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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무저항 운동으로 평화의 상징이 된 마하트마 간디 명언

by 도생(道生) 2015. 10. 17.

비폭력 무저항 운동으로 평화의 상징 된 위대한 영혼으로 불린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 명언

 

 

 

 

 

 

 

 

 

마하트마 간디(1869 ~ 1948)는 인도의 정신적, 정치적 지도자로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 비폭력 운동으로 평화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부유한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난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 사밀러스 대학교에 입학하고 영국 유학을 하여 런던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현재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변호사를 개업하고 지내면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그곳에서 차별 대우를 받는 인도인을 보면서 인종차별 반대운동 단체를 결성한다.

 

인도인의 권리를 찾고자 한 마하트마 간디는 국제사회에 인도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널리 알리며 인도인의 단결심을 고취하기 위해 나탈 주(州)인도국민회의를 창설하기도 한다.

 

 

 

 

 

 

 

 

간디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머무르는 기간(1893년~1915년) 동안 인도인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그러한 행동을 하는 와중에 흑인을 일방적으로 비하하고 흑인들의 삶이 인도인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며 무시하는 발언을 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고향 인도로 귀국한 간디는 인도의 독립운동과 노동운동에 전념하였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독립을 약속한 영국을 지지하였던 간디는 인도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나도 독립의 약속을 지키지 않자 영국에 대한 저항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인도 점령국 영국에 대한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은 영국이 만든 상품을 불매하고, 영국 정부에 대한 납세를 거부하며 인도를 점령한 정부의 공직에서 사퇴하는 등을 인도 국민에게 호소하며 비폭력으로 불복종하며 저항하는 운동을 펼쳐나갔다.

 

 

간디는 인도의 신분계급 제도인 카스트 제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을 '하리잔(신의 아들)'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1932년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 정부가 선거권 자체가 없던 불가촉천민에 대하여 분리선거제를 실시하려고 하자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에 들어가기도 한다. 불가촉천민이 카스트 제도에서 분리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간디는 영국으로부터 인도의 독립과 인도 내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였으나 인도는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리되었고 종교화합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1947년 8월 14일)이 분리 독립하였고, 힌두교 국가 (現)인도(1947년 8월 15일)가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였다.

 

분리 독립한 인도 내에서도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의 종교적 갈등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급기야 1948년 1월 30일 반 이슬람 힌두교 급진주의 무장단체 '라시트리아 세와크상가'의 나투람 고드세라는 총탄에 마하트마 간디가 암살당한다.

 

 

 

 

 

 

 

노벨 평화상 후보에 5차례나 올랐지만, 간디는 끝내 노벨 평화상을 받지 못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비폭력 정신으로 평화의 상징이 되었으며, 인도의 대문호 타고르가 그를 가리켜 위대한 영혼이라 칭송하기도 하였다.

 

 

 

 

 

 

 

 

때론 노동자보다 자본가들의 편에 섰던 것과 비폭력운동을 실천하면서 영국의 인도 독립 회유에 현혹되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과 부적절한 사생활과 모순된 언행, 간디 부자의 천륜이 끊어지는 지경까지 이른 그의 독단적인 태도, 부유한 명문가 집안 출신으로 인도의 카스트제도 옹호와 (現)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인을 무시하고 비하한 언행은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하트마 간디가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평화의 상징이 되어 인도뿐만 아니라 지구촌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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