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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2

한국인의 정체성과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근원 - 1부 대한大韓, 천지광명(天地光明)의 역사를 열다. 일제와 한국 강단 사학에 의해 사라진 한국인의 정체성과 다시 찾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근원 우리는 그동안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왜곡 조작 날조된 가짜 한국인의 정체성을 마치 한민족의 참모습인 양 알고 지내왔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역사를 왜곡 날조하면서 난도질당한 이후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참모습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합니다. 일제의 관변사학자에 의해 19세기 후반 처음 주장되었고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굳혀버린 소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해방 후 대한민국 주로 강단사학계에 의해 통설이 되었습니다. 쓰다 소키치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역 일대를 점령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만들어냈습니다. 쓰다 소키치가 창안한 이른바 '.. 2020. 4. 22.
일제의 한국인 강제징용자 대학살 만행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일제의 한국인 강제징용자 대학살 만행, 폭발로 위장한 집단살인 사건 돌아오지 못한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1937년 12월부터 약 6주간 자행된 난징대학살(남경대학살)은 일제의 잔혹한 대학살 만행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일제의 잔혹한 대학살 만행은 중국인에 국한되지 않았다. 1876년 일제와 불평등 강화도조약을 맺은 이후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한국인 약 8백만 명이 일제의 잔혹한 만행에 대학살 당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만 해도 약 30만 명의 한국인이 일제의 총칼 아래 죽어갔다. 조선의 관군도 동학 농민혁명군 진압에 동원됐지만, 일제가 전투를 진두지휘하며 당시 최신식 연발 기관총 난사해 대학살을 자행했다.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뒤에도 일제의 잔혹한 대학살 만.. 2017.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