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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도시, 신들의 언덕 세계 7대 불가사의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파르테논 신전)

서양 문명의 뿌리 그리스 문명과 종교와 신화의 심장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

 

 

 

 

 

 

 

 

 

 

흔히 그리스 문명을 서양 문명의 뿌리, 서양 문명의 요람, 서양 문명의 중심이라고 한다.

 

그리스 문명이 그 지역에서 오랜 시간 동안 문명을 발전시켜온 것일까?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뚝딱 하고 탄생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리스 문명은 오리엔탈 문명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문명이다.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고 페니키아가 팽창하면서 그리스 최초의 에게 문명이 탄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페니키아, 즉 오리엔탈 문명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문명을 이룬 것이다.

 

 

 

 

 

 

 

 

오리엔탈(동양) 문명의 영향을 받아 기틀을 다진 고대 그리스 문명은 로마 문명으로 문화가 전수되었고, 로마는 문명의 뿌리 그리스를 정복한다. 세계를 제패하려던 로마는 동양의 기마민족에 의해 종말을 맞게 된다.

 

 

BCE 8세기경부터 도시 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한 그리스 문명은 여러 문명의 영향을 받아 철학, 건축, 문학, 예술, 신화, 민주정치 등 독창적인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켜 서양 문명의 기틀을 다졌고, 서양 문명의 뿌리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 문명이 서양 문명의 뿌리라고 못 박아 단정 짓는 것은 그리스 문명에 영향을 준 이전의 선진(先進) 문명을 배제한 서양 중심의 세계관이 만든 왜곡된 역사관이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 종교도 모두 오리엔탈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스 문명이 학문과 철학 등 문화적으로 발전한 영향도 있겠지만, 그리스 문명에 영향을 준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어원은 모두 그리스어다. 이 역시도 그리스 문명의 복사판이라 할 수 있는 로마 제국이 유럽과 아프리카 북부, 유라시아까지 점령하면서 힘이 문화를 지배한 서양 중심의 세계관이다.

 

 

그리스의 에게 문명은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으로 이어지다가 도리아인에게 멸망한다.

 

BCE 약 2,000년 경부터 BCE 1,100년경까지 약 9백 년간 존속하며 지중해 동부지역을 장악했던 해양 문명, 곧 고대 그리스 미케네 문명도 오리엔탈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스 미케네 문명이 종말을 고하면서 근 4백 년 동안 그리스는 문자도 없는 소위 암흑 시대를 보내게 된다.

BCE 8세기경부터 아테네, 스파르타 등의 도시 국가가 출현한다.

 

 

그리스 문명은 오리엔탈 문명의 영향과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해양 문명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주변의 다양한 문화와 종교, 관습 등이 뒤섞여 신화가 만들어지고 문명이 뿌리를 내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세계 7대 불가사의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그리스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BCE 5세기경에 만들어진다.

 

 

그리스 문명의 위대한 문화유산이 모여 있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파르테논, 에렉테이온, 니케 등의 여러 신전과 왕과 왕족이 사는 곳이다.

 

 

 

 

 

 

 

 

미케네 문명 당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는 작은 신전을 제외한 큰 신전은 없었고, 성벽을 쌓아 만든 왕궁이었다.

 

 

BCE 8세기경 그리스가 도시국가(아크로폴리스) 시대로 오면서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모시는 종교적인 목적과 도시국가 간의 전쟁이 빈발하던 시기에 방어를 위한 군사적인 목적이 되었다.

 

그리스 아테네의 도시국가 아크로폴리스는 왕족이 사는 왕궁이면서 요새였고, 신을 모시는 거대 신전이 있는 성역되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아크로폴리스(Acropolis)는 언덕(akros)과 도시(polis)의 합성어로 언덕 위의 도시, 높은 도시라는 의미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는 156m의 석회암 바위 언덕 둘레를 성벽으로 둘러쌓아 만들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백미는 단연 아크로폴리스 가장 위쪽 중앙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다.

