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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대전환을 불러왔던 전염병과 현대 문명의 위기의 상징이 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신종 코로나19 해외유입 확진자와 <궁을가>를 지은 정북창과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인류의 미래의 대변국을 예고한 선견자(先見者) 용호대사 북창北窓 정염鄭磏(정북창)

"조국을 떠나지 마라!"

 

 

인류의 미래에 일어날 천지(天地)의 대변국과 사는 방법 등을 기록한 것이 정북창 선생이 지은 <궁을가>입니다.

북창 정염 선생은 미래의 후손들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절대 조국을 떠나지 말고 있어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매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고 경계했습니다.

 

정북창 선생은 동양의 노스트라다무스라고 불리는 격암 남사고 선생과 함께 예언적인 부분에서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류의 미래를 내다본 2대 예언가로 알려졌지만, 북창 정염 선생은 출중한 인물 중에서도 군계일학과 같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애고애고(哀苦哀苦) 저백성(這百姓)아 간단말이 어인일고

부노휴유(扶老携幼) 가지 마소 고국본토(古國本土) 다 버리고 어느 강산(江山) 가려느냐"

 

 

'코로나19' 사태는 남사고 선생과 북창 정염 선생이 말한 천지가 대변국은 아니지만, '조국을 떠나지 마라'라는 정북창 선생의 말씀은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가 유념해야 할 내용입니다. 현재 상황은 문명이 전환하는 것을 보여준 작은 서곡일 뿐이며, 현대 문명이 새로운 문명으로 대전환하려는 신호탄입니다.

 

 '코로나19' 사태는 대자연의 위엄(威嚴)과 인간과 문명의 한계와 준비와 대처, 그리고 앞으로 닥칠 천지 대변국 등을 인간에게 보여준 대사건이며 큰 징조인 것은 분명합니다.

 

 

 

 

 

 

 

 

 

 

입산(入山) 3일에 시지천하사(始知天下事) - 3일 만에 세상의 모든 일을 안 역사적인 인물 정북창(1506~1549)

 

500여 년 전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 조선의 충청도 온양(아산)에서 비운의 천재가 태어났습니다.

천지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정북창 선생의 출중한 자질과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정북창 선생이 얼마나 총명했는지 스승도 없이 혼자서 천문과 지리, 의약과 복서, 율려와 산수, 외국어 등 온갖 학문에 터득해 깨쳤다고 합니다. 인류 역사에서도 비교할 사람이 드물 정도로 뛰어났던 정북창 선생을 선도(仙道)의 도맥에서 '단학의 중시조'로 불리기도 하지만, 유불선(儒佛仙) 삼도(三道)의 근본과 이치를 꿰뚫은 인물입니다.

 

 

북창 정염 선생은 도가(道家)의 내단수련서인 <용호비결(북창비결)>과 인류의 미래 운명을 예고한 <궁을가>를 지었습니다. <궁을가>는 우주가 돌아가는 절대 법칙인 우주 변화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늘과 땅과 인간 세상이 개벽(開闢)하는 것과 우리나라가 새 문명을 열어가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비교할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던 정북창 선생이지만, 악한 일을 많이 한 집(적악가積惡家)의 자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을사사화를 일으킨 우의정 정순붕이 아버지였고 동생 정현은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행을 저지른 정북창 선생의 아버지와 동생을 욕했고, 효자였던 정북창 선생은 평생 아버지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갔습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다양한 이유로 조국을 떠나 외국에 사는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최근 2주간 '코로나19' 감염 경로가 국내 각 지자체 확진자 숫자보다 해외유입 확진자 수가 많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코로나19' 감염 경로 분석 결과는 지자체의 집단발병, 사업장 등의 사례보다 해외유입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약 35%로 해외유입 확진자는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중에서도 극소수인 교민과 유학생 등이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정인과 특정 세력은 '코로나19' 해외유입 확진자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자고 주장하지만, 만약 자기 부모 형제와 자식이 포함되어 있다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현재 다양한 이유로 조국을 떠나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재외국민과 외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는 약 1천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가 형상하게 된 시기는 근현대사입니다.

