌리를 되찾아가기 위한 조건은 해원이다.

이는 해원이 인간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함의한다. 증산도의 죄악개념은 완전히 인간의 실천의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초월적 차원도 아니다.

 

 

 

 

 

 

 

 

 

 

 

 

원한의 기원은 단주(丹朱)의 원(寃)이며 이는 인간적인 관계 속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寃)의 역사의 근원은 선천의 상극구조 때문이다. 즉 선천의 원한은 선천의 상극질서 속에서 발생한 인간의 행위로 인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원한의 근거가 선천의 우주환경으로 인한 인간의 상극적 행위 때문이라면 해원의 가능성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후천개벽과 천지공사는 우주 주재자의 절대적 권능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는 해원의 가능근거이다.

선천의 난법이 해원되고 천지의 이치가 상극에서 상생에로 전이됨으로써 인류의 역사와 문명은 그 본래적 조건을 회복할 것이며, 인간의 원을 끌러 버리는, 그리고 인간 상호간에 생명을 살리는 한정된 의미만으로 해석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자연과 인간과 신명의 해원, 상생이라는 총체적 의미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해원은 분열성장하는 선천에서 어그러진 생명의 본래성을 바로잡는 것이며, 상생은 해원된 존재의 총체적 상호살림이다.

이러한 해원상생은 이상적인 선경을 건설하는 토대이며, 일심으로 원시반본하는 조건이다...

(계속)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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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4.12.03 06: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
    즐건 하루되세요 ~

  2. 청결원 2014.12.03 06: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 가네요

  3. 뉴론7 2014.12.03 0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되세요

  4. 죽풍 2014.12.03 07: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전라지역에는 아직도 눈이 많이 내리고 있네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

  5. 한콩이 2014.12.03 07: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오늘도 잘보고갑니다^^

  6. Hansik's Drink 2014.12.03 0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녀간답니다 ^^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세요~

  7. 비키니짐(VKNY GYM) 2014.12.03 0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오늘도 유익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8. 브라질리언 2014.12.03 1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심 에 대한 생각을 오랜만에 해봅니다 ^-^

  9. 명태랑 짜오기 2014.12.03 1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10. 주부s 2014.12.03 1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봤습니다^^

  11. 세상속에서 2014.12.03 1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시반본 포스팅 잘봤어요.
    저녁시간 잘 보내세요.

  12. 유라준 2014.12.03 2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간의 무한한 욕망구조를 해결해야 하는군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의 원시반본(原始返本) 사상과 개벽

 

 

 

5. 인간생명과 원시반본

5-1. 마음개벽과 천지일심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유철 박사)

 

 

 

 

 

 

 

 

 

 

증산도의 원시반본 사상과 개벽 - 일심(一心)

 

우주 1년의 순환은 우주의 필연적 법칙이면서 생장염장의 과정으로 드러나는 우주 주재자의 무위이화의 현현(顯現)이다.

이 법칙 속에서 자연과 인간은 선천과 후천의 순한과정을 겪게 되며, 이와 함께 인간 구원의 필요조건으로서 상생의 이치가 우주의 근본원리가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구원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또 다른 필요요건으로서 구원을 향한 인간의 적극적인 실천이 요구된다. 즉 우주 1년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환경적 변화를 통해서 그 가능성이 열려지는 이상세계를 현실적으로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한 인간적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인간의 구원과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문제이며 원시반본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증산 상제님은 "이제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5:4)는 말은 인간의 실천적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장에서 논자는 가을 개벽기를 맞이하는 시점에 인간의 실천원리가 무엇인가란 물음을 일심(一心)과 관련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5-1. 마음개벽과 천지일심(天地一心)

 

