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열전'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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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03 증산도 도전 인물열전 - 4.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봉사자이며 대성인, 이마두 마테오리치 구천상제님 (7)
  2. 2015.07.02 증산도 도전 인물열전 - 3. 동서양 문명과 문화, 사상을 융합한 진정한 최초의 세계인, 이마두 마테오리치 신부님 (7)
  3. 2015.07.01 증산도 『도전』 인물열전 - 2. 이마두 마테오리치 신부님은『천주실의』에서 '천주는 곧 상제'라고 하였다. (6)
  4. 2015.06.30 증산도 도전 인물열전 -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 신부 동양 선교의 꿈 (7)
  5. 2015.06.26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열전 - 진표율사 김제 금산사 미륵전 미륵불 (7)
  6. 2015.06.25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열전 - 진표율사 도솔천 천주님, 미륵불 친견 (8)
  7. 2015.06.24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열전 - 진표율사 망신참법 지장보살의 가호 (8)
  8. 2015.06.23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열전 - 진표율사 미륵부처와 지장보살 (9)
  9. 2015.06.18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열전 - 관우 - 5. 충의(忠義)의 화신 관우, 진정한 영웅 관운장의 죽음 (7)
  10. 2015.06.17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열전 - 관우 - 4. 관운장의 보은과 오관참장, 화용도에서 의기 (12)
  11. 2015.06.16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열전 - 관우 - 3. 관운장의 조건부 항복(관공삼약)과 조조의 회유 (8)
  12. 2015.06.12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열전 - 관우 -2. 대인대의의 표상, 관운장 (9)
  13. 2015.06.11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 관우 - 1. 병마대권을 맡은 천하영웅 관운장 (9)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4.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봉사자이며 공덕자(功德者)요 대성인(大聖人),

이마두 마테오 리치 구천상제(九天上)

 

 

 

 

 

 

 

 

이마두 마테오 리치 대성사(大聖師)님은 당시 기독교(가톨릭) 신부로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왔다.

하나님의 왕국, 즉 지상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바로 이 지상에 실현되는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일부에서는 이마두 대성사님의 삶을 기독교 선교 활동으로 한정해서 좁은 시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마두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좀 더 폭넓은 문화사적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후대에 재조명된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은 르네상스 유럽의 자연과학적 전지식과 중국 사서오경(四書五經)의 학문을 한몸에 갖춘 최초의 세계인(世界人)으로 동서양의 문명과 문화, 사상을 이어준 비교 문명사의 인물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이마두 대성사님을 동서 문명 교류의 물꼬를 튼 선구자이며, 더 나아가 죽어 천상에 올라가서 동분서주하며 현대 문명을 건설하게 한 주인공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봉사자이며 공덕자라는 파격적인 평가를 하셨다. 

 

더불어 선천 상극의 세상을 넘어 새롭게 열리는 후천의 도술(道術) 문명 시대, 조화(造化) 선경 시대, 10천(十天)의 새 시대 신천지(新天地)에 구천상제(九天上帝)님으로 임명하셨다.

 

 

 

 

 

 

 

 

 

 

이마두(利瑪竇)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은 중국에서 생활하며 유교, 불교, 도교 등을 공부하면서 동서양 문화의 다양성에 눈을 뜨게 된다. 동양문화에 대한 깊은 안목을 바탕으로, 스스로 자기 신앙관에 결단을 내리게 되었으며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구도자(求道者)가 된다.

 

 

기독교 교리 문답서인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저술하면서 유교(儒敎)에서 말하는 하늘(天)과 상제(上帝)님 신앙은 자신이 모시던 기독교(가톨릭)의 천주(天主)님과 신앙의 맥이 통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천주실의에서 천주(天主)는 경서(經書)에 나오는 상제(上帝)와 동일한 분'이라고 정의하게 된다.

 

이는 기독교의 하느님(하나님)과 유교에서 말하는 상제님이 결코 다른 신(神)이 아니라 같은 신이며, 지리적 문화적 차이로 말미암은 같은 신(神)에 대한 다른 이름뿐이라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은 천주교(天主敎) 교리가 중국 전통의 유교적 세계관과 윤리관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유교적 세계관을 더욱 완전하게 하고, 더불어 고대의 천(天) 사상으로 돌아가 거기서 상제님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하자 명나라 고위 관료들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게 이른다.

 

 

 

 

 

 

 

위대한 대성인(大聖人) 이마두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 천주(상제)님 곁으로 돌아가시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에게는 안정된 생활은 없었다. 긴 여행과 이질적인 풍토로 말미암아서 중병을 많이 앓게 되고, 또한 선교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난항을 겪을 때마다 격심한 심신의 고통을 겪게 된다. 추방되거나 억류되는가 하면 심지어 도적(盜賊)으로 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친형제같이 사랑하였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에게 덕인(德人)으로 칭송을 받았다.

 

 

이마두 대성사님에게는 수천 명의 지인이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그를 만나 종교, 과학, 수학, 지리, 음악, 미술, 기억술 등을 주제로 논의하고 싶어 했고 그런 논리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거절하지 않았다.

 

 

 

 

 

 

 

 

이마두 대성사님은 결국 과로로 쓰러져 중국에 들어온 지 27년이 되던 해 1610년, 향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황제는 북경성 밖 책란(柵欄) 땅에 마테오 리치 신부의 장지를 윤허한다.

중국 역사상 황제가 직접 서양인에게 묘지를 하사한 보기 드문 사건이었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중국인들은 마테오 리치 신부를 '성인 진정한 성인'이라고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현대문명이 인도하는 지상 천국

 

살아생전 동서양의 지식을 두루 섭렵한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원대한 이상을 품는다.

동양을 무대로 '하나님의 왕국'으로서 '천주교 중심의 천국'을 건설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천국이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인간이 사는 지상에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실로 기독교 역사상 아무도 품어보지 못한 실천적인 대이상이었다. 하지만 소망을 다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셨다.

인류 역사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불세출의 업적을 지상에 남기고서 천주님의 곁으로 가셨다.

그렇다면 한 성인의 죽음은 그것으로 끝이었을까? 결코, 아니었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님은 육신 없는 인간인 신명(神明) 세계에서 더욱 정열적으로 활동하였다.

우수한 두뇌와 부드러운 사교술, 폭넓은 인간관계와 근대과학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지적 능력, 천주님에 대한 경건한 신앙심을 근간으로 하여, 사후(死後) 신도(神道)에서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가서 문명 발전에 역사 하였다. 17,18세기 약 200여 년 동안 서양의 문명사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19세기 현대 문명을 근대화로 인도하였다.

 

 

 

 

 

 

 

 

자신이 발견한 천주님 '상제님'을 알현하고, '지상천국 건설'을 탄원했다는 놀라운 사실!

인류 역사상 오직 단 한 사람,

 

 

마테오 리치 대성사만이 서양의 하느님과 동양의 상제님이 같다는 결론을 실천적으로 얻어낸 대성인이다.

현재의 비약적인 문명 발전을 이뤄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한,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순수한 구도(求道) 정신이 이 천지 안에 울려 퍼지고 있다. 인류를 위해 지고한 일심 노력을 다한 그분만이 천상의 여러 문명신들을 움직여, 지상의 문명 혁신을 이뤄냈다는 놀라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천상 신도세계에서의 선행된 노력, 즉 마테오 리치 대성사와 여러 문명신들의 지고한 노력에 의한 합작품임을 알아야 한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고자 한 마테오 리치 대성사, 생사를 넘어선 한 사람의 일심과 노력으로 동양 문화와 서양 문물이 서로 교류하고, 천상과 지하의 문명이 교류했다는 점은, 인간의 일심 노력이 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놀라운 진실을 증명하는 것 같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생애에서 우리는 커다란 교훈을 얻게 된다.

진정한 삶의 믿음과 소망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신명계 마저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지나간 세상에서 살다간 위대한 성인들은 모두 그러한 생애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저 천상에서 뒷짐 지고 지상의 인간세계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분들의 강력한 일심의 원력이 대우주에 영원한 자취를 남기고, 또 시간을 초월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 과학과 인간의 문명에까지 선인(先人)들의 도과(道果)가 살아숨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세상은 인종과 계층, 지역을 넘어 모든 장벽을 열어젖히고 완벽히 열려 하나 되는 '꿈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구인이 하나라는 신념은 400년 전에는 단지 꿈에 불과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다!

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한 꿈,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생존하는 목적이요,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인간의 위대한 힘이 상생(相生)으로 하나 된 지구촌을 만들어낼 것이다. ​

바로 상생의 세상!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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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5.07.03 0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 가네요

  2. 죽풍 2015.07.03 0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

  3. 박군.. 2015.07.03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즐겅누 하루 되세요

  4. 다이어트X 2015.07.03 1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생하는 하루가 되야겠네요^^~!

  5. 프리뷰 2015.07.03 1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잠시 들렸다 잘보고 돌아갑니다^^*

  6. 메리. 2015.07.03 16: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내용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7. 유라준 2015.07.03 2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업적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3. 동서양 문명과 문화, 사상을 융합한 진정한 '최초의 세계인' 이마두 마테오리치 신부님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서방(西方)에서 온 현자(賢者)' 또는 '최초의 세계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기독교(가톨릭) 예수회 선교사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 보면 절대로 그냥 붙인 수식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소도시 마체라타 시장의 13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난 이마두 신부님은 시장직을 계승할 수 있었으나, 세상의 부귀영화를 뒤로한 채 가톨릭 예수회 수도원 수사(修士)가 된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이 그곳에서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께 한 서약은 "세상의 명리(名利)를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 설교를 위하여 어느 나라에서든 살겠습니다."였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세상에 태어났던 16세기 서양은 종교개혁이 일어나 북부 유럽은 신교(新敎)가, 남부 유럽은 구교(舊敎) 가톨릭이 차지해 지형도가 나뉘어져 있었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북부 유럽 신교(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에 반발하여 일어난 가톨릭 내부의 혁신으로 생긴 것이 로욜라가 창시한 예수회였다.

예수회는 기도 등 영성 수련을 통해 하느님과 인류에게 봉사한다는 기치 아래 해외 선교에 중점을 둔 조직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구습을 과감히 폐지하고 새로운 생활양식을 채택하였다.

 

예수회는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세 가지 서원을 하고, 교황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군대적 명령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인재양성과 선교활동, 신앙심의 확립 및 외교력을 통한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 등을 도모하는 조직이었다.

 

 

 

 

 

 

 

 

19세 되던 해에 예수회에 입회하였던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인도의 고아에서 4년간 머무르고, 30세가 되던 1582년 중국의 마카오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을 갖고 있던 중국인들 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국의 말과 글을 익혀야 한다고 판단한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어려서 배운 기억법과 노력으로 중국말과 글에 능통하게 된다. 더욱이 중국에서는 가톨릭의 사제에 해당하는 계층이 승려였으므로, 마테오 리치 신부님도 불교 승려의 복색을 갖추고 선교를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동서양의 벽을 허문 우주 역사의 큰 공덕

 

1 이마두가 천국을 건설하려고 동양에 왔으나 정교(政敎)에 폐단이 많이 쌓여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2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3 이마두의 공덕이 천지에 가득하니 신명계의 영역을 개방하여

  동서양의 신명들을 서로 자유롭게 넘나들게 한 자가 이마두니라.