 

아테나 여신을 위해 만든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길이가 67m, 폭이 30m, 파르테논 신전 외곽은 지름 1.9m, 높이 10.4m의 기둥 46개가 서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여러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신전이 있는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는 외부 침략 때마다 큰 수모를 겪고 파괴된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한때 기독교의 교회당, 이슬람의 모스크, 때론 전쟁에 사용하던 탄약창고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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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11.19 07: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대 불가사의 아크로 폴리스 잘 보고 갑니다

  2. 버블프라이스 2017.11.19 1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에서만 봤었는데요, 이렇게 사진과 설명을 해주셔서 한번더 ‘세계 7대 불가사의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파르테논 신전)’ 에 대해 잘 학습하고 갑니다.

4,500년의 역사를 지켜온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이집트 제4왕조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 이집트 기자(Giza)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세계 최대의 석조 건축물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200년 동안 지구촌의 수많은 학자가 연구했지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상당수의 학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피라미드가 고대 이집트 왕조의 왕과 왕비 등의 무덤이라고 주장한다.

더불어 영혼 불멸, 사후세계의 공간 등 피라미드에 대한 숱한 학설이 난무하지만, 모두 명확하지 않다.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를 떠올리지만, 피라미드는 이집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흙과 벽돌, 암석 등을 이용하여 정방형(正方形)의 각추형(角錐形), 원추형(圓錐形) 등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드는 그 용도가 밝혀진 것도 있고 밝혀지지 않는 것도 있으며, 문화에 따라 무덤, 신전, 제천단 등의 다양한 용도로 지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슈메르 문명의 지구라트를 비롯한 이집트의 피라미드 숫자보다 더 많은 피라미드가 라틴 아메리카에 있고, 동남아와 중국과 우리나라, 아프리카 일부와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더 큰 보스니아의 피라미드 등 지구촌 곳곳에 피라미드가 산재해 있다.

 

 

 

 

 

 

 

 

최근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피라미드 중에서도 약 4,500년 전에 건설된 대(大) 피라미드, 곧 쿠푸 피라미드와 관련된 아주 재미있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이집트 학자가 아닌 국제연구진이 우주에서 쏟아지는 우주선(宇宙線, cosmic rays) 입자 뮤온을 이용한 방사 촬영법으로 쿠푸 피라미드에서 길이가 30m가량 되는 비밀의 공간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반면, 이집트 피라미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이집트 학자들은 외국 연구진이 발견한 것은 대형 피라미드 안에 수많은 공간이 있는데 그중에서 하나의 공간을 더 발견했다고 해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도 외국 연구진이 이집트의 법률과 규정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어원은 학자마다 내세우는 바가 제각각이다.

 

이집트인들은 메르(mer), 기하학의 높이 페레무스(peremus) 그리스어 피르(pry, 불) 또는 피라미스(pyramis) 등을 피라미드의 어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직도 피라미드 어원은 베일에 싸여 있다.

 

 

 

스핑크스의 어원 역시 피라미드와 같이 명확하지 않다.

 

스핑크스의 어원도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며 주장하는 바가 달라 피라미드 어원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스어의 '단단하게 묶다(sphink)', '교살하다(strangle)' 등 여러 주장이 있고, 스핑크스가 이집트 파라오 또는 태양신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든 세게 4대 문명의 발상지 나일강의 이집트 문명

http://gdlsg.tistory.com/1916

 

 

 

세계 7대 불가사의 쿠푸 왕, 카프레 왕, 멘카우레 왕의 3개 피라미드가 있는 이집트 기자(Giza) 피라미드는 이집트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약 4,600년 전 이집트의 제4왕조 시기(BCE 2600년경, 약 1백 년 간 존속) 쿠푸 왕이 생전에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집트 피라미드 중에서도 쿠푸 왕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피라미드는 한 변의 길이와 높이가 각각 230m와 146m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기자의 쿠푸 왕 피라미드는 석회암과 화강암의 블록이 약 230만 개를 쌓았고, 블록의 평균 무게는 2.5t 정도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와 함께 이집트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스핑크스다.

스핑크스는 이집트 제4왕조의 카프레 왕이 처음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에서 가장 큰 스핑크스는 이집트 기자의 세 피라미드 앞에 있는 스핑크스로 쿠푸왕 피라미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카프라 왕 피라미드와 연결되어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기자 쿠푸 왕 피라미드 앞에 있는 스핑크스는 석회암을 깎아 만들었다.

