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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일본 아베 총리의 정면 돌파

일본 아베 총리의 군국주의 회귀 - 일본 헌법 제9조(평화헌법) 개정으로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 실현

 

 

 

 

 

 

 

 

 

 

 

일본은 세상이 다 아는 전범국가지만, 침략전쟁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피해국과 피해자에게 사과 및 피해 보상도 하지 않은 세계 유일의 전범국가입니다.

 

 

그래서인지 전범국가 일본의 꿈은 일본의 평화헌법(헌법 제9조)을 개정해서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역대 일본 총리 상당수와 現 아베 총리의 꿈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미명아래 추진하고 있는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입니다.

일본이 군국주의 국가로 회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평화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집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후 70여 년 동안 일본의 숙원사업은 일본 평화헌법(헌법 9조)을 개정해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의 탈바꿈입니다.

일본이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의 꿈을 키워왔다는 것은 패망 후 단 한 명도 없던 일본이 현재 자위대라는 옷을 입고 세계 7위의 군사력을 가진 강대국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증명합니다. 

 

 

 

 

 

 

 

 

 

'보통국가'란 일본 정치계의 풍운아로 불리는 보수정치가 오자와 이치로가 1993일본 개조계획이란 책에서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론'을 처음 사용하면서 일반화된 용어입니다.

 

 

 

오자와 이치로는 일본이 1990년 1차 걸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약 100억 달러 이상의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유지군조차 파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국제사회에 정상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보통국가론을 주창한 것입니다.

 

오자와 이치로와 일본이 주장하는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란 일본 정규군을 갖고, 경제대국 군사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 바로 다른 나라와 똑같이 주권을 행사하자는 것이 보통국가론입니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 일본은 지난날을 반성하기는커녕 피해자에게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전쟁범죄를 부정하기까지 합니다. 반인륜적인 잔악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도 제국주의 침략 야욕을 버리지 않은 군국주의로 회귀하려 하일본의 꿈이 평화헌법(일본 헌법 9조)을 개정해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군(미국)은 1889년에 만들어진 본 제국주의 헌법(메이지 헌법)의 기본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일본 왕 중심체제에서 민주주의의 국민주권과 기본적 인권 존중, 평화주의(전쟁포기) 등 3대 원칙을 명시한 일본 헌법 초안을 일본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메이지 헌법을 수정한 소위 평화헌법은 연합군과 일본의 합의로 1946년 11월 3일 미 군정 치하에서 공포하였습니다.

일본 헌법이 1947년 5월 3일 발효되면서 일본은 천황제 국가에서 입헌군주 의원내각제 국가가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의 승전국 미국은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 왕이 갖고 있던 무소불위의 권한을 없앴지만, 태평양패전 이전의 기본적인 체제를 유지하게 해주면서 군대와 무기를 보유할 수 없고,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로 일본 헌법에 명시하도록 했습니다. 현재의 일본 헌법, 소위 평화헌법은 일제와 연합군(미국)의 공동작품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수십 년 동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천만 명을 살상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등 용서할 수 없는 무자비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도쿄 전범재판을 주관한 미국은 일본이 수십 년 동안 자행한 끔찍한 만행에 대해 거의 면죄부를 주다시피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일본 헌법 제9조에는 일본은 전투 능력(전력戰力 = 군대와 무기)을 보유할 수 없고, 국가 간 전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등이 명시되면서, 소위 '평화헌법'으로 불리게 됩니다.

 

 

일본은 패망 후 미 군정 점령하에 있던 1950년 일본 내의 치안 유지를 위경찰예비대 창설을 시작으로, 1952년에는 해상경비대까지 조직되었습니다.

 

 

 

 

 

 

 

 

 

1954년 7월 1일 자위대법이 공포되면서 치안 유지를 위한 보안청이 방위청으로 덩치가 커진 자위대(自衛隊)는 명실상부한 군대조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때부터 일본 헌법 제9조(평화헌법)는 그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1992년 국제평화협력법을 만들어 유엔평화유지(PKO) 활동에위를 한정했지만, 일본 자위대 해외파병의 근거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리고 급기야 2015년 안보법을 제정해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아도 동맹국과 제3국 등 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라가 공격을 받으면 반격할 수 있는 소위 '집단적 자위권'을 통과시키며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일본이 비록 헌법 제9조(평화헌법)를 개정하지 않았지만, 안보법 통과로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킨 것입니다.