오래전부터 여러 이유로 조국을 떠났지만, 근현대사 들어 우리 국민이 한반도 떠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 흉년과 가뭄 등의 영향으로 먹고살기 위해 만주와 러시아 지역 일대로 이주한 것입니다.

 

 

20세기 들어 공식적인 이민의 첫 역사는 하와이입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전쟁고아 입양과 일반 이민과 취업 이민, 유학생과 기업의 해외 진출 등으로 우리나라를 떠나게 됐습니다.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약 2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입니다.

  

 

1990년대 들어서는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단행된 후 선진지식과 전문적인 학문을 배우면서 견문도 넓히는 해외 유학이 본격화되면서 세계 각지로 학생들이 유학을 떠났습니다. 해외 유학생으로 나가 외국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을 포함하여 현재 약 1천만 명의 재외국민과 재외동포가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지옥 같은 대한민국 '헬조선'이 아니라 천국 같은 대한민국 '헤븐조선' 조국을 떠나지 마라!

 

2014~2015년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헬조선'이란 조선(대한민국)과 지옥(hell)의 합성 신조어로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이 힘들고 희망도 없다며 모국을 비하하는 말입니다. 

 

 

'헬조선'은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불평등과 불합리, 무한경쟁으로 내몰린 현실 등 경제적, 사회적인 어두운 현실을 반영한 말이었습니다. '지옥 불의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 자조 섞인 젊은이들의 한탄을 특정 언론은 때를 놓치지 않고 대한민국을 떠나 이민을 할 사람이 많다는 식으로 추정적 보도를 앞다투어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언론과 특정 세력은 '헬조선'을 부추겼고 많지는 않지만, 실제 젊은이들이 해외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지난 1백여 년 동안 시대적 상황과 현실에서 자의든 타의든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조국을 떠나 현재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가 외국에 살고 있습니다.

 

  

 

 

 

 

  

 

극소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조국으로 들어오는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하늘과 땅과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을 안 역사적인 인물 정북창 선생은 <궁을가>에서 앞으로 천지 대변국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했고, 절대 조국을 떠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해외에 있던 우리 동포가 조국으로 귀국한 이래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극소수지만, 어느 때보다 많은 재외국민과 재외동포가 대한민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입출국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나라에 사는 재외국민과 재외동포는 귀국길이 막혀 들어올 수 없지만,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해외유입 확진자가 늘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로 들어오고 있는 사람 대부분이 해외에 거주하는 교민과 유학생 등 재외국민과 재외동포입니다.

 

 

 

 

 

 

 

 

정북창 선생이 <궁을가>에서 예고한 천지의 대변국은 '코로나19' 사태가 아닙니다. 천지 대변국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인류가 맞이할 미래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촌은 현재 기후변화, 핵무기 위협, 전염병 등 단 한 가지만으로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인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시스템이 모범적이라고 평가하는 것과 별개로 정북창 선생이 말한 '조국을 떠나지 마라'라는 경고는 천지 대변국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대한민국입니다.

 

 

현대 사회는 문명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위기의 시대이면서 천지의 질서가 바뀌면서 현대 문명이 대전환하는 시대입니다. 자본주의라는 체제 아래서 생존을 위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과 명예와 권력은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북창 선생의 경고처럼 천지의 대변국을 앞두고 절대 조국을 떠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외국에 있더라도 반드시 조국으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1천만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모두가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정북창 선생은 <궁을가>에서  천지 대변국을 극복하고 사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개벽이다>와 <생존의 비밀>을 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염병 병란(病亂)의 시대, 누가 살고, 누가 죽는가

<생존의 비밀> - 총9강 전체합본

 

 

 

 

 

 

 

 

 

