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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 강세6

상제님 강세를 준비한 동학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학의 3대 선언 '시천주(侍天主'), '다시 개벽(開闢)', '무극대도(無極大道)' 천지인 삼계(三界) 우주를 다스리는 천주님에게 직접 도통을 받은 분 증산도 기본 진리(眞理) 20 - 상제님 강세를 준비한 동학(東學)의 수운 최제우 대신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배우고 들어 알고 있지만, 제대로 모르는 것이 19세기 말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0%에 육박하는 300만 명이 믿었던 동학입니다. 오랜 세월 '동학란'으로 불린 '동학농민혁명'은 부정부패와 수탈과 억압에 못 견딘 농민들이 반봉건, 제폭구민과 보국안민, 광제창생, 척양척왜의 깃발을 휘날리며 일어났다고 천편일률적으로 말합니다. 동학(東學)이 선언한 핵심 메시지는 '시천주(侍天主), '다시 개벽(開闢)', '무극대도(無極大道)입니다. 그런데도.. 2021. 5. 7.
상제님 강세를 알린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학을 창도하다. - 7. 중화주의 세계관과 유교적 환경의 조선사회에서 유교의 테를 벗어나지 못했던 한계와 최시형과 손병희의 동학 왜곡. 상제님 강세를 알린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학을 창도하다. 7. 중화주의 세계관과 유교적 환경의 조선사회에서 유교의 테를 벗어나지 못했던 최제우 대신사의 한계와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과 3대 교주 손병희의 동학 왜곡 최수운 대신사는 가을개벽의 도래와 상제님의 강세를 알리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한계점에 대해 상제님께서는 이렇게 지적하셨다. 중화 사대주의 세계관과 유교적 환경의 조선사회에서 수운 선생은 상제님의 실체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동학의 왜곡이 시작되었다. 동경대전(東經大全) 수덕문(修德文)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元亨利貞 天道之常 惟一執中 人事之察 원형이정 천도지상 유일집중 인사지찰 故 生而知之 夫子之聖質 學而知之 先儒之相傳 고 생이지지 부자.. 2015. 3. 24.
상제님 강세를 알린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학을 창도하다. - 6. 동학의 핵심 가르침, 천주님을 모시는 '시천주'와 신천지 도래 소식 후천개벽' 상제님 강세를 알린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학을 창도하다. 6. 동학의 핵심 가르침, 천주님을 모시는 '시천주(侍天主)'와 신천지(新天地) 도래(到來) 소식 '후천개벽(後天開闢)' 무엇보다 최수운 대신사 가르침의 가장 큰 핵심은 바로 상제님의 강세, 후천 가을개벽과 신천지 후천 선경 시대의 도래 그리고 묵은 하늘을 건질 무극대도(無極大道)의 출현을 선언한 것이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지은 가사집 『용담유사』 「교훈가」 중에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해음없는 이것들아 날로 믿고 그러하냐,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하늘님만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하단말가."라는 말씀이 나온다. 상제님께서 최수운 선생에게 내려주신 주문으로 천상문답사건에서 받은 '시천주주(侍天主.. 2015. 3. 20.
상제님 강세를 알린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학을 창도하다. - 5. 신천지 후천의 선도 종장으로 임명되다. 상제님 강세를 알린 수운 최제우 동학을 창도하다. 5. 신천지(新天地) 후천(後天)의 선도(仙道) 종장(宗長)으로 임명되다. 증산 상제님께서 수운 최제우 대신사에게 또 하나의 사명은 바로 신천지 후천(後天)의 선도(仙道) 종장으로 임명하신 것이다. 수운 선생이 상제님으로부터 천명과 신교를 받아 동학을 창도하기 전 일찍이 정역(정역)을 창시하여 신천지 후천의 정역 세상이 올 것을 예견하신 김일부(金一夫) 대성사와 함께 연담 이운규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선도(仙道)를 닦은 바 있다. 연담 이운규 선생은 한국 선도사상의 맥을 잇는 학자로 알려졌으며, 또한 수운 선생의 선맥은 그 선조의 학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시대 대학자였던 그의 선조 고운 최치원 선생의 '난랑비서문'에서 드러나는 '풍류도' 사.. 2015. 3. 19.
상제님 강세를 알린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학을 창도하다 - 3. 동학 교조 최제우, 조선 조정에서 성리학에 반하는 이단으로 몰려 죽음을 맞이한다. 상제님 강세를 알린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학을 창도하다. 3. 동학(東學) 교조(敎祖) 최제우, 조선 조정에서 성리학에 반하는 이단으로 몰려 죽음을 맞이한다. 1862년 7월 다시 경주로 돌아온 수운 최제우 선생은 제자들과 함께 포덕에 나서고 많은 이들이 그를 따르게 된다. 그러자 민란을 우려한 경주 진영은 선생을 체포하기에 이른다. ( 조선 철종 13년, 1862년 2월에 경상도 진주에서 진주 민란이 일어났다.) 이에 반발한 수백 명의 제자들의 봉기로 수운 최제우 선생은 곧 풀려나고 이후 은거 생활에 들어간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선생은 동학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교단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로부터 동학이 분포된 중심에 거점을 두고 '접주제(接主制)'를 시행한다. 또한, .. 2015. 3. 17.
상제님 강세를 알린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학을 창도하다 - 2. 상제님으로부터 천명(천상문답사건)을 받아 동학 창도로 한국 근대사가 시작되다. 상제님의 강세를 알린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학을 창도하다. 2, 상제님으로부터 천명(천상문답사건)을 받아 동학 창도로 한국 근대사가 시작되다. 경신(庚申, 1860)년 봄은 냉혹한 추위만큼이나 나라의 정세도 험난했다. 조정을 장악한 세도가문의 기세는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고, 탐관오리의 수탈은 갈수록 심해졌다. 게다가 동양을 침탈하려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은 더욱 거세게 밀려들어와 조선의 국운은 풍전등화와 같았고, 백성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져 갔다. 이때 수운 최제우 선생은 용담에서 새봄을 맞이하며 세상을 구할 도(道)를 구하고자 수련에 정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조카 맹륜(孟倫)의 생일인 음력 4월 5일, 조카의 간곡한 청으로 생일연회에 참석하였다가 아득한 상태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2015.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