4 선천에는 천지간의 신명들이 각기 제 경역(境域)을 굳게 지켜 서로 왕래하지 못하였으나

5 이마두가 이를 개방한 뒤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국의 문명을 본떠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 주었나니

6 이것이 오늘의 서양 문명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13:1~6)

 

 

 

 

 

동서양 문명과 문화, 사상을 융합한 진정한 '최초의 세계인'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

 

 

 

 

 

 

 

 

 

서양 문명을 동양에 전하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이미 사제 시절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면서 독일 출신의 클라비우스 교수에게 기하학, 천문학, 역학 등을 배웠으며 해시계, 자명종, 지구의 등의 제작법을 전수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지구의, 천체의, 프리즘, 해시계 등을 남경에서 황족인 건안왕에게 선사한다.

 

북경에 도착해서는 세계지도와 자명종, 성화(聖畵), 프리즘, 클라비코드, 수학책을 포함한 서적 등 20여 가지를 공품 목록을 작성해서 황제께 올린다. 그리고 황궁의 고장 난 자명종을 수리한다는 이유로 정기적으로 황궁에 드나들게 되었고, 마테오 리치 신부는 천문을 맡아보는 흠천감에 유숙하며 관상의(觀象儀) 제작법을 가르치게 된다.

또한, 스승 클라비우스의 일궤측시학과 관상의, 실용수학 등을 한문으로 편역하였다.

 

 

 

 

 

 

 

중국인들을 놀라게 한 세계 지도 '곤여만국전도'

 

중국 사람들에게 실제 크기를 바탕으로 그려진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는 큰 충격이었다.

지도에는 유럽, 아프리카, 인도, 일본, 인도네시아, 중국 등 모든 나라가 그려져 있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으로 알던 중국 사람들은, 중국이 중심이 아니라 오히려 변방에 있으며 천하도에 그려진 중국의 크기보다 더 작다는 사실에 놀라, 이 지도 내용을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달력, 시헌력(時憲曆)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에 새롭게 만든 그레고리 역법이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그레고리 역을 한문으로 번역해 서양의 천문학과 역학을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소개한다.

그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 청나라에서는 1644년부터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한 '시헌력(時憲曆)'이 시행되었다.

 

시헌(時憲)은 마테오 리치 신부의 호(號)이며, 시헌력은 태음력에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하여 24절기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하여 만든 역법이다.

조선에서도 1653년(효종4)부터 조선말까지 이를 사용하였으며, 1895년(고종32)에 태양력이 채택되었을 당시 시헌력도 같이 참용(參用) 되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구력(舊曆)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동양에 전한 서양의 새로운 학문의 세계

 

마테오 리치 신부는 학창시절 라틴어와 헬라어를 연상에 의한 기억법으로 익혔다.

어떤 책이든 한번 읽으면 모조리 외울 수 있었으며, 이런 천재적인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중국에서 『기법(記法)』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법학을 전공하다 사제가 된 그는, 신학 외에도 수학, 기하학, 천문학, 역학 등 박학다식하기 이를 데 없어 중국인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당시 중국의 천문학과 역학의 기초가 되는 수학은 아무런 증명도 없이 단지 명제를 주장하는 수준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유로 진사에 급제한 서광계와 더불어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본』 15권 중 첫 6권을 『기하원본』이란 이름으로 출간한다. 이 책은 동양인에게 수학적, 논리적 사고를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동양에 전해진 서양의 예술의 세계

 

마테오 리치 신부가 황제에게 진상한 명품 가운데 클라비코드(피아노의 전신)라는 악기가 있다.

황제는 악관들로 하여금 선교사에게 연주법을 배우도록 하였는데, 당시 중국의 전통 악곡이 5음 14성으로 되어 있고 반음 처리가 되지 않아 음계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진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태감들에게 유럽의 음계와 연주법을 전수하기도 한다.

 

또한, 이탈리아 민요인 '아니무치아'와 '나니노'를 가르쳤으며, 그는 '서금곡의 팔장'이라는 한문곡을 지었는데 이 곡은 중국인의 심성과 사고에 부합하는 가사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 후 클라비코드는 오랫동안 중국의 악기로 사용되게 된다.

 

한편, 그는 투시법에 의한 원근법을 적용하는 화법도 전해 주는데, 처음 그림을 접한 황제는 그림이 살아 있다며 무척 놀랐다고 한다.

 

 

 

 

 

 

 

 

동양의 문화를 서양에 전하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중국어를 배우고 한문을 익혔으며, 중국의 관습과 법을 연구하였다.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특히 유학을 공부하여 라틴어로 번역하는 등 유교와 천주교 교리의 유사성에 천착(穿鑿)하였다.

 

중국에서 『사원행론四元行論』이라는 책을 펴내 우주관과 인식론 등 당대 최고 수준의 학식을 갖춘 사대부들과 토론을 벌이며 학식과 인품을 널리 인정받는 등 푸른 눈을 가진 마테오 리치 신부의 열정이 동양문화의 정수를 파악하기에 이른다.

 

『건곤체의乾坤體義』, 『동문산지同文算指』, 『기하원본幾何原本』, 『변학유독辯學遺牘』, 『이십오언』, 『천주실의』, 『기인십편』, 『교우론』, 『기법記法』 등 많은 한문 저술을 남겼으며, 말년에 중국 선교 활동 보고 내용을 기록한 『예수회와 천주교의 중국 진입』을 이탈리아어로 작성한다.

 

특히 천주실의天主實義는 일차적으로 기독교 교리 문답서로 알려졌지만, 그 내용은 동서 교류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획기적인 저작이다. 그것은 동서양의 철학적, 종교적 사상에 대한 핵심적 논변과 융합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조상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앞에 계신 것같이 하고 신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신이 있는 듯이 한다." (논어),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중국인의 제례를 윤리적으로 이해하였다. 조상 숭배는 우상 숭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이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조상에게 효를 행하는 도덕적 행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견해는 사후 완전히 무시되었고, 조상 제사나 공자 배례 등에 대한 찬반 문제인 '전례(典禮) 논쟁'을 유발시켜 결국 기독교의 중국 선교 자체가 수포로 돌아가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오늘날 유비쿼터스 문화로 발전하는 컴퓨터와 디지털 문화의 기반은 0과 1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2진법이다.

수학자 라이프니츠가 2진법을 발견하면서 세계 최초로 사칙연산(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을 할 수 있는 계산기를 발명하는데, 사실인즉슨 2진법이란 태극의 궤의 원리에 다름 아닌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중국에 간 친구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가 보낸 편지에서 우연히 두 장의 '태극도'를 입수하게 되고,

그는 태극도 64괘의 배열이 바로 0에서 63에 이르는 이진법 수학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원리에서 계산기 작동의 힌트를 얻었으며, 이진법의 원리는 오늘날 컴퓨터 문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코드가 되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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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5.07.02 0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서양 문명하고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시려는 분들에게
    유익한 글이네요~
    오늘 덥다고 하던데..ㅎ 더위 조심하세요~^^

  2. misoyou 2015.07.02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증산도 인물열전 덕분에 잘보고갑니다

  3. 착한곰돌이 2015.07.02 1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날씨가 덥습니다. 건강관리 잘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4. 메리. 2015.07.02 1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

  5. 메리. 2015.07.02 1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

  6. 죽풍 2015.07.02 2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서양 문명에 대한 정보 잘 알아 갑니다.
    남은 시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7. 유라준 2015.07.02 2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마테오 리치 신부는 최초의 세계인이라는 칭호가 걸맞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 이마두(利瑪竇)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천주실의天主實義』에서 '천주(天主)는 곧 상제(上帝)다.'라고 정의하였다. 

 

 

 

 

 

 

 

 

 

1534년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 수사에 의해 창시된 로마 가톨릭 예수회는 당시 새로 발견된 아메리카 대륙과 동양에 기독교(가톨릭)를 전파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1578년 3월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6개월간 악전고투의 항해 끝에 인도의 고아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의 성 바오로 신학교에서 미처 마치지 못한 신학 수업을 하고 선교 활동을 한다.

 

 

 

가톨릭 선교 활동 중 제국주의적 문화 정책을 쓰고 있는 포르투갈 당국과 기독교 선교 활동도 같은 테두리 속에 속하는 것을 보게 된다. 복음 선교의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감, 그리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마테오 리치는 한 달간 심하게 앓는다. 1582년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마카오로 옮겨 중국어 공부와 함께 중국인의 관습과 법 등을 공부하게 된다.

 

 

 

 

 

 

 

 

마테오 리치는 비상한 기억력으로 불과 3개월 만에 3년을 공부한 루기에리와 비슷한 실력을 보일 정도였으며, 중국의 정치, 경제, 종교, 풍속 등에 관한 연구를 계속한다. 뛰어난 중국어 한문 실력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문서 선교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쇄국 정책으로 원칙적으로 외국인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마테오 리치 신부가 지도와 자명종, 지구의 등을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수학에 능하다는 소문이나자 조경(肇慶)의 지부사(知府使) 왕반(王泮)의 초청으로 조경에 들어와 정착하게 된다.

(이때부터 제작된 세계지도 제작은 1602년 곤여만국전도 제3판 발행까지 계속된다. 이 지도가 나옴으로써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그 외 나라들은 오랑캐라는 오만방자한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인식, 세계관을 심어주게 된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중국의 『사서(四書)』를 라틴어로 번역하였으며, 중국어로 기독교(가톨릭) 교리 문답서를 쓰고, 한문으로 된 『교우론』을 저술하는 등의 활발한 활동으로 가톨릭 예수회 중국 선교 책임자가 된다.

이후 남경에 정착한 마테오 리치 신부는 그 지역의 고관 명사들에게 천문과 지리와 수학 등을 가르친다.

 

 

 

드디어 1601년 중국 황제의 만난 마테오 리치 신부는 북경 거주 허가를 받게 되고, 1603년 한자로 된 교리 문답서인 『천주실의天主實義』(천주님의 참뜻)를 출간하게 된다.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천주실의天主實義』(De Deo Verax Disputatio - 하느님에 관한 참된 논의)에서

기독교(가톨릭)와 중국의 사상을 대비시켜 양자가 서로 배타적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이라는 의견을 정리하였다.

 

 

신종 황제의 호의로 선무문(宣武門) 안에 천주당(중국에서 천주교회를 가리키는 말)을 세워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 1605년 베이징에 200여 명의 신도를 만들어 '천주교'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예수회에서는 '위에서 아래로의 전도'라고 하여 상위계급이나 지식인들에게 먼저 전도하여 복음이 확대되게 하려는 전도방법을 갖고 있었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비록 명나라 황제 만력제를 설득하지 못했지만, 나라의 쇠락을 걱정하는 개혁파 사대부들과 교제를 할 수 있었다. 서광계(1562~1633), 이지조(1565~1630), 양정균(1562~1627) 등 일부 사대부 지식인들은 기독교인이 된다.

