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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근현대에서 가장 긴 전쟁, 남북한의 한국전쟁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한반도에서 일어난 6.25 한국전쟁

 

 

 

 

 

 

 

 

 

 

 

 

흔히 지구촌의 작은 한반도에서 1950년 일어난 6.25 한국전쟁을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간의 이념전쟁이라고 말합니다.

 

6.25 한국전쟁은 동서 냉전 이후 최초의 전쟁으로 패권국가 미국과 소련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냉전체제를 더 공고히 하여 군비경쟁을 가속화한 전쟁이라고 평가합니다.

 

 

 

6.25 한국전쟁이 전투지역이 작은 한반도에 국한된 전쟁이었지만, 미·소 강대국과 아시아와 유럽 등 직간접적으로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전쟁입니다.

 

더불어 한국전쟁에 한국을 지원한 나라가 역사상 가장 많은 67개국으로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세계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대전쟁이었습니다.

 

 

 

 

 

 

 

 

 

 

6.25 한국전쟁은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되고 450여만 명의 희생자와 1천만 명의 이산가족 등 큰 아픔과 슬픔의 상흔이 남아 있는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까지 1,100여 일 동안 남북한과 중공과 연합군이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 현재의 휴전선 부근 지역을 중심으로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판문점에서 정전협정(휴전협정)을 맺었습니다.

 

 

6.25 한국전쟁은 수많은 희생자와 전쟁의 상흔을 남긴 채 승자도 패자도 없이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은 역사책에서 보았던 수백 년 전의 긴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전쟁입니다.

2018년 현재 전쟁 68년, 정전협정 65년이 되는 근현대사에서 가장 긴 전쟁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미국에서는 6.25전쟁, 즉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되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2018년 6월 1일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한 북한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면담한 직후 기자들 앞에서 잊혀진 전쟁, 즉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을 끝내는 문제, 즉 종전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미국은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을 끝내는 종전협정 당사국이 아닙니다.

정전협정(휴전협정)의 당사국은 유엔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며, 종전협정 당사국은 정전협정 당사국과 전쟁 당사국인 대한민국입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당시 유엔의 연합군 대표로 마크 클라크 미 육군 대장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했습니다.

미국은 역사상 가장 긴 전쟁, 끝나지 않은 6.25 한국전쟁의 참전국이지 정전협정의 당사국이 절대 아닙니다. 

 

한반도 남북 분단에 단초를 제공하고, 가장 많은 연합군을 파병했던 미국은 정전협정 이후 지난 65년 동안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미 연합사령관과 유엔군 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은 정전협정(휴전협정)으로 전쟁을 잠시 멈추고 있는 것으로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155마일 휴전선을 마주 보고 전쟁의 연속 선상에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만남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해결하기 위한 회담이면서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 역사적인 만남, 세기의 만남이었습니다.

 

 

 

 

 

 

 

 

  

 

 

유엔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미국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을 좌지우지하는 세계 최고의 패권국가 지도자인 만큼 종전협정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전쟁은 가장 긴 전쟁"이라며 끝나지 않은 전쟁을 종식하는 문제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 간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미국은 1945년 한반도 남북한을 갈라놓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나라고, 북한은 6.25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정점협정의 당사국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은 지난 70여 년 동안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발굴 등 4가지 항목의 합의문에 서명했습니다. 

 

 

북한과 미국, 대한민국과 중국 등 전쟁과 정전협정 관련국들이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와 검증, 북한의 체제보장 등 일련의 행동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을 끝내는 종전협정이 체결될 것입니다.

  

 

 

 

 

 

 

 

 

 

흔히 미국에서는 6.25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이 6.25 한국전쟁에 유엔 연합군으로 참전하여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3년 동안 약 3만 6천여 명이 전사했습니다.

 

 

 

미국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전쟁이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사이에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과 6.25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은 전쟁 기간과 상황 등에서 여러 차이가 있지만, 6.25 한국전쟁보다 많은 희생자와 경제적 손실, 미국 내의 사회적인 파장이 컸던 전쟁이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고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근 5년 동안 40만 명이 전사자가 발생했습니다.

