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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06.11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 참배 (2)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정국신사靖國神社)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중의원과 참의원)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일본 왕 명치(메이지, 무쓰히토)와 아들 대정(다이쇼, 요시히토), 손자 소화(쇼와, 히로히토)는 침략 정복 전쟁에 미쳐있었다.

미치광이 일본 제국주의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점령지를 폐허로 만든 장본인이다. 

 

 

 

일본 패망 후 미국을 비롯한 11개국의 연합국이 일본의 침략전쟁인 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 전쟁범죄 책임자를 처벌하는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을 시작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은 미국이 사실상 주도하면서 전쟁범죄의 최고책임자 일본 왕에게 면죄부를 준다.

 

 

일본 헌법 위에 군림하고 일본을 통치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킨 최고 책임자인 일본 왕은 연합국(미국)의 특혜로 전범에서 제외된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쇼와) 일본 왕은 방송을 통해 무조건 항복을 발표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항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의 끝나고 극동국제군사재판에 A급 전범 28명을 기소되었다.

심리 도중에 사망한 2명과 정신이상을 일으킨 1명을 제외하고 7명은 사형, 16명은 종신형, 2명은 징역형이 확정되었다.

 

 

 

A급 전범 중에는 일본 제32대 총리 히로카 고키와 일본 제40대 총리 도조 히데키가 포함되어 있었다.

A급 전범 28명은 일본 왕의 최측근들로 일본 내각의 각료(장관)와 일본 대법원장, 국회의원, 일본군 고위장성 출신 등이다.

 

아베 신조 현(現) 일본 총리의 조부 기시 노부스케도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지만, 운이 좋게 풀려났다.

 

 

 

 

 

 

 

 

 

 

 

 

연합군(미국)은 히로히토(쇼와) 일본 왕의 주장을 받아들여 일본 패망 후 첫 번째 총리로 히가시쿠니 나루히코를 위촉한다.

전후(戰後) 첫 번째 총리는 다름 아닌 야스쿠니 신사를 세우고, 침략전쟁을 시작한 메이지 일본 왕의 사위로 일본 왕족이다.

 

 

전후(戰後) 일본의 첫 번째 총리는 미국의 특혜로 A급 전범이 아닌 일본 왕의 지위를 그대로 누린 히로히토 일본 왕의 고모부다.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총리는 일본 육군 대장 출신으로 A급 전범자이지만, 역시 연합국(미국)의 배려로 전범에서도 제외됐.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없는 일본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극동국제재판소의 전범 재판이 얼마나 문제가 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을 통치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에게는 아무 책임도 묻지 않았고, 전쟁범죄의 책임은 내각 총리와 장관, 국회의원, 일본군 수뇌부가 진다는 명치 헌법이 극동국제재판소 판결에서 그대로 적용됐다고 볼 수 있다.

 

 

 

 

 

 

 

 

 

 

 

 

 

제43대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일본 총리는 1945년 8월 18일 취임 이튿날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한다.

전후 최초로 일본 정부 수반인 총리가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일본 내각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후대 일본 총리와 정부의 각료(장관), 국회의원, 특히 우익 성향의 일본인이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물꼬를 터준 셈이 됐다.

 

 

 

 

 

 

 

 

 

 

 

 

제44대 시데하라 기주로 일본 총리는 취임 당일 1945년 10월 9일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한 차례 더 참배했다.

 

 

45, 48, 49, 50, 51대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는 1951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5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56, 57대 기시 노부스케 일본 총리는 1957년 첫 참배 후 총 2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기시 노부스케 총리는 제61, 62. 63대 사토 에이사쿠 총리의 친형이며, 제90, 96, 97대의 현(現)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다.

 

 

제58, 59, 60대 이케다 하야토 일본 총리는 1960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5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61, 62, 63대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는 1965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11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64, 65대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는 1972년 7월 7일 취임하고 이튿날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고, 총 5차례 참배했다.