 

 

 

 

 

 

 

 

 

그는 서광계, 이지조의 협력을 얻어 과학기술 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천주교 서적을 저작하는 등, 나머지 일생을 중국에서 활약하였다. 이처럼 와성한 활동을 한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는 조선 실학파 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되며, 1609년 중국 최초로 "성모 마리아회"를 창립하였고, 이듬해 1610년 58세에 별세하여 베이징에 묻혔다.

 

 

 

 

 

 

 

 

이 모든 찬사는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의 종교인,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님이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16세기 말, 가톨릭의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 건너와서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날까지 중국 선교에 온 생애를 바치셨다. 가톨릭 선교사로서 신부님은, 개인적 선교 업적에 구애받지 않고, 어떻게 하면 동서양이 인종과 문화적 편견을 넘어 천국 건설의 이념하에 하나로 화합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셨다.

 

 

그리하여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과학 지식과 문물을 번역해 동양에 알리고 전했으며, 또 동양의 최고 엘리트와의 교분을 통해 배운 사상철학을 서양에 번역해 알리는 등, 동서양 문명 교류와 융합에 불멸의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하나의 문화 안에서 탄생하고 성장해 온 개인이,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 위대한 성인의 반열에 오른 모범적 사례를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직접 실증해 보여주셨다. 신부님은 종교인으로서, 자기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살다 가신 것이 아니다. 하늘이 주신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신부님은 인류 보편의 이념을 위해 한 생애를 살다 가신 것이다.

 

 

마테오 리치, 이마두 신부님의 남긴 업적에 비해, 이 세상은 아직 신부님의 생애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

(계속)

 

 

 

 

 

 

 

 

 

천지신명이 받드는 마테오 리치 대성사

 

1 이마두의 공덕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나 천지신명들은 그를 떠받드나니

2 이마두는 신명계(神明界)의 주벽(主壁)이니라.

3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보좌하여 모든 것을 맡아보고 있나니 너희는 마땅히 공경할지라.

4 이마두가 24절(節)의 역(曆)을 개정하여 때(時)를 밝히매 백성들이 그 덕(德)을 입어 왔으나

5 이 뒤로는 분각(分刻)이 나리니 분각은 우리가 쓰리라.

6 이마두는 보민신(保民神)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12)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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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5.07.01 0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 가네요

  2. 박군.. 2015.07.01 1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3. 카푸리오 2015.07.01 15: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인물을 배우고 가네요ㅎㅎㅎㅎ

  4. 프리뷰 2015.07.01 16: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잠시 들려서 잘보고 갑니다.
    오후 시간도 수고하세요.

  5. 주부s 2015.07.01 2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좋은 밤 되세요 ㅎㅎ

  6. 유라준 2015.07.01 2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천재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 로마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 신부 동양 선교를 꿈 꾸다.

 

 

 

 

 

 

 

 

 

 

가톨릭(기독교)가 지난 2천 년간 추구해 온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지구촌에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 즉 지상 천국 건설로 전 인류에게 최고의 행복을 주는 것일 것이다.

 

 

한평생 온갖 고초를 마다치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이 땅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선구자적 가톨릭 선교 활동을 펼쳤던 마테오 리치 신부님, 중국명(中國名)은 이마두(利瑪竇)이며 호(號)는 시헌(時憲)이시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이탈리아 이름은 Matteo Ricci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이며 가톨릭을 아시아 대륙에 정착시킨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스페인 출신의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 수사를 중심으로 6명의 동료가 1534년 창시 - 예수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일종의 군대 조직과 같으며 해외 선교 목적으로 세워진 단체) 선교사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톨릭을 천주교(天主敎)라고 부르게 된 배경이 바로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유명한 저서 '천주실의(天主實義 - 천주님의 참뜻)'로부터 비롯되었다. 더불어 유럽을 구라파(歐羅巴)로 표기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1592년 이탈리아 중부 마체라타에서 약국을 경영하며 시청에서 지방 행정(이후 시장을 역임)을 맡았던 아버지 조반니 바티스타 리치의 9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예수회 출신 가정교사 니콜로 벤치베니 신부에게서 영적 훈련을 받으며 자라고, 예수회에서 설립한 학교에 다니며 1571년(7살) 가톨릭 예수회에 가입하게 된다. 마테오 리치는 이러한 교육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직자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었다.

 

 

마테오 리치는 여기서 신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연상에 의한 기억법 교육'을 통해 라틴어와 헬라어 공부를 하게 된다.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여 입신출세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마테오 리치는 로마에서 법학 공부를 전공하다 3년 만에 그만두고 가정교사이며 스승인 벤치베니 소속된 예수회 수련원에 들어간다.

1571년 예수회 정식 입교 후에는 당시로써는 미개척지와 다름없는 동양 전도(선교)에 뜻을 품게 된다.

 

 

 

1577년부터 수사학인문과정을 공부했으며, 1577년부터 1579년까지 같은 대학교에서 철학 과정을 마치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력을 제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수학자 그리스토퍼 클라비우스에게 수학과 천문학, 기하학과 역법 및 해시계, 자명종, 천체관측과 지구의 등 제작법도 배우게 된다.

 

 

 

 

 

 

 

 

 

1578년 마테오 리치는 예수회 동료 13명과 함께 동양 선교의 큰 꿈을 안고 1차 목적지 인도로 선교 요원이 되어 파견된다.

1580년 로마 가톨릭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1582년까지 인도의 고아(Goa) 지역에서 나머지 신학 공부를 받게 된다.

아직도 마체라타 대학교 본관에는 중국의 사대부 모자를 쓴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계속)

 

 

 

 

 

 

 

 

 

 

 

 

 

 

 

동서양의 벽을 허문 우주 역사의 큰 공덕

1 이마두가 천국을 건설하려고 동양에 왔으나 정교(政敎)에 폐단이 많이 쌓여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2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3 이마두의 공덕이 천지에 가득하니 신명계의 영역을 개방하여

  동서양의 신명들을 서로 자유롭게 넘나들게 한 자가 이마두니라.

4 선천에는 천지간의 신명들이 각기 제 경역(境域)을 굳게 지켜 서로 왕래하지 못하였으나

5 이마두가 이를 개방한 뒤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국의 문명을 본떠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 주었나니

6 이것이 오늘의 서양 문명이니라.

 

후천개벽 후 이마두 대성사의 신도 위격

7 이마두는 구천상제(九天上帝)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13)

 

 

 

 

 

 

 

 

 

 

 

도쿄대학 명예 교수 히라카와 스케히로의 저서 『마테오리치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에서 마테오 리치 신부님을 "로마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로서 동아시아에 서구문명을 소개하여 중화(中華, 중국) 질서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으며,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지식과 중국 학문을 두루 갖춘 최초의 세계인"이라 정의하고 있다.

 

 

 

단자론자(單子論者)로 잘 알려졌으며, 중국 역학(易學)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이를 바탕으로 이진법(二進法)을 제창한 라이프니츠는 마테오 리치 신부님에 대하여 "이성에 바탕을 둔, 상이한 문화 간의 만남과 대화의 모범"이라고 평했다.

 

 

 

프랑스의 비교철학자이며 종교사회학자 쟈크 제르네는 마테오 리치 신부님을 "단지 중국 선교사로만 파악하는 좁은 시야로 보지 말아야 하며, 상이한 문명과 사상을 만나게 한 인물"이라고 하였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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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5.06.30 0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가구요~
    오늘 비온다니..우산 꼭 챙기셔요~

  2. 죽풍 2015.06.30 0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테오 리치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조금이나마 알고 가네요.
    잘 보고 갑니다. ^^

  3. 메리. 2015.06.30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마온다니 우산 챙기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4. 프리뷰 2015.06.30 1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테오 리치 신부에 대해서 잘봤습니다.

  5. 다이어트X 2015.06.30 1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업적이 대단한 분이군요^^~!

  6. misoyou 2015.06.30 2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 분이시네요 ㅎ
    멋집니다 ㅎ

  7. 유라준 2015.06.30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순한 선교사가 아니라 과학자 겸 세계인이었군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 진표율사

4. 김제 금산사 미륵전 밑 없는 철 시루 위의 미륵불상

 

 

 

 

 

 

 

 

 

 

 

 

대우주의 통치자이시며 도솔천 천주님이신, 미륵부처님께서 직접 강림하시어 진표대성사의 일심 정성을 찬탄해셨다.

 

"내가 한 손가락을 튕겨 수미산(須彌山)을 무너뜨릴 수 있으나 네 마음은 불퇴전(不退轉)이로다." 하신 말씀처럼 천지를 주재하시는 미륵부처님의 조화권을 비롯한,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우주의 절대 자성(自), 심법(心法)이 회복된 진표대성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는 말씀이다.

 

 

 

도솔천의 미륵불께서 직접 강림하시어 친견하였고, 당신님 모습을 닮은 미륵 불상을 조성하여 미륵불의 진리를 세상에 펴라는 말씀을 받들어 진표대성사는 우주의 가을(방위로는 西, 오행으로는 金)을 열어주시는 미륵부처님의 강림 비밀이 담겨 있는 성지(聖地)로 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군 금()산면 금()산리 모악산 금산사(山寺) 용추(용소龍沼) 연못을 메우고 미륵존불 모양의 불상을 조성하게 된다.

 

 

 

 

 

 

 

 

 

 

 

진표대성사는 금산사 앞의 사답(寺畓) 칠 두락(마지기) 정도 연못을 메우기 위해 흙으로 아무리 하여도 메워지지 않게 된다. 때마침 지장보살께서 나타나 연못은 숯으로 메워야 한다는 계시를 주고 떠난다. 진표대성사는 인근 지역에 눈병을 퍼트리고 숯을 가지고 와서 금산사 연못에 붓고 연못의 물로 눈을 씻으면 눈병이 깨끗이 낫는다는 하자 금방 연못이 메워지게 된다.

 

 

그 큰 연못을 숯으로 다 메워지고 중앙부분에 우물 크기만 한 부분은 아무리 하여도 메워지지 않자, 큰 바위로 연꽃 모양의 석련대(연화대, 높이 1.67m 둘레 10m 이상))를 만들어 우물 크기의 남은 연못을 덮어버렸다. 그런데 밤사이 그 무거운 석련대가 수십 미터 밖으로 옮겨져 버리고 만다.

 

 

 몇 번을 그 자리에 가져다 놓아도 또다시 석련대는 옮겨져 있게 되자 고민하는 진표대성사에게 밑 없는 시루를 걸고 그 위에 미륵 불상을 조성하라는 계시가 내려온다. 이에 무쇠로 된, 밑 없는 시루를 만들어 그 위에 우물 정(井) 자 모양의 받침목을 얹고 철로 된 미륵 불상을 세우게 된다. 실로 공사를 시작한 지 4년 만인 서력 766년의 일이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미륵 불상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그것은 미륵 불상이 철수미좌(鐵須彌座, 철 솥, 무쇠 시루) 위에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진표와 나와 큰 인연(大緣)이 있느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2:66:3),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가 석가모니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 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증산도 도전道典 2:30:12~13) 라는 말씀하셨다.