미국 본토에 대한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미국의 자존심을 일거에 무너뜨린 대사건이었습니다.

 

 

미국은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11년이 지난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합니다.

미국이 처음 베트남에 파병을 한 1965년 이후 1975년까지 계속된 베트남전쟁에서 천문학적인 경제손실 외에도 미군은 전사자 약 6만 명, 부상자 약 30만 명, 전후 베트남전쟁 후유증과 관련된 자살자는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상 미군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것은 흔히 미국 남북전쟁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내전입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합중국 남부와 북부 간에 일어난 4년여의 내전에서 약 62만 명의 미국 군인이 전사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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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8.06.17 0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포스팅 잘 보고 가네요~^^

현대사 동족상잔(民族相殘)의 가장 큰 비극 625전쟁(한국전쟁)

세계 67개국이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지원)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625전쟁(한국전쟁)

 

 

 

 

 

 

 

 

 

 

 

 

기네스북은 1955년 기네스북 세계기록이란 이름으로 영국에서 출간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세계 최고, 최다, 최장, 최대, 최초, 최단, 최소 등의 기록을 수집해 해마다 기네스북을 발행했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부터 전혀 쓸데없는 내용도 있으며, 기네스북에 등재되기 위해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기 위한 이상한 경쟁까지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도 여러 세계기록이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지구촌에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많은 세계기록이 기네스북에 등재되면 좋겠지만, 절대 깨지지 않고 깰 수도 없는 세계기록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바로 불행한 우리의 역사, 현대사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비극인 동족상잔의 625전쟁(한국전쟁)이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625전쟁(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습니다.

626전쟁(한국전쟁)은 20세기에서 21세기까지 남북한이 7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치하고 있는 가장 긴 전쟁입니다.

1953년 정전협정(휴전협정) 이후 일부 지역에서 충돌을 빚어 국지전을 벌인 적은 있었지만, 아직 전면전은 없었습니다.  

 

 

 

2010년 월드피스자유연합이란 민간단체는 625전쟁(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원한 나라가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67개 나라가 참여했다고 주장하며 기네스북에 등재했습니다.

 

월드피스자유연합이 625전쟁(한국전쟁)에서 67개국이 대한민국과 북한이 전쟁에 참전하고 지원한 것은 단일 전쟁으로 최대국가가 연합군으로 참전한 기록이라며 기네스북에 등재하면서 국방부가 사실확인에 들어갔습니다.

 

 

 

 

 

 

 

 

 

 

기존에 공식적으로 인정된 참전 및 지원국은 41개국이었기 때문에 국방부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자료와 국방부와 한국전쟁 관련 전문가 등을 상대로 각종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2011년 국방부는 625전쟁(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원한 나라는 총 60개국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 추가로 확인된 세 나라를 합쳐63개국이라고 발표하고 기네스북 재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민간단체 월드피스자유연합은 국방부의 수치 63개국과드피스자유연합이 기네스북에 등재한 67개국과 4개국이 차이가 나는 것은 625전쟁(한국전쟁) 당시 67개국의 기록이 오랜 세월이 흘러 대한민국을 지원했다는 자료를 찾을 길 없어 확인할 수 없는 4개 나라를 뺏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국방부가 기네스북에 등재된 67개국에서 제외한 4개국은 이라크,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입니다.

 

 

월드피스자유연합이 기네스북에 등재한 67개국과 국방부가 조사한 63개국 중 어느 것이 정확한 통계치인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국방부 수치의 63개국이라고 해도 625전쟁(한국전쟁)에서 단일 연합군으로 한 나라(대한민국)를 지원한 연합군의 규모는 유사 이래 세계 전쟁의 역사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장 많은 나라가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기네스북에 올라갈 세계 최고기록이라는 사실입니다.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많은 나라가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전쟁입니다.

625전쟁(한국전쟁)에 직접 전투부대를 파병한 나라는 16개국입니다.

 

전투부대를 보내지 않았지만, 의료지원국 5개국, 전쟁 물자 등 지원한 나라는 40개국, 전후복구 사업을 지원한 나라 6개국 총 67개국이 625전쟁(한국전쟁)에 전후방과 전후복구 사업을 지원니다.

