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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의 역사

세계정복을 꿈꾼 제2차 세계대전과 세계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는 국제연합(UN) 창설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은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 영국과 프랑스는 1939년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는 1933년에 이미 독일의 권력을 장악하며 독일의 군사력을 키웠고 1936년 3월에 비무장지대였던 라이란트(현재 독일)를 점령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이 지켜야 할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한 것이다.

 

1938년 아돌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점령하여 독일에 합병시키고 체코슬로바키아를 해체한다.

이후 폴란드 침략을 계획한 히틀러는 소련과 폴란드를 양분하여서 독일과 소련이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조약을 맺으면서 폴란드를 침공한 것이다.

 

 

 

 

 

 

 

 

 

 

 

 

독일은 북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를 침략하고 반공(反共)이라는 미명하에 스페인의 내란에 개입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손을 잡는다. 마침내 이탈리아와 독일, 일본은 반(反) 코민테른(방공협정 또는 공산주의 인터네셔널)협정에 참여하게 된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 각기 허황한 망상에 사로잡혀 세계정복을 꿈꾸었다.

 

 

북아프리카 전쟁과 유럽 전역이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어 가던 중 독일의 히틀러는 소련을 공격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1942년 9월 소련의 스탈린그라드를 공격한 독일군은 소련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25만 명의 군사가 추위와 굶주림에 떨다가 결국 10만여 명이 죽게 되면서 독일군의 전력은 서서히 약화한다.

 

 

 

 

 

 

 

 

 

 

 

1942년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서 펼쳐진 사상 최대의 상륙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독일군은 연전연패하며 베를린 함락 직전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사망 한다. 결국, 독일은 1945년 5월 7일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하게 된다.

 

 

 

 

 

 

 

 

 

 

한편, 동양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전부터 전쟁을 하고 있었다.

이미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였던 일본 제국주의는 중국 대륙을 집어 삼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른바 민주사변은 1931년 9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여 점령한 사건이다. 일본은 만주에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만들고 1937년 7월 노구교사건을 빌미로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일본은 중국의 상당 지역과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에 있던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지를 점령하며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전선이 고착화되자 일본은 더 큰 침략욕을 이기지 못하고 독일의 경우와 같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1941년 12월 7일 미국 하와이 진주만과 필리핀의 미군기지를 폭격하여 이른바 동양의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다.

미국의회는 12월 8일 즉각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다.

 

 

 

 

 

 

 

 

 

 

독일의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에 전쟁을 준비했듯이, 일본도 동북아시아를 넘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수십 년간 전쟁을 준비하였다.

 

 

 

 

 

 

 

 

 

 

 

 

19세기 말 극동아시아 최강의 청나라 북양함대의 엄청난 위용에 자극을 받은 일본 왕 명치는 직접 진두지휘하며 섬나라 일본의 해군력을 키워나갔다. 수십 년간 적극적으로 키워온 일본의 해군력은 태평양 전쟁이 벌어질 당시 직접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항공모함만 10여 척을 가진 세계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해군력이 되어 있었다.

 

 

 

 

 

 

 

 

 

 

진주만 폭격으로 기세가 등등해진 일본이 미드웨이 해전 참패로 전쟁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해군력이 약화한다.

일본 본토에 대한 미군의 폭격은 1942년 4월부터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다가 1944년 말부터 1945년부터는 B-29 폭격기의 본토 폭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드디어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다.

일본은 연합국이 일본 왕, 즉 최고통치자의 지위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단 하나의 조건을 내걸고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지역적으로 유럽 전쟁과 태평양 전쟁으로 나누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참전국과 지원국을 합쳐 50여 개 나라에 전쟁에 참여하였고, 약 6천만 명의 사망한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물적 피해를 남긴 인류의 대재앙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미 1945년 2월 소련 흑해 연안의 얄타에서 열린 얄타회담의 비공식적 합의에 따라 한반도의 남쪽 남은 미국, 한반도의 북쪽 북한은 소련이 각각 신탁통치가 결정된다. 그리고 독일의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한 후 1945년 7월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포츠담 회담으로 한반도는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보장받게 된다.

