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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90대, 96대, 97대, 98대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전후(戰後) 일본의 최장수 총리를 노리는 스트롱맨의 위기 - 아베 총리 사학스캔들

 

 

 

 

 

 

 

 

 

 

 

최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북한의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과 북·중 정상회담까지 하자 일본의 스트롱맨 아베 총리는 일본 패싱을 우려해 안간힘을 쓰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의 국제정세를 흔히 스트롱맨의 전성시대라고 말합니다.

자국 내에서는 카리스마적인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밖으로는 경제와 군사력을 내세운 힘의 논리로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지구촌 대표적인 스트롱맨은 '미국 우선주의'의 미국 트럼프 대통령,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위대한 러시아 부흥'의 러시아 푸틴 대통령,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탈바꿈'하려는 일본 아베 총리 등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스트롱맨은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스트롱맨이 집권하고 있는 4대 강국 미국 제국주의, 러시아 제국주의, 중국(청) 제국주의, 일본 제국주의 등 과거 제국주의 국가였다는 점과 19세기 말부터 우리나라와 직접 연관되어 있으며, 지금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의 당사국이기도 합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는 경제적인 면과 군사적인 면에서 단연 세계 1, 2위를 다투는 세계 최강의 강대국이며, 스트롱맨이 포진한 나라 중에서 가장 약체로 꼽히는 일본은 경제력 세계 3위, 군사력은 세계 7위의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입니다.

 

 

 

중국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내적으로는 무난하게 임기를 이어갈 수 있지만,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는 잘못된 처신으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스트롱맨 일본의 아베 총리가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빠져버린 것은 다름 아닌 사학스캔들입니다.

 

 

 

 

 

 

 

 

 

스트롱맨 일본 아베 총리를 위기로 몰고 있는 사학스캔들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가케 사학스캔'들이며, 또 다른 하나는 '모리모토 학원 스캔들'입니다.

 

 

 

첫 번째 사학스캔들은 일본 국유지를 사립 학원재단에 헐값에 넘긴 사건입니다.

아베 총리의 사학스캔들은 사립학교 재단의 이름을 붙여 '모리모토 학원 스캔들'이라고도 합니다.

사학스캔들은 2016년 3월 사학재단 모리모토 학원이 설립할 초등학교 예정지의 국유지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일어난 스캔들입니다.

 

모리모토 학원은 설립될 초등학교의 명예 교장에 일본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를 임명합니다. 

일본 재무성은 감정가 9억 3천여만 엔의 국유지를 14%밖에 안 되는 1억 3천여만 엔의 가격으로 모리모토 학원에 넘깁니다.

 

 

 

일본 아베 총리의 사학스캔들이 2017년 2월 8일 일본 아사히 신문을 통해 기사화되었습니다.

모리모토 학원의 초등학교 명예교장직을 맡고 있던 일본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는 사학스캔들 특혜의혹이 불거지자 명예 교장직을 사퇴합니다.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이 불거지자 일본 정부는 초등학교 설립 예정지였던 국유지에 쓰레기가 매립되어 있어 제거 비용을 고려해서 헐값에 매각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사학스캔들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헐값 매각뿐만 아니라 모리모토 학원이 초등학교 용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 설립허가가 나왔고, 일본 재무성은 공문서까지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게 됩니다.

 

 

 

 

 

 

 

 

 

 

두 번째 사학스캔들은 가케학원이 운영하는 오카야마 이과대학 수의학과 개설 스캔들입니다.

아사히 신문은 수의학과 신설이 총리의 의향이라는 문부성 문건을 보도하자, 일본 정부는 즉각 괴문서라고 부인했지만, 前 문부성 사무차관 마에카와는 문부성 문서가 맞는다고 주장하면서 사학스캔들로 번지게 된 것입니다.

 

일본 前 문부성 사무차관 마에카와는 이즈미 히로토 총리 보좌관이 아베 총리의 지시를 받고 수의학과 신설을 승인하라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수의사 지나친 증가를 우려해 반세기가 넘도록 허가를 내주지 않았는데, 일본 아베 총리와 오랜 친구인 가케학원 가케코타로 이사장이 운영하는 사학재단의 대학에 일본 문부성이 수의학과 신설을 허용한 것입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사학스캔들이 자신을 향해 오자 자신이 승인 압력을 행사한 사실은 없으며, 규제 개혁 차원의 결정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스트롱맨의 대열에서 벼랑 끝 위기에 몰려있는 일본의 아베 총리는 가케학원 사학스캔들과 모리모토 학원 사학스캔들이 일본 정국을 강타하면서 총리 3연임이 불투명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제61대, 62대, 63대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7년 8개월간 내각총리대신으로 있으면서 일본 총리 중 가장 오랫동안 총리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다음이 제52대, 53대, 54대 총리를 지낸 요시다 시게루 총리로 7년 2개월 동안 일본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제56대, 57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습니다.

