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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환단고기 북콘서트> - 한국사 왜곡의 현주소 13대 핵심: 환단고기 한국사의 진실을 밝히다. 

한국 왜곡 날조한 희대의 기형아 유사역사학의 심장부,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비판

 

 

 

 

 

 

 

 

 

 

 

 

 

 

로경찰서는 일제강점기 일본을 비판하거나 독립운동한 애국지사를 체포하여 가장 잔혹하게 고문을 자행하고 탄압한 악명이 높았던 곳입니다. 일제감점기 종로경찰서 못지않게 악명을 떨친 곳으로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서대문형무소입니다.

 

 

경복궁의 근정전 바로 앞에 일제의 식민통치 사령탑이며 심장부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운 후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허물어버렸습니다. 대한제국의 권위를 짓밟고 철저하게 파괴한 일제 조선총독부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뿌리째 없애버리고 유사역사학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일제의 한국사 왜 조작은 메이지(명치)유신을 전후하여 시작됐지만, 1910년 8월 29일 무력을 앞세워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주의는 불과 3개월도 안 지난 1910년 11월부터 1912년 12월까지 총 51종 약 20여만 권의 책을 압수하고 소각해버렸습니다. 

 

 

 

 

 

 

 

 

 

 

 

식민통치의 심장부인 일제 조선총독부 산에는 중앙과 지방 행정기구, 사법과 치안, 교육과 중추원과 같은 자문기구 등이 있었지만, 치안을 담당하던 경무총감부는 헌병사령관이 겸임하면서 조선 전체를 총괄했기 때문에 헌병(일본군)과 보통경찰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는 보통경찰과 일본 헌병, 그리고 악질 친일파를 앞세워 종로경찰서와 서대문형무소에서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애국지사와 일제의 식민지배를 비판하는 민간인을 체포해 탄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한민족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유사역사학이라는 희대의 기형아를 만들어 냈습니다. 

 

 

조선통감부는 한일병탄 이전부터 식민지배 후 행정 편의와 법을 제정 등을 위해 기초자료로 이용하고자 전국적 규모의 관습조사를 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국권을 침탈한 일제는 조선총독부 산하 취조국에서 '조선 구관 제도조사' 사업을 시작합니다.

일본인 역사학자들이 우리나라의 생활과 의식, 관습 등의 조사에 참여했고, 1912년 4월 조선총독부 관제가 개정되면서 참사관으로 넘어갔습니다.

 

 

 

 

 

 

 

 

 

 

 

191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의 저서 <한국통사>가 중국 상해에서 출판된 후 한국사 왜곡 조작에 본격적으로 돌입합니다. 1916년 1월 일제 조선총독부 산하 중추원에 소위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를 만들었고, 1922년 12월 조선총독부 직할의 '조선사편찬위원회'로 개편됩니다.

 

 

서력 1925년 6월 6일왕 칙령 제218호가 공포되고 '조선사편수회 관제'에 따라 조선총독부 총독의 직할 기관으로 승격됩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와 정신문화를 왜곡 말살한 희대의 기형아인 식민사학을 만들어 일제가 우리나라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론인 유사역사학을 만들었습니다.

 

 

유사역사학의 심장부인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는 일왕의 칙령으로 만든 조선 총독의 직할 기관입니다.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관변역사학자가 대거 참여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 결과 동서양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희대의 기형아인 유사역사학이 탄생하게 됩니다.

 

 

 

 

 

 

 

 

 

 

 

1938년 세상에 나온 <조선사 35권>은 일본 왕과 조선 총독, 그리고 일본 관변사학자들이 총력을 기울여 만들었습니다.

유사역사학의 심장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한 <조선사 35권>은 일제 식민사학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에 바이블과 같지만, 한국인에게는 거짓과 오욕으로 점철된 유사역사학의 교본입니다.

 

 

<삼국유사>의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조작한 유사역사학의 거두 이마니시 류(금서룡)와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이마니시 류로부터 유사역사학을 전수받아 한국 역사에 유사역사학의 바이러스를 심어 놓은 이병도는 유사역사학을 탄생시킨 대표적인 장본인으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이마니시 류가 실존한 환국의 환인과 배달국의 환웅과 옛 조선의 단군왕검의 국가 성립사를 부정하여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들의 신화로 바꾼 유사역사학 때문에 우리는 뿌리역사를 송두리째 잃어버렸습니다. 이병도의 후학이 장악한 대한민국 역사학계는 아직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하수인이 되어 우리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부정하면서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창원 환단고기 북콘서트> - 환단고기 한국사의 진실을 밝히다. 