 

 

 

 

 

 

 

 

 

 

이는 대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이시며, 미륵존불이신 증산(甑山) 상제님과 금산사에 미륵불상을 조성한 진표대성사와의 과거 큰 인연에 따라오셨고, 상제님의 존호인 증산(甑山)은 금산사 미륵전의 미륵 불상을 떠받치고 있는 철수미좌(시루 甑 = 솥)가 바로 우주의 봄 여름철 설익고 미완성된 선천(先天)의 모든 문명을 총체적으로 익히고 성숙시켜 신천지 후천의 조화 세상의 만사지(萬事知) 문화를 연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진표대성사는 김제 금산사 미륵전에 미륵 불상을 조성한 이후, 속리산 법주사와 금강산 발연사에 미륵 불상을 조성하여 미륵 도량을 세우게 된다. 더불어 점찰법회를 통해서 중생들이 전생과 이생에서 지은 악업을 닦고 십선업을 쌓아 미륵존불께서 이 땅 위에 오셔 펼치실 용화세계에 더욱 많은 중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미륵불의 계법과 복음을 전함으로써 미륵신앙을 대중화하고 중생들을 교화하는데 평생을 바치게 된다.

 

 

 

 

 

 

 

 

 

 

진표대성사께서는 말년에 고향에 계시던 아버지를 모시고 금강산 발연사에서 함께 도를 닦으며 살았다.

진리의 표상, 구도자의 표상, 참의 표상, 진표(眞表)대성사는 발연사 동쪽 큰 바위에 앉아 입적하였다.

제자들은 시체를 옮기지 않 공양을 하다가 해골이 흩어져 떨어지자 흙을 덮어 무덤으로 삼았다 한다.

 

 

 

 

『삼국유사』 「발연수석기鉢淵藪石記」 편(금강산 발연사 주지 영잠 스님이 돌에 새겨진 기록을 1199년 비를 세워 옮겨 새)

 

진표율사(眞表律師) 세상을 떠날 절의 동쪽 바위 위에 올라가서 죽으니 제자들이 시체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공양하다가 뼈가 흩어져 떨어지자 흙으로 덮어 묻어서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에 푸른 소나무가 바로 나더니 세월이 오래되자 말라죽었다. 다시 나무 하나가 났는데 뿌리는 하나이더니 지금은 나무가 쌍으로 있다. 대개 그를 공경하는 자가 있어 소나무 밑에서 뼈를 찾는데, 혹은 얻기도 하고 혹은 얻지 못하기도 했다. 나는 율사의 뼈가 아주 없어질까 두려워하여 정사(丁巳, 1197) 9월에 특히 소나무 밑에 가서 뼈를 주워 통에 담았는데 3가량이나 되었다. 이에 바위 위에 있는 쌍으로 나무 밑에 돌을 세워 뼈를 모셨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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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부s 2015.06.26 0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_^*

  2. 죽풍 2015.06.26 0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륵전 완공 뒤에 숨은 비밀이 있었군요.
    잘 보고 갑니다. ^^

  3. 다이어트X 2015.06.26 1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네요~!

  4. 프리뷰 2015.06.26 16: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비가 내려서 기분이 좋은 하루네요^^

  5. 비단털쥐 2015.06.26 2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손 들이 알아야 할 역사네요.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면 충격을 받을 테지만..
    진실은 늘 승리하네요

  6. 귀여운걸 2015.06.26 2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옥같은 말씀과 함께 상세히 소개해 주셔서 너무 좋네요~
    덕분에 잘 알아갑니다^^

  7. 유라준 2015.06.26 2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표율사께서 여러군데에 절을 만드셨군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 진표율사(眞表律師)

3.  불퇴전(不退轉)의 일심 용맹정진으로 도솔천 천주님, 미륵불을 친견한 진표대성사

 

 

 

 

 

 

 

 

 

 

 

온몸의 부서지는 극한의 고통을 참아가며 21일을 기약하며 능가산 영산사(변산 개암사 울금바위)에서 망신참법(亡身懺法)을 하던 중 14일이 지나자 진표율사의 눈앞에 무서운 형상의 대귀(大鬼)가 나타나 진표율사를 천길 아래 낭떠러지로 밀어 떨어뜨렸으나, 진표 율사의 몸은 이상하리만치 한 곳도 다치지 않았다. 마왕 파순이 나타나 백천 가지 마상(魔相)으로 수행을 방해하고 시험했으나, 진표율사불퇴전(不退轉)의 일심(一心) 정성 앞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인류 역사에 없던 처절한 참회 수행법, 망신참법(亡身懺法) 21일이 끝났다.

이때 문득 진표율사는 대우주와 자신이 하나 되는 일체의 경계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경계를 체험하게 된다. 

 

진표율사의 천안(天眼 -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신통한 마음의 눈)이 열리며, 멀리 시방세계(十方世界)에서 대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이시며 도솔천의 천주님이신 미륵부처님께서 위의(威儀)를 갖추어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비롯한 도솔천중(兜率天衆)을 거느리고 자신을 향해 내려오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27세에 부안 변산 부사의방장에서 망신참법 수행을 시작한 지 3년 만인 진표율사가 30세 되던 신라 경덕왕 21년(임인년壬寅年, 서력 762년) 음력 4월 27의 일이었다.

 

 

 

 

 

 

 

 

 

 

미륵존불의 용안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백옥처럼 희고 두루 원만하시며 천안(天眼)이 샛별과 같이 반짝였으며, 인경처럼 맑고 크신 음성으로 "장하도다, 대장부여! 계를 구함이 이렇듯 정성스럽구나. 수미산은 손으로도 쳐 물리칠 수 있을지라도 너의 마음은 끝내 물러나게 하지 못하리로다." 하시며 진표의 정수리를 두 번, 세 번 어루만지시며 찬탄해주셨다. (일반적으로 밀교에서는 이렇듯 정수리를 어루만지면서 계법을 전하는 일종의 전법의식傳法儀式으로 '관정'이라 한다.)

 

 

미륵부처님께서는 진표율사에게 전등법맥(傳燈法脈)을 상징하는 삼법의(三法衣 - 가사)와 와발(瓦鉢 - 발우)을 내어주고, 점찰경(占察經) 두 권과 증과간자(證果簡子) 189개를 내려 주셨다.

 

 

 

 

 

 

 

 

 

 

평생의 소원이었던 미륵부처님을 친견한 진표에게 미륵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 중 제8간자는 새로 얻은 묘계를 비유한 것이요, 제9간자는 구족계를 더 얻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 두 간자는 내 손가락뼈이고, 나머지는 모두 침향목(沈香木)으로 만든 것인데, 모든 번뇌를 비유한 것이다. 너는 이것으로써 세상에 법을 전하여 사람을 구제하는 뗏목으로 삼도록 하라. 너는 현세의 육신을 버리고 대국왕의 몸을 받아 뒤에 도솔천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진리의 표상이며, 구도인(求道人)의 표상이라는 뜻의 진표(眞表)라는 법명(法名)을 지어주시고, 찬란한 빛을 허공에 뿌리며 도솔천중을 거느리고 도솔천으로 돌아가셨다.

 

 

 

 

 

 

 

 

 

 

 

미륵부처님께서 친히 인간 세상에 강림하시어 친견한 진표대성사(眞表大聖師)는 원각 대도통을 하여 자신으로부터 미래에 닥쳐올 대환란과 석가모니 부처가 예언한 미륵부처님께서 지상에 강림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에 진표대성사는 대환란의 시기에 인간으로 강림하실 도솔천 천주님, 미륵부처님께서 동방의 이 땅에 강세해 주실 것과 그때에 자신을 큰 일꾼으로 써주실 것을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껏 기원한다.

 

 

이런 진표대성사의 지극한 기도에 감응하신 미륵부처님께서는 "네가 나의 모습대로 불상을 세워, 나의 강세를 준비하고 미륵불의 진리를 세상에 널리 펴라."라고 사명을 내리신다...

(계속)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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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5.06.25 0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 가네요

  2. 아쿠나 2015.06.25 07: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솔천 천주님 미륵불 친견이야기
    어렵지만 잘보고 가요 ㅎㅎ

  3. 다이어트X 2015.06.25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배웠습니다.~!

  4. 프리뷰 2015.06.25 1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장보살에 대해서 많이 알아갑니다.

  5. misoyou 2015.06.25 17: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륵불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ㅎㅎ

  6. 하늘마법사 2015.06.25 2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7. 뉴론♥ 2015.06.25 2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된 사찰들이 의미가 있어 보군요

  8. 유라준 2015.06.25 2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표율사께서 미륵불께도 인정을 받을 정도였네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진표율사 - 2. 미륵불 친견을 위해 인류 역사에 가장 극단적인 수행방법,

망신참법(亡身懺法)의 구도(求道) 열정으로 지장보살의 가호를 받다.

 

 

 

 

 

 

 

 

 

 

 

 

진표율사가 부안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지극정성으로 참회하며 기도하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미륵부처님의 계법(戒法)을 구하며 초인적인 열정을 발휘하며 구도에 정진하였으나, 진표율사가 백척간두 부사의방장 절벽에서 공부를 한 지 3년이 되어도 하늘로부터 어떠한 암시적인 한소식을 듣지 못하고 깨달음도 얻지 못하자, 좌절과 울분을 참지 못해 죽을 결심하고 바위 아래로 몸을 던지게 된다. 

 

 

 

천 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던 몸이 땅에 떨어지려는 순간, 어디선가 불현듯 나타난 푸른 옷을 입은 청의 동자가 진표율사를 부사의방장에 다시 올려놓고 사라지게 된다. 

 

 

이에 용기를 크게 얻고 더욱 분발하여 생사(生死)를 걸고 3.7일(21일) 정성공부에 정진하게 된다.

이때 진표율사가 선택한 수행법은 인류 역사에 가장 극단적인 수행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망신참법(亡身懺法 - 자신의 몸을 돌로 계속 두들겨 극한의 고통을 참아내는 참회하는 수행법)이었다.

 

 

 

 

 

 

 

 

 

 

 

망신참법보다 더 진실하게 자기의 생명을 아낌없이 바쳐 참회하는 법은 달리 없었으며, 일심을 향한 혈심(血心) 수행법이었다.

오체(五體 - 머리와 두 팔과 두 다리 곧 온몸)를 바위에 던지듯 절을 하며, 돌로 온몸을 찧어대3일이 지나자 한쪽 팔과 두 무릎이 뚫어져 나간 자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떨어진 힘줄이 드러난다.

 

 

이미 생사를 뛰어넘는 일념으로 시작한 수행에는 그 어떤 장애물도 있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온몸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부서지는 극한의 고통도 진표율사의 구도에 대한 열정 앞에서는 한낱 금방 사라질 연기와 같았다.

 

 

 

 

 

 

 

 

 

 

망신참법을 한 지 7일째 도던 날 밤, 진표율사의 하늘을 꿰뚫는 지극정성이 마침내 하늘을 감동하게 된다.

온몸이 너덜너덜하게 만신창이가 된 진표율사 앞에 홀연히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내려와 가호해 주니 몸이 다시 회복된다.

 

 

지장보살은 진표율사에게 "참으로 지극한 정성이로다. 그대의 정성에 감동하여 이것을 내리노라."라며 가사와 바리때를 전하고 직접 정계(淨戒)를 내려준다.

 

 

 

 

 

 

 

 

 

 

진표율사는 그 신령스러움에 용기백배한다.