중앙방역대책본부 - '코로나19' 국내 발생현황 바로가기

http://ncov.mohw.go.kr/bdBoardList_Real.do?brdId=1&brdGubun=11&ncvContSeq=&contSeq=&board_id=&gubun=

 

 

중앙방역대책본부 - '코로나19' 국외 발생현황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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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방역대책본부 - '코로나19' 시도별 발생동향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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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방역대책본부 - '코로나19' 확진환자 이동경로

http://ncov.mohw.go.kr/bdBoardList_Real.do?brdId=1&brdGubun=12&ncvContSeq=&contSeq=&board_id=&gubun=

 

 

'코로나19' 세계현황 실시간 바로가기

https://coronaboard.kr/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오래 살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생로병사라는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근 의학전문가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반드시 더욱 강력한 변종 바이러스가 창궐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금은 대잔연의 큰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

바야흐로 인류 문명이 생장(生長, 발전)과정을 끝맺고 성숙과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장차 하늘과 땅과 인간이 새로 태어난다!

 

크게 깨어져서 문명과 함깨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낙엽되어 사라지고 말 것인가!

<2009, 상생출판 생존의 비밀 中>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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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4.02 0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청결원 2020.04.02 0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3. kangdante 2020.04.02 0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류의 종말은
    바이러스로 부터 시작되는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도 여유로운 하루되세요.. ^^

  4. 모아모아모아 2020.04.02 1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5. 브리즈B 2020.04.02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ㅎㅎ
    헹복하세요~

  6. 딱조아 2020.04.02 1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익한 정보감사합니다

  7. Bella Luz 2020.04.07 1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행복하세요!

조선왕조 시대 3대 기인(奇人) -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염(정북창), 토정 이지함

 

 

 

 

 

 

 

 

 

 

 

 

 

 

 

기인(奇人)은 일반인과 함께 세상을 살지만, 말과 행동, 정신과 사상이 보통사람과 다른 사람을 일컫는다.

기인은 일반인보다 가진 재주가 신통하고 비범한 사람이라 하여 이인(異人)이라고도 말한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 세종 17~성종 24), 북창 정염(정북창, 1506~1549, 중종 1~명종 4), 토정 이지함(1517~1578, 중종 12~선조 11)을 조선왕조 시대 3대 기인이라 부른다.

 

 

 

 

 

 

 

 

 

 

 

 

 

 

조선왕조 시대 3대 기인, 비운의 천재 첫 번째 기인은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소문이 자자했던 매월당 김시습은 임금의 부름을 받고 5살에 궁궐에 들어간다.

어린 김시습이 쓴 글을 보고 세종대왕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왕조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 문인 매월당 김시습은 시, 소설, 평문 등 수많은 위대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조선왕조 최고의 사상가 매월당 김시습의 사상은 성리학(유교), 불교, 단학(도교) 등 다방면에 무불통지(無不通知)한 달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월당 김시습의 정신과 사상은 동양의 철학과 사상, 즉 유불선(유교 불교 도교)을 넘나드는 폭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이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세조)의 왕위찬탈에 비분강개한 매월당 김시습은 끓어오르는 울분을 절제하며 조선 팔도를 유랑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남기고 방랑으로 점철된 삶을 산다.

 

 

 

 

매월당 김시습은 옛글을 모방하여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 28자는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363~419)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징심록(澄心錄)에서 발췌했다고도 한다.

 

매월당 김시습은 박제상이 저술한 징심록과 박제상의 아들 백결선생 박문량이 저술한 금척지(金尺誌)를 보고 징심록 추기(澄心錄追記)를 썼다. 징심록의 한 부분이 부도지다.

 

 

 

 

 

조선 시대 3대 기인으로 꼽히는 매월당 김시습은 문학가이며 사상가요, 철학가이며 종교인이다.