한국사를 왜곡 날조한 희대의 기형아 유사역사학의 심장부,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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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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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_soyeon 2020.05.02 0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자료 잘 보고갑니다 ㅎㅎ

  2. *저녁노을* 2020.05.02 06: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3. 청결원 2020.05.02 0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연휴 주말 보내시고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4. 계리직 2020.05.02 07: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몰랐던거 많이 알고 갑니다
    정성스런 글 잘 보고 갑니다.~

  5. kangdante 2020.05.02 0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사의 왜곡은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6. 병구씨 2020.05.02 1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ㅎㅎ

  7. JOHN TV 2020.05.02 1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주말에 잘보내시고
    자주 소통해요~^^
    공감하고 가요~

  8. 모아모아모아 2020.05.02 14: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보고
    공감하고 갑니다.
    이제 완전 여름이네요
    행복한 주말되세요 ~~^^

  9. 맹모 일기 2020.05.02 2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느끼는건데 살면서 우리가 몰랐던 진실들이 너무 많은것 같아요

<국회 환단고기 북콘서트> - 2부 대한, 도道로써 세상을 다스리다.

대한大韓의 역사를 조작한 심장부,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와 유사역사학 비판

 

 

 

 

 

 

 

 

 

 

 

 

 

숭례문은 한양 도성을 출입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동서남북 네 개의 문 중 남쪽에 위치한 성문이며 흥인지문은 동쪽에 위치한 성문입니다. 2008년 2월 10일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되었습니다.

 

숭례문(남대문)은 화재가 발생하기 이전과 이후에도 과연 국보 1호로서 자격이 있는지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1호, 2호, 3호라는 서열화를 떠나서 국보 1호와 보물 1호라는 상징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일제 잔재를 하루빨리 없애거나 수정해야 합니다.

 

 

 

흥인지문과 숭례문, 돈의문과 숙정문(홍지문, 숙청문)의 사대문(四大門)과 홍화문과 광희문, 소덕문과 창의문의 사소문(四小門)은 조선 창업의 일등공신 삼봉 정도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조선의 새 도읍으로 정한 후 만든 한양 도성의 4개 대문과 4개 소문에 붙인 이름입니다.

 

500여 년의 조선 역사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사대문과 사소문은 일본 제국주의가 한양을 현대적인 도시로 완전히 개조한다는 근대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이미 기능을 상실한 문을 제외하고 도심에 있던 문을 철거하려 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도시계획이라는 미명아래 철거계획을 수립했지만,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은 임진왜란 당시의 승전기념물이라는 이유로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도시계획을 강행하면서도 두 대문을 남겨 놓은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한양에 최초로 입성한 가토 기요마사가 숭례문(남대문)을 통과했고, 흥인지문(동대문)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한양 입성 당시 통과한 문이라는 것입니다.

 

1926년 일제 조선총독부가 대한제국의 황제가 집무를 보는 경복궁 근정전 바로 앞 광화문을 부수고 조선총독부를 세웠습니다.

1934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 관보 고시를 통해 지정문화재에 멋대로 번호를 부여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는 흥인지문(남대문)을 보물 1호로 지정했고, 흥인지문(동대문)을 보물 2호로 지정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지정한 보물은 1955년 국보로 승격되었고, 문화재보호법이 만들어진 1962년 숭례문(남대문)은 국보 1호, 흥인지문(동대문)은 보물 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보 1호와 보물 1호는 일제 조선총독부가 일방적으로 지정한 보물 1호와 2호인데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근거도 없이 국보와 보물로 지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국보 1호와 보물 1호는 일제 잔재로 조선총독부가 만든 것을 그대로 인정한 꼴입니다.

 

 

 

 

 

 

 

 

 

 

일제 조선총독부는 민족말살정책을 실행하면서 1936년 일본의 신도(神道)와 외래종교를 제외한 우리 민족의 정신을 하나로 묶고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민족종교를 유사종교, 사교와 사이비종교 등으로 매도하는 소위 '유사종교 해산령'을 내렸습니다.

 

식민통치 제1의 심장부 일제 조선총독부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하고 민족의 정기를 완전하게 끊어버린 제2의 심장부가 조선사편수회입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는 일본 왕의 칙령으로 만들어진 총독 직할의 독립관청입니다.

 

 

 

1936년 일제 조선총독부가 우리 고유의 문화를 소위 유사종교 정책을 실행하면서 외적으로 우리 민족을 탄압하고 흩어놓았으며, 1938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는 우리의 역사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왜곡 조작한 <조선사 35권>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무력을 앞세워 우리 민족을 탄압했지만, 조선사편수회는 우리의 근본뿌리인 역사와 정신문화를 조작 말살한 일제 식민사학 이론을 만든 유사역사학의 본거지로 현재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의 뿌리가 됩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는 내로라하는 일제의 관변사학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고,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의 뿌리이며 일제 식민사학 탄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이병도와 신석호 등이 맹활약하며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한 유사역사학을 만들어 냈습니다.

 

해방 후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한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1년 남짓 만에 유명무실해지면서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인 유사역사학은 두 어깨에 날개를 달고 거침없이 활개 쳤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일제 식민사학을 기반으로 승승장구한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면 일제강점기처럼 사이비역사학, 유사역사학이라고 매도하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작 본인들이 유사역사학이면서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잃어버리고 사라진 우리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찾고자 하는 학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유사역사학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보면 해방 후 대한민국의 주류가 된 친일파와 친일파 후손을 보는 듯 합니다.

