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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무장독립투쟁사에 길이 남을 전승(戰勝)의 주역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

한韓문화 중심채널 STB 상생방송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
















일본 제국주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전설적인 항일 독립투사가 1943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올해는 어려서 조실부모한 머슴 출신의 위대한 독립군 대장 여천(汝千) 홍범도 장군(1868~1943)과 이름 모를 항일 독립투사들이 항일 무장투쟁사에서 길이 남을 역사적 대승리를 일궈낸 봉오동전투 전승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위대한 영웅 여천 홍범도 장군은 1920년 봉오동전투뿐만 아니라 항일독립전쟁사에서 사상 최대의 승리를 거둔 청산리전투 전승의 주역 중 한 분이셨습니다. 봉오동전투는 1920년 6월 4일은 일본군 헌병초소를 습격하면서 시작됐고, 6월 7일 일본 제국주의 정규군을 대패 시켜 항일독립군의 사기를 진작시킨 역사적인 승리였습니다. 



항일독립전쟁사에서 1920년 6월 봉오동전투와 10월 청산리전투, 1933년 7월 대전자령전투를 독립군 3대 대첩으로 꼽습니다. 

여천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 3대 대첩 중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입니다.












 

여천 홍범도 장군은 세상에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9살에 아버지까지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님을 모두 여윈 가난한 머슴은 후일 생계를 위해 산포수가 되었고, 산포수에서 의병, 의병에서 전설적인 항일무장독립군이 되었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의 최일선에서 의열단을 진두지휘한 의열단장 김원봉 선생은 일본 제국주의가 무서워했던 인물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얼마나 무서워했으면 약산 김원봉의 현상금이 백범 김구 선생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가 약산 김원봉 선생과 함께 가장 무서워한 사람이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 여천 홍범도 장군이었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서서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운초 계연수 선생이 <환단고기>를 발행할 때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이 자금을 마련해줬습니다.














운초 계연수 선생(1860~1920)은 여천 홍범도 장군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동지였습니다.

계연수 선생이 1911년 <삼성기 상>, <삼성기 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다섯 권의 책을 합편하여 <환단고기> 초판 3부를 발행할 때 편찬자금을 지원했습니다.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허허벌판이었던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이주했습니다.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한 홍범도 장군은 조국의 독립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머나먼 이국땅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2020년은 항일무장투쟁사에 길이 남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 전승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봉오동전투 전승 100주년이 되는 2020년 후반기에는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묻혀 있는 여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될 것이라고 합니다. 한韓문화 중심채널 증산도 STB 상생방송은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전투 전승 100주년을 맞아 특집다큐를 준비했습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한韓문화 중심채널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 특집 다큐멘터리


방송 일시: 2020년 6월 7일 일요일 오후 1시, 밤 9시






증산도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jsd.or.kr/




STB 상생방송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stb.co.kr/




STB 상생방송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uVqEvJ0OCKinqw1e9rCVew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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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_soyeon 2020.06.03 0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가오 ㅎㅎ

  2. Ih❤rb 2020.06.03 05: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ㅎㅎ

  3. *저녁노을* 2020.06.03 0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날 되세요.
    편성표..잘 보고가요

  4. kangdante 2020.06.03 0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범도장군에 대해 알고 갑니다
    오늘도 여유로운 하루되세요.. ^^

  5. 케이와니스토리 2020.06.03 0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봉오동전투 정말 재미있게 영화봤는데 ~~너무 기대되요^^

  6. 청결원 2020.06.03 17: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 화이팅 되는 하루 되세요~

한韓문화 중심채널 증산도 STB 상생방송 예고

STB 다큐멘터리 예고

<항일무장 투쟁의 영웅,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여천(汝千) 홍범도(洪範圖) 장군>

 

 

 

 

 

 

 

 

 

 

1868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조실부모하여 머슴살이와 포수로 지냈던 여천 홍범도 장군

포수 출신의 항일의병장에서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 되어 일본군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여천(汝千) 홍범도 장군

 

 

 

한韓문화 중심채널 증산도 STB 상생방송에서는 2017년 12월 22일 항일무장투쟁의 최일선에서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무장활동을 이끌었지만,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머나먼 이국땅 카자흐스탄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으신 여천 홍범도 장군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합니다.

 

 

 

 

 

 

 

 

 

 

19세기 말 일본이 조선의 국모를 시해하고 국권 침탈의 야욕을 보이자 홍범도 장군은 항일무장투쟁에 투신하였습니다. 

 

여천 홍범도 장군은 비록 정식 교육은 받은 무관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탁월한 전략과 전술로 항일의병대와 대한독립군을 지휘하여 일본군을 대파하였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봉오동 대첩과 청산리 대첩의 중심에는 여천 홍범도 장군이 있었습니다.

 

여천 홍범도 장군은 항일의병장과 대한독립군 시절 '하늘을 나는 홍범도',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일본군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위대한 용장이었습니다.

 

 

 

 

 

 

 

 

 

여천(汝千) 홍범도 장군과 송암(松菴) 오동진 장군은 자금을 지원하여 1911년 한韓민족과 인류 창세 역사와 문화 정신이 기록된 환단고기 초간본 30부가 발간됐습니다.

 

항일무장투쟁에서도 누구보다 앞장섰던 여천 홍범도 장군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정신을 복원하는 데도 앞장섰습니다.

 

 

 

 

여천 홍범도 장군은 조국(대한민국과 북한)과 항일 무장투쟁 활동의 주무대였던 현재의 중국과 당신님이 묻혀 계신 구소련에서도 철저하게 외면당했습니다.

