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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 미국 참전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은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이지만, 당시 우리 동포들도 강제로 끌려가거나 미국의 폭격으로 많이 희생된 전쟁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10월 28일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였고, 1937년 7월 7일 노구교 사건을 빌미로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다.

 

1939년부터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로 들어갔을 때 일본 제국주의는 무주공산과 같은 아시아를 집어삼키기 위한 침략야욕을 들어낸다. 일본은 중일전쟁 시작과 함께 1937년 천인공노할 난징대학살을 일으키며 전 세계 사람의 공분을 산다.

 

일본은 중국을 넘어 서쪽과 남쪽으로 영토확장에 나서다가 1941년 미국을 침략하며 태평양전쟁을 일으킨다.

 

 

 

 

 

 

 

 

 

 

 

 

미국과 영국 등은 일본이 전쟁에 필요한 석유와 철 등 군수물자 수입을 금지하는 등 제재를 가하자 태평양 너머 미국으로 전쟁을 확산한다.

 

미국은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한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으나 간과한 나머지 3천 명의 사상자와 18척의 함정, 180여 대의 전투기가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으며 미국 태평양함대가 궤멸되다시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쟁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던 미국은 일본군의 1941년 12월 7일(일본 12월 8일) 하와이 진주만 기습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전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을 일본에서는 대동아전쟁이라 한다.

 

태평양 인근 아시아를 일본 중심의 새로운 질서, 새로운 권역으로 하여 통합한다는 대동아공영권은 일본 제국주의가 전쟁의 침략 논리로 만든 것이 바로 태평양전쟁이며 일본이 주장하는 대동아전쟁이다.

 

 

 

 

 

 

 

 

 

 

 

 

 

진주만을 폭격당하자 미국 의회는 다음날 일본에 선전포고를 결의하였다.

1941년 12월 11일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며 미국은 유럽 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위해 전시체제로 들어간다.

세계 대공황으로 허덕이던 미국 경제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으로 활로를 찾았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최신 무기들을 선보이며 엄청난 양의 무기를 사용한다.

신무기에 희생된 사람은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다수 있었다.

 

 

 

 

 

 

 

 

 

 

 

 

1945년 3월 10일 미국의 일본 도쿄 대공습으로 1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약 백만 발의 소이탄을 탑재한 344대의 B-29 폭격기가 불과 3시간 남짓 융단 폭격에 불바다가 된 도쿄는 석조건물 일부를 제외하고 평지로 변해버렸다. 15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도쿄 대공습의 대다수가 민간인이었고 한국인 사망자는 약 1만 명에 달한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 원자폭탄과 8월 9일 나가사키에 '팻맨'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약 7만 명이 즉사하였고,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약 3만 5천 명에서 약 7만 명이 즉사하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사망한 한국인은 약 4만 ~ 5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즉사한 사망자도 많지만, 방사능과 같은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사망자는 약 30만 명에 이르며 이때도 사망자 대다수가 민간인이었다. 사망자에 포함되지 않은 피폭자는 더 많다. 

 

 

 

미국의 일본 본토 공습으로 약 50만 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으며 그중 한국인 사망자는 약 10만 명에 육박한다.

탐욕에 가득 찬 일본 제국주의가 대동아공영권(대동아전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일으킨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침략전쟁에서 너무 많은 한국인이 희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 기간 중 일본 본토에 있던 한국인 사망자 대다수는 일본과 미국에 의해서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1945년 5월 7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만든 전쟁을 마치게 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쟁을 제외하고 일본과의 태평양전쟁에서만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기록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최대 수혜국이 되었다. 

특히 미국은 세계 대공황의 상황에서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에 참전하였고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군산복합체였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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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6.08.20 06: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평양 전쟁의 관해 잘 보고 가네요

  2. 비키니짐(VKNY GYM) 2016.08.23 14: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차세계대전에 대해 다시한번생각해보는글이네요 ㅋ

세계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유럽 전쟁)- 미국의 참전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승전국 간의 분배문제, 정치와 경제적 이해관계로 반목하고 있었으며, 유럽 각 나라는 정치와 이념이 대립하며 혼란에 휩싸였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의 최대 수혜자다.

이미 중남미의 여러 나라에 군사적 경제적 개입을 하고 있던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된 후 금융자본과 기업들이 지구촌 곳곳에 진출하며 자본주의의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다.

이러한 독일의 경제회복과 군비확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미국의 기업들이다.

 

 

 

 

 

 

 

 

 

 

 

 

1929년 미국 월가의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지구촌은 이른바 세계 대공황으로 들어간다.

재고는 쌓이고, 일자리를 잃고, 기업은 문을 닫고, 은행은 사라져갔다.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이른바 고립주의, 보호무역주의로 각자도생의 길을 걸으며 세계 대공황을 헤쳐나갔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는 국가의 권력으로 국민을 통제하는 전체주의, 즉 나치즘, 군국주의, 파시즘으로 모습을 바꾼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독일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 대공황이 불어닥친다. 1933년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총리가 되었고, 급기야 1933년 11월 국제연맹을 탈퇴한다. 1934년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죽자 독일 총통이 된 히틀러는 세계정복의 야욕을 꿈꾸며 군비확장에 나선다. 

 

 

1936년 독일과 프랑스, 룩셈부르크와 벨기에, 네덜란드 사이에 있던 비무장지대 라인란트에 독일군을 주둔시키고, 1938년에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체코도 점령하며 침략 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1939년 8월 소련과는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쟁이 시작된다.

이 밖에도 대서양과 인도양 해역,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중동 등지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1935년 이탈리아가 아프리카 북부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것을 2차 세계대전 발발로 보지는 않고 있다. 

