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저자 이유립' 태그의 글 목록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9.03.15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 (4)
  2. 2019.03.14 유사역사학 환단고기의 저자 이유립 (3)
  3. 2019.03.13 환단고기의 저자 한암당 이유립 (3)

우리의 역사와 문를 왜곡 조작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식민사학자보다 더 악랄한 행태

초잡식의 천박한 논리와 불순한 의도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

 

 

 

 

 

 

 

 

 

 

 

 

 

유착(癒着)은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결합하여 있는 것이라고 사전에서 그 의미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서로 분리된 활동영역에서 독립활동을 하거나 견제해야 할 개인과 단체가 서로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해주면서 한 몸이 된 것을 유착이라고 합니다.

 

회적 병리 현상으로 대표적인 유착은 정관유착, 권언유착, 정경유착 등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유착은 각자 이익 추구를 위해 부도덕한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 곧 유사역사학계는 『환단고기』의 저자가 이유립 선생이라고 주장하는데, 절대 아닙니다.

 

 

초록불의 잡학다식(이하 초잡식)이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 글에서 두 가지 음흉한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유립 선생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80년대 신군부와 마치 유착한 것처럼 보이기 위한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전혀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환단고기의 저자가 이유립 선생이라고 주장해 환단고기가 현대에 조작된 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함입니다.

 

 

 

 

 

 

 

 

 

 

2007년 9월호 신동아 권말부록 <환단고기의 진실> 기사는 <제1부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제2부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동아의 <환단고기의 진실>에서는 『환단고기』가 도대체 어떤 책이며, 저자는 누구인가, 어떻게 전수되었고, 『환단고기』 원본은 있는가, 이유립 선생은 어떻게 『환단고기』를 입수했는가, 『환단고기』의 원저자, 『환단고기』의 내용, 계연수 선생과 이유립 선생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변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자료 조사를 통해 심층적으로 보도한 내용입니다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이란 제목으로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초잡식은 추잡한 상상력을 발휘한 추측과 음해성 글입니다. 초잡식의 글을 보면 『환단고기』 저자가 이유립 선생이라고 일방적으로 단정하고,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하고, 남을 비방하고, 서로 싸우고 등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득합니다.

 

 

 

 

 

 

 

 

 

 

초잡식의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 글에는 2007년 9월호 신동아 권말부록의 글을 중간중간 인용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내용 해학 이기 선생께서 감수한 다섯 권을 묶어 1911년 운초 계연수 선생이 『환단고기』를 편찬했다는 것과 『환단고기』를 구성하고 있는 다섯 권의 저자와 각 권의 내용은 아예 인용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초잡식은 신동아 2007년 9월호와 다른 자료를 부분 인용했는데, 오직 이유립 선생에 대한 이미지를 훼손하기 위한 내용일 뿐이었습니다.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의도적으로 배제된 것이 분명하다.(초잡식의 일방적 추측)', '이 책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로 국사공청회에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초잡식의 일방적 추측)' '그가 하루아침에 축출되어 버린 것이다.(초잡식의 일방적인 추측)', '이유립은 더 이상 <자유> 지에 글을 실을 수 없게 된 것이라 추측하게 된다.', '이러한 주장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초잡식의 일방적 추측)' 등 온갖 추측으로 이유립 선생을 음해하고 있습니다.

 

 

 

 

 

 

 

 

 

 

초잡식은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에서 이유립 선생의 삶을 상상력을 동원해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주변 인물들 역시 서로 다투고 권력에 읍소했다는 등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초잡식의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 글 제목처럼 과연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사실이 있는지가 핵심이지만, 초잡식의 글에는 제목을 뒷받침해줄 아무런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초잡식의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의 글 <이유립과 군부 집권세력 '국수주의'로 유착> 챕터에서 제목처럼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듯한 착각을 들게 만드는데, 내용에는 이유립 선생이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니다.

 

 

80년대는 신군부가 집권하던 시기였다는 말로 시작해 이유립 선생이 한때 글을 기고했던 <자유>가 군납잡지였고, 육군본부 정훈교재에 환단고기가 참고도서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유립 선생이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초잡식은 '(신군부)이들이 얼마나 유사역사학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라고만 할 뿐 정작 이유립 선생과 신군부와의 유착관계 사실이 스스로 없다고 말한다는 사실입니다.