 

일본 총리 중 최장수 총리였던 사토 에이사쿠는 現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종조부(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친동생)가 됩니다.

 

 

 

 

 

 

 

 

 

일본 아베 총리는 현재 총리직만 6년이 넘었으며, 2018년 9월로 예정된 일본의 자유민주당(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면 총리직을 이어가고 되는데, 만약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2021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하여 전후(戰後) 일본 총리 중 최장수의 총리가 됩니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여론조사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불신감이 커지면서 30% 내외까지 급락했고, 아베 총리 지지율은 그보다 더 낮습니다.

 

사학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스트롱맨 일본의 아베 총리는 미국의 관세 폭탄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재팬 패싱'까지 내우외환의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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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8.03.31 06: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역시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2. Deborah 2018.03.31 2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베의 본심을 보게 되는 여러 행적들을 보면
    참 미운짓만 하는것 같습니다.

  3. 버블프라이스 2018.04.03 18: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아베 총리의 최근 사학스캔들
    및 이슈들에대해서 정리를 잘해주신 것 같습니다. 저도 도생님 덕분에 몰랐던 정보를 잘 알아갑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정국신사靖國神社)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중의원과 참의원)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일본 왕 명치(메이지, 무쓰히토)와 아들 대정(다이쇼, 요시히토), 손자 소화(쇼와, 히로히토)는 침략 정복 전쟁에 미쳐있었다.

미치광이 일본 제국주의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점령지를 폐허로 만든 장본인이다. 

 

 

 

일본 패망 후 미국을 비롯한 11개국의 연합국이 일본의 침략전쟁인 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 전쟁범죄 책임자를 처벌하는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을 시작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은 미국이 사실상 주도하면서 전쟁범죄의 최고책임자 일본 왕에게 면죄부를 준다.

 

 

일본 헌법 위에 군림하고 일본을 통치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킨 최고 책임자인 일본 왕은 연합국(미국)의 특혜로 전범에서 제외된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쇼와) 일본 왕은 방송을 통해 무조건 항복을 발표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항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의 끝나고 극동국제군사재판에 A급 전범 28명을 기소되었다.

심리 도중에 사망한 2명과 정신이상을 일으킨 1명을 제외하고 7명은 사형, 16명은 종신형, 2명은 징역형이 확정되었다.

 

 

 

A급 전범 중에는 일본 제32대 총리 히로카 고키와 일본 제40대 총리 도조 히데키가 포함되어 있었다.

A급 전범 28명은 일본 왕의 최측근들로 일본 내각의 각료(장관)와 일본 대법원장, 국회의원, 일본군 고위장성 출신 등이다.

 

아베 신조 현(現) 일본 총리의 조부 기시 노부스케도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지만, 운이 좋게 풀려났다.

 

 

 

 

 

 

 

 

 

 

 

 

연합군(미국)은 히로히토(쇼와) 일본 왕의 주장을 받아들여 일본 패망 후 첫 번째 총리로 히가시쿠니 나루히코를 위촉한다.

전후(戰後) 첫 번째 총리는 다름 아닌 야스쿠니 신사를 세우고, 침략전쟁을 시작한 메이지 일본 왕의 사위로 일본 왕족이다.

 

 

전후(戰後) 일본의 첫 번째 총리는 미국의 특혜로 A급 전범이 아닌 일본 왕의 지위를 그대로 누린 히로히토 일본 왕의 고모부다.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총리는 일본 육군 대장 출신으로 A급 전범자이지만, 역시 연합국(미국)의 배려로 전범에서도 제외됐.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없는 일본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극동국제재판소의 전범 재판이 얼마나 문제가 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을 통치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에게는 아무 책임도 묻지 않았고, 전쟁범죄의 책임은 내각 총리와 장관, 국회의원, 일본군 수뇌부가 진다는 명치 헌법이 극동국제재판소 판결에서 그대로 적용됐다고 볼 수 있다.

 

 

 

 

 

 

 

 

 

 

 

 

 

제43대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일본 총리는 1945년 8월 18일 취임 이튿날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한다.

전후 최초로 일본 정부 수반인 총리가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일본 내각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후대 일본 총리와 정부의 각료(장관), 국회의원, 특히 우익 성향의 일본인이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물꼬를 터준 셈이 됐다.

 

 

 

 

 

 

 

 

 

 

 

 

제44대 시데하라 기주로 일본 총리는 취임 당일 1945년 10월 9일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한 차례 더 참배했다.

 

 

45, 48, 49, 50, 51대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는 1951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5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56, 57대 기시 노부스케 일본 총리는 1957년 첫 참배 후 총 2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기시 노부스케 총리는 제61, 62. 63대 사토 에이사쿠 총리의 친형이며, 제90, 96, 97대의 현(現)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다.