그러나 진표율사는 본래 뜻이 지장보살에 있지 않고 미륵부처님에게 있었기에 다시 한 번 발심하며, 능가산 영산사(靈山寺)로 장소를 옮기게 된다. (변산 개암사 뒷편에 있 우금바위 밑에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원효굴 등 3개의 굴이 있는데 그곳으로 추정된다.)

 

 

 

 

 

 

 

 

 

득수반지미족기 得樹攀枝未足奇 현애살수장부아 懸崖撒手丈夫兒

나무를 타고 오르는 것이 기특할 것도 없고,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 장부로다.

(송나라 선승 야보冶父, 도천道川의 금강경 주석 中)라는 말처럼 그는 크게 죽기로 결심했다...

(계속)

 

 

 

 

 

 

 

2015년은 북방 불기(佛紀)로 3042년과 남방 불기(佛紀)로 2559년

 

 

 

"출가자가 석가의 성명과 출생, 입멸의 연월을 모르는 것은 마치 아버지의 성명과 생몰 일시를 모르는 불효 막대한 것과 같다."라고 고려 시대 무기라는 승려는 말했다.

 

 

 

 

북방 불기는 중국, 한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에서 사용하던 불기이다.

 

남방 불기는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등 소승불교에서 사용하던 불기이다.

 

 

 

기존에 북방 불기를 사용하여 오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의 나라들이 남방 불기로 전격적으로 바꾸게 된 것은, 1956년은 불멸 2500년(남방 불기)이 되는 해를 맞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불교도우의회(WFB, 1950년 창립)에서 불교 각국의 통일적 불기(佛紀) 사용을 의결한 것에 기인한다. 우리나라는 1962년 캄보디아에서 열린 제6차 회의에 처음 참가한 후 남방 불기를 채택했다. 이 회의에 이청담(1966년 6대 종정에 취임) 스님 등 3명이 참가하였다.

 

 

중국에서 석가불의 생존연대에 대한 논의를 정리한 자료로 흔히 인용되는 것은 수나라 때(597) 비장방이 지은 역대삼보기이다. 역대삼보기에는 고구려 평원왕 때 고구려의 승려 의연이 당시 북제의 이름 높은 법상에게 석가불의 생애와 불교사에 대한 질의에 대한 답변내용을 담고 있다. 이 내용은 후일 당나라 때 유명한 법림(法琳, 572~640)법사에 의하여 재확인되면서 북방 불기로 굳어지게 된다.

 

 

 

 

 

북방 불기의 기원이 되는 의연과 법상의 대화

 

 

고구려의 대승상 왕고덕은 깊은 믿음을 간직하고 대승불교를 존중하였으며, 불교의 가르침이 나라 구석에까지 미치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시말과 연유,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 연대와 제왕의 대수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그 조목들을 적어 의연을 보내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오게 했다. 그 조목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석가불이 열반에 든 이래 지금까지 몇 년인가? " 법상이 대답하였다.

 

"부처는 주 소왕 24년 갑인년에 태어나서, 19세에 출가하고, 30세에 성도 하였다. 이때는 목왕 24년 계미년에 해당하는데 목왕이 서방에 화인(化人-부처)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곧 그곳으로 가서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으니, 이것을 징험으로 여긴다. (그 후) 49년 동안 세상에 머물다 멸도했으니 지금 제나라 무평 7년(서기 576년)까지 무릇 1,465년이다. (역대삼보기 권 12 대정장 49, 104-105)

 

 

 

 

 

 

 

 

 

 

 

 

 

우리나라 선종의 3조인 보조선사(880년 열반)의 비를 보면 헌앙왕 3년(859년)이 석가 입멸 후 1808년이라는 아주 귀중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삼국유사의 불멸 BCE 949설과 일치한다. 현재 불기로는 보물 제158로 보조선사비의 주인공인 동국 선종 제3조의 역사를 수용하지 못한다.

 

 

 

정통(正統) 조사(祖師)는 석가부처 이후 마하가섭부터 28조 보리 달마, 그리고 이후 육조 혜능까지 삼십삼 명의 조사가 면면히 내려온다. 그런데 중성점기(衆聖點記)를 사용할 땐 33 조사 중 적어도 아래의 9명이 빠지게 된다.

제1조 마하가섭존자, 제2조 아난존자, 제3조 상나화수존자, 제4조 우바국다존자, 제5조 제다가존자, 제6조 미차가존자, 제7조 바수밀존자, 제8조 불타난제존자, 제9조 복타밀다존자

 

 

삽십삼(33) 조사와 연대기적 모순을 피할 수 없다.

1963년 한국불교가 새로운 불기를 채용하자 매우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였다.

즉 중성점기를 바탕으로 한 불기를 사용한다면 석가부처는 10대 법손인 복타밀다존자의 사후 2년 뒤에 입멸하는 셈이 된다. 대승불교의 근거가 되는 선사(禪師), 즉 조사(祖師) 맥이 통째로 부정되는 것이다.

 

 

 

 

중성점기(衆聖點記)를 주장하는 다까구스의 설은 일본의 황국사관(皇國史觀)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다까구스는 그의 저서 아시아 민족의 중심사상(인도 편)'에서 불멸 기원이라는 제목 아래 중성점기설을 채택하게 된 동기와 필요성을 자세히 밝혔는데 다음과 같은 엉뚱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기원(紀元)이 불(佛)보다 좀 오래되었고, 공자보다도 오래되었다.…

일본을 대승상응(大乘相應)의 땅이라 하여 모두 일본을 중심으로 하게 되므로, 일본의 연대를 말함에서도 신무 천황이 석가여래보다 후가 되며 공자보다 후가 된다고 하면, 일본의 지위에도 관계가 되므로 다소의 차이를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어느 기원이라도 다소는 틀린다. 야소교(기독교)의 기원에 있어서도 조금 틀린 것이 있다. 틀린 것이 있더라도 그것을 국가가 정한 것이라고 가르친 이상에는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에 연구를 주장하여 이것을 번복하려는 생각은 학자나 보통사람이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니 그것을 우리는 심득(心得)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연대의 연구는 금물(禁物)이라고 생각한다. 전설은 연구의 결과에 너무 멀지 않은 것이 제일 바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중성점기를 그대로 사용한다.…

 

 

 

남방 불기를 사용할 경우 석가부처는 공자보다 14살 연장이 되고, 노자보다 오히려 40살 연하가 되는 모순을 갖고 있다.

이럴 때 공자나 노자는 석가와 동시대의 인물이 되어 서방에 대성인이 있다는 『서승경(西昇經)』이나 『열자전(列子傳)』 같은 모든 기록들은 하루아침에 위서가 되고 만다.

 

 

 

 

석가모니 부처가 말한 말법(末法) 시대의 실상

 

불기(佛紀) 문제를 보면 시대에 대한 현주소가 나온다. 미래에 대한 석가부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대표적인 경전은 월장경이다.

 

 

"내가 사라진 뒤 5백 년까지는 그리고 모든 비구가 나의 법에 있어서 해탈이 견고해지려니와,

다음 5백 년 동안은 나의 바른 법에 선정 삼매만이 견고하게 머물 것이며,

또 그다음 5백 년 동안은 나의 법에 있어서 많이 듣게 됨으로써 견고할 것이며,

다음 5백 년 동안은 나의 법에 있어서 탑이나 절을 많이 세우므로 견고히 머물 것이고,

다음 5백 년은 나의 법에 있어서 힘 싸움과 말다툼이 일어나 깨끗한 법은 없어지고 그 견고한 것이 줄 게 되리니 분명히 알아라,

 

청정한 사나이여, 그 뒤로부터는 비록 수염과 머리를 깎고 몸에 가사를 입더라도 금계를 파괴하고 법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비구라는 이름을 붙일 뿐이리라."

 

 

석가모니 부처는 5백 년 마디로 불법이 점차 쇠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자신의 사후 1500년이 지나면 법란(法亂)을 겪게 되고 파계 승가가 많이 출현하여 말법(末法)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이로 보면 북방 불기이든 남방 불기든 이미 말법 시대에 접어든지 오래다. 북방 불기로 보면 갑인(甲寅, 1974)년이 불탄 3000년 올해(2015년)는 3042년이 된다. 따라서 석가 입멸 후 1500년 후부터 시작되는 말법 시대도 이제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다.

 

 

 

 

불교는 이때를 특히 오탁악세(五濁惡世)라 하여 경고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언론과 주변의 입과 귀를 통해서 보고 들어왔던 불법이 무너지고 승려가 타락하는 모습을 3천 년 전의 석가모니 부처는 이렇게 적나라하게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불법이 점차 무너지리라. 그때엔 살아가기 위하여 중이 되고, 삼승(三乘)을 기원하지 않고 후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탐욕에다 명리를 추구하며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타인을 질투하며, 학문 수행의 길에서 멀리 물러나고 선행도 하지 않으며, 낮에는 남의 욕을 하고 그것을 즐기며 밤에는 잘도 잔다."

 

 

 

 

 

 

 

 

 

 

 

 

 

석가모니 부처가 중생들에게 제시한 인류의 희망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미래불이요, 구원의 부처요, 희망의 부처인 미륵부처님의 출세 소식이다.

말법 시대가 극에 달하면, 미륵부처님이 지상에 내려와 온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이 불교 구원관이다.

이것이 바로 소승(小乘)이나 대승(大乘), 남전(南傳)이나 북전(北傳) 할 것 없이 모든 종파를 초월해서 전하는 불교 구원관의 최종 결론이다.

 

 

 

증아함경』, 화엄경에서는 석가부처 이후 3천 년에 미륵불이 오신다고 하였다.

 

경전에 나오는 우담바라는 3천 년에 한번 피는 꽃으로 사실은 석가 이후 3천년 만에 오시는 미륵불을 비유한 의미로 쓰인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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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5.06.24 0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석가모니가 제시한 인류의 희망은 큰 것이 아니라,
    나 안에 나를 찾는 깨달음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

  2. 하늘마법사 2015.06.24 0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3. 리트미 2015.06.24 1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4. 프리뷰 2015.06.24 1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하루가 금방 가는것 같습니다.
    오후 시간도 수고하세요.

  5. 아쿠나 2015.06.24 1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갑자기 비가 내려서 좋았는데..
    금방 그쳐버렸네요..
    꾸준하게 비가 와서 가뭉해갈이 되었으면 해요..ㅎ
    오늘 마무리 잘하세요 ^^

  6. 다이어트X 2015.06.24 1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읍 오 늘은 조금 어렵네요!!
    즐거운 저녁 되세요

  7. 여행쟁이 김군 2015.06.24 2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알고 잘 듣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래요^^

  8. 유라준 2015.06.24 2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화가 굉장히 신기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 참의 표상, 진리의 표상, 구도인의 표상

진표율사 - 1. 미륵부처(미륵불)와 지장보살 앞에 법(法, 진리)을 구하다.

 

 

 

 

 

 

 

 

 

 

 

 

 

불교가 한반도에 유입된 초기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거쳐, 가장 성행했다고 할 수 있는 고려 불교 시대, 그리고 숭유억불 정책으로 고난과 압박이 가장 심했던 조선 불교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승려를 말하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를 말한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한 이후 앞으로 오실 미래의 부처로 불리는 미륵불(미륵부처)을 형상화하신 분은 진표율사가 처음이다.

