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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투쟁기(일제강점기) 독립운동자금의 산실 보천교와 본전 십일전(十一殿)

조계종 조계사 대웅전과 대통령 관저 청와대 명칭 유래 및 증산도와 보천교

















서력 1929년 현재의 전라북도 정읍시 대흥리 인근 2만여 평의 부지 위에 당시 화폐로 백 수십만 원을 들여 십일전(十一殿)을 비롯한 사십여 채의 건물과 열 채의 부속 건물을 지었습니다. 보천교의 사십여 채 건물은 전형적인 궁궐 배치를 따랐습니다. 보천교(증산도의 전신)의 본전인 십일전은 경복궁 근정전의 두 배가 될 정도로 컸고 지붕에는 황금색 기와를 올리던 중 일제에 반발 때문에 청색 기와를 올립니다. 청기와 역시 중국 황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나라도 고려와 조선 시대 때 궁궐 일부 건물에서 청기와를 사용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는 항일투쟁기(일제강점기)였던 1915년 8월 16일 조선총독부령 제83호 '포교 규칙'을 공포합니다. '포교 규칙 제1조 본령에서 종교라 칭함은 신도(神道, 일본), 불도(佛道) 및 기독교를 이른다.'라고 하여 일본의 신도, 기독교, 불교 외에는 모두 종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자금의 산실이었던 보천교는 1919년 당시 간부만 557,700명에 달하고 우리 민족의 3분의 1, 약 700만 명이 신앙했던 단체로 일제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1936년 소위 '유사종교 해산령'을 내리면서 보천교를 강제로 해산시켰고, 항일투쟁기 독립운동자금의 산실이었던 보천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증산도의 전신인 보천교 건물은 일본인에게 경매되어 철거되었습니다. 이때 보천교 십일전은 불과 500원에 낙찰되었고, 십일전의 청색 기와는 조선총독부 관저의 기와가 되었습니다. 이후 일부는 정읍 내장사 대웅전, 보천교 본전 십일전은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본산인 조계사 대웅전이 되었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본산으로 서울 종로구에 있는 조계사는 서력 1910년 각황사에서 1938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고, 이때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를 이전하는 형식으로 절 이름을 태고사라고 했습니다. 경매로 해체된 보천교 십일전 자재는 1938년 대한불교 조계종으로 넘어갔고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이 되었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은 일반적인 불교 양식의 건물이 아니라 경복궁 근정전과 같은 궁궐 양식입니다. 조계사 대웅전은 서력 2000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 내에 있는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서력 636년) 영은 조사에 의해 창건됐습니다. 내장사는 1,30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거듭했습니다. 정읍 보천교 본소의 정문이었던 보화문을 해체 후 매각되었는데 이를 사들여 1938년 현재의 위치에 내장사 대웅전이 지어졌습니다. 1951년 전쟁통에 불타고 1958년 중건된 후 2012년 10월 31일  내장산에 있는 내장사 대웅전에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이 전소됐습니다. 




증산도의 전신인 보천교 본전의 십일전 기와는 당시 조선 총독의 관전 기와로 올라갔습니다. 1990년 2월 20일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 청와대 신축공사를 할 때 '천하제일길지(天下第一福地)'라는 표석이 발견되었습니다. 조선왕조에서 처음 도읍으로 정한 한양 도성, 5백여 년 동안 길지였을지 모르겠지만, 국권을 빼앗기고 초선총독부 청사에 가려지고, 통독 관저와 미군정 장관 관저, 역대 대통령 등이 비참한 말로를 겪은 터로 흉지(凶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인 청와대 명칭 유래는 본래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한 후 경복궁 뒤쪽 언덕에 '무예를 구경하는 대'라는 명칭의 경무대(景武臺)가 시작입니다.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했고 1906년 남산 왜성대에 조선 통감부를 설치했고,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성을 쌓았다는 남산 왜성대에 있던 일본공사관 자리는 통감 관저가 되었습니다. 조선 통감부는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은 이후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했습니다. 서울 용산에 주둔했던 일본군 사령관의 관저도 제2의 조선 총독 관저로 사용된 적이 있었습니다.




