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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7.23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장생탄광(2) (3)
  2. 2017.07.22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장생탄광(1) (3)

일제강점기 해저탄광 갱도붕괴로 바다 밑에 수장(水葬)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장생탄광(長生炭鑛) - (2)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노무자가 석탄 채굴작업을 한 장생탄광은 해저탄광으로 당시 여느 탄광처럼 비좁고 두웠으며, 높은 습도와 고온의 열기 속에 속옷(훈도시)만 걸친 채 석탄 채굴 작업을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끌려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작업 현장은 지역을 불문하고 생지옥이었다.

 

 

 

장생탄광에서 일한 대부분의 조선인 노무자는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사람들이었고,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왔다 장생탄광에서 일한 조선인도 일부 있었다. 일본인과 조선인 등 1천 명 남짓 일하던 장생탄광에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숙소에서 너덧 평 되는 방 한 칸에 근 20명씩 합숙시켰다.

 

조선인 노무자 숙소는 일본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받았고 탈출도 힘들었지만, 도망가다 붙잡히면 죽지 않을 정도로 폭행을 당했고 하루 12시간 이상의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다.

 

 

 

 

 

 

 

 

 

 

 

 

육상탄광과 해저탄광은 언제든지 붕괴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작업을 해야 하는 곳이다.

장생탄광은 해저탄광으로 수압 때문에 갱도가 붕괴할 수 있는 또 다른 위험을 안고 채굴작업을 해야 했다.

 

장생탄광은 길이가 10여 km 되는 긴 갱도가 바다 밑으로 뚫려있었다.

183명의 바다 밑에 수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생탄광 수몰 사고에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2명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장생탄광은 붕괴하기 몇 달 전부터 바닷물이 유입됐고, 며칠 전부터는 바닷물 유입이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장생탄광에 다량의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붕괴 위험이 커졌지만, 일본인 감독은 석탄 생산량 목표달성에 급급한 나머지 조선인 강제징용 노무자들을 재촉하며 채굴작업을 강행했다.

 

 

 

 

 

 

 

 

 

 

 

 

장생탄광 수몰 사고는 당시 일본이 태평양전쟁 중이라 언론보도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고의적으로 사고를 감추면서 일본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은 이전에도 수차례의 탄광 매몰 사고가 발생하여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18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을 그냥 묻혀버렸다.

 

 

 

일제강점기 해저탄광에서 목숨을 잃은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장생탄광 수몰 사건의 역사의 실체가 알려진 것은 우베 지역의 일본인 향토사학자가 1976년 장생탄광 수몰 사고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이후 일본 시민단체까지 나서면서 장생탄광 수몰 사고로 숨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를 위한 추모비 건립 운동이 시작됐다.

 

 

 

 

 

 

 

 

 

 

 

 

장생탄광 수몰 사고로 희생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숫자는 일본의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면 총 사망자 183명(일본인 47명 조선인 136명)이다.

 

그런데 당시 사고현장에서 살아남은 조선인 생존자와 채굴 작업을 마친 조선인 노무자의 증언에 의하면 평상시에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200여 명 이상이 장생탄광에서 석탄 채굴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136명이 희생된 장생탄광 수몰 사고는 단순히 높은 수압에 의해 해저탄광 갱도가 무너진 사고가 아니다.

 

지하 25m 내외로 파고들어 간 장생탄광 해저갱도는 지나가는 배의 엔진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 바닷물과 불과 5m 내외까지 갱도를 확장하고, 해저갱도의 버팀목(동바리)을 부실하게 설치하면서 일어난 인재다.

 

 

 

 

 

 

 

 

 

 

 

 

태평양전쟁에 미쳐 날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전쟁의 소모품으로 사용되다가 1942년 2월 3일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바다 위로 솟은 두 개의 환기구에 물이 솟구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갱도가 수몰되면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수장됐다. 

 

일제강점기 장생탄광에 끌려온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해저탄광에서 언제 붕괴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에 안고 혹독한 노역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어갔다.

 

 

 

장생탄광은 10여 km의 해저갱도에 공기를 순환시키기 위해 바다 위로 두 개의 환기구를 만들었다.