 

 

 

1945년 일본 본토를 점령한 미군은 지난 70여 년 동안 미군이 주둔하면서 일본의 군사력을 세세하게 살피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비호와 묵인 아래 일본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육상, 해상, 항공자위대는 세계 7위의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 7위를  군사력을 자랑하는 일본 자위대는 미국과 일제가 만든 작품입니다.

군대와 무기를 보유할 수 없고, 전쟁을 할 수 없는 일본 자위대가 세계 7위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자칭 지구 경찰이라는 미국의 비호와 묵인이 없었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F-35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F-35 스텔스 전투기보다 성능이 뛰어난 세계 최고의 스텔스 전투기는 미국의 전투기로 F-22 랩터입니다.

일본이 자체 개발해서 2년째 실험 중인 X-2(심신心神) 스텔스 전투기는 F-35보다 성능에서 앞서고, 세계 최고의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와 필적할만한 성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미국 해군에 이어 세계 2위의 군사력은 보유했다는 사실은 일본과 미국이 일본 헌법 제9조(평화헌법)를 사문화시켜 유명무실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군국주의화를 가속하고 있는 일본 자위대를 보면 미국과 일본이 그동안 지구촌을 농락하며 대사기극을 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대와 무기를 보유를 금지하고, 전쟁을 불허하는 일본의 소위 평화헌법을 만든 장본인이 미국입니다.

 

세계를 제패를 꿈꾼 미국이 수십 년 동안 일본의 자위대 군사력 확대를 암묵적으로 허용해 세계 7위 군사력을 갖춘 실질적인 군대인 일본 자위대를 만들었습니다. 일본의 자위대는 세계 제패를 꿈꾸는 미국이 동북아에서 영향력 확대를 위해 전략적으로 키운 것입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의 꿈은 이른바 평화헌법, 헌법 9조 개정하여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탈바꿈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본 헌법 제9조 1항은 전쟁 포기, 2항은 전력(무기와 군대) 보유 불가입니다.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전환하려는 꿈을 꾸고 있지만, 이미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안보법 통과2015년부터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였습니다.

 

 

어찌 보면 일본과 아베 총리의 꿈은 이미 이루어졌고, 형식적인 요식행위만 남아 있는 셈입니다.

일본은 소위 평화헌법을 직접 수정하거나, 기존에 명시된 것을 수정하지 않고 자위대 보유 명기 등의 시나리오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일본은 국제사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만약 일본이 국회에서 헌법 9조(평화헌법)를 개정한다면 일본 내에서의 반대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미국의 묵인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2개의 사학스캔들로 인하여 일본 내에서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더욱이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이 4월과 5월에 예정되어 있고, 파격적으로 북중 정상회담이 이루어지자 '재팬 패싱'의 우려한 나머지 아베가 먼저 북일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본 자민당은 2012년 이미 헌법 개정(평화헌법) 초안을 완성했습니다.

 

2018년 3월 25일 일본의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탈바꿈하기 위해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해 위헌논쟁에 종지부를 찍겠다.'라고 했으며, 자민당은 일본 자위대를 명기한 내용의 개헌안을 공식 발표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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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8.04.01 06: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2. 버블프라이스 2018.04.03 1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 글에 이은 일본 아베 총리에 관한 글 아주 잘 읽었습니다.

일본 제90대, 96대, 97대, 98대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전후(戰後) 일본의 최장수 총리를 노리는 스트롱맨의 위기 - 아베 총리 사학스캔들

 

 

 

 

 

 

 

 

 

 

 

최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북한의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과 북·중 정상회담까지 하자 일본의 스트롱맨 아베 총리는 일본 패싱을 우려해 안간힘을 쓰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의 국제정세를 흔히 스트롱맨의 전성시대라고 말합니다.

자국 내에서는 카리스마적인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밖으로는 경제와 군사력을 내세운 힘의 논리로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지구촌 대표적인 스트롱맨은 '미국 우선주의'의 미국 트럼프 대통령,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위대한 러시아 부흥'의 러시아 푸틴 대통령,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탈바꿈'하려는 일본 아베 총리 등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스트롱맨은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스트롱맨이 집권하고 있는 4대 강국 미국 제국주의, 러시아 제국주의, 중국(청) 제국주의, 일본 제국주의 등 과거 제국주의 국가였다는 점과 19세기 말부터 우리나라와 직접 연관되어 있으며, 지금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의 당사국이기도 합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는 경제적인 면과 군사적인 면에서 단연 세계 1, 2위를 다투는 세계 최강의 강대국이며, 스트롱맨이 포진한 나라 중에서 가장 약체로 꼽히는 일본은 경제력 세계 3위, 군사력은 세계 7위의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입니다.