조선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와 신귀설, 태극설, 화엄일승법계도주병서, 법화경별찬, 고금제왕국가흥말론, 위치필법삼대론 등을 비롯한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매월당 김시습의 사상과 철학이 담긴 여러 저서에는 인간의 마음, 우주의 이법, 귀신의 세계, 유불선 종교 철학, 도덕과 가치관, 국가와 사회와 가정의 질서, 성인과 임금과 신하 등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것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조선왕조 시대 3대 기인, 비운의 천재 두 번쨰는 북창 정염(정북창(1506~1549)이다.

 

재위 8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승하한 조선 12대 왕 인종은 북창 정염(정북창)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다.

조선 11대 왕 중종 때 개혁정치를 했던 정암 조광조는 동소문(혜화문) 밖에서 가죽신을 만드는 갖바치를 자주 찾아가서 학문적 고견을 들었다.

 

 

조광조와 갖바치는 양반과 천민이라는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터놓은 벗이었으며, 조광조에게 갖바치는 정신적 지주였다.

조광조는 갖바치를 왕세자(인종)에게 후일에 반드시 크게 써 줄 것을 건의하였다. 그래서 인종은 세자시절부터 병풍 위에 영의정 갖바치, 좌의정 서경덕, 우의정 정북창 등 삼정승의 이름을 써놓고 있었다.

 

 

 

 

 

북창 정염(정북창)의 아버지 정순붕은 조선 13대 왕 명종이 즉위한 해에 일어난 을사사화(1545년)에서 윤원형 등 소윤 세력과 결탁하여 윤임 등 대윤 세력을 숙청하는 일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용호대사로도 불리는 정북창(정염)은 조선왕조 시대 도교의 내단 사상, 즉 단학의 중시조 또는 비조로 모셔지고 있다.

 

북창 정염(정북창)은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달랐다. 

따로 스승을 모시고 공부하지 않았으며, 책을 한두 번 보면 모두 외웠고, 천문, 지리, 의약, 복서, 율려, 산수, 한어(漢語)와 배우지 않은 외국어도 능통했다. 맑은 영혼으로 신(神)에 통했으며, 선가(禪家, 불교)의 육통법을 시험하기 위해 입산 3일 만에 유불선(유교 불교 도교)에 정통하였다.

 

 

 

 

정북창은 애초에 관직에 뜻이 없었으나 아버지 정순붕의 강압적인 권유로 과거(사마시)에 응시하여 잠시 관직에 있었다. 

문정왕후와 윤원형 소윤 세력은 명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고 부정부패와 매관매직 등 권력을 전횡한다.

 

아버지 정순붕 역시 소윤의 윤원형 일파에 협조하여 대윤 등 사림세력을 죽이는데 앞장선 공로로 우의정까지 올랐다. 

북창 정염(정북창)은 불의한 세상의 모습을 보고 속세연을 끊는다.

 

 

 

산속에 은거하면서 한양 쪽은 보지도 않기 위해 문과 창문을 모두 북쪽으로 내어 살았다.

정염의 호가 북창(北窓)이 된 바로 이 때문이다.

도교(단학)의 신선술 수련서인 『용호비결(북창비결)』을 저술하였고, 미래의 예언을 담은 『궁을가』를 썼다.

 

 

 

미수 허목(허미수)은 정북창을 "정염(정북창)은 남과 더불어 말할 때는 단 한마디라도 공자의 학문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니, 이미 그 깨달음은 중(선禪)과 같고, 그 행적은 노자와 같았으나,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한결같이 성인으로 종(宗)을 삼아서였을 것이다."라고 평하였다. 

 

 

 

 

 

 

 

 

 

 

 

 

 

 

조선왕조 시대 3대 기인으로 비운의 천재 세 번째는 토정(土亭) 이지함(1517~1578)이다.

 

토정 이지함은 목은 이색의 7대손으로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이개는 종증조부(증조할아버지의 형제)가 된다.