 

 

 

625전쟁(한국전쟁)에서 전투병력을 보내 참전한 지원국은 가장 많은 전투병과 무기를 보낸 미국을 비롯하여 에티오피아,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그리스, 네델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터키, 콜롬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국, 필리핀 등 16개국입니다.

 

625전쟁(한국전쟁)에서 의료지원국은 이탈리아, 덴마크, 스웨덴, 인도 노르웨이 등 5개국입니다.

 

625전쟁(한국전쟁)에서 물자를 지원한 나라는 대만, 베트남, 미얀마, 일본, 이란,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레바논, 캄보디아, 파키스탄, 코스타리카, 파라과이, 자메이카, 쿠바, 칠레, 과테말라, 브라질,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페루, 니카라과, 멕시코, 도미니카공화국, 파나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아이티, 온두라스,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헝가리,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 라이베리아, 모나코, 이집트, 이스라엘 등 40개국입니다.

 

625전쟁(한국전쟁)의 전후복구에 지원한 나라는 이라크, 아일랜드, 교황청, 포르투갈, 스페인, 리히텐슈타인공국 등 6개국입니다.

 

 

 

 

 

 

 

 

 

 

 

625전쟁(한국전쟁)은 인류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가장 많은 나라 67개국이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전하고 지원한 나라로 기네스북에 세계기록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기네스북 세계기록 인증

 

625전쟁 1950~1953년 당시 전세계 67개국이 대한민국을 지원했는데,

이 기록은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세계 기록이다

 

(기네스북 세계 기록 등재일 - 2010년 9월 3일)

 

 

 

 

 

 

 

 

 

비극의 우리 역사가 기네스북 세계기록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지원한 67개국은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세계 기록으로 2010년 기네스북에 등재됐습니다.

 

더불어 625전쟁(한국전쟁) 당시 1951년 흥남철수작전에서 정원 60명의 선박에 피난민 14,000여 명을 태워 구조작전을 벌인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 역시 세계 최대 규모의 구조작전 성공 기록으로 지난 2004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1950년 625전쟁(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전 세계 독립국은 93개국이었으며, 이중 유엔 회원국은 60개국이었습니다.

 

공산국가 북한과 중공 등을 제외한 유엔 회원국과 비회원국 등 전 세계 70%가 넘는 67개 나라(국방부는 63개국)가 대한민국을 지원한 625전쟁(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북한 간의 전쟁이면서 참전국과 지원국의 규모 면에서 볼 때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대전쟁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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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8.06.16 04: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네스북에 올라있군요.

    우리의 아픈 역사이지요.

    잘 보고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한국전쟁과

전쟁 당사국 대한민국 조인이 없는 정전협정문(휴전협정문)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의 당사국은 대한민국과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한반도가 두 동강이 나고, 한반도에 사는 같은 우리 민족 간에 일어난 전쟁을 6·25전쟁 또는 한국전쟁이라고 불러왔습니다.

 

 

1953년 7월 27일 6·25 한국전쟁 휴전협정문(정전협정문)에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북한 김일성, 팽덕회 중공군 사령관의 서명만 있고, 전쟁 당사국 대한민국은 조인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육군 소장 최덕신은 휴전협정문이 조인될 당시 대표로 배석만 했습니다.

 

 

 

 

 

 

 

 

 

 

1950년 12월 유엔에서 한국전쟁 휴전문제가 논의되었고, 이란, 캐나다, 인도의 3인 위원회는 휴전을 위해 중공군과 접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엔은 휴전결의안을 채택하고 1951년 1월 초까지 중공군을 접촉하여 휴전협정(정전협정)을 모색했지만, 중공군이 유엔의 휴전협제안을 거절합니다.

 

 

 

1950년 6월 25일 6·25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남북한과 참전국 간에 치열한 전쟁은 1951년 3월경 38선을 중심으로 전선이 고착화됩니다. 유엔의 휴전 제안이 실패로 돌아간 후 1951년 6월부터 미국의 주도로 정전협정(휴전협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됩니다. 1951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2년여의 길고 긴 휴전협상(정전 협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2년여의 정전 협상 기간에도 북한(중공군)과 남한(유엔군) 간이 치열한 혈전을 계속됐습니다. 