원시반본하는 이 시점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원시반본 정신에 의하여 근본과 뿌리를 찾지 못하는 자들이 후천개벽이 일어날 때 다 죽는다면(증산도 도전道典 2:44) 인간 생명의 살림은 원시반본을 떠나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총체적 살림으로서의 원시반본이 후천개벽기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 1년의 과정 속에서 후천개벽을 통한 새로운 천지 운행질서와 천지공사에서 보여지는 예정적 존재질서가 모든 인간의 구원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지는 않다,

 

 

여기서 생명의 근원자리로의 회귀로서 원시반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인간의 구원이 원시반본과 관련하여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다음의 도전道 구절은 후천개벽과 심적 실천의 상호연관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내가 천지운로(天地運路)를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너희들은 삼가 타락치 말고 오직 일심으로 믿어 나가라. 일심이면 천하를 도모하느니라. 이제 9년 동안 보아 온 개벽 공사(開闢公事)의 확증을 천지에 질정(質定)하리니 너희들도 참관하여 믿음을 굳게 하라."  (증산도 도전道典 5:414:3~7)

 

 

위 구절은 후천개벽을 통한 선경의 가능성은 그 가능성에 대한 일심의 믿음으로써 확증되고 실현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일심은 원시반본의 또 하나의 의미이다.

 

 

 

후천의 선경을 현실적으로 이 땅, 이 시대에 이루기 위한 심적 상태는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물음은 곧 후천개벽을 통해 가능해진 이상세계를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실천적 근거가 과연 무엇인가 라는 물음과 일치한다.

 

증산도에 있어서 구원은 크게 후천개벽이라는 타력적 요소와 심적 개벽을 통한 일심의 실현이라는 자력적 요소, 이 양자에 의해 가능하다.

 

 

 

 

 

 

 

 

 

 

앞의 물음과 관련되어 있는 이상세계의 조건은 인간 마음의 본래적 상태, 원시심(原始心), 순수심(純粹心), 본원심(本原心)을 회복하는 것이다.

 

 

현대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욕망구조나 과학적 물신주의는 선천의 상극이치 속에서 생겨난 비본질적 마음이며, 이는 무도(無道)의 근거이며, 원한의 씨앗이 된다.

정신의 참된 본성을 벗어난 비본질적 마음은 인간의 역사를 원한의 역사, 욕망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며, 그 속에서 생명을 되살리고, 선경을 실현할 수 있는 구원의 마음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참된 삶을 찾을 수 있는 본래의 마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혹은 인간의 본성은 과연 있는 것이가, 아니면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변해 가는 상태의 연속인가?  선진유가(先秦儒家)철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양하게 논의하고 있다. 공자의 인(仁)이나 맹자의 성선설(性善說), 순자의 성악설(性惡說) 등은 인가느이 본성에 대해 어질다거나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그 자체로 인간의 모든 행위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환경에 따라 인간의 본성은 악하게도 혹은 선하게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규정으로서의 선(善)이나 악(惡)은 절대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행위로 드러날 경우에 그 행위가 규범에 일치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렇다면 유가철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성은 곧 도덕적 본성의 측면에서 논의되는 것이며 이는 상대적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의 순수심, 혹은 원시심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도덕적 개념이 아니라 도덕적 행위나 개념으로 구분되기 이전의 근원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인간 구원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지는 마음은 상대적 가치를 갖는 도덕적 범주가 아니라, 절대적 의미를 갖는 자연적 본성, 구분되고 분화되기 이전의 순수한 심적 상태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본래의 마음은 우주의 순환원리에 의한 변화와 삶의 가치의 다양화, 존재본질의 상실로 인해 절대적 본성을 상실하고 상대적 의미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현대의 위기의 원인은 바로 여기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위기의 원인이 분열된 마음에서 찾아진다면, 위기의 해결책은 분열된 마음의 통일에서 구해질 수 있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원시반본을 "무극의 통일상태로 돌아감" 이라고 해석할 때, 그 통일상태는 상명이 음과 양으로 나누어지기 이전, 즉 주객이 분리되기 전 인간과 우주생명의 상대성을 초월한 절대자리이다. (안경전 1993년)  그 중 인간 마음의 통일상태는 바로 다양한 가치로 분화되기 이전의 마음상태, 절대적 가치로 존재하는 통일된 심적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경계가 사라진, 그래서 절대적 가치를 회복한 상태를 마음에 있어서 무극의 통일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시심은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상태인가.

