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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국부 & 독재자, 상반된 평가를 받는 리콴유(이광요) 수상 명언

by 도생(道生) 2015. 11. 14.

가포르의 국부(國父) & 장기집권 독재자 상반된 평가를 받는 리콴유(이광요李光耀) 수상 명언

 

 

 

 

 

 

 

 

 

19세기 대영제국 동인도 회사가 무역항을 조성하면서 만들어진 현재의 싱가포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말레이시아 침공으로 일본에 점령당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자 영국이 다시 싱가포르를 통치하였고, 1957년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1959년 영국 식민지 자치정부 총리로 취임한다.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과 합병한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 편입되어 있다가, 인종과 이념적 갈등 등 잦은 마찰로 1965년 분리 독립을 하게 된다. 1965년 8월 9일은 인민행동당이 50년 장기집권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리콴유(이광요, 1923 ~ 2015) 수상은 동방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객가인의 후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싱가포르에 돌아와 변호사로 일하다 친영국적 색채를 가진 진보당에서 정치를 시작한다.

 

리콴유는 1954년 공산주의자 림친 시옹과 함께 인민행동당을 창당하였으나, 추후 림친 시옹은 인민행동당을 탈당하게 된다.

1959년 인민행동당이 선거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며 집권하게 된다.  

 

 

 

 

 

 

 

 

리콴유(이광요) 총리가 실제 총리로서 집권한 것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1959년 영국 식민지 자치정부 시절부터 공식적으로 퇴임한 1990년까지 31년간이었다. 그러나 리콴유(이광요) 총리는 퇴임한 후에도 원로 장관, 고문 장관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싱가포르 국정운영에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청렴하고 깨끗한 나라,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무원에게 일반 기업보다 많은 임금을 주었다.

질서를 넘어선 자유는 용납되지 않는다고 하며 아직도 남아 있는 태형 제도를 만든다.

 

 

 

 

 

 

 

 

싱가포르 국내총생산(GDP)이 2014년 5만 6천 달러가 넘어가며 아시아 1위(세계 8위)의 경제부국으로 만들었다.

싱가포르를 비즈니스 허브로 만들어 아시아 최고의 금융 및 정보통신 등 7천여 개의 다국적 기업이 포진해 있다.

장기집권, 권력 세습의 부정적인면과 함께 대한민국이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엄청난 경제성장을 일궈냈다.

 

 

 

싱가포르는 국민의 대다수(약 80%)가 중국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싱가포르가 독립한 1965년 창당한 인민행동당(PAP)은 지난 50년간 17번의 총선에서 한 번도 집권 여당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일당집권으로 싱가포르를 장기집권하고 있다.

 

 

 

 

 

 

 

 

리콴유(이광요) 수상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작은 섬나라, 가난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집권 기간에 국민소득을 약 100배 이상 올려놓으며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세계적인 경제부국으로 만든 리콴유를 싱가포르의 국부로도 부른다.

 

또, 권력과 부(富)를 리콴유 총리 일가와 일부 계층에 편중된 것과 경제 개발의 명분으로 장기집권한 것, 집권기간에 집회와 언론의 자유, 지나친 인권 통제, 권위주의적인 강력한 리더십 문제 등으로 독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더욱이 아들 리센룽이 싱가포르 총리 자리에 오름으로 권력 세습과 리센룽 총리의 부인 호칭은 국부펀드의 최고경영자로 있으며, 리콴유의 가족이 정계와 재계의 요직을 차지하자 나라를 기업처럼 운영한다는 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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