 

 

 

 

 

 

 

 

 

 

또 초잡식은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의 <이유립과 군부 집권세력 '국수주의'로 유착> 챕터에서 이유립 선생을 80년대 신군부와 연결하려는 음흉한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신동아 2007년 9월호 권말부록 <환단고기의 진실>의 <제2부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에는 5공 실세, 군부와 연결된 이유립이란 챕터가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 것을 되찾으려는 민족주의적 경향이 일어나면서 5공 실세와 군인들이 이유립을 찾게 됐다. 이유립을 만난 5공 실세는 민족주의 운동을 일으키려 했다. 1983년 5공화국은 '국풍(國風) 83'이라는 행사를 벌였는데, 이는 이유립씨의 영향을 받아 5공 실세들이 마련한 민족주의 이벤트였다. 군인들은 이씨의 역사 강의를 주로 들었다.'라는 내용을 초잡식이 인용합니다.

 

위의 글을 두고 초잡식은 '이유립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국풍 83이 아니라 81이다.'라고 하면서 '이러한 주장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라고 오타와 근거 없 추측으로 이유립 선생을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것처럼 엮으려고 했습니다.

 

 

 

 

 

 

 

 

 

 

 

80년대 신군부가 이유립 선생에게 접근한 것과 이유립 선생이 역사 강의를 한 것이 어떻게 80년대 신군부와 유착인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습니다.

 

 

또 이유립 선생이 80년대 신군부를 찬양하지 않았는데, 이념 편향적 프레임을 씌워 마치 이유립 선생도 신군부를 찬양한 것처럼 진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유립 선생이 전두환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초잡식이 설명했듯이 <중앙청 철거 보류>에 항의하기 위한 내용입니다.

초잡식은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 글 <이유립과 군부 집권세력 '국수주의'로 유착> 챕터에서 이유립 선생이 전두환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유립 선생이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사실이 없고, 위의 글과 주제가 다르면 마땅히 소제목을 따로 써서 위의 글과 연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초잡식은 <이유립과 군부집권세력 '국수주의'로 유착> 챕터에 이유립 선생이 전두환에게 보낸 <중앙청 철거 보류> 편지글 사이에 달랑 사진 한 장만 끼워 넣어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이유립 선생과 80년대 신군부의 왕초 전두환과 연결된 것처럼 보이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전두환은 1980년대는 현직 대통령이었고, 퇴임 후는 전직 대통령의 신분이었습니다.

1997년 대법원에서 전두환은 내란 및 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습니다.

내란 수괴는 옛날 말로 하면 역적의 우두머리입니다.

 

 

대통령이 탄핵당한 前 정부 청와대에 민원을 낸 국민과 現 정부의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국민이 특정 이념을 가진 국민이 아니듯이 국민이라면 좌우 이념과 관련 없이 누구나 대통령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데, 초잡식이 80년대 신군부 우두머리 전두환 이름을 들먹이며 이념적 프레임을 덧씌우려는 불순한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현직 대통령에게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1909년 해학 이기 선생이 설립한 단학회를 계승하여 단단학회라고 개칭하고 3대 회장이 되었습니다.

환단고기를 감수한 해학 이기 선생이 단학회 1대 회장, 이유립 선생의 스승이며 환단고기 편저자인 운초 계연수 선생이 단학회 2대 회장입니다.

 

 

초잡식의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의 글 <이유립과 군부집권세력 '국수주의'로 유착> 챕터 바로 위에 전북대 철학과 故 이강오 교수의 <한국신흥종교총감>에 나온 이유립 선생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일본의 신도, 한국의 기독교, 불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를 유사종교로 분리했습니다.

일제의 유사종교 정책이 해방 후 특정 종교가 득세하면서 그대로 자리 잡으면서 일제강점기와 같이 옛날부터 내려온 우리의 고유문화를 비롯해 신흥종교를 배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초잡식의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 글을 보면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우리의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편 유사종교정책을 다시 보는 듯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초잡식이 우리의 참역사를 매도할 때 자주 사용하는 '유사역사학' 용어의 출처도 조선총독부입니다.

 

 

 

한국사상과 한국철학을 강의하던 전북대 철학과 교수 이강오가 신흥종교연구소를 설립하고 한국 신흥종교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초잡식이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 글을 통해 이강오 전 교수의 글을 빌미로 독자에게 이유립 선생이 신흥종교 교주라는 사이비적 뉘앙스를 풍겨 마치 사이비 교주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기 위한 교묘한 술책입니다.

