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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을미년(1895년) 단발령 - 중국의 변발, 일본의 존마게, 한민족(조선)의 상투의 의미와 상징

by 도생(道生) 2014. 12. 30.

을미년(1895년) 단발령 - 중국의 변발과 일본의 존마게는 무사의 상징과 전쟁의 상징, 한민족의 상투는 선비와 평화를 의미.

 

 

 

 

지금은 과거의 구습舊習으로 여겨지고 있는 상투!

불과 1백년 전만 해도 우리 민족의 일반적인 머리 모양이었다.

일제가 시행한 단발령으로 우리 조상들은 강제로 상투를 잘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을미의병(1895년)까지 일어나게 된다.

 

 

 

 

 

왜 우리 조상들은 "목은 자를지언정 상투는 자를 수 없다(최익현)"고 하면서까지 상투를 지키려 했을까?

당시의 시대상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훼상할 수  없다는 유교의 가르침이 주된 이유였지만, 그 상투 안에는 엄청난 비밀이 담겨 있다.

 

 

 

 

 

한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것이 헤어스타일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거리에는 최신식 헤어스타일이 유행하고 사람마다 남들과 다른 머리양식을 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조선은 상투, 청나라는 변발, 일본은 존마게(丁髷 , ちょんまげ )로 대변될 만큼 민족을 구분하는 상징이자 수단이 바로 머링양식이다.

변발과 존마게가 무사의 상징이자 전쟁의 상징이었던 반면, 한민족의 상투는 유독 선비의 상징이자 평화를 의미했던 것이다.

 

 

 

 

 

"상투는 우리 민족 고유의 머리 형태로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기마민족들은 투구를 쓸 때에 땀띠가 나는 것을 막으려고 앞머리 부분을 면도했으며, 호족의 변발이나 일본 무사의 상투(존마게)도 모두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 머리 모양을 '노정露頂'이라 하는데, 용감한 병사를 일컫는 말로 쓴다... 그러나 동북아시아와 일본 사이에 있는 한국에서는 이 앞머리 깎는 풍습이 호마胡馬와 마찬가지로 자리잡지 못하였다... 삼국시대 이후 한국인의 머리 모양은 과하마果下馬처럼 평화스러운 선비의 상투 형태로 정착되어 갔던 것이다."  (1998년 지식산업사, 용운 『제2건국론』)    

 

 

 

 

 

목을 자를지언정 상투는 자를 수없다!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이 벌어진 날, 친일내각이 단행한 단발령은 백성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1896년 1얼 7일, 궁내부 특진관인 김병시는 공자가 "신체발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훼상치 말라"고 가르쳤다고 하면서 단발령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린다. 이를 기화로 단발령 반대운동은 재야의 유생뿐만 아니라 서민들에게까지 번지게 된다.

 

 

 

 

 

그러자 내각에서는 각지에 체두관剃頭官을 파견하여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강제로 상투를 잘랐고, 이로써 거리마다 상투를 잘린 자들의 통곡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수령들은 더러 상투를 잘라 백회百會를 드러내 놓고는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묶어 머리를 두르고서 상투 없는 것을 표시했으며 더러는 깡그리 깎아 시세를 따르기도 했지만 이민吏民들은 한사코 단발령을 거역하며 기한을 여러 번 물렸다. (황현 『매천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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