 

일제 조선총독부와 조선사편수회에 의해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복원하여 우리의 참모습을 회복할 때 근본뿌리를 잃고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대한민국을 치유해 희망찬 미래를 열어 갈 수 있습니다.

 

 

 

 

 

 

 

 

 

 

 

<국회 환단고기 북콘서트> - 2부 대한, 도道로써 세상을 다스리다.

대한大韓의 역사를 조작한 심장부,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와 유사역사학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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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20.04.26 0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휴일 되세요^^

  2. 청결원 2020.04.26 06: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

  3. JOHN TV 2020.04.26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주말에 잘보내세요~^^
    자주 소통해요~

  4. 모아모아모아 2020.04.26 1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말 잘보내시나요~
    좋은 포스팅 잘보고
    공감 많이 하고 갑니다.~~♡

  5. _soyeon 2020.04.26 2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가요 ㅎㅎ

  6. 일상속행복 2020.04.26 21: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포스팅 잘봤습니다~ 맞구독 해요

  7. 가족바라기 2020.04.26 2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시대 때 내려오는게 그대로 내려오고 있네요
    이제 우리말로 바꾸는것도 좋을것같아요

  8. 버블프라이스 2020.04.27 1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와 유사역사학 비판 글을 잘 읽고 역사 공부를 하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9. 맹모 일기 2020.04.27 2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죠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죠

    공감하고 갑니다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 말살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한국 통사 <조선사 35권>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조선사 35권>의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쓴 이병도의 조선사대관

 

 

 

 

 

 

 

 

 

 

 

일본 제국주의는 영구지배와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해 우리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말살했습니다.

 

 

일본 왕의 칙령으로 조선반도사 편찬에 착수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는 2만 4,000쪽에 이르는 <조선사 35권>을 1938년 발간했습니다. 

 

일제는 우리 역사를 조작 왜곡 말살해 거짓의 역사를 만들어 세뇌 교육해 우리 민족이 반도 식민사관의 노예로 전락하게 했습니다.

 

 

이병도 사관(사관)에 놀아난 한국 역사 ← 클릭

 

 

"아직도 역사학계에 '친일사학자 이병도'가 너무 많다" ← 클릭

 

 

두계(이병도)학파와 실증사학 ← 클릭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 태두(泰斗, 태산북두泰山北斗)로 추앙받는 이병도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 35권>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입니다.

 

대한민국 식민사학의 태두 이병도는 1948년 『조선사대관(朝鮮史大觀)』을 발간했고, 1954년 증보 수정본인 『국사대관(國史大觀)』을 발간했습니다.

 

 

 

이병도가 학교에서 역사교사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바쁜 와중에도 조선사대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조작해 만든 한국의 통사 <조선사 35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병도가 시대별로 분류해 놓은 조선사대관국사대』은 일본 제국주의가 조작한 우리의 역사, 즉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발간한 <조선사 35권>을 바탕으로 저술한 조작된 한국의 통사(通史)입니다.

 

 

 

 

 

 

 

 

 

 

1959년 이병도를 중심으로 한 진단학회에서 한국사(韓國史) 7권이 나옵니다.

『한국사』 책 역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펴낸 <조선사 35권>을 텍스트로 하여 발간된 책입니다.

 

우리의 진짜 역사와 전혀 관련은 일제 식민사관을 그대로 추종한 왜곡되고 조작된 거짓 역사입니다. 

진단학회의 한국사가 세상에 나오자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자화자찬했습니다.

 

 

 

1967년 이기백은 진단학회가 발간한 한국사를 집약해 한국사신론(韓國史新論)을 내놓게 됩니다.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한국사신론을 펴낸 이기백이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한 역사학자라고 극찬했습니다.

소가 웃을 일이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유치한 짓에 불과합니다.

 

 

정리하면,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의 뿌리는 진단학회의 한국사이며, 한국사의 뿌리는 이병도의 조선사대관(국사대관)이고, 이 모든 책의 원 뿌리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조선사 35권>입니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제로 강탈하자마자 우리의 역사 서적을 비롯한 51종 약 20만 권을 약탈하여 역사 왜곡에 필요한 자료만 남기고 대부분 불태워버렸습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조선사 35권>은 우리의 상고시대 역사부터 근대 역사까지 방대한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한 사건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희대의 대사건입니다.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의 그늘 밑에서 밥벌이를 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인하대 김위현 복기대 교수팀이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한 <조선사 35권> 번역과 정밀 해제팀으로 선정되자 온갖 중상모략과 협잡질로 시비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前 정부의 이른바 역사학계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 사건과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35권> 번역 및 해제 사업을 억지로 연결지으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한 <조선사 35권>은 번역과 정밀 해제 사업은 일본 제국주의가 얼마나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했는지 그 실상을 알기 위해 시작한 사업입니다.

 

 

<조선사 35권>을 번역하고 해제하는 작업은 특정 시대, 곧 우리 역사의 한 부분에 국한하거나 치우친 사업이 아닙니다.