 

 

 

 

 

 

 

 

 

단단학회 3대 회장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단단학회를 태백교(太白敎)라고 칭한 것은 『환단고기』 본문에 나오는 내용과 특히 『삼성기 상』, 『삼성기 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다섯 권을 묶어 『환단고기』를 편찬한 운초 계연수 선생의 『환단고기』 범례에서 "과태백진교중흥지기여(果太白眞敎重興之基歟) 대광명의 동방 신교의 진리 가르침이 중흥하는 기틀이 아니고 무엇이랴!"란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유립 선생이 단단학회를 태백교(太白敎)라고 한 것은 현재 사용하는 종교(宗敎) 개념이 아닙니다.

 

 

 

태백진교란 '대광명의 동방 신교의 참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인류 뿌리문화 신교를 통칭하는 말이다. 『환단고기』 저자들은 우주광명 사상을 담고 있는 '동방 신교'를 '태백진교'라는 표현으로 자주 쓴다.

(『환단고기』 역주본)

 

 

 

 

 

 

 

 

 

 

증산도 『도전道典』 초판 간행사 中 - 종교(宗敎) 

 

현재 '종교'라는 말은 불교 기독교 유교 등의 개별 종교들을 총칭하는 유(類)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에 서양의 'religion'의 번역어로 쓰이게 되면서 일반화된 것이다.

 

그러나 원래 종교는 '부처의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다.

서기 600년경 중국의 천태산지자(天台山智者)의 저서 『법화현의法華玄儀』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종(宗)은 부처가 직접 설법해 놓은 것이고, 교(敎)는 이것을 알기 쉽게 강해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서양의 'religion'을 번역할 때 동양에는 이에 해당하는 용어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 학자들이 "릴리전"을 불가에서 쓴 '종교'라는 엉뚱한 말로 처음 번역하였던 것이다.

 

본래 '릴리전(religion)'의 어원은 라틴어의 'religio'로 '재결합'이라는 뜻이다.

즉 죄를 지은 인간이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와 신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의 릴리전이 본래 앞에서와 같은 뜻을 가진 불교의 종교로 번역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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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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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15 04: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단고기의 저자 이유립 선생의 이야기가 많군요?
    80년대 신군부와 유착 글 잘 읽고 공감누르고 갑니다^^

  2. kangdante 2019.03.15 0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 36년은 저주하면서
    수십만명을 죽인 6.25전쟁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모르겠어요

  3. 청결원 2019.03.15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남은 하루 마무리 잘 하세요~

  4. 죽풍 2019.03.15 2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제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 보니
    나베같은 인간이 공당의 대표로 목소리를 높이는 현실입니다.
    역사공부 확실히 해야겠습니다.

군부독재와 연결하려는 식민사학의 야비한 술책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 저자 이유립>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유사역사학의 일방적 주장 - <환단고기의 저자 한암당 이유립 선생>

 

 

 

 

 

 

 

 

 

 

 

 

 

흔히 중국이 자국의 역사를 높이고 숨기고 과장해 역사를 왜곡하는 기술방식을 춘추필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춘추필법도 울고 갈 정도로 역사를 왜곡 조작하는 무리가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는 우리의 역사 뿌리를 송두리째 파괴해 중국의 춘추필법이 감히 쫓아올 수 없 전인미답의 역사, 이른바 유사역사학을 만들었습니다. 현 주류 강단사학계는 식민사학의 비법을 그대로 전수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명실상부한 유사역사학의 적통적자입니다.

유사역사학계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환단고기』의 저자 이유립 설은 100% 거짓말입니다.

 

 

 

 

 

 

 

 

 

 

『환단고기』는 1911년 운초 계연수 선생이 다섯 권의 책을 묶어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편찬한 책입니다.

비록 유사역사학의 적통은 아니지만,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면서 유사역사학의 적통 흉내를 내는 윤통(閏統) 유사역사학 나팔수가 여럿 있습니다.

 

유사역사학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초록불의 잡학다식(이하 초잡식)2019년 2월 12일 자신이 애용하는 인터넷 신문에 팩트체커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의 저자 이유립>이란 글을 기고했습니다.

 

 

 

팩크체커는 국민을 기만하기 위한 조잡한 술수에 불과하며 초잡식이 사실 확인자로서 전혀 자질도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잡식은 2007년 9월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이 쓴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초잡식의 지극히 불순한 의도는 인터넷 신문에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한 환단고기의 저자 이유립>이란 제목으로 기고한 내용에 여실히 나옵니다.

 

 

2007년 9월호 신동아에 <환단고기의 진실 -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가 권말부록으로 실렸습니다.