 

진표율사는 불교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구도행위로 도솔천의 천주님이신 미륵부처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내려와 친견한 유일한 구도자로서, 한반도 미륵불신앙의 문을 활짝 여신 분이다.

 

 

 

 

 

 

 

 

 

 

 

진표율사께서 인류 역사에 쌓은 지대한 공덕과 증산 상제님의 말씀을 받들어 증산도에서는 진표대성사(眞表大聖師)라 한다.

진표대성사는 약 1300년 전 (통일) 신라 33대 성덕왕(? ~ 737년) 때 전라도 완주군 벽골군 두내산현(지금의 만경) 대정리에서 사냥꾼인 정(井)씨 성(姓)의 아버지 진내말과 어머니 길보랑 사이에서 태어난다.

 

 

태어난 모습이 부처님을 닮았다고 하여 동네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랐으며, 세살 때 아버지 앞에서 불경을 읽을 정도로 영민하였다고 한다. 집안 대대로 사냥을 일삼던 내력으로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잘하고 몸은 날쌔고 민첩하였다.

 

 

 

 

 

 

 

 

 

 

11살의 어린 진표는 동네 아이들과 산으로 사냥을 가던 중, 개울가에서 개구리 열댓 마리를 잡아 버드나무 가지에 꿰어 물속에 담가 놓고 갔다가 개구리를 잡아 놓은 것을 잊은 채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 해가 바뀌어 봄이 다시 찾아오고 벗들과 산으로 사냥을 가던 중 개울가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바라보니 작년에 진표가 잡아놓은 개구리가 버드나무 가지에 꿰인 채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울고 있었다.

 

 

비록 어린 진표였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비롯한 인생의 본질적인 고민을 하다가 아버지에게 출가할 것을 간청하고 진표의 아버지는 이를 승낙한다.

 

 

 

 

 

 

 

 

 

 

 12살 어린 나이에 출가한 진표는 김제 금산사로 들어가 숭제법사로부터 사미계를 받고 험난한 구도의 길을 걷게 된다.

진표에게 사미법계를 내려주며 '공양차제법' 1권과 '점찰선악업보경'을 전해준 숭제법사는 "너는 이 계법을 가지고 미륵부처님과 지장보살님 앞에서 간절히 진리(법法)를 구하고 참회하여 친히 계법(戒)을 받아 세상에 널리 전하라."라고 한다.

 

 

미륵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법을 구하여 대도를 펴겠다는 큰 이상을 가슴에 품은 진표는 전국의 명산대찰을 돌아다니면서 수행공부에 전념을 한다.

 

 

 

 

 

 

 

 

 

그러다 진표가 27세 되던 해(신라 경덕왕 19년, 760년) 쌀 두 가마를 쪄서 말려 부안 변산에 있는 선계산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에 들어간다. 식량으로 준비해 간 찐쌀 다섯 홉을 하루의 식량으로 하며 조금씩 덜어내서 쥐를 주며 미륵불상 앞에서 미륵부처님의 계법을 구하기 위해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초인의 정열을 발휘하며 지극정성으로 진리(법法)을 구하기 위해 전진하게 된다...

(계속)

 

 

 

 

 

 

 

 

 

 

 

미륵(彌勒)의 어원은 범어(梵語, 산스크리스트어 - 고대 인도어, 기원전 약 4~~5세기경)로 마이트레야(Maitreya - 자비로운 어머니)다. 팔리어(Pali - 고대 인도어, 기원전 약 2세기경)로는 메테야(Metteyya - 미래의 구원불 호칭)다.

 

 

불교의 법신불(法身佛)이 비로자나며 태양을 뜻한다.

(원효대사 『대승기신론소』 - 법신을 여래장如來이라 하여 그 자체에 지복至福한 덕성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고 하였으며, 법신불은 또한 비로자나불로 형상화되며, 화엄경의 교주敎主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대적광전大寂光殿, 대명광전大明光殿이라 부르며, 좌우에 석가불과 노사나불을 같이 봉안한다. 비로자나불만을 모실 때는 비로전毘盧殿이나 화엄전華嚴殿이라 한다.)

 

 

마이트레야는 미트라(Mithra - 기원전 약 15세기경)에서 왔고, 미트라는 태양신을 의미한다.

기독교에서 구세주를 뜻하는 메시아(Messiah)도 미트라에서 유래되었다.

즉, 미륵불과 메시아가 같은 한 분을 호칭한다는 것이다.

 

 

 

『현우경賢愚經』「 바바리품波婆離品」에 보면 바바리(바라문교의 지도자)의 제자 16인이 석가모니로부터 미래 세계에 대한 설법을 듣는 내용이 나온다.

 

석가모니는 앞으로 미륵불이 오셔서 3회 설법을 통해 억조창생을 구원하여 깨달음을 얻게 한다고 말하자, 이에 수행승 미륵이 자신이 미륵불이 되고 싶다고 하여 석가모니가 허락했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역사 속에 길이 남을 위대한 성인이지만, 자신의 제자를 미륵부처로 만든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절대로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는 석가모니가 부처를 자기 마음대로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절대 권능을 가진 우주의 절대자란 말이 되며, 깨달음을 얻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하더라도 도솔천의 절대자 하나님(미륵부처)을 미래의 언제쯤 내려오라 한다는 불경의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어리석은 인간들이 진리의 세계를 바로 알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미륵불을 석가모니의 제자 미륵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전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불교의 경전 『숫타니파타』 마지막 장 피안도품彼岸道도 바바리의 16 제자에 관한 내용이 나오지만, 수행승 미륵이 미래불이 된다는 내용은 없다.

 

 

고대 인도어인 팔리어 권위자인 리스 데이비스 박사는 미래불인 미륵불(미륵부처)과 수행승 미륵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결론 내렸으며 또한, 미륵사상의 대가인 와타나베 쇼코도 『미륵상생경』, 『미륵하생경』 등 미륵불과 연관된 주요 경전 어디에도 수행승 미륵이 미륵불(미래불)이 된다는 내용이 전혀 없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일부에서는 보살의 개념이 확대되어 미래에 성불할 부처로 미륵불(彌勒佛)이 나왔다는 망발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미래불은 미래에 오시는 미륵존불, 도솔천 천주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 제자 수행승 미륵과 미륵부처는 엄연히 다른 존재다.

 

 

미륵부처님께서 인간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는 불교 경전마다 다르다.

 - 증일아함경, 화엄경은 석가모니 사후 3000년이다. (정법(正法) → 상법(像法) → 말법(末法) 시대)

 - 보살처태경, 현우경은 5억 7천6백 만 년이다.

 - 미륵하생경, 일체지광명선인경은 56억만 년이다.

 - 잡심론은 56억 7천만 년이다.

 - 정의경은 57억 6백만 년이다.

 

 

 

아직도 불교도들은 미륵부처님이 석가모니의 제자라는 말이 잘못된 것을 모르고 그것이 진실인양 알고 있으며, 미래불은 일반적으로 56억 7천만 억 년 뒤에나 오신다고 알고 있다.

 

 

 

 

 

도솔천의 천주님이신 미륵부처 신앙이 대중화되어 민중에 뿌리를 내린 것은 무착스님(무착보살) 때부터다.

 

무착스님이 미륵부처님을 친견하여 미륵부처님의 법을 구하기 위해 12년 간 지극정성으로 기도한 끝에 도솔천에 올라, 미륵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아 내려와서 기록한 책이 『유가사지론』이며, 저자를 미륵으로 한 것은 미륵님의 가르침과 그 권위를 빌리기 위해 한 것이라고도 한다. (미륵불이 도솔천의 천주님으로 계셨고, 석가모니의 법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

 

유식설(唯識說)의 체계를 정립한 무착과 동생 세친에 의해 세워진 법상종은 미륵신앙을 대중화시켜 나갔다.

미륵신앙의 법상종을반도에 뿌리내리고 대중화시킨 것은 진표율사께서 미륵부처님을 친견하고 나서 그 말씀을 받들어 모악산 금산사, 속리산 법주사, 금강산 발연사에 미륵불을 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겁의 개념

겁(劫, Kalpa)은 고대 인도의 전통적 사고에 의해 터무니없이 황당한 영겁(永劫)의 무한시간이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우주가 시작되어 파괴되기까지의 시간이 1겁
2. 길이가 40리에 달하는 돌산을 백 년마다 한 번씩 천으로 슬쩍 닦아, 그 돌산이 모두 닳아 없어지기까지의 시간
3. 사방 10리 되는 바위에 천 년에 한 번씩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는데, 그 천사의 옷자락에 바위가 달아서 모두

   없어지기까지의 시간
4. 432만 년의 1,000배에 달하는 시간

5. 사방과 상하로 1유순(由旬: 약 15km)이나 되는 철성(鐵城)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마다 겨자씨 한 알씩을

   꺼낸다. 이렇게 겨자씨 전부를 다 꺼내어도 은 끝나지 않는다.
6. 사방이 1유순(약 15km)이나 되는 큰 반석(盤石)을 100년마다 한 번씩 흰 천으로 닦는다.

    그렇게 해서 그 돌이 다 마멸되어도 은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역사, 즉 빅뱅은 약 145억 년 이라고 한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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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5.06.23 06: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증산도 이야기 잘 보고 가네요

  2. 죽풍 2015.06.23 09: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륵전의 웅장한 부처님 모습이 선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

  3. misoyou 2015.06.23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덕분에 너무 잘보고갑니다
    즐건 하루 되세요 ^^

  4. 프리뷰 2015.06.23 1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표율사에 대해서 많이 알아갑니다.

  5. 카푸리오 2015.06.23 1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표율사ㅎㅎㅎ 처음 들어보네요. 덕분에 배워갑니다.

  6. 뉴론♥ 2015.06.23 2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지나가다 보니까 거리에 교차로 비슷하게 증산도 팝플렛도 보이드라고요
    오늘 날이 점점 기온이 올라가네여 행복하세여

  7. 뉴론♥ 2015.06.23 2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지나가다 보니까 거리에 교차로 비슷하게 증산도 팝플렛도 보이드라고요
    오늘 날이 점점 기온이 올라가네여 행복하세여

  8. 주부s 2015.06.23 2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알아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9. 유라준 2015.06.23 22: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 나이에도 깊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관우 - 5. 충의(忠義)의 화신(化身), 진정한 영웅 관운장의 죽음

 

 

 

 

 

 

 

 

관운장이 양양을 뺏으려 출발하는 사이에 여몽의 계략에 빠져 오(吳)의 기습을 받고 궁지에 몰린 끝에 맥성에서 관평과 함께 죽음을 당하니 때는 건안 24년 10월, 충의(忠義)의 화신이며 진정한 영웅이었던 관운장의 나이 향년 58세였다.

 

 

 

오관을 돌파할 때 알게 되었던 주창은 관운장의 참형소식에 자신의 목을 베고 자살한다.

또한, 관운장의 애마였던 적토마는 관운장이 죽은 뒤, 오나라에서 키우려 했지만, 먹이를 먹지 않아 관운장이 죽은 뒤 며칠이 지난 후 죽었다고 한다.

