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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조선 13대 왕 명종 대왕(문정왕후의 아들) 이환

by 도생(道生) 2016. 9. 17.

근세조선 13대 왕 명종(明宗)대왕(문정왕후의 아들) 이환

 

 

 

 

 

 

 

 

 

 

 

 

 

 

조선의 13대 왕 명종대왕 이환(1534~1567)은 조선 11대 왕 중종대왕(1488~1544)의 둘째 아들이다.

명종은 조선의 12대 왕 인종대왕(1515~1545)의 이복동생이다.

 

 

중종의 첫 번째 왕비(정비) 단경왕후 신씨(1487~1557, 재위 1506 9월 2일~9월 9일)는 중종반정 세력에 의해 7일 만에 폐위된다.

중종의 두 번째 왕비(1계비) 장경왕후 윤씨(1491~1515, 재위 1507~1515)는 인종(명종의 이복형, 선대왕)을 낳고 승하한다.

명종대왕은 중종대왕의 세 번째 왕비(2계비)이며, 인종대왕을 미워하고 고통을 안겨준 계모(繼母) 문정왕후(1501~1565, 재위 1517~1544)의 아들이다.

 

 

 

 

 

조선의 12대 왕 인종대왕과 왕비 인성왕후 사이에 후사가 없었다.

1545년 인종대왕이 승하하기 직전 선위(禪位)를 받은 이복동생 이환이 조선의 13대 왕으로 등극한다.

 

 

조선의 13대 왕 명종대왕 이환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한다. 

문정왕후는 동생 윤원형을 앞세워 국정을 전횡하였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악녀의 대명사가 되었다.

 

 

 

 

 

 

 

 

 

 

 

 

 

 

문정왕후의 친아들 명종대왕의 즉위와 함께 소윤(파평 윤씨) 외척 세력에 의해 피바람이 분다.

 

명종대왕의 어머니 문정왕후(중종 셋째 왕비)의 권력을 등에 업은 소윤(小倫) 외척 세력이 인종대왕의 어머니 장경왕후(중종 둘째 왕비)의 대윤(大尹) 외척 세력을 공격한다. 

 

명종 즉위년(1545년) 대윤(大尹, 장경왕후 일족)과 소윤(小尹, 문정왕후 일족)의 싸움 을사사화가 일어난다.

 

 

 

 

조선왕조에 4대 사화(士禍, 선비들이 재앙을 입은 일)가 있다.

무오사화(1498년, 연산군 4), 갑자사화(1504년, 연산군 10), 기묘사화(1519, 중종 14), 을사사화( 1545년, 명종 즉위년)는 권력욕에 눈이 먼 자들에 의하여 저질러진 피를 부른 미친 칼춤이었다.

 

 

 

인종대왕 재위 시 대윤(大尹) 때문에 파직됐던 윤원형 등 소윤(小尹) 세력이 일제히 반격에 나섰다. 

조선 11대 왕 중종대왕과 희빈 홍씨 사이에서 태어난 봉성군을 왕으로 삼으려 했다는 음모와 조선의 9대 왕 성종대왕과 숙의 하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계성군을 왕으로 삼으려 했다는 음모를 만들어 대윤(大尹)의 윤임 일파가 유배되고 사사된다.

 

 

 

 

 

 

 

 

 

 

 

 

 

 

소윤의 우두머리 윤원형은 이른바 '양재역 벽서 사건'(1547년)을 조작하여 대윤 일파를 숙청한다.

'위로는 여왕이 설치고 아래로는 간신이 날뛰어서 조선이 곧 망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벽보가 경기도 양재역 벽면에 붙은 사건이다.

 

주자의 성리학 체계를 확립하였고 조선 성리학의 선구자이며 퇴계 이황의 학문과 사상에 영향을 준 회재 이언적을 비롯한 수많은 사림 세력도 화를 입었다.

 

 

 

 

 

조선의 13대 왕 명종대왕 이환은 왕으로 즉위하면서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였다.

문정왕후가 아들 명종을 수렴청정 기간에 윤원형을 필두로 한 소윤(小尹) 외척 세력은 권력을 전횡하였다.

조선의 13대 왕 명종대왕 이환이 20살이 넘어 친정(親政)하였으나 어머니 문정왕후와 외삼촌 윤원형은 권력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명종을 허수아비 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천하의 요부 정난정도 함께했다.

정난정은 첩의 딸에서 노비로, 노비에서 기녀로 살다 윤원형의 눈에 띄어 윤원형의 첩으로 살다 정경부인(정1품과 종1품 문무 대신의 부인)에까지 오른다.

 

 

권력에 빌붙어 아첨하는 자, 벼슬을 사려는 자, 신분 세탁하려는 자 등 온갖 시정잡배들이 정난정에게 뇌물을 바치면서 윤원형과 정난정의 집은 부정부패의 산실이 되었다.

 

 

 

 

 

 

 

 

 

 

 

 

 

 

문정왕후와 윤원형 일파의 권력 남용이 얼마나 심하였는가는 승려 보우(普雨)를 병조판서에 올린 것을 들 수 있다.

보우는 불교에 심취하였던 문정왕후를 등에 업고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불교 부흥을 도모했다.

 

 

 

조선의 13대 왕 명종대왕은 어머니 문정왕후와 윤원형 등 외척 세력을 견제하고자 자신의 왕비 인순왕후의 외척 이량을 이조정랑에 등용하였다.

 

명종대왕이 중용한 이조정랑 이량은 자신의 세력을 만들었고 이조참판까지 올라 권력을 남용하였다.

자신을 탄핵하려던 사람들을 제거하려다 오히려 자신이 삭탈관직 되고 유배되어 죽었다.

 

 

 

아들 명종대왕을 무시하고 권력만 추구했던 어머니 문정왕후가 1565년(명종 21) 65세로 죽는다.

병조판서 보우는 승직(승려)까지 박탈당하고 유배하여 죽였다.

온갖 전횡을 일삼고 조선이란 나라를 자기 집 다스리듯 했던 윤원형과 정난정은 귀양가 죽었다.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대왕은 재위 23년간 뚜렷한 업적이 없다.

거의 일방적이다시피 어머니 문정왕후에게 권력을 빼앗겼고, 재위 기간 내내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권력에 대한 야심과 탐욕으로 가득 찬 문정왕후와 윤원형, 정난정의 외척정치는 나라를 병들게 하였다.

가뭄과 흉년, 도적몰, 경제파탄, 왜구침입(을묘왜변 155년) 등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1565년 문정왕후 승하 후 자신의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재위 23년이 되던 1567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승하한다.

묘호는 명종(明宗)이며, 시호는 명종공헌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明宗恭憲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이다.

명종대왕과 왕비 인순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순회세자 이부는 13살에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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