일제가 우리 역사를 조작해 만든 한국 통사(通史), 곧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35권> 번역 및 해제 사업은 우리의 상고, 고대, 중세, 근대사 중 어느 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결정체인 <조선사 35권> 번역 및 정밀 해제를 결사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지난 70여 년 동안 주류 강단사학계가 교육하고 주장한 내용이 바로 일제 식민사관과 똑같다는 것이 밝혀지는 게 두렵기 때문입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35권>은 반드시 번역되고 정밀 해제되어 일제의 역사 왜곡 만행과 지난 70여 년 동안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그대로 추종한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가 국민을 속이고 우롱한 추악한 범죄를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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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8.03.06 0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조선사 35권 글 잘 읽고 공감누르고 갑니다^^

중국과 일본에 의한 한韓민족 역사 왜곡

동북아 역사 5대 조작극 -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금서룡(이마니시 류)이 조작한 한사군 위치

환단고기 - ② 한사군은 중국이 밑돌을 깔고 일본이 못 박은 조작된 역사

 

 

 

 

 

 

 

 

 

 

 

 

번조선을 찬탈한 도적 위만(정권)의 손자 우거(정권)는 한漢나라 무제의 군사에 의해 죽지 않았습니다.

번조선의 내부 분열로 말미암아 살해당했습니다.

 

 

 

한漢나라의 사관史官 사마천은 역사 현장을 꼼꼼하게 확인하여 기록했다고 하였으므로 한漢나라와 위만 정권(일본과 중국은 위만조선이라 주장)과의 전쟁을 직접 목격하여  당시의 상황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재 역사와 객관적인 기록이라는 사마천의 『사기』에는 한漢나라가 참패하다시피한 전쟁의 역사를 사실 그대로 기록하지 않고 단지 두리뭉실하게 기록하였으며, 또 있지도 않았던 낙랑, 임둔, 현도, 진번의 한사군(漢四郡) 지명과 위치를 사기史記 기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장수절의 사기정의와 배인의 사기집해 등 중국 역사서에 한사군이 나오고 있습니다.

 

 

근거와 실체가 없고 서로 다른 한사군 역사를 사실로 만들기 위하여 일본 제국주의는 랑케의 실증주의를 수용하여 한사군 한반도 설의 식민사관 역사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동북아 5대 역사 조작극 -

일제 식민사관의 한국 고대사 역사 조작 한사군 한반도 설

 

한漢 무제 때 사관 사마천의 사기에 없는 한사군 한반도 설

http://gdlsg.tistory.com/1417

 

 

 

 

 

 

후대의 역사가들에게 온갖 찬사를 받는 사마천의 『사기』에는 한사군의 위치가 나오지 않습니다.

 

사마천이 죽고 수백 년이 지나 나온 중국의 역사서, 그것도 2군, 3군, 4군 등으로 내용과 군(郡)의 숫자가 서로 엇갈린 기록을 바탕으로 낙랑, 임둔, 진번, 현도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망령(亡靈)된 주장은 중화 사대주의 사상에 물든 자들에 의해 떠돌다 급기야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 금서룡(이마니시 류)이 한사군 한반도 설을 만들어 역사를 조작합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금서룡(이마니시 류) 한漢나라가 세운 한사군 위치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 근거가 된 것이 바로 자신이 직접 평안도에서 발굴하였다고 주장하는 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입니다.

 

 

 

 

 

 

 

 

 

 

점제현신사비에는 백성을 위해 점제현의 우두머리가 산신제를 지낸 내용이 적힌 비석으로 점제현은 (북한) 평안도 용강군(현 온천군)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사마천의 』에는 낙랑군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기』보다 근 200년 후에 나온 한서 지리지」의 기록을 내세우며 『한서』 「지리지」에 낙랑군의 속현으로 점제현이 나오는데 한사군의 낙랑군은 한반도에 있다는 것이 명확하다고 단정한 것입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사방이 탁 트인 평야 지대에 2천 년 동안 서 있던 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를 금서룡(이마니시 류)이 발견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보지 못하였고 오직 자신만이 한 번에 알아봤다는 개가 웃을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금서룡은 평양 일대의 한사군 위치 조작은 점제현신사비에 그치지 않고 한漢나라 기와(瓦)와 봉니(封泥)까지 발견하였다고 유물을 조작합니다.

 

 

점제현신사비 발견과 한나라 기와, 봉니의 발견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학이 조작한 역사입니다.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금서룡이 조작한 한사군 한반도(낙랑군 평양) 설을 실제 역사로 둔갑시켰습니다. 

 

 

"한사군은 중국이 밑돌을 깔고 일본이 못 박은 조작된 역사"

(이덕일 박사)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 금서룡이 조작한 한사군의 위치는 사마천 사기 원문이 아닌 후대에 쓰인 『한서』 등을 근거로 한 것이고, 그 내용도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써 누구도 한사군 위치가 한반도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천은 우거(위만) 괴뢰정권이 전쟁의 당사자였던 한漢나라가 아닌 번조선 백성에 의해 무너졌다고 하였으며, 한사군의 위치 낙랑, 임둔, 진번, 현도은 그 기록조차 없습니다.