 

 

 

 

 

 

 

 

 

조조의 갖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조조의 은혜를 갚은 후 부귀영화를 버리고 본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모습, 또한 자신의 목숨을 내건 군령장이 있는데도, 조조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불충까지 감내해가면서 패하여 달아나는 조조를 화용도에서 살려주는 모습에서 관운장은 역시 의(義)를 어떤 것보다 중시한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실(漢室)과 유비에 충성하며, 은혜에 보답할 줄 알고,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의로움은 곧 인(仁)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진수(陳壽)는 역사서인 삼국지(三國志) 찬(贊)에서 '관우와 장비는 만 명을 상대할 만하며 당대의 용맹한 신하였다.'라고 관운장의 용맹에 대해 적고 있으며, 또한 '국사(國士)의 풍격(風格)이 있다.'라고 하여 역시 그의 의(義)에 대해 적고 있다.

 

 

증산 상제님께서 관운장을 매양 칭찬하신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정의로움과 공분심(公憤心)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관운장이 조조에게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조조는 관운장의 진심 어린 행동에 감동하여 오관참장도 묵인한 것은 아닐까?

 

 

 

 

 

 

 

 

증산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 말씀 中

 

 

"상제님 진리는 정의를 규명하고 불의를 뿌리 뽑는 진리다. 증산도 포교의 대의명분이 여기에 있다."

 

 

 

 

증산도 안경전 종도사님 말씀 中

 

 

"세상의 불의를 맑히려는 일은 대우주 삼계를 통치하시는 하느님이신 증산 상제님은 선천 종교에 깊이 빠져 새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를 모두 도둑놈으로 보신 것이다.

 

그러므로 증산 상제님의 도법(道法)을 전하는 포교행위는 선천 문화의 낡은 세계관과 관념에 세뇌되어 있는 세계 창생을 건져내어, 선천 상극의 묵은 천지를 개벽하여 상제님께서 다듬질하신 새 생명의 길로 끌어들이는 인류사의 총체적인 '마지막 대혁명'의 과업이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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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5.06.18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에 대해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

  2. 프리뷰 2015.06.18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정한 영웅... 영원히 기억될것 같습니다.

  3. 행복생활 2015.06.18 1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4. 다이어트X 2015.06.18 1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의 충의.. 우리나라 정치권에
    기대해 보고 싶네요~!

  5. 목요일. 2015.06.18 17: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내용 잘보고 갑니다~

  6. 유라준 2015.06.18 22: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세상에 관우처럼 의를 제대로 행한 사람이 무척 드문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7. FKI자유광장 2015.06.19 17: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 글 흥미롭게 잘 보고 갑니다! ^^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관우 - 4. 관운장의 보은(報恩)과 오관참장(五關斬將), 화용도에서 의기(義氣)

 

 

 

 

 

 

 

 

 

 

관운장의 보은(報恩)과 오관참장(五關斬將 - 오관 돌파, 오관참육장)

 

 

조조는 관도 결전의 전초전인 백마성 싸움에서 원소의 대군과 싸우게 된다.

하지만 전황(戰況)은 신통치 않았다. 원소 휘하에는 부장 안량이 있었는데 조조 진영의 무장 중에는 그를 이길만한 장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조는 관운장을 불러내어 안량을 죽여 달라고 간청한다. 지금까지 후하게 대우해 준 은의(恩義)에 보답하기 위해 관운장은 기꺼이 싸움터로 나가 안량과 문추를 죽이고 돌아오자 조조는 관운장을 한수정후(漢壽亭侯)로 봉한다.

 

 

 

 

 

 

 

 

이때 유비가 원소 군에 있다는 것을 들은 관운장은 약속을 지키려고 조조에게 작별하러 간다.

 

그러나 조조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관운장은 편지를 써서 조조에게 보내고, 조조에게서 받은 재물과 한수정후인(漢壽亭侯印)을 남겨두고 두 형수를 모시고 단신의 몸으로 그 유명한 오관참장(五關斬將) - 관운장은 다섯 관을 통과할 수 있는 조조의 허가서가 없었기 때문에 저지를 당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여섯 장수를 죽이게 된다.)을 감행하면서 하북의 유비에게로 간다.

 

 

 

 

 

 

 

 

화용도에서 관운장의 의기(義氣)

 

 

적벽대전에서 화공을 당해 심한 타격을 입은 조조는 패잔병을 데리고 밤새도록 도망쳤다.

그러나 도망치는 중에 계속되는 복병의 습격을 받게 된다. 때는 마침 한겨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큰비까지 내려 뒤따르는 병사의 군복이 완전히 젖어버리게 된다.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가며 도망치는 조조군은 보기에도 비참한 모습이었다.

 

 

 

화용도에 이르자 좁아진 길은 온통 진흙탕이었다. 남은 사람은 불과 삼백여 기(騎)에 불과했다.

그때 뜻하지 않은 포성이 울리고, 오백의 병사와 함께 청룡언월도를 거머쥔 관운장과 마주친다.

 

 

조조의 군사는 완전히 지쳐서 저항할 생각도 못하고 다만 얼굴을 마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조조는 전방에 나타난 관운장을 향해 가볍게 고갯짓을 하며, 자신과의 옛정을 생각해서 놓아 달라고 부탁하자 관운장은 조조가 예전에 자신에게 베푼 은의(恩義)를 생각하여 놓아준다...(계속)

 

 

 

 

 

 

 

 

 

 

신도의 병마대권자 관성제군

 

1 관운장(關雲長)은 병마대권(兵馬大權)을 맡아 성제군(聖帝君)의 열(列)에 서게 되었나니

2 운장이 오늘과 같이 된 것은 재주와 지략 때문이 아니요 오직 의리 때문이니라.

 

천지에서 으뜸가는 보배, 의로움

 

3 천지간에 의로움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은 없느니라.

4 하늘이 하지 못할 바가 없지마는 오직 의로운 사람에게만은 못 하는 바가 있느니라.

5 사람이 의로운 말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감동하느니라.

6 그러므로 나는 천지의 모든 보배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의로움을 가장 으뜸가는 보배로 삼느니라.

7 나는 추상 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忠義)를 사랑하노라.

(증산도 도전道典 4:15)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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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5.06.17 0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 이야기 잘 보고 가네요

  2. 아쿠나 2015.06.17 06: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운장에 대해서 알아보실때
    유용한 글인듯 해요~
    오늘 쏘나기 온다는데..우산 준비 해두세요^^

  3. 뉴론♥ 2015.06.17 0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4. 죽풍 2015.06.17 09: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부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

  5. misoyou 2015.06.17 1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6. 행복생활 2015.06.17 12: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 멋진 하루를 보내세요~

  7. 다이어트X 2015.06.17 1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의 의기가 참 멋지군요~!

  8. 프리뷰 2015.06.17 16: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에 대해서 많이 배워 가네요^^

  9. *저녁노을* 2015.06.17 17: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행복한 날 되세요.
    잘 보고가요

  10. 유머조아 2015.06.17 1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지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합니다..

  11. 비단털쥐 2015.06.17 2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12. 유라준 2015.06.17 22: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번이고 읽은 삼국지 내용인데,
    이렇게 포스팅한 글을 보니 다시 새롭네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관우 - 3. 관운장의 세 가지 조건부 항복(관공삼약關公三約)과 조조의 회유

 

 

 

 

 

 

 

 

 

관운장(關雲長)이 졸오(卒伍)가 아닌 성제군(聖帝君)의 열(列)에 서게 된 이유인 '충의(忠義)로운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내용으로 삼국지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하비성 전투에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비록 패장이지만 주군(主君)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의리(義理)를 지켜나가는 관운장, 조조에게 세 가지 조건을 붙인 항복 관공삼약(關公三約)을 하고 조조의 끈질긴 회유를 물리친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관운장의 조건부 항복 - 관공삼약(關公三約)

 

서기 200년 유비는 서주의 소패에 머물며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조조의 급습을 받고 패하게 된다. 목숨을 겨우 부지한 유비는 기주의 원소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고, 하비성을 지키던 관우는 조조의 공격을 받고 유인책에 걸려 토산에서 조조군에게 포위당하게 된다. 이때 장료가 관우에게 항복을 권하였으나 관우는 끝까지 싸우다 죽을지언정 절대 항복을 하지 않겠노라고 말한다.

 

 

 

장료는 관우에게 그렇게 헛되게 죽는 것은 세 가지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첫째는 도원결의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며,

둘째는 주군이며 의형인 유비의 두 부인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고,

셋째는 한실(漢室)을 받들고 억조창생의 고초를 덜어주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관운장은 조조에게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이를 받아들인 조조에게 조건부 항복을 한다.

 

관공삼약(關公三約)으로 유명한 세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한(漢)나라 황제에게만 항복하는 것이지 절대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둘째는 유비의 두 부인, 두 형수님의 안전 보장으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주군이며 형님인 유비의 행방을 알기만 하면 언제든지 바로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조조는 이러한 관운장의 모습을 보고 군주(君主)를 섬기면서 그 근본을 잊지 않으니 천하의 '의사(義士)'라고 칭송한다.

이 장면에서 관운장의 죽음을 넘어선 진실성과 의로움(義)을 엿보게 된다.

 

 

 

 

 

 

 

 

 

충의(忠義)와 용맹(勇猛), 의리(義理)를 겸비한 관운장에 대한 조조의 회유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관운장의 마음을 돌려 자기 휘하에 두려는 조조가 하루는 관운장이 입고 있는 옷이 너무 남루하여 새 금포(錦袍)를 내주며 입으라고 하였다.

 

수일이 지나도 낡은 녹포(綠袍)를 입고 있는 관운장에게 왜 좋은 새 옷을 입지 않느냐고 묻자, 관운장은 "이것은 일찍이 유황숙(유비)께서 주신 은의(恩衣)입니다. 아무리 누더기가 되더라도 조석(朝夕)으로 이것을 입고 벗을 때마다 유황숙과 친히 만나는 것 같아 즐겁고 언제나 기쁨을 느낍니다. 공(조조)께서 주신 비단옷은 이 옷 속에 입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조조가 이 말을 듣고 "아! 의로운 사람이다. 이토록 충절한 장부도 있단 말인가. "하며 탄복하였다.

 

 

 

또 조조가 아끼는 적토마를 관운장에게 주었을 때 관운장은 매우 기뻐했다.

그러자 조조는 자신의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관운장에게 자신의 마음이 전달된 줄 알았으나, 관운장은 "이 적토마를 타고 가면 하루 만에 형님(유비)에게 달려갈 수 있어서 나무 좋습니다."라고 말한다.

 

관운장은 조조에게 항복했을 때부터 행방을 모르는 유비를 언제나 생각하고 있었다.

주군(主君)이며 의형(義兄)인 유비의 은혜를 잊을 수 없어서 언제나 유비가 준 헌 옷을 겉에 입는 인물이었다...(계속)

 

 

 

 

신도의 병마대권자 관성제군

 

1 관운장(關雲長)은 병마대권(兵馬大權)을 맡아 성제군(聖帝君)의 열(列)에 서게 되었나니

2 운장이 오늘과 같이 된 것은 재주와 지략 때문이 아니요 오직 의리 때문이니라.

