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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3752

소론의 영수 백의정승 명재 윤증 소론의 영수 백의정승(白衣政丞)으로 불린 명재(明齋) 윤증(尹拯) 조선 19대 왕 숙종이 환국(換局) 정치를 하면서 잠시 남인이 정국을 주도한 것을 빼면 인조반정 이후 서인(西人)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 서인(西人) 천하에서 우암 송시열의 노론과 명재 윤증의 소론으로 분열된다. 조선왕조는 그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즉 문벌(문벌)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소론의 영수 명재 윤증의 진외증조부(친할머니의 아버지)가 우계 성혼이다. 소론의 영수 명재 윤증을 백의정승(白衣政丞), 또는 백의재상(白衣宰相)이라 부른다. 백의정승이나 백의재상은 같은 의미로 뛰어난 학문과 훌륭한 인품을 겸비하여 덕망이 있는 선비(유생)가 단번에 정승(재상)의 반열에 올랐다거나, 야인이지만 정승(재상)과 같은 대우를 받는 인물을.. 2017. 1. 21.
고산 윤선도 오우가 어부사시사 조선 시조 문학의 대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오우가(五友歌)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조선왕조 시조 문학의 대가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는 가사 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1536~1593)과 함께 조선왕조시대 시가(詩歌) 사상의 쌍벽으로 일컬어진다.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 여러 작품을 보면 학자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정치가로서의 모습이 더 크게 비친다. 한양에서 태어난 고산 윤선도는 백부 윤유기가 후사가 없자 양자로 들어갔다. 백부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전라도 해남 윤유기의 집으로 내려갔다. 고산 윤선도의 집안은 동인(東人)이었고,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되면서 남인 계열이 되었다. 고산 윤선도는 18세 진사초시에 합격하였다. 양어머니와 친어머니가 연속해서 돌아가시면서.. 2017. 1. 20.
조선의 명필 서예가 한호(한석봉) 조선의 명필 서예가 한호(韓濩, 한석봉韓石峯)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주지번은 당대 명나라 최고 문인이며 명필가로 유명했고, 서울 성균관 '명륜당(明倫堂)' 편액을 썼다고 한다. 명나라에서 조선에 사신으로 와 있던 주지번은 교산 허균으로부터 허난설헌의 시를 가져가 명나라에 소개하였다. 주지번은 조선의 명필이며 서예가인 한호(한석봉, 1543~1605)의 글씨를 보고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명필이며 문장가였던 왕희지의 난정기(蘭亭記) 글씨와 비슷하다고 극찬했다. 명필(名筆) 석봉 한호가 조정에 출사한 시기는 사림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시기였고,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된 시기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문인들이 정치세력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한석봉 설화에도 나오듯 황해도 송도(개성)에서 .. 2017. 1. 19.
명의 구암 허준 동의보감 조선 3대 명의(名醫) 구암(龜岩) 허준과 동의보감(東醫寶鑑) 조선왕조시대 가장 높은 품계(品階)는 정1품으로 조선의 3대 명의로 『동의보감』을 편찬한 구암 허준은 작위와 품계가 양평군(陽平君) 숭록대부에 이르렀고, 사후(死後)에 정1품의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추증되었다. 정1품은 대광보국숭록대부(상上계 품계)와 보국숭록대부(하下계 품계)로 구분되어 있다. 구암 허준(1539~1615)이 명의로써 명성과 정1품의 높은 벼슬보다 의학서적 동의보감 편찬이 그의 이름을 더 빛나게 한다. 구암 허준은 첩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양반으로 무과에 급제한 허론의 서자였던 허준은 의원의 길을 선택했다. (혹자는 허준의 어머니가 첩이 아니라 두 번째 부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구암 허준은 정사(正史) 조선왕조실록.. 2017. 1. 18.
현충사 이순신장군과 거북선(귀선) 성역화 된 현충사(顯忠祠),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귀선龜船) 충청도 아산의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당이다. 조선 19대 왕 숙종은 충청도 유생의 상소를 보고 충청도 아산에 이순신 장군의 사당을 세우게 하였고, 현충의 시호를 내려 현재의 현충사가 되었다. 현충사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리면서 폐쇄되었고, 일제강점기였던 1932년 현충사가 중건됐다. 1952년 진해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졌고, 1966년부터 현충사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1968년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졌고, 이순신 장군의 출생한 날이 1973년 충무공 탄신일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거북선(귀선龜船)은 고려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실물은 없고 입에서 입으로 구전.. 2017. 1. 17.