새해 초가 되면 사람들은 한 해 운수를 토정비결을 보면서 길흉화복을 알아본다.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서 공부한 토정 이지함은 성리학(주자학)을 비롯하여 주역(역학), 천문, 지리, 산술, 노장사상(도교), 불경, 의약, 복서 등 다양한 학문에 통달한 박학다식한 천재였으며, 뛰어난 재주를 겸비한 기인이었다.

 

 

 

 

 

명문 집안 양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종증조부 이개는 단종복위운동에 연류되어 멸문지화를 당했고, 아버지 이치도 갑자사화에 연류되어 유배되었고, 명종 때 당시 사관이었던 친구 안명세는 문정왕후와 윤원형 일파를 비판하는 글을 써놓아 참형을 당했다.

 

처가집은 조선 2대 왕 정종의 후손이었으나, 역모에 연류되어 장인이 능지처참을 당하면서 처가도 몰락한다.

평탄하지 않은 인생사에 토정 이지함은 조선 팔도를 유랑하며 솥으로 된 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고 남루한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토정 이지함이 벼슬길에 나선 것은 그가 57세 되던 1573년(선조 6)에 이르러서다.

선비로서 학식과 인품이 뛰어난 토정 이지함은 주변의 천거로 포천현감으로 발령받는다.

 

포천 현감으로 부임하자 산해진미를 차려 놓은 밥상을 보고, 백성이 먹는 평범한 밥상을 차려 올리라고 하였다.

한양 마포 나루 인근에서 흙담 움막집에서 지냈다 하여 토정(土亭)이란 호가 붙었다.

 

 

 

 

 

조선 팔도를 방랑할 때 소금을 만들어 팔고, 물고기를 잡아 팔고, 바가지를 만들어 파는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직접 실험해 보았던 염업과 수산업, 수공업 등으로 백성을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을 조정에 건의하기도 했다.

충청도 아산현감으로 있을 때 세계 최초의 사회복지기관인 걸인청을 만들어 빈민구제에도 힘썼다.

 

 

 

 

토정 이지함의 고손자 이정익은 고조부의 유고를 모아 토정유고를 간행했다.

당대 최고의 선비(학자)였던 율곡 이이와 남명 조식 등 많은 학자와 교류하였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이며 기인이었다.

 

임진왜란 의병장이며 학자인 조헌과 천민출신의 대학자 서기, 대학자 구봉 송익필(송구봉) 등도 토정 이지함에게 큰 영향을 받았으며, 조카 이산해는 숙부인 이지함에게 학문을 배워 영의정에까지 오른다.

 

 

 

 

격변의 시기에 헐벗고 굶주린 백성을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제시한 토정 이지함은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현실에 적용한 시대를 앞서 간 실학사상의 선구자이며 실천가로 세계 최초의 국부론 주창자라고도 한다. 

 

토정비결은 토정 이지함 사후 3백 년이 지나 일반백성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토정비결이 토정 이지함이 저술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다.

 

 

 

 

 

조선 시대 3대 기인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염(정북창), 토정 이지함이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그들의 뛰어난 학문세계는 유학에 국한되지 않고, 유교 불교 도교를 넘나드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과 문정왕후와 윤원형 일파가 권력을 전횡하며 국정을 농단하던 불운한 시대에 태어나 한평생 세상을 등진 그들은 타고난 재주와 학문을 미처 세상에 펴보지도 못한 비운의 천재들이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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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6.11.08 06: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 3대 기인의 대해 잘 보고 가네요

용호대사 정북창의 예언서 궁을가와 헬조선과 탈조선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가 만든 인터넷 신조어 헬조선과 탈조선

 

 

눈만 뜨면 대한민국 정치, 종교, 경제, 회 등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모습을 보고 지옥(hell) 같은 대한민국(조선)이라 하여 '헬조선'이란 인터넷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헬조선'은 본래 특정사이트에서 편향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가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너무 살기 어려울 정도의 지옥과 같아 희망을 찾아볼 수 없다는 의미와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관을 옹호하고 일제의 영향으로 조선이 근대화됐다는 논리로 자조 섞인 자기 비하의 표현으로 처음에는 '헬조센'이란 말로 사용되다가 '헬조선'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의 특정 세력, 특정 단체, 특정 집단을 제외한 흙수저로 대변되는 무너진 중산층과 서민층의 상당수 이 시대 젊은이들은 미래를 꿈꿀 수조차 없이 3포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로 내몰리고 있다.