휴전회담이 열리는 동안 치열한 공방이 계속된 것은 경계선, 즉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발효되는 시점에 각기 군부대가 점령한 지역을 휴전선으로 설정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1953년 7월 10일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처음 열렸고, 1953년 7월 27일까지 765차례가 열렸습니다.

6·25 한국전쟁 정전협정(휴전협정)에서는 휴전선 확정과 포로 교환문제 등이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습니다.

 

의제 채택과 일정, 휴전선(군사분계선) 확정, 휴전 감시구 설립, 쌍방의 관계국 정부에 대한 건의(외국군 철수) 등의 문제는 해결됐지만, 포로 교환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1년 2개월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전쟁 정전협정(휴전협정)이 이루어지는 중에 전군에 극비 지령을 내보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전 시행에 대해 협력하지 아니한다. 전투행위 중지에 불응하고, 현재의 전투행위를 계속하라.'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정전협정(휴전협정) 발효로 한국전쟁 이전에 남북이 대치했던 3·8선은 사라지고, 정전협정으로 지금의 휴전선이 확정됐습니다.

 

 

 

기밀 해제된 미국 정부 문서인 따르면 6·25 한국전쟁 중에 대한민국 군부가 이승만 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하려고 했고, 미국 정부도 이른바 '에베레디 계획'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쿠데타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 측의 끈질긴 줄다리기 끝에 이승만은 휴전협정 체결에 동의하게 됩니다.

이승만은 미국의 원조와 한국군 증강,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6·25 한국전쟁 휴전협상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1953년 1월 미국 제34대 대통령에 취임한 아이젠하워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에게 휴전협상에 반드시 성공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은 휴전협정이 끝난 후 '공산국가와 전쟁과 협상보다 이승만 대통령과의 현상이 더 힘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전쟁 사령관 중에서 자신이 승리를 얻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서명한 최초의 사령관이 되었다.'라고 스스로 탄식했다고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북한과 남한의 전쟁으로 미국을 비롯한 유엔 16개국과 소련과 중공은 참전국입니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10시 12분에 끝남)판문점에서 한국전쟁 정전협정문(휴전협정문) 서명되었습니다.

6·25 한국전쟁 휴전협정(정전협정)은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를 기해 발효됐습니다.

 

 

 

남북한과 미국과 소련, 중공 유엔 16개 참전국 등이 3년 1개월여 동안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한국전쟁이 한동안 멈추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에서 전쟁 당사국이지만, 정전협정문에 조인하지 않았으며 6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엔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 한국전쟁을 끝낸다는 정전협정(종전협정)을 체결하지 않았습니다.

정전협정문(휴전협정문)의 공식적인 명칭은 <유엔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정에 관한 협정>입니다.

 

 

 

 

 

 

 

 

 

 

한국전쟁을 일시 중지하는 정전협정문(휴전협정문)은 대한민국 대표의 서명은 없고, 유엔군 사령관, 김일성, 팽덕회의 서명만 있습니다. 전문 5조 36항의 협정문서는 국어, 영어, 중국어 3개국어로 쓰여졌고 정본 9통과 부본 9통입니다.

 

 

군사 행동을 중지하는 일, 전쟁을 중지하는 일, 교전 당사국 끼리 전쟁을 멈추고 쉬는 것을 휴전(休戰) 또는 정전(停戰)이라고 합니다. 정전협정과 휴전협정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지만, 전쟁을 끝낸다는 이른바 평화협정, 종전(終戰)협정이 아니고, 전쟁을 잠시 휴식하고 멈춘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6·25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햡정(휴전협정)을 체결한 말 그대로 남북한이 잠시 휴전(정전) 중일뿐 완전히 끝난 전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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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8.04.08 0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의 아픈역사이지요

    잘 보고 가요

    편안한 밤되세요^^

  2. 청결원 2018.04.08 06: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주말 휴일 잘 보내세요~^^

  3. 뉴론7 2018.04.08 1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기억나긴 하지만 언젠가는 전쟁이 또 날거에요
    항상 그렇듯이요

  4. 버블프라이스 2018.04.08 2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의 아픈 역사 입니다.
    근현대사에 대해 공부하고 갑니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길 바래요

6·25 한국전쟁 인천상륙작전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명언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틀 후인 6월 27일에 유엔은 북한의 불법 남침 공격의 격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한국에 제공하기로 유엔안정보장이사회 결의안이 채택된다.