 

 

 

 

 

 

 

 

 

 

 

 

증산도 도전道典에서 인용한 다음의 구절은 마음의 이러한 경지, 즉 원시심은 곧 천심(天心)임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대인을 배우는 자는 천지의 마음을 나의 심법으로 삼고 음양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체득하여 천지의 화육(化育)에 나아가나니 그런고로 천하의 이치를 잘 살펴서 일어일묵(一語一默)이 정중하게 도에 합한 연후에 덕이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95:11~12)

 

 

 

천지의 마음을 나의 심법(心法)으로 삼는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은 곧 하늘의 마음이어야 함을, 그리고 그렇게 하여 천지의 이치와 마음씀(심법)이 일치하여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 때 인간의 본래 마음(원시심)은 사사로움이 없는 공평한 마음, 곧 천지심(天地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근본자리로 되돌아 감(심적 원시반본)은 곧 천지의 이치와 일치함, 혹은 위 『도전道典』의 인용문처럼 우주의 사시(四時), 즉 생장염장의 순환법칙에 대한 체득(體得)이며, 이는 바로 도(道)의 근원에 합치하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근본적으로 생명의 본 바탕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후천선경의 실현이라는 인간 구원의 구체적 모습은 마음의 근본자리로 돌아감, 즉 마음의 절대적 상태의 회복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 개벽,

 

심적 원시반본의 방법적 측면은 초월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절대자의 은총에 의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는 실천적인 인간의 마음씀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며, 후천선경의 인간적 조건이며, 생명의 근본자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다음의 『도전道典』 구절은 마음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으며, 그 마음자리는 인간의 현실적 노력의 차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천지만물(天地萬物)이 시어일심(始於一心)하고 종어일심(終於一心)하니라. 천지의 만물이 일심에서 비롯하고 일심에서 마치느니라. 일심이 없으면 우주도 없느니라. 일심으로 믿는 자라야 새 생명을 얻으리라. 너희들은 오직 일심을 가지라. 일심으로 정성을 다하면 오만년의 운수를 받으리라. (증산도 도전道典 2:91)

 

 

 

이 구절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일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언뜻 관념론적(觀念論的) 세계관을 연상케 한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성을 주관(主觀)에서 찾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렇게 이해한다면 마음의 문제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존재성에 초점을 두는 것이 된다.

이 구절의 본래의 의도는 마음이란 어떤 것이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일심에서 천지가 비롯된다는 것은 마음이 천지의 존재 근거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보다는, 천지의 이치, 우주의 원리는 마음에 의해 깨침으로서 그 진리성이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즉 이 성구에서 '매사에 일심히라'의 의미는 일심을 갖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며 그 노력의 주체는 바로 인간이다.

 

 

일심을 갖는다는 마음개벽을 통해 인심(人心)이 천심(天心)임을, 그리고 천심이 일심(一心)임을 깨달음으로써 인간 본래의 마음자리, 원시심을 회복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 생명의 본래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계속)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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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4.12.02 0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

  2. Hansik's Drink 2014.12.02 08: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녀간답니다 ^^ 웃음 가득한 하루가 되셔요~

  3. 뉴론7 2014.12.02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날씨가 상당히춥네요 좋은하루되세요

  4. 아쿠나 2014.12.02 0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시반본은 언제 봐도 어려워요 ㅎ

  5. 주부s 2014.12.02 0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6. 생명마루한의원 2014.12.02 1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추운날씨 감기조심하세요~

  7. 브라질리언 2014.12.02 11: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시반본 알수록 매력있네요 ㅎㅎ

  8. 명태랑 짜오기 2014.12.02 1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9. 세상속에서 2014.12.02 14: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증산도의 원시반본 잘보고 돌아갑니다.