초잡식은 이승만 정부 시절 구금 내용만 언급했는데, 『환단고기』를 대중화시킨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이승만 정부 때 이씨 왕조를 보존하자는 주장을 펼치다가 왕정주의자로 몰려 구금됐었고,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해에도 예비검속에 걸려 한 차례 구금됐다고 나옵니다. 

 

 

신동아 기사에는 이유립 선생이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군사정부에 의해 두 차례 구금됐다고 나옵니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 유사역사학 나팔수 노릇을 하는 초잡식은 『환단고기』의 저자가 이유립 선생이며, 1952년 7월 16일 자 경향신문 기사까지 그림 파일로 스크랩하고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관련된 기사 내용을 나름 자세하게 인터넷 신문에 기고했습니다.

 

굳이 육하원칙과 기승전결까지는 아니더라도 팩트체커라면 시작과 결말의 사실관계를 올바르게 전해 독자가 오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경향신문의 기사 제목은 <왕정복구를 몽상, 일당 8명을 검거 문초 중>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이유립 선생을 포함해 8명 중 4명은 기소, 4명은 불기소됐다는 내용입니다.

 

 

 

 

 

 

 

 

 

 

유사역사학을 추종하는 초잡식이 거론한 <왕정복구를 몽상, 일당 8명을 검거 문초 중> 사건은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조총련의 지령을 받아 일본에 있던 영친왕을 국가 수령으로 받드는 왕정복구를 위해 소위 정치혁명민족협의회라는 지하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던 중 일망타진됐다는 기사입니다.

 

 

1952년 7월 16일 자 경향신문 기사 내용도 담당 검사는 사건 내용을 비밀에 부치고 있어 알 수 없었고, 단지 기자가 탄문한바에 의한 기사 내용입니다. 

 

 

지금은 그나마 조금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1948년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이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면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은 군사정권을 포함한 소위 우익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더더욱 심했습니다.

 

 

 

 

 

 

 

 

 

 

초잡식이 기고한 내용만 보면 유사역사학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환단고기』의 저자 한암당 이유립 선생을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범법자라는 뉘앙스를 독자에게 주려는 간악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초잡식을 비롯하여 유사역사학계가 『환단고기』 저자라고 주장하는 한암당 이유립 선생의 사건만 해도 60여 년 전 사건이며 이미 종결된 사건입니다.

 

 

 

초잡식이 한암당 이유립 선생의 사건을 거론하려면 특정인이 실정법 위반으로 검찰이 기소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억울한 누명을 벗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도 모두 기술해야 오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환단고기』의 편저자인 스승 운초 계연수 선생으로부터 『환단고기』를 전수받아 대중화시킨 한암당 이유립 선생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초잡식이 또 어떤 변명을 댈지 자못 궁금해 집니다.

 

 

 

 

 

 

 

 

 

 

『환단고기』를 대중화한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1950년대 우리의 참역사를 찾고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방편으로 잠시 정치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정복구를 몽상, 일당 8명을 검거 문초 중> 사건을 겪은 이후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본인 때문에 주변인이 고초를 겪었고, 정치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정신을 회복하는 길이 요원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순수하게 우리 참역사와 문화를 찾는데 진력할 것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하늘과 같이 떠받들고 사는 유사역사학이 『환단고기』의 저자라고 생떼를 쓰고 있는 한암당 이유립 선생 외 14명은 1961년 9월 5일 일본에 있던 영친왕에게 환국(還國)을 바라는 서신을 보냅니다.

 

"상지회 대표 이유립 등은 삼가 재계하고 백 번 절하면서 우리 황태자 영친왕 전하게 아룁니다.......... 중략..........

엎드려 절하건대 속히 환국의 계획을 결정하시어, 월나라 새와 기 땅의 말에게 기롱을 받지 마시고, 두견새의 원한을 만들지 마십시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단기 4294년(1961) 9월 5일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때 국가보안법은 무소불위의 무시무시한 괴물로 작용했습니다.

더욱이 1960년 5월 16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서슬 퍼런 군사정권이었습니다.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이승만 정권 때 <왕정복구를 몽상, 일당 8명을 검거 문초 중> 기사처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적이 있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이현령비현령이어서 『환단고기』를 대중화시킨 한암당 이유립 선생 외 14명이 죽음을 무릅쓰고 영친왕의 환국을 바라며 쓴 편지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 때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좌익활동과 전혀 관계가 없지만, 단지 요주의 인물로 찍혀서 소위 예비검속으로 잠시 구금한 것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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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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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14 04: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어제에 이은 유사역사학 환단고기의 저자 이유립 선생의 이야기이군요? 덕분에 추가 내용을 잘보고 갑니다^^

  2. kangdante 2019.03.14 0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가 아무리 승자의 독식이라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역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3. 죽풍 2019.03.14 2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왜곡하는 기술방식인 춘추필법.
    오늘도 하나 배우고 갑니다.