 

 

 

 

 

 

 

 

2015년 공개된 일급 비밀문서에는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일본 도쿄에 본부를 둔 극동사령부 최고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에게 한국전쟁에서 전면적 무력사용을 승인하는 내용이 공개되었다.

 

이와 함께 미국 본토 군 수뇌부와 극동사령부 고위 지휘관들 간에 주고받은 문건들도 공개됐는데 극동사령부 지휘관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군인은 북한군의 파상 공세에 적절한 저항능력이나 싸우려는 의지조차도 보여주지 못하여 북한군에게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비췄으며 대한민국의 완전 붕괴까지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였다고 한다.

 

 

 

 

 

 

 

 

1950년 대한민국 대통령이며 군 통수권자 이승만 대통령은 7월 14일 미국 극동사령부 최고 사령관이며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대한민국 국군의 작전지휘권한을 이양하게 되며 맥아더 장군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미 제8군으로 넘긴다.

 

 

 

 

 

 

 

 

불과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북한군에게 빼앗기고, 7월 하순에는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가 풍전등화에 내몰린 대한민국과 북한의 한국전쟁 판도를 뒤바꾼 대작전이 시작된다. 1950년 9월 15일 작전명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 크롬철광 작전), 인천 상륙작전이 팔미도 등대의 불빛을 신호로 월미도 지역에 엄청난 포격이 시작되었다.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지상 최대의 작전이라는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비교될 만큼 엄청난 물량이 쏟아진 상륙작전이었다.

 

미국의 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천상륙작전은 대성공으로 전쟁의 양상을 바꿔놓은 것이다.

인천 앞바다 군함에서 월미도 지역에 가해진 엄청난 포격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북진한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중공(중국) 본토(만주)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군인으로서 맥아더 장군은 이미 시작된 한국전쟁을 끝을 내야 한다고 주장이었다.

 

 

 

 

 

 

 

 

인천상륙작전과 한국전쟁에서 독단적인 행동으로 미국 트루먼 대통령과의 불화로 결국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은 해임된다. 미국과 소련의 양대체제를 굳히고 정치적 안정을 선택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이미 한국전쟁 전쟁 전선의 크기를 정해놓고 있었다.

 

52년 간의 군 생활을 마친 맥아더 장군은 기업인으로 지내다 미국을 방문한 김종필 전 총리를 만나 한국전쟁 휴전은 미국이 잘못한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웨스트포인트 시절부터 발군의 실력을 보이던 맥아더 장군은 미 육군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초고속 승진을 하며 승승장구하여 1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1918년 어깨에 별을 처음 달았고, 1919년에는 자신의 모교인 웨스트포인트 교장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1937년 퇴역하였다가 1939년 2차 세계대전에 다시 복귀하여 예편할 때까지 33년간 장군으로 지냈다.

 

 

 

 

 

 

 

2차 세계대전에 승전한 미국은 1945년 9월 2일 미주리호 갑판에서 일본에게 항복문서를 받아내는데, 그 자리에 연합군 최고 사령관으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서명하였다.

 

 

맥아더 장군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한다. 전장에서 승리하면 자신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다는 소리를 들었고, 독단적이고 외골수적인 그의 행동이 결국 해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에게 여러 장단점이 있었지만 52년간의 군 생활, 그리고 미 극동사령부 최고 사령관과 유엔군 총사령관을 지낸 것을 보면 남들보다 뛰어난 출중한 능력을 지닌 군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그리고 6.25 한국전쟁에서 뛰어난 판단력과 통찰력, 지도력 등 52년간의 군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한국전쟁 전세를 뒤집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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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5.09.06 16: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맥아드장군의 유언..
    잘 보고갑니다.^^

  2. 유라준 2015.09.06 17: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일거에 전환시킨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네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3. ☆Unlimited☆ 2015.09.06 2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맥아더 정보 잘 보고 갑니다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증산도의 역사(종통과 도맥)

 

증산 상제님의 탄강과 창도創道

 

증산도를 열어주신 도조道祖는 증산 상제님이시다. 증산도는 증산 상제님의 탄강, 나아가 당신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행하신 말씀과 행적과 가르침에서 시작됐다.