 

 

 

중국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내적으로는 무난하게 임기를 이어갈 수 있지만,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는 잘못된 처신으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스트롱맨 일본의 아베 총리가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빠져버린 것은 다름 아닌 사학스캔들입니다.

 

 

 

 

 

 

 

 

 

스트롱맨 일본 아베 총리를 위기로 몰고 있는 사학스캔들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가케 사학스캔'들이며, 또 다른 하나는 '모리모토 학원 스캔들'입니다.

 

 

 

첫 번째 사학스캔들은 일본 국유지를 사립 학원재단에 헐값에 넘긴 사건입니다.

아베 총리의 사학스캔들은 사립학교 재단의 이름을 붙여 '모리모토 학원 스캔들'이라고도 합니다.

사학스캔들은 2016년 3월 사학재단 모리모토 학원이 설립할 초등학교 예정지의 국유지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일어난 스캔들입니다.

 

모리모토 학원은 설립될 초등학교의 명예 교장에 일본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를 임명합니다. 

일본 재무성은 감정가 9억 3천여만 엔의 국유지를 14%밖에 안 되는 1억 3천여만 엔의 가격으로 모리모토 학원에 넘깁니다.

 

 

 

일본 아베 총리의 사학스캔들이 2017년 2월 8일 일본 아사히 신문을 통해 기사화되었습니다.

모리모토 학원의 초등학교 명예교장직을 맡고 있던 일본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는 사학스캔들 특혜의혹이 불거지자 명예 교장직을 사퇴합니다.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이 불거지자 일본 정부는 초등학교 설립 예정지였던 국유지에 쓰레기가 매립되어 있어 제거 비용을 고려해서 헐값에 매각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사학스캔들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헐값 매각뿐만 아니라 모리모토 학원이 초등학교 용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 설립허가가 나왔고, 일본 재무성은 공문서까지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게 됩니다.

 

 

 

 

 

 

 

 

 

 

두 번째 사학스캔들은 가케학원이 운영하는 오카야마 이과대학 수의학과 개설 스캔들입니다.

아사히 신문은 수의학과 신설이 총리의 의향이라는 문부성 문건을 보도하자, 일본 정부는 즉각 괴문서라고 부인했지만, 前 문부성 사무차관 마에카와는 문부성 문서가 맞는다고 주장하면서 사학스캔들로 번지게 된 것입니다.

 

일본 前 문부성 사무차관 마에카와는 이즈미 히로토 총리 보좌관이 아베 총리의 지시를 받고 수의학과 신설을 승인하라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수의사 지나친 증가를 우려해 반세기가 넘도록 허가를 내주지 않았는데, 일본 아베 총리와 오랜 친구인 가케학원 가케코타로 이사장이 운영하는 사학재단의 대학에 일본 문부성이 수의학과 신설을 허용한 것입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사학스캔들이 자신을 향해 오자 자신이 승인 압력을 행사한 사실은 없으며, 규제 개혁 차원의 결정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스트롱맨의 대열에서 벼랑 끝 위기에 몰려있는 일본의 아베 총리는 가케학원 사학스캔들과 모리모토 학원 사학스캔들이 일본 정국을 강타하면서 총리 3연임이 불투명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제61대, 62대, 63대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7년 8개월간 내각총리대신으로 있으면서 일본 총리 중 가장 오랫동안 총리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다음이 제52대, 53대, 54대 총리를 지낸 요시다 시게루 총리로 7년 2개월 동안 일본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제56대, 57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습니다.

 

일본 총리 중 최장수 총리였던 사토 에이사쿠는 現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종조부(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친동생)가 됩니다.

 

 

 

 

 

 

 

 

 

일본 아베 총리는 현재 총리직만 6년이 넘었으며, 2018년 9월로 예정된 일본의 자유민주당(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면 총리직을 이어가고 되는데, 만약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2021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하여 전후(戰後) 일본 총리 중 최장수의 총리가 됩니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여론조사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불신감이 커지면서 30% 내외까지 급락했고, 아베 총리 지지율은 그보다 더 낮습니다.