 

부와 권력의 대물림, 사회 양극화 심화 등은 대한민국의 청년세대가 사회에 대한 분노와 좌절, 절망의 슬픈 자화상이 '헬조선'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지옥과 같다는 '헬조선'의 시대상황은 결국 '헬조선'이 싫어서 대한민국을 떠나야 한다는 '탈조선'을 꿈꾸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현실은 '탈조선'조차도 권력을 쥔 부모와 부(富)를 세습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에게만 해당할 뿐 흙수저로 대변되는 사람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입산(入山) 3일 만에 천하의 모든 일을 알았다는 조선 시대 대학자이며 대도인(大道人) 용호대사 정북창은 미래의 예언서 궁을가(弓乙歌)에서 후세 사람들에게 조국을 떠나지 말 것을 말하고 있다.

 

 

 

조국을 떠나지 마라.

 

 

애고 애고 저 백성아

간단 말이 어인 말고...

 

고국 본토 다 버리고

어느 강산 가려는가...

 

가고 가는 저 백성아

일가친척 어이할꼬

차시구복(此時九覆) 불원하니

천하태평(天下泰平) 절로 된다.

부모 처자 다 버리고

길지(吉地) 찾는 저 백성아

자고(自古) 창생 피난하여

기만 명이 살았던가...

 

일편수신(一片修身) 아니하고

가고 가면 살아날까...

 

 

 

우리 사회가 비록 헬조선의 현실이라 할지라도 탈조선은 하지 말 것을 500백 년 전 용호대사 정북창은 미래를 열어갈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조선강산 명산이라...

 

사명당(四明堂)이 갱생하니 승평시대(乘平時代) 불원이라…

 

창생 도탄 없어진다. 포덕포화(布德布化)하는 때라…

 

대성지화(大聖之化) 돌아오니 궁을(弓乙) 노래 불러보자.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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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라준 2016.06.26 07: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 여기를 떠나는 것이 해법이 아니라, 어떻게든 좀 더 좋게 개선을 해야겠죠.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2. 죽풍 2016.06.26 1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헬조선이 탈조선으로 이어지네요.
    잘 보고 갑니다. ^^

  3. ☆Unlimited☆ 2016.06.26 18: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입산(入山) 3일(三日)에 시지천하사(始知天下事)

용호대사 북창 정렴(정북창)의 용호비결(북창비결)궁을가(弓乙歌)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며 대도인(大道人) 북창 정렴(1506~1549), 용호대사 정북창은 지금의 충청남도 온양(아산) 사람이다.

현재의 아산 외암민속마을 바로 뒤쪽에 있는 설화산(雪華山)에 들어간 지 불과 3일 만에 유불선(儒佛仙)에 정통하였다 한다.

 

 

 

 

 

전설의 역사를 만든 천하의 귀재(鬼才) 용호대사(龍虎大師) 정북창

 

 

북창 정렴은 생이지지(生而知之), 즉 배우지 않고도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알았다고 전하나 그건 정북창이 타고난 능력과 재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

 

정북창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적(靈的)으로 뛰어났으며, 총명함과 뛰어난 자질로 자신이 갖춘 능력과 재주를 십분발휘하여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안 무불통지(無不通知)한 천재이며 대학자요 대도인(大道人)이었다.

 

 

 

용호대사 정북창은 도(道)를 닦으러 산에 들어간 지 불과 3일 만에 천하의 모든 일을 알게 됐다고 전한다.