 

천지에서 으뜸가는 보배, 의로움

 

3 천지간에 의로움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은 없느니라.

4 하늘이 하지 못할 바가 없지마는 오직 의로운 사람에게만은 못 하는 바가 있느니라.

5 사람이 의로운 말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감동하느니라.

6 그러므로 나는 천지의 모든 보배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의로움을 가장 으뜸가는 보배로 삼느니라.

7 나는 추상 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忠義)를 사랑하노라.

(증산도 도전道典 4:15)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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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soyou 2015.06.16 0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내용 덕분에 잘보고갑니다 ^^

  2. 다이어트X 2015.06.16 0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 참 멋진 분입니다. ^~^

  3. 죽풍 2015.06.16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유는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정치세계에 있어 필요한 사람이 있었고,
    이용당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의리와 배신,,,
    답은 간단한데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4. 행복생활 2015.06.16 1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5. 하늘마법사 2015.06.16 1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6. 프리뷰 2015.06.16 1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 이야기 잘봤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세요.

  7. 아쿠나 2015.06.16 1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증산도에 대해서 알아보시는 분께
    좋은 글 저도 잘보고 가요 ^^

  8. 유라준 2015.06.16 2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우도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위기도 많았지만, 끝까지 의리를 지키려는 모습이 높이 살만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관우 - 2. 대인대의(大仁大義)의 표상, 관운장

 

 

 

 

 

 

 

관운장은 영웅적 의기(義氣)가 충만한 인물이다.

증산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는 "공분심(公憤心)과 의분심(義憤心)이 없으면 그건 사람이라고 할 것도 없다."라고 말씀하셨으며, 안경전 종도사님께서는 "큰 일꾼은 그만큼 자기희생의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관운장이 고향 관부(官府)의 쫓김을 받게 된 내력도 공분심 때문이었다.

관운장의 고향인 하동군(河東郡) 해현(解縣)은 예로부터 소금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못된 토호 한 놈이 장양(張讓-십상시의 우두머리)의 조카인 현령(縣令)과 손잡고, 힘깨나 쓰는 건달들을 사서 그 소금밭을 독차지하고 소금장수들의 고혈을 빨기 시작하니 그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날 그 두 놈의 술자리에 뛰어들어 모두 베어 죽이게 되는데, 그 사건으로 관부에서 쫓기는 몸이 된다.

 

 

 

 

 

 

 

 

 

그러나 얼마 후 나라에서 대사면령이 내려 쫓기는 신세가 면하게 되자, 나라를 위해 일개 병사의 신분이라도 나가 싸우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 하여 행동으로 옮기려 하는데, 유비가 "관공처럼 신무(神武)하신 분이 졸오(卒伍)에 서서 싸우시겠단 말씀이오?"하고 말린다. 이에 관운장의 대답은 초연하기만 했다.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데 졸오(卒伍)와 장렬(將列)이 무슨 구분이 있겠소이까? 다만, 가진 힘과 익힌 재주를 다하여 싸울 뿐이외다."라고 말한다.

 

천하가 어지러운 때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 싶지만, 힘이 약해 한숨을 쉬는 관운장의 모습이 그려진다.

 

 

 

 

 

 

 

 

 

증산 상제님께서도 인정해 주신 관운장의 대인대의(大仁大義) 한 면모와 자기가 모시고 있었던 주군의 현실적 입지가 불리하더라도 충성과 의리를 다해 주군을 보필하는 관운장의 모습을 생각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개인의 영달과 이익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맥성(麥城)이 적군에 포위되어 함락되려할 때, 제갈근이 때를 아는 자가 준걸(俊傑)이라며 후일을 기약하자는 설득을 하자, 관우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성이 함락되면 죽으면 그만이다.

 

玉可碎 而不可改其白  竹可焚 而不可毁其節

옥가쇄 이불가개기백  죽가분 이불가훼기절

 

옥은 깨져도 흰빛을 잃지 않고, 대나무는 불에 타도 그 마디가 상하지 않는다.

 

 

 

천하사 일꾼의 길

천하사를 하는 자는 먼저 망한 뒤에야 흥하고, 죽음에 들어가야 살길을 얻게 되느니라.

대장부 일을 도모함에 마땅히 마음을 크고 정대히 가져 ‘내가 죽어도 한번 해 보리라.’ 하고

  목숨을 생각지 말아야 할지니

작은 일에 연연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일꾼이 일을 도모함에 무서워서 못하는 것은 의기(義氣)가 부족한 연고니라.

내 일을 하다가 곤란은 있을지언정 그릇 죽지는 아니하리라.

천하사 하려다가 좀 갇히는 것이야 무서울 것이 있느냐.

爲天下者는 不顧家事니
   위천하자    불고가사
천하사를 하는 자는 집안일을 돌볼 수가 없나니

제갈량(諸葛亮)이 성공치 못한 것은 유상팔백주(有桑八百株)로 인함이니라.

수운가사에 ‘연포(連抱)한 좋은 남기 두어 자 썩었은들 양공(良工)은 불기(不棄)라도 그 말이 민망하다. 장인(匠人)이 불급(不及)하여 아니 보면 어찌하리.’라 하였나니 잘 알아 두라.
(증산도 도전道典 8:22)

 

 

 

 

 

 

 

 

 

조선에서의 관왕묘의 유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장병들이 말하기를 '평양전투, 홍산전투 때에 관운장의 영혼이 나타나서 왜병들을 물리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명나라의 장군인 진유격은 한양에 있는 북악산 꼭대기에 관왕묘를 세우고, 석상을 만들어 앉히고, 석상 옆에 관운장이 자기들과 조선을 도운 사실을 기록한 비를 처음으로 세웠다. 이것을 선조 39년에 서악 동대에 옮겨 다시 만들었다. 또 명나라 장군 진인이 숭례산 기슭에 두 번째로 관왕묘를 건립하였다...(계속)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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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5.06.12 0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가요~
    오늘만 보내면 주말이네요~
    활기찬 금요일 보내세요^^

  2. 죽풍 2015.06.12 0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의 영혼이 왜병을 물리쳤군요.
    잘 보고 갑니다. ^^

  3. 행복생활 2015.06.12 0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

  4. TikTok2 2015.06.12 1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5. misoyou 2015.06.12 15: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한 관운장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

  6. 프리뷰 2015.06.12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잠시 들려서 잘보고 갑니다.
    남은 시간도 수고하세요.

  7. 유라준 2015.06.12 2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의리의 표상이라고 할만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오래전부터 많이 친숙하죠.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8. 비단털쥐 2015.06.12 2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많은 분들이 읽을 만한 중요한 내용이네요.

  9. 초코 몽쉘 2018.06.28 0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님, 감동을 선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관우 - 1. 병마대권(兵馬大權)을 맡은 천하영웅 관운장(關雲長)

 

 

 

 

 

 

 

 

대인대의(大仁大義)의 표상으로 높이 추앙받는 관성제군은 만고원신(萬古寃神)의 주벽신(主壁神)이며, 우주 삼계에 떠도는 마귀의 권세를 꺾어버리는 신권(神權)을 부여받은 삼계복마대제(三界伏魔大帝)이시다.

한마디로 천지인(天地人), 삼계의 삿된 마구니(마귀)를 물리치는 분이다.

 

 

중국의 무장(武將)이라고 하면 남송(南宋)의 악비(岳飛)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관운장(關雲長)이다.

관운장은 삼국시대의 호걸이며 민중의 영웅이었다. 유비를 도와 분투하는 모습은 소설 삼국지의 흥미진진한 대목이며, 그의 활약상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관운장의 분투 장면에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낸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역사 인물 중 랭킹 1, 2위를 다투는 우상적 존재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뿐 아니다. 관운장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서서히 신격화되어, 마침내는 무인(武人)의 신(神)으로 민간에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중국의 역대 왕조가 각지에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는데, 그 중 공자묘를 문묘(文廟)라 하고 관우를 모신 관제묘(關帝廟)를 무묘(武廟)라고 불렀다.

 

 

 

관제묘가 널리 세워지게 된 시기는 청나라 이후의 일이며, 신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당(唐)나라 때부터이다.

송(宋)나라 때 무신을 제사 지내는 무묘(武廟)의 주신(主神)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공(公)이라는 작위가 추증되고, 얼마 후 왕(王)의 위(位)로 다시 추증된다.

 

그리고 명나라 신종 만력 42년(1614)에는 왕의 위에서 '제(帝)로 승격되고, 마침내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三界伏魔大帝神位遠鎭天尊關聖帝君)'에 봉해진다.

 

 

 

 

 

 

 

심법을 쓰는 대도

상제님께서 옛사람을 평론하실 때는 매양 강태공, 석가모니, 관운장, 이마두를 칭찬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일꾼된 자 강유(剛柔)를 겸비하여 한편이라도 기울지 아니하여야 할지니

천지의 대덕(大德)이라도 춘생추살(春生秋殺)의 은위(恩威)로써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의로움(義)이 있는 곳에 도(道)가 머물고, 도가 머무는 곳에 덕(德)이 생기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사람이란 벌처럼 톡 쏘는 맛이 있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8:62)

 

 

 

청나라 태종은 관운장을 충용신무영우인용위현호국보민정성수정익체선덕(忠勇神武靈祐仁勇威顯護國保民精誠綬靖翼替宣德) 관성대제(關聖大帝)라고 시호 하여 숭상하였다. 현(縣)마다 관립(官立)의 묘(廟)가 설치되고, 그와 동시에 민간에서도 도교신앙과 결부되어 관노야(關老爺)라고 불리는 재신(財神)으로 숭앙 되어, 촌락마다 관제묘가 만들어진다.

 

 

 

 

 

 

 

 

 

 

관성제군은 불교에서까지 추앙받아 관보살(關菩薩)이 되었다.

민간에서 세운 관성제군의 사당 숫자는 국가에서 건립한 것의 구 배가 된다고 하며, 중국 전역에서는 관성제군의 사당이 공자의 사당보다 더 많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봉호(封號)와 민간에서 세운 숱한 관묘를 통해 중국의 역대 왕조와 백성이 모두 관운장의 충의를 높이 샀음을 알 수 있으며, 점차 특정 종교나 종파를 초월하여 신앙대상으로 숭앙받는 유일무이한 인물이 되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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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5.06.11 0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 이야기 잘 보고 가네요

  2. 아쿠나 2015.06.11 06: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가요~
    즐건 목요일되세요 ^^

  3. 죽풍 2015.06.11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

  4. 뉴론♥ 2015.06.11 0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에서는 관운장이 하나의 영웅으로 통하죠 우리나라에서 영웅은 이순신 장군인가여
    명량에서 영화 찍어서 최민식이 돈방석에 않더니 상까지 받았다고 하드라고요

  5. 행복생활 2015.06.11 11: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6. misoyou 2015.06.11 1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 정말 대단하죠
    잘보고 갑니다

  7. TikTok2 2015.06.11 12: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녀갈게요~ 알찬 오늘이 되셔요~

  8. 프리뷰 2015.06.11 1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운장에 대해서 많이 알아가네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9. 신선함! 2015.06.11 1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