 

사학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스트롱맨 일본의 아베 총리는 미국의 관세 폭탄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재팬 패싱'까지 내우외환의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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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8.03.31 06: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역시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2. Deborah 2018.03.31 2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베의 본심을 보게 되는 여러 행적들을 보면
    참 미운짓만 하는것 같습니다.

  3. 버블프라이스 2018.04.03 18: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아베 총리의 최근 사학스캔들
    및 이슈들에대해서 정리를 잘해주신 것 같습니다. 저도 도생님 덕분에 몰랐던 정보를 잘 알아갑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정국신사靖國神社)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중의원과 참의원)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일본 왕 명치(메이지, 무쓰히토)와 아들 대정(다이쇼, 요시히토), 손자 소화(쇼와, 히로히토)는 침략 정복 전쟁에 미쳐있었다.

미치광이 일본 제국주의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점령지를 폐허로 만든 장본인이다. 

 

 

 

일본 패망 후 미국을 비롯한 11개국의 연합국이 일본의 침략전쟁인 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 전쟁범죄 책임자를 처벌하는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을 시작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은 미국이 사실상 주도하면서 전쟁범죄의 최고책임자 일본 왕에게 면죄부를 준다.

 

 

일본 헌법 위에 군림하고 일본을 통치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킨 최고 책임자인 일본 왕은 연합국(미국)의 특혜로 전범에서 제외된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쇼와) 일본 왕은 방송을 통해 무조건 항복을 발표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항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의 끝나고 극동국제군사재판에 A급 전범 28명을 기소되었다.

심리 도중에 사망한 2명과 정신이상을 일으킨 1명을 제외하고 7명은 사형, 16명은 종신형, 2명은 징역형이 확정되었다.

 

 

 

A급 전범 중에는 일본 제32대 총리 히로카 고키와 일본 제40대 총리 도조 히데키가 포함되어 있었다.

A급 전범 28명은 일본 왕의 최측근들로 일본 내각의 각료(장관)와 일본 대법원장, 국회의원, 일본군 고위장성 출신 등이다.

 

아베 신조 현(現) 일본 총리의 조부 기시 노부스케도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지만, 운이 좋게 풀려났다.

 

 

 

 

 

 

 

 

 

 

 

 

연합군(미국)은 히로히토(쇼와) 일본 왕의 주장을 받아들여 일본 패망 후 첫 번째 총리로 히가시쿠니 나루히코를 위촉한다.

전후(戰後) 첫 번째 총리는 다름 아닌 야스쿠니 신사를 세우고, 침략전쟁을 시작한 메이지 일본 왕의 사위로 일본 왕족이다.

 

 

전후(戰後) 일본의 첫 번째 총리는 미국의 특혜로 A급 전범이 아닌 일본 왕의 지위를 그대로 누린 히로히토 일본 왕의 고모부다.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총리는 일본 육군 대장 출신으로 A급 전범자이지만, 역시 연합국(미국)의 배려로 전범에서도 제외됐.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없는 일본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극동국제재판소의 전범 재판이 얼마나 문제가 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을 통치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에게는 아무 책임도 묻지 않았고, 전쟁범죄의 책임은 내각 총리와 장관, 국회의원, 일본군 수뇌부가 진다는 명치 헌법이 극동국제재판소 판결에서 그대로 적용됐다고 볼 수 있다.

 

 

 

 

 

 

 

 

 

 

 

 

 

제43대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일본 총리는 1945년 8월 18일 취임 이튿날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한다.

전후 최초로 일본 정부 수반인 총리가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일본 내각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후대 일본 총리와 정부의 각료(장관), 국회의원, 특히 우익 성향의 일본인이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물꼬를 터준 셈이 됐다.

 

 

 

 

 

 

 

 

 

 

 

 

제44대 시데하라 기주로 일본 총리는 취임 당일 1945년 10월 9일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한 차례 더 참배했다.

 

 

45, 48, 49, 50, 51대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는 1951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5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56, 57대 기시 노부스케 일본 총리는 1957년 첫 참배 후 총 2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기시 노부스케 총리는 제61, 62. 63대 사토 에이사쿠 총리의 친형이며, 제90, 96, 97대의 현(現)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다.