증산 상제님은 1871(辛未)년 음력 9월 19일 전라북도 고부군(현 정읍시) 객망리客望里의 진주 강姜씨 집안으로 탄강해 일一 자, 순淳 자 존함으로 39년 생애를 보내셨다. 소년기부터 비범함을 보였고, 청년기 이후 천하를 주유하며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수많은 이적을 행하셨다. 세상 사람을 먹이고 살리고 고치고 도와주는 일에 헌신하셨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마련하신 적이 없었다.

1901년 음력 7월 7일, 그 전까지 막혀 있던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지상 인간세계와 천상 신명세계 사이의 문)을 활짝 열어 인간과 신명을 소통하게 하셨다. 또 이때부터 9년 동안 하늘과 땅과 인간 세상의 질서를 새로 짜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집행하여 장차 인류가 가을개벽을 극복할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셨다.

1909년 반려자이신 태모太母 고수부高首婦님에게 자신의 종통宗統을 잇게 하신 뒤, 인간으로의 생을 마감하고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서 하늘 보좌로 돌아가셨다(이를 어천御天이라 한다).

이처럼 증산 상제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내려주신 모든 말씀과 보여주신 모든 행적, 나아가 상제님의 가르침으로 많은 사람을 새 세상으로 인도하라고 하신 천명天命에서 증산도는 시작됐다.

 

 

 

태모太母 고수부首婦님의 종통宗統 승계

 

증산 상제님은 자신이 펼치신 대도大道와 인류 구원의 천명天命을 당신의 반려자이신 태모 고수부님에게 잇게 하셨다. 증산 상제님에게서 태모님으로 이어지는 이 종통이 증산도의 선명한 정통맥이다.

가을개벽 뒤 후천 세상에서는 음양陰陽이 온전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음양합덕陰陽合德)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 두 분이 함께 우주와 인간사를 주재하신다. 증산 상제님이 여성인 태모님에게 종통을 잇게 하신 것은 이 같은 섭리에 따른 것이다.

나아가 이처럼 태모님에게 종통을 전하심으로써, 상제님은 오랫동안 남성에게 억눌려온 여성의 모든 원한을 풀어주시고 남녀가 동등한(남녀동권男女同權) 새 질서를 세우셨다.




태모太母 고수부首婦님의 도문道門 개창

 

증산 상제님을 따르던 신도들이 결집한 증산도 도문道門이 처음으로 우뚝 선 것은 증산 상제님이 어천하시고 2년 뒤인 1911(辛亥)년의 일이다.증산 상제님의 종통宗統을 이어받은 태모 수부님이 신도들을 이끌어 전북 정읍 대흥리에 진리의 도장道場을 세움으로써 첫 도문을 여셨다. 이후 태모님은 세 차례에 걸쳐 도장을 옮기시며 증산 상제님의 대도大道와 천명天命을 세상에 펼치셨다. 증산 상제님이 내려주신 진리의 씨앗은 태모님을 통해 이 땅에 깊이 파종播種돼 그 뿌리를 내렸다.


 

시련 속에도 타오른 세번의 불길

 

태모님이 도문道門을 여신 뒤, 태모님을 대신해 이를 이끌게 된 차경석車京錫 신도는, 도문의 이름을 보천교普天敎라 하고 포교에 나섰다. 보천교는, 일제의 감시가 엄중하던 어려운 상황에도 폭발적인 도세道勢 확산을 이루었다. 조선 인구가 2천만이 안 되던 당시 신도가 7백만에 달해, 거대한 신앙 결사체이자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이 첫 번째 부흥이다.