1906년 서울 남산에 있던 조선통감부는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강제 병합한 후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일대를 철거한 후 192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완공하면서 옮겨갔습니다. 남산 왜성대 통감 관저는 1939년까지 통감과 총독의 관저로 사용되었고, 1939년 경복궁 뒤편의 경무대 자리에 조선총독부 관저를 신축하면서 정읍 보천교 십일전의 청기와를 가져다 올렸습니다. 청와대 명칭의 유래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해방 후 조선총독부 관저는 미군정 장관의 관사로 사용되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대통령 관저는 옛 이름인 경무대로 불리게 됩니다. 19세기 말부터 경무대로 불리기 시작한 현재의 청와대 자리는 항일투쟁기(일제강점기)를 제외하고 1960년 4. 19혁명까지 경무대로 불렸습니다. 1960년 12월 30일 윤보선 대통령은 그동안 경무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는 의미에서 경무대라는 명칭을 버립니다. 미국 대통령 관저를 백악관과 비견될 수 있다는 윤보선 대통령의 의견에 따라 청색 기와를 덮은 집이란 의미의 청와대 명칭이 1961년부터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STB 스페셜 <대한독립의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 1부>








STB 스페셜 <대한독립의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 2부>







STB 스페셜 <대한독립의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 3부>
















<보천교 학술대회 실황녹화 1부>










<보천교 학술대회 실황녹화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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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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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20.12.02 05: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날 되세요.
    잘 보고가요

  2. kangdante 2020.12.02 0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천교에 대한 이야기가 감동적이고 흥미롭네요
    잘 보고 갑니다.. ^^

  3. 일억이 2020.12.02 15: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글도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4. 가족바라기 2020.12.02 1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말씀 잘보고 갑니다

  5. dowra 2020.12.03 0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네요
    흥미롭게 보고 갑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해체된 보천교(普天敎) 십일전(十一殿)과

한국불교의 중심지로 성지가 된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

 

 

 

 

 

 

 

 

 

 

 

 

증산도 서울 지역 최ㅇㅇ 도생(道生) - 보천교 십일전과 근대불교의 성지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

 

서울 도심에는 대형사찰이 두 곳 있습니다.

강남의 삼성동에는 천년고 봉은사가 있고, 종로에는 우리나라 불교를 대표하는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가 있습니다.

 

 

제가 조계사를 다닌 이유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본산이었기 때문은 아니고 저의 집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가 지근거리에 있어 20년 넘게 다니며 불교 신앙을 했고 수시로 조계사에 가서 불공을 드렸습니다.

 

 

제가 일심으로 봉사하고 기도한 불교도는 아니었지만, 특정일에만 사찰을 찾고 개인의 복만 바라는 기복 신앙인도 아니었습니다.

평일에도 조계사에 가서 기도하고 법회도 자주 참석하여 불교 공부를 나름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제가 증산도 신앙을 하기 전에도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와 대웅전에 대한 역사는 대충 알고 있었습니다.

서울 조계사는 우리나라 불교 사찰을 대표하는 대한불교본산입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본산 서울 조계사의 역사는 불과 백 년 남짓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제강점이 시작된 1910년 일본식 건물의 각황사는 중동학교 인근에 있었는데 현재의 조계사 자리로 옮겨왔고, 1938년 당시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가 황사로 이전하면서 조선불교 총본산의 모태로서 태고사가 되었습니다. 

 

 

 

 

 

 

 

 

 

 

일제는 1911년 사찰령을 공포하여 전국을 30본사 체제로 편성했고, 1924년에 이르러 사찰령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조선불교 31본사 체제가 되었습니다. 조선불교 본사 주지는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고 임명되었습니다.

 

 

당시 조선불교는 내적으로 통일기관으로 조선불교선교양종 중앙교무원으로 운영했지만, 조선총독부가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인 통합기관으로서 위상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937년 조선 총독이 전국 31본 주지에게 조선불교진흥책 자문안 제출을 요구했고, 1941년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이른바 조선불교 조계종 총본산 태고사법을 제정하여 태고사가 조선불교의 총본산이 되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기 이전부터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려는 음모를 꾸며왔고, 강제병합 이후에는 무단통치, 문화통치, 민족말살 통치 정책을 펼치며 모든 것을 통제했습니다.  