 

 

 

 

 

 

 

 

 

 

 

1941년 미국과 영국의 대서양헌장을 시작으로 세계대전 종전 후 세계평화의 정착이 필요함을 느낀 여러 나라가 1942년 연합국 선언을 통해 국제연합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다.

 

1943년 모스크바 삼상회의, 1944년 덤바턴오크스회의에서 국제연합의 목적과 원칙, 구성에 합의하였고, 1945년 얄타회담과 같은 해 샌프란시스코회의를 걸쳐 1945년 10월 24일 총 51개국이 참여하여 국제연합(UN)이 창설된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도 자신의 저서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에서 세계평화를 위해 국제연합 기구의 필요성을 천명한 바 있다. 

 

 

20세기에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국제연맹, 국제연합 창설로 인류는 전쟁과 평화, 탐욕과 공존이라는 상이한 길을 걸어왔다. 국제연맹은 세계평화와 안전 유지 및 경제적 사회적 국제협력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군사력을 동원한다는 조항이 없었다. 그러나 국제연합은 세계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는 데 있어서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다.

 

 

 

 

 

 

 

 

 

 

 

국제연합(UN)이 창설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유엔군이 참전한 유일한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6·25전쟁)이다.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이 참전한 것은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단순한 평화유지군이나 중재자의 입장이 아닌 유엔군으로 전쟁에 직접 참여한 것이다.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전쟁(6·25전쟁)에 참여하였다.

직접 전쟁에 참전한 나라는 남북한과 중국과 소련을 제외하고 유엔 16개국이 참전하였고, 병력과 물자, 전후복구에 참여한 나라는 67개국으로 당시 지구촌의 73%에 해당한다. 한반도라는 가장 협소한 지역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전쟁에 참여한 한국전쟁은 60 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다.

 

 

 

 

 

 

 

 

 

 

유엔은 현재까지도 세계 최대의 국제 조직으로 지구촌의 분쟁을 해결하고 세계평화와 안전을 책임지고 있지만, 실제는 지구촌 몇몇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작용하여 그 기능과 의미가 퇴색한 국제연합이 되었다.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구촌의 사막화, 이산화탄소 배출로 말미암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무분별한 개발과 자원 고갈, 해양오염과 종 다양성의 파괴 등 자연생태계의 교란, 인종차별과 종교갈등, 전염병과 난민문제, 마약거래, 북한의 핵무장, 영토 전쟁과 세계경제위기 등의 문제들이 효과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문명의 발전과 함께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로 확대되었다.

 

지구촌은 늘어나고 있는 위협과 새로운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더 강력한 세계정부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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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라준 2016.04.17 07: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계대전같은 끔찍한 전쟁은 다시 되풀이 되면 절대 안될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2. 명태랑 짜오기 2016.04.17 0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세상에 전쟁이 없기를 기원해 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3. 죽풍 2016.04.17 1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립보다는 평화만이 세계질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4. ☆Unlimited☆ 2016.04.17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좋은저녁 되세요~

전쟁과 평화의 역사

제국주의 탐욕이 일으킨 제1차 세계대전과 국제평화와 협력 촉진의 국제연맹 창설

 

 

 

 

 

 

 

 

 

 

 

인류 역사가 진행되면서 동서양의 나라들은 자국의 영토 확장을 위해 정복 전쟁을 하였다.

페르시아, 그리스, 알렉산드로스, 로마, 훈족, 몽골, 나폴레옹, 십자군, 스페인, 등 역사에 기록된 정복전쟁은 수없이 잦았다.

 

 

전쟁과 평화가 교차하는 수천 년의 인류 역사에서 지구촌 여러 나라가 동시에 넓은 지역에서 전쟁에 참전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은 20세기에 들어서 벌어진 1차 세계대전이 처음이라고 볼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 계기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 내외가 1941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하였다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당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은 이 사건으로 빌미로 전쟁을 일으켰고, 불과 한두 달 사이에 독일,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중간에 빠지게 되며 미국이 참전하면서 유럽 전역이 전쟁의 포화 속에 휩싸이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은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한 사라예보 사건이다.

단 두 발의 총알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도화선이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의 패권쟁탈전이 수십 년간 누적되어 쌓여 있던 것이 한순간에 폭발한 것이다.