  10. 한콩이 2014.12.02 1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감기조심하세요^^

  11. 신기한별 2014.12.02 2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다녀갑니다

  12. 여행쟁이 김군 2014.12.02 2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잘 보고 갑니당~

  13. 유라준 2014.12.02 2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간 생명 본래성을 회복한다라...
    굉장히 어려운 내용같네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조화성령을 받아야 선천 세상을 매듭짓고

후천의 현실선경,지상선경, 조화선경 세상를 연다.

 

 

칠성이 내 별이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북두칠성이 내 별이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3:89)

 

 

대전대 한의학 윤창렬교수

 

북극성, 북두칠성, 삼태성. 이런 별들은 인간 생명과 영혼의 고향입니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늘로부터 왔어요.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혼자 주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신들과 더불어 주재하십니다.

 

모든 인간 생명의 근원이며, 영혼의 고향이 북두칠성이며 삼태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인돌을 보면 꼭 칠성이 새겨져 있습니다. 죽어서 생명의 고향을 찾아가고자 하는 염원으로 칠성을 새겨놓은 것입니다.

 

또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있는데, 수호신이겠죠. 역사학자 이덕일 소장이 증산도 사상연구소 콜로키움 때, “자체로서 명당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얘기한 적도 있는데, 주작, 현무, 청룡, 백호는 수호신으로 새겨놓고, 천장에는 북두칠성을 꼭 새겨놨어요.

 

이 또한 북두칠성이 우리 생명이 내원한 곳이고 우리의 생명이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될 곳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고향이 삼태칠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칠성경을 많이 읽으면 재앙이 물러나고 복을 불러옵니다. 또한 무병장수의 기운을 받습니다. 그래서 모든 병을 물리치고 병겁을 극복하게 됩니다.
 
도전에서는 칠성경을 통해서 건강을 누리게 되는 내용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영원한 생명, 불멸의 생명인 선仙의 기운을 받아서 우리의 생명을 새롭게 부활시키는 주문이 칠성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후천선경의 대선모(大仙母)이신 김호연 성도에게 특히 칠성경을 많이 읽게 하셨죠. 칠성경을 많이 읽으니까 칠성의 선관들이 직접 내려오신 것을 김호연 성도가 보신 구절도 도전에 나와 있습니다.

 

또한 이 칠성경을 통해 우리는 궁극의 깨달음과 도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금강산 1만2천 봉 겁살을 벗기는 공사를 보셨는데, 이것은 1만2천 명 일꾼들의 길을 열어주는 공사입니다. 그때도 칠성경을 하루에 21번씩 열흘 동안 읽게 하시는데 그것은 금강산 봉우리가 도통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궁극의 깨달음과 도통을 칠성경을 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칠성경을 반드시 읽어야 되는가? 칠성은 하느님의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는 별입니다. 우리는 칠성의 성령을 받아야 선천을 매듭짓고 후천을 열 수 있습니다. 선천을 매듭짓는 포교도수와 개벽기의 의통집행도수, 불멸의 선仙의 문명을 여는 모든 것이 칠성의 성령을 받음으로써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칠성도수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태모님께서도 “칠성기운은 사람의 생명이니 자손은 칠성기운으로 생기느니라.”(증산도 도전 11:57)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자손들의 앞길을 열어 주기위해서도 우리는 칠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북두칠성은 국자 머리부분부터 제1성, 제2성, 제3성, 제4성, 제5성, 제6성, 제7성이 있고, 보이지는 않지만 제8성인 외보성과 9성인 내필성이 있습니다. 흔히 북두칠성을 일곱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두 개의 별까지 합하면 아홉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북두칠성이 2·7火의 원리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 인체도 구멍이 모두 아홉 개가 있는데, 얼굴에 있는 일곱 개는 볼 수 있지만 전음과 후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북두구성의 두 개가 보이지 않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까지를 괴위성이라 하고, 다섯, 여섯, 일곱은 표(성)라고 합니다. 또한 두 번째, 세 번째 별이 천선, 천기 별이면서 앞 네 개 별을 모두 선기(璿璣)라고 하고, 뒤 세 개를 모두 옥형(玉衡)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북두칠성도 음양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따라서 ‘선기옥형璿璣玉衡’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다른 이름입니다.