그러나 급격한 세력 확산과 독립운동 지원을 두려워한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이 가해지면서, 도문은 해체되고 신도들은 지하로 숨어야 했다. 어렵게 명맥을 잇던 도문은 8.15 해방 후, 집안 대대로 신앙의 불씨를 간직해 온 안운산安雲山 태상종도사님이 증산도의 기치를 내걸고 포교에 나섰다. 태상종도사님의 혈심血心으로 다시 수십만 신도가 입도하면서 두 번째 신앙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런데 이 또한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무산됐고, 결국 증산도는 기나긴 휴계기休契期를 거치게 됐다.

그러나 일찍이 “삼천三遷(세 번 바뀜)이라야 내 일이 이루어지느니라”고 하신 상제님 말씀 그대로, 1970년대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과 안경전安耕田 종도사님께서 거듭 개척에 나섰고, 이로써 세 번째 부흥을 이루어 당당히 역사의 전면에서, 전 세계에 증산 상제님의 대도大道를 펼치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진리의 큰 열매 , 도전道典 발간

 

도전道典』은 인류가 오랫동안 꿈꾸어 온 새 세상의 희망이 담긴 진리의 성전聖典이요, 가을개벽 뒤 새로이 열리는 후천後天 문명의 교과서다. 『도전』 발간은 상제님의 진리가 세상에 펼쳐져 나가는 증산도 도운사道運史에 한 획을 긋는 귀중한 결실인 동시에,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대개벽기에 인류에게 주어진 크나큰 선물이다.

『도전』이 발간됨으로써 증산 상제님의 가르침이 비로소 세상에 그 진면목을 드러내게 되었고, 인류가 그동안 이루어온 동서 문명의 모든 진액津液이 집대성됐으며, 무엇보다 그동안 ‘증산’이라는 이름 아래 어지럽게 일어났던 난법亂法들을 물리치고 상제님의 확연한 종통맥을 세상에 선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같은 결실이 있기까지 그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증산 상제님께서 세상에 다녀가신 지 100여 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이 포덕에 나서신 지 60여 년, 그리고 안경전 종도사님이 편찬 작업에 몸을 던지신 지 30여 년 만인 1992년 『도전』 초판이 발간되고 그로부터 11년 뒤인 2003년 완결본(개정판)이 간행됐다. 관련된 기초자료 조사에만 20년이 걸렸다.

 

특히 안경전 종도사님이 이끄는 도전편찬위원회가 상제님과 태모님을 모셨던 성도들과 그들의 직계가족, 주변 인물 등 수백여 명의 증언을 채록하고, 상제님과 태모님의 행적을 따라 일일이 현장을 답사하여 인명, 지명, 연대年代까지 모든 것을 철저히 고증한 끝에 작업이 완결됐다. 그러한 필생의 작업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증산 상제님의 가르침과 생명의 진리 말씀을 마침내 누구든지 「손에 쥐고 대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도전』은 영어, 일어, 독일어,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돼 인류 구원의 교과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 증산도 100년의 역사 >

 

증산도 연혁 





1
10

31
39

1871
1880

1901
1909

증산 상제님 탄강
태모 고수부님 탄강

성도(成道)와 천지공사를 집행하기 시작하심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어천하심







41

 

1911

 

증산도 최초의 교단창립

- 증산 상제님께서 도통을 전하신 증산도의
종통연원인 태모(太母) 고수부(高首婦)님이 상제님의
성도를 모아 교단을 창립.
후에 700만 신도의 대부흥 시대로 발전함
- 일제의 민족 문화 탄압에 의한 교단 해체
(1936)로 침체

59

1929

초기경전인 대순전경 발간

65

1935

태모 고수부님 선화(仙化)








75

1945


증산도 제2 부흥 시대 개척

- 증산 상제님께서 숙구지 도수로 종통을
전하신 임술생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 태모 고수부님이
세번째 도장 살림을 주재하셨던 김제 용화동에서 시작하여
수십만에 이르는 대부흥시대를 개척하심.
6.25전쟁과 더불어 침체됨

84

1954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이 20년 휴게기 설정후 은둔하심







 

.







