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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환단고기 - 한무제 때 사관 사마천 사기와 한사군 한반도설

by 도생(道生) 2016. 5. 27.

중국과 일본에 의한 한韓민족의 역사 왜곡

동북아 5대 역사 조작극 - 일제 식민사관의 한국 고대사 역사 조작 한사군 한반도 설

『환단고기』 - ① 한무제(漢武帝) 때 사관 사마천 사기에 없는 한사군 한반도 설

 

 

 

 

 

 

 

 

 

 

 

 

흔히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동양 최고의 역사서라고 합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명을 받고 중국의 역사를 기록한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중국의 시조라 받들고 있는 헌원으로부터 한 무제에 이르기까지 약 3천 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마천한 무제에게 말 한마디 잘못하여 죽음 직전에까지 갔었고, 결국 궁형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겨우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사마천에게 한 무제는 절대 권력을 가진 황제이며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사마천 사기史記에는 한사군 한반도 설의 역사가 없다.

 

 

사마천에게는 중국의 과거 역사도 중요했겠지만, 무엇보다 현 황제에 대한 치적을 돋보이게 기술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입니다. 그런 사마천의 사기에 일제 식민사관이 만든 한사군 한반도 설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사기의 첫 페이지부터 조작한 역사를 기록한 사마천이 자신의 생살(生殺)여탈권을 쥐고 있는 한 무제의 소위 고조선 정벌 낙랑, 임둔, 현도, 진번의 한사군을 사기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은 일제 식민사관이 만든 한사군 한반도 설의 실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사군 한반도 설은 일제 식민사관이 만든 대표적인 한국 고대사 역사 조작극입니다.

 

 

 

 

 

 

 

 

 

 

 

 

한 무제가 위만 정권을 치기 위해 좌장군 순체로 하여금 5만 명을 거느리고 육상으로 공격하고, 누선장군 양복으로 하여금 7천 명의 수군을 거느리고 위만 정권을 협공하게 됩니다.

 

 

순체와 양복 두 장수는 서로 공을 다투다가 시간만 끌게 되고 한 무제는 순체와 양복 두 장군을 사형에 처합니다.

순체는 사형을 당했지만, 양복은 사형 직전 돈을 써서 목숨을 부지하였으나 평민이 됩니다.

한나라는 사신까지 보냈지만 역시 실패하자 위산과 공손수 등 사신으로 갔던 사람마저 죽여버립니다.

 

한 무제가 전쟁의 선봉장이었던 두 장군과 사신들을 죽였다는 것은 당시의 동북아 국제정세에서 한나라의 위급한 형세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무제는 힘으로 위만 정권을 쓰러트리지 못하였습니다.

위만 정권의 지도층의 분란과 내부 교란 책으로 위만 정권은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이때 한 무제는 위만 정권의 몰락에 기여한 사람을 각기 제후로 임명하게 됩니다.

 

 

 

 

 

 

 

 

 

 

 

 

사마천 『사기』에 나와 있는 역사의 진실

 

 

 

위만조선은 일제 식민사관으로 조작한 한국의 고대사입니다.

 

위만 정권은 기원전 108에 멸망합니다.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는 그보다 근 20년이 지난 서기전 91년경에 완성됩니다. 

사마천은 한漢나라의 사관으로 한나라와 위만 정권과의 전쟁을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한나라와 위만 정권과의 전쟁을 사마천의 사기 조선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양군구욕장솔막후의兩軍俱辱 將率莫候矣,

(한漢나라 장수 순체와 양복의 육군과 수군) 양군이 모두 치욕을 당하였고, 장수들 중 누구도 제후로 봉해지지 않았다."

 

"이고수정조선위사군以故遂定朝鮮爲四郡, 이로써 조선(위만정권)을 평정하고 사군을 설치하였다.