북두칠성은 많은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탐랑(성), 거문(성), 녹존(성), 문곡(성), 염정(성), 무곡(성). 무곡 위에 고상옥황(高上玉皇)이라는 별이 있고, 자미제군(紫微帝君)이 그 옆에 있는데 그것이 외보성과 내필성입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별이 파군성입니다. 그리고 칠성의 또 다른 이름이 괴(성), 작(성), 관(성), 행(성), 화(성), 보(성), 표(성) 일곱 개와 존(성), 제(성)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지로 칠성경을 읽을 때는, 대괴, 탐랑, 문곡, 거문, 녹존, 염정, 무곡, 파군 해서 문곡성을 앞에 놓고 읽어요. 이것은 상제님께서 고송암의 역모 사건을 다스리고 나서 이렇게 읽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칠성의 본래 별의 이름은 큰 우두머리, 대괴인 탐랑성이고, 그 다음은 거문성, 녹존성, 문곡성, 염정성, 무곡성, 파군성입니다.

 

그리고 북두구성의 또 다른 이름이 천추, 천선, 천기, 천권, 옥형, 개양, 요광. 그리고 여덟 번째가 북두제팔통명외보성군, 아홉 번째가 북두제구은광내필성군. 외보성은 다른 이름으로 존(성)이라 하고, 내필성은 제(성)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북두칠성은 정성, 법성, 영성, 벌성, 살성, 위성, 부성(응성). 이러한 별명도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공우를 데리고 전주로 가시다가 쇠내(金川)에 이르러 점심때가 되니 공우가 상제님을 모시고 고송암(高松庵)을 추종하는 친구의 집에 찾아가 점심밥을 부탁하니라. 
상제님께서 진짓상을 받으시다가 문득 말씀하시기를 “서양 기운을 몰아내어도 다시 몰려드는 기미가 있음을 이상히 여겼더니 딴전 보는 자가 있는 것을 몰랐도다.” 하시고 젓가락으로 상을 탁 치시며 “뒷골방에 살강이 있는지 몰랐도다.” 하시니라. 
이어 공우에게 명하시어 “고송암에게 가서 문상(問喪)하고 오라.” 하시고 칠성경(七星經)의 문곡(文曲)의 위차를 바꾸어 도통문을 잠그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5:194:1∼6)

 

그리고 삼태성은 상태, 중태, 하태로 되어 있으면서 두 개씩 총 여섯 개입니다. 그래서 북두칠성의 7과 삼태성의 3을 더하면 10이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완전성과 창조성이 이 두 별자리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북두칠성 9개, 삼태성 6개를 모두 합하면 15개가 되는데, 이는 15진주眞主의 의미도 취해볼 수 있습니다.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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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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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 증산도 태상종도사님 말씀 >

생명의 주문 태을주를 지극정성으로 읽으라

 

의통의 바탕은 태을주

 

가을 개벽철에는 태을주를 바탕으로 한 의통으로써 사람을 살리게 되어져 있다. 의통목을 거쳐 태을주로써 세상 사람을 구제하여 개벽을 매듭짓는다. 그리고 후천 5만년 동안 집집마다 태을주를 읽는다. 그래서 상제님도 태을주는 개벽기에 쓸 주문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번에는 춘생추살의 자연 섭리가 모든 생명을 전부 다 죽이는 때다. 그런데 상제님이 태을주를 바탕으로 한 의통을 전해 주셨다. 지구상에 사는 70억 전 인류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죽는 것을 태을주를 읽어서 살 수 있게 하신 것이다.



