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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독립투사를 배출한 항일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

 

 

 

 

 

 

 

 

 

 

 

 

 

 

 

 

1905년 일제는 을사늑약을 강압으로 체결하면서 대한제국의 외교 주권을 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사실상 식민통치를 시작한다. 1907년 대한제국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애국지사들이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한 비밀결사조직 신민회를 만든다.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늑약과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는 등 침략야욕을 가속한다.

 

 

 

1909년 신민회 간부들을 중심으로 모여 만주에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군 양성 기지를 만들 것을 논의한다.

1910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일제는 이른바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사건(105인 사건, 신민회 사건)'을 날조하여 신민회 소속 애국지사들이 대거 체포되었고, 1911년 국내 신민회 조직은 와해되었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자 이회영 등 6형제와 석주 이상룡 등 많은 애국지사가 만주로 망명한다.

1911년 이회영 6형제, 이상룡, 김동삼, 이동녕 등을 중심으로 서간도(만주) 유하현 삼원보에 자치 조직인 경학사를 설립하고, 항일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연다.

 

 

 

 

신흥강습소의 궁극적인 목적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항일독립운동의 요람으로서 독립투사를 양성하기 위함으로 일반교과 과목과 함께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정신교육과 군사훈련도 병행했다.

 

현지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1912년 통화현 합니하로 자리를 옮기고 경학사를 대신한 자치기구 부민단을 조직하는 한편 중학교 과정과 군사반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독립군을 양성해나갔다. 이때부터 신흥무관학교가 항일독립운동의 요람으로 거듭 태어났다.

 

 

 

 

 

 

 

 

 

 

 

 

일제의 탄압과 무단정치가 날로 거세지고 서간도가 항일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알려지면서 망명하는 사람이 늘어나 1919년 유하현 고산자로 옮겨갔다. 자치기구 부민단은 한족회로 확대 개편한다.

 

유하현 고산자 신흥무관학교는 장교, 부사관, 특별반 등의 과정을 만들며 새롭게 확장하고 개편하면서 명실상부한 항일 무장 독립투사 양성기관으로서 항일독립운동의 요람이 되었다. 통화현 합니하의 학교는 분교가 되고, 통화현 쾌대무자에도 분교를 만들었다.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과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면서 1920년 항일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는 문을 닫는다.

일제가 서간도 지역의 항일독립운동가를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양민을 학살한다.

이상룡, 여준 등이 검성중학교, 신창학교 등을 설립하여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한다.

 

 

 

 

 

 

 

 

 

 

 

 

 

항일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는 약 3천 5백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서로군정부의 모태가 된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서간도 지역의 자치기구 한족회(경학사, 부민단)의 정치 군사조직 서로군정부는 임시정부 산하의 자치기관 서로군정서로 명칭을 바꾼다.

 

 

 

서일, 현천묵 등 대종교인들 중심으로 항일독립운동 단체 중광단을 만들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항일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중광단은 대한정의부, 대한군정서로 이름을 바꾼다.

임시정부 산하의 군사조직 서로군정서와 구분하기 위해서 북로군정서로 바뀐다.

신흥무관학교 출신 이범석 장군 등 많은 군사 전문가가 북로군정서에 와서 활약한다.

 

 

 

 

 

 

 

 

 

 

 

 

 

 

항일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가 배출한 3천 5백여 명의 항일무장독립투사들은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와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에 대거 참여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애국지사들은 여러 항일 무장투쟁 조직에도 참여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을 주도했다.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선 애국지사들이 모여 신흥무관학교를 항일독립운동의 요람으로 만들었다.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참여한 분들과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을 했던 분들,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항일독립운동에 뛰어든 수많은 애국지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사의 큰 줄기를 형성했으며, 항일독립투쟁사에 큰 획을 그었다.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참여했으며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은 친일청산과 민족의식 고취, 정통성 회복을 위해 항일독립운동과 민족교육의 상징이었던 신흥무관학교의 이름을 빌려 1947년 신흥전문학원을 설립했고, 1949년 초급대학 신흥대학으로 인가받았다.

 

 

 

신흥대학이 6·25전쟁으로 경영난에 처하게 되자 1951년 조영식이 학교를 인수하였다.

해방 후 한때 북한 김일성대학 교수로 재직했던 조영식은 1955년 그의 저서에 반국가적 내용이 있다는 혐의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사장 조영식은 1960년 학교 이름을 경희대학교로 바꿨고, 경희대학교는 신흥무관학교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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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03.19 0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가네요

  2. 뉴론7 2017.03.19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전 사진인데도 보면 왼지 그러네요.

  3. 피아랑 2017.03.19 1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이런 역사적인 곳이 있었군요.