스핑크스는 머리는 사람이고 몸통은 사자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길이 70m, 높이 20m에 이른다.

 

 

 

 

 

 

 

 

현대 학자들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이집트 피라미드가 과학, 수학, 기하학, 토목, 건축 등 인간의 노동과 모든 학문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진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극찬한다.

 

수천 년을 온전하게 내려온 이집트 피라미드는 15세기경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피라미드 전체를 덮고 있던 얇은 석회암 패널이 떨어져 나가 블록을 쌓아 놓은 듯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BCE 484~BCE 425 추정)는 '기자의 피라미드는 2만 명이 3개월씩 교대로 20년 동안 만들어졌다.'라고 주장했고, 헤로도토스 기록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기반으로 수만 명에서 10만 명이 20년에서 30년 정도 걸려 피라미드가 완성됐다는 학설(學說)이 오랜 시간 동안 퍼지면서 마치 그것이 정설인 양 굳어졌다.

 

 

헤로도토스는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가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는 큰 착오를 범했다.

2,500년 전 그리스 학자가 본 피라미드는 만든 지 2,000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그때까지도 피라미드 원형이 잘 보존됐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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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borah 2017.11.18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라미드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미술사 시간때 배운 기억이 나네요. 정말 대단한 지혜가 엿 보이는 건축물이였죠.

  2. 버블프라이스 2017.11.19 1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는 언제 봐도 신비롭습니다 ^^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힌두교와 불교가 혼합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크메르제국의 영광을 그대로 간직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캄보디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세계문화유산이며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앙코르와트와 현대사의 비극 킬링필드 대학살이다.

 

크메르제국은 9세기 초부터 15세기 중엽까지 인도차이나반도 대부분을 차지하며 동남아시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제국으로 현재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을 남겼지만, 크메르제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킬링필드 대학살은 1975부터 1979년까지 급진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루주(붉은 크메르)에 의해 자행된 대학살로 200만 명의 캄보디아 국민이 학살을 당했고, 약 6만여 명의 승려가 학살됐다.

 

 

 

 

 

 

 

 

 

 

캄보디아는 미얀마와 함께 대표적인 불교국가지만, 크메르제국 당시에는 힌두교와 불교 등이 공존하고 있었다.

크메르제국 통치 당시 통치자의 종교와 주변국의 침략과 민심 등에 의해 종교의 주도권이 바뀌기도 했다. 

 

 

캄보디아는 현재 인도차이나반도 남서부에 있지만, 크메르제국 당시에는 인도차이나반도 대부분을 지배했다.

802년 자야바르만 2세가 크메르제국을 세우고 인도차이나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크메르제국을 세운 자야바르만 2세(재위 802~850 추정)는 독실한 힌두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수르야바르만 2세(1113~1145)다. 

크메르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불리며 가장 번성한 제국을 만든 자야바르만 7세(1125~1215)로 불교를 신앙했다.

 

 

 

 

 

 

 

 

 

자야바르만 7세 이후 크메르제국의 국력은 점차 피폐해져 갔다.

 

 

혹자는 크메르제국이 멸망한 이유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는 건기가 지속하면서 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에 멸망에 이르렀다고 주장도 있고, 샴족에 의해 앙코르와트 유적이 파괴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크메르제국의 앙코르와트는 밀림에 속에 묻히게 된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크메르제국의 영광이 살아있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크메르제국이 문을 닫은 지 수백 년이 지난 1860년 프랑스의 앙리 무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크메르제국의 전성기였던 12~13세기경에 만들어진 힌두교와 불교가 혼재된 건축물이다.

 

 

혹자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는 개인과 단체 등이 각기 선정 기준을 정해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크메르제국이 건설한 앙코르와트를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인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앙코르와트는 크메르어 왕의 도시, 즉 도읍을 뜻하는 앙코르와 사원을 뜻하는 와트가 합성된 말이다.