태을주의 뜻

 

그러면 태을주 주문의 뜻은 무엇이냐?
우선 훔자는‘소울음’훔 자다. 소가 울려면 ‘훔∼’하지 않는가. 소울음 훔 소리는 우주의 근원, 우주의 뿌리를 상징하는 소리다. 훔하고 소리를 내면 그 훔 소리 속에 만유의 진리가 다 들어 있다. 그래서 이 훔을 씨앗이라고도 한다. 핵이라는 말이다. 그것을 더 알기 쉽게 표현하면, 콩알을 물에다 불려서 두 쪽으로 쪼개 보면, 그 한가운데에 새 을(乙) 자로 된 것이 있다. 거기서 싹이 나오는데, 싹을 틔워내는 그것을 핵이라고 한다. 씨앗! 핵! 그것이 바로 훔의 뜻이다. 다시 말해서 훔은 생명의 모태이다.



그리고 치 자는 ‘‘소울음’치, ‘ 입 크게 벌릴’ 치 자다. 치는‘꼭 그렇게 되도록 크게 정해진다’는 뜻이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갱무(更無)꼼짝이라”, 다시 갱(更) 자, 없을 무(無) 자에다가 꼼짝이라는 우리말이 붙었다. 다시 꼼짝할 수가 없다, 아주 요지부동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방향을 틀지도 못하고, 0.1밀리도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고, 좌로도 우로도 가지 못하고, 그저 원형 그대로란 말이다.

 

치 라는 것은 그렇게 ‘크게 정해진다’ , 다시 말하면 ‘우주의 근원과 하나가 된다’ 는 뜻이다.

훔이라는 우주 상징의 소리가 치와 붙음으로써, 다시 더 어떻게 바꾸거나 틀어버릴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걸 근래 말로 코팅한다고 할까, 꽉 붙들어 맨다고 할까? 원형 그대로 꼼짝 못하게 붙잡아 매서, 그렇게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태을천 상원군’ 은 인류생명의 뿌리요, 인류역사의 뿌리다. 인간 세상이 창조된 이래 인간 생명의 원 원조가 태을천 상원군이다. 또한 태을천 상원군은 도통 문화의 뿌리, 도의 근원, 도통하는 도신(道神)의 뿌리다. 상원군님은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서 가장 지고지존(至高至尊)한 분이다. 상원군님이 계신 세계를 궁(宮) 자를 붙여서 태을궁(太乙宮)이라고 해도 된다. 어머니가 태아를 포태하는 데를 자궁(子宮)이라고 한다. 자식을 낳는 궁, 사람 낳는 집이라는 뜻이다. 태을궁은 그런 자궁, 만유를 낳는 자궁(子宮)도 되고, 또 스스로 자(自) 자를 써서‘자궁((自宮)’,‘ 태을궁으로부터’라는 뜻도 된다.



또 태을궁은 콩 태(太) 자, 해 세(歲) 자, 태세(太歲)도 된다. 태세는 껍데기다. 집이라는 말이다. 사과도 껍데기가 있고, 배도 껍데기가 있다. 무슨 씨앗이고 그 껍데기를 태세라고 한다. 태을궁은 바로 전 인류가 태어난 태세, 집도 되는 것이다.


인간 생명은 이 태을궁을 연유해서 생명을 받아 나왔기 때문에, 개벽하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은 남녀노유, 어떠한 이색인종이라도 태을궁을 벗어나서는 살 수가 없다. 태을궁의 상원군님을 바탕으로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얘기하면 태을궁은 생명의 뿌리요, 도의 근원이요, 모든 가지가 생성(生成)되는, 다시 말해 생겨나서 매듭짓는 틀, 바탕이 되는 곳이다. 옛날사람들 서적을 보면 “태을(太乙)은 구고천존(救苦天尊)이다” 라는 말이 있다.‘아주 고생스럽고 괴로운 것을 구원해 주시는 천존이시다’라는 뜻이다. 태을궁은 그렇게 인간 생명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곳이다.