환단고기』의 편찬과 대중화 (환단고기 출간의 우여곡절)

 

 계연수 선생의 환단고기 편찬

 『환단고기』는 1864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난 운초 계연수(1864~1920)가, 지인들로부터 구한 한민족의 정통 사서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안함로의 『삼성기』는 그의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것이고, 원동중의 『삼성기』는 인근의 태천에 살던 백관묵에게서 구하였다. 『단군세기』또한 백관묵의 소장본이고, 『북부여기』는 삭주 사람 이형식의 소장본이었다.『태백일사』는 그의 스승이자 항일운동 동지인 해학 이기의 집안에서 전해 오던 것이었다.

 

계연수는 원래 우리 옛 역사와 민족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여러 양반가와 사찰을 돌아다니며 비장 서책과 금석문, 암각문 등 옛 사료를 많이 수집하였다. 약초를 캐어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뿐 오로지 역사 밝히기에 골몰하다가 1897년 이기의 문하에 들어간 이후 여러 권의 역사서를 발간하였다.

 

이기는 정약용의 학통을 계승한 실학자로서 당대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또한 『단군세기』를 쓴 이암과 『태백일사』를 쓴 이맥의 직계 후손으로 우리의 고대사에도 해박하였다. 이기의 지도 아래 계연수가 발간한 역사서의 결정판이 바로 『환단고기』이다.

 

1911년 계연수는, 그의 벗이자 독립운동 동지인 홍범도와 오동진 두 사람의 자금 지원으로 만주 관전현에서 『환단고기』30부를 간행하였다. 이로써, 9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외세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동방 한민족이 절망과 통탄의 벼랑 끝에 서 있던 그때, 민족의 국통 맥을 천지에 선포하는 위대한 사서가 출간된 것이다.

 

계연수 선생의 죽음을 지켜본 이유립 선생

 

운초는 항일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천마산대, 서로군정서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57세 때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런데 당시 압록강에 처참하게 버려진 그의 시신이 수습되는 광경을 지켜본 한 소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훗날 『환단고기』를 널리 대중화시킨 이유립(1907~1986)이다.

 

이암과 이맥의 후손인 그는 평안도 삭주의 유지이자 독립운동가이던 이관집李觀楫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유립은 계연수와 친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13세 때(1919) 단학회가 주관하는 교육기관인 배달의숙倍達義塾에 들어가 계연수, 이덕수 두 스승의 강의를 들으며 『환단고기』를 공부하였다.

 

그 후 독립군의 통신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14세), 신간회의 삭주 지부를 결성하는(21세)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45년 광복 직후에는 단학회 기관지 『태극』을 발행, 그 주간主幹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에, 계연수 사후 그에게 전수된 『환단고기』를 가지고 월남하였다. 이후 단학회檀學會를 단단학회檀檀學會로 개칭하였고, 1963년 대전에 정착한 이후에는 후학을 기르며 역사 연구와 강연에 전념하였다.

 

환단고기 출간의 우여곡절

 

 

 

한문과 역사에 해박한 이유립에게 여러 사람이 배움을 청하였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오형기吳炯基였다.오형기는 한국 고대사의 실상을 알고자 하는 구도자적인 의지를 가지고 『환단고기』공부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1949년 이유립에게 『환단고기』를 빌려가 필사한 후 발문跋文을 써 붙였다. 그러나 책을 지은 사람이 쓰는 것이 상례인 발문을 오형기가 임의로 쓴 것에 대해 이유립은 심기가 편치 않았다고 한다.

 


이 필사본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이유립의 문하생 조병윤이 1979년에 서울의 광오이해사光吾理解社에서 이 필사본을 영인하여 100부를 출판한 것이다. 이른바 ‘광오이해사본’ 『환단고기』가 이유립의 허락도 없이 시중에 배포되었다.

 

이에 사태 수습 차원에서 이유립의 단단학회는 문제의 발문을 삭제하고 오자를 바로잡은 새로운 필사본을 만들었다. 원고는 1979년 그해에 완료되었으나, 출판비가 없어 1983년에야 배달의숙을 발행인으로 하여 100부 발간하였다.

 

일본인의 환단고기 왜곡

그 무렵 『환단고기』가 일본어로 번역·출판되는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광오이해사본을 입수하여 검토한 일본인 변호사 가지마 노보루鹿島昇가 『환단고기』를 일본 천황가의 뿌리를 밝혀 줄 수 있는 책이라 여긴 것이 발단이었다. 가지마는 ‘『환단고기』는 아시아의 지보至寶’라 극찬하고 자국의 정계와 재계의 후원을 끌어내어 1982년 ‘실크로드 흥망사’라는 부제를 붙인 일본어판 『환단고기』를 출간하였다.

 

 

 

 



하지만 이 일본어판은 환국 → 배달 → 고조선 → 고구려 → 대진국(발해) → 고려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를 배달 → 야마토일본 → 나라일본 → 헤이안시대로 이어지는 일본 역사로 둔갑시켜 놓았다. 동방 한민족의 역사가 중동 유대족의 역사에서 발원하였다는 황당한 주장도 하였다.