 

1937년 구소련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현재의 카자흐스탄으로 옮겨가게 된 여천 홍범도 장군은 조국이 광복되기 2년 전인 1943년 10월 25일 서거하셨습니다.

 

 

 

 

 

 

 

 

 

 

 

한韓문화 중심채널 증산도 STB 상생방송은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80년을 맞아 특집 다큐멘터리 여천 홍범도 장군을 방송합니다. 

 

 

아직도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묻혀 계신 항일 무장투쟁의 주역, 항일 독립운동의 전설적인 영웅 여천 홍범도 장군의 파란만장하고 위대한 삶의 이야기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한韓문화 중심채 증산도 STB 상생방송

다큐멘터리 항일독립전쟁의 살아있는 전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

 

방송 일시: 2017년 12월 22일 금요일 오전 11시

 

 

 

 

증산도 STB 상생방송 홈페이지 바로 가기

http://www.stb.co.kr/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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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12.19 06: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오늘 또 다시 추워진다고 합니다
    건강 유의 하세요~^^

  2. 버블프라이스 2017.12.19 0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증산도 STB 상생방송 다큐는 '여천 홍범도 장군'의 관한 이야기 이군요?
    12월 22일 금요일 오전 11시 에 본방사수 해야겠습니다^^

  3. *저녁노을* 2017.12.19 2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안한 밤 되세요
    잘 보고 공감하고가요

"한국사는 죽었다."

역사비평가 이주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 신간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역사의아침)에서 한국사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이 책에서 그는 작정한 듯 주류 역사학계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조선사편수회가 창안한 식민사관이 지금도 주류 역사학계를 통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 사학계의 태두로 불리는 고(故) 이병도 선생 등 주류 역사학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것은 물론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 국가기관들도 앞장서서 식민사관을 확대 재생산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류 역사학계 전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며 주류 역사학계에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면서 "문제는 식민사관"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병도 박사 등 주류 역사학계를 비판하는 것은 하나의 금기가 됐고 학계에 있는 분들은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하기 힘든 상황"이라면서 "주류 역사학자들이 쓴 텍스트 등 근거를 갖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관은 총체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함축하고 개인, 사회, 국가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담아내고 있어 단순히 역사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식민사관이 죽어야 희망이 있다"고 역설했다.

(연합뉴스 인터뷰 일부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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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의한 역사왜곡은 일제강점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계연수 선생의 환단고기 편찬

 

『환단고기』는 1864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난 운초 계연수(1864~1920)가, 지인들로부터 구한 한민족의 정통 사서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안함로의 『삼성기』는 그의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것이고, 원동중의 『삼성기』는 인근의 태천에 살던 백관묵에게서 구하였다. 『단군세기』또한 백관묵의 소장본이고, 『북부여기』는 삭주 사람 이형식의 소장본이었다.『태백일사』는 그의 스승이자 항일운동 동지인 해학 이기의 집안에서 전해 오던 것이었다.

 

계연수는 원래 우리 옛 역사와 민족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여러 양반가와 사찰을 돌아다니며 비장 서책과 금석문, 암각문 등 옛 사료를 많이 수집하였다. 약초를 캐어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뿐 오로지 역사 밝히기에 골몰하다가 1897년 이기의 문하에 들어간 이후 여러 권의 역사서를 발간하였다.

 

이기는 정약용의 학통을 계승한 실학자로서 당대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또한 『단군세기』를 쓴 이암과 『태백일사』를 쓴 이맥의 직계 후손으로 우리의 고대사에도 해박하였다. 이기의 지도 아래 계연수가 발간한 역사서의 결정판이 바로 『환단고기』이다.

 

1911년 계연수는, 그의 벗이자 독립운동 동지인 홍범도와 오동진 두 사람의 자금 지원으로 만주 관전현에서 『환단고기』30부를 간행하였다. 이로써, 9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외세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동방 한민족이 절망과 통탄의 벼랑 끝에 서 있던 그때, 민족의 국통 맥을 천지에 선포하는 위대한 사서가 출간된 것이다.

 

 

계연수 선생의 죽음을 지켜본 이유립 선생

 

운초는 항일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천마산대, 서로군정서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57세 때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런데 당시 압록강에 처참하게 버려진 그의 시신이 수습되는 광경을 지켜본 한 소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훗날 『환단고기』를 널리 대중화시킨 이유립(1907~1986)이다.

 

 

일본인의 환단고기 왜곡

환단고기』가 일본어로 번역·출판되는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광오이해사본을 입수하여 검토한 일본인 변호사 가지마 노보루鹿島昇가 『환단고기』를 일본 천황가의 뿌리를 밝혀 줄 수 있는 책이라 여긴 것이 발단이었다. 가지마는 ‘『환단고기』는 아시아의 지보至寶’라 극찬하고 자국의 정계와 재계의 후원을 끌어내어 1982년 ‘실크로드 흥망사’라는 부제를 붙인 일본어판 『환단고기』를 출간하였다.

 

하지만 이 일본어판은 환국 → 배달 → 고조선 → 고구려 → 대진국(발해) → 고려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를 배달 → 야마토일본 → 나라일본 → 헤이안시대로 이어지는 일본 역사로 둔갑시켜 놓았다.

동방 한민족의 역사가 중동 유대족의 역사에서 발원하였다는 황당한 주장도 하였다.

(상생출판 환단고기 완역본 中)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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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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