 

 

전쟁 승리에 기여한 번조선의 백성 5명을 제후로 봉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한漢나라 육군과 해군 사령관에 해당하는 장군과 사신을 한나라 황제 무제(유철)의 치욕의 전쟁사를 소위 중화 중심 춘추필법(春秋筆法)으로 기록하였습니다.

 

  

한나라 무제 때 한사군의 실체가 없었기 때문에 한사군의 위치가 한반도냐 중국이냐 하는 그 의미 자체가 없습니다.

 

 

 

 

 

 

 

 

 

 

환단고기 해제가 전하는 한사군 위치 조작의 실체

 

 

 

4군(四郡)의 구체적 명칭은 사마천이 죽고 백 년이 더 지나서, 중화(中華) 사관이 뚜렷한 반고가 쓴 한서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한서의 기록도 한사군의 실체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였다.

 

 

무제본기는 "우거의 목을 베고 그 땅을 낙랑, 임둔, 현도, 진번군으로 삼았다."라고 하여 4군을 모두 적었다.

그러나 지리지는 "낙랑과 현도는 무제 때 설치되었다."라고 하여 2군을, 오행지五行志는 "두 장군이 조선을 정벌하고 3군을 열었다."라며 3군을 기록하였으므로, 군의 수가 서로 어긋난다.

 

 

 

중국 사서의 일관성 없는 기록은 한사군에 대한 사기의 그 짤막한 기록이 과연 사마천 자신의 서술인지 의문마저 들게 한다.

사기의 이 구절은 후대의 열사 학자가 삽입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한사군이란 것이 설치된 적이 없기 때문에 사마천은 한사군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못한 것이다.

 

 

그 진실을 우리는 환단고기에 수록된 북부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나라 무제가 우거를 멸하더니 그곳에 4군을 설치하려고 군대를 일으켜 쳐들어왔다. 이에 고두막한이 구국의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를 격파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볼 때, 한사군은 한나라의 희망 사항이었을 뿐 결코 실현된 적이 없었다.

(환단고기 해제 542쪽)

 

 

 

 

 

 

 

 

 

 

 

 

봉니(封泥)

봉니는 고대 중국에서 문서를 운송하는 도중에 다른 사람이 보거나 위조하지 못하도록 한 표식이다.

죽간(竹簡)이나 목간(木簡)을 묶은 노끈 매듭에 진흙을 덩어리로 만들어 봉한 뒤 진흙 덩어리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봉니에는 관직 이름이나 지명이 찍혀 있어서 그것을 보낸 곳과 보낸 이의 관직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봉니는 문서를 보낸 곳이 아닌 받는 곳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하지만 일제는 평양 지역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200여 개의 봉니에 낙랑(樂浪)이란 글자가 새겨진 것을 근거로 평양에 한나라의 낙랑군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봉니에 찍힌 '낙랑'은 문서를 보낸 지역명인데, 그런 봉니가 어떻게 낙랑 땅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더구나 평양 땅에서는 다른 군으로부터 받은 봉니가 하나도 출토되지 않았다. 평양 땅의 봉니 출토는 그곳을 한사군 지역으로 조작하기 위한 일제의 자작극인 것이다.

(환단고기 해제 543쪽)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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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6.05.31 0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2. 훈잉 2016.05.31 0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보내세요

  3. 유라준 2016.05.31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고대사를 잘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4. 죽풍 2016.05.31 1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과 일본이 합작하여 조작의 역사를 만들었군요.
    잘 보고 갑니다. ^^

  5. 생명마루한의원 일산점 2016.05.31 1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역사에 대해서 알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6. 뉴클릭 2016.05.31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
    좋은 하루가 되세요 ^^

  7. 행복생활 2016.05.31 1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오늘이 되셔요!!

  8. ☆Unlimited☆ 2016.05.31 1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9. Deborah 2016.06.01 1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일제시대, 일본에 의해서 우리 문화가 발전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네요

잃어버리고 빼앗긴 우리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한민족의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STB 상생방송 - STB 역사기행

 

 

수 천 년의 시간을 동북아라는 역사의 무대 위에서 상생과 상극의 은원 관계를 형성해 온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이들 삼국은 공시적으로나 통시적으로 서로에게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동북아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동북공정, 일본은 역사 교과서 왜곡을 통해 한국의 영토가 아니라 한국의 역사를 빼앗고 있다. 세계는 지금 상생의 패러다임 속에서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지만 동북아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한·중·일 삼국은 소리 없는 역사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펼쳐지는 역사 전쟁의 근원적인 원인은 해방되지 않은 한국사에 있다!!!

우리는 60여 년 전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았지만 역사는 되찾지 못했다. 영토는 해방되었지만 역사는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침탈에 맞서 한국사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제 중국과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만든 왜곡된 역사의 굴레로부터 우리의 역사를 해방시기 위해 역사학자 이덕일이 일본, 중국, 미국의 역사학자들을 찾아 역사 여행을 떠난다.

 

 

식민사학, 동북공정, 서양의 역사 교과서에 실린 한국사 , 이들의 공통분모를 찾아서

한반도는 있어도 한국의 역사는 없다!