 

 

제58, 59, 60대 이케다 하야토 일본 총리는 1960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5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61, 62, 63대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는 1965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11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64, 65대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는 1972년 7월 7일 취임하고 이튿날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고, 총 5차례 참배했다.

 

 

66대 미키 다케오 일본 총리는 전후(戰後, 1945년)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1975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제67대 후쿠다 다케오 일본 총리는 1977년 첫 참배를 시작으로 총 4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1978년 일본 정부는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을 비밀리에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한다.

 

1979년 4월 언론을 통해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정부는 A급 전범 14명 야스쿠니 신사 합사(合祠)가 나라를 위해 일하다 사망한 공무사(公務死)이기 때문에 합사했다고 변명을 늘어댔다.

 

 

 

 

 

 

 

 

 

 

 

 

 

제71, 72, 73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는 1985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A급 전범 합사 이후 참배이기 때문에 국제 문제로 비화했다.

 

 

제78대 미야지와 기이치 일본 총리는 1992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82, 83대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는 1996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제87, 88, 89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001년 첫 참배 이후 총 5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고이즈미 준이치와 아베 신조 총리는 퇴임 후 당당하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제90, 96, 97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3년 12월 26일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외조부 56, 57대 총리: 기시 노부스케, 외종조부 61, 62, 63대 총리: 사토 에이사쿠 - 일본 총리 자격으야스쿠니 신사참배)

 

 

 

 

 

 

 

 

 

 

 

 

 

 

아베 신조 총리는 관방장관으로 재직하던 2006년 야스쿠니 신사참배, 2007년 총리 자격으로 공물 봉납했다.

2008년과 2009년 아소 다로 총리 명의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일본 총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자리다.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 등이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문제가 될 때는 사적인 신분으로 참배한 것이라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일본의 내각 각료(장관)와 국회의원, 정당 대표와 간부 등은 혼자서 참배하기도 했고, 때론 여럿이 모여 지속해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고, 일본 총리의 부인도 신사참배를 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 총리가 사적 또는 공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수십 년 전부터 일본 내각 각료(장관)와 국회의원들이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이 집단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면서 국제문제로 이슈화됐지다.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중단하지 않았고, 전쟁범죄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 4월 2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공물 봉납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모임 소속'의 각 정당 국회의원과 현직 각료(장관) 등 90여 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참배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일본 왕이 자신을 위해 싸우다 죽은 무사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설립한 이래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침략전쟁에서 죽은 다수의 군인과 소수의 민간인 등 246만여 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명실공히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일본 천황을 수호하는 군신(軍神), 일본을 지키는 호국신(護國神)으로 추앙받으며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246만여 위패에는 한국인과 중국인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1978년 일본 정부는 비밀리에 A급 전범 14명을 합사하고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 등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다. 

 

일본의 침략전쟁 피해 당사국들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항의했지만, 일본은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이후에도 아무 꺼리낌 없이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이 지속해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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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7.06.18 2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이라는 나라 반성을 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정신 없는 나라가 아닐까요.
    잘 보고 갑니다. ^^

  2. 버블프라이스 2017.06.19 02: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까지도 아무 꺼리낌 없이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이 지속해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는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가 정이 떨어집니다.

'악랄한 마녀' & '철(鐵)의 여인', 비난과 찬사를 받으며 호불호(好不好)가 극명하게 갈리는 

마가렛 대처 前 영국 총리 명언

 

 

 

 

 

 

 

 

마가렛 대처(1925년~2013년) 前 영국 총리는 아버지가 남겨준 정치적(권력) 유산이나 금전적 유산도 없다. 

마가렛 대처는 영국의 링컨셔 주 그랜샘 지역 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 소도시 그랜샘에서 시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영국 총리였던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간에 늘 따라다닌 말이 '식료품집 딸'이라는 수식어였다.

전자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의미의 칭찬하는 말로, 후자는 우습다는 듯 비아냥거리는 업신여김이었다.

 

 

 

 

 

 

 

 

'철의 여인'이란 찬사와 함께 '악랄한 마녀'란 비난을 함께 받고 있는 마가렛 대처 前 영국 총리는 국민에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영국을 일으키는데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녀의 오만적이고 독선적인 통치방식은 너무 많은 사람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고 그로 인해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알프레드 로버츠로에게 신념과 철학, 사회와 정치적인(보수주의적 사고) 영향을 받으며 자랐으며,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나치즘(전체주의)에 증오심도 이때 생겨났다고 한다. 그녀 스스로도 인간으로서 필요한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배웠다고 할 정도였다.

 

 

 

 

 

 

 

 

영국의 명문 대학 옥스포드를 졸업하고 26살에 성공한 사업가 데니스 대처와 결혼하고 29살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다.