 

 

제58, 59, 60대 이케다 하야토 일본 총리는 1960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5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61, 62, 63대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는 1965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11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64, 65대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는 1972년 7월 7일 취임하고 이튿날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고, 총 5차례 참배했다.

 

 

66대 미키 다케오 일본 총리는 전후(戰後, 1945년)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1975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제67대 후쿠다 다케오 일본 총리는 1977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4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1978년 일본 정부는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을 비밀리에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한다.

 

1979년 4월 언론을 통해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정부는 A급 전범 14명 야스쿠니 신사 합사(合祠)가 나라를 위해 일하다 사망한 공무사(公務死)이기 때문에 합사했다고 변명을 늘어댔다.

 

 

 

 

 

 

 

 

 

 

 

 

 

제71, 72, 73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는 1985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A급 전범 합사 이후 참배이기 때문에 국제 문제로 비화했다.

 

 

제78대 미야지와 기이치 일본 총리는 1992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82, 83대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는 1996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87, 88, 89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001년 첫 참배 이후 총 5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고이즈미 준이치와 아베 신조 총리는 퇴임 후 당당하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제90, 96, 97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3년 12월 26일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외조부 56, 57대 총리: 기시 노부스케, 외종조부 61, 62, 63대 총리: 사토 에이사쿠 - 일본 총리 자격으야스쿠니 신사참배)

 

 

 

 

 

 

 

 

 

 

 

 

 

 

아베 신조 총리는 관방장관으로 재직하던 2006년 야스쿠니 신사참배, 2007년 총리 자격으로 공물 봉납했다.

2008년과 2009년 아소 다로 총리 명의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일본 총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자리다.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 등이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문제가 될 때는 사적인 신분으로 참배한 것이라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일본의 내각 각료(장관)와 국회의원, 정당 대표와 간부 등은 혼자서 참배하기도 했고, 때론 여럿이 모여 지속해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고, 일본 총리의 부인도 신사참배를 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 총리가 사적 또는 공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수십 년 전부터 일본 내각 각료(장관)와 국회의원들이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이 집단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면서 국제문제로 이슈화됐지다.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중단하지 않았고, 전쟁범죄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 4월 2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공물 봉납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모임 소속'의 각 정당 국회의원과 현직 각료(장관) 등 90여 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참배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일본 왕이 자신을 위해 싸우다 죽은 무사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설립한 이래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침략전쟁에서 죽은 다수의 군인과 소수의 민간인 등 246만여 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명실공히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일본 천황을 수호하는 군신(軍神), 일본을 지키는 호국신(護國神)으로 추앙받으며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246만여 위패에는 한국인과 중국인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1978년 일본 정부는 비밀리에 A급 전범 14명을 합사하고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 등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다. 

 

일본의 침략전쟁 피해 당사국들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항의했지만, 일본은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이후에도 아무 꺼리낌 없이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이 지속해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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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7.06.18 2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이라는 나라 반성을 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정신 없는 나라가 아닐까요.
    잘 보고 갑니다. ^^

  2. 버블프라이스 2017.06.19 02: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까지도 아무 꺼리낌 없이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이 지속해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는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가 정이 떨어집니다.

일본 총리와 각료(閣僚, 장관), 국회의원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참배 ①

 

 

 

 

 

 

 

 

 

 

 

 

 

막부시대 상징적인 존재로 사실상 허수아비였던 일본 왕은 메이지유신(명치유신) 이후 살아 있는 신(神)으로 화려하게 부활했고, 국가 자체였다.

 

명치(메이지) 일본 왕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들은 야스쿠니 신사(초혼사招魂寺, 정국신사靖國神社)를 세워 충성과 호국의 상징으로 추켜세우며 '일본의 신'으로 추앙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살아 있는 신()일본 왕의 명()으로 건립된 신사다.

 

일본 왕이 직접 참배하는 야스쿠니 신사는 굳이 법제화하지 않더라도 천황의 신민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신성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해야 했다.

 

 

 

 

 

 

 

 

 

 

 

 

천황의 신민으로서 일본 제국의회 국회의원, 내각 총리와 각료(장관) 등을 비롯하여 침략전쟁을 위해 전쟁터로 떠나는 일본군과 공무원과 민간인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며 일본 왕에 대한 충성 맹세를 하였.

 

 

 

일본은 메이지유신(명치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1885년 입헌군주제(내각제도)로 전환하였다.