일본 역사학자들이 만들어 낸 식민사학과 중국의 동북공정 그리고 서양 여러 나라의 역사교과서에 실린 한국의 역사. 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모두 한국의 역사를 중국과 일본의 속국의 역사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왜 이구동성으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일까.

이제 이들의 공통분모를 찾아 역사 여행을 떠나보자.

 

한반도의 영구적인 식민지화를 위해 일본이 꺼내 든 회심의 카드

‘쓰다 소우키치의 한국사 프레임’

한국의 역사를 세계사 연대기에서 지워버린 일본의 역사학자 쓰다 소우키치. 그는 어떻게 한국사를 왜곡했을까?

이제 쓰다 소우키치가 만든 한국사 프레임의 실체를 밝혀보자.

 

쓰다 소우키치의 행적을 쫒아서...

쓰다 소우키치 기념관

쓰다 소우키치의 생가를 기념관으로 재건축했다.

소재지: 기후현 미노카모시 岐阜?美濃加茂市下米田町西脇1471-1

 

와세다 대학 교수 시절, 이병도와의 만남

쓰다 소우키치는 와세다 대학 교수 시절, 제자 이병도를 처음 만난다.

그리고 그 둘의 운명적 만남은 조선사편수회에서 다시 한 번 이뤄지고 그것은 결국 한국사의 비극으로 다가온다.

남만주철도회사와 쓰다 소우키치

쓰다 소우키치가 남만주철도회사의 지원을 받아 저술한 <조선역사지리> 공개.

그는 이 책에서 한국사 왜곡에 대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의 <조선역사지리>와 <만선역사지리연구>는 현재 모두 쓰다 소우키치의 전집에 포함되어 있다.

조선사편수회와 쓰다 소우키치

쓰다는 이마니시 류今西龍,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 등과 함께 조선사편수회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식민사관을 정립한다.

그리고 이들이 만든 식민사관은 외국어로 번역되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쓰다 소우키치의 전집 공개

한국사 왜곡의 주범, 쓰다 소우키치의 전집 소개!

 

쓰다 소우키치 전집

쓰다 사학이 집대성 된 소우키치의 전집.

 

일본 역사학계에서 쓰다 소우키치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고대사와 일본 고대사 영역에서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는 쓰다 소우키치.

한국사 왜곡의 주범이지만 일본 학계에서는 ‘쓰다 사학’의 원조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전집을 소개하고 그가 남긴 영향력을 추적해 본다.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의 연결 고리를 찾아서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은 일란성 쌍생아!

동전의 양면과 같은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은 철저하게 한국 역사의 독자성을 무시한다.

이들이 한국의 역사를 축소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를 밝힌다.

 

동북공정의 허구를 밝히는 홍산 문명의 발굴 현장 취재

홍산 문명의 출현에 경악한 중국!

황하문명을 앞세워 동북아 문명의 주인으로 자처하던 중국이 홍산 문명의 출현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들은 동북공정을 앞세워 홍산 문명을 자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발굴이 진행될수록 그들이 숨겨야 할 역사의 진실은 늘어만 가고 있다.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의 허구를 밝히는 홍산 문명의 발굴 현장을 취재한다.

 

쓰다의 식민사관이 세계로 뻗어나간 경로 추적

일본 식민사관의 세계화 과정 취재

한반도의 영구적인 식민지화를 위해 한국사를 왜곡한 일본.

그들은 한국인들에게 왜곡된 한국사를 가르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이 만든 한국의 역사를 세계에 알렸고 세계는 아직도 일본이 만든 한국의 역사를 배우고 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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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3.10.18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용한 정보네요.
    잘 보고 가요~ 좋은 하루되세요 ^^

  2. 반이. 2013.10.18 1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ㅎㅎ
    잘 읽고 갑니다!

  3. 가슴성형 2013.10.18 1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잇는 글입니다. 오늘하루도 파이팅 ^^

  4. 치퍼스 2013.10.18 13: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정보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5. +요롱이+ 2013.10.18 1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너무 감사합니다.
    잘 보구 갑니다^^

  6. 원더풀~ 2013.10.18 15: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인들은 하늘을 어찌 손바닥으로 가리려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무리 가리려해도 언젠가는 만천하에 고스란히 드러나겠죠^^
    더 이상 가릴수 없게 말이에요~

  7. S매니저 2013.10.18 16: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좋은글 너무 잘 보고 갑니다~
    즐건 하루 보내시길 바래요~

  8. 어듀이트 2013.10.18 17: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오후시간 보내시길 바래요`

  9. Hansik's Drink 2013.10.18 2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잘 보고 간답니다 ^^
    행복 가득한 하루를 보내세요~

  10. 꿈다람쥐 2013.10.18 2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민족의 역사 및 본질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특히나 역사 만큼은 관심이 많아요.ㅎ

  11. 돌쇠군™ 2013.10.18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쓰다소우키치 ..
    멀그리 소설을 쓰셨길레 이름까지 쓰다 실까요.. ㅎㅎㅎ ㅡ.ㅡ;;;
    왜곡된 역사는 정말 바로 잡아야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그런인식이 부족한듯하네요..ㅜㅜ

  12. 신선함! 2013.10.19 0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구 갈께요 ㅎㅎ
    앞으로도 좋은글 기대할께욧~!!

