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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東夷) 한민족, 우리 민족의 활쏘기 문화사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다스리는 신독(愼獨)

by 도생(道生) 2014. 9. 19.

동이(東夷) 한민족, 우리 민족의 활쏘기 문화사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다스리는 신독(愼獨)

 

 

활은 수렵도구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병장기의 의미 외에 풍요를 이룩하는 도구로 인식되었다.

 

그리스 신들은 활을 지니고 다녔는데, 특히 태양신 아폴로는 활을 잘 쏘아 재앙을 쫓아버리고 더러움을 제거하며, 풍요를 가져오는 태양을 상징한다.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고대 페르시아의 태양신 및 전투신인 미트라(Mithra)는 바위를 활로 명중시켜 물이 솟아나게 하였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아홉 개의 태양을 맞춰 떨어트린 동이족 출신의 '예(羿)'라는 명궁수가 있었다.

특히 우리 민족을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는 의미로 동이(東夷, 夷 = 大 + 弓)족이라 했으며, 왕조의 창업자들은 모두 활을 잘 쏘는 선사(善射, 활을 잘 쏘는 사람)들이었고, 예로부터 우리를 '선사(善射)의 나라'라 불렀다.

 

 

 

 

우리 활의 역사는 환웅천황의 배달국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4대 자오지환웅(일명 치우천황)과 한족(漢族) 황제헌원의 탁록대전에서부터 그 기록이 나온다(환단고기- 삼성기 하편, 사마천의 사기-오제본기). 이후 단군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단궁(檀弓)이란 이름으로, 고구려시대에는 맥궁(貊弓)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이 맥궁에 철갑을 두를 말을 탄 개마무사들은 광개토태왕의 동아시아 영토회복(多勿다물)의 주력군이었다. 고려에서는 경궁, 강노, 청노라는 궁술부대가 있었는데, 몽골 강점기에는 활 만드는 장인들을 모조리 잡아갔다고 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외적의 침입에 수성전(守城戰)을 장기로 삼았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게 바로 활을 잘 쏘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예 유성룡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활을 잘 쏜다고 알려졌고, 이 때문에 성을 굳게 지킬 수 있으니, 활은 우리나라의 장기(長技)이다."라 했다. 임진왜란 당시 중국 명의 창, 일본의 칼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 병기로 활이 알려졌었다. 또 성호 이익은 "활과 화살의 이점이 우리를 동방의 최고로 만들었다."고 했다.

 

 

 

 

활쏘기가 우리에게 단순히 전쟁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활문화에서는 살생의 용도를 의미하는 '쏜다'는 말보다 심신수련의 의미를 강조한 '낸다'는 말을 더 선호했다.

 

『 중용中庸 』14장을 보면

'射사, 有似乎君子유사호군자, 失諸正鵠실제정곡, 反求諸其身반구제기신.'

"활쏘기는군자의 덕성에 비유될 만하다.

활을 쏘아 정곡에서 벗어났으면, 항상 그 오류를 되돌이켜 자기 몸에서 찾는다."는 구절이 있다.

 

그래서 활쏘기 하는 날에는 술을 마시지도 않고, 몸을 단정히 하여, 웃거나 잡담을 금하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며 일체 격식을 준수하였다고 한다.

 

 

 

 

활쏘기는 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며 호흡을 가다듬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단전호흡이 되었고,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정확하게 활을 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활을 쏠 때는 딴 생각을 할 수 없고 활에만 집중해야 하고 중심을 잡아야 하는 운동이라 하니,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홀로 삼가야 하는 신독(愼獨)을 수련하는 방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태양을 상징하는 동심원의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바람이 불어 화살이 움직이고, 마음이 흔들려 화살이 흔들리고, 우리의 삶도 이리저리 흔들릴 수 있다.

그러기에 선사(善射)는 자기 자신을 과녁 삼아, 중심(中心)을 잡는다.

흔들림 없는 올곧음, 중심을 지키는 마음 수양이 있을 때 활과 내가 하나되어 심신(心身)수련으로서 자기 수양의 활쏘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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