 

 

1870년에 일어난 프랑스와 프로이센 제국(후일 대부분 독일제국으로 바뀜)의 전쟁, 발칸반도를 중심으로 러시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들의 갈등, 북아프리카 식민지 문제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갈등 등 유럽 전체의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권 다툼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중에 사라예보 사건이 도화선으로 작용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것이다.

 

 

 

 

 

 

 

 

 

 

서양의 제국주의가 유럽에서 이권 다툼을 벌일 때 동양에서는 일본 제국주의가 청나라 제국에 이어 러시아 제국과 연속해서 맞붙는다. 조선의 동학혁명을 계기로 벌어진 청일전쟁(1894~1895)과 10년 후 러시아와 벌인 러일전쟁(1904~1905)에서 일본이 승리한다. 청나라 제국과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연승한 일본 제국주의는 세계를 놀라게 한다.

 

 

당시 세계 최강의 러시아 발틱함대가 대한해협을 통과하던 중 일본 도고 제독이 이끈 일본해군에 속절없이 대패하게 되자 발칸반도로 눈을 돌리게 된다. 도고 함대의 아끼야마 준장은 꿈속에서 두 번이나 러시아 발틱함대의 항해 진형을 보고 전략을 수립하여 승리하게 된다.

 

 

 

 

 

 

 

 

 

 

동양에서는 조선을 중심으로 일본은 영국과 동맹을 맺고, 러시아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베르사유 조약에 참가하여 중국과 아시아의 독일 식민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사건의 총성이 도화선이 되어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과 동맹국)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약 9백만 명이 전사하였고 부상자는 약 2천2백만 명에 달하였다. 민간인 희생자도 약 1천 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4년간 유럽 전역을 전쟁의 포화 속으로 몰고 갔던 제1차 세계대전은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에 퍼져 나가면서 약 5천만 명이 사망하는 사건과 연합군의 공세로 독일은 1918년 11월 11일 무조건 항복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된다. 당시 한반도에서도 스페인 독감으로 약 14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이 불러온 대재앙이며 전쟁과 평화가 교차한다.

인류는 이러한 대재앙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1919년 6월 28일(실제 1월 18일부터 시작)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31개 연합국과 패전국 독일 간에 이른바 베르사유 조약이 조인된다.

 

 

패전국 독일에 제재를 가하는 일방적인 조약이었지만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는 것은 국제연맹(1920)의 창설이었다.

미국 대통령 윌슨의 제창에 따라 국제평화와 협력을 촉진하는 목적으로 창설된 국제연맹은 지금의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지구촌 네트워크의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베르사유 조약이 표면적으로는 패전국 감시와 배상, 그리고 국제평화와 협력이라고 하였지만, 실질적인 조약의 내용과 승전국들의 주장을 보면 100% 강대국(승전국)의 헤게모니 쟁탈전에 지나지 않은 조약이라고 역사는 평가한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만든 상극의 제1차 세계대전이 전염병(스페인 독감)의 대유행을 계기로 막을 내렸다.

이기적이든 평화적이든 제1차 세계대전은 국제연맹이라는 기구의 창설을 분기점으로 삼아 전쟁에서 평화로 대전환하는 지구촌에 상생의 문화를 만들려고 한 첫 시도였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의 일방적인 명령에 가까운 베르사유 조약은 국가 간에 자신들의 속마음을 숨기기도 하고 때론 드러내면서 탐욕에 눈먼 인간들의 어리석은 행동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 지구촌을 전쟁의 화마에 휩싸이게 하며 전쟁과 평화가 교차하는 역사가 연속된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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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6.04.16 0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과 평화의 관해 잘 보고 가네요

  2. *저녁노을* 2016.04.16 06: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3. 아쿠나 2016.04.16 0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는 평화만 있었음 해요 ㅎㅎ

  4. 유라준 2016.04.16 0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상황을 보면 또다시 전쟁이 오지 않나 우려가 되네요.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5. 비키니짐(VKNY GYM) 2016.04.16 1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6. ☆Unlimited☆ 2016.04.16 1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7. Getsomeclassic 2016.04.16 2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

  8. 죽풍 2016.04.17 1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가든 개인이든 탐욕은 파멸을 부릅니다.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