  13. 꿈마차 2013.10.24 2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갑니다.

  14. 엑센트 2013.10.29 1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갑니다^^

"한국사는 죽었다."

역사비평가 이주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 신간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역사의아침)에서 한국사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이 책에서 그는 작정한 듯 주류 역사학계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조선사편수회가 창안한 식민사관이 지금도 주류 역사학계를 통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 사학계의 태두로 불리는 고(故) 이병도 선생 등 주류 역사학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것은 물론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 국가기관들도 앞장서서 식민사관을 확대 재생산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류 역사학계 전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며 주류 역사학계에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면서 "문제는 식민사관"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병도 박사 등 주류 역사학계를 비판하는 것은 하나의 금기가 됐고 학계에 있는 분들은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하기 힘든 상황"이라면서 "주류 역사학자들이 쓴 텍스트 등 근거를 갖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관은 총체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함축하고 개인, 사회, 국가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담아내고 있어 단순히 역사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식민사관이 죽어야 희망이 있다"고 역설했다.

(연합뉴스 인터뷰 일부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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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의한 역사왜곡은 일제강점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계연수 선생의 환단고기 편찬

 

『환단고기』는 1864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난 운초 계연수(1864~1920)가, 지인들로부터 구한 한민족의 정통 사서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안함로의 『삼성기』는 그의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것이고, 원동중의 『삼성기』는 인근의 태천에 살던 백관묵에게서 구하였다. 『단군세기』또한 백관묵의 소장본이고, 『북부여기』는 삭주 사람 이형식의 소장본이었다.『태백일사』는 그의 스승이자 항일운동 동지인 해학 이기의 집안에서 전해 오던 것이었다.

 

계연수는 원래 우리 옛 역사와 민족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여러 양반가와 사찰을 돌아다니며 비장 서책과 금석문, 암각문 등 옛 사료를 많이 수집하였다. 약초를 캐어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뿐 오로지 역사 밝히기에 골몰하다가 1897년 이기의 문하에 들어간 이후 여러 권의 역사서를 발간하였다.

 

이기는 정약용의 학통을 계승한 실학자로서 당대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또한 『단군세기』를 쓴 이암과 『태백일사』를 쓴 이맥의 직계 후손으로 우리의 고대사에도 해박하였다. 이기의 지도 아래 계연수가 발간한 역사서의 결정판이 바로 『환단고기』이다.

 

1911년 계연수는, 그의 벗이자 독립운동 동지인 홍범도와 오동진 두 사람의 자금 지원으로 만주 관전현에서 『환단고기』30부를 간행하였다. 이로써, 9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외세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동방 한민족이 절망과 통탄의 벼랑 끝에 서 있던 그때, 민족의 국통 맥을 천지에 선포하는 위대한 사서가 출간된 것이다.

 

 

계연수 선생의 죽음을 지켜본 이유립 선생

 

운초는 항일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천마산대, 서로군정서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57세 때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런데 당시 압록강에 처참하게 버려진 그의 시신이 수습되는 광경을 지켜본 한 소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훗날 『환단고기』를 널리 대중화시킨 이유립(1907~1986)이다.

 

 

일본인의 환단고기 왜곡

환단고기』가 일본어로 번역·출판되는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광오이해사본을 입수하여 검토한 일본인 변호사 가지마 노보루鹿島昇가 『환단고기』를 일본 천황가의 뿌리를 밝혀 줄 수 있는 책이라 여긴 것이 발단이었다. 가지마는 ‘『환단고기』는 아시아의 지보至寶’라 극찬하고 자국의 정계와 재계의 후원을 끌어내어 1982년 ‘실크로드 흥망사’라는 부제를 붙인 일본어판 『환단고기』를 출간하였다.

 

하지만 이 일본어판은 환국 → 배달 → 고조선 → 고구려 → 대진국(발해) → 고려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를 배달 → 야마토일본 → 나라일본 → 헤이안시대로 이어지는 일본 역사로 둔갑시켜 놓았다.

동방 한민족의 역사가 중동 유대족의 역사에서 발원하였다는 황당한 주장도 하였다.

(상생출판 환단고기 완역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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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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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동북아 고대사에서 단군 조선을 제외하면 아시아 역사는 이해 할 수가 없다.
그 만큼 단군 조선은 아시아 고대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한국은 어째서 그 처럼 중요한 고대사를 부인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일본이나 중국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 내는데 당신들 한국인은 어째서 있는 역사도 없다고 그러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나라이다."

- 러시아에서의 고대사 세미나 중 유엠 부찐이라는 사학자의 말 -

 

 

 

 

 

유엠 부찐이라는 구소련 학자가 82년도에 발간한 책 고조선

저자는 남북한, 지나, 소련 역사학자들의 연구업적이 총망라 하였음
단국대 역사학과의 윤내현 교수가 미궈 하바드 도서관에서 이책을 발견하고 제자들 초역, 출간이 됐는데 일반에는 바로 공개가 안됨

이유는 그 당시가 냉전시기기도 하고, 북한과 구소련 학자들의 연구업적이 두루 담긴 책을..일반 대중에 공개할 수가 없다고...

