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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마루타 생체실험의 일본 관동군 731부대 도쿄 전범재판

by 도생(道生) 2017. 9. 9.

일본 군국주의의 첨병으로 만주를 점령한 일본 관동군

마루타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일본 관동군 731부대의 도쿄 전범재판

 

 

 

 

 

 

 

 

 

 

 

 

 

1951년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휴전회담이 결렬되면 한반도에 세균폭탄 투하를 결정했다.

1951년 미군 비행기가 광주 무등산 자락에 하얀 가루를 뿌리고 난 뒤 그 지역 사람들이 온몸에 이상증세가 발생하고 재귀열병 등에 걸려 여러 사람이 죽었다.

 

 

1952년 초 생화학무기를 제조해 전투에서 사용하고, 민간인에게 마루타 생체실험을 한 일본 관동군 731부대 부대장 이시이 시로가 한국을 두 차례 극비리에 방문했고, 그 해 3월에도 한국에 있었다.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2년 초, 살을 에는듯한 한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 미군은 비행기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투하한다.

미군은 북한군과 중공군이 있던 평안남북도 일대에 장티푸스, 콜레라, 흑사병 등에 감염된 마른 풀잎과 솜, 새의 깃털 등 투하했다.

 

미국은 세균전 사실을 철저히 부정했고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유엔 조사까지 요구했다.

그러나 유엔 조사는 열리지 않았고, 미국 정부는 끝까지 부정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부정한 세균전을 미군 병사들이 직접 나서서 세균전을 감행했다고 증언했다.

흔히 세균무기, 즉 생물무기를 가난한 나라의 핵폭탄이라고 하는데 당시에도 미국이 가난한 나라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지구촌에 단 한 명도 없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사용한 세균무기와 마루타 생체실험을 한 일본 관동군 731부대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루타 생체실험 등 잔혹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악마의 부대 일본 관동군 731부대는 소련과 중국의 특별군사법정과 미국이 주도한 일본 도쿄의 극동국제군사법정에서 각각 전범재판을 받았다.

 

 

 

 

마루타 생체실험을 한 일본 관동군 731부대가 처음 전범재판을 받은 것은 재판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미국이 좌지우지한 일본 도쿄 국제군사법원이다.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마루타 생체실험을 한 일본 관동군 731부대를 조사했다.

미군은 일본 관동군 731부대의 부대장 이시이 시로가 집에 숨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체포하지 않았다.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단지 일본 정부에 이시이 시로를 연합군 최고 사령부로 넘길 것을 요청했을 뿐이다.

 

세균무기 제조법을 빼앗을 생각만 하고 단죄할 생각이 없던 연합군 군사재판부는 사람을 파견하여 일본 관동군 731부대 부대장 이시이 시로를 신문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발생한다.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미군의 뜻대로 움직였다.

미국은 화학무기, 생물무기를 제조하여 전투에서 사용하고, 마루타 생체실험을 한 일본 관동군 731부대에 대한 조사 내용을 모두 은폐했다.

 

 

 

 

 

 

 

 

 

 

 

 

 

연합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와 미국 정부는 일본 관동군 731부대가 10여 년 동안 축적한 모든 자료를 얻는다는 조건으로 731부대의 전쟁범죄 만행을 눈감아 줬다.

 

 

 

2년여 동안 열린 도쿄 전범재판에서 일본 관동군 731부대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 것은 난징(남경)이 주둔한 일본군 제1644부대(731부대 소속)에 대한 짧은 한마디밖에 없었다.

 

도쿄 전범재판, 즉 국동국제군사재판은 1946년 5월 3일부터 1948년 11월 12일까지 열렸다.

 

 

 

 

 

 

 

 

 

 

 

 

도쿄 전범재판은 1948년 11월 4일 판결선고가 시작되고 12일까지 판결선고가 계속됐다.

미국이 주도한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생화학무기를 사용하고 민간인에게 마루타 생체실험을 한 일본 관동군 731부대 관련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미국 군인이며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일본 관동군 731부대 부대장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에게 면죄부를 준다.

 

 

연합군 최고사령부에서 731부대를 조사한 제2 참모부 월러비 장군은 연합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시에 따라 도쿄 전범재판에서 생화학무기와 마루타 생체실험 등의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731부대에 관한 모든 내용을 은폐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미국 법무국에 보냈다.

 

 

 

 

 

 

 

 

 

 

 

생화학무기를 만들고, 마루타 생체실험을 한 일본 관동군 사령부 특수부대 731부대원 상당수가 동경대학교 의대 및 일본의 일류대학 출신의 인텔리로 군의관 등으로 복무했다.

 

 

미국은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731부대 출신과 관련자로 이미 제명된 군의관을 1952년 모두 사면해 주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다.  

 

미국과 일본의 추잡한 뒷거래는 1980년 미국 저널리스트 존 파웰이 문서를 공개하면서 만천하에 공개됐다.

 

 

 

 

 

 

 

 

 

 

 

1949년 12월 30일 소련 하바로프스키의 특별군사법정은 일본 관동군 731부대 관련자 12명은 최하 2년에서 최고 25년의 형을 선고해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형기를 마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1956년 일본으로 모두 돌아갔다.

 

 

1956년 4월 25일 중국 심양의 특별군사법정은 일본 관동군 731부대 스즈키 히로사와 등 36명의 재판을 시작했다.

세균을 제조하고 마루타 생체실험을 한 일본 관동군 731부대 부대원은 12년에서 20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했다.

 

 

 

 

 

 

 

 

 

 

 

소련과 중국의 전범재판도 도쿄 전범재판과 마찬가지로 검찰이 피의 사실 조사와 심문, 물증을 제시하고 세균전과 마루타 생체실험을 한 일본 관동군 731부대 피의자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재판에 임하였다.

 

 

도쿄 전범재판과 소련과 러시아의 전범재판은 모두 동일한 죄목으로 재판이 진행되었지만, 소련과 중국의 재판부는 피의자의 유죄 사실을 인정하여 징역형에 처한 반면, 도쿄 전범재판은 연합군 최고사령관과 미국 정부가 조직적으로 유죄 사실을 은폐하고 일본 관동군 731부대 부대장 이시이 시로와 관련자 모두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사실이다.

 

 

 

 

 

 

 

 

 

 

마루타는 껍질을 벗긴 통나무라는 의미다.

일본 관동군 731부대는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일본인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은 사람 같지 않은 동물과 필요 때문에 쓰는 재료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일본 제국주의 731부대는 일본인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은 대량살상을 위해 필요한 연구 재료이며 군수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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