 

 

66대 미키 다케오 일본 총리는 전후(戰後, 1945년)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1975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제67대 후쿠다 다케오 일본 총리는 1977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4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1978년 일본 정부는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을 비밀리에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한다.

 

1979년 4월 언론을 통해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정부는 A급 전범 14명 야스쿠니 신사 합사(合祠)가 나라를 위해 일하다 사망한 공무사(公務死)이기 때문에 합사했다고 변명을 늘어댔다.

 

 

 

 

 

 

 

 

 

 

 

 

 

제71, 72, 73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는 1985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A급 전범 합사 이후 참배이기 때문에 국제 문제로 비화했다.

 

 

제78대 미야지와 기이치 일본 총리는 1992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82, 83대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는 1996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87, 88, 89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001년 첫 참배 이후 총 5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고이즈미 준이치와 아베 신조 총리는 퇴임 후 당당하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제90, 96, 97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3년 12월 26일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외조부 56, 57대 총리: 기시 노부스케, 외종조부 61, 62, 63대 총리: 사토 에이사쿠 - 일본 총리 자격으야스쿠니 신사참배)

 

 

 

 

 

 

 

 

 

 

 

 

 

 

아베 신조 총리는 관방장관으로 재직하던 2006년 야스쿠니 신사참배, 2007년 총리 자격으로 공물 봉납했다.

2008년과 2009년 아소 다로 총리 명의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일본 총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자리다.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 등이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문제가 될 때는 사적인 신분으로 참배한 것이라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일본의 내각 각료(장관)와 국회의원, 정당 대표와 간부 등은 혼자서 참배하기도 했고, 때론 여럿이 모여 지속해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고, 일본 총리의 부인도 신사참배를 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 총리가 사적 또는 공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수십 년 전부터 일본 내각 각료(장관)와 국회의원들이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이 집단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면서 국제문제로 이슈화됐지다.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중단하지 않았고, 전쟁범죄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 4월 2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공물 봉납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모임 소속'의 각 정당 국회의원과 현직 각료(장관) 등 90여 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참배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일본 왕이 자신을 위해 싸우다 죽은 무사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설립한 이래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침략전쟁에서 죽은 다수의 군인과 소수의 민간인 등 246만여 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명실공히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일본 천황을 수호하는 군신(軍神), 일본을 지키는 호국신(護國神)으로 추앙받으며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246만여 위패에는 한국인과 중국인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1978년 일본 정부는 비밀리에 A급 전범 14명을 합사하고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 등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다. 

 

일본의 침략전쟁 피해 당사국들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항의했지만, 일본은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이후에도 아무 꺼리낌 없이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이 지속해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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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7.06.18 2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이라는 나라 반성을 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정신 없는 나라가 아닐까요.
    잘 보고 갑니다. ^^

  2. 버블프라이스 2017.06.19 02: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까지도 아무 꺼리낌 없이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이 지속해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는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가 정이 떨어집니다.

일본 최대 규모의 신사(神社)이며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 된 야스쿠니 신사(정국신사靖國神社)

 

 

 

 

 

 

 

 

 

 

 

 

 

1868년 에도막부 정권(무신정권) 무너뜨린 일본 왕 명치는 일본 천황이 되어 근 700년 만에 왕정복고를 선언한다.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은 본격적인 군국주의의 길로 나아간다.

 

 

일본 왕 메이지는 1869년 왕정복고를 위해 에도막부 정권과 싸우다 죽은 3천 5백여 명의 영혼들을 위로하는 동경 초혼사(東京招魂社)를 세운다. 동경초혼사는 1879년 야스쿠니 신사(정국신사靖國神社)로 이름을 바꾼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국교(國敎)인 신도(神道)와는 전혀 관련 없으며, 종교 추모 시설이 아닌 군사 시설이었다.