삼은 홰청후(澅淸侯) 봉하고, 한음은 추저후(萩苴候) 봉하고, 왕겹은 평주후(平州侯)로 봉하고, 우거의 아들 장강은 기후(幾侯)로 봉하고, 최는 아버지가 도중에 죽었으나 큰 공이 있어 온(열)양후(溫(涅)陽侯)로 삼았다. (조선 5군 설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나라가 전쟁에서 참패했다는 의미이며, 한사군漢(四郡)이 아니라 위만 정권 몰락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제후로 봉한 5군입니다. 그리고 조선 5군은 하북성, 산동성, 산서성 지역에 있었으며, 또한 한漢나라의 직할령(直轄領)이 아니라 자치령(自治領)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이 만든 한사군 한반도 설을 근거로 중국은 동북공정을 추진

 

 

사마천의 『사기』가 세상에 나오고 근 2백 년이 지나 반고班固(32~92년)한서漢書가 나오게 됩니다.

반고의 『한서』에는 한 무제가 조선(위만 정권)을 멸망시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기』와 한서』의 기록 등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학이 조작한 역사 한사군 한반도 설의 근거로 이용니다.

 

한서 무제본기에는 4군

한서 지리지에는 2군

한서 오행지에는 3군

당나라 장수절이 저술한 사기의 주석서 사기정의에는 2군으로, 남송 배인의 『사기집해』에는 4군으로 나옵니다.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장수절의 사기정의』, 배인의 『사기집해』 등 모든 기록이 일관성도 없고 또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일제 식민사관이 조작한 역사 한사군 한반도 설의 실체이며, 조작한 한사군 한반도 설을 바탕으로 중국은 고대 한반도가 중국의 영토였다고 주장하며 국가가 주도하는 역사 왜곡 프로젝트 동북공정을 추진하였습니다.

 

 

 

 

 

중국과 일본에 의한 한韓민족 역사 왜곡

동북아 5대 역사 조작극 - 사마천 『사기史記』 금살치우(擒殺蚩尤)

중국의 시조 황제 헌원과 『환단고기』의 배달국 치우천황

http://gdlsg.tistory.com/1407

 

 

 

 

 

 

 

 

 

 

환단고기 해제에서 전하는 한사군 한반도 설

 

 

 

『환단고기』 완역본 해제 361쪽

 

낙랑국은 낙랑군과 다르다.

최숭이 세운 낙랑은 요서 지역에 있는 자신의 고향, 낙랑에서 이름을 따 왔다.

이 낙랑은 번조선 수도 왕검성이 있던 지금의 하북성 창려현 지역으로 비정 된다. 이에 반해 낙랑군은 한 무제가 번조선을 패망시키고 그곳에 설치하려 했던 4군(四郡) 중의 하나이다. 심백강은 낙랑군이라는 지명이 서요하 상류인 요락수(饒樂水)(시라무렌 강)와 현재의 대능하인 백랑수(白狼水)에서 나온 것이라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낙랑군은 현재의 난하와 요하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심백강 황하에서 한라까지 56~57쪽)

 

 

 

『환단고기』 완역본 해제 365쪽

 

한사군에 대해 2009년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漢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지배하고자 하였으나, 토착민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그리하여 그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결국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소멸되었다." (34쪽)라고 서술한다. 한사군 설치를 다소 애매하게 표현한 이 서술은 '한사군이 설치되었으나 고조선 유민의 반발에 결국 철폐되었다.'로 이해된다.

 

 

 

『환단고기』 완역본 해제 562쪽

 

한서 무제본기에 중국은 한 무제가 의도하였을 뿐인 한사군이 요서 지역에 실제로 설치된 것으로 기록하였다.

일본은 그 한사군을 한반도 북부로 옮겨 한국사를 대륙사에서 반도사로 축소시키고 한국사가 위만조선에서 한사군으로 이어진 것으로 설정하였다.

일본의 한사군 재在 한반도 설을 중국이 동북공정에 악용하여 고대 중국의 강역을 한강 이북 지역까지 확장하였다.

서양 교과서도 중국의 동북공정에 동조하여 한나라와 당나라 때 영토를 한반도 북부까지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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