지금은 일본 왕이 상징적인 존재지만, 19세기 말부터 일본이 패망하기 전까지 일본 왕은 절대적 존재였다.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는 유럽의 입헌군주제, 특히 '독일제국 헌법'을 바탕으로 '대일본제국 헌법', 소위 '명치 헌법'을 기초하였다. 일본 왕은 '대일본제국 헌법' 위에 군림하였으며, 살아 있는 신(神)으로 추앙받는 초월적 존재였다.

 

 

 

천황중심제(절대군주제)의 무소불위 권력으로 일본을 직접 통치하는 일본 왕 앞에 일본 제국의회는 한낮 전쟁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내각 총리와 각료(장관) 역시 일본 왕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충견에 지나지 않았다.

 

 

 

 

 

 

 

 

 

 

 

 

1889년(명치 22년) 일본 왕이 천황의 신민에게 하사하는 형식으로 공포된 일본 제국주의 '명치 헌법'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일본 왕은 '신성불가침 존재'이며 '국가통치의 절대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제1조의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 천황이 통치한다.'를 비롯하여 천황의 신성(神聖) 침해 불가, 국가 통치, 입법권, 사법권, 의회 소집 및 해산, 일본군대 통수권, 전쟁 선포 등 일본 왕은 살아 있는 신(神) 자체로 절대적 존재이며,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갖는다.

 

제55조에는 일본 정부의 총리와 각료(각부 장관)는 일본 왕을 보필하고 책임만 지는 존재, 한 마디로 충견 노릇만 하면 된다고 규정했다.

 

 

 

일본 통치에서부터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리행사는 오직 일본 왕의 것이며, 일본 총리와 각료(각부 장관), 국회의원 등은 책임만 지는 존재가 된다. 명치 헌법은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고 1946년 폐기 된다.

 

 

 

 

 

 

 

 

 

 

 

 

일본의 제1대 총리(1, 5, 7, 10대)는 민족의 원흉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이며, 이후 일본이 패망하는 1945년 42대 스즈키 간타로 총리까지 역대 총리들을 살펴보면 군국주의 국가답게 일본군 장성 출신이 많았다.

 

 

일본 왕의 최측근 인물과 내각 각료(장관)와 제국의회 국회의원 출신 총리도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통감부 통감, 사이코 마코토, 아베 노부유키 등은 조선총독부 총독을 지낸 자들도 있다.

 

 

2대 일본 총리 구로다 기요다카 육군 중장 출신,

3대, 9대 일본 총리 야마가타 아리모토 육군 중장 출신,

11대, 13대, 15대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 육군 대장 출신,

16대, 22대 일본 총리 야마모토 곤노효에 해군 대장 출신, 

18대 일본 총리 데라우치 마사타케 육군 대장 출신,

21대 일본 총리 가토 도모사부로 해군 대장 출신,

26대 일본 총리 다나카 기이치 육군 대장 출신,

30대 일본 총리 사이토 마코토 해군 대장 출신,

31대 일본 총리 오카다 게이스케 해군 대장 출신,

33대 일본 총리 하야시 센주로 육군 대장 출신,

36대 일본 총리 아베 노부유키 육군 대장 출신,

37대 일본 총리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 대장 출신,

40대 일본 총리 도조 히데키 육군 중장 출신,

41대 일본 총리 고이소 구니아키 육군 대장 출신,

42대 일본 총리 스즈키 간타로해군 대장 출신로 일본이 패망할 때 내각 총리였다.

 

 

 

 

 

 

 

 

 

 

 

 

 

야스쿠니 신사는 1869년 설립한 이래 1945년 패망할 때까지 일본 왕을 비롯하여 일본 내각 총리와 각료(각부 장관), 국회의원, 공무원, 군인은 반드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해야 했고, 민간인 등도 일본인이라며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참배해야 할 신성한 곳이었다.

 

 

일본인들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통해 일본 왕에 대한 충성심을 다졌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왕을 위해 죽음도 불사한 일본 제국주의의 군국주의 상징이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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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06.17 1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스쿠니 참배 좀 그러하네요..

  2. 죽풍 2017.06.17 2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성불가침 존재와 국가 통치의 절대권을 보장하는 일본헌법이라니 어느시대를 사는지?
    잘 보고 갑니다. ^^

  3. 버블프라이스 2017.06.19 0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스쿠니 관련 몰랐던 역사정보를 잘 알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