쌍둥이의 엄마와 한 남자의 아내, 가정주부로 살던 마가렛 대처는 34살에 영국 하원의원(보수당)에 당선된다. 

그녀의 정치 인생에서 여성적인 면보다는 강력하고 열정적인 면이 많아 보였다.

 

마가렛 대처 前 총리는 정치에 입문하고 불과 2년 후에 연금과 국가보험 차관, 노동부 장관, 교육부 장관, 과학부 장관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자신의 신념과 자신만의 철칙을 가지고 반대 세력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강력한 의지로 밀어붙인다.

 

 

 

 

 

 

 

 

마가렛 대처는 만 50세가 되던 1975년 여성 최초로 영국 보수당 당수로 선출되었고, 1979년 영국 총리에 당선된다.

식료품집 딸이 지구촌 여성 글로벌 리더로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구(西毆) 최초로 여성이 국가를 통치하는 길을 활짝 여는 순간이었다.

 

인류 역사가 그랬고 당시도 지구촌 전역이 남성 중심의 정치사회였기 때문에 보통 능력과 강심장이 아닌 이상 쉽게 넘을 수 없는 금녀의 벽을 과감하게 허물고 드센 남자에게 절대 위축되거나 밀리지 않았다.

 

 

 

 

 

 

 

 

당시 영국은 지난날 대영제국의 영화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고비용 저효율의 소위 영국병을 앓으며 암울한 경제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마가렛 대처 총리는 국유화를 민영화로, 복지정책을 포기와 공공지출 삭감, 기업의 활동자유 보장(규제완화)과 세금인하, 노동법 개정으로 파업에 대한 피해가 발생하면 노조에 배상책임을 묻는 등 기업 친화적인 자유시장 경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한다.

 

변화가 필요했던 시기임에는 분명하였으나 독단적이고 봉건주의 시대 절대 군주와 같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것도 사실이다. 

그녀의 이러한 모습에 모교인 옥스포드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 수여가 학내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하였다.

 

 

 

 

 

 

 

 

철의 여인으로서 마가렛 총리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1982년 아르헨티나 앞에 있는 섬 영국령 포틀랜드 제도에서 벌어진 일명 포틀랜드 전쟁에서 잘 나타난다. 영국의 국가 수장으로서 영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영국 총리로서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마가렛 대처 총리가 집권하기 전 영국의 70년대 평균 경제성장률이 2.1%였고, 대처 총리가 집권한 후 십여 년 동안의 경제성장률은 2.46%였다. 그리고 대처 총리가 집권할 때 실업률이 5.5%인 반면 대처가 퇴임할 때는 실업률이 7.5%에 육박하였다.

 

 

 

 

 

 

 

 

마가렛 대처 前 총리가 사망하기 전에도 이미 분열된 영국 사회는 그녀의 장례식에서 또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마가렛 대처 前 총리에 대한 추도사 수위를 조절할 정도였다.

 

그녀를 '철의 여인', '영국의 위대한 지도자'라는 찬사를 보내며 칭송하는 사람도 많고, '악랄한 마녀', '쓰레기' 등으로 그녀를 증오하매 비난하는 영국 국민도 많다. 영국 총리로서 마가렛 대처 악랄한 마녀& 철의 여인으로 국민 사이에 호불호(好不好)가 극명하게 갈린 영국의 여성 정치지도자였다.

 

 

 

 

 

 

 

 

집권 후반 물가상승과 실업률 증가,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주택보급률이 떨어지며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하며 노동자와 서민계층의 강력한 반발을 일으켰고,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그녀가 시행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이 만능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시행한 영국 경제 재생 정책을 일명 대처리즘(대처주의)이라 한다.

 

 

 

 

 

 

마가렛 대처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끊임없는 노력, 자신의 소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빠른 판단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긴 글로벌 여성 리더였다. 

 

중산층의 지지를 받으며 여성으로서 영국 총리를 3선 연임하며 11년 6개월 동안 영국을 움직인 마가렛 대처 총리는 영국 보수당 새 당수 1차 표결에서 패하며 총리직을 사임하였으나 이후로도 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둘렀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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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5.09.19 07: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바위로 가는 길이네요. ^^
    잘 보고 갑니다.

  2. 뉴클릭 2015.09.19 1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읽어보고 갑니다 ^^

  3. 청결원 2015.09.19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언 잘 보고 가네요

  4. 아쿠나 2015.09.19 15: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언은 언제나 삶에 큰 힘을 줍니다 ㅎ

  5. 모나미.. 2015.09.19 15: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철의 여인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힘이 느껴져요 ^^

  6. 유라준 2015.09.19 2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극과 극의 평가를 한몸에 받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7. ☆Unlimited☆ 2015.09.19 2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문구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