신사의 관리 주체는 일본군으로 일본 육·해군의 예산으로 운영되었고, 신사의 최고 신관인 궁사(宮司) 역시 일본 육·해군의 대장이 맡았다.

 

정국신사(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왕(천황)이 직접 참배하는 천황의 신사이면서, 일본 군국주의 정신의 발원지다.

 

 

 

 

 

 

 

 

 

 

 

 

1868년 메이지유신(명치유신)이 성공하기까지 일본의 왕을 도와 공을 세운 인물을 유신 3걸(3명) 유신 10걸(10명)이 있다.

오오무라 사스지로는 유신 10걸 중 한 명이다.

 

 

1871년 '일본 근대 군대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오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는 일본 왕(천황)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 근대 육군이 창설한다. 오오무라 사스지로는 야스쿠니 신사를 만드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도쿠가와 막부정권을 쓰러트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근대 일본 제국주의 육군을 창설한 오오무라 마스지로는 자신의 고향이며 메이지유신(명치유신)의 중심인 조슈번에서 사무라이의 습격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 상태가 악화하여 사망했다.

 

 

메이지 일본 왕은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들을 야스쿠니 신사를 건립하여 '일본의 신'으로 모시고, 일본 근대 육군을 창설한 오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을 세웠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는 8만 개가 넘는 신사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신사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상징과 같은 오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과 전쟁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유슈칸(1882년 개관, 유취관)에는 전쟁에서 사용한 각종 무기와 가미카제 특공대의 유서와 사진 등의 사료 등이 전시되어 있고,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비석도 세워져 있는 등도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누가 봐도 일본 군국주의 상징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야스쿠니 신사(정국신사靖國神社)는 나라를 안정시킨 신사라는 뜻 그대로 일본 왕 메이지와 아들 요시히토, 손자 히로히토는 일본 왕에게 충성을 다한 이들을 '일본의 군신(軍神)'으로 안치하여 직접 참배했다.

 

일본 왕을 위해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간 일본인들은 살아서는 '천황의 충신'으로, 죽어서는 '일본의 군신'이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다.

 

 

 

 

 

 

 

 

 

 

 

 

일본 왕실(황실) 옆에 세워진 야스쿠니 신사는 근대에 만들어진 신사임에도 일본 왕(천황)이 직접 참배했다.

 

 

일본 왕(천황)은 일본 국민에게 살아있는 신(神)으로 추앙받는 존재이며, 일본 천황이 곧 국가라고 생각했던 일본인은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으면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신'으로 안치되어 일본 천황에게 직접 절을 받는다.

 

침략전쟁에 미친 일본 왕과 군국주의자들에게는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강력한 충성심과 더 많은 희생자가 필요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일본 천황의 군대, 곧 황군으로 참여한 전쟁을 침략전쟁이 아닌 '성전(聖戰)'으로 미화했고, 전쟁에서 죽으면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신'으로 안치되는 영광을 보장했다.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강제로 참배를 강요당한 일부 일본인을 제외하고, 어린아이부터 학생, 군인, 민간인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올리며 황국신민, 즉 일본 천황의 백성임을 다짐하였다.

 

야스쿠니 신사(정국신사靖國神社)는 창건 때부터 이미 호국신사(護國神社)이며 황국신사(皇國神社)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일본 천황이 직접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여 전쟁에서 싸우다 죽은 일본군, 즉 '일본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위는 일본군대의 사기를 양양하고, 일본 천황의 신격화와 군국주의를 고무시켜 충성 경쟁을 요구하는 한편 절대 충성을 강요하여 일본 군국주의의 발원지이면서 군국주의의 상징이 된다.

 

 

 

 

 

 

 

 

 

 

 

 

사쿠라(벚꽃은) 일본의 국화이면서 봉건시대 사무라이 무사도의 상징이었다.