 

 

                                               유엠부찐이 보는 고조선 강역도(랴오똥 설)

 

 

 

유엠부찐은 많은 중국사서에 의한 사료분석과 최근의 북한등의 연구 그리고 과거 동아시아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을 근거로 고조선의 영역을 추정하였다. 그에 의하면 과거 고조선이었던 지역은 고인돌로 대표되는 거석문화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지역의 청동기는 중국의 영향이 아닌 독자적인 것으로 주로 현재의 요동지역과 청천강 이북지역에 이러한 유물들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과거 고조선의 영역은 남만주와 한국 북부(청천강 이북)을 중심지역으로 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랴오똥(요동)이란 지금의 요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천하(중국)의 동쪽변경을 뜻한다고 했다. 이것이 중국의 점령이후 지명이 된 것이다.

 

 

유엠부찐이 보는 고조선 문명과 문화

 

고조선은 당시의 지나와는 전혀 별개의 문명을 창출

기자조선은 지나학자들의 날조하여 한민족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술책이다.

 

단군조선은 청동기시대에 이미 광대한 영토의 대제국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우리의 국가이다.

 

전성기 고조선의 영토는 한반도와 만주 전체 그리고 동쪽으로는 러시아 연해주일대, 북쪽으로는 몽골일부, 서쪽으로는 북경일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음악, 비단옷등의 의복, 천문을 관측했고 8조법금 이라는 법률이 있던 수준높은 문화국가로 47세의 단군이 통치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일제치하에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했던 일제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었던 것이다.

 

1925년 사이토 총독이 전국에 시달한 교육시책을 보면


※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과 악행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의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서 그 부조(父祖)들은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고


※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史蹟)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 그때에 일본 사적, 일본인물, 일본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同化)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半) 일본인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


일본인들은 이 칙령을 그대로 시행했고 그 결과 전국의 무려 50여종 20만권의 사서를 압수하거나 불태우고 중요사료는 일본이 가져가 황실도서관 및 동경대 지하 비밀서고에 보관하였다.


일제치하 조선인에게는 조선사편수회에 의해 조작된 역사만을 가르친것이다.
(조선사 편수회는 1925~1937년까지 12년간 약 100억원(현재가치)을 투입하여 37권의 '조선사'를 편찬하였다)


그리고 그 때 조선사편수회에서 하수인으로 일한 이병도, 신석호씨가 해방후 친일파청산이 되지 못한채 정권에의해 등용되어 식민지 사관을 그대로 옮겨놓은 '한국사대관'을 편찬하였고 이것이 우리의 국사교과서의 근간으로 여태껏 교육되어졌고 아직도 초,중,고등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것이다.

 

이로인해 우리에겐 알만한 세계인은 다알고 인정한 위대한 단군조선의 역사를 정작 한국인만 인정하지 않는 웃지못할 서글픈 현실을 만들어 내고 만 것이다.
다행히 2007년 고등학교 교과서에 단군역사를 인정하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고도 멀다.

 

러시아 학자들이 보는 한민족의 고대사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 :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고조선(古朝鮮)》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燕)나라나 주(周)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

 

그리고 기자조선(箕子朝鮮) 설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 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예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가들은 연나라가 중국의 동북쪽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나라의 역할을 과장해서 표현해 왔다."

그러며, 당시 국력으로 보아 연나라가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長城)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소련의 역사학자 시로코고르프 : 소련의 역사학자요 인류학자인 시로코고르프(シロコゴルフ)는《중국사》에서 이렇게 썼다.

"BC 3,000년경 동이족은 이미 황하 양자강 서강의 중류이동(中流印)의 중간 지역에 살았으며, 지나족(支那族)은 이보다 1,500~2,000년 후에 동방천자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동이족의 나라인 강회(江淮)지방에 진출하였다."

 

한국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라고 러시아 학자가 이야기 합니다.
한민족 상고사는 오히려 외국에서 더욱 활발히 연구가 되고 고조선이 단순히 존재한것만 증명한것이 아닌 제국이었음을 강조 했습니다.

 

대한민국 교과서의 현실은 1965년 ~ 2002년까지 교과서는 "건국하였다고 한다." 였고

2007년 개정판에 처음으로 "건국하였다."로 기술하고 있다.

 

얼마전에 경기도 교육청에서 고조선은 실제 존재한 나라다 라는 교육 자료를 배포한것을 가지고

동북아역사재단(2006년 문을연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공공기관)“고조선 개국 신화는 여전히 신화적 범주에 속하며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이 자명하다”며 “신화가 전하는 내용과 역사적 배경은 엄격히 분리해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부정하는

대한민국정부를 대표하는 역사재단의 모습이 바로 대한민국의 역사 현주소다.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와 희망찬 미래의 꿈을 증산도에서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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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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