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복싱의 전설, 영원한 세계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 명언
'영원한 강자는 없다.' 라는 말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국가 간이나 사회 여러 분야에서 그대로 적용된다.
살아 있는 복싱의 전설로 영원한 복싱 세계 챔피언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무하마드 알리도 현역시절 무패의 행진을 하지 못했고, 헤비급 세계 챔피언 벨트도 여러 차례 뺏기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의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은 흑인이 미국 대통령이 된 현재도 남아 있다.
1942년 미국 켄터키주에서 출생한 무하마드 알리의 본명은 캐시어스 클레이(Cassius Marcellus Clay, jr - 백인 기독교인 농장주의 이름을 딴 노예 이름)였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며 무하마드 알리가 살던 지역은 흑인에 대한 멸시와 조롱이 유독 심했던 지역으로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으며 자랐다.
자전거를 도둑맞은 것이 계기가 되어 복싱을 시작한 알리는 전설적인 백인 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 로키 마르시아노의 경기를 보고 오직 복싱 세계 챔피언을 향한 꿈을 키운다. 무하마드 알리는 학교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복싱에서만큼은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올림픽을 포함하여 아마추어 통산전적 100승 5패의 좋은 기록을 쌓았다.
전국대회 우승과 로마 올림픽(1960년)에 미국 라이트헤비급 복싱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는데, 그것은 무하마드 알리가 권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던 자전거 도둑을 맞은 지 6년 만이었다.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로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없어지지 않았다. 미국 내에 뿌리를 깊게 내린 인종차별에 환멸을 느낀 알리는 올림픽 금메달을 강에다 버리고 만다.
프로복싱에 데뷔한 알리는 19전 전승으로 1964년 당시 철권(鐵拳)으로 불리던 세계 챔피언 소니 리스튼과 경기에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경기에서 승리하며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다.
3년여 동안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는 모든 도전자를 물리치며 승승장구하던 무하마드 알리는 자신의 부모님도 모두 기독교 신앙을 한 개신교 국가 미국에서 흑인 노예이름 캐시어스 클레어를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이름도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하게 된다.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은 흑인 인권조직 '이슬람 민족'의 창시자 엘리야 무하마드가 지어준 이름이다. 단순한 종교 개종이 아닌 흑인 인권운동을 향한 첫발자국이었다. 무하마드 알리는 흑인에 대한 멸시와 조롱, 저주와 욕설 등 미국 사회 인종차별의 불의와 맞선다.
베트남 전쟁의 징집영장이 발부되자 당시 흑백갈등이 첨예했던 미국사회에 "나는 당신들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챔피언이 되겠다. 베트콩은 우리를 검둥이라고 욕하지 않았다. 그들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라는 말을 한다.
그는 양심적 징집거부로 기소되어 권투선수 자격 박탈과 함께 챔피언 벨트를 뺏기게 된다.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지어준 엘리야 무하마드는 종파의 칙령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슬람에서 제명한다.
알리는 명예로운 복싱 세계 챔피언의 타이틀을 빼앗기며 시련과 좌절의 길로 들어섰지만, 절대 물러서지 않는 끈기와 집념으로 영원한 챔피언의 길로 들어선다.
3년 5개월의 법정 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 사회는 반전(反戰)운동이 거세지게 되고, 미국 대법원은 무하마드 알리에게 무죄를 선고하게 되고 알리는 링에 복귀한다. 최전성기 상승가도를 달리던 현역 복싱선수, 그것도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게 3년 5개월이란 공백은 너무나 큰 걸림돌이었으나 무하마드 알리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제2의 전성기를 만든다.
1976년 이종격투기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경기가 열렸다.
복싱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일본의 레슬링 선수 안토니오 이노끼와의 세기의 대결은 큰 관심을 끌었던 시합이었다.
1974년 조지 포먼을 누르고 두 번째 세계 챔피언(킨샤사의 기적)에 오르고, 1978년 리언 스핑크스를 누르고 세 번째 세계 챔피언에 오른다. 프로 통산전적 61전 57승(37KO) 5패, 세 차례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 무하마드 알리는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챔피언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복싱의 전설, 영원한 세계 챔피언으로 남아 있다.
복싱에서 은퇴한 알리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음에도 지구촌을 다니며 인권운동과 사회운동에 헌신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예전에 '알리는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제목의 평론문에서 무하마드 알리의 노력과 용기있는 행동이 자신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며 열렬 팬임을 증명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멘토로 여겼다.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성화 최종 점화자는 파킨슨병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던 무하마드 알리엮다.
오랜 투병생활로 자신의 몸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모습으로 올림픽 성화에 점화하는 모습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특히 장애인에게 큰 용기를 준 가장 감동적인 올림픽 성화 점화였다. 지난 2005년에는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훈장인 자유훈장을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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