우리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앙코르와트는 여러 곳에 산재한 앙코르 유적지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두 종교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으면서도 크메르제국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의 대부분 사암으로 만들어졌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크메르제국의 건축물 앙코르와트는 약 40년의 기간 동안 수십km 떨어진 곳에서 수천 개의 돌을 운하를 통해서 운반해 신전과 궁전을 지은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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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7.11.11 12: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세계 7대 불가사의 크메르제국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대해 몰랐던 정보를 공부하고 갑니다^^ 날씨가 화창하니 정말 좋습니다.
    상쾌한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2. 청결원 2017.11.11 16: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대불가사의 관해 잘 보고 가네요

  3. 죽풍 2017.11.11 2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킬링필드와 앙코르와트의 캄보디아.
    불자로서 아직 앙코르와트를 여행하지 못했네요.
    좋은 공부하고 갑니다. ^^

철근콘크리트와 동석(凍石)을 이용해 만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그리스도상)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선정의 공정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브라질 리우 예수상

 

 

 

 

 

 

 

 

 

 

 

약 500년 전까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인은 인디언과 인디오였지만, 유럽의 서구 세력이 침략하면서 원주민은 급속하게 사라졌다. 중남미에서 영토가 가장 넓은 나라는 남아메리카의 브라질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는 18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약 200년간 브라질의 수도였고, 나폴레옹이 포르투갈을 침공했을 때 본국(포르투갈)의 수도를 리우로 이전했던 역사가 있는 도시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브라질 리우 예수상은 리우가 브라질의 수도였던 1931년 당시 철근콘크리트와 동석을 이용해 세운 종교 조형물이다. 흔히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이탈리아 나폴리, 호주 시드니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이라고 한다.

 

 

 

 

 

 

 

 

스페인(에스파냐) 군대는 중남미 지역 대다수를 빠르게 점령하면서 식민지화했다.

같은 시기에 포르투갈이 브라질에 첫발을 내디디며 아메리카 식민지를 개척했다.

 

 

현재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브라질만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어 중남미 아메리카의 유일하게 스페인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된다.

 

 

나폴레옹의 침략 전쟁과 포르투갈의 내부 혁명, 그리고 중남미 아메리카의 독립 투쟁 등 혼란한 과정에서 1822년 브라질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브라질 리우 예수상은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조형물이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브라질 예수상(그리스도상)은 브라질 출신의 미술가 를로스 오스발도가 구상하고, 브라질 에이토르 다 실바 코스타와 프랑스 조각가 폴 란도프스키가 설계와 제작에 참여했다.

 

 

 

브라질 리우 예수상(그리스도상)이 당시 지구촌의 다른 건축물에 비교해 봐도 전혀 다르고 특이한 건축양식으로 세워진 것도 아니며, 리우 예수상보다 더 어렵고 크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건축물이나 근현대 문화유산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혹자는 브라질 리우 예수상(그리스도상)이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된 것 자체가 불가사의라고 말한다.

 

 

 

 

 

 

 

 

브라질 리우 예수상은 세워진 지 불과 100년도 안 되는 근현대의 작품이다.

 

21개 최종 후보 중에서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된 페루 마추픽추, 멕시코 치첸이트사, 요르단 페트라, 중국 만리장성, 인도 타지마할, 이탈리아 콜로세움은 최소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나 된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중국의 만리장성 요르단의 페트라 유적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득표를 한 브라질 리우 예수상(그리스도상)은 브라질 국민과 일부 가톨릭 신자를 제외하면 모두가 선정 자체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스위스 베른하르트 베버가 민간 사설 단체 '뉴세븐원더스 재단'을 만들어 인터넷과 전화 투표로 선정했다.

 

중복 투표도 가능했던 선정 과정, 인터넷이 발달한 나라, 인구가 많은 나라, 정부와 관련 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나라의 문화유산이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될 확률이 높았다.

 

 

브라질은 대권 후보로 나온 사람은 국민을 대상으로 리우 예수상(그리스도상)이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 투표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참여해 달라고 말했다.

 

 

 

 

 

 

 

 

가톨릭 교황청은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최종 후보에 오른 21개 문화유산에 기독교 문화유산이 많이 없다는 메시지를 언론을 통해 전하면서 기독교 문화유산이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투표에 참여해 선정되도록 기독교 신자들을 독려했다.

 

브라질 리우 예수상보다 더 오래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여러 유적과 건축물 등이 떨어진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리우의 랜드마크가 된 예수상(그리스도상)은 두 팔을 벌려 십자가 형상으로 높이 38m, 폭 30m의 리우 예수상은 1926년부터 1931년까지 약 5년간의 공사 기간을 마치고 해발 710m의 코르코바도산 정상에 세워졌다.

