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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조선 5대 왕 문종 대왕 이향

by 도생(道生) 2016. 9. 9.

근세조선 5대 왕 문종(文宗) 대왕 이향(李珦)

 

 

 

 

 

 

 

 

 

 

 

 

 

 

조선의 5대 왕 문종대왕 이향은 아버지 세종대왕과 닮은 점이 많았다.

효성이 지극한 것과 학문을 좋아했다. 성품 역시 어질고 너그러우며 온화했다고 문종실록에서 전하고 있다.

 

그런데 닮지 말아야 할 것도 아버지를 닮아 버렸다. 바로 병약한 몸이다.

아버지 세종대왕의 건강은 선천적인 영향도 있지만, 과로에 의한 후천적인 영향이 컸던 반면, 문종대왕은 선천적으로 병약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조선의 4대 왕 세종대왕은 건강이 악화되자 왕세자에게 의정부서사제 체제로 대리청정하도록 명하였다.

1450년(세종 32)에 세종대왕이 승하하자 조선의 5대 왕으로 등극한다.

문종대왕은 8살에 왕세자로 책봉, 대리청정 8년을 합쳐 29년 간 왕세자로 있었다.  

 

 

 

조선의 5대 왕으로 등극한 문종대왕의 재위 기간은 불과 2년 3개월 남짓이다.

그러나 왕세자로 대리청정하였던 기간을 포함하면 10년의 세월이다.

세종대왕의 후반기 업적은 문종대왕의 치세라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문종대왕이 왕세자로 있을 때 맞이한 첫째 부인 휘빈 김씨는 시기와 질투심이 많고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잡술 행하다가 신하들의 탄핵을 받고 세종대왕에 의해 세자빈에서 쫓겨났다. 둘째 부인 순빈 봉씨는 동성연애를 하다가 발각되어 폐서인 되어 쫓겨났다.

 

 

세번쨰 부인은 이미 후궁으로 들어와 있던 권씨로 세자빈이 되었다. 왕세자 이향(문종)의 세자빈 권씨는 1441년 단종을 낳고 사망한다.

단종의 어머니 권씨는 사후 현덕빈(顯德빈)으로 칭하다 문종대왕이 조선의 5대 왕으로 등극한 후 현덕왕후로 추존된다.

 

 

 

세종대왕은 말년에 병약한 문종을 염려하여 신하들을 불러놓고 문종을 잘 보필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조선의 5대 왕 문종대왕 이향은 2년 3개월의 짧은 재위 기간을 뒤로하고 1452년 39살의 젊은 나리에 승하하였다.

 

 

조선의 5대 왕 문종대왕이 승하한 후 명나라에서 받은 시호는 공순(恭順)이다.

존시를 합치면 문종공순흠명인숙광문성효대왕이다.

묘호(廟號)는 문종(文宗)이며, 시호(諡號)는 흠명인숙광문성효대왕(欽明仁肅光文聖孝大王)이다.

 

 

 

 

 

 

 

 

 

 

 

 

 

 

조선의 7대 왕 세조가 6대 왕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면서 문종대왕의 왕비 현덕왕후는 혼백이 갈 곳을 잃고 떠돌게 된다.

단종 복위 운동을 벌이던 현덕왕후의 가족(어머니와 동생)이 붙잡혀 죽으면서 왕비에서 서인으로 격하된다.

종묘에 모셔져 있던 현덕왕후의 신위는 불태워졌고, 묻혀 있던 소릉은 파헤쳐졌다.

 

 

사적으로는 시동생이었던 세조에 의해 자식(단종)과 친정 가족(어머니와 동생)이 죽고, 자신의 혼(魂)과 백(魄)이 불태워지고 파헤쳐졌으니 구천을 떠돌아다닌 혼백의 원한이 얼마나 컸을까.

근 60년 동안 안정할 곳 없는 현덕왕후의 한 맺힌 영혼은 구천을 떠돌아다니다가 중종 8년(1513)에 왕비로 복위되었고 문종대왕과 합장 되었다.

 

 

 

 

조선의 5대 왕 문종대왕은 1441년(세종 23) 세계최초의 정량적 강우량 측정기 측우기를 발명한다.

문종 1년(1451)에 태조대왕부터 59년간 고려 시대 역사를 기록한 『고려사』가 출간된 것을 비롯하여 『고려사절요』, 『대학연의주석』, 『동국병감』 등이 문종대왕 재위 중에 편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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