서애 유성룡 임진왜란 7년 기록 징비록 동인과 남인의 영수 유성룡과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징비록(懲毖錄) 서애 유성룡(1542~1607)은 퇴계 이황(1502~1570)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1575년(선조 8) 사림 세력이 동서로 분당 할 때 퇴계 이황(남명 조식) 계열은 동인(東人)이 되고, 율곡 이이(우계 성혼)의 계열은 서인(西人)이 되었다. 사림 세력은 정치적으로는 동인과 서인, 학문적으로는 퇴계 이황의 영남학파와 율곡 이이의 기호학파로 나뉘었다. 서애 유성룡은 1542년(중종 37) 아버지 유중영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1564년(명종 19) 생원시와 진사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갔고, 1566년(명종 21) 별시에 각각 급제하여 조정에 출사하였다. 정언, 병조좌랑, 부교리에.. 2017. 1. 16.
사미인곡 관동별곡 송강 정철 서인(西人)의 영수 송강 정철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훈민가(訓民歌) 송강 정철(1536~1594)은 사림세력이 본격적으로 정치의 주도세력으로 나선 선조 재위 때 왕성하게 활동했던 정치가이며 학자다. 조선 가사문학의 대가로 칭송받는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 사미인곡, 훈민가, 성산별곡 등 많은 가사 작품을 남겼다. 송강 정철은 종5품의 돈녕부판관을 지낸 아버지 정유침과 어머니 죽산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송강 정철은 큰 누이가 조선 9대 왕 인종의 후궁으로 들어갔다. 작은 누이는 성종의 셋째 아들 계성군의 양자로 들어간 계림군의 부인이 되었다. 한양에서 나고 자란 정철은 누이 때문에 어려서 궁 출입이 잦았고 당시 봉림대군(명종, 1534~1567))과 친밀하게 지냈다. 명종이 즉위하고.. 2017. 1. 15.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조선의 학자에 의해 추앙받는 인물이 된 신사임당 신인선과 조선을 넘어 중국과 일본에까지 널리 알려진 허난설헌 허초희 신사임당(1504~1551)과 허난설헌(1563~1589)은 모두 조선 중기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반가의 여인이다. 16세기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1536~1584)의 어머니 신사임당과 만고역적이 된 허균(1569~1618)의 누이 허난설헌의 삶은 비슷하면서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모자(母子),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男妹)는 그 사람들의 자질과 인품 등 각자가 가지고 있던 역량과 당대와 후대에 정치적, 학문적 영향으로 추앙의 대상 또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서인의 종주로 많은 후학을 길러 낸 율곡 이이는 어머니 신사임당과 함께 500년 동안 한국을 빛낸 위인으로 .. 2017. 1. 14.
퇴계 이황 위기지학과 율곡 이이 위인지학 조선의 성리학자이며 정치가 동인(남인과 북인)의 종주 퇴계(退溪) 이황의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서인(노론과 소론)의 종주 율곡(栗谷) 이이의 위인지학(爲人之學) 퇴계 이황(1501~1570)과 율곡 이이(1537~1584)를 조선 성리학의 거두(巨頭)라 말한다. 두 사람의 학문적 업적과 정치적 영향력은 대단하였다. 사림세력의 학문(사상)은 정치 세력과 연결되어 있었다. 혹자는 공자의 말씀을 빌려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두고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우인지학(爲人之學)으로 구분한다. 퇴계와 율곡도 뛰어난 학자였지만, 학문적으로 두 사람에 버금가는 성리학자도 있었다. 이황과 이이, 그리고 그들의 후학들이 정치적, 학문적으로 조선 중후기를 좌지우지하며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조선 성리학에서 가장 대표적인 학자로.. 2017. 1. 13.
조선시대 훈구파(공신) 사림파(유림 선비) 조선 시대 정치권력의 대립 훈구파(공신세력)와 사림파(유림儒林, 선비세력) 조선왕조시대 국가를 움직였던 양대세력으로 공신세력 훈구파와 유림(儒林), 즉 선비세력 사림파로 구분한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 창업에 이바지한 유림(儒林)의 학자와 무장(武將)이 훈구공신이 되었다. 훈구(勳舊)는 말 그대로 오랫동안 국가와 임금을 위하여 공(功)을 세운 사람 훈구공신(勳舊功臣) 또는 훈구대신(勳舊大臣)이라 한다. 사림(士林)은 유림(儒林)이라고도 하며, 선비세력을 말한다. 조선 건국 이후 이방원의 1, 2차 왕자의 난에서 활약한 인물도 공신첩이 주어졌다. 조선 3대 왕 태종은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공신을 어느 정도 정리해서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세종 때까지도 훈구공신이 활동하였으며, 조선 건국 이후 유림의 선.. 2017.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