 

 


105 


1975


증산도 제3 부흥 시대 개척 시작(진법도운眞法道運)

-용봉도수와 선매숭자도수로 진법도운의 개척 사명을
맡으신 안경전 종도사님께서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을 모시고
진법 결실 도운을 개척하심
-태전 본부도장을 설치하고 새롭게 포교활동 전개


110

111

113

114

 


1980

1981

1983

1984
 


교전(敎典)
<<증산도의 진리>> 발간

대학생 포교회 발족

<<이것이 개벽이다(상.하)>> 발간

증산도 연호를 `大巡`에서 `道紀` 로 바로잡음

증산도 대학교 출범
 
118

 
1988

 

서울 올림픽 문화 행사 참여

제1차 증산도 대학생 개벽대치성 개최 (국토횡단 대장정)  
 

120


 

1990


 

증산도교수신도회 출범

증산도 대학생 제3차 개벽 대회

121




 

1991




 

증산도 대학생 4년제로 출범

제 1회 증산도 개벽 대치성(태전 충무체육관)

증산도 신앙대중화 선언

122
 

1992
 


<<
증산도 도전(道典)>> 발간
제 2회 증산도 개벽 대치성(태전 충무체육관)
낙태 반대 100만인 서명 운동
태전 지명 찾기 서명 운동

123 1993 증산도 번역위원회 출범
124 1994 증산도 전산망 "신천지" 오픈

125








 

1995








 


증산도 사상연구회 창립

영문판 <<甑山道 道典>> 발간

증산도 세계화 원년 선포

뉴욕 국제 포교센터 설립

제3회 증산도 개벽 대성회 (태전 한밭체육관)


126




 

1996




 

증산도 인터넷서비스(WWW)오픈

증산도 인터넷 PAP 서비스 정보엑스포 `96

구역제도로 조직 개편
127
1997
상임포감제도 시행

128

 

1998

 

증산도 대학교 위성방송 교육 실시


증산도 사상연구소 설립
 

129

 

1999

 

제세핵랑군 출범


일어판 <<甑山道 道典>> 발간

증산도교육 문화회관 착공
 

130

 

2000

 


<<Autumn Calling>> 출간

증산도 사상 논문집 창간호 출간

121주 태모님 성탄치성 봉행 (태전 충무체육관)

증산도대학교 인터넷방송 홈페이지 오픈 (동지치성 첫 방송)


131

 

2001

 


증산도 전국 개벽 대강연회 개최

<<증산도의 진리>> 개정판 발행


132

2002


증산도 전국 개벽 대강연회 개최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미주, 유렵 지역도장 순방

<<이것이 개벽이다>> 개정신판 출간

전국 대학가 천지공사 100년전(展) 패널전시회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개관 (12.14)
 


133

2003


일심포교핵랑 발대식

증산도 사상연구회 제1회 전국 세미나

인터넷 일심포교핵랑 발대식/
어린이 포교부 발족

<<증산도 도전(道典)>> 7개 국어 성편


<<쉽게 읽는 개벽>> 출간 / 외국인 태을주수행 워크샵 개최


134

2004


‘증산도 개벽문화한마당’ 매월 시행

‘전국 대학생 상생문화 한마당’ 행사 개최

증산도 대학생연합회, ‘韓의 뿌리와 미래’ 행사 개최

<<증산도 도전(道典)>> 증보판 완간본 출간

<<증산도 도전(道典)>> 6개국어 번역본,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출품

태상종도사님 어록 <<상생의 문화를 여는 길>> 출간


135

2005


<<쉽게 읽는 도전(道典)>>출간


안경전 종도사님, 해외순방 대강연회 개최

<<생활 도전(道典)>> 출간
/ <<개벽 실제상황>> 출간
 


136

2006


`大韓역사뿌리찾기`를 위한 대국민 GreatCorea 문화운동 전개


<<개벽 실제상황>> 독후감상문 공모전 시행

<<개벽 실제상황>> 이벤트(고구려 유적 및 백두산 답사) 시행


137

2007

<<천지의 도 춘생추살>> 발행 / STB 상생방송 본격 송출


138

 


2008

 


<<도전>> 강독 대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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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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