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흥선대원군2

흥선대원군 이하응 쇄국정책과 척화비 건립 조선 26대 왕 고종을 대신하여 섭정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쇄국정책(鎖國政策)과 척화비(斥和碑) 건립 인간은 누구나 공(功)과 과(過)가 있다. 한 나라의 국정(國政)을 운영한 사람이라면 그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한때 조선의 국정을 책임진 한 사람이었으며, 그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한 이래 근 5백 년 동안 조선은 여러 번의 내란과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의 외침도 있었다. 1863년 조선 26대 왕 고종이 즉위할 때는 조선이 근 5백 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절체절명 위기,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국가의 생존이 위기에 몰린 시기였다. 순조가 즉위한 이래 약 60여 년 동안 조선은 외척세력의 세도정치로 백성의 삶은 파탄지.. 2016. 12. 28.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익선관이 왜? 일본에 있는 것인가 - 증산도가 열어나가는 상생의 후천개벽 세계일보 보도일부 발췌 이원(50·) 대한황실문화원 총재는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 총재는 이날 이화(李花·자두나무꽃) 문양이 선명한 고종의 익선관(翼善冠·왕이나 세자가 평상복으로 정무를 볼 때 쓰던 관)과 투구 등을 확인한 뒤 “한국에는 임금이나 황제가 쓰던 익선관이나 투구, 갑옷이 없다. 이게 왜 일본에 있는 것이냐”며 통탄했다. 의친왕의 13남9녀 중 9남 이충길씨의 장남인 이 총재는 2005년 7월 후사 없이 타계한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李玖·1931∼2005)씨의 양자로 선택되면서 공식적인 고종의 증손이 됐다............. 이씨는 “투구는 1897년 대한제국 설립 후에 국화로 사용한 이화 문양이 사용된 것으로 볼 때 대한제국 것이 확실하고 갑옷도 마찬가지”라며.. 2013.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