 

 

 

한편, 1935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이 있자 미국은 기존의 중립법을 새롭게 보완한 중립법을 제정한다.

교전국에 무기와 탄약의 수출, 금융거래를 금지하는 등 내용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위기에 처한 영국의 협조 요청에 1941년 무기대여라는 편법으로 전쟁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에 불어닥친 세계 대공황으로 위기에 직면한다.

뉴딜정책 등 대공황 탈출을 위해 고전하던 미국은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주의가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2차 세계대전의 연합군이 되어 참전한다. 미국은 전쟁 특수를 이용하여 세계 대공황을 탈출하는 돌파구로 삼았다.

 

 

 

지구촌이 불바다가 된 2차 세계대전은 크게 유럽전쟁(유럽과 아프리카 북부)과 중일전쟁(아시아, 태평양 전쟁)으로 구분된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은 1937년 7월 7일 일본 제국주의가 노구교 사건을 빌미삼아 중국을 침략한 중일전쟁으로부터 시작하며,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한다.

 

 

 

히틀러의 죽음과 함께 1945년 5월 7일 독일의 항복으로 2차셰계대전 유럽전쟁은 끝났다. 

2차 세계대전에 뒤늦게 참전하여 승전국이 된 미국은 전후에는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세계질서를 주도한다.

미국은 세계평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오직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계경찰 노릇을 시작한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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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6.08.14 05: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차 세계대전 정보 잘 보고 가네요

  2. 2016.08.14 0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하늘마법사 2016.08.14 2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차 세계 대전 알아갑니다.

  4. 슈나우저 2016.08.15 0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계 2차대전 발발 배경을 오랜만에 다시 살펴보네요ㅎ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과정도 궁금하네요!

  5. 비키니짐(VKNY GYM) 2016.08.19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차대전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 호치민(胡志明),

2차 세계대전에  중에는 미국의 동지로 베트남 전쟁에서는 적이 되다.

 

 

 

 

 

 

대한민국과 베트남은 지난 1992년 정식 수교를 하였다.

베트남은 1945년 동남아시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로 세워졌다. 현재도 공산주의 국가이다. 단지 중국처럼 공산주의 국가이면서 자본주의 경제정책을 쓸 뿐이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대한민국 수립 후 최초의 한국군 해외 파병으로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나라가 이제는 가장 돈독한 국가가 되어 있다. 베트남 여성들이 우리나라 남성과 국제결혼을 하고, 많은 근로자가 전국의 생산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베트남을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군대를 모두 쫓아낸 일본군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연합군(특히 미군)은 여러 작전을 펼친다. 미국의 정보부대원들은 일본군과 전투를 하고 있는 유격대를 지원하기 위해서 동남아시아 정글로 낙하산을 타고 투입된다.

 

 

 

 

 

 

유격대의 지도자였던 '구엔 아이 쿠옥'을 만나본 미국 정보부대원들은 낙심하게 된다. 이미 말라리아와 이질로 생사의 기로에 있던 구엔 아이 쿠옥을 보고 "도저히 살 것 같지 않다."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군 위생병은 유격대 지도자를 정성껏 치료했다. 회생 가망이 없을 것 같던 유격대 지도자는 기사회생하여 건강을 되찾았고, 그 감사의 표시로 미군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포로가 된 미군 조종사를 구출하는데 도움을 준다.   

 

 

 

 

 

 

19세기 중엽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이제는 일본군에게 점령당한 베트남은 독립하기 위해 탄약과 무기 등 많은 도움이 필요했고, 함께 작전했던 미국 정보부대원들도 같은 생각을 하여 베트남 유격대 지도자 '쿠옥'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당시 트루먼 대통령에게 요청하게 된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유격대를 돕는 것이 미국의 전략과 맞지 않는다고 결론을 짓고 그 요청을 거부한다.

 

 

 

 

 

 

제네바 협정으로 연합군은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단하여 분리 감독하게 한다.

베트남 북쪽은 1945년 유격대 대장 '구엔 아이 쿠옥'의 주도로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 중국이 일본군 무장해제 담당하고 철수함)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 남쪽은(남베트남, 영국이 일본군 무장해제 담당하고 프랑스에 넘겨줌) 프랑스에 넘어가면서 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년~1954년)이 벌어지게 되고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이후 남베트남을 미국이 지원하게 되고 미군은 통킹만 사건(베트남 군대가 미군 함대를 공격)을 조작하여 북베트남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한다. (2차 인도차이나 전쟁, 1960년~1973)

 

 

 

 

 

 

베트남 전쟁으로 미군은 6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베트남 국민 1,500,00만 명, 대한민국 참전군인 5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빛을 비추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치민(胡志明, 1890년~1969년 )'의 또 다른 이름은 한때 미국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던 '구엔 아이 쿠옥'이었다. 1960년 이후 호치민은 미국의 공적(公敵) 제1호가 되었다.

 

개인과 국가 간의 이익에 따라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예이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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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쿠나 2015.03.07 07: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오늘도 잘 보고 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

  2. 뉴론♥ 2015.03.07 0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말이군염 요즘은 거리에 가다보면 베트남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전 개인적으로 외국인을 시러해염

    특희 베트남이나 동남아 지역외에 국제결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염 사회문제로 속하는거 같네염.

  3. 청결원 2015.03.07 1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활기찬 주말 보내세요~!!

  4. Hansik's Drink 2015.03.07 1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보고 간답니다 ^^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5. 신선함! 2015.03.07 1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이야기 잘 보구 갈게요~ 의미있는 오늘이 되셔요!

  6. 유라준 2015.03.07 1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트남과 미국사이에 이런 과거가 있었군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