그리고 ‘함리(喊哩) 사파하(娑婆訶)’를 봐라.
거기서 함(喊)은 입 구(口) 옆에다 다 함(咸) 자를 쓴 것이다. 우리나라 함경도라고 하는 그 함 자다. 이 함은 ‘꼭 그렇게 해달라’ 는 뜻이다. 큰 소리로 꼭 그렇게 되게, 틀림없이 그대로 되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훔치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는 ‘태을천 상원군님이시여, 위의 뜻이 꼭 그대로 이루어지이다’ 라는 뜻이다. ‘사파하’는 기독교에서 흔히 쓰는 술어로 ‘아멘’ 과 같다.


태을주를 지극 정성으로 믿고 읽으면서 상원군님을 찾으면 만 가지 소원이 다 성취된다. 아픈 사람은 병이 고쳐지고, 하고 싶은 일도 뜻대로 다 이루어진다.

 

 

 

생명의 주문 태을주를 읽어야 산다

 

지금은 개벽하는 때가 돼서, 이 시대를 사는 70억 전 인류는 누구라도 다 태을주 영향권 속에 들어와야 산다. 현실을 사는 전 인류에게 태을주는 산소와도 같다. 흑인종이나 백인종, 황인종 할 것 없이 모두 산소를 호흡해야 살 수 있듯이, 현세를 사는 사람으로서는 태을주를 읽어야만 생명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건 어느 민족이든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이 ‘훔치’ 소리를 못해서 ‘후무치후무치’ 한다 해도, 하다못해 ‘후무치’라도 찾아야 산다. 그렇다고 ‘훔치훔치’를 자기네 말로 번역해서 읽으면 아니 된다.


해서 나는 태을주를 이름 붙여서 ‘생명의 주문’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실이 태을주는 생명의 주문이다. 태을주를 읽어야 내가 살고, 또한 시조 할아버지서부터 모든 조상신들도 다 살릴 수 있다. 또 내 자손도 백 대, 천 대 계계승승해서 번창할 수 있다.


바로 태을주는 생명의 뿌리인 것이다. 참으로 위대한지고!
지금은 개벽하는 때가 돼서, 천도(天道)도 그렇고 모든 것이 원시로 반본하는 때다. 사람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자기 조상, 자기 뿌리를 되찾아야 하는 때란 말이다.


그런데 태을주를 읽게 되면, 그것이 바로 원시(原始)로 반본(返本)하는 길이 된다. 그래서 반드시 태을주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상제님 진리는 바로 뿌리를 되찾는 진리다. 쉽게 말해서 뿌리 장사!


물론 태을주가 꼭 그것만 주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태을주는 원시로 반본하여 제 뿌리, 제 바탕, 제 틀을 찾는 주문이다. 또 지금은 모든 신명들도 태을주를 근거로 해서 활동하고 있다. 사람이 태을주를 읽으면 신명들이 좋아한다. 그 주문 읽는 기운에 신명들이 응감을 한다. 또한 태을주를 읽음으로써 신도의 기운이 귀정(歸正), 바르게 돌아간다.


상제님의 9년 천지공사는 한마디로, 태을주로 시작해서 태을주로 마무리짓는 내용 이념을 담고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상제님이 어천하신 후에 ‘태을주로 사람 살리는 것’으로 시작을 해서, 앞으로 의통목에도 ‘태을주로 사람 살리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는 말이다.


-태상종도사님의 어록 <천지의 도 춘생추살> 7부 ‘태을주로 천하사람을 살린다’ 내용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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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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