 

일본의 패망이 짙어지던 2차 세계대전 말기 일명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원들은 '벚꽃처럼 피었다가 벚꽃처럼 지자', '사쿠라의 고향 야스쿠니에서 다시 만나자'라는 군가를 외치며 목숨을 버렸다.

 

야스쿠니 신사의 벚꽃은 충성스러운 일본 군인과 희생의 상징이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메이지 유신 과정부터 여러 침략전쟁 중에 죽은 사람을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했다.

일본군이 가장 많이 죽은 전쟁은 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이다.

 

 

 

 

 

 

 

 

 

 

 

 

일본은 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 패망 후 눈치를 보다가 1978년 도조 히데키를 포함한 A급 전범 14명을 합사(合祀)했다.

 

1945년 패망 후 일본 천황과 총리가 사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고, 일본 패망 후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가 내각 수반 자격으로 처음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1991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일본 정부의 수반으로서 공적 참배로 이는 일본 헌법에 위반되다고 판결했다.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 일본 총리 역시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가 정교(政敎)를 분리한 일본 헌법 위반라고 판결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인 일본군과 군무원(군속), 민간인 등과 조선인으로 강제연행되어 일본군대와 군무원, 강제징용(강제노역)에 끌려갔던 사람들 2만여 명까지 합하여 총 246만 6천여 명이 안치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연행으로 끌려가 목숨을 잃은 2만여 명의 한국인 원혼들을 일본 정부가 주도하여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다.

 

일제에 의해 강제연행(강제징용, 강제징병)되어 타국에서 원통하게 세상을 떠난 조선인 희생자를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한 일을 두고 일본 측은 당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조선인도 일본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황국 신민이라고 하였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조선인 희생자들은 강제징병이 아닌 일본을 위해 싸우다 죽은 용병으로 등록하기도 했고, 살아 있는 사람을 전사자로 합사하기도 했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대만인 2만여 명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대한민국과 대만의 후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 합사 취소소송을 했지만, 2008년과 2011년 일본 법원은 야스쿠니 신사가 종교시설이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할 수 없고 전적으로 야스쿠니 신사가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혹자는 1978년 태평양전쟁 당시 국제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분류된 14명을 안치하고 나서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는 설립 초기부터 이미 일본 왕(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무사(군인)와 일본 근대 육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을 세우면서부터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었다.

 

 

 

 

 

 

 

 

 

 

 

 

 

일본은 군대를 보유할 수 있는 나라,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군국주의 국가 회귀를 준비하고 있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공식적인 내각 수반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하였다.

 

일본 법원은 일본 아베 총리 야스쿠니 신사참배 손해배상 소송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손을 들어줬으며, 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1874년 메이지(명치) 일본 왕이 처음 야스쿠니 신사를 건립하고 참배한 이래로 아들 요시히토 일왕, 손자 히로히토 일왕까지 수십 차례 참배하였다. 야스쿠니 신사는 신(神)과 동격인 일본 천황이 직접 참배하는 성지로 일본의 호국영령을 안치한 성역이 되었다.

 

 

왕정복고 과정과 내전 중 사망자,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제2차 세계대전) 등 전쟁에서 사망한 246만여 명을 합사하면서 군국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전쟁 중에 사망한 군인뿐만 아니라 전쟁으 소용돌이 속에서 폭격 등으로 사망한 갓난아이부터 학생과 여성,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 안치되어 있지만, 일본의 군국주의 상징답게 야스쿠니 신사 건립 당시의 목적과 가장 많이 합사된 것은 일본 왕(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일본군이다.

 

 

전쟁에 눈먼 나라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었던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왕(천황)이 직접 참배하고 일본 육·해군이 관리한 국가 시설이었지만, 일본이 패망하고 정교(政敎)분리에 의해 1946년 종교법인이 됐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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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7.06.11 0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역사적인 내용을 정말 상세하게 정리해주셧네요. 잘 공부하고 갑니다^^
    좋은 주말되세요 도생님

  2. 청결원 2017.06.11 0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