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옥사- 서인 정철과 정여립 모반(역모)사건, 동인 몰락
조선왕조 최대 피의 숙청 사건 - 정여립 역모(모반)사건이 불러온 피의 광풍 기축옥사(己丑獄事) 정여립 모반사건을 계기로 서인(西人) 정철이 주도한 피의 숙청 기축옥사와 동인(東人)의 몰락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때까지 훈구(공신)세력과 사림(士林, 선비)세력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왔다. 선조 때 이르러 사림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으나 이조전랑의 자리를 놓고 시작된 개인적인 앙금은 1575년(선조 8) 사림(士林)세력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되면서 정치적 대립관계 유지하는 붕당정치가 시작되었다. 정여립의 모반(역모)사건으로 촉발된 기축옥사(己丑獄事)는 1589년(기축년, 선조 22)에 시작하여 1590년(경인년, 선조 23), 1591년(신묘년, 선조 24)까지 3년 동안 ..
2016. 11. 1.
민족반역자 매국노 을사5적(오적) 정미칠적(7적) 경술국적
나라를 팔아먹고 호의호식한 민족반역자 친일파 매국노(賣國奴) 을사5적(오적), 정미7적(칠적), 경술국적 나라를 팔아먹은 만고의 역적 이완용은 친일파 민족반역자 매국노(賣國奴)의 대명사다. 이완용은 1905년 을사늑약(제2차 한일협약) 당시 학부대신이었고, 1907년 정미7조약(한일신협약, 제3차 한일협약))과 1910년 한일합병조약(한일강제병탄, 경술국치) 당시에는 내각총리대신이었다. 절차와 형식에서 국제법상 조약으로 인정될 수 없는 을사늑약, 정미7칠조약, 한일합방조약(강제병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 이완용은 을사5적(을사오적), 정미7적(정미칠적), 경술국적에 모두 포함돼 있다. 을사(乙巳, 1905)년에 나라의 외교 주권을 팔아먹은 친일파 민족반역자 매국노 다섯 명을 을사오적(乙巳五賊, 을..
2016.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