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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효명세자 이영 부인 신정왕후 조대비와 안동김씨 세도정치

by 도생(道生) 2016. 10. 9.

효명세자(익종翼宗,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의 부인 신정왕후 조대비(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 60년 세도정치 - 조선 후기 안동 김씨, 반남 박씨,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 100년

 

 

 

 

 

 

 

 

 

 

 

 

 

 

 

 

조선의 21대 왕 영조(1694~1776)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1745~1805)는 22대 왕 정조대왕 이산(1752~1800)이 승하하자 대왕대비가 되었다.

 

정조와 왕비 효의왕후 사이에는 자식이 없고, 정조와 후궁 수빈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순조(이공, 1790~1834)다.

 

 

1800년 조선의 23대 왕 순조는 즉위와 함께 정순왕후(영조 계비)가 4년 동안 수렴청정을 한다.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반남 박씨 친정도 이때 세력을 얻어 세도정치에 합류하였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 세력에 의해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그만두고 정치력을 잃은 상태에서 1805년(순조 5) 죽는다.

 

정순왕후는 세종대왕과 함께 조선왕조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정조대왕이 이룩한 업적을 지워버렸다.

며느리(혜경궁 홍씨)보다 10살이나 어렸던 정순왕후는 권력에 대한 집착과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전횡하면서 조선이 몰락의 첫발을 내디뎠다.  

 

 

 

 

 

 

 

 

 

 

 

 

 

 

1802년(순조 2) 김조순의 큰딸이 왕으로 즉위한 순조의 왕비(순원왕후 안동 김씨, 1789~1857))가 되었다.    

순조의 장인 김조순으로부터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김조순은 약 1년간 섭정을 하였고 이때부터 안동 김씨가 60년 세도정치를 시작한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는 조선을 몰락의 길로 몰아간다.

 

 

 

효명세자 이영(1809~1830)은 조선의 23대 왕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안동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효명세자 이영은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시작한 김조순의 외손자이기도 했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아래 조선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결국, 삼정의 문란을 혁파하고 안동 김씨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홍경래의 난이 발생한다.

그러나 조선을 뒤엎으려던 홍경래의 난은 관군에게 토벌되면서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게 된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아래 순조는 허수아비 왕으로 전락했다.

효명세자 이영은 1809년(순조 9) 순조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1819년(순조 19) 왕세자로 책봉된 효명세자는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큰딸 풍양 조씨(신정왕후 조대비, 1809~1890)와 가례를 올린다. 효명세자의 부인이 된 세자빈 풍양 조씨는 1827년(순조 27) 아들 이환(조선 24대 왕 헌종)을 낳았다.

 

 

 

 

효명세자 이영은 1827년(순조 27) 19살이 되던 해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견제하기 위해 순조가 대리청정을 명한다.

효명세자는 부인 풍양 조씨(신정왕후 조대비) 일족과 소론 등을 등용한다.

 

효명세자 이영이 약 4년간 대리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 세도정치는 잠시 주춤한다.

잠시 안정을 찾는듯하던 조선은 1830년(순조 30) 효명세자가 22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면서 다시 혼란과 부패가 극심해진다.

 

 

 

 

 

 

 

 

 

 

 

 

 

 

효명세자 이영이 요절하면서 부인(세자빈) 풍양 조씨(신정왕후 조대비)는 22살에 청상과부로 왕대비가 된다.

 

효명세자 이영의 죽음으로 효명세자의 아들 이환이 왕세손이 되었고, 1834년(순조 34) 순조가 승하하자 8살의 이환이 조선의 24대 왕 헌종으로 등극한다.

 

 

 

 

대왕대비가 된 헌종의머니 순원왕후 안동 김씨(순조의 정비, 효명세자의 어머니)가 1841년(헌종 7)까지 수렴청정하였다.

 

헌종이 친정할 때 어머니 풍양 조씨(신정왕후 조대비)는 외척 풍양 조씨 일가를 조정 요직에 앉히기도 했다.

1837년(헌종 3) 순원왕후(순조의 정비)는 친척 안동 김씨 김조근의 딸을 헌종의 왕비로 들인다.

 

 

 

 

1849년(헌종 15) 조선의 24대 왕 헌종이 23살에 후사 없이 승하하자, 방계였던 19살의 강화도령 이원범을 헌종의 양자로 입적하여 조선의 25대 왕 철종(1831~1864)으로 즉위시킨다.

 

 

순원왕후와 안동 김씨 세도정치 세력은 철종의 왕비로 안동 김씨 김문근의 딸을 왕비(철인왕후)로 들였다.

 

1857년(철종 8) 안동 김씨 순원왕후가 죽자 효명세자의 부인 신정왕후 풍양 조씨가 왕실 서역 1위 대왕대비(조대비)가 되었다.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 안동 김씨가 있었지만,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은 대왕대비 풍양 조씨였다.

 

 

 

 

 

 

 

 

 

 

 

 

 

 

1863년(철종 14)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대왕대비 조씨는 흥선군 이하응과 손을 잡고 흥선군의 둘째 아들 12살의 이명복(이재황)을 효명세자(익종)의 양아들로 입적하여 조선의 26대 왕으로 즉위시킨다.

 

 

 

효명세자의 부인으로 세자빈이 되어 궁궐에 들어온 지 근 30년 동안 숨죽이고 기다려온 신정왕후 조대비와 풍양 조씨 세도정치 세상이 밝아오고 있었다.

 

풍양 조씨 세도정치는 신정왕후(조대비)가 효명세자의 부인으로 들어온 이후부터 계속됐다.

단지, 안동 김씨 세도정치 세력이 워낙 크게 전횡하였기 때문에 힘에 밀린 풍양 조씨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1863년 고종이 즉위하고 대왕대비 조씨가 수렴청정을 하였으나 실제 권력은 흥성대원군에 있었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내쫓기 위한 신정왕후(조대비)와 흥선대원군의 합작품이다.

 

 

1873년 최익현의 상소가 올라올 때까지 흥선대원군은 썩은 조선을 개혁하는 한편 안동 김씨뿐만 아니라 풍양 조씨도 제거해 나갔다.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을 계기로 풍양 조씨와 고종의 중전 여흥 민씨 세력이 대거 사라진다.

 

 

그러나 깊이 뿌리를 내린 세도정치 세력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 한 예가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의 원인이 된 고부 군수 조병갑도 효명세자의 부인 조대비(신정왕후)의 인척이란 사실이다.

 

 

 

 

 

 

 

 

 

 

 

 

 

 

 

조선 후기는 안동 김씨, 반남 박씨, 풍양 조씨 등 외척 세력이 근 100년 동안 세도정치로 전횡하며 조선은 몰락의 길로 들어갔다.

조선은 안에서 세도정치로 곪을 대로 곪아 버렸고, 밖에서 거세게 밀려드는 제국주의의 힘에 조선은 결국 망국의 길을 간다.

 

 

 

효명세자 이영의 부인 풍양 조씨 대왕대비(신정왕후 조대비)는 22살에 청상과부가 되었지만, 조선왕조 왕비 중 가장 많은 나이 83세에 세상을 떠났다. 

 

 

효명세자 이영과 부인 풍양 조씨(신정왕후 조대비)는 살아서 왕과 왕비가 되지 못했다.

효명세자는 왕(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다가 대한제국 고종황제에 의해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추존되었다.

효명세자의 부인 풍양 조씨는 세자빈에서 신정왕후(神貞王后)로 다시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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