행촌 이암, 일십당 이맥, 해학 이기 등 고성 이씨 가문의 유업을 완수한 한암당 이유립 선생

『환단고기』의 편저자 운초 계연수 선생,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저자가 아니고 전수자이며 재출간자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 말살하고 일제의 식민사관에 근거해 만든 가짜역사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무리가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입니다.

 

 

주류 강단사학계가 추종하는 일제 식민사학이 정통국사라고 주장하기 위해 진짜 정통국사(正統國史)를 기록한 환단고기를 무조건 위서(僞書)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친일잔재인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우기는 것 중의 하나가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환단고기의 저자라는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은 수백 년에서 천여 년 이전에 지은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다섯 권 사서의 저자를 공격하기보다는 먼저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현대 들어 조작한 가짜역사서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1979년 발간한 『환단고기』의 저자이며 조작한 위서라고 주장합니다.

 

 

 

 

 

 

 

 

 

 

『환단고기』는 분명히 원저자와 감수자, 편저자와 전수자 엄연히 다른데도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은 직접 확인도 없이 『환단고기』 위서론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은 한암당 이유립 선생과 제자, 그리고 가족 등 『환단고기』와 직간접적으로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을 직접 만나 확인하고 『환단고기』 출판 과정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사실도 없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은 『환단고기』의 내용 중에서 인명, 지명, 사건 등 초등학생도 다 알 수 있는 내용밖에 모릅니다.

『환단고기』의 인명, 지명, 사건을 제외한 그 밖의 내용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한 부류들로, 한 마디로 강단사학계는 눈뜬장님에 지나지 않습니다. 

 

 

 

 

 

 

 

 

 

 

1948년 한암당 이유림 선생은 1911년 출간된 『환단고기』 초간본을 가지고 월남했습니다.

1949년 한암당 이유립 선생의 문하생으로 있던 오형기가 『환단고기』를 필사합니다.

 

 

1979년 이유립 선생의 또 다른 문하생 조병윤이 오형기 필사본을 영인한 100부를 서울 광오이해사에서 출판합니다.

1979년 출판된 『환단고기』 광오이해사본은 스승 한암담 이유립 선생 몰래 조병윤이 본인 이름으로 출간한 책입니다.

 

 

1911년 『환단고기』 초간본이 1949년 오형기 필사본으로, 1949년 오형기 필사본이 1979년 조병윤 영인본(광오이해사본)으로, 조병윤의 <광오이해사본>이 일본 변호사 노보루에 의해 『환단고기』 내용을 왜곡한 채 일본어로 번역 출판됐고 한국으로 역수입됩니다. 1983년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이미 출간된 『환단고기』의 잘못된 부분을 직접 교정해서 100부를 출간합니다.

 

1983년 출간된 『환단고기』를 배달의숙본이라고 하는데, 이때부터 『환단고기』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사실이 아니지만, 일제 식민사학 후예들의 주장대로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만약 환단고기의 저자라면 광복 후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좌지우지한 주류 강단사학계 스스로가 자신들은 한암당 이유립 선생의 발톱 밑의 때보다 못한 무지함을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는 『환단고기』가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위조한 책이라고 주장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과 식민사학의 후예들에게 콩고물을 얻어먹고 사는 식충이가 된 新친일파들이 『환단고기』의 저자가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교묘하게 이념적 프레임으로 덧씌우고 있습니다. 

 

 

 

 

 

 

 

 

 

 

식민사학이 『환단고기』의 저자라고 주장하는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1920년 일제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 스승 운초 계연수 선생이 엮은 『환단고기』 초간본을 가지고 1948년 월남한 실향민입니다.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1911년 다섯 권의 사서를 묶어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편찬한 『환단고기』의 편저자 운초 계연수 선생의 제자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강단사학계와 식민사학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자들의 주장대로 한암당 이유립 선생의 삶을 살펴보면 한가하게 역사책을 조작할만한 여유가 있던 분이 아닙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계에서 상고사, 고대사, 중·근세사 역사전문가 집단이 조직적으로 역사를 조작하는 것은 쉽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가 주장하듯 『환단고기』의 저자가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라면 대중으로부터 호응을 얻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환단고기』를 창작해서 내용을 조작해야 합니다.