장생탄광 수몰 사고가 발생한 지 70여 년이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 환기구 역할을 하던 바다 위 콘크리트 원통 기둥은 세월의 흔적은 남았지만,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바다 밑 해저탄광에서 일본인의 차별과 모욕, 폭행과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던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아직도 차갑고 어두운 바다 밑에 그대로 묻혀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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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7.07.23 05: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까운 일이지요.ㅜ.ㅜ

    잘 보고갑니다.
    행복한 휴일 되세요

  2. 버블프라이스 2017.07.23 17: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장생탄광" 지난 내용에 이어서 일제강점기 때 있었던 제가 알지 못했던 역사에 대해 감사히 공부하고 갑니다^^

  3. 죽풍 2017.07.23 2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생탄광 사고는 예고된 사고였군요.
    바닷물과 불과 5m 거리까지 갔으니 사고가 날 수밖에 없네요.
    잘 보고 갑니다. ^^

일제강점기 해저탄광 갱도붕괴로 바다 밑에 수장(水葬)된 

조선인 강제징용(강제노역) 피해자와 장생탄광 - (1)

 

 

 

 

 

 

 

 

 

 

 

 

 

석탄산업은 조선과 철강 등과 함일본의 산업 혁명을 주도했던 근대화의 상징이다.

석탄산업은 일본 제국주의가 군사 대국화와 팽창주의 과정에서 일본 근대화의 기반이 된 산업 중 하나다.

산업근대화를 이룬 일본은 주변국을 침략하는 군사적 목적의 전쟁에 이용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강제징용 피해자는 석탄산업뿐만 아니라 조선과 철강산업을 비롯한 공사장, 벌목장, 군수기지 건설 현장 등 인력이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에 노무자로 강제동원됐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군수물자를 동원한 일본 제국주의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안전보다는 생산량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사고로 목숨을 잃은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도 많다.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고 나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일(渡日)한 조선인도 많았다.

일제강점기 자진 도일한 조선인 역시 강제징용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일본 대도시와 지방에서 군수 산업공장과 탄광 등 최악의 노동 조건 속에서 노역에 시달렸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강제노역한 곳들은 일본인도 기피하는 위험하고 힘든 작업현장뿐이었고, 일본인은 작업을 감독하거나 위험하지 않고 수월한 곳에 배정되어 작업했다.

 

 

일본의 국민 총동원령은 일본과 일제의 식민지였던 조선인을 일본군 강제징집과 학도병, 군속(군무원), 강제징용(강제노역), 일본군 위안부 등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소모품과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해저탄광 장생탄광은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60km 남짓 떨어진 야마구치 현 우베 탄전 지역에 있다.

장생탄광이 위치한 야마구치 현 우베 지역은 50여 개의 탄광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사고도 자주 발생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강제연행되어 끌려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수몰 사고가 난 장생탄광뿐만 아니라 지역을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일어났던 일들이 있다.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는 일본인에게 일방적으로 차별과 학대, 폭행을 당했으며, 열악한 생활과 작업환경으로 여러 질병에 시달렸으며, 배고픔과 영양실조, 탈출과 사고사 등이 자주 발생했다.

 

 

 

 

 

 

 

 

 

 

일본 본토뿐만 아니라 중국과 만주, 남태평양과 동남아시아 등지로 끌려간 조선인 강제징용 노무자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본인에게 노예보다 못한 차별을 받으며 혹독한 조건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다.

 

 

너무나도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폭행과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던 조선인 강제징용 노무자들이 탈출하다가 걸려 엄청난 폭행을 당하다가 죽어간 사람도 많았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강제징집 피해자들은 일본이 저지른 전쟁에 강제로 끌려가 이역만리 타국에서 쓸쓸하게 죽어갔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도코나미 해안에 있는 해저탄광인 장생탄광(조세이탄광)은 일본의 해저탄광 중 하나다.

장생탄광에는 먹고살기 위해 자진하여 도일(渡日)한 조선인 노무자도 있었지만, 대다수 조선인 노무자는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일제강점기 국민 총동원령이 한창 시행되던 1942년 2월 3일 오전 9시경 일본에 의해 강제동원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136명이 해저탄광인 장생탄광이 수몰되면서 어두운 바다 밑 석탄 갱도에 갇혀 생을 마감했다.

 

 

장생탄광 수몰 사고로  자진 도일(渡日) 조선인과 강제징용 조선인 노무자 136명과 일본인 등 18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조선인 희생자는 1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로 이 중 20대 희생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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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7.07.22 0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피해자와 장생탄광 ' 포스트 잘 읽고 갑니다.
    장생탄광 수몰사고로 우리 조선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피해가 심했었군요.. 몰랐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갑니다. 건강한 주말 되세요^^

  2. 청결원 2017.07.22 06: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되었네요..

  3. 죽풍 2017.07.22 2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픈 역사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강해야 하고 위정자가 없어야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