 

 

그래서 좋든 싫든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와 대웅전은 일본 제국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조선총독부의 철저한 통제 속에 있었습니다. 또 보천교 십일전과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 역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1937년 일제는 당시 600만 명이 넘는 신도가 신앙했고 독립운동의 메카였던 보천교를 강제 해산시켰고, 경복궁 근정전보다 훨씬 큰 보천교 십일전을 해체하여 경매에 부쳤는데, 십일전 건립에 들어간 비용의 백분의 일도 안되는 가격에 팔려 현재의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으로 복원됩니다.

 

 

 

 

 

 

 

 

 

 

1938년 태고사의 대웅전, 현 조계사 대웅전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이었던 전라북도 정읍의 보천교 십일전을 뜯어다 새로 지은 건물이며 1954년 불교정화운동을 거쳐 오늘의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의 창살 문양은 다른 사찰의 문양과 다릅니다.

보천교 십일전을 해체한 것을 그대로 가져와 조계사 대웅전을 짓다 보니 창살도 보천교 십일전의 것을 그대로 복원 사용하다 일반 사찰과 창살 문양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가 상제님 진리를 만난 것은 지방에 있는 아들한테 갔다가 우연히 상생방송을 시청하면서부터입니다.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의 대도大道 말씀>을 시청하면서 "대우주 천체권 내의 만유의 생명체라 하는 것은 우주 변화의 법칙에 의해서 생성(生成)을 한다. 생(生)이라는 것은 날생 자, 생겨나는 것이고 성(成)이라 하는 것은 매듭을 짓는 거, 알캥이 열매 결실 성숙을 한다는 말이다."라는 말씀에 큰 감명과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의 대도 말씀>을 시청하면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금방 지나갔습니다.

상생방송 프로그램 편성표를 확인하고 다음 날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의 대도 말씀>을 다시 시청했습니다.

 

첫날 볼 때는 처음 듣는 말도 있어서 난해한 부분도 있었는데, 두 번째 시청하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됐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증산도 상생방송의 <환단고기 북콘서트>, <천지성공>, <천지의 도 춘생추살>, <생존의 비밀> 등 여러 프로그램도 계속 시청했습니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변화 등에 대해 학교 때 배운 기본지식과 종교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인간과 문명과 대자연이 모두 우주 변화의 법칙에 따라 돌아가고 있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진짜 진리를 찾았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습니다. 기성종교의 성자를 내려보내신 미륵존불이시며 우주의 통치자이신 증산상제님께서 참하나님임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도장을 방문하여 증산도 진리 서적을 구매하고 태을주 수행을 배워 집에서도 청수를 모시고 태을주 수행을 했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이 보천교 십일전을 해체하여 복원한 것은 알고 있었는데, 보천교가 증산도의 전신(前身)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진리 공부를 하면 수록 진리를 너무 늦게 만난 것이 아쉬웠습니다.

참하나님의 참진리를 만난 것에 깊이 감사 올리며 일심 정성을 다하는 구도자가 되겠습니다.

보은(報恩)!

 

 

 

 

 

 

 

 

 

 

 

증산도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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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신앙 상담 문의: 1577 - 1691

 

 

 

증산도 STB 상생방송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stb.co.kr/

 

 

※ 천지인(天地人) 삼계 우주를 다스리시며 인간으로 강세하신 우주의 통치자 아버지 하나님 증산상제님과 어머니 하나님 태모 고수부님을 신앙하는 국내외 증산도 도생(道生)들이 증산도를 만나는 과정의 입도(入道) 수기를 짧게 편집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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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8.12.05 06: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증산도에 대해 알고갑니다^^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옷 따뜻하게 챙겨입으시고 건강관리 잘 하시길 바래요

  2. kangdante 2018.12.05 08: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의 만행은
    두고두고 지난 역사를 기억하게 합니다
    오늘도 따듯한 하루되세요.. ^^

  3. 죽풍 2018.12.05 2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불교조계종 총 본산인 조계사가 어떻게 지어졌는지 상세하게 알았습니다.
    오늘 좋은 내용 잘 공부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