 

 

전문 역사학자도 아닌 한암당 이유립 선생 개인이 역사적 사건과 인명과 지명 등을 일일이 직접 확인하고 짜깁기하려고만 해도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갑니다.

 

하물며 사상, 심법, 수행, 신관, 우주관 등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부분까지 개인이 상상으로 만들었다는 유치한 발생은 식민사학계 수준이 초등학생보다 못하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전쟁 전후 1950년대는 대한민국의 세계 최빈국이었던 시기였고, 1960~1970년대 역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던 시기였습니다.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월남 후 충청도와 경기도, 대전 등지에서 살 때 경제적으로 궁핍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가족을 증언을 제외하고도 이유립 선생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경제적으로 누구나 어렵게 살던 시기에 가난한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한가하게 환단고기란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도 환단고기나오는 우주론과 인성론, 수행관과 신관, 심법, 국가경영, 문화정신 등은 한암당 이유립 선생께서 아무리 역사 지식이 많다 하더라도 창작해서 만들 수 있는 내용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기득권을 누리며 호의호식하고 있는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만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환단고기』의 저자라고 주장합니다.

 

식민사학을 진리처럼 신봉하는 주류 강단사학을 제외한 역사학자들은 한암당 이유립 선생뿐만 아니라 전문 역사학자라 할지라도 『환단고기』는 한 사람 아니 몇 사람의 상상만으로 만들어질 책이 아니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가 환단고기는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조작해 만든 판타지 창작소설이란 주장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에는 인류 창세 역사와 문화를 비롯하여 동양 우주론과 역사관, 정치학, 인간론, 신(神)관, 수행(修行)관 등 한韓민족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황국사관으로 무장한 일본 제국주의의 천박한 노예역사관만 줄줄 외워서 대한민국 국민을 식민사학으로 오염시키고 있는 자들의 머리로는 환단고기의 내용의 역사관과 문화정신 세계를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일반인이 국사교과서와 기본적인 역사 자료를 제외한 고서 정보를 직접 확인할 방법이 많지도 않았고,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에 안함로와 행촌 이암, 운곡 원천석(원동중), 복애거사 범장(범세동), 일십당 이맥 선생과 그분들께서 지은 삼성기 上삼성기 ,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었냐는 것입니다.

 

 

 

 

 

 

 

 

 

 

환단고기의 원저자와 편저자, 그리고 환단고기세상에 널리 알린 전수자가 다 다릅니다. 

환단고기삼성기 上, 삼성기 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다섯 권의 책이 1911년 운초 계연수 선생에 의해 하나로 묶어져 출간된 책입니다.

 

 

환단고기삼성기 上 저자는 신라 시대 암함로, 삼성기 下 저자는 고려 말 원동중(운곡 원천석), 단군세기 저자는 고려말 행촌 이암, 북부여기 저자는 고려말 복애거사 범장(범세동), 태백일사 저자는 조선 중기 일십당 이맥 선생입니다.

 

 

1911년 운초 계연수 선생께서 다섯 권의 책을 하나로 묶어 『환단고기』라고 정명해 출간했습니다.

고성 이씨 행촌 이암 선과 일십당 이맥 선생의 후손이 되는 항일독립운동가 해학 이기 선생이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다섯 권의 사서에 대한 감수와 교열을 했고, 항일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의 자금 지원을 받아 환단고기 초간본 30권이 세상에 나습니다.  

 

 

 

 

 

 

 

 

 

 

운초 계연수 선생 역시 환단고기저자가 다섯 권을 옮겨 적고 『환단고기』라고 정명해 편찬한 편저자입니다.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다섯 권의 저자는 안함로, 원동중(원천석), 범세동, 이암, 이맥 선생이시며, 운초 계연수 선생은 환단고기 편저자이며 출간자,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환단고기 전수자이며 재출간자입니다. 

 

 

 

『환단고기』의 저자는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아니라 『환단고기』를 편찬한 운초 계연수 선생께 전수한 『환단고기』를 재출간하여 대중화시킨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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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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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13 04: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환단고기의 저자 한암당 이유립 선생 에 재해 알고 몰랐던 내용들을 알고 갑니다^^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건강관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2. kangdante 2019.03.13 08: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단고기에 대해서
    기회되면 접해보고 싶어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활기찬 하루되세요.. ^.^

  3. 죽풍 2019.03.13 22: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단고기 편수자와 전수자에 대해 잘 알아 갑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