선가(禪家, 불교)의 육통법(六通法)을 시험해 보기 위해 사흘 동안 정관(靜觀) 하더니, 이로부터 배우지 않고 저절로 통하여 천 리 밖의 일도 생각만 일으키면 훤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정북창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주를 바탕으로 천문, 지리, 음률, 수학, 한문, 복서, 의약과 외국어 등에도 능통했으며 귀신과 짐승의 소리도 알아들었다고 한다.

 

 

 

 

 

 

 

 

 

 

 

 

선가(仙家)의 수련서 용호비결과 미래 예언서 궁을가

 

 

 

용호대사 북창 정렴은 조선 시대 도가(道家, 도교) 내단(內丹) 사상, 즉 단학(丹學)의 중시조(中始祖) 또는 비조(鼻祖)로 평가받고 있다. 토정 이지함과 매월당 김시습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奇人)으로 불린다.

 

 

현재도 선가(仙家, 도교, 단학)에서는 필독서로 정북창이 저술한 최고의 신선술(神仙術) 수련서 용호비결(북창비결)과 미래 예언서 궁을가(弓乙歌)가 전한다. 궁을가(弓乙歌)는 천지의 운행 원리를 바탕으로 4·4조로 된 장편가사이며 4음보 1행으로 총 341행의 예언서이다.

 

 

 

 

음악과 무용의 담당 청이었던 장악원(掌樂院) 주부, 천문·지리·책력의 담당 청이었던 관상감(觀象監)과 의약과 치료 담당 청이었던 혜민서(惠民署)의 교수를 겸직할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중종이 위독했을 때는 내의원에서 천하의 명의라고 천거할 정도였고, 인종이 위독했을 때도 직접 진찰할 정도였다.

 

 

성군(聖君)의 자질을 갖추었으나 재위 9개월 만에 붕어한 인종은 세자시절부터 공부방 병풍에 '우의정 정북창'이라 써놓고 조선을 이끌어갈 정승으로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암 송시열과 예송 논쟁으로 유명한 대학자 미수 허목 선생은 미수 기언(眉叟記言)에서 정북창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정렴은 남과 더불어 말할 때에는 단 한마디라도 공자(孔子)의 학문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니, 이미 그 깨달음은 중(선禪)과 같고, 그 행적은 노자(老子)와 같았으나,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한결같이 성인(聖人)으로 종(宗)를 삼아서였을 것이다."

 

 

 

 

자신의 수명을 친구에게 떼어주고 44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대학자, 대도인(大道人) 용호대사 북창 정렴

정북창은 죽음에 이르러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위로하는 만사(挽詞, 죽은 사람을 위해 쓴 글), 자만(自挽) 시(詩)를 남긴다.

 

 

일생독파만권서(一生讀破萬卷書) 일생 만 권의 책을 독파하고

일일음진천종주(一日飮盡天鍾酒) 하루에 천 잔 술을 마시었네.

 

고담복희이상사(高談伏羲以上事) 복희씨(伏羲氏, 5600년 전) 이전 일을 고고하게 담론하고

속설왕래불괘구(俗說往來不掛口) 속설은 입에도 담지 않았네.

 

안자삼십칭아성(顔子三十稱亞聖) 안자(顔子)는 삼십을 살아도 아성(亞聖)이라 불리었는데,

선생지수하기구(先生之壽何其久) 선생의 나이는 어찌 그리 길더뇨?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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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6.06.25 06: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보고 가네요~

  2. 유라준 2016.06.25 0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슈나우저 2016.06.25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렵지만 좋은 내용이네요 ^ ^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닷!

  4. 훈잉 2016.06.25 1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오늘 625네요 ㅎㅎ..
    글 잘보고갑니다 즐거운하루보내세요~

  5. 죽풍 2016.06.26 1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몰랐던 정북창에 대해 알아 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