 

뒤이은 환단고기 번역본의 출간

 

당시 국내에서는 이유립과 임승국이 우리 고대사를 월간지 『자유』에 수년 동안 연재해 오던 터라, 한민족의 상고 역사와 신교 문화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인이 쓴 『환단고기』가 한국에 역수입되어 소개되자, 한국 역사학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1985년 당시 고등학교 교사이던 김은수가 첫 번역서를 낸 이후 오늘날까지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환단고기』번역본이 출판되고 있다.

 

 

 

 

잃어버린 한민족의 시원 역사와 문화를 복구하려다가 일제의 역사 도륙의 칼날에 무참히 죽어간 계연수와 그의 스승 이기,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역사 연구에 헌신하며 『환단고기』를 널리 알린 이유립! 이들은 모두 ‘한민족 사학의 아버지’라 불러 마땅하다 하겠다. 

* 자세한 내용은 『환단고기(상생출판)』 참고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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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는 죽었다."

역사비평가 이주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 신간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역사의아침)에서 한국사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이 책에서 그는 작정한 듯 주류 역사학계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조선사편수회가 창안한 식민사관이 지금도 주류 역사학계를 통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 사학계의 태두로 불리는 고(故) 이병도 선생 등 주류 역사학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것은 물론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 국가기관들도 앞장서서 식민사관을 확대 재생산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류 역사학계 전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며 주류 역사학계에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면서 "문제는 식민사관"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병도 박사 등 주류 역사학계를 비판하는 것은 하나의 금기가 됐고 학계에 있는 분들은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하기 힘든 상황"이라면서 "주류 역사학자들이 쓴 텍스트 등 근거를 갖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관은 총체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함축하고 개인, 사회, 국가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담아내고 있어 단순히 역사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식민사관이 죽어야 희망이 있다"고 역설했다.

(연합뉴스 인터뷰 일부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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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의한 역사왜곡은 일제강점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계연수 선생의 환단고기 편찬

 

『환단고기』는 1864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난 운초 계연수(1864~1920)가, 지인들로부터 구한 한민족의 정통 사서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안함로의 『삼성기』는 그의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것이고, 원동중의 『삼성기』는 인근의 태천에 살던 백관묵에게서 구하였다. 『단군세기』또한 백관묵의 소장본이고, 『북부여기』는 삭주 사람 이형식의 소장본이었다.『태백일사』는 그의 스승이자 항일운동 동지인 해학 이기의 집안에서 전해 오던 것이었다.

 

계연수는 원래 우리 옛 역사와 민족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여러 양반가와 사찰을 돌아다니며 비장 서책과 금석문, 암각문 등 옛 사료를 많이 수집하였다. 약초를 캐어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뿐 오로지 역사 밝히기에 골몰하다가 1897년 이기의 문하에 들어간 이후 여러 권의 역사서를 발간하였다.

 

이기는 정약용의 학통을 계승한 실학자로서 당대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또한 『단군세기』를 쓴 이암과 『태백일사』를 쓴 이맥의 직계 후손으로 우리의 고대사에도 해박하였다. 이기의 지도 아래 계연수가 발간한 역사서의 결정판이 바로 『환단고기』이다.

 

1911년 계연수는, 그의 벗이자 독립운동 동지인 홍범도와 오동진 두 사람의 자금 지원으로 만주 관전현에서 『환단고기』30부를 간행하였다. 이로써, 9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외세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동방 한민족이 절망과 통탄의 벼랑 끝에 서 있던 그때, 민족의 국통 맥을 천지에 선포하는 위대한 사서가 출간된 것이다.

 

 

계연수 선생의 죽음을 지켜본 이유립 선생

 

운초는 항일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천마산대, 서로군정서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57세 때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런데 당시 압록강에 처참하게 버려진 그의 시신이 수습되는 광경을 지켜본 한 소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훗날 『환단고기』를 널리 대중화시킨 이유립(1907~1986)이다.

 

 

일본인의 환단고기 왜곡

환단고기』가 일본어로 번역·출판되는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광오이해사본을 입수하여 검토한 일본인 변호사 가지마 노보루鹿島昇가 『환단고기』를 일본 천황가의 뿌리를 밝혀 줄 수 있는 책이라 여긴 것이 발단이었다. 가지마는 ‘『환단고기』는 아시아의 지보至寶’라 극찬하고 자국의 정계와 재계의 후원을 끌어내어 1982년 ‘실크로드 흥망사’라는 부제를 붙인 일본어판 『환단고기』를 출간하였다.

 

하지만 이 일본어판은 환국 → 배달 → 고조선 → 고구려 → 대진국(발해) → 고려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를 배달 → 야마토일본 → 나라일본 → 헤이안시대로 이어지는 일본 역사로 둔갑시켜 놓았다.

동방 한민족의 역사가 중동 유대족의 역사에서 발원하였다는 황당한 주장도 하였다.

(상생출판 환단고기 완역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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