 

브라질 리우 예수상은 신체 각 부위를 따로 제작하여 결합한 1145톤의 돌이 들어간 조형물로 예수상의 기단부에는 약 1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도 있다.

 

 

 

 

 

 

 

 

21개 최종 후보 중에서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되지 않은 것들은 칠레 이스터섬 석상, 이집트 피라미드,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러시아 크렘린궁과 성 바실리 성당, 터키 하기아 소피아 성당, 스페인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일본 기요미즈, 아프리카 말리 팀 북부, 프랑스 파리 에펠탑,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 영국 스톤헨즈, 독일 퓌센 노이슈반슈타인 성 등이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된 7개뿐만 아니라 최종 후보 21개 모두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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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11.05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2. 죽풍 2017.11.05 2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브라질 리우 예수상의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된 숨은 뒷얘기가 있었군요.
    좋은 공부하고 갑니다. ^^

  3. 버블프라이스 2017.11.07 04: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브라질 리우 예수상(그리스도상)은 만들어진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근대작품이라니
    정말 놀랍습니다^^

무굴제국의 샤자한 황제가 지은 무덤 형식의 궁전 인도 타지마할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무굴제국의 문화유산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인도 타지마할

 

 

 

 

 

 

 

 

 

 

 

인도의 타지마할은 대리석으로 지어진 궁전 형식의 묘지로 외국인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인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인도 타지마할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인도 인구는 약 13억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슬람교 인구는 약 1억 7천만 명 정도로 15%가 안 된다.

인도의 일부 힌두교 신도는 이슬람 건축물 타지마할이 인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굴제국은 본래 중앙아시아 기마민족의 후예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인도 타지마할을 지은 무굴제국의 5대 샤자한 황제는 몽골제국 칭기즈칸의 방계 후손이 된다. 

 

 

칭기즈칸(1162~1227)의 몽골제국은 불패의 신화를 만든 무적이 군대로  유목민족이 세운 마지막 유목제국 티무르제국으로, 그리고 티무르제국을 세운 티무르(1336~1405)의 5대손 바부르(1483~1531)가 인도 북부를 점령하면서 무굴제국(1526)을 세웠다.

 

무굴제국을 세운 바부르는 몽골제국의 후예로 제국의 재건을 꿈꾸며 몽골의 아라비아어인 무굴을 나라 이름으로 정했다.

무굴은 '몽골'이란 뜻이다.

 

 

 

 

 

 

 

 

 

 

이슬람 국가 무굴제국은 지속해서 영토를 확장하여 17세기에 인도 전역을 지배한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인도의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자한(1592~1666)이 세 번째 부인인 뭄타즈 마할이 죽자 부인을 애도하며 아주 화려하고 거대하게 지은 궁전 형식의 묘지다.

 

 

15세기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무굴제국에도 서양 세력의 침략이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1600년 무굴제국에 설립된 동인도회사는 200년 동안 인도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게 되면서 엄청난 영토를 소유한다.

331년간 존속하여 인도를 통일하고 여러 종교를 포용했던 이슬람 무굴제국은 1857년 영국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무굴제국의 건축물로 흔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라고 일컬어지는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인도의 타지마할은 무굴제국 6대 황제로 등극한 아우랑제브를 낳은 생모 몸타즈 마할의 무덤이다. 

타지마할은 '마할의 왕관'이란 뜻이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무굴제국의 문화유산인 인도의 타지마할은 페르시아 양식으로 세워진 무굴제국의 두 번째 황제 후마윤 황제의 묘를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러시아, 스리랑카, 티베트, 중국 등지에서 가져온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무굴제국의 건축물인 인도 타지마할은 페르시아, 인도, 이슬람 등의 건축 양식이 융합된 건축물로 묘와 연결된 드넓은 정원과 수로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켰다.

 

 

 

 

 

 

 

 

 

 

무굴제국의 샤자한 황제의 애절한 사랑이 그대로 녹아있는 인도 타지마할은 천문학적인 돈과 이탈리아, 프랑스, 페르시아 등의 뛰어난 건축가와 2만 명에 이르는 인력을 동원하여 22년간 지어진 묘지다.

 

 

힌두교도가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인도에서 무굴제국 당시 지어진 이슬람 건축물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곱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면, 더욱이 인도의 토착세력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정복왕조가 만든 타지마할에 대해 수시로 시비를 제기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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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7.11.05 2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양이 조화롭고 너무 아름답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2. 버블프라이스 2017.11.07 0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대 불가사의 무굴제국의 유산 인도 타지마할의 문양은 조화롭고, 건축양식이 언제봐도 아름답습니다.

마야문명이 남긴 위대한 건축물 세계문화유산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앙아메리카 치첸이트사 피라미드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징으로서 80여 개 피라미드가 남아 있는 이집트는 오랫동안 피라미드 국가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지구촌에서 가장 많은 피라미드가 남아 있는 곳은 이집트와는 지구 정반대 쪽의 중앙아메리카 유카탄도 인근에서 거대한 문명을 이룩하고 살았던 마야문명이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체첸이사 피라미드도 마야문명의 유적지다.

 

 

 

최근까지 발견된 마야문명의 위대한 건축물 치첸이트사 피라미드를 비롯하여 무려 2,400여 개에 달하며,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피라미드도 많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문명은 약 5천 년 전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이주하기 시작하여 약 4천 년 전부터 마야문명을 이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마야문명의 꽃으로 불리는 치첸이트사는 5세기 전후에 세워진 문명으로 마야문명 중에서도 전성기 문명이다.

 

 

 

수천 개의 피라미드 유적이 남아 있는 마야문명 유적 중에서 치첸이트사는 문명의 꽃으로 불린다.

 

마야문명은 마야인이 만든 문명이지만, 마야인이 여러 부족으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특정 부족이 지배세력이 되는 과정에서 

치첸이트사의 유적은 이트사족과 톨텍족 등의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치첸이트사'는 '세노테(우물) 곁에 사는 이트사족의 집'이란 의미다.

'세노테'는 석회암의 지하수가 드러난 천연 우물을 말한다.

 

 

정사각형의 피라미드와 원형의 성스러운 우물 '세노테'는 마야문명의 문화 핵심이다. 

최근에 정사각형의 쿠쿨칸 피라미드가 원형의 '세노테' 위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쿠쿨칸 피라미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학자들을 여러 번 놀라게 했다.

 

1931년 30m의 쿠쿨칸 피라미드 안에 20m 피라미드가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그 내부에 10m의 피라미드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약 5백 년의 시차를 두고 3번에 걸쳐 피라미드 위에 피라미드가 지어진 것이다.

1년의 날수를 의미하는 365개의 계단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야문명의 치첸이트사 피라미드를 보면 천문학, 수학, 과학을 바탕으로 정교하면서도 뛰어난 기술력이 집약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야문명이 남긴 위대한 건축물 피라미드는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남동부, 과테말라, 유카탄반도 등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 마야인은 20진법을 사용했다. 역법이 발달한 마야문명에 남아 있는 수많은 유적은 하늘의 별자리 위치와 일치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세계문화유산이며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정된 마야문명의 꽃 치첸이트사에는 신전, 제단, 천문대 등의 여러 피라미드와 경기장, 시장 등이 자리한 도시 문명이다.

 

 

 

 

 

 

 

 

 

 

마야문명의 멸망한 원인에 대해서는 기후변화와 가뭄이 원인이 되어 멸망했다는 설과 내란과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멸망했을 것이라는 설 등이 분분하다. 16세기 아스테카 문명을 멸망시킨 스페인 정복자들이 치첸이트사 지역에 왔을 때 이미 텅 빈 도시였다고 한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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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7.10.15 18: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대한 마야문명 세계를 지배하였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2. 버블프라이스 2017.10.16 1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라미드의 건축양식은 언제 \봐도 신비스러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피라미드가 있군요..
    만약 새로 발견이 된다면, 관련 유물들이 나오고 조금더 정확한 역사가 기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마야문명 치첸이트사 피라미드 잘 읽고 갑니다^^

  3. 굳라이프 2018.04.19 2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접 가봤는데, 정말 대단해요! 경사가 높아서 올라